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참새는 2023년 11월에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박참새의 시집 제목은 '정신머리'이다. 박참새는 욕설과 비어를 쓰는 데에 주저함이 없고, 문자를 이미지로 구현해 내는 기상천외한 발상도 시에 써먹는다. 20대 젊은 여성 시인은 유명 연예인 못지않은 인스타 팔로워가 있다. 평론가들은 박참새의 시에 상찬(賞讚)을 쏟아낸다. 새해 벽두부터 신문의 문화면 기사를 장식한 박참새의 인터뷰는 놀랍다 못해 웃음마저 나온다. 깡패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깡패'의 뜻은 독자마다 해석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무덤에 누워있던 김수영 시인이 놀라서 관짝 뜯고 나오겠네.'

  문학 관련 커뮤니티에 누군가 그런 댓글을 썼다. 박참새를 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무슨 저게 시야, 저걸 과연 시라고 할 수 있냐... 박참새의 시를 읽은 이들의 혹평과 한숨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한국의 시문학계는 너무나도 정체된 나머지, 기괴한 변종 창작자를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자가수혈 하기에 이른 것이 아닌가하는.

  박참새 말고 요즘 새롭게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시인도 있다. 예능인 '양세형'이다. 양세형이 쓴 시집 '별의 길'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그걸 보고 개탄을 금치 못하는 문학 지망생들도 있다. 누구는 등단하려고 그렇게 애를 쓰며 시를 쓰는데, 연예인은 다 알아서 책 펴내주는 출판사도 있고 참 팔자 좋다고. 나는 양세형의 시집은 읽지 못했으므로 그 시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결국 간단하게 말하면 이렇다. 일반적으로 시인이 자기 이름을 내건 시집을 내려면 등단해야 하고, 조금씩 청탁을 받아 글을 써서 이름을 알려야 한다. 그런 후에 출판사 편집자의 마음에 들면, 그제야 겨우 어렵게 시집을 펴낼 수 있다. 그런데 양세형에게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었다. 이건 불평등한 일인가? 그렇지 않다. 출판사는 팔릴 가능성이 있는 책을 낸다. 그러므로 '양세형'이라는 브랜드를 내건 시집이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팔릴 수 있는 걸 써내는 것은 시장의 기대에 부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시장에 내놓으려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 만한 포장지를 둘러야 한다. 우리는 그걸 '브랜드'라고 부른다. 어제 EBS의 '위대한 수업 Great Minds'에는 태양의 서커스 CEO 다니엘 라마르가 나왔다. 라마르는 태양의 서커스가 팬데믹 시기에 파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브랜드'가 가진 힘 때문이라고 했다. '태양의 서커스'라는 브랜드를 신뢰한 투자자들이 돈을 댔고, 그 돈으로 태양의 서커스 공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박참새의 그 경박스럽고 너절한 시들에 대한 내 평가는 논외로 하고, 이 시인이 내세운 브랜드는 충분히 시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이 팔리면 문학도 돈이 되고, 그것이 작가의 브랜드가 된다. 물론 박참새가 그 브랜드의 효용성을 얼마나 유지할지 궁금하기는 하다. 한 3년, 어쩌면 그보다 더 길게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양세형의 시집도 대중의 관심사에 부합하기 때문에,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그 사실이 시집의 문학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난 이렇게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데,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참, 세상 불공평하네. 골방에서 죽으라고 글 쓰는 작가 지망생이 백날 이렇게 한탄해 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원래 세상이, 인생이란 것이 그렇게 더럽게 불공평하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신이 내세울 '브랜드'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든 자신을 뭔가로 두를 포장지,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문학계에서는 등단이고, 유력 문인의 추천이고, 인맥이고, 정치력이다. 그런 브랜드도 없는데 누가 생초짜 신인을 알아주느냔 말이다. 브랜드 없는 사람의 글을 기꺼이 펴내 주는 출판사는 없다. 그런 사람의 유일한 대안이라면 자비(自費) 출판이 있기는 하다.

