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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벌써 십년도 더 된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본 같은 반 아이가 그 남자 주인공이 어찌나 춤을 잘 추는지 보고서 넋이 나가는 줄 알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것이.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가끔씩 그 영화를 생각했지만 어찌하다가 이제서야 보게 되었으니...

  자신이 추고 싶은 춤과 대회 우승이라는 놓칠 수 없는 두가지 꿈 가운데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당하는 주인공 스캇은 갈등하고 번민한다.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하다.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스캇과 그것을 방해하고 어렵게 만드는 악의를 가진 협회장의 대립구도 속에 부모의 좌절된 젊은 날의 춤 이야기가 흥미롭게 배치되어있다. 거기에다 뛰어난 춤솜씨를 볼 수 있는 대회 장면과 연습과정, 함께 어우러진 음악들 또한 놓칠 수 없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단순한 춤 영화겠거니 하고 본 영화에서 의외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는 일도 즐겁다. "겁먹는 인생은 종친 인생이다!"라고 주인공들이 되뇌이는 대사는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 결국 스캇이 발견하는 것은 자신이 마음으로 원하는 춤을 출 때 행복하다는 것, 스스로가 느끼는 만족과 충만함이 관객에게 전달될 때 관객도 함께 환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문득 언젠가 읽은 밥 딜런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의 젊은 시절, 자신의 목소리가 가수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가수의 길을 포기하려했을 때 누군가 해준 다음의 말을 듣고 가수의 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너의 노래를 해라."

  어쩌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뛰어난 재능이나 지식 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멋진 춤이 있는 이 영화를 통해 인생의 숨겨진 진리를 단순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너의 춤을 춰라, 그리고 그 순간의 행복을 가슴으로 느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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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ao Sasaki - Stars & Wave - 재발매
Isao Sasaki 연주 / 엔티움 (구 만월당)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생각처럼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나 기분이 바닥으로 축 처지는 느낌이 들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이럴 때 바다를 보면 가슴이 확 트일텐데..."

  별과 파도라는 제목이 붙은 이 음반에서 이사오 사사키는 그런 사람들의 희망을 들어주는 음악 배달부가 되기를 자처한다. 맑게 울리는 그의 피아노 소리 뿐만 아니라 이 음반에는 바람과 파도 소리도 함께 들어있어서 듣다보면 별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저녁 바닷가의 흰모래사장에 앉아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내가 이제까지 가본 바닷가는 사사키가 들려주는 음악 속 그 장소와는 좀 멀었던 것 같다. 파도와 바람 소리가 듣고 싶어서 찾아간 바닷가에서 만난 것은 무수히 많은 횟집과 여기저기 건조를 위해 널어놓은 오징어와 생선들, 고운 눈 같은 모래가 아닌 푹푹 빠지는 젖은 모래 사장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곳이 현실의 바닷가와 더 많이 맞닿아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엔 그런 바닷가와는 다른 곳이 있음을 사사키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알려준다. 이 음반에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곳에 갈 수 있다는, 또한 지금 내가 꿈꾸고 있는 마음 속에 이미 있다는 희망이 살포시 접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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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영화는 정말 예사롭지 않다. 소녀시절 우연히 만난 화가가 건네준 열쇠를 돌려주기 위해 평생을 걸고 그를 찾아다니는 여배우의 이야기는 현실과 그가 주연한 영화 속 장면이 절묘하게 결합되어서 무엇이 진실이고 가공된 이야기인지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마치 실사 영화를 보는듯한 박진감 넘치는 화면과 빠른 이야기 전개는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이라는 것을 잊게끔 한다. 감독이 "퍼펙트 블루"에서 보여주었던 현실과 환상 사이의 기묘한 줄타기, 영화와는 다른 애니메이션만의 독자성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천년 여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모든 점들은 결국 감독이 묻고자 하는 사랑의 실체에 다가가게 만든다. 여배우 치요코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의 실체란 사실 맹목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단 한번의 만남이 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사랑이 될 수 있는지 누구나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랑이 있을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 아니라, 과연 사랑이란 감정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라는 점이다.     

  치요코는 자신의 사랑을 찾기 위해 자신이 주연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모든 것, 즉 목숨까지도 거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우주 여행을 홀로 떠나는 장면을 연기하는 치요코는 사랑을 찾아 우주 끝까지라도(지구 끝까지가 아닌) 가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치요코는 화가가 이미 오래전에 그를 추격하던 형사에 의해 고문으로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모른채 평생을 찾아다니다가 열쇠를 손에 쥔채 임종을 맞이한다. 그녀는 화가를 만날 수 없었던 이생 대신에 다음생을 기대할까?

 "못 만나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난... 그를 쫓는 나를 사랑하거든요."

