1

 

내가 생애 최초로 쓴 글은 시였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인지, 초등학교 4학년 때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교내 백일장에 나가 금상을 먹고 공책 일곱 권을 획득했다. 기억 나는 부분은, 시제는 가을이었고, 내가 평생 처음 쓴 글의 첫 구절은 "빨강빨강 산에는/빨강 비가 내렸나" 였다는 것. 4343 리듬에 썩 읽는 맛이 있는 발음이, 지금 보아도 썩 귀여운 도입부라고 하겠다.

 

이 세상 중 2의 사분의 삼은 반드시 시를 쓴다. 시는 중2병의 가장 대중적인 증상이다. "내 안의 흑염룡이 날뛰고 있어" 라는 발언을 현실 세계에서 듣는다면, 아 저 놈이 지금 미쳤거나 시를 읊었거니, 라고 할밖에는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다. 나도 중2에 시를 썼다. 공책이 풍년이었다. 기억할 만한 작품은 하나도 없었으므로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다. 

 

중2병은 완치되지 않는다. 고 2때쯤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열어 본격적으로 시를 올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가끔 친구들이 찾아와 칭찬의 댓글을 달아주곤 했다. 쓴 놈이나 읽은 놈이나 다들 미친 시절이었다. 대학에 들어가도 세상은 어지러웠지만 나는 내 시에 집중하느라 세상에 도통 관심을 두지를 않았다. 말은 바로 해야지. 내 시가 세상보다 더 어지러웠기 때문에 도통 세상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쓰는 손보다 읽는 눈이 더 빨리 성장하면서, 내 눈에 내 시는 점차 구려졌다. 구려서 도저히 참고 봐주기가 어려웠다. 때마침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고 때는 이때다 싶었다. 시국에는 장님이었으면서도 마치 시국을 비관하는마냥 재빨리 절필을 선언했다. 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다니. 밝은 세상이 올 때까지 다시는 붓을 들지 않으리. 그러나 세상은 경제대통령의 출현에 들떠 내 절필에 도통 관심을 두지 않았다. 복수심 때문이랄지 나 또한 경제대통령과 그의 전공이라는 경제에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시를 잃고 경제력도 잃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중 하나를 포기하면 나머지 하나는 얻던데.

 

 

2

 

생각의 전환이 중요했다.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야. 그 즉시 스스로의 비루함이 뒤로 물러나고 다채로운 세상이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블로그에는 시의 시절이 가고 일기의 계절이 왔다. 시에 비하면 일기는 의외로 호평이었다. 천직은 일기스트였나, 잠시잠깐 나는 오만하고 방자했으나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깨달음은 내부에서 저절로 왔다. 일기는 본시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므로,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쓰면 쓸수록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리고 별 생각없이 쓰다가도 생각하게 된다. 오늘은 짜장면을 먹었다->짜장면은 맛있다->내 입에 맛있는 것만 좋아하지 마라->인종차별은 나쁘다(!?) 이런 개똥논리라도 일단 쓰고 나면 인종차별에서 최소 한 뼘은 더 멀어지는 그런 놀라운 매커니즘이 일기에는 숨어있다. 그야말로 매직이었다. 물론 일기에 써 놓은 그만큼의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쓰지 않았더라면 말도 못하게 답 없는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침내 내게 쓰기란, 가끔씩 세상이 투척하는 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골프우산과 섬유탈취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직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조금씩 나의,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 갈 것이다.

 

 

 

열심히 잘 쓰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그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가를 물어야 한다. 밤이고 낮이고 국토를 삽질하는 게 발전은 아니듯, 자신을 속이는 글, 본성을 억압하는 글, 약한 것을 무시하는 글, 진실한 가치를 낳지 못하는 글은 열심히 쓸수록 위험하다. 우리 삶이 불안정해지고 세상이 더 큰 불행으로 나아갈 때 글쓰기는 자꾸만 달아나는 나의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_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3

 

 

 옛날, 옛날, 옛날

 (뭐든지 세 번을 부르면, 내 앞에 와 있는 느낌)

 

 어둠을 반으로 가르면

 그게 내 일곱살 때 음부 모양

 정확하고 아름다운 반달이 양쪽에 기대어 있고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지

 아름다운 틈이었으니까

 

