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우스님(서민 박사)님의 사인 본 책을 받았습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꾸벅 


받자마자 올렸어야 했는데, 세상에 책하고는 담을 쌓은 와이프가 이 책을 읽더군요. 


그래서 늦었습니다. (죄송해요 ^^;) 


이 책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욕심이겠거니 했었는데 


실제로 필요한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마태우스님 덕분에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겠어요 .


감사합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와 웃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 과소설가가 있고 고양이 과소설가가 있다. 하루키는 고양이 과소설가다. 그러고보니 생긴 것도 고양이 닮았다. 전생에 고양이 였으려나. 사람이라도 구한 것일까. 인간으로 환생해 고양이 같은 글로 부와 명성을 얻었으니! (개의 시대가 가고 고양이의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에 가장 인기 있는 동영상은 고양이 동영상이라지.) 




마루야마 겐지는 개 과소설가다. 마루야마 겐지는 도베르만을 닮았다. 글도 그렇지만 하는 짓도 영락없이 사냥개다. 마루야마 겐지는 어릴 때 개에 물린 적이 있다고 한다. ‘개 트라우마로 인해 개를 무서워할 법도 한데, 마루야마 겐지는 오히려 개에 복수할 기회만을 기다려왔다고 한다. 어느 여름 밤, 뜻밖의 기회가 왔다. 개 한 마리가 마루야마 겐지를 향해 짖으며 다가온 것. 눈치 없는 개 같으니라고. 하필 고른 인간이 마루야마 겐지라니.


 

단숨에 옆구리를 구두 끝으로 걷어차 버렸다. 개는 금세 기가 꺽이고 말았다. 그런데도 나는 목줄을 잡고 세게 끌어당겨서는 맨주먹으로 머리를 마구 두들겨 패 주었다. 전신주에 내동댕이치려고 한 순간, 개 주인집 불이 켜져 쏜살같이 도망쳐 왔다. ” 

 


뭔가 마루야마 겐지 답다. 개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온 사람이 개를 키워도 되는 것일까. 마루야마 겐지는 수십 마리의 개를 키워온 일화를 이 책에 담았다. 몇 달전, 옌도 슈사쿠의 에세이를 보며 데굴데굴 굴렀는데, 그 이후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웃었던 것 같다.

 

고양이한테도 허구헌날 공격당하는 온순한 셰퍼드 맥, 어느날 시바이누 종의 사스케가 겐지 집으로 오게 된다

맥과 사스케의 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사스케는 비굴한 자세까지 취하지 않았지만, 선배에 대한 예의는 제대로 알고 있어 꼬리를 흔들어 인사를 했다. 맥도 조용히 꼬리를 흔들고 온화한 눈빛으로 후배를 바라보았다.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윽고 맥이 마당 구석으로 천천히 걸어가더니 내가 던져 둔 야구공을 물고 왔다. 그러고는 공을 사스케 앞에 놓고 앞발로 슬며시 밀어주었다. ”이 공 가지고 놀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아내도 놀랐고, 그리고 감동했다.” 

 

겐지의 첫 개, 셰퍼드 조로, 디스템퍼로 사망


고양이한테 공격당하는 개 , 셰퍼드 맥.



형으로부터 받은 시바이누 사스케.


아프간하운드 바롱


세인트버나드 조르바


검은 차우차우 구마


아이리시 울프하운드 장고


도사견 류


검은 래브라도레트리버 구로


검은 차우차우 돈구리


 

숱한 개들을 기르면서 마루야마 겐지는 개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개를 기르지 않았다면 어떤 인간이 되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훌륭한 애견가였던 것은 아니다. 개를 이해해 주는 마음은 부족했다. 이상적인 개를 찾는 일에만 열중해 정작 자신이 이상적인 주인이 되는 일을 잊고 있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

 

이상적인 주인이 되고자 했기 때문일까.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이 키웠던 개에 관한 꿈을 자주 꾼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꿈속에서 만나는 그의 개들은 웃는다고.

