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방문자들 - 테마소설 페미니즘 다산책방 테마소설
장류진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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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방문자들」은 페미니즘 테마소설집이다. 비교적 근래에 활동을 시작한 작가 6명의 작품을 모았다. 출판계에 한 분야로 자리잡은 페미니즘은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잘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 장르인 듯하다. 잘 알아보기도 전에 대놓고 불편해 하는 시선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또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국민의 절반 또는 세계의 절반이 몸담고 있는 생활이다. 뭔가 심정이 상하고 부정적인 마음이 들더라도 외면하고 살 수만은 없다. 범죄로 다루어지는 특별한 사건이 아니고 내 앞의 현실이다.

 

더 말안해도 될 법한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이후로 특별한 사건이 아닌 생활 속의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환기되기 시작했다. 할머니 세대, 어머니 세대에는 당연시 되던 생활이 왜 당연한 것이 아닌지를 어렴풋이 알아채게 된 것이다. 어떤 이들의 그런 말들, 저런 행동들이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새벽의 방문자들」도 그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책 뒷표지의 말처럼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여섯 편의” 불편하지만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책이다.

 

2018년 작품활동을 시작한 장류진 작가의 「새벽의 방문자들」이 표제작이다.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여자’의 집 초인종을 새벽마다 울리는 남자‘들’이 있다. ‘여자’는 그들이 성매수를 위해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느 날 익숙한 얼굴을 대면하게 된다. 결혼을 하자며 핑크빛 미래를 속삭이던 남자. 작가는 여성의 대상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도 성매수에 대한 대화는 어떤 자리에서는 스스럼없이 오가는 주제일 것이다. 작가는 이런 자연스러움이 비뚤어져 있는 지점을 짚어준다.

 

솔직히, 여성과의 관계를 돈 주고 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게 어떤 형태였든 별로 인간 취급을 해주고 싶지가 않다. 여자를 구매 가능한 서비스 재화로 취급하는 사람을, 왜 나는 인격체를 가진 안간 취급을 해줘야 하지? p.40

 

2016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하유지 작가는 「룰루와 랄라」에서 약간의 희망을 보여준다. 함께 사는 비정규직 남자와 프리랜서 여자는 자주 마주치는 한 동네 여자 ‘룰루’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여자는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공장에 취직한다. 불합리한 공장 생활에 치이던 중 침울해 보이기만 하던 룰루의 사연을 알게 된다. 작가는 침묵을 강요당하는 현실과 사람이 주는 용기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침묵해야 하고 지울 수 없는 기억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 자들이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정지향 작가는 2014년 활동을 시작했다. 「베이비 그루피」에서 작가는 ‘그루피’라는 말 그대로 밴드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그린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베이비’라는 말이다. 미성년. 그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 볼 틈도 없이 밴드의 구성원들에게 휘둘린다. ‘나’는 우연히 알게 된 밴드 멤버 P와의 관계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 지 고민한다. ‘나’는 ‘그루피’라는 단어에서 자신 정체성을 확인한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거모아도 설명되지 않던 한 시절이 그 단의 발견과 함께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p.135

그 시절의 우리는 자기감정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p.137

「예의 바른 악당」은 2009년 데뷔한 박민정 작가의 단편이다. 「아내들의 학교」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줬던 터라 반가웠다. 이번 단편에서 작가는 대의를 쫒는 자들이 주변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지들과 정의를 추구하지만 연인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연인, 나를 위해 많은 것을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친절이 불편하게만 느껴지는 친구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라는 말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는 결코 우리일 수 없었다. p.188

 

200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현 작가의 「유미의 기분」은 스쿨미투를 소재로 한다. 교사인 형석은 수업시간에 생각없이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농담을 하고 학생 유미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가를 따져 묻는다. 게이인 형석은 소수자로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스쿨미투를 감행한 유미의 기분에 대해 생각한다. 작가는 차별받는 입장에 서보지 못한 자들의 오만을, 또 그들의 사과가 어떠해야할지를 이야기한다.

