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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 공부방, 그 사소하고 조용한 기적
최수연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책벌레 선생님께서 5월에 도서관 행사를 크게 해야 하는데, 우리 학교 어머님들 인형극 공연을 초청하고 싶다고 하셨다.
다 된 연습에, 만들어진 소품이 있으니 그냥 어머님들 출동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앰프 대여비는 그 쪽 학교에서 하는 걸로 하고, 어머님들도 좋다 하셔서 그냥 그렇게 진행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분의 어머니가 참여 곤란하다 하셔서 멤버 교체를 하고,
인형에 힘이 다 떨어졌다고 코팅지로 다시 보수하고,
서로 입을 맞추어 봐야 해서 연습이 필요하다 하셨다.
그렇게 여러 날 힘들여 연습을 하시는데, 괜히 내가 막 죄송해졌다.
이렇게 힘들여 준비하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하셨다.
연습삼아 작년에 공연을 보지 못한 우리 학교 일 학년들을 위한 공연을 해 보자고 하셨다.
정말 좋은 생각이었고, 그런 생각을 해 주신 어머님들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어제, 인형극 공연이 있었다.
1학년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다고, 한 번만 더 보게 해 달라며 좋아했다.
수고하신 어머님들께 인사 드리러 가서
"준비하실 때 힘들어서 속상하지 않으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눈이 똥그래지시면서 "정말 재미있었는걸요." 하셨다.
나는 가끔 힘든 일을 할 때, 기쁨도 있지만, 투덜거리게 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드렸는데, 그런 질문 한 것이 조금 부끄러웠다.
여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나의 마음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이를 위한 봉사를 큰 기쁨으로 여기는 숭고한 이들이 많기에 세상이 아릅다워지는구나 싶었다.
공부방 이모, 삼촌들로 불리는 공부방 선생님들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제자가 서울에서 공부하면서 공부방 교사를 한다고 할 때 난 정말 기뻤다.
그 일은 쉽게 시작하기 힘든 일이고, 그런 일을 했을 때 나의 시간을 바쳐야 하는
(다른 일 보다 우선에 두어야 하기에 개인적인 희생이 많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일이기에 도전 자체에 대한 생각도 해 보지 않았던 나는 여기 이 선생님들이 대단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 책의 저자인, 공부방 이모, 삼촌들에게 할매로 불리는 큰이모가 있다.
최수연님은 공부방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다가가기에 선생님이라는 호칭보다는
이모, 삼촌이라는 호칭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시고 교사들을 그리 부르게 하셨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1988년 올림픽을 치르던 그 해에 부산의 가난한 동네에서 문을 연 '우리누리공부방'!
일하느라 바쁘신 부모님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그들의 때묻은 얼굴을 씻기시고, 간식을 먹이시고, 숙제를 봐 주시고,
그들의 아픔 하나하나를 품어주신 분들의 이야기 자락 하나하나에 몇 번이나 울컥했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기적같은 이야기, 혼자만 해 내느라 힘들어 그만두고 싶지 않도록
함께 해주는 많은 이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고 건강하게 자라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어서 이 책은 더욱 따뜻했다.
10년이 지난 1998년, IMF는 가난한 동네에 가장 먼저 찾아왔고,
또 10년이 지난 2008년에 경제 위기로 이곳은 다시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렇지만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함께 나누는 마음이 넉넉하게 있기에
아름다운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우리누리공부방'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이기심으로 상처받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공부방에서 자란 아이들이 다시 공부방 이모, 삼촌이 되어 이웃들과 함께 하는 장면도 무척 따스하다.
물론 가난하고 힘든 이들이 사는 동네의 이야기이기에 아픈 이야기도 이 곳에는 가득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희망을 읽는다.
이 책을 팔아 생기는 돈 중 일부는 다시 아이들을 위해서 쓰인다고 한다.
부산원북도서이기도 했던 이 책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