 연필을 물고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다

 등허리를 쩍, 소리 나게 맞았고

 목구멍에 연필이 박혀 죽을 뻔했지 여러번

 살아남은 연필 끝에서 죽은 지렁이들이 튀어나와

 연기처럼 흐르다 박혔고

 그렇게 글자를 배웠지

 

 꿈, 사랑, 희망은 내가 외운 표음문자

 습기, 죄의식, 겨우 되찾은 목소리, 가느다란 시는

 내가 체득한 시간의 성격

 

 나는 종종 큰 보자기에 싸여 버려졌고

 쉽게 들통났고,

 맹랑했지

 (끝내 버려지는 데 실패했으니까)

 

 어느 여름 옥상에서 어떤 감정을 알게 됐는데

 떠난 사람의 길고, 축축한, 잠옷이

 펄럭이는 걸 보았지

 

 사랑이 길어져 극단까지 밀고 가다

 견디지 못하면

 피가 솟구치다 한꺼번에

 증발하는구나

 

 후에 책상 위에서 하는 몽정이 시,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엔 그의 얼굴을 감싼 채 그늘로 밀려나는 게

 사랑, 이라고 믿었지만

 

 일곱살 옥상에서 본 펄럭이는 잠옷만큼은

 무엇도 더 슬프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모든 면에서 가난해졌다

 

_ 박연준,「베누스 푸디카」,『베누스 푸디카』

 

시인의 글자를 시라고 하자. 시는 아픔에서 왔다. 시는 꿈, 사랑, 희망이 한낱 소리일 뿐이며 그 의미는 겪어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외워야 한다는 진실을 가르쳐 준다. 그 진실은 슬프지 않다. 슬픔은 떠난 사람이 잠옷처럼 남기고 간다. 사랑의 의미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피를 다 말렸으나 사랑은 그저 그늘로 밀어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이미 슬픔을 알았기 때문에 더 슬퍼지지는 않는다. 이미 슬픔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더 알아갈 것이 없다. 가진 슬픔을 헐어내며 살아야 한다. 

 

시인에게 쓴다는 것은 이렇게도 아리는 일일까.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시를 쓰지 못할 것 같다.

 

 

 

4

 

 

 

 내가 가족이다

 나는 '그러므로'와 화목하다. 어디서든 자세하게 앉는다. 하지만

 

 방파제로 운다

 주문진과 바다 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몰래는 왜 자꾸와 함께 닫혀야 했나

 

 당신의 열린 핸드백처럼

 

 그것은 립스틱과 핸드백에 담긴 한꺼번이었을까. 이제는 더이상 겨울과 걷지 않을 것이다. 겨울과 걷지 않는다

 

 내가 산책이다

 빨리를 당신과 함께 떠나보내야 한다. 아무도 몰래

 

 나는 어떻게 알았나

 

 항구가 모래사장하지 않았다. 햇빛이

 폭풍우와 아니었다. 무작정과 도무지를 당신과 함께 떠나보내야 한다

 

 어떤 자작나무에서 아무도 몰래 쏟아지는 하얗다

 

 당신아, 나는 어떻게 알았다. 그리고와 함께 다시 당신을 만나러 간다.

 

_ 한인준,「종언_없」,『아름다운 그런데』

 

시인은 말을 어지럽히려 쓴다. 읽힐 듯 읽히지 않는 시를 짓는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의미와 의미를 알아채지 못하는 우리가 섞인다. 원래 누구의 말을 다른 누군가 다 알 수는 없다. 서로의 말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무모한 자신감을 버려야 한다고 시인이 말한다. 나는 당신이 어지럽혀 놓은 자리를 정리해야 하나, 아니면 내 속에 정리되어 있는 당신을 어지럽혀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그것은 오래 해야 하는 고민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오래 시를 쓰지 못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젖은 셔츠를 입고 도서관 앞 계단에 앉은 남자의 뒷모습이 이제 슬슬 비어가는 그의 정수리처럼 해 지는 방향으로 조금씩 옅어지는데 보기 아쉬웠는지 매미 매섭게 울고 바람도 슬며시 돌아갔지만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등은 아직 더 작아질 일 남은 돌멩이 같아 어쩐지 눈 떼지 못하고 나도 조용히 기다려 보다 문득 등 뒤에 수 만권의 책을 쌓아 놓은 저 남자 수 천개의 갈림길을 건너온 저 남자 수 백개의 이름을 궁글려 빚은 저 남자의 셔츠는 무엇을 기다리다 젖고 말았나 궁금해 하고 있는데 누군가 부르는 소리 차갑고 굳은 쇳덩어리 달리는 틈바구니를 잘도 파고 들어 여기까지 들리는 부르는 소리에 남자는 벌떡 일어나 세상 가장 커다란 사람이 되어 계단을 내려갔다. 

