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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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 총격에 의한 미군의 한국인 살해가 가장 빈번했던 달은 642월이었다.

26, 미군은 토끼 사냥을 나간 소년들을 사살한다. 4,6,9,17,18, 19일에 미군의 총질은 계속된다.

박정희에게 수출제일주의는 일종의 신앙이었다. 당시 경제기획원 운영차관보였던 이선희는 이렇게 증언했다.

 

차관 특혜, 세제 특혜, 금융 특혜, 수출원자재 특혜, 역금리 특혜 등 모든 특혜를 부여함으로써 인위적인 수출 진흥이 이루어졌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 수출 진흥에 총동원되었고, 엄청난 특혜가 주어졌다.”

 

8월 말 금성방직, 대한제분, 삼성물산 등 9개 재벌기업에 177억 원이 집중 대출되었다. 이는 당시 화폐 발행고의 82%, 통화량의 43%, 일반 금융기관 대출 잔액의 40%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국회의원 유창열은 이른바 3() 폭리 사건을 폭로한다. 밀가루, 설탕, 시멘트 등 이른바 3분 산업과 관련된 기업들이 매점매석으로 가격을 조작하고 세금 포탈을 통해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것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공화당이 거액의 정치 자금을 제공받았다는 폭로였다. 이 사건엔 삼성그룹의 제일제당이 연루돼 있었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박정희는 63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비리에 215천 톤의 밀가루를 들여온다. 판매 대금은 선거 자금으로 활용했다. 그때 들여온 밀가루 중 일부가 업자들에게 흘러 들어가 ‘3분 폭리사건이 벌어진 것. 일부는 수재민 구호라는 이름으로 유권자들에게 공짜로 제공되었다. 대선 기간 중 때 아닌 밀가루 잔치판이 벌어졌고, 박정희는 밀가루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선거 직전엔 태풍 셜리의 피해를 입은 남부 지역에 집중 살포되기도 했다. 아 놔, 밀가루 뿌려 대통령 된 거임??

 

4.19 2주년을 맞아 박정희는 다음과 같은 기념사를 했다.

 

“4. 19 의거는 국민의 용기와 지혜와 양식의 발전이었다. 도탄에 빠진 민생과 각박한 민심도 아랑곳없이 불법과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던 민족의 폭도들을 시대적 양심으로 추방한 민족 사상의 불멸의 금자탑이었다. ....”

 

여기서 잠깐, 이승만을 국부라 부르는 것들은 박정희가 이승만을 불법과 폭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던 민족의 폭도라 부른 것을 부정하는 건가? 박근혜는 이승만을 국부로 칭송하면서 아버지를 부정하는 건가? 새누리당과 뉴라이트는 박정희를 부정하는 건가? 이승만이 국부면 이승만을 민족의 폭도라 부른 박정희는 빨갱인가?

 

박정희 정권은 3월 들어 한일회담을 재개하면서 ‘3월 타결, 4월 조인, 5월 비준방침을 정한다. 야당과 시민들은 반발한다.

 

322일 장준하 등이 연사로 나선 서울 장충단공원 유세엔 7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이 뜨거운 열기는 이틀 후 3.24 데모를 촉발시킨다.

 

324, 4. 19 이래 최대의 학생 시위가 서울에서 발생한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 등 5천여 명이 모여 한일 굴욕외교 반대를 외치며 가두로 진출한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대되어 고등학생 및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한다. 미국은 한국의 반일 학생 운동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비난한다.

 

야당 의원 김준연은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13천만 달러를 이미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42, “선거자금으로 박정희, 김종필 라인은 2천만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김준연은 얼마 후 구속된다.

 

박정희 정권은 무상공여 3억 달러, 유상공여 2억 달러, 상업 차관 1억 달러를 골자로 한 김종필 오히라 메모를 공개한다. 메모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시위는 더욱 격렬해진다.

 

410일 서울대, 411일 고려대와 연세대에 각각 배달된 정체불명의 소포엔 불온문서와 100달러가 들어 있었다. 학생들은 이 사실을 폭로한다. 중앙정보부가 학생 회유 공작에 3천만원을 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학생들은 학생 사찰을 즉각 중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학생 정보 조직원 YTP(Youth Thought Party), 일명 창사회 등 사이비 학생조직들을 폭로한다. YTP는 중정의 후원과 지휘 아래 학원 사찰을 담당하는 비밀 폭력단체였다.

 

511, 방탄 내각으로 불리던 최두선 내각이 총 사퇴하고 돌격 내각이라 할 정일권 내각이 들어선다.

 

520, 동숭동 서울 문리대 교정에서 3천여 명의 대학생과 1천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이 열렸다. 서울대 미학과 4학년 김지하가 작성하고 정치학과 4학년 송철원이 낭독한 조사 시체여가 울려퍼졌다.

 

521일 새벽 무장한 육군 공수단 소속 군인 13명이 법원에 난입한다. 이들은 전날 밤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한 영장담당판사 자택으로 몰려가 수류탄을 터뜨리겠다며 영장발부를 강요한다.

 

523,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낭독한 서울대 학생 송철원이 청년 4명에게 산 속 외딴 건물로 끌려가 2시간 동안 구타당하고 담뱃불로 지져지는 등 심한 린치를 당했다고 폭로한다.

 

한일회담 반대운동은 5.16에 대한 부정, 박정권 퇴진요구로까지 번져졌다. 524, 한일굴욕회담반대 학생총연합회는 <5.16을 비판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화폐개혁, 환율개정, 농촌 고리채 정리 등 졸렬 무정견한 경제정책과 새나라, 빠찡꼬, 오토바이, 교포재산반입, 증권파동 등 갖가지 부정사건으로 총파탄에 이르는 국민 경제를 일본 자본주의자의 더러운 손에 주무르려 발악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자의 더러운 배설물로 한국 경제가 자립된다는 거짓말을 강변하고 있다. 이제 5월 쿠데타 정부는 자기 내부에 자기혁명을 가능케했던 부패, 무능, 독선, 부정 등 온갖 독소가 터질 때를 기다리며 화농해있다. 반민족적 탄압, 기만, 부정, 무능, 부패 정부에 양심적 국민은 무엇을 할 것인가.”