  당신의 브랜드는 무엇입니까? 누군가 그렇게 나에게 묻는다면 어떨까? 정말이지 할 말이 없다. 나는 평론가도, 작가도 되지 못했다. 그런 브랜드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구석진 블로그에서 내가 쓰는 글은 그저 끄적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그 끄적거림이 그래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글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오늘도 글을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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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내과 예약이 있어서 병원에 다녀왔다. 작년 12월에 받은 건강 검진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재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종합병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미어터진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와는 5분 정도 이야기한 것 같다. 의사는 다시 확인해야 할 검사와 추가로 필요한 검사에 대해 말했다.

  원무과에서 수납하고 채혈실로 갔다. 병리과의 젊은 여자 직원이 피를 뽑았는데, 생각보다 아프다. 지혈하느라 채혈한 곳을 누르고 있었는데, 피가 좀 많이 나온다. 피 뽑은 자국도 작은 피멍이 아니라, 이상하게 작은 직선 모양으로 줄이 그어진 것처럼 자국이 났다. 피 뽑는 것도 기술인데, 저 직원은 실력이 참 별로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피 뽑을 때 바늘 들어가는 느낌에서 이 사람 피 잘 뽑는구나, 아니다를 구분할 지경이 되었다.

  채혈 결과를 기다리는 데 1시간이 걸렸다. 병원에서 기다릴 때는 달리 뭘 할 게 없다. 책을 읽다가 집중이 안 되어서 그만두었다. 이럴 때는 묵주기도를 하는 편이 낫다. 묵주기도는 같은 기도문을 반복해서 하는 염경기도(念經祈禱)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묵주알을 굴렸다. 그렇게 5단 기도를 2번 했다. 중간중간에 대기실의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아주 늙은 할머니 환자는 남편이 보호자로 옆에 있었다. 그 할머니 남편도 거진 80이 다 되어 보였다. 거동이 약간 불편한 할머니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내를 살뜰히 챙겼다. 저 나이에도 서로를 챙기고 의지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나는 '부부'라는 인연에 대해 잠시 짧게나마 생각했다.

  내과 접수를 보는 간호사는 정신없이 바쁘다. 내 앞에서 간호사와 이야기하는 사람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이다. 남자는 약국에서 받아온 약봉투를 들고 있었다. 다음 진료 예약을 하는데, 자신이 연차 휴가를 낼 수 있는 날짜를 말한다. 남자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남자의 모친이 그 옆으로 온다. 남자는 보호자로 병원에 왔다. 연차라도 빼서 어머니의 진료를 챙기는 아들이 있으니, 저 아주머니는 노부부보다는 형편이 낫다.

  바로 옆의 간호사는 젊은 여자에게 인슐린 주사 놓는 법에 대해 설명을 한다. 환자는 여자의 모친이다. 이제 처음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게 된 모양이다. 주사의 용량을 얼마나 할 것인지, 언제 맞아야 하는지, 소모성 재료대 요양 급여 신청은 어떻게 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는 딸이 늙은 엄마를 챙긴다. 저 아주머니 환자도 복받은 사람이네. 병원에 오면 저렇게 부모 챙기는 자식들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대기실 건너편에는 신장내과가 있다. 노부부가 진료실에서 나온다. 간호사가 할아버지에게 투석실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신장이 많이 안 좋은 환자인가 보다. 여긴 할머니가 남편을 챙기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노부부는 대기실을 떠난다. 신장내과 옆에는 혈액종양내과가 있다. 대기실 의자 뒤편에는 정장 차림의 젊은 남자들이 두어 명 앉아있다. 내 생각엔 제약회사 영업부 직원 같았다. 오전 진료 끝나기를 기다려 남자들은 진료실을 조심스럽게 노크한다. 문 앞에서부터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남자가 손에 든 쇼핑백은 의사에게 줄 선물 같아 보이기도 한다. 병원에 오면 의사라는 직업이 가진 권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냥 알게 된다.