 

 

2

 

저녁은 먹었어요 하는 대답에서 배고픈 냄새가 났다고 말할 수는 없어서 그저 바라본 것이었는데 들켰다는 듯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콩콩 바닥을 차 보는 아이는 무엇을 바라 여기에 왔는지 말하고 싶은 듯도 하고 말할 수 없는 듯도 하고 영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을 도장처럼 허공에 찍어댔고 그것은 모두의 눈에 생생히 보였으므로 우리는 다 같이 배고픔을 느꼈지만 이 배고픔을 아무리 모아 팔아도 너를 배불리지 못하겠지 깨달은 사람들 역시 하나 둘 고개를 숙이고 콩콩 바닥을 차는 사이 학생은 휴게실의 문을 열고 어두운 바깥으로 나갔는데 그제서야 사람들 다시 고개를 들어 저 어두운 바깥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고 아이의 미래 되지 않도록 아무런 이름도 짓지 마시기를 기도 드리는 동안 떼꾼한 침묵들이 바닥으로 고였다.

 

 

3

 

물으면 대답해 줄 것 같아 일부러 하지 않은 질문들 중에는 가끔 쓸만한 것들이 나왔으므로 묻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밤 내일도 오늘의 얼굴로 돌아올 밤 도대체 당신은 왜 이 밤까지 남아 그 슬픈 눈으로 허공을 디디는지 왜 그 눈을 따라가면 내 눈에도 정적이 보이는지 오늘은 한 번 물어볼까 망설이다 보면 폐관을 알리는 음악이 울리기 시작하고 오늘의 물음을 내일로 던진 것이 어쩐지 홀가분하여 슬쩍 웃어보았는데 그 슬픈 눈이 내게 너는 내일도 묻지 못할 것이라고 그것은 네가 이미 그 답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으므로 내일도 모레도 그 어떤 날에도 나는 허공을 정적을 슬픈 것을 그 어떤 것도 이미 묻지 못하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4

 

 

결국 우리는 스스로 꿈결에 제조한 폭탄을 제각기 품에 안은 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이라는 먼 곳으로 담소하면서 걸어가는 건 아닐까. 다만 무엇을 그러안고 있는지 타인도 모르고 자신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한 거겠지.

 

_나쓰메 소세키『유리문 안에서』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8-0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알랭 마방쿠‘의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라는 소설 혹시 읽어봤나요? 오늘 제가 읽은 쇼님의 이 페이퍼는 대뜸 이 책을 떠올리게 만드는데요, 이 아프리카 술집 외상은 어림없지 라는 소설도 역시 문장에 마침표가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도서관 가보시면 도전!!

syo 2017-08-09 08:53   좋아요 0 | URL
도전!!
그치만 이 글에는 마침표가 있어요 ㅎㅎㅎ 문법적으로 마침표 찍어야 될 데는 다 찍었는데, 문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수 있는 상황이로군요....

쇼코 2017-08-09 1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에서 3의 글들이 다 하나의 문장들이고 적절한 자리에서 조사가 생략 되어서 그런지 산문시를 읽는 기분이었어요. 두번, 세번 다시 읽어 볼 만큼 내용도 그 도서관 풍경의 소리나 촉감이 들리고 느껴질 것만 같았고요. 4번에 달아 놓으신 책은 읽지 못해서 위의 글들과 정확히 연결시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알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ㅎㅎㅎ

도서관 풍경 속 사람들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참말로 좋습니다. 저 또한 낯선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어요.

오늘도 좋은 글 고맙습니다^^

syo 2017-08-09 12:01   좋아요 1 | URL
ㅠㅠ 몸둘 바... 제 몸둘 바를 돌려주세요.