 

형석은 유미의 말을 계속 들었다. p.225

 

작가 김현진(1999년 작품활동 시작)은 「누구세요?」에서 이 소설집에 등장한 인물 중 가장 특이할 만 한 캐릭터를 소개한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로 권고퇴직당한 여자 친구를 자신의 미래 계획에 차질을 주었다면 차버리는 남자말이다. 여자는 사회생활하면서 그만한 일은 감수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말’도 한다. 게다가 함께 모은 결혼자금은 맞벌이 부부의 꿈을 깬 위자료라며 가져간다. 그들은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는 모르겠다. 작가의 말대로 ‘자신을 약자의 위치에 놓아볼 상상력이 없는 어떤 남자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쯤 성찰할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랄 뿐이다.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군인들 중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완화하려는 정책을 취하자 수많은 이성애자들이 분개했는데, 이것은 ‘공포’에 가까웠다고 한다. 늘 이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성적 대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p.266

 

이야기가 길어졌다.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었다. 이런 소설을 써줘서 고맙다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들,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이야기들, 하지만 응어리와 수치심이 얽혀 파묻힌 이야기들. 우리의 이런 이야기를 더 들려달라고 우리의 생각을 더 해부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책에 실린 단편에서 한 발 씩 더 나아간 이야기를 지치지 말고 들려달라고 당부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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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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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J. 튜더가 돌아왔다. 작년 2018년 여름 한철을 시원하게 또 의미있게 보내게 해줬던 작가다. 선홍색이 난무하는 책을 두려워하던 독서모임 회원들과 함께 작가의 전작 「초크맨」을 읽고 토론을 했었다. 책 소개글만으로도 난색을 표하던 분들의 독서후기는 호평에 가까웠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청소년의 심리 등 무서움을 견디며 읽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는 의견이었다 이렇게 강렬한 데뷔작을 쓴 작가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그 작가의 책이 1년만에 출간되었다.

 

끔찍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엄마가 자살 전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내 아들이 아니야”. 그 직후 주인공이 사건이 일어난 마을로 돌아온다. 다시 보고 싶지 않았던 탄광마을 안힐로. 문제의 사건 때문에 공석이 된 안힐 고등학교의 영어선생 자리에 지원하기 위해서다. 주인공 조지프 손은 화려한 추천서와 이력서를 갖춘 능력있는 선생으로 보인다. 그러나 겉만 보고는 모르는 거다.

 

근사한 집, 근사한 차, 근사한 옷, 하지만 절대 모르는 법이지. 그 속이 어떤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 p.12

아빠와 동생이 자동차 사고로 죽고, 그 10년 후 엄마마저 병으로 저세상으로 간 뒤 주인공은 마을을 떠났었다. 조지프 손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안힐에서의 망가진 자신을 지우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중년이 된 그는 발걸음을 그리 멀리 떼지 못한 듯싶다.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경력까지 말아먹은 상태니 말이다.

 

나를 붙잡고 있는 관계, 나를 규정하는 사람들, 나를 어떤 아이덴티티에 묶어놓는 익숙한 풍경과 일상에서 아주 멀찌감치 도망치면 적어도 당분간은 내 자신에게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다. 자아는 구조물에 불과하다. 얼마든지 해체하고 다시 만들고 새로운 나를 으리으리하게 꾸밀 수 있다.
돌아가지만 않으면 된다. pp.108-109

도박빚에 쫒겨 사기를 쳐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하는 조. 그가 고향 안힐을 떠올린 건 발신인을 알 수 없는 메일이었다. “(과거의) 그 사태가 다시 벌어지고 있어”(p.36)라고 적힌 메일을 확인한 주인공은 과거 속으로 다시 돌아갈 결심을 굳힌다. 열 다섯 살 때 자신과 동생이 학교를 휘젖는 일당에 연루돼 발생한 사건을 빌미로 빚을 해결하려는 생각에서.