 

내 꿈에 나타난 그 개들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웃고 있었다.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것 같은, 다른 뜻이 없이 충실하고 한없이 밝고 활기 넘치는 웃음이었다. 이런 꿈을 꾼 다음날은 기분이 좋다. 기운이 막 생긴다. 일을 척척 해 나가고, 자전거를 탈 때도 평소와 달리 몸 상태가 좋다. 무엇보다 나 또한 하루 종일 속으로 웃고 있다.”

 

웃는 개가 상상 되어 나도 자꾸 웃음이 터진다.

마루야마 겐지 덕에 개와 함께 실컷 웃었다.


, 개 키우고 싶어라.

 


댓글(27)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8-01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1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1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1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1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1 0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vis 2016-08-01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묵을 쓴 그 과묵하고 진지한 작가가 배꼽빠지게 웃겨주는 그 에세이의 제목을 저에게도 좀..

시이소오 2016-08-01 09:33   좋아요 0 | URL
<인생에 화를 내 봤자>네요.

아, 숨을 못 쉴 정도로 웃었어요. ^^

clavis 2016-08-01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웃었다는 얘기만 들었는데도 웃기네요ㅋㅋㅋ

시이소오 2016-08-01 09:36   좋아요 0 | URL
이렇게 쉽게 웃기는 방법이 있었군요. ㅎㅎ

clavis 2016-08-0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일상이 건조해서요

시이소오 2016-08-01 09:40   좋아요 1 | URL
제가 윤택하게 해드렸습니다.

기억하세요 ㅋ ^^

stella.K 2016-08-01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집도 3년 정도만 빼고 개와 함께 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데
개에 관한 책을 써 본 일이 없어요. 그런데 겐지는 썼단 말이죠. 음..
사람도 개 과가 있고 고양이 과가 있다고 하던데
참고로 저는 개 같이 생겼습니다. 뭐 별로 알고 싶지 않으시겠지만...ㅋㅋ

시이소오 2016-08-01 11:31   좋아요 0 | URL
알고시포요. 달마시안 닮으셨을까요?

저도 개 과입니다.
박그네스런 것들만 보면 짖습니다.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1 12:54   좋아요 0 | URL
마르치스 ?

깊이에의강요 2016-08-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 2016-08-01 19:35   좋아요 0 | URL
강요님, 오랜만에 오셔서 ㅋ 한 마디만 남기고 가버리시다니 야속해요. 그래도 반갑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묘한 비유입니다.ㅁ ㅏ자요. 갠지는 개죠(이거 나쁜 의미가 아니라 ). 하루키는 고양이, 갠지`는 개지`요.

시이소오 2016-08-01 19:32   좋아요 0 | URL
갠지는 개지요 ㅋ ㅋ ㅋ ㅋ ㅋ ㅋ ㅋ

cyrus 2016-08-01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버나드를 보면 정준하의 얼굴이 먼저 떠올려요. ㅎㅎㅎ

시이소오 2016-08-01 19:33   좋아요 0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닮았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8-01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오랜만이죠ㅎㅎ
시이소님 여전하셔서 넘 좋고 반가워요^^

시이소오 2016-08-01 20:41   좋아요 0 | URL
강요님, 다시 오실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엉 ~~~~
기쁨의 눈물^^

깊이에의강요 2016-08-01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를 기다려 주셨다니~~
영광인데요~^^

시이소오 2016-08-01 21:24   좋아요 0 | URL
아, 어떻게 제가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토록 잔인하시다니ㅋ ㅋ

2016-08-02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8-02 11:01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오랜만에 뵙네요. ^^ 겐지 옹 재밌는 분이죠 ㅎ ㅎ

더위에 몸 잘 챙기세요^^
 



이달의 책으로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씨리즈,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조윤호의 <나쁜 뉴스의 나라>

현기영의 <순이삼촌> 

박노자의 <주식회사 대한민국> 


을 뽑는다. 


현기영의 산문집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를 읽고선 아직도 <순이삼촌>을 읽지 않았다는 게 

떠올라 부랴부랴 읽었다. 역사를 도외시한다고 소설가들을 욕할 자격이 없다. 

쓴 것 조차 안 읽었으니. 


국방부 불온서적에 현기영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실렸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다. 