소세키의 《유리문 안에서》는 정말 유리문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그린 그림 같은 산문이지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고, 그의 눈에 포착되면 타인이나 세상이 조용한 가운데 어쩐지 쓸쓸함이 자꾸 묻어나는 것 같아요. 저 책 읽고 나름 감동 받아서 저도 한 번 사람들을 쓸쓸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봐야지 했을 뿐이고 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ㅎ

오늘도 역시 글보다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쇼코 2017-08-09 12:12   좋아요 0 | URL
유리문 너머로 보는 조용하고 쓸쓸한 세상, 저도 같이 보고 싶어집니다^^ 게다가 쇼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작가라니 꼭 읽어보고 싶어요. 다음 번 책 살 때 이 책도 함께 받아보겠군요. ㅎㅎ 좋은 작가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1

 

아침에 열람실 문을 당기고 들어가면 매일 그 시간, 매일 그 자리에 앉아있는 매일 그 분들과 매일 눈이 슬쩍 마주치곤 한다. 인사라도 할까? 우리가 무슨 사인데 인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진 않을까? 앉고 싶은 자리를 선택할 수 있을만큼 일찍 오는 사람들의 동료의식 같은 게 은근 있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전완미남, 용감한 부부, 헛되도다 영감님, 볼빨간 삼촌, 온도의 지배자, 벗지마오 그 모자, 빨간 형과 파란 동생, 킹 오브 배바지...... 내가 혼자 별명 붙이고 혼자 맘 속으로 불러보는 수많은 도서관 크루들은 나를 뭐라고 부르고 있을까. 쪼리 신은 원숭이? 물 먹는 미어캣? 텀블러 사무라이? 가장 먼저 먹는 자? 궁금하다. 그 사람들이 불러주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가 골고루 섞여서 나일텐데. 각자도생하는 자들의 21세기 도서관은 혼자이고 싶은 사람에겐 너무 시끄럽지만, 가끔은 함께이고 싶은 사람에겐 또 너무 조용하다.

 

드러내지 않기와 공적인 장은 이중적인 상호전제 관계에 있다. 공적인 장이 있어야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거기서 물러나거나 접근하거나 할 수 있지만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공적인 장을 예정된 파괴에서 보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야 공적인 발언이 경청될 수 있지만 사람들이 말을 해야만 고독이 고립으로 변질되지 않을 수 있다.

 

_피에르 자위《드러내지 않기》27쪽

 

 

2

 

열람실 안쪽, 두 벽이 만나는 모퉁이 가장 으슥한 자리를 잡는 아저씨는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모기약을 꺼내 분사한다. 선풍기 바람을 타고 내 자리까지 모기약이 넘어온다. 와, 상큼한 오렌지향이다. 덕분에 매일 아침 향수를 뿌리고 올 필요가 없네요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향수 값이 굳고 그걸로 책을 한권 더 사거나 하는 이득은 없다. 그건 내가 원래 향수를 쓸 줄 모르니까 그렇지. 아, 갑자기 생각나는 문장. 골수 좌파 아나키스트(-_-??)인 나는 어쩐지 뿌듯하네. 오렌지 향 모기약도 좋아하는 나의 무취향이.

 

취향은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 소비를 해야 비로소 생겨난다. 어떤 것에 끌리는 경향이야 타고날 수 있지만 세밀한 취향은 절대소비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취향은 자본주의적이고, 개인과 도시의 탄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_이현주《읽는 삶, 만드는 삶》44쪽

 

 

3

 

요즘처럼 산산한 아침 저녁이 이어진다면 여름이라는 계절도 그리 못된 놈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건물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크고 작은 개미도 보고, 굵기가 엄지손가락 만한 지렁이도 보고, 축 늘어진 나무 줄기들 사이로 보일듯 말듯 지은 거미줄도 본다. 이렇게 안 쓰다가 혹시 까먹을까 봐 금연 안내문을 읽으면서 서울말 연습도 한다. 우리 도서관은 국민건강진흥법에, 음, 국민겅강, 국민건강진흥법, 음음. 서울 사는 사람 아무도 서울말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나의 서울말. 나만 아끼는 나의 서울말. 새끼 고양이 야옹야옹 우는 소리가 들린다. 에이, 저 아이도 내 서울말을 들었나 본데.

 

다른 사람이 쓰는 표현을 피하라. 누구나 하는 말을 그저 전달할 뿐이더라도 자신만의 화법을 생각해 내라. 인터넷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라. 책을 읽어라.