 

63일 전국적으로 1만 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한다. 오후 4시경, 경찰 백차와 트럭을 탈취한 시위대는 청와대 앞 최후 저지선까지 위협한다. 군사정권은 940분을 기해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한다.



 

6.3 사태 이후 군사정권은 학생 데모가 공산주의 세력의 사주를 받았다며 반국가단체 불꽃회학생들을 구속한다. 역시나 조작극이었지만 불꽃회 사건은 6.3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박정권은 언론의 굶주림 보도 사건’, ‘앵무새 사건등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에 한계를 느꼈는지 언론을 통제하기 위한 언론윤리위원회법을 국회에 상정한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대구매일신문>만이 끝까지 반대한다. 박정희는 유성에서 언론계 대표들과 회합을 갖는다. 이른바 유성 타협’. 타협이라기보단 언론의 굴복이었다.

 

언론윤리위원회법을 둘러싸고 윤보선파와 유진산파의 갈등이 심화된다.

 

814일 중정은 이른바 인혁당 사건을 발표한다. 중정 김형욱이 조작한 사건이다. 오죽하면 김병리, 장원찬, 최대현 등 사건 담당 검사 3명이 기소할 수 없다며 사표까지 제출했을까. 박정권은 힘으로 밀어붙여 12명의 피고에 대해 대법원에서 최고 3년에서 1년까지 형을 선고받게 하는 데 성공한다. 아무래도 박정희는 앙심이 남았나보다. 박정희는 10년 뒤 인혁당 사건 시즌 2’로 무고한 시민 8명을 빨갱이로 몰아 사형에 처한다. 사형 선고가 떨어진지 불과 18시간 만에.


 

문화방송 사장 황용주는 월간 <세대> 11월호에 통일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야당 의원들이 이를 문제시삼자 황용주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김형욱은 황용주를 구속한다. 박정희는 왜 황용주를 토사구팽했을까? 64년 중 박정희의 공보비서관 박상길이 양민학살진상 규명을 건의했을 때, 박정희는 이런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나도 빨갱이로 몰리는 판에 내가 그런 걸 손댈 수 없지 않느냐.”

 

박정희는 오히려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빨갱이로 몰아 구속했다. (이후 1987년까지 민간인 학살 문제는 제대로 알려지지조차 않았다.) 결국 민간인 학살 진상 규명이 늦어진 것 역시도 한 명의 남로당 프락치 변절자의 레드 콤플렉스 때문이었나?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인 리영희는 1121일 자 기사에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안건을 아시아, 아프리카회의에서 검토 중이라는 내용을 실었다고 반공법 혐의로 구속 기소된다. 이게 왜 구속 사유가 될까? 북한이 대한민국과 동격으로 유엔에 초대되거나 동시가입이 제안되는 따위의 이야기는 남의 나라에서 한 이야기일지라도 적성국가, 단체 고무찬양이 된다는 것이다. 같이 구속되었던 편집국장 선우휘는 무혐의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난 반면, 리영희는 두 달간 감옥 생활을 해야 했다.

 

927일에 창간된 <주간한국>은 대성공을 거둔다. 당시 최고 부수 일간지가 20만 부도 못 미칠 당시 <주간한국>435천부를 팔아치웠다.

 

59, ‘라디오서울’RSB이 개국한다. 915일 사장에 홍진기가 취임함으로써 라디오 서울은 삼성 계열사로 편입, 나중에 동양방송’(TBC)으로 개칭한다.

 

64년은 라디오 DJ가 등장한 최초의 해다. 64년 동아방송의 최동욱에 이어 66년 문화방송 이종환이 등장함으로써 라디오는 DJ 전성시대를 맞는다.

 

삼성은 라디오 방송에 만족하지 않고 127일 한국 최초의 민간 상업 TV 방송인 동양TV(DTV)를 개국한다. 50년대 후반부터 부산지역에선 일본 TV 시청이 유행했다. DTV는 채널 7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NHK가 채널 7을 사용하고 있었다. NHKDTV의 채널이 겹치자 부산시청자들이 반발, DTV는 채널 9를 사용하게 된다. 부산과 영남지역의 보수화는 일본 극우 TV 방송을 보던 때부터 연유한 것일까. DTV는 곧 TBC로 명칭을 바꾼다. TBC가 삼성거였다니. 전혀 몰랐다.

 

64년 최고 흥행 영화는 김기덕 감독,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이었다. 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영화의 주제가였던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도 인기를 끌었다.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던 신성일과 엄앵란은 그해 11월 결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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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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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부정부패로 끌어모은 더러운 돈으로 박정희는 민주 공화당을 창당한다. 박정희는 쿠데타 세력인 송요찬, 유원식, 김동하 등이 공화당을 비난하자, 218일 눈물을 흘리며 대통령 출마를 포기하겠다고 밝힌다.

 

박정희는 김재춘을 중정부장으로 앉힌 뒤 이른바 알래스카 토벌작전을 벌인다. 김동하를 비롯한 함경도 출신들 군인들이 쿠데타를 음모했다는 것. 역시나 조작이었다.

 

313국민자유연맹이라는 유령 단체가 쿠데타 음모를 처벌하라와 같은 삐라를 살포하면서 데모를 한다. 수방사 장교 80명 등은 민정 불참선언 철회와 군정 연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이는 박정희 경호실에서 조직한 것이었다.

 

박정희는 316일 오후 2시 군정 4년 연장을 전격적으로 제의한 뒤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효한다.

 

322일 윤보선 등은 백조그릴에서 군정 연장에 반대하는 민주구국선언문을 발표한다.

 

육사 11, 전두환 노태우 등은 친위 쿠데타를 계획한다. 박정희가 11기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지만 김재춘은 11기를 봐달라며 박정희에게 부탁한다. 이에 김재춘 대신 김형욱이 중앙정보부장으로 교체된다.

 

88일 송요찬은 <동아일보>를 통해 박정희가 380억 원을 부정 대출 증권파동을 일으켰다는 폭탄 선언을 한다. 박정희는 곧장 보복한다. 11일 송요찬을 살인 및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한 것. 830일 퇴역식을 가진 박정희는 다음날 31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한다.