왜 저 책이 '북한 찬양'에 해당되는 건지. 아우, 쪽팔려 죽겠다. 진짜. 


  

누굴 탓 하겠는가. 

이게 다 공부 안한 내 탓이다. 































댓글(10) 먼댓글(1)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국방부 무식 인증
    from 개썅마이리딩 2016-08-01 17:58 
    시이소오님의 글에 ‘국방부 불온서적 목록’을 보면 《대학시절》이라는 책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한스 테오도르 슈토름’입니다. 《대학시절》은 ‘북한 찬양’이라는 이유로 불온서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람은 금기의 위력에 두려워도 하지 말라는 것을 기어이 하고 싶어 합니다. 저는 불온서적 목록을 처음 봤을 때, 슈토름의 책이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운 좋게 불온서적을 입수했습니다. 2013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샀습니다.
 
 
마녀고양이 2016-08-0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많은 책을 읽으시는군요.
부러운 마음과 훈훈함을 안고 돌아갑니다. ^^

시이소오 2016-08-01 11:16   좋아요 0 | URL
훈훈함을 안고 돌아가셨다니 기쁘네요 ^^ 감사합니당 ^^

비연 2016-08-01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심다... 어떻게 이리 많은 책을 한달에.
하루 한 권씩은 너끈히 읽으시는 듯... 부러부럽...

시이소오 2016-08-01 11:18   좋아요 0 | URL
아직 백수여서요. 7월달엔 더워서 산책도 못 나가는 바람에
책만 봤네요 ^^

단발머리 2016-08-01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아요~~를 할 수 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리스트~~~
시이소오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시이소오 2016-08-01 19:23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 리스트라니 기분 좋은 칭찬이세요. 감사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1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방부 불온 서적은 죄다 좋은 책이네요. 국방부는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나님도 불온서적으로 분류를 하는구나..
진짜 대다나다.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 불가다..

시이소오 2016-08-01 19:26   좋아요 0 | URL
저도 권정생 이름보고 허걱 했네요. ㅠ ㅠ

cyrus 2016-08-01 14: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더 웃긴 건 테오도르 슈토름의 <대학시절>이 ‘북한 찬양’ 불온서적이라는 점입니다. 저 소설이 1862년에 나왔습니다. 그 시절에 북한이 있었나요? ㅋㅋㅋ 제 생각으로는 국방부는 북한 출신의 소설가 허문길의 <대학시절>을 혼동한 것 같습니다.

고로 국방부는 예나 지금이나 무식합니다. 막스 베버를 칼 막스로 착각했다는 웃긴 전설도 있잖아요. 책 제대로 안 읽어본 군인들이 불온서적 목록을 급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시이소오 2016-08-01 19:28   좋아요 0 | URL
ㅋ ㅋ 그러네요. 저는 미지의 작가들인데
사이러스님도 대단하시네요.^^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3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5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22일 이승만을 총재로 모시고 이기붕을 부총재로 모시는 대한반공청년단이 발족한다. 초대 단장은 김용우였으나, 812일부터 신도환이 단장으로 취임하여 대한멸공단, 반공통일청년회, 계몽회 등 기존 9개 청년단체를 해체시키고 대한반공청년단으로 통합한다. 대한반공청년단은 200만 당원과 그 가족 약 400만 명을 선거운동에 총동원시켰다


전국 89개 시, 군 단부 조직, 서울시 종로구 단장에는 임화수, 동대문 특별단부는 이정재가 맡았다. 반공예술인단을 조직한 임화수는 여배우 성상납을 통해 경무대 경무관 곽영주와 내통하며 세를 불린다. 임화수가 지휘한 반공예술인단의 활동은 4.19 혁명 후 많은 연예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긴다. 예를 들어 자유당 지지 연설을 했던 배우 김승호의 집은 시위대에 의해 불태워졌다.

 

반공청년단과 반공예술인단 못지않은 이승만의 친위부대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대한노총이었다. 이승만은 591년 동안에 90여 개의 노조를 해산시켰다. 58년 조선방직에서 어용 노조에 반대해 새로운 노조를 결성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598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구성되었다.