 

저자가 그리는 학교의 생태계는 야생의 정글보다 잔인하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철저히 구현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과거 강자의 자녀가 현재도 강자의 처세를 그대로 물려받아 약한 학생들을 괴롭힌다. 소설 속 안힐 아카데미와 비슷한 분위기의 학교를 다녔던 저자는 극중 인물의 입을 빌어 학교의 그리고 교사의 역할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학교의 모습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부모의 입장이라면 숙고할 만한 대목이었다.

 

가르친다는 건 성적표와 교육청 평가가 다가 아이잖아요. 아이들을 좀 더 쓸 만하고 둥글둥글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 10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도와야죠. 이 시기에 아이들을 지키지 못하면 영영 지킬 수 없으니까요. p.303

빚을 받으려는 자가 고용한 킬러는 조의 숨통을 시시각각 조여 온다. 동생 애니 실종의 원인을 제공한 친구 스티븐은 아빠와 동생의 죽음에 얽힌 조의 기억을 되살리며 그에게서 빠져나가려 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사건은 파국을 향해간다.

 

C. J. 튜더는 이번 책에서 현실을 뛰어 넘는 현상과 공간을 이야기에 끌어들이려고 했다. 어느날 갑자기 정신착란을 일으킨 듯 변하는 아이들을 탄광마을의 특정한 공간과 연결시키려 했다. 과학적 논리로는 설명 불가능한 심령미스터리라고나 할까. 이 지점에서 나의 독서가 헛발을 디뎠다. 에필로그에서는 얼마간 황당함을 느끼기도 했다. 책을 읽는내내 애니와 다른 아이들의 변화를 논리적 문제로만 생각했던 탓이다. 마지막에 붙은 역자 해설을 보면서 나의 착각을 깨달았다. 이 책은 작가가 신비주의적 요소를 바탕에 두고 쓴 것이며 공포 미스터리이고 심리소설이라는 것이다. 그런 책을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추리소설을 전제하고 읽었으니 저자가 깔아놓을 선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탈선사고에 준하는 독서가 되고 말았다. 저자는 자신의 의도를 충분이 말했다. 이것들을 복선으로만 생각하고 무시한 내 불찰이다. 덕분이 심리학책을 과학책인 줄 알고 읽을 때 느낄 법한 혼란을 경험했다.

 

이곳은 누가 소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이곳은 그렇게 착각하도록 내버려둘지 몰랐다. 심지어 그렇게 착각해주길 바랄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곳은 수법이었다. 이곳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끌어들였다. 그런 식으로 소유했다. p.324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p.325

 

이 세상의 어떤 것들-아름답고 완벽한 것들-은 다시 만들면 반드시 망가지게 되어 있다. p.347

 

우리는 누구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게 삶을 숙명이다. 심연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도록 계속 바쁘게 생활하며 신선을 피하는 것. 그걸 들여다보았다가는 광기에 휩싸일 것이기에. p.421

이번 책은 여러모로 전작과 유사했다. 주인공을 고향으로 이끄는 미스테리한 문자 메시지, 주인공의 신상과 분위기, 특정 문제에 얽힌 학생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 이런 것들이 전형적인 스릴러의 짜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의 그늘을 벗어나기 싫었던 걸까. 또는 작가가 경험한 유년시절의 끝나지 않은 변주일까.

 

「애니가 돌아왔다」는 전작 「초크맨」이 출간되기 전에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성실한 작가다. 다음 작품도 이미 탈고했다고 한다. 앞선 두 작품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사건을 서술했던 바와 달리 후속작은 여러 명의 삼인칭 시점을 택했다고 한다. 바라건대 자기복제의 늪에 빠지지 않고 다양한 미스터리 스릴러의 세계를 보여주는 이야기꾼으로 다시 만나게 되길. 에필로그에 등장하는 금발 남자아이의 말을 작가에게 돌린다.