 

박정희를 설득해 김재춘이 창당한 자민당은 설 자리를 잃게 되지만 93일 자유민주당(자민당) 창당대회를 개최한다. 박정희는 석방 11일 만에 자민당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된 송요찬을 재구속한다.

 

95, 이후락에게 납치된 김재춘은 가족과 작별인사조차 못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진다.

 

개발 독재 지지자인 미 하버드대 교수 새무얼 헌팅턴은 그의 저서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정치질서>에서 민주공화당을 찬양한다.

 

박정희는 8기 세력이 커지자 11기 세력을 정치군인으로 키운다. 민정 불참 선언을 한 직후 박정희는 전두환, 노태우, 권익현, 손영길, 박갑룡 등에게 자신을 도와달라며 조직 결성을 지시한다. 그렇게 해서 결성된 조직이 하나회. 전두환 그룹은 전부 다 영남출신이었다. 이들은 16년 후 또 다른 쿠데타를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


10.15 대선을 앞두고 민정당은 윤보선을, 국민의 당은 허정을 대통령 후보로 결정한다. 그밖에도 여러 명의 야당 후보들이 난립했다.




 

922일 여수 유세에서 윤보선 찬조연사 윤재술은 이곳은 여순반란사건이란 핏자국이 묻은 곳이다. 그 사건을 만들어 낸 장본인들이 죽었느냐, 살았느냐? 살았다면 대한민국에서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를 여러분은 아는가, 모르는가? 여러분이 모른다면 저 종고산은 알 것이다.”라고 말했다. 윤재술은 연단 뒤쪽 우뚝 서 있는 야산을 가리키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종고산아, 너는 알고 있다, 종고산아 말해다오, 너는 분명 알고 있다, 종고산아 말해다오

 

윤재술의 종고산 타령에 대해 무슨 말인지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여순 사건때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했던 박정희의 빨갱이 경력을 직접 말 못하고 애꿎은 종고산만 부르짖은 것)

 

윤보선은 직접적으로 여순반란사건을 물고 늘어진다. 박정희는 영남지역에서 지역감정을 선동한다. 대구 수성천변 유세에서 찬조연사로 나온 이효상은 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이며 이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으로 천년만년의 임금님을 모시자고 선동한다.

 

허정이 후보를 사퇴하고 선거는 윤보선과 박정희의 2파전으로 굳어진다. 윤보선은 색깔 공세에만 치중했을 뿐 정책 경쟁에선 박정희에게 밀리고 있었다.

 

투표가 끝나고 개표가 시작되었다. 개표 초반엔 윤보선이 앞선다. 한때 23만 표차로 박정희를 앞서기도 했다. 최종 개표 결과는 박정희 4722천 표, 윤보선 4546천 표로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불과 15만 표 차이. 장리석 198천 표, 오재영 408천 표, 변영태 216천 표였다. 어느 한 후보라도 윤보선과 합세했더라면 윤보선이 당선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 후보가 뒤로 처졌을 때, 쿠데타 세력들은 개표를 중단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군을 출동시켜 비상사태를 만들어 선거무효를 선언케 해야 한다는 이도 있었다. 중앙정보부 서울분실장 전재구는 선거를 전복할 만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박정희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만 승리했다. 영남에서의 표 차이는 66만 표였고, 호남에서의 표 차이는 35만 표였다. 진보계는 윤보선이 아니라 박정희에게 투표했다. 진보계 인사들은 앞으로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것이었다.

 

박정희와 방일영은 기생파티에서는 죽이 잘 맞는 사이였다. 훗날 카지노 황제 전락원은 방일영을 가리켜 권번 출신 기생들의 머리를 제일 많이 얹어준 분이라고 칭송했다.

 

11. 26 총선에서 공화당은 전체 의석 175석 가운데 지역구 86, 전국구 24석을 보태 110석을 얻는 압승을 거둔다. 김종필은 122일 공화당 의장 자리로 복귀한다.

 

1217일 박정희는 제 5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군사정권은 경제사절단을 서독에 파견해 차관 제공을 요청한다. 지급보증이 문제였는데, 인력 수출로 해결된다. 인력 수출 직종은 광부와 간호사였다.

 

63년 이만희가 연출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다. 신상옥 감독의 <>, 박상호 감독의 <또순이>도 인기를 끌었다. 김수용 감독,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청춘교실>이후 많은 청춘 영화가 양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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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8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8-08 11:35   좋아요 2 | URL
맞는 말씀입니다. 박정희 때문에 먹고 살만 했다는거, 무식한 소리죠.

아빠 독재하는거만 본 사람이 민주주의가 뭔지 알겠어요? 21세기에도 지아빠처럼 하려드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ㅠ ㅠ

yamoo 2016-08-08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의 한국 현대사 산책 읽으시는 모양입니다. 이거 분량이 상당하여 읽기가 거시기한거 같아 패쑤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거 토론 도서로 읽은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재밌다고요. 현대사의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알 수 있어 유익했다는데...전, 언제 읽을지 기약이 없네요..

시이소오 2016-08-08 15:09   좋아요 0 | URL
이게 읽다보면 은근 빠져듭니다. 야무님도 첫권 읽으시면 역사책이라기보다 만화책처럼 느껴지실거에요 ^^

기억의집 2016-08-0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두환과 노태우가 쿠데타 전적이 있었군요. 그럼 전과 노가 몇살 때인가요?! 일찍 권력의 맛을 알기 시작했네요. 전두환이 레이건에게 집권을 위한 지지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하던데. 김영삼이 외환위기를 가져오긴 했지만 하나회 싹뚝 자른거나 실명제는 업적이라 할만 하네요.