 

북한은 57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는데 있어 노동력 부족이라는 난관에 직면한다. 이에 일본에 재일교포 북송을 제안한다. 213일 일본 정부가 북송 추진을 결정하자 이승만 정권은 그제서야 관제 시위에 나섰다. 대대적인 반대 시위에도 불구, 아무런 변화가 없자 이승만은 615일 대일 경제단교 및 일본왕래금지 성명을 발표한다. 아놔, 외교가 애들 장난도 아니구. 이승만의 반일 운동에 대해 서중석은 이렇게 말했다.

 

“1950년대가 특히 더 심하였지만, 민중들이 지니고 있는 강렬한 반일 감정을 이용하여 자산의 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그 권력을 강화하려는 동원정책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반공은 이승만의 정치 활동에서 뗄 수 없는 것으로, 이승만은 반공을 통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분단을 공고히 하였다. 이승만이 반공운동과 결합된 반일운동을 집요하게 일으킨 중요한 이유는 북진통일운동과 마찬가지로 반공체제와 자신의 독재 유지 또는 강화를 위해서였는데, 이승만한테 반공운동을 떠난 반일 운동은 그다지 유용한 것이 아니었다. ”

 

430일 자유당 정권의 몰락을 자초한 <경향신문> 폐간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경향신문>20만부를 발행하는 발행부수 2위의 신문이었다. (동아일보 35만부, 한국일보 16만부, 조선일보 10만 부) 자유당이 <경향신문> 폐간을 위해 적용한 법률은 미군정 법령 88였다. <경향신문>효력정치가처분신청을 냈고 서울고법 특별1부 재판장 홍일원은 <경향신문>에 승소판정을 내렸다.

 

곧장 자유당 정권은 홍일원에 대한 보복에 들어갔다. 자유당 정권은 승소 판결 이후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 “ 법원의 결정에 따라 발행허가취소처분을 철회하는 대신 동 신문의 발행을 무기정지 처분한다.”는 기상천외한 대응책을 발표한다. 경향신문은 불복, 또 한 차례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을 내지만 다른 재판부에 의해 기각된다.

 

227일 대법원은 조봉함에게 사형 판정을 내린다. 재판장, 김세원, 주심 김갑수, 간여 검사 대검의 오제도였다. 김갑수는 730일 재심청구를 기각했다. 다음날 731일 오전 11시 조봉암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다. 조봉암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이 박사는 소수가 잘 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 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밖에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 발전에 도움이 되기 바랄 뿐이다.”

 

이승만은 조문객들의 상가집 출입마저 통제했다. 연시중은 조봉암을 제거한 이승만의 음모는 매우 비열했다. 구속된 진보당 간부들에게 모진 고문을 자행하면서 살려줄 테니 조봉암이 간첩이었다는 사실만을 진술하라고 강요하면서 사건 조작을 위해 파렴치한 짓을 일삼았다고 말한다. 진보당 사건 수사관이었던 한승격은 당시 상부로부터 진보당은 없애고 죽산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사건을 엮지 않으면 네가 죽을 것이라는 협박도 받았다고 말했다. 미국과 민주당 역시 조봉암을 외면했다.

 

죽산 조봉암, 한국 진보 정치의 큰 별이 이승만이 거느리던 사법 살인마들에 의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알라딘 7월 캘린더에는 19일에 이승만 사망이 표기되어 있다. 반면 731일 운명한 죽산 조봉암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한민족 500만 명을 살해한 국제적인 전범, 이승만은 국부가 되어 있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조봉암은 외면 받고 있는 현실이라니! 후손인 우리는 죽산 조봉암의 희생을 개죽음으로 만들고 말았다. 너무 늦었으나, 죽산 조봉암 선생님의 명복을 기원한다. (오늘은 죽산 조봉암 선생님의 기일입니다. ) 




자유당은 제 4대 대통령 선거 대통령 후보에 이승만, 부통령 후보에 국회의장 이기붕을 지명한다. 반면 민주당은 신파와 구파가 갈려 조병옥과 장면의 갈등이 심화된다. 친일파 앞잡이들끼리 서로 친일파라 욕했다니. 결국 대통령 후보에 조병옥, 부통령 후보에 장면이 지명된다. 조병옥은 60129일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으로 위장 수술을 받으러 떠났다. 자유당은 5월 예정된 선거를 농번기를 피한다는 핑계로 315일 실시한다고 발효한다. 215일 밤, 조병옥은 병원에서 사망한다. 지난번 대통령 후보 신익희에 이어 두 번째로 일어난 돌연사였다.

