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굵직한 이 책들을 주문하며 마무리한다.
덤으로 올재 클래식스에서 40차로 신동우 화백이 그린 <풍운아 홍길동>도 나와서 같이 주문했다.
읽고 싶은 책들은 많지만 그 중 고심하여 선택하는 과정은 즐겁고 좋다.
이거 다 읽으면 연말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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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표상, 그중에서도 사회적 유형은 일반적으로 대립어의 쌍으로 명확하게 표현되며, 양면성은 영원한 여성의 내재적 속성으로 보이게 된다. 상관어로서 성스러운 어머니는 잔인한 계모, 천사 같은 소녀는 타락한 처녀와 대비된다.
그래서 때로는 생명과 같은 어머니나 죽음과 같은 어머니라고 말하기도 하며, 모든 동정녀를 순수한 정신이라고도 하거나 악마에 바쳐진 육체라고도 한다. - P370

사실 실존자라면 누구나 내재인 동시에 초월이다. 실존자에게 목표를 제시하지 않거나 혹은 어떠한 목표에도 도달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승리감을 맛보도록 허락하지도 않을 때, 그의 초월은 헛되이 과거 속에, 즉 내재로 다시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에서 여자에게 할당된 운명이다. 그러나 노예제가 노예의 소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결코 여자의 소명이 아니다. 이런 신화가 오귀스트 콩트의 이론에 전개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자를 이타주의와 동일시하는 것, 그것은 남자에게 여자의 헌신에대한 절대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며, 여자에게 절대적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다.
신화를 의미의 파악이라는 것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의미는 대상에 내재적이다. 그 의미는 살아 있는 경험에서 의식에 드러나는 것이다. 반면에 신화는 의식이 아무리 도달하려 해도 끝까지 달아나는 초월적 이념이다.

그리고 여자는 단순히 육체적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육체는 각자에게 그리고 각각의 경험속에 독특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 남자처럼 -자연에 뿌리박고 있는 존재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종에 예속되어 있으며, 그 동물성이 더 뚜렷하다. 그러나 남자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자연적으로 주어진 조건은 실존으로 수용되고, 여자 역시 인간계에 속한다. 여자를 자연과 동일시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편견일 뿐이다. - P371

확실히 대부분의 신화는 자기의 실존과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남자의 자연발생적 태도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경험을 초월적 이념으로 높여 놓은 것은 가부장제 사회이며, 이는 자기 정당화의 목적으로 결연히 실행되었다. 그리고 그 사회는신화를 통해서 법칙과 풍습을 다채롭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개인들에게 강요했던 것이다. 집단의 명령은 신화의 형태로 각 개인의 의식에 침투하였다. - P376

여자들을 가장 진정성 있게 소중히 여겼던 시대는 궁정풍 사랑의 봉건 시대도, 여자의 환심을 사려 한 19세기도 아니다. 그것은 - 예를 들면 18세기처럼 - 남자들이 여자들을 동류로 보았던 시대다. 바로 이때 여자들은 진정 몽상적으로 보였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험한관계」, 『적과 흑』,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라클로, 스탕달, 헤밍웨이의 여주인공들은 신비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들에게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 P377

오늘날 남자들의 태도에는 이중성이 있다. 그 이중성은 여자에게 실로 대단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가 자기와 동류이고 동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여자에게 비본질적 존재로 남아 있기를 계속 요구한다. 여자에게는 이 두 운명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어느 쪽에도 정확하게 적응 못하고 여자는 양자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다. 여자의 불안정은 여기서 온다. 남자의 경우 공적 생활과 사생활 사이에 어떤 충돌도 없다. 남자는 행동과 일에서 세계에 대한 자기의 세력을 확인하면 할수록 더욱더 남성적으로 보인다. 그에게는인간적 가치와 생명의 가치가 뒤섞여 있다. 반면에 ‘진정한 여자‘에게는 객체가 되고 타자가 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여자의 자주적 성공은 그녀의 여성성과 모순된다. 이 점에서 남자들의 감수성과 섹슈얼리티마저 변해 버릴 가능성이 아주 짙다. - P378

우리가 희망해야 하는 것은 현재 새로 태어나는 상황을 남자들 쪽에서도 기탄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여자는 비로소 그 상황을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라포르그의 기원이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오 젊은 처녀들이여, 그대들은언제 우리의 형제, 우리를 착취하려는 저의 없이 우리의 친한 형제가 될 것인가? 우리는 언제 서로 진실된 악수를 하게 될 것인가?" 그러면 "남자만으로 인해 여자위에 맹위를 떨치는 운명의 무게 아래서 멜뤼진 역시 더는 짓눌리지 않고, 해방된멜뤼진…"이 "자기의 인간적인 기반을 되찾게 되리라. "남자 - 지금까지는가증스러운 - 가 동의함으로 해서 여자의 끝없는 속박이 풀리고, 여자가 자신을위해 자신에 의해 살게 될 때," 그때 여자는 완전히 한 인간이 될 것이다. - P379