시이소오 2016-08-08 19:16   좋아요 0 | URL
당시 군인들이 다들 어렸네요. 20대에 별 달고 ㅋ 김영삼 하나회 하나는 제대로 했죠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08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이 속도감 있게 글을 잘 쓰시죠. 이 양반의 장점은 팩트만 가지고 대상을 공격한다는 점. 그건 충분히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시이소오 2016-08-08 19:20   좋아요 0 | URL
전공이 신문방송이어서 그런지 언론을 다룰 때 속도가 처진다는 단점이 있네요 ㅋ
 
L의 운동화
김숨 지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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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소설은 발로 쓴 듯해서 좋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머리로만 글을 쓰는 작가들이 한 트럭이다. (이 트럭이 쓰레기 매립장으로 갔으면) 소설의 제재, 혹은 소설의 오브제는 이한열의 운동화다. 잭 하트의 <소설보다 더 재밌는 논픽션 쓰기>의 영향 탓일까? 이 소설은 픽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논픽션처럼 느껴진다. 소설은 이한열의 운동화 복원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이한열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복원가와 주변 동료 복원가들이 주된 등장인물이다.

 

복원가에게 이한열의 운동화는 물질이다. 그리고 비물질이다.

 

물질로서 ‘L의 운동화브랜드는 타이거였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타이거안 신은 사람도 있던가? 타이거를 생산했던 삼화고무는 1992년 망했다.

 

한편 이한열의 운동화는 물질 그 이상이다. 그렇다고 이한열의 운동화가 이한열을 뛰어 넘어서도 안 된다.

 

여러모로 아쉬운 소설이다. 어떤 퍼즐 판에 엉뚱한 퍼즐을 맞추려는 느낌? 하고 싶은 말들은 많은데 유기적으로 통합되었다거나 통일되었다는 느낌은 없다. 주인공 복원가의 동료인 여성 복원가는 그야말로 폭망캐릭터다. 청승맞고, 처량하고, 짜증나고, 주먹을 부른다. 작가가 왜 미친 년을 넣었는지가 눈에 고스란히 훤히 드러나, 마치 작가의 알몸을 본 듯하여 민망할 정도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있다.

 

돌토는 죄가 어느 순간 마비되는 것이라고 했어요.”

마비요?”

마비요. 죄가 어느 순간 마비되는 것이라고......”

 

 

마비시키는 문학이 있고, 각성시키는 문학이 있다. 분명 김숨의 <L의 운동화>는 후자에 속한다. 일단 작은 불이라도 불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 <L의 운동화>는 횃불 같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촛불과도 같은 소설이다. 작은 촛불일지언정 여럿이 드는 촛불은 결코 작지 않다. 여럿이 드는 촛불, '그 속에는 타다가 또 타는 우리의 삶이 계속될' 것이다.





  

메모한 문장들 

 

 

마크 퀸은 자화상들을 자신의 피로 만들었다. 그는 5년 동안 꾸준히 피를 뽑아 인간의 총 혈액량인 4.5 리터가 모아지면 그것으로 자화상 <셸프(Self>를 제작했다. 자신의 두상을 모형으로 한 석고 거푸집에 피를 부은 뒤 응고시켜 완성한 그 작품들은, 영하 9도 내외의 특수 냉동고 안에서만 형태 유지가 가능한 운명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1996년 제작한 두 번째 <셸프>는 영국의 유명한 수집가 찰스 사치가 소장했는데, 청소부가 그만 실수로 냉동고의 전원 코드를 뽑는 바람에 피가 녹아내려 훼손되었다. (그 작품은 녹았다가 응고된 흔적들을 아물지 않은 흉터처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작품은 어이없는 실수로 인한 훼손을 통해 작가가 의도한 주제인 생명의 나약함과 유한성을 확실히 증명해 보였다. (11)




 

탯줄, 코끼리의 배설물, 남자의 정액, 타액, 죽은 나비, 살아 있는 파리와 피를 흘리는 소의 머리가 미술 작품의 재료로 쓰이는 시대가 아닌가.


이탈리아 작가 피에로 만초니는 자신의 똥을 재료로, <예술가의 똥>이란 작품 90개를 만들었다. ‘예술가의 똥, 정량 30g, 원상태로 보존. 19615월에 생산 포장이라는 문구가 인쇄된 라벨을 4개 국어로 써서 붙이고 납땜으로 밀폐시킨 작품으로, 그는 의미 부여를 중요시하는 사회를 향해 의미 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의미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그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17)



 

재료는 그만한 생이 있다고 말한 루이스 부르주아는 내가 개인적으로 흠모하는 작가다. 1997년 이후 칩거를 선택한 95세의 그녀를 <지큐 코리아>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예술이 자신에게는 자기만의 정신분석학이라고 말하면서 정작 자화상 작업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기자가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 ‘I, me, myself‘라는 말은 소름 끼친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라는 문구로 유명한 보이스는, 19651126일 사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기 전 이색 퍼포먼스를 펼쳤다. 꿀과 금을 얼굴에 칠하고, 품에 안은 죽은 토끼에게 그림을 설명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그의 예술 세계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완고한 이성주의로 무장한 인간보다 토끼가 더 잘 이해한다. 나는 토끼에게 그림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림을 그저 훑어보는 일이라고 말했다.” (33)



 

상징 기능의 오브제는 살바도르 달리가 발명한 것으로, 현실이 아니라 꿈에 등장하거나 정신 착란의 산물과도 같은 사물처럼 인간의 무의식에 호소하는 오브제다.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자리에 버젓이 놓여 있는 사물처럼.


융의 저서 <무의식에 대한 접근>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른다. 남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은 날개도, 부리도 없으면서 자신들이 붉은 아라라 앵무새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황당한 주장을 두고 융은, 미개인 세계에서는 합리적인 세계와 다르게 사물과 사물 사이에 분명한 한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거의 기량에 탄복한 로댕이 조수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루마니아 출신 조각가 브랑쿠시. 그는 몬드리안과 마찬가지로 모든 생명은 그 본질로 축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축소를 통해 진정한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티베트 최고의 성자로 불리는 밀라레파와 노자 사상에 매료된 그는 절제와 생략을 통해 추상 조각의 세계를 열었다. 인체 일부 중에서도 특히 머리를 단순화한 그의 미학은 사물 조각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낳았다.