 

 

시설은 귀속업체의 불하로부터, 원료는 원조 원면으로부터, 그리고 기업자금은 대충자금으로부터확보할 수 있었던 기업들은 권력과 선이 닿아 있으면 하루아침에 재벌이 되는 시대였다. 50년대는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에 의탁하던 시대였다. 일명 만가 융자의 시대. 이승만은 결재서류에 자기 이름의 끝 글자인 을 따오고 오케이라는 뜻의 를 붙여 만가라는 한문 사인을 하여 통과시키곤 했는데, 그야말로 완전 엿장수 마음대로였다. 브루스 커밍스에 따르면 수입대체 산업화의 최대 수혜자는 삼성 이병철이었다.


 

이승만은 이병철한테 제일제당과 제일모직과 같은 이전의 일본 기업들을 두드러지게 유리한 구매가격으로 내어주었다. 삼성은 이런 호의를 기억해두었다가 선거철에 보답하는 것이었다.....주한 미군의 존재 역시 군대식의 수입대체화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었다. 이승만 정권과 미 제8군의 젖줄을 차지하는 경쟁에서 역대의 승리자는 나중에 대한항공까지 거느리게 된 한진기업의 사장인 조중훈이었다. 1950년대 내내 그는 주한 미군과 운송계약을 맺었는데, 그 금액은 1960년에 이르러서는 연간 228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는 또한 미군으로부터 잉여의 버스도 얻어 서울과 인천 사이의 버스노선을 개설할 수 있었다.”

 

-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

 

578월부터 본격적으로 재벌 중심으로 은행 민영화가 시작되었다. 삼성은 4개 시중은행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어 한국 최초로 완전한 재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삼호그룹이 저축은행(제일은행), 대한제분이 상업은행, 개풍그룹이 서울은행을 소유,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게 된다. 재벌의 금융자본 지배는 기업의 마구잡이 인수라고 하는 문어발 작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원동력은 삼성그룹이 4개 시중은행의 최대 주주가 됨으로써 은행의 자금을 활용하여 다각화할 수 있었다는 데 있다. 그 결과 1950년대 말 삼성그룹은 상업, 조흥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최대 주주로서 산하에 16개 계열기업군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금융콘체른을 형성한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으로 전환하면서 보다 용이하게 다수의 기업들을 수중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

 

 

6.25이후 군인들 사이에 가장 널리 불린 애창곡 중 하나는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구전가요였다. 성냥공장 아가씨는 빈곤을 견디지 못해 농촌을 탈출한 젊은 여성을 상징했다.

 

금성사 구인회에 의해 1115일 국산 라디오가 처음으로 출고됐다. 415일 한국 최초의 민간상업 라디오 방송인 부산문화방송(HLKU)이 개국한다. 부산에서는 KBS를 압도하는 인기를 누렸다.

 

베스트셀러라는 말이 국내 신문에 처음 등장한 해도 1959년이었다. 1957년 한국 최초의 컬러 영화 <선화공주>가 개봉하였고, 58년 이강천의 <생명>은 한국 최초의 시네마스코프 영화였다.

 

19603. 15선거를 앞두고 반공청년단, 반공예술인단, 대한노총 뿐만 아니라 가계에서 만송족이 동원되었다. ‘만송 찬송의 지휘자는 <서울신문>이었다. <서울 신문>419일 국민들에 의해 불태워진다. 소설가 김동리와 박종화도 만송족이었다. <사상계> 4월호 <권두언>에서 장준하는 문화 예술계와 학계의 추태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부정과 불의에 항쟁은 못할망정 오히려 야합하여 춤춘 일부 종교가, 작가, 예술가, 교육가, 학자들의 추태다. 선거통에 한몫보자고 교우의 수를 팔아가면서 쪽지를 들고 돌아다니는 목사 장로 따위의 축복을 바라고 그가 높이 든 팔 아래 머리를 숙이고 ~으로 기도하는 신도들에게 신의 저주가 임할 것이다