 

_티모시 스나이더《폭정》78쪽

 

 

4

 

내가 내일도 도서관에 갈 예정이듯, 오늘 도서관에 왔던 사람들은 내일도 오겠지. 우리는 매일 스치고, 서로의 조각을 한 줌씩 주워 내 안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빚으며, 그렇게 아무말도 나누지 않고 친해질 것이다. 어쩌다 하루 안 보이면 빈 자리가 눈에 들고, 며칠 안 보이면 몇 초쯤 걱정을 하기도 하고, 길게 만나지 못하면 아, 합격했나보구나.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며 부러움과 축하를 반반 잘 버무려 넘겨짚기도 할 테지. 조금 어색하지만, 어쩌면 이것도 사람이 사람과 사는 방식이겠거니 한다.

 

나는 생각했다. 저 문장은 얼마나 이상한 문장일까.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 얼마나 이상한 삶들이 얼마나 이상한 내용을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한 문장일까. 그리고 만일 저 길고 긴 문장을 손본다면 어떤 표기가 맞고 어떤 표기가 그렇지 않은지는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들어내거나 고치거나 다듬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_ 김정선《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112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8-03 2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8-03 22:04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최고예요. 어디 다른데 가기가 귀찮을 지경이니까요....

에디터D 2017-08-03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도서관을 거의 매일 다녀서 그런지 syo님의 글이 반갑네여 ㅎ

syo 2017-08-03 22:49   좋아요 0 | URL
혹시 리제님도 도서관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별명을 붙이시나요? 저만 그런건가요.....
 

 

1

 

봄은 잠깐 앉았다 이내 가고 무더운 여름이 길게 이어진다.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가을은 쏜살처럼 스쳐 지나가고, 추위와 함께 온 겨울이 오래 머문다.

 

 

 

2

 

우리 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배우며 자랐다. 요즘 아이들도 그렇게 배우는지 모르겠다. 교과서는 이 땅의 일년을 같은 크기로 네 조각 내서 3월부터 봄, 6월부터 여름, 9월부터 가을, 12월부터 겨울이라고 가르쳤는데, 실제로 몸이 계절을 그렇게 감지하고 있었으니 퍽 진실한 지식이었다. 그런데 잠깐 국어, 영어, 수학에 한 눈을 파는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른이 되어 보니 이 나라는 여름과 겨울이 유난히 부지런을 떠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어리벙벙 10년을 더 살면서, 더 중요하고 더 엄혹한 진실과 맞닥뜨릴 수 밖에 없었다. 여름과 겨울이 봄 가을을 갉아먹는 일이 비단 땅의 사건만은 아니라는 것을.

 

 

 

3

 

삶의 봄은 언제까지일까?

 

열 살짜리 아이에게 삼각함수를 가르치며 생활비를 마련해야 겨우 앞이 보이던 스물 몇의 나날들을 내 삶의 여름이 시작된 지점이라 짚어 본다. 그때 나는 내 팔자 기구한 줄만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내게 삼각함수를 배워야 했던 그 아이의 여름은 벌써 열 살부터는 시작이었구나 싶다. 그리고 내가 지나가야 할 여름이 아직 한참 남았듯이, 어딘가에서 0.5점의 평균을 올리기 위해 새벽과 건강을 땔감처럼 태우며 살고 있을 그 아이의 여름도 아마 길고 뜨겁게 이어지겠지. 십 년? 이십 년? 아니면 삼십 년?

 

가을은 도대체 언제쯤 오는 것일까? 오면 꽤 있다가 가주긴 할까? 잠깐 앉아서 한숨 돌릴 시간도 없이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4

 

어쩌면 이런 말씀이 희망이 될까?

 

"사는 게 낯설지? 또 힘들지?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나이가 든다는 사실이야.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삶이 나를 가만 두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는 일은 잘 하지 않게 돼."

 

_ 박준,《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63쪽

 

아니면 좀 더 아름다운 이런 말씀은 또 어떨까?

 

가을의 소원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_안도현〈가을의 소원〉전문

 

 

 

 

5

 

스스로를 못살게 굴거나 심하게 다그치지 않는 날, 가을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는 전언이다. 가을이 와도 가끔은 혼자 울 것이며, 울다 스러질 때까지 초록의 날들을 되짚어 그리워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처방이다. 가을은 멀고, 그냥 오는 듯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서, 나한테는 아직 여름이 한참은 더 남았다는 진단이다.