브랑쿠시의 <잠이 든 뮤즈>가 그 안에 있는 것 같았어요. L의 운동화 속에요.” (78)



 

가장 근래의 복원 작업은 복원 전문가인 피닌브라빌라 바르칠론 박사가 진행했는데, 그는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3년 동안 <최후의 만찬>을 관찰하고, 현미경을 이용해 40배로 확대 조사했다. 그는 가장 먼저 500년 동안 켜켜이 낀 때와 이전의 복원 흔적을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특수 제조한 용제를 그림에 바른 뒤, 그 용제가 애초의 다빈치가 칠한 물감에까지 도달하기 전에 재빨리 닦아 냈다. 그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자 마침내 다빈치가 사용한 밝은 색채가 살아났다. 흐릿해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던 사물들이 선명해지면서 백랍 접시에 반사된 레몬 조작인 것으로 밝혀졌다.

 

선은 절대 분노로부터 오지 않는다. 호의는 언제나 분노를 이긴다.” 그로닝의 공판에 참석한 증인 다섯 명 중 한 명인, 81세의 아우슈비츠 생존자는 그렇게 말했다. 아우슈비츠에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인체 실험을 겪은 그 생존자는 자신이 증인으로 참석한 법정에서 돌연 피고인인 그로닝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그로닝은 자신에게 다가온 생존자의 뺨에 키스를 하고, 두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165)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죗값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아.”

죗값 보존의 법칙이요?”

최가 샌드위치를 입으로 가져가며 강 선배에게 묻는다.

아침에 그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 치러야 하는 죗값이 100그램일 경우, 100그램에서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말이야. 단지 죗값을 치러야 하는 기간이 연장되는 것뿐이지,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거든......당장은 아니더라도 죗값을 치러야 하는 때가 언젠가는 오는 것 같아. 죗값이 100그램일 경우 20그램밖에 치르지 않았다면 언제가 80그램을 치러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오는 게 아닌가 싶어.”

 

최소 6개월.........삼계탕 용으로 쓰이는 영계의 경우 최소 100일은 자라야 하는 닭들을 49일 만에 도축하기 위해 속성으로 키운다지요. A4 용지보다 면적이 작아 날갯짓조차 할 수 없는 우리 속에 가두고 24시간 조명 불빛을 쏘아 댄대요. 그래야 인간이 더 많은 닭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그렇게 키운 닭으로 몸보신을 하겠다고 인삼과 한약재를 넣고 삼계탕을 끓여 먹고요.”

 

소크라고....SOC. 북유럽이라든가......맹수가 공격을 하면, 암소와 송아지들을 보호하기 위해 튼튼한 뿔을 가진 젊은 소 떼가 뿔을 바깥 방향으로 하고 울타리처럼 빙 둘러싸는 것을 소크라고 한다네요. 시위 현장에서 젊은 소 떼 역할을 하는 남학생들을 소크라고 불렀어요. 학교마다 지칭하는 단어가 달랐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도 얼마전에야 알았어요. 독일에서 가장 먼저 시행하고, 그 후 유럽의 여러 나라가 서머타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87년과 882년 동안 실시되었다가 89년에 페지되었고요.,”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 <무제 완벽한 여인들>이 떠오른다. 토레스는 대량 생산된, 쌍둥이처럼 똑같은 두 개의 벽 시계를 벽에 나란히 걸어 놓았다. 두 시계는 처음에는 똑같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차이가 난다. 시계에 내장된 부품들 또한 똑같지만, 미세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시계의 시간은 점점 더 어긋나, 마침내 어느 날 한 시계가 다른 시계보다 먼저 멋는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시간이 동일하게, 1초의 어긋남 없이 흐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제처럼. (186)

 

이제 촛불을 켜야 할 때입니다.”

그것도 L의 일기에 있는 문장인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느껴진다.

촛불은 우리를 조용히 의자에 앉게 합니다. 그곳에는 타다가 또 타는 우리의 삶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 아프면 저녁에 신발을 바꾸어 신는 의식에 참가해야 한다. 이런 대목에서 개인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 한 번에 자기 발에 맞는 신발 한 짝을 골라야 한다. 한 번 고르면 더 이상 교환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수용소 생활에서 신발이 대수롭지 않은 요소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죽음은 신발에서 시작된다.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누보레알리즘의 중심인물이자, 잇 아트(eat art)의 창시자인 다니엘 스포에리는, 파리의 한 갤러리에서 재미있는 전시를 기획합니다. 전시장을 레스토랑으로 바꾸어 버리는 기획으로,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평론가들에게 서빙을 하게 합니다. 만찬에 초대받은 이들이 식사를 마친 뒤, 먹다 남긴 음식이 담겨 있거나, 음식물 흔적이 묻어 있는 식기류들을 식탁 위에 고정해 작품을 완성시킵니다.“ (228)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작품의 제목은 유명한 <헝가리식 식사>, 평론가 장 자크 레베크가 196339일에 한 식사의 기록입니다. .......식사가 끝나고 남은 음식들과 접시, 술잔 등이 널려 있는 식탁의 풍경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덫으로 잡듯이 포착해 보여 줍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우연한 것들, 계획에도 없던 것들, 지나가는 것들, 지나가지만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들이 우리의 삼을 결정짓고는 합니다. ”

 

나는 그 책에 간음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돌토는 죄가 어느 순간 마비되는 것이라고 했어요.”

마비요?”

마비요. 죄가 어느 순간 마비되는 것이라고......”

 

하루는 할머니하고 막걸리를 마시다가 불쑥 4.3 사건에 대해 여쭈어 보았어요. 4.3 사건을 실제로 겪은 분으로부터 생생한 증언을 듣고 싶었거든요. .....운동장 같은 곳에 마을 사람들을 죄다 모아 놓고는 이등분하듯 선을 하나 긋더니, 그 선을 중심으로, 서고 싶은 곳으로 가서 서라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선 이쪽으로 가서 선 사람들은 살고 저쪽으로 가서 선 사람들은 죽었다네요. .....친정 언니가 오라니까 멋모르고 건너갔다가요. 친정 언니의 손짓이 저승에 함께 가자고 부르는 손짓인 줄도 모르고 건너갔다가요.