지조없는 예술가들이여 너의 연기를 불사르라. 너의 연기는 독부의 미소 섞인 술잔이다. 부정에 반항할 줄 모르는 작가들이여 너의 붓을 꺽으라. 너희들에게 더 바랄 것이 없노라. 양의 가죽을 쓴 이리떼 같은 교육자들이여 토필을 던지고 관헌의 제복으로 갈아입거나 정당인의 탈을 쓰고 나서라. 너희들에게는 일제시의 노예근성이 부리깊이 서리어 있느니라. 지식을 팔아 영달을 꿈꾸는 학자들이여 진리의 곡성은 너희들에게 반역자란 낙인을 찍으리라.”

 

60227일 대구에서는 자유당 유세가 이었다. 이날 자유당은 이발소, 목욕탕, 음식점 등 당국의 허가를 요하는 모든 영업체들에게 휴업 명령을 내렸다. 유세장에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이튿날 역시 대구에서는 장면의 유세가 있었다. 일요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당은 교육감과 학교장들에게 지시해 학생들을 등교케 하였다. 경북고는 학기말시험, 대구고는 토끼사냥, 경북사대부고는 임시수업, 대구상고는 졸업생 송별회, 대구여고는 무용발표회 등, 이유도 가지각색이었다. 일요일 강제 등교령은 장면 유세장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28일 유세장에는 대구 유권자 29만 가운데 20만 명이 모여들었다.

 

경북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를 정치도구화 하지 말라는 구호를 외치며 가두 시위에 나섰다. 이른바 대구 학생 사건. 이후로 38일 대전, 310일 수원, 충주, 12일 부산, 청주, 13일 서울, 투표 전날인 14일 밤에는 서울, 부산, 포항, 인천, 원주, 문경 등지에서 대대적인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315일 마산시의 민주당 간부들은 경찰의 제지를 뚫고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 40% 사전투표와 3인조 공개 투표를 비롯한 자유당의 부정 선거 현장을 확인하고 1030분 선거 포기를 선언, 시위를 준비한다.

 

시위대는 수천명의 군중으로 불어나 밤 9시경에는 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파출소가 습격당하자 경찰이 발포 7명 사망하고 870명이 부상을 당했다. 마산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이기붕은 이렇게 말했다.


총은 쏘라고 준 것 아닙니까?”

 

411일 정오경 마산 앞바다에서 교복차림의 10대 소년의 시체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된다. 소년은 315일 밤 실종된 마산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주열이었다. 마산 시민들은 분노했다. 시위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시위 군중은 15만 명에 이르렀다. 자유당 정권은 이 시위를 공산분자들의 배후 조종에 의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동아일보>14일자 사설 <마산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지 말라>를 통해 이승만 정권을 규탄하고 마산시민을 옹호하였다. 강준만은 이렇게 말한다.

 

언론의 자유가 살아 있었다는 것, 바로 이 점이 이승만 시대와 훗날에 나타날 독재정권 시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었다. 만약 당시의 언론이 이후 탄생한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처럼 엄격한 통제하에 있었다면 4.19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신문에 실린 김주열의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바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7-31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3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3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5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11, 4대 민의원 총선거를 4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조봉암, 박기출, 김달호, 윤길중 등 진보당 주요 간부 10여 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된다. 정부는 재판도 열리기 전인 225일 진보당의 등록을 취소시킨다. 왜 조봉암 이하 진보당원들은 체포되야 했을까? 조봉암이 주장한 평화통일론때문이었다. 북한괴뢰가 사용하는 문구이니 국가보안법에 저촉된다는 이유로.

 

재판이 점점 진보당 측에 유리하게 돌아가자 검찰은 뒤집기를 시도한다. ‘간첩 양명산카드. 조봉암이 간첩 양명산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 훗날 검찰의 조작으로 밝혀졌다.



 

512, 4대 민의원 총선거는 진보당 죽이기이후에 치러졌다. 자유당의 정치자금 조달 방식은 이제 폭력 조직과의 유착 형태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박태순과 김동춘은 이를 관료 폭력 독점자본의 유착이라고 부른다.