 

솔직히, 여름이 길고 잠깐 본 가을의 맛이 아직 혀끝에 남았건 말건 가차없이 곧바로 긴 겨울을 살다 가야하는 이 침울한 배분이 대다수의 평범한 우리에게 마치 팔자의 모델 하우스처럼 제공되는 것이 다 우리 탓은 아닌데, 로또가 아니라면 마냥 가을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빡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땅의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 것은 물론 지구온난화가 주범이겠지만, 나는 우리 삶의 여름과 겨울이 길어진 것 역시 공범이나 최소한 종범쯤은 되지 않나 의심한다. 삶의 사계절이 공평하게 사등분을 회복하는 순간, 여름은 6월에 와서 세 달 있다가 가고, 겨울이 9개월 뒤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남기며 2월 말에 깔끔하게 물러가는 기적이 도래할 거라는 미신적 희망도 가져본다.

 

어쨌거나 기왕 비집고 열어나가야 할 여름이라면, 여름 안에서나마 조금은 듬성듬성 살고 싶다. 어쩌다 바람 시원해 잠깐 멈춰 선 자리가 눈과 귀에 아름다운 곳이라면 더 걸어나가지 않아도 되는 천천한 걸음으로 살 '수 있'고 싶다. 곳간이든 마음자리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모두 채우며, 혹은 비우며, 여름 위에 둥둥 떠서 가을이 올 때까지 이리저리 흔들흔들 부유할 수 있다면 그것 참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반년 가까이 책 신세를 지고 있는 도서관은 아이들이 보는 책을 뺀 모든 책들이 하나의 자료실에 들어가는 작은 규모의 시립도서관이지만, 서가에만 서면 나는 여전히 막막하다. 이제 책 이름만 들어도 대충 어디쯤 꽂혀 있을 거라고 짐작할만큼 눈에 익고 발에 익은 이 책 방 한 칸이, 나는 아직도 넓다. 읽을 수 없는 모든 책은 읽을 수 없고, 읽을 수 있는 책의 대부분은 읽을 수 없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머리가 했지 마음이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늘 욕심내고,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작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얼마나 미미한가, 나는 얼마나 사소한 인간인가, 하다보면 또 늘 헛헛해진다.

 

아름다운 것들이 책 속에 무수히 숨어 우리와의 접촉을 기다리고 있다. 탐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알 기회가 없을 것이다. 책으로 뒤덮인 그 두 개의 벽 앞에서 나는 속으로 그렇게 경탄하고 있었다. 이 모든 책 하나하나를 만지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나는 평생 나 자신이 얼마나 방대한 지식과 경험을 스치고 지나가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_양자오,《자본론을 읽다》 27~28쪽

 

하버드 대학의 수백만 장서를 마주하고도 의연한 자세로 탐구욕을 불태우는 저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 권 단위의 책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요런 인간도 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만 권을 읽기 어렵듯이, 저 사람도 백만 권을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가 됐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죽는 날까지도 아놔, 그 책 사 놓고 결국 읽지도 못하고 죽네, 아놔, 그 작가 신간 다음 주에 배송되는데, 굿즈도 같이 오는데, 그거 받을라고 억지로 금액 맞췄건만 보지도 못하고 가네, 하는 식의 생각에서 말끔하게 해방되지는 못할 것 같다. 결국 독서를 운명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끝은 하나 같이 똥이다. 독서는 똥으로 향하는 험난한 길인 셈이다! 빅 똥! 물론 백만 권을 읽고 싼 똥이 만 권을 읽고 싼 똥보다 백 배 진하고 무거울 수는 있겠지만. 

 

 

 

2

 

아무 것도 아닌 글이라도 매일 뭔가를 쓰는 일은 칭찬할 만하고, 의외로 누구나 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매일 쓴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아닌 글이 아무 것인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제발 아무 거라도 되어 달라는 식으로 써내는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 날부터 정말 어마어마한 글을 만들 수 있게 되는 사람도 있다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기왕 써 놓은 글들이 뿅 하고 아무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글 쓰는 사람도 똥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꽃을 쌀 수도 있지만, 그 순간까지는 그저 평범하게 똥을 쌀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먹을 갈고 붓을 들던 시절이나 원고지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 글을 쓰던 시절이면 모를까,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과거에 싸놓은 똥들을 소거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철 모르던 시절 싸 놓은 똥 때문에, 그 똥의 진짜 의미는 그 똥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싼 똥은 냄새가 났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벌써 언급했지만 그 똥은 픽션이었습니다, 같은 똥을 지금도 싸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내 상태는 불행은 아니다. 하지만 행복도 아니다. 내 상태는 무관심도 아니고, 나약함도 아니며, 지친 것도 아니고, 다른 어떤 관심도 아니고, 그러니까 이 상태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내가 이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마 글을 쓸 능력이 없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무능함을, 이 무능함의 이유는 알지 못하면서, 난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

그리고 이런 질문이 아직은 내가 말을 하도록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매일 적어도 한 줄은, 마치 사람들이 이제 혜성을 향해 망원경을 겨냥하듯이, 나를 겨냥해야만 할 것이다.    