 

아직까지는 쉰한 분이 살아 계시지만 다들 연세가 있으시니까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겠지요? 한 분, 한 분 그렇게 세상을 떠나, 한 분밖에 살아 계시지 않은 날이 오겠지요? 단 한 분 밖에 살아 계시지 않는 날이....그리고 결국 단 한 분도 살아 계시지 않는 날이 오겠지요?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누가 증언을 할까요? “

 

젖가슴, , 시선, 목소리 같은 충동의 대상들의 공통점은 다 떨어져 나간 대상들이라던 이야기도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애초에 엄마의 젖가슴은 아이의 것이지만, 어느 순간 떨어져 나간 것이다. 아이에게서 떨어져 나가면서 젖가슴은 구멍이 된다. 누군가의 시선이 떨어져 나갔을 때 그 시선은 떨어져 나간 시선으로, 구멍이 된다. 프로이트는 잃어버린 대상은 영원히 잃어버린 대상으로 보았다. 떨어져 나간 대상은 영원히 떨어져 나간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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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 2016-08-0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숨 작가를, 이름만 들어봤지 한번도 읽지않았는데, 이런 질문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김숨의 이 소설이, 이한열의 운동화를 복원하는 과정을(이게 실제로 행해진 사실인지는?)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논픽션에 가깝다는 말씀이신거죠?
그리고, 이 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이소오님께서 인용하신 여러 사진자료와 글들을 접하고 보니, 이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된 내용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서, 김숨의 이 소설은 발로 쓴(작가가 직접 현장취재에 나선) 것이다, 라는 말씀에, 조금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딴지는 절대 아니고요, 정말 궁금해서요^^

시이소오 2016-08-07 14:21   좋아요 0 | URL
자료조사와 취재없이 쓴다는게 불가능한 소설이거든요

김숨이 인용한 미술작품들과 글은 전부 다 어느정도 의미가 있긴하지만 발로 쓴것과는 무관합니다.

그 부분은 머리로 썼어요 ㅎ
직접 읽어보시면 느낌이 확 오실듯. 이래저래 쓸모없는 독후감이 되버렸군요. ^^;


stella.K 2016-08-0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논픽션이요.
어설프고 완성도 낮은 픽션 보다 차라리 처절한 논픽션이 훨씬 더 가치가 있는 건데.
울나라 평론가들이 지네들 밥그릇 지킬려고 쓰레기 같은 소설도 좋아라 하는 통에
논픽션 또는 비소설이 자라질 못한 거죠.
논픽션까지 확장하면 평론가들도 피곤해지거든요.
문학을 보는 지평이 넓어져야 하는데 너무 한정적여요.


요즘 작가들 소설 잘 안 읽는데 이 사람의 소설은 함 읽어봐야겠군요.
<한 명>이란 소설이 있어서 읽어 볼까 생각중이었는데
마비 시키는 문학과 각성시키는 문학이라. 음...

시이소오 2016-08-07 14:30   좋아요 0 | URL
미국은 논픽션이 픽션보다 인기가 많아서 픽션을 논픽션인양 사기치는 일도 자주 벌어지기도 하는데 한국은 그에비해 이상할 정도로 논픽션이 인기가 없네요. 기레기들이 거지들 마냥 밥만 얻어처 먹을줄만 알지, 글을 못 써서 그럴수도. ㅋ

samadhi(眞我) 2016-08-07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숨 남편의 글을 읽었어요. 한 때 우리 아이 이름을 숨이라 지을까 한 적도 있었는데 김숨이라는 작가가 있더군요. 김숨 작가 남편 글도 감각적입니다. 김숨 소설 읽기를 자꾸 미뤄두고 있네요.

시이소오 2016-08-07 20:53   좋아요 0 | URL
김숨 남편이 누군가요?

samadhi(眞我) 2016-08-07 20:55   좋아요 0 | URL
김도연 이라는 사람인데요. 이 사람도 글을 쓰고 있는데 소설은 아직인 듯해요. 「불안의 황홀」이라는 책을 읽었거든요.

시이소오 2016-08-07 20:59   좋아요 0 | URL
아, 문학가 커플도 꽤 많네요 ^^

결혼은 했겠지 싶었건만 막상 사실을 접하니 충격이네요 ㅋ

samadhi(眞我) 2016-08-07 21:0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보통, 작가들이 ˝보통˝으로 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니까요.
예술가들은 행복하게 살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주의(?)˝ 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은 창작자의 고통과 번민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예술을 포기했습니다. ㅋㅋㅋㅋㅋ

시이소오 2016-08-07 21:21   좋아요 0 | URL
ㅎ ㅎ 예술을 포기하면 행복해질카요 ?

사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죠
. ^^





samadhi(眞我) 2016-08-07 22:15   좋아요 0 | URL
명제가 반대가 된 건데요. 제 말씀은 고통과 불행과 우울이 예술의 필수조건(?)이 아닐까 한다는 거지요. ㅋㅋ

시이소오 2016-08-07 22:19   좋아요 0 | URL
예술가들은 그래야죠 ㅎㅎ


나비종 2016-08-0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동화 얘기하다가 갑자기 `피`나오고 `똥`나오고 해서 `이건 뭥미?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쓰신 리뷰를 읽어보니 연관성이 있군요. 존재와 함께 하다 존재로부터 떨어져나온 대상들이라는 점에서요.
˝모든 생명은 본질로 축소될 수 있다˝는 브랑쿠시의 말에서 프랙탈이 연상됩니다. 부분의 반복이 전체가 되기도 하는 자기 유사성과는 뭐 좀 다른 개념이기는 하지만, 존재를 상징하는 오브제는 매우 중요하니까요. 그 부분이 생명의 본질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연이 삶을 결정한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신발에서 죽음이 시작된다는 프리모 레비의 말이나, 선을 경계로 생사가 갈렸던 4.3 사건이나, 우연의 선택들이 결정적인 삶의 순간으로 자리매김하던 경우를 생각해보면요.
떨어져나가면 구멍이 된다는 말에서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심오하게 남는 여운에 가슴이 아프네요. 떨어져나간 `L의 운동화`가 우리에게 남긴 `구멍`처럼.