  채혈한 지 1시간이 지나서 검사 결과가 나왔다. 진료실에 들어가는데, 몸이 약간 휘청하는 느낌을 받는다.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지. 중년의 여자 의사는 내가 앉고 나서, 잠깐 모니터를 보고는 차분하게 말을 시작한다. 나는 안 좋은 말을 들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검사 결과가 정상 수치로 나왔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나는 죽은 줄 알고 염라대왕 앞에 불려 나갔다가, 한 10년 더 살아도 된다는 말을 들은 사람 같았다. 내 나이 또래의 여자 의사는 병원 홈페이지에 나온 얼굴과는 달리 인물이 별로였다. 하지만 나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그 순간만큼은 진짜 선녀처럼 보였다.

  살았다.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료실을 나왔다. 밀린 환자 때문에 점심도 못 먹고 일하고 있는 접수 간호사에게도 따뜻한 인사를 건넸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집에 와서 타이레놀을 2알이나 먹어야 했다. 어쨌든 살았다. 커다란 마음의 짐을 덜어낸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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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밥 딜런(Bob Dylan)이 노래를 잘 부른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가창력이 좋아야지만 가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밥 딜런은 노래를 못 부르는, 현대판 음유시인쯤 된다. 나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 가수는 평생 부른 노래로 노벨상까지 거머쥐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스스로 가창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밥 딜런은 가수가 되는 걸 포기하려 했다고. 그런데 누가 밥 딜런에게 말했단다. 넌, 너의 노래를 부르면 돼.

  2023년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최악의 한 해였다. 여러 과의 병원을 성지 순례하듯이 다녔다. 아픈 몸은 좀처럼 낫질 않는다. 기분 나쁘게, 속 끓이는 일들이 계속 있었다. 나는 몸이 아픈 이유가 스트레스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복용하는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 쉽게 지쳤고, 뭔가에 집중하는 일이 힘들어졌다. 영화 보는 것도, 책 읽는 것도 해내기가 힘들었다. 글도 쓸 수가 없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써낸 영화 리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영화를 보는 것이 힘들게 되니까, 글도 써내질 못한다. 그래도 글을 써야 하니까 이런저런 일상 글이라도 쥐어 짜 내어 수필로 만들었다. 그냥 글쓰기 연습인 셈이었다. 뭔가 제대로 된 글을 써내질 못한다는 좌절감은 늘 있다.

  올해는 수필에 이어 시를 써보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나는 중학교 때부터 시를 써왔었다. 집안 창고의 박스 어딘가에 그 노트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소설이었다. 작가가 되어야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쓴 글로 벌어 먹고살 거야.

  "그런데, 작가가 된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오래전, 나에게 그렇게 말하던 사람은 입가에 일그러진 미소를 흘렸다. 그래, 언젠가 네가 한 말을 되돌려 주마. 하지만 이렇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나는 그 애한테 여적지 그 말을 되돌려 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다. 다음 주에도 병원 예약이 있다. 늙음과 병고는 우울함을 몰고 온다. 노래를 더럽게 못부르는 밥 딜런은 자신의 노래에 개성을 입혔다. 그리고 근성으로 버텨냈다. 힘들어도 버틴다는 건 중요하다. 그건 전혀 즐겁지 않다.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면서 이를 악물어 보는 거다. 올해도 난 아플 거고, 써지지 않는 글을 부둥켜안으며 괴로워할 것이다. 어쨌든, 넌 너의 글을 써라. 나에게 하는 그 말을, 나는 지상의 어느 방 한 칸에서 외롭게 글을 쓰는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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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될 줄 알았다. 그러니 여러분들 또한 될 것이다.

  한백양은 올해 동아일보와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의 당선자이다. 그러니까 신춘문예 2관왕인 셈이다. 1986년생으로 국문과 출신인 이 당선자는 당선 소감 첫 문장에서 자신이 될 줄 알았다고 말한다. 세계일보에 실린 당선작의 제목은 '웰빙'이다.