_ 프란츠 카프카,《카프카의 일기》 

 

카프카는 어쩌면 마지막 순간에 자기가 싸놓은 똥을 치우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매일 한 줄, 힘겹게 자신을 겨냥하며 써냈던 모든 글들이 그에게는 그래봐야 똥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똥에서 향기를 맡은 친구란 작자가 카프카의 똥을 세상에 널리 알렸고, 마침내 그 똥은 우리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어쨌든 카프카의 입장에서는 모든 게 똥이었고, 그 덕에 똥 판별기의 기준이 치솟아, 세상에 존재하는 글의 대부분은 똥이 되고 말았다. 세상에 존재하는 글 쓰는 자들의 대부분은 똥머신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어차피 사람이란 먹으면 결국 쌀 수 밖에 없는 동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똥이 다른 누군가의 삶에 똥칠하지 않도록 내 똥을 잘 관리하는 일이 되겠다. 좋은 것 먹고, 바르게 싸고, 뒷처리 잘 하고.

 

 

 

3

 

도서관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추태 중 하나는 열람실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나가는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좌석이 열람실 입구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열람실 입구에서 3~5걸음 떨어진 지점에서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간다는 사실이다. 그 지점이라면, 보통은 "여보세요? 예, 예예." 까지를 열람실 안에서 해결하는 셈이다. 세 걸음만 더 걸으면 밖인데, 왜들 저러는 걸까?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저러는 사람들은 내 통계상 90%이상의 빈도로 외모 나이 50대 이상의 남성이다. 시사하는 바가 있을까? 여기가 대구인 것과는 관련이 없을까?

 

어릴 적, 예절을 숭상하는 우리 집에서 예절 위에 있는 것은 딱 하나 뿐이었다. 가장. 예절 위에 가장. 가정 안에서 예절 위에 군림하는 사람은 가정 밖에서도 자기가 에티켓 위에 존재하는 줄 안다. 계속 까똑까똑 소리가 나는데도 끝까지 진동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아저씨에게 내가 제발 좀 진동으로 바꾸라고 지적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들은 에티켓 같은 사소한 것보다 어린 사람이 연장자에게 뭔가를 지적하는 비윤리도덕적 패륜에 과도하게 민감한 감수성을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디서 어린놈이, 하는 말을 들을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나라고 다른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나는 내 옆자리에 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타인이 앉지 못하게 하는 못된 놈이다. 이 도서관에서 좌석이 부족할 만큼 사람이 붐비는 꼴을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꼭 내 옆에 앉고 싶을수도 있는데 그럴 가능성을 원천봉쇄 하는 셈이다. 감히 두 자리를 맡다니! 어쩌면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탐욕의 증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가 여기 앉을건데 짐을 치워달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묵묵히 나는 책을 읽는다. 이게 뭐 큰일이라고,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래저래 결국 타자와 사는 것은 똥이다, 그야말로 비이이익똥이다! 우리는 결코 서로의 에티켓을 교환하고 납득하여 아름다운 대동사회를 만들 수 없다. 그건 다 저놈의 돼먹다 만 자식이 지는 도저히 용서가 어마어마한 잘못을 저지르면서 누구라도 기꺼이 용서할만큼 사소한 나의 잘못을 침소봉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어떻게 다르냐 하면, 내가 맞고 쟤는 틀리는 식으로 다르다. 혹은 내가 맞고, 우리 편은 조금 덜 맞고, 쟤는 틀렸고, 쟤 옆의 놈은 조금 덜 틀리는 식으로 다르다. 그래서 이놈의 세상이 똥인 것이다. 아 저것들을 언제 한 번 싹 다 치워야 되는데,    

 

 

4

그림자 속으로 그림자가

파고들며 킥킥거렸다

서로의 품속에서 따스해지는 곳

덩굴들이 뒤얽히고

물고기들 함께 뛰노는 곳

가자 그곳으로

까만 밤과 하얀 별

새카맣게 빛나는 곳-

 