 

“너는 다시 오게 될거야.” 남자아이가 말했다. “우리가 장담해.”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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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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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해 또 역사를 강의하는 분들에 대해 무지한 나에게 저자 최태성은 낯선 사람이다.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시험에 충실한 강사인지 또는 청중의 정서에 충실한 강사인지 정보가 없었다. 책을 홍보하는 띠지의 문장은 아래와 같다.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나는 역사에서 답을 찾았다.
- 500만 명의 가슴을 울린 인문학 명강의-

“세상에서 가장 실용적인 역사 사용법”이라는 문구까지 뒷표지에 달고 나온 책에 대해 궁금해졌다. 인문학은, 문사철은 실용의 방법을 찾기보다는 인간 삶을 단단하게 하는 학문이지 않을까. 저자 최대성은 역사를 어떻게 실용적으로 사용했을까. 게다가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통찰이라지 않은가. 표지대로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를 삶의 해설서라고 말한다. 삶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야할 길을 잃었을 때 역사를 거울삼아 좀 더 나은 삶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책의 1장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이야기 한다. 저자에 따르면 역사는 무궁무진한 콘텐츠의 보고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로서 가치가 있다. 긴 호흡으로 삶을 바라보기 위해 역사를 읽으며 희망을 찾고 현재의 욕망에 눈멀지 않을 선택을 위한 힌트 또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힘없는 소시민이라도 자신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역사의 한 자락을 담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삶에 필요한 덕목들을 역사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 제시한다. 혁신, 성찰, 창조, 협상, 공감, 합리, 소통의 덕목이다. 혁신의 인물로 선덕여왕의 치세를 소개하고 성찰이 아쉬운 사례로 잉카제국의 멸망과 연개소문의 실수를 제시하는 식이다.

 

3장에서는 역사에서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안을 제시하는 인물로 정도전을 든다. 실패의 이유를 고민하고 사회와 자신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놓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한다. 자신의 신념에 평생을 바친 인물로 김육을, 자신의 굴레를 탈피하기 위해 스스로의 장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했던 사람으로 장보고를, 어떤 삶을 살고자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환기시켜주는 인물로 독립운동가 박상진 의사를 소개한다.

 

마지막 4장에서는 개인의 삶에 교훈이 될 만한 사례를 이어간다. 오리 이원익 선생과 순천 팔마비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잘 사는 일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어 조선시대 여성의 지위와 근대 화가 나혜석 이야기에서 미투운동을 비추어 본다. 마지막으로 상해임시정부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시민으로서 우리의 자세와 사람 사이에서 살면서 주변관계에 충실해야 함을 경주 최부자댁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역사를 말하는 최태성 저자의 미덕은 무엇보다 읽기 쉬운 입말체의 글쓰기다. 500만명의 누적 수강생을 끌어 모은 저자의 저력 또한 이러한 쉬운 이야기하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저자가 제시하는 역사의 사례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맛깔스런 이야기로 다시 엮고 그 이야기를 통해 찾을 수 있는 통찰을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놓는다. 시험을 위한 역사 강의에서 역사 속의 인간 삶을 숙고하는 인문학 강의로의 전환은 저자가 말하는 더 넓은 주변에 충실하기 위한 일일 것이다. 역사적 정보에 대한 단단한 지식을 토대로 더 정교한 성찰을 이끌어 내는 저자로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역사,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역사.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하는 역사.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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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푸가 - 철학자 김진영의 이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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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서로 갈리어 떨어짐.
푸가하나의 성부가 주제를 나타내면 다른 성부가 그것을 모방하면서 대위법에 따라 쫓아가는 악곡 형식

 

제목을 사전적 뜻으로 풀어 보자면 ‘이별의 푸가’는 이별에 따르는 다양한 감정을 담아낸 책이다. 독일에서 미학과 철학을 전공한 저자가 다루는 이별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추상적인 대상과의 이별일지 사회적 대상과의 이별일지 아니면 이성간의 이별일지. 서술의 방법도 궁금했다. 얼마나 철학적인 서사로 다룰 것인가.

 

저자는 책에서 사랑했던 이성간의 이별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슬프고 공허한지를 말이다. 저자가 이별한 대상이 이성연인이 아닌 상징적 대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읽기엔 절절히 사랑한 연인과의 이별이었다.