시이소오 2016-08-08 15:49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것처럼 별 관련이 없어보이는 것들이 다시 돌아보면 또 그렇지도 않거든요. 소설은 신발 밑창 복원에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프랙탈을 사유할수도 있겠네요. 나비종님 덕분에 소설에서 제가 간과한 부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독토를 하는거겠죠
감사합니다 ^^

보물선 2016-08-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자료 잘 봤어요. 독해에 도움이 되네요.

시이소오 2016-08-14 11:42   좋아요 0 | URL
궁금하더라구요 ^^
 
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2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7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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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부터 단기대신 서기를 공용연호로 사용하게 된다. 611231일 오후 7, 국영 KBS TV가 개국한다. 당시에 TV 수상기는 5천대에서 만대 정도. 군사정권은 2월부터 총 2만 대의 TV를 공수해 월부로 배포한다. TV 수상기 신청서 한 장에 100원씩 팔았는데 신청서 판매한 대금만 650만원이 걷힐 정도로 경쟁이 심했다.

 

군사정권은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도 전개하였다. 이 덕분에 다 죽어가던 금성사가 살아났다. 금성사는 라디오 재고를 순식간에 해결한다. 5.16전까지 판 라디오는 17천대 정도, 라디오 보내기 운동 이후, 농어촌에만 20만 대를 팔아치웠다.

 

322, 윤보선이 대통령직을 사임한다. 박정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자리를 꿰찬다. 박정희를 비롯한 쿠데타 세력들은 청와대 잔디 밭에 돗자리를 깔고 술판을 벌인다.

 

61일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은 구 민주당 반혁명음모사건을 적발, 41명을 구속했다고 발표한다. 무력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것. 장면도 구속된다. , 당연한 일이지만 황당한 조작극이었다.

 

62년에도 미군의 한국인 학살은 계속된다. 16, 미군은 땔나무를 구하던 파주 주민들에 발포한다. 조선일보 김천수 기자의 취재로 더욱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미군은 나무꾼을 발가벗겨 놓고 도망가는 나무꾼을 향해 쏘았다. 총도 사냥용 엽총으로 쏘았다. 그야말로 인간 사냥이었다.

 

516일엔 양공주을 윤간하고 머리를 깍은 사건 등 미군의 한국인에 대한 학살과 만행은 끝이 없었다.

 

113일 군사정권은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장면 정권이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고대로 실행한 것.

 

6100시를 기해 3차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옛날 돈 10환은 새 돈 1원으로 평가절하되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했던 돈이 나오질 않았다. 미군은 분노했다. 이에 1217일 박정희는 화폐 개혁이 실패했음을 인정한다.

 

69일 군사정권은 병역의무 불행자 자수 신고 기간을 발표해 신고 접수를 받았다. 2차 신고 기간에 나타난 자수자까지 무려 41만 명이 신고한다.

 

군사정권은 6.28 언론 정책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불리한 기사만 보이면 신문기자들을 잡아 가둔다. 62년부터 군사정권의 ‘<사상계> 죽이기가 본격화된다. 628월 장준하는 마닐라에서 개최된 막사이사이상 언론 문화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자가 되지만 군사정권의 탄압은 날로 거세진다.



 

군사정권이 언론을 통제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63년 대선을 앞두고 621월부터 비밀리에 정당을 조직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 정치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그건 바로 부정부패였다. 군사정권은 증권, 워커힐, 새나라, 빠찡꼬 등 이른바 4대 의혹 사건을 일으킨다.


 

증권파동은 중정이 개입한 주가조작 사건이다. 군사정권은 전국의 공무원들에게 증권 구매를 장려했다. 패가망신은 물론이요, 자살자가 속출했다. 당시 증권 조작으로 벌어들인 돈은 20억원. 오늘날로 치자면 2천억원이다.

 

군사정권은 워커힐을 준공하면서 공사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횡령해 공화당 정치자금으로 사용한다.

 

새나라 자동차 사건 역시 김종필이 주도한다. 군사정권은 새나라 조립 공장을 건설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성된 일본산 소형 자동차 2천대를 관세없이 시중 없자에게 팔아 넘겨 이익을 취했다. 벌어들인 약 25천만원의 돈은 공화당 창당 자금으로 쓰인다.

 

빠찡꼬 사건은 빠찡꼬 기계 500대를 수입, 영업 허가를 내주는 대신 돈을 챙긴 사건이다. 이병주에 따르면 4대 의혹 사건은 군사정권 시대 벌어진 부패상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한다.



 

김지태는 5월 한국문화방송은 물론 부산문화방송과 <부산일보> 경영권을 재단법인 5.16 장학회(정수장학회)에 넘기고 물러난다. 박정희가 강탈한 것. 쿠데다 전에 박정희는 <부산일보 >주필 황용주를 만나 김지태 사장에게 부탁해 돈을 융통해 달라고 부탁한다. 황 주필은 차마 김지태 사장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 사이에 5.16 쿠데타가 터진 것. 돈 안 빌려줬다고 전 재산을 강탈하다니, 심지어 김지태 사장은 무슨 사정인지도 전혀 몰랐을텐데. 오늘날까지 박정희가 강탈한 재산은 박근혜 것이 된다. 왜 민주화가 되었음에도 도둑질을 묵인해야 하는 것일까.

 

61년의 인기가요는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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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6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6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6-08-06 09: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부에서 주도하는 `운동`의 절대 다수는 정치적, 경제적 목적과 수혜기업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능력으로 세계적 기업이 된 것처럼 처신하는 기업가들을 보면 웃음만 나옵니다..^^:

시이소오 2016-08-06 09:29   좋아요 4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과 결탁 하지 않고 기업이 돈을 번다는 건 불가능한 시대였어요.

지금의 삼성이나 LG, 한진 같은 대기업이 다 사바사바로 독과점을 통해

돈을 벌어놓고, 잘 난척 하는 꼴이라니.