첫째날 밤

별들이 서로 다른 피의 정액이 되어 밤하늘이 태어났다

 

둘째날 밤의 꿈

세계는 별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엮은 꽃다발이었고,

 

셋째날 꿈속에선

차가운 바람이 은하수 위로 불자

성좌의 동물들이 첨벙첨벙 뒤섞였다

곰, 전갈, 날갯짓 치는 백조들

 

천하루날 밤, 꿈들의 막이 터져

밤하늘들이 뒤섞였다

소란스레 폭죽 터지고

물살이 별들을 쓸어갔다

어둠과 빛이 뒤섞인

그늘진 아이

쪽으로, 양도 고양이도 아닌 동물 하나 걸어와

조용히 살을 섞었다

 

혀와 혀가 만나는 곳

 

5

두송이 꽃이 하나의 그림자가 되는 곳

 

_박희수,「밤하늘」부분

 

나는 누군가는 선하게, 누군가는 악하게 태어난다는 성랜덤설을 주창하지만, 인간의 본성과는 별개로 시인이 그리는 저런 아름다운 나라가 도래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한다는 말은, 사람들마다 "차이"에 포함시키는 것들이 다른 상황에서는 공염불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벌써 차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한다. 다만 누군가에게 동성애는 차이가 아니라 치료해야 할 정신병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피부색은 차이가 아니라 내재된 인간성이며, 다른 아무개는 성차는 차이가 아니라 이미 결정된 특성이라 생각할 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가 똥일 수 있고, 나와의 관계가 똥일 수 있고, 나 때문에 사는게 똥일 수 있는 이런 똥밭 같은 위험한 이승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굴러야 하는 걸까? 저 사람 정말 똥 같군, 하는 생각을 하지 않고 웃으며, 선생님 죄송하오나 전화는 나가서 받아 주시면 어떨까요, 하고 부탁하며, 상대방 또한 이 자식은 정말 똥 같군, 하지 않고 웃으며, 아이쿠, 제가 그만 정신이 없었군요. 추후에는 주의하겠습니다, 대답하는 꽃 같은 세상이 정말로 올 수 있을까? 어쨌든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 만나고 섞이는 밤이 하루 이틀을 세다 결국 천 하나의 밤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두 송이 꽃이 하나의 그림자가 되는 어려운 길이다.   

 

 

 

4

 

이렇게 시종일관 드러운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되게 센치한 상태여서 난 오늘 내가 시라도 한 편 쓰려나 보다 했는데, 세상에, 똥이라니. 

 

그렇지만 뭐 크게 더러운 일을 저지른 것 같지는 않는다. 이런 책도 버젓이 있기 때문에.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19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7-20 06:06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저는 변비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갰습니다.....ㅠ

다락방 2017-07-2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

이 글은 똥 파티네요.
인생도 똥 글도 똥 너도 똥 나도 똥 우리 모두 똥똥똥똥똥....
이 글을 어제 자기 전에 읽었다면 똥 꿈꾸고 좋은 하루가 되었을텐데, 어제 뻗어 자버리는 바람에 이 글을 놓치고 오늘 아침에야 읽네요...똥꿈 꾸면 좋다는데....돈 들어오는 꿈이라는데...
똥...

똥에 의한 의식의 흐름...



그럼 이만 안녕히...

syo 2017-07-20 08:18   좋아요 0 | URL
으윽 오늘 아침은 새 마음 새 뜻으로 으쌰으쌰 시작했었는데, 왜 제가 어제 싼 똥을 오늘 제게 던지셔요 다락방님......ㅠ

cyrus 2017-07-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 파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가 본 책들 중에서 가장 더러운 내용입니다. 책에 코를 파는 방법이 그림으로 나와 있습니다. ^^

syo 2017-07-20 13:25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cyrus님, 코파기는 많은 경우 실제로 즐겁습니다.....

단발머리 2017-07-20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책을 산처럼 쌓아 타인이 앉지 못하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너무 마음에 와닿네요. 제가 그런 사람이라서요 ㅠㅠ
누군가는 꼭 내 옆에 앉고 싶을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어요. ㅎㅎㅎㅎㅎ

syo 2017-07-20 13:26   좋아요 0 | URL
빈자리가 많지만 굳이 내 옆에 앉고 싶었을 분들께(그런 분들이 분명히 있을거라 믿고) 항상 죄송한 마음을 가집시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