 

“‘폭력 주식회사’ - 이것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소설가가 착안한 소설 제목이 아니라 50년대 남한 사회에 실제로 존재했던 막강한 이득 창출의 사업 조직체였다. 연희전문 출신의 홍영철이 이끌었던 이 회사는 문자 그대로 폭력을 자원으로 삼고 있었던 바, 미군의 불하물자를 주먹의 힘으로 독점 입찰하여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하지만 그 수익의 8할 이상은 자유당의 정치자금과 안 되는 일이 없고 못하는 일이 없다던 막강한 삼권부인 경찰, 특무대, 헌병대 그리고 그 외곽에 군웅 할거하는 각종 정치 폭력집단들에게 분배됨으로써 나름대로 관료 폭력 독점자본의 유착이라 할 수 있는 것을 형성시켜 나갔다.”

 

조봉암은 721심 재판에서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은 가운데 징역 5년을 언도받는다. 판결뒤 이기붕 수하의 반공청년단 수백 명이 법원청사로 들어와 난동을 부린다. 이승만은 1심 판결이 내려지자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러한 판사들을 처리하는 방법은 없는가라고 분노하였다. 겁을 먹은 검사 조인구는 2t심 재판에서 조봉암에게 사형을 구형한다.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대한민국 법대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가인 김병로는 조봉암 1심 판결 뒤 벌어진 폭력배들의 난동에 대해 정치깡패들과 그 배후자들을 통렬히 비난했다. “법관을 가리켜 용공 판사운운한 것은 법관 모욕죄 가운데서도 가장 악질에 속하며 그들 행동은 살인 강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라며 분노했다. 김병로는 이승만에 대해 옛날 군주와도 달리 법에 대한 관념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함석헌은 <사상계> 8월호에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88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이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부분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가 일본에서는 해방이 됐다 할 수 있으나 참 해방은 조금도 된 것 없다. 도리어 전보다 더 참혹한 것은 전에 상전이 하나였던 대신 지금은 둘 셋이다. 남한은 북한을 쏘련 중공의 꼭두각시라 하고 북한은 남한을 미국의 꼭두각시라 하니 있는 것은 꼭두각시뿐이지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나라 없는 백성이다. 6.25는 꼭두각시의 노름이었다. 민중의 시대에 민중이 살았어야 할 터인데 민중이 죽었으니 남의 꼭두각시밖에 될 것 없지 않은가. 잘못이 애당초 전주 이씨에서 시작됐다. ”

 

사상계는 이 필화사건으로 인해 더욱 인기가 치솟아 59년에 이르러선 판매 부수가 5~ 8만으로 뛰어오른다. 당시 최대 신문의 발행 부수가 20만 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기록이었다.



 

1118, 자유당은 간첩 색출을 명분으로 하는 전문 340조 부칙 2조로 구성된 신 국가보안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인권 탄압의 위법 조항 때문에 야당과 언론인, 법조인들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당은 1219일 법사위에서 10명만 참석한 채, 신국가보안법을 날치기 통과시킨다. 

 

야당의원들이 무기한 농성에 들어가자 자유당은 전국의 무술 경찰관 300명을 임시국회 무술 경위로 특채해 급조, 농성중인 야당의원들을 끌어내 지하실에 감금한다. 1224일 벌어진 일이라 해서 이를 ‘2.4 국가보안법 파동이라 부르게 된다. 자유당은 야당의 저지로 통과시킬 수 없었던 27개 의안을 무더기 통과시킨다. 지방자체단체의 장을 선거제에서 임명제로 개정, 이후 도지사, 시장, 군수, 면장, 동장 등 말단까지 모두 자유당원만을 임명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7-30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31 0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7-30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검찰의 역사는 참 뿌리깊네요.... 우리 사회의 많은 병폐가 일본제국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시이소오 2016-07-30 18:41   좋아요 2 | URL
독재정귄에서 견찰들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거짓판결을 내렸다면 오늘날 견찰은 돈에 눈이 뒤집혀 스스로 개새키가 됐다는 차이점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