대한항공의 갑질이나 삼성의 감시질이나 거의 상상초월이던데, 이런 부도덕한 기업이 언제까지 살아남을지.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08-06 0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정치민주화에서 이제는 경제민주화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요측면에서는 소비자 권익의 강화, 공급측면에서는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통해 참여자들 다수가 주인인 경제체제로 이행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시이소오 2016-08-06 11:09   좋아요 4 | URL
그래서 저도 요즘 사회적기업에 관심이 많아요. 소비자가 주인인 경제 체제가 된다면 현재와 같은 불평등이 많이 줄어들텐데요 ^^

겨울호랑이 2016-08-06 11: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네 시이소오님^^; 말씀하신대로 소비자가 중심인 기업이 다수가 되고 이들이 커져 몬드라곤과 같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생각거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딩 2016-08-06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회주의의 정부와 같이 되어가는 거대기업을 파괴할 새로운 회사가 - 거대 기업이 쉽게 따라 올 수 없는 신기술을 가진 - 나타나기 힘든 한국이 안습입니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한국에 절실히 필요한것 같습니다.

시이소오 2016-08-06 11:31   좋아요 2 | URL
삼성, 한진같은 부패한 기업들이 망하면 수 만개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생겨 보다 창조적이고 윤리적인 기업문화가 태동하지 않을까요? ^^

오거서 2016-08-06 15:01   좋아요 0 | URL
시이소오 님,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이상적인 자본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는 대기업이 망하기 전에 정부에서 공적자금을 동원하는 통에 소규모 기업의 경제 여건이 더 나빠질 것 같아요.

시이소오 2016-08-06 15:36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만으로는 안되겠죠

기억의집 2016-08-06 16:37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에 대우조선에 얼마나 공적자금을, 우리 세금을 쓸까 생각하니 걱정스럽습니다.

기억의집 2016-08-0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데... 금성사란 오랜만에 듣네 했다가 순식간에 재고를 처리했다는 대목에서...참. 저렇게 정치와 결탁해서 부를 채워왔구나 싶습니다. 단순히 화가 나는 게 아니라 분노가..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개같은 것들.

시이소오 2016-08-06 18:18   좋아요 0 | URL
ㅋ 정치와 경제가 실로 가깝네요 .
 
표현의 기술
유시민 지음, 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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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엘이 말한 글을 쓰는 네 가지 이유는 하도 여러 책에서 자주 접하다보니 이제 저절로 암기가 되고 말았다.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유시민은 정치적 목적을 가장 중요시한다. 정치적 목적이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를 뜻한다. 정치적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작가는 조지 오웰일 것이다.  조지 오웰은 심지어 이렇게 말했다.

 

내 작업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 소리에 현혹됐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


-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유시민 역시 글쓰기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장 중요시 한다. 나는 주로 순전한 이기심으로 글을 쓰곤 하지만, 점점 더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글을 쓰고 싶긴 하다. 그러기 위해선 더 배워야 하겠지.

 

유시민은 이런 질문을 자주 접한다고 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왜 만날 싸우나요?” 정말 멍청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어떤 남자든 자신의 눈앞에서 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강간범에게 강간당할 위기라면 강간범이랑 안 싸우겠는가


 "저기.....외람된 말씀이오나 제 여자 친구인데. .....강간은 쫌..."하면서 예의를 갖춰야 할까?  국회에서 정부여당은 재벌과 기득권을 위해 99%의 수 천만 명의 국민들을 강간하려는 정책들을 입안하려고 한다. 그럼 오늘날의 야당처럼 먼 산 쳐다보듯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인가

 

유시민의 말처럼 여당과 야당이 안 싸우면 이상한 거다. 흔한 말로 야합이라 한다. 제발 둘 다 싸우니까 똑같은 놈이라고 하지 말자. 절대로 똑같은 게 아니다. 강간범이랑 강간을 막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똑같은 범죄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독자가 감정 이입을 하기 좋게 글을 쓰는 유시민 만의 노하우

 

1. 텍스트 자체만 읽어도 뜻을 알 수 있도록 쓴다.

2.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데 필요한 콘텍스트를 텍스트 안에 심어둔다.

 

유시민은 안도현 시를 예로 든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유시민에 따르면 위 시는 의사소통의 도구로는 폭망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써야 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더러워진 골목길 네가 치울 거냐

 

, 논리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글을 쓸 때에는 독자에게 정확하게 전할 수 있게 써야 한다고.

 

 


전두환은 멋져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정신나간 정훈이를 제 정신으로 돌려놓은 책은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다. 이 책을 계기로 정훈이는 현대사를 공부했고, ‘김대중은 빨갱이라고 믿었던 경상도 청년의 왜곡된 상식이 무너지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숱한 국민들을 고문하고 살인하고 강간한 독재자를 멋지다고 외치는 정신 나간 것들이 있다. 누군가 저런 것들을 붙잡아다 책을 읽히면 어떨까


우매함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p48.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에서 두 가지 도덕법을 밝혔는데, 다들 아시는 정언명령 1번과 2번입니다. 정언명령 1번은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고 2번은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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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0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정치인들의 행보, 특히 여당에 불만이 많지만, 여당 정치인을 강간범으로 비유한 문장은 과도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강간은 폭행으로 상대방을 위협하고 억압하는 행위입니다. 옛날 남산 안기부 시절이라면 국가의 폭력을 강간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은 각자 자신들의 밥그릇이 걸린 정책 문제 앞에서는 욕설과 주먹을 주고받으면서 싸웁니다. 소속 정당이 다를 뿐 개인의 이익을 사수하려는 정치인들은 도긴개긴입니다.

시이소오 2016-08-05 12:23   좋아요 2 | URL
기득권들은 국민드이 도긴개긴이라고 생각하길 바라죠.

국가보안법 통과시키려는 당과 몸싸움으로 막으려는 당이 어째서 똑같나요? 절대로 똑같지 않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 다고 차선이 아니라 최악을 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그리고 꼭 육체적인 폭력만을 강간이라 한정지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들 멋대로 사드 배치 결정하는건 폭력이 아닌가요?

강간은 한 사람의 피해겠지만 잘못된 정치는 수천명을 지옥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기도 하구요.

루쉰P 2016-08-05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의 표현의 기술은 너무나 좋죠 ㅋㅋ

시이소오 2016-08-05 13:22   좋아요 0 | URL
저는 표현의 기술이 없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