 

당신이 남긴 부재의 공간도 밝은 방이다. 당신이 없는, 당신의 순간들이 찬란하게 빛나는, 떠난 당신이 매번 수없이 다시 태어나 내게로 돌아로는 방……어떻게 내가 그 부재의 방을 떠날 수가 있단 말인가?p.143

 

책은 헤어진 후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별한 연인 중 한쪽이 사랑을 만난 순간을 회상한다. 그리고 연인과의 기억, 그 충만함, 이별의 기미, 떠남의 고통, 부재의 공허함, 추억의 의미 등 사랑하는 사람이 이별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 일어나는 마음의 거의 모든 동요를 잡아낸다. 그것도 대단히 시적인 언어로. 이 책은 산문이라기 보다는 시편에 가까웠다.

 

나는 나처럼 외로운 너를, 내가 만든 너를 꼭 껴안는다. 내가 만든 너도 나를 꼭 안아준다. 그렇게 너와의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 네가 떠난 뒤에는……p.50

 

이별을 말하는 저자의 언어는 시다. 아주 아름다운 시어다. 이런 언어를 구사하는 저자가 궁금해졌다.「이별의 푸가」를 통해 고 김진영 교수를 저자로서 처음 만났다. 대학에서 예술과 철학에 관한 강의를 하고 (사)철학아카데미의 대표를 지낸 분이었다. 이력만으로는 딱딱하거나 논리적인 글을 쓸 분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문장들은 이별을 아는 사람들에게 남김없이 흡수될 순도를 가진 것들이다. 이별한 자의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뿐더러 그 느낌을 더더욱 정확한 표현으로 풀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간결하게. 이런 저자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김진영 교수는 작년 2018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쉽고도 아쉽다. 저자는 자신의 저서를 남기는 일을 주저했다고 한다. 덕분에 학문적 성과와 번역서 이외의 책이라고는 「이별의 푸가」외에 산문집「아침의 피아노」 한 권뿐이다. 이 저자의 문장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권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안타깝고도 안타깝다.

 

사랑은 끝나도 그 사람의 오지 않아도, 이별의 계절은 다시 온다. p.62

 

이 책의 묘미가 감성의 흔드는 문장만은 아니다. 약력에서 알수있듯이 저자는 철학과 미학의 전문가다. 책에는 이별의 감정들을 설명하기 위한 인용들이 산재해 있다. 쿤데라에서 시작한 인용은 프루스트, 바르트, 테네시 윌리엄스, 아도르노, 버지니아 울프, 파스칼, 페터 한트케, 앙드레 지드, 정지상, 파스테르나크, 토마스 만 등으로 끝없이 이어진다. 거장들이 말하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단상들이 저자의 문장을 통해 저자의 이별을 설명한다. 마치 세상 모든 이별의 감정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당신은 떠났다.
그러나 조지프 콘래드: “보라, 죽은 뒤에도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지 않는가.”
농담은 진실이 되어 ‘사람의 골짜기를 걸어도’여전히 죽지 않고 사는 걸까. p.222
「어둠의 핵심」「시편」「애도일기」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어른이 되지 못한 나의 일부를 인정하게 됐다. 언젠가의 이별은 나를 성장하지 않는 아이로 만들었다. 아니라고 부정하고 덮어버리고 싶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나는 보채고 있었던 거다. 실현을 기대한 게 아니라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이별의 주체는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 「양철북」의 오스카처럼 마지막까지 아이의 주체로 남는다. 보고 싶어요, 다시 만나고 싶어요, 라는 보챔은 실현되지는 못해도 중지되는 건 아니니까. p.95-96

 

소설가 김연수는 이 책을 “저 먼 이별의 끝에서 뒤늦게 도착한, 길고도 다정한 별사(別辭)”라고 했지만 내게는 충분히 길지 못했다. 이 다정한 별사가 더 길게 이어졌으면 하고 바랬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별가로 내안의 부재를 채울때까지 말이다. 고인이 된 저자에게 더 긴 이야기를 청할 기회는 없다. 남은 길은 전작「아침의 피아노」를 읽는 일뿐이다.