  천년 여우 치요코가 보여주는 사랑은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와 믿음에서 먼 지점에 있다. 그것은 매혹된 영혼이 추구하는 극한의 가치이다. 한 사람의 영혼을, 그리고 일생을 바꾸어 놓은 그 눈멀음의 열병은 천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서도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는 사랑의 숨겨진 얼굴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윤회와 전생이라는 소재를 이곳저곳에서 끌어다 쓰는 바람에 이제는 특이하게 여겨지지도 않지만, 그 일반화 현상의 이면에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서라도 추구하고픈 무엇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첫작품 "퍼펙트 블루"로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곤 사토시의 2001년작 "천년 여우"는 윤회와 전생이 밑바닥에 깔린,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보았을법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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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천성 색소 결핍증을 앓고 있는 노이는 늘 눈이 내리는 피요르드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에 산다.철없는 아버지와 떨어져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노이는 비범한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현실에 자신을 끼워맞추며 사는 것은 답답하고 괴롭기만 하다. 그런 그에게 주유소에서 일하는 아이리스는 친구가 되어주고 모처럼 노이는 활기를 띠지만, 잦은 결석과 기이한 행동으로 학교에서는 퇴학당한다. 마을의 묘지지기로 일하게 된 노이는 어느날, 마을의 점쟁이로부터 죽을 거라는 점괘를 듣는데...

  영화의 배경은 아이슬란드의 시골마을이다. 주인공 노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지루함이 가슴으로 와닿는다. 하얀 까마귀란 별명으로 불리게 만든 육체의 질병과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보이는 거대한 피요르드와 눈들로 가득한 자그마한 마을은 노이를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노이는 생일날 할머니가 준 사진 속의 열대 해안과 검은 피부의 원주민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서 현실과 쉽게 융합되지 못하는 노이의 모습은 어찌보면 부적응자나 몽상가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처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정상적인, 또는 평범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때론 평범함을 살아낸다는 것이 극심한 고통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음을 영화는 노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또 할 수 있을지 몰라 괴로워하던 노이는 점쟁이의 불길한 점괘를 듣고 불안해져서 어떻게든 그곳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고 직접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자금 마련을 위해 마을의 작은 은행을 털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차를 타고 도망치다 결국 유치장에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온다. 유치장에 갇힌 노이가 문을 두드리며 발버둥을 치다가 얼마안가 낙심하고는 차가운 침대에 웅크린 장면은 마치 그가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듯 하다. 마음 속으로 꿈꾸는 것들을 해보고, 또 떠나고는 싶은데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 그래서 그냥 체념하고 자신의 유폐된 상태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노이. 그가 빠져나갈 수 있는 작은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얼마 후, 눈사태라는 자연재해가 노이를 둘러싼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가족과 마을의 사람들이 죽는 와중에 목숨을 건진 노이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그는 남국의 부서지는 눈부신 파도와 원주민을 볼 수 있을까? 천재지변만이 한 사람의 일생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준다는 설정은 억지스럽다기 보다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우리 가운데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이 자신이 꿈꾸고 있는 것들을 만날 수 있을까? 끊임없이 내리는 눈과 거대한 피요르드 같은 감옥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그 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기껏해야 열대의 아름다운 사진을 반복해서 들춰보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임을 떠올려 보면 노이의 슬픈 표정이 비단 그의 것만이 아닌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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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의 평가가 무척이나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또한 각각의 주관적인 시점에 따른 판단일 수 밖에 없다. 영화 클래식을 보고 내가 느낀 것은 그것이었다. 내가 자주 검색하는 영화 사이트에 실린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이 영화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또는, "첫사랑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한다"는 다소 감성적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 얼마나 슬프길래 가슴을 저미고 눈물을 흘리게 하는지 한번 보기나 하자고 - 개인적으로는 이런 류의 영화를 무척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 마음먹었고 결국 보고난 후, 나에게 남은 것은 눈물이나 가슴저림이 아닌 씁쓸함이었다.

  영화의 어떤 점이 나로 하여금 눈물을 머금게 만들려다 쏙 들어가게 만들었을까? 영화의 끝부분으로 갈수록 역시 이건 영화구나, 라고 절실히 느끼게 했을까? 감독이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수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와닿질 않는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정제되어 있고 매우 아름답게 포장되어있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 준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상처를 떠안고 떠밀리듯이 가버린 베트남전의 전투신마저 엉성한 가짜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점이다. 감독은 영화에서 몇분 되지도 않는 그 장면의 사실성을 살리기 위하여 제작비의 상당부분을 쏟아부었다는 후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사실성과는 먼 지점에 오히려 자신의 진지를 확고히 구축했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가 생명력을 획득하는 유일한 근거일지도 모른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여인이 준 목걸이를 전투중에 잃어버리고 그것을 찾아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장을 다시 되돌아 가는 사람을... 이 세상은 순수함을 믿고 지키는 사람에게 댓가를 치루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준하의 두 눈을 댓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목걸이는 살아남는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던 여인의 딸을 우연히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될 때, 목걸이는 그 딸에게 건네어져 눈부시게 빛을 발한다.

  너무나 순수해서, 타락하고 물질화된 세상에서는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이에게는 잃었던 감성을 일깨우고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다른 어떤이에게 그것은 그럴듯한 환상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설레이며 애태웠던, 그리고 가슴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첫사랑이 세월이 흐른뒤에 보여주는 모습은 세파에 찌든 주름 가득한 얼굴과 굽은 등, 허물어지는 어깨일 뿐이다. 준하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뜸으로써 그것을 보여주는 대신에 클래식한 사랑이 담긴 추억의 상자를 남긴다. 과연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나 그러한 순수함에 일생을 몸담을 수 있을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영화가 존재하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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