웰빙
                       한백양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이미 앉은 사람을
박대할 수 없으니까
한동안 복숭아는 포기할 것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누구에게 잘하진 못한다

나는 요즘 희망을 앓는다

내일은 국물 요리를 먹을 거고
배가 출렁일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을 거고

옷을 사러 갔다가

옷도 나도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잔뜩 칭찬을 듣는 것

가끔은 진짜로
진짜 칭찬을 듣고 싶다

횡단보도 앞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쉴 새 없이 말을 속삭일 때마다
내 어깨는 더욱 비좁아져서

부모가 종종 전화를 한다 밥 먹었냐고

밥 먹은 나를 재촉하는 부모에게
부모 없이도 행복하다는 걸 설명하곤 한다

 
  읽으면서, 또 이렇게 한 번 옮겨서 써보니 시가 참 괜찮다. 이 시와 시인의 삶은 단단히 결합되어있다. 문학이란 결국 글쓴이 자신의 이야기이며, 그것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일이다. 당선자 한백양은 자신이 당선될 줄 알았다고 당선 소감글의 첫문장에 콱 때려넣는다. 어찌보면 기쁨에 넘친 자의 자만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글짓기 과외로 생계를 유지하며 시쓰기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신에게 건네진 축배를 받아들었다. 한백양은 자신이 된 것처럼 그대들도 언젠가 될 거라는 격려도 함께 덧붙인다.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뭔가 울컥해지는 말이지 싶다.

  물론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견디어 내는 것만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을 수는 없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저절로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말로, 과연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희망을 가지고 세월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룬다.

  나는 글쓰기가 과연 무엇일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작가는 배를 저어가는 사공과도 같다. 자신이 써내는 글로 노를 저어가며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외롭고 힘든 길이다. 좋은 글을 써야겠지.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글을 알아주는 독자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생면부지의 신춘문예 시 당선자의 당선소감을 읽으면서, 이 시인의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앞으로도 읽는 이의 마음에 가만히 와닿는 그런 좋은 시를 써주길.


*202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한백양의 당선 소감글 기사 링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121851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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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쿵쿵쿵... 새해 첫날, 이른 아침부터 절구로 마늘 찧는 소리에 잠이 깼다. 정확히 어느 집에서 저런 소리를 내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믹서기 없이 저렇게 절구로 마늘을 찧는 집이 있다는 것만 안다. 얼마 전에도 저 집구석의 하루종일 마늘 찧는 소리 때문에 머리가 울릴 지경이었다. 믹서기 가격이 대체 얼마나 한다고 저러고 살까? 믹서기 살 돈이 아까워서 저러고 산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아마도 저렇게 손으로 직접 찧어야만 마늘 맛이 좋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언젠가 커피 분쇄기가 고장 났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커피는 마셔야겠고, 분쇄기는 고장이 났다. 하는 수 없이 찬장 어느 구석탱이에 처박힌 사기로 된 절구를 꺼내었다. 원두커피 200g을 빻는데 30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손에는 쥐가 나고 손목이 시큰거렸다. 옛날 어머니들은 참 힘들게도 살았구나. 나는 다시는 절구로 커피 빻는 일은 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렇게 몇 시간이고 마늘을 빻는 사람은 아마 나보다는 단련된 손목을 가진 사람이겠지. 

  나는 온집안에 울려퍼지는 절구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날은 그다지 춥지 않다. 지난가을부터 도진 족저근막염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늙어서 그런가 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안 걷고 마냥 지낼 수도 없다. 가끔은 걸어야지. 산책하러 가는 길에 지나는 공원에는 사람도 거의 없다. 나이 든 할머니 한 명이 운동기구로 다리를 힘겹게 내젓고 있었다. 나는 공원을 지나 근처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다. 한적한 도로를 걸어가는데, 좀 떨어진 곳에서 중년의 남자 하나가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한쪽 어깨에 커다란 검정색 가방을 메고 있었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저, 이것 좀..."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사모님'이란 호칭을 듣는 것이 어째 영 어색하다. 남자가 내민 것은 중국집 전단이었다. 남자의 가방에 있는 것은 아마도 전단 꾸러미인 모양이었다. 그건 오늘 남자가 해야할 일감 같아 보였다. 내가 젊었을 때에는 거리에서 광고 전단을 주는 사람들을 피해가곤 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웬만하면 전단을 받아 들게 되었다. 내가 그걸 받아주면 그 사람들의 일이 조금은 줄어들 것이므로. 남자의 인상은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선뜻 손을 내밀어서 남자가 건넨 중국집 광고지를 받았다. 내가 건네받은 광고지는 무게조차 느낄 수 없는 한낱 가벼운 종이이다. 그건 그 남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 아파트의 분리수거장이 있다. 걸어가다가 나는 그 전단을 그곳에 던져놓았다. 나에게는 그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곳을 지나 도로 하나를 건너면 다른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거기에는 1층 화단에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사람이 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은 차고 넘치나, 그것을 조화롭게 키워내는 재주는 없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지나가면서 보니, 그 화단을 가꾸는 이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이것저것 심어놓았던 화단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봄이 되어야 그곳에 화초들이 채워질 터였다. 흔하고 별 볼 일 없는 꽃이라 해도 그곳에 심어지면, 지나가면서 보는 이들에게는 나름의 즐거움을 준다. 나는 올해 봄에는 거기에 어떤 꽃들이 필지 생각을 해보았다.