 

이 부재는 당신의 없음이 아니라 나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주관적이며 상상적인 부재이다. 나의 욕망과 애착이 만들어놓은, 그러나 채울 수 없으므로 반드시 채워져야 하는 결핍으로 존재하는 부재.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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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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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이 책의 제목이다. 다음은 이 책이 나오게 된 정황을 지은이 가야마 리카가 ‘마치며’에 쓴 것이다.

 

이 책은 아직 정년이 한참 남은 야마토쇼보 편집부 후지사와 요코 씨와의 수다로 태어난 기획이다. 기획까지는 빠르게 진행됐지만, 실제로 책이 되어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는 전적으로 미룰 때까지 미루고 보는 내 성격 때문이다.(p.239)

 

제목에 쓰인 ‘심리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심리학(心理學, psychology)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과학의 한 분야를 뜻한다.’라고 나온다. 그리고 ‘마치며’에 쓰인 ‘수다’의 뜻은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또는 그런 말.’이라한다.

이 책은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보다는 ‘수다’에 가깝다. 나이 듦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 분석하는 내용을 기대하는 독자보다는 나이 듦에 대한 한담(閑談)을 즐겨보고 싶은 독자에게 걸맞은 책이다.

지은이 가야마 리카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이며 릿쿄대학 현대심리학부 교수라고 소개되어있으나 전문적이거나 어려운 의학지식을 다루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전체 240쪽 중에서 차례가 여섯 쪽이고, 한 장(章)과 다음 장(章) 사이에 강조 문구와 일러스트 등에 네다섯 쪽 가량을 할애하여 그냥 넘기는 책장이 많아 읽기에 부담이 없다.

『나이 듦의 심리학』은 전달하려는 주제를 설명하고 설득하거나 증명하는 대신 서체를 바꾸고, 글자크기를 달리하고, 글꼴을 진하게, 글자색은 알록달록하게, 별표를 달고, 배경색을 넣고, 밑줄을 긋는 등 꾸미는 데 신경을 많이 쓴 책이다.

 

서두에 ‘여자의 나이 듦과 정년의 의미에 관해 하나하나 고민해보기로 한자(p.15)’라고 쓰여 있는 대로 이 책은 중장년층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 중 여성, 그중에 정년이 정해져있는 정규직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에 해당하지 않는 독자에게는 이 책이 흥미롭지 않을 수 있다.

 

연애 상대 남성을 찾을 수 없을 때 『나이 듦의 심리학』에서 제시하는 방법이 특이해서 아래에 적어본다.

 

그런 경우 주변에 있는 남성이 아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남성, 즉 배우나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것도 방법이다. ...... 그리고 한류 붐을 일이킨 스타들은 배우든 뮤지션이든 연상의 일본인 여성들을 결코 얕보거나 꺼리지 않았다. 예전에 욘사마 팬미팅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욘사마는 공연장에 몰려든 엄마나 할머니뻘 여성들에게 웃는 얼굴로 “여러분은 소중한 가족입니다”라고 말하며 정중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벤트 후반에 욘사마가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세요....... 좋아하게 되면 어떡해요”라는 가슴이 철렁하는 멘트를 했을 때는 갱년기가 훨씬 지난 여성들까지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꺅!”하며 새된 소리를 질렀다. ...... 예전처럼 톱스타가 일본에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영원히 늙지 않는 여성들의 뜨거운 설렘을 받아줄 것인가. 그것이 커다란 문제다.(p.115~116)

 

배우나 아티스트가 공연장에서 하는 언행은 공연의 일환으로 공연자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님에도 표면적인 의미 그대로 받아들이는 해석이 특이하다. 좋은 점만 부각시켜 잘 만들어진 배우나 아티스트의 이미지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과 괴리가 생겨 실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생겨날 것인데 의사가 이런 방법을 권장한다. 한류 스타의 촬영지나 시사회장에 전세기를 타고 오는 일본 여성팬들의 심리가 이런 배경에서 생겨난 것인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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