  나에게도 키우는 화초 세 가지가 있기는 하다. 크리스마스선인장이라고 불리는 게발선인장, 천리향, 비파나무. 게발선인장은 해마다 이맘때쯤에 꽃을 피운다. 이건 키운지 15년도 넘은 것 같다. 이 선인장의 화분은 윗부분의 절반이 깨졌다. 베란다에서 발로 밀다가 그리 되었는데, 분갈이를 해주기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두고 있다. 화분의 모양새도 참 그런데, 몇 년 전에는 선인장 절반이 갑자기 뚝 하고 떨어져서 죽어버렸다. 절반 남은 선인장이 매해 꽃을 피웠다. 꽃송이를 세어보니 6송이이다. 참으로 고맙다. 내가 하는 거라곤 좀 시든 기운이 보일 때, 물을 주는 것뿐이다.

  천리향은 꽃봉오리가 맺히고 있다. 천리향은 꽃은 참 볼품없는데, 향이 정말 좋다. 아마 보름쯤 지나면 꽃이 필 것 같다. 어느 해인가, 겨울에 추울 것 같아서 천리향을 집안에 들여놓았다. 그랬더니 그해에 천리향이 꽃을 피우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한성(耐寒性) 식물을 따뜻한 곳에 두는 것은 독과 같다는 것을. 그래서 겨울에는 몹시 추운 날을 빼고는 천리향을 그냥 밖에 두었다. 얼마 전 강추위가 엄습했을 때, 천리향을 잠깐 집안에 들여놓기는 했다. 이제 날이 풀렸으니, 화분을 밖에 두어도 된다.

  "그래, 강하게 살아야지."

  나는 꽃이 핀 게발선인장만 저녁에 집안에 들여놓고, 천리향과 비파나무는 베란다에 놔두었다. 비파나무는 원래 밖에서 자라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면서도, 천리향은 겨울밤 추위에 두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천리향에게 변명하듯 나는 그렇게 말을 건넸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에게 '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 어떨까? 아마도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하하, 웃기시네. 나는 식물이 말을 못 하는 것에 새삼 안도한다.

  언젠가 사주 공부를 해보려고 한 적이 있다. 사주책을 사서 좀 보려고 했더니, 죄다 한자투성이였다. 이건 좀 힘들겠네. 그냥 내 사주나 좀 풀어서 들여다보다 말았다. 내 사주에는 오행 가운데 '木'이 참 많이 없었다. 물론 사람마다 부족한 오행의 기운이 있기는 하다. 木은 생기와 친화력, 뭐 그런 거에 해당하는데 그게 내게는 부족했다. 그럼 그걸 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뭔가를 새롭게 만들고 하는 걸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식물을 키우던가 하는.

  그런데 나는 식물 키우는 재주는 정말이지 눈꼽만큼도 없다. 생각해 보니 나에게는 글쓰기가 있다. 이것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다. 木이 부족한 나에게 글쓰기는 그러니까 화초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날마다 써내지는 못해도, 어떻게든 좀 써보려고 노력은 한다. 작년에는 내내 글이 써지지 않아서 골머리를 앓았다. 그래도 글쓰기를 놓을 수는 없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화초들이 해마다 꽃을 피우는 것처럼, 내 글도 언젠가 그렇게 되겠지. 그런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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