페니스는 남자아이가 우월감을 끌어내는 직접적 특권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아니라, 반대로 페니스에 대한 높은 가치 부여가 두 번째 이유離乳의 가혹함에 대한 하나의 보상 - 어른들에 의해 고안되고 아이가 열렬히 받아들인 - 같이 보인다. 그렇게 해서 남자아이는 이제 더는 아이도, 여자아이도 아니라는 아쉬움으로부터보호를 받는다. 이후 그는 자기 성기 속에 자기의초월과 자랑스러운 주권을 구현하게 된다. 여자아이의 운명은 아주 다르다. 어머니와 유모들은 여아의 생식기에 대해 존경심도 애정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들은 표면밖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 은밀한 기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여아는 성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여아는 이 부재를 결핍처럼 느끼지 않는다. 그녀의 신체는 그녀에게 당연히 하나의 완전체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아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 세계에 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여러 요소가 복합되면, 그녀의 눈에 보이는 이런 차이가 열등함으로 변형될 수 있다. - P394

현대 서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쭈그려 앉고, 남자들은 서서 보는 것이 관례다. 이런 차이는 여아에게 가장 놀라운 성적 구분이다. 소변을 보기 위해 여아는 쭈그려 앉아서 엉덩이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숨어서 일을 봐야 한다. 그것은 부끄럽고 불편한 속박이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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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35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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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생활비가 적게 든다고 말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그것은 나중에 끌어들인 변명에 불과하다. 그보다는, 여자들이 착취자들에 맞서 저신들을 지킬줄 몰랐기 때문이다.
(…)
여성 노동자는 생활비 전부를조달하는 것이 아니므로 남자가 요구하는 보수보다 매우 낮은 보수를 수락해 버렸다. 막대한 수의 여자들이 저렴한 임금에 만족함으로써 여성의 임금 전체가 당연히 고용인에게 가장 유리한 수준에서 책정되었다. 프랑스에서 1889년부터 1893년에 걸쳐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동일한시간 동안 일하는 여성 노동자는 남성 임금의 절반밖에 받지 못했다. 1908년 조사에 의하면, 여자 가내노동자의 시간당 최고 임금은 20상팀을 초과하지 못했고, 5상팀까지 내려갔다.
(…)
이처럼 착취당한 여자는 온정이나 보호자 없이 살아가는게 블가능했더. - P192

여성에 대해 제기되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여자의재생산 역할과 생산노동의 조화다. 인류 역사 시초에서 여자를 가사노동에 헌신 - P193

하도록 하고 세계 건설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한 근본 이유는 여자가 생식 기능에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 P194

이제 인공수정으로 인류의 재생산 기능을통제할 수 있는 진보가 완성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에게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 여성은 임신 횟수를 줄이고, 임신의 노예가 되는 대신 임신을 자기 삶에 이성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여성은 자연에서 해방되고있다. 여성은 자기 몸에 대해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성은 재생산의 예속에서크게 벗어나 여성에게 제시되고 인격 쟁취를 보장해 줄 경제적 역할을 담당할 수있게 되었다.
생산 활동에의 참여와 재생산의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두 요소의 수렴으로 여성 조건의 진전을 설명할 수 있다. - P197

자본의 유동성은 그 소유자가 재산에 소유되는 대신 재산을 일방적으로 소유하고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여자가 실질적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었던 것은 세습재산을 통해서였다. 세습재산이 폐지되면 부부는 1대 1의 관계일 뿐이며, 자식들조차 이해관계를 떠난 견고한 유대를 이루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개인은 집단에맞서 자기를 확립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자본주의의 근대적 형태가 승리를 거둔 미국에서 특히 눈길을 끈다. - P198

첫째, 여성의 모든 역사가 남성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P210

타자로서 여성의 도래를 요구한 학설도 남성의 이데올로기였으며 여성의 요구를 전혀 표현하고 있지 않았다. 대다수 여성은 아무런 행동도 시도하지 않은 채 체념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 P211

세계의 진정한 지휘권이 여자들의수중에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자들은 기술이나 경제에 영향을 준 일도 없없고, 국가를 만들거나 해체한 일도 없었으며, 세계를 발견한 일도 없었다. 여자들에 의해서 몇몇 사건들이 일어났으나 여자들은 동인이라기보다는 구실에 훨씬 더 가까웠다. - P213

세계의 모습을 바꾸려면 우선 거기에 견고하게 닻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사회에단단히 뿌리내린 여성들은 사회에 복종하는 여성들이었다. - P214

안티페미니스트들은 역사 검토에서 두 가지 모순된 논법을 도출해 낸다. 첫째, 여자들은 결코 아무런 위대한 것을 창조해 내지 못했다. 둘째, 여성의 상황이위대한 여성의 개화를 조금도 방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주장은 기만적이다. 몇몇 특권적인 여성들의 성공이 전체 여성 집단의 낮은 사회적 수준을 보상하지도 변명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공이 드물고 제한적이라는 것은 제반 사정이 여성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정확히 입증하고 있다. 크리스틴 드피상, 풀랭드라 바르, 콩도르세, 스튜어트 밀, 스탕달이 주장한 것처럼 여성은 어느 분야에서도 결코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대다수의 여성이 새로운사회적 지위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여성들의 주장은 여자답다는 칭송을 받자는 것이 아니었다. 여성들은 인류 전체에서처럼 자신들 안에서도초월성이 내재성을 물리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여성들은 결국 자신들에게 추상적인 권리와 구체적인 가능성이 부여되기를 바란다. 이 양자의 결합이 없는 자유는 속임수에 불과할 따름이다. - P215

여자들은 여전히 전체적으로 종속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 결과, 여자는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규정하는 대로 자신을 인식하고 선택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선 남자가 꿈꾸는 여자를 묘사해 볼 필요가있다. 왜냐하면 남자를 위한 여자의 존재 방식은 여자의 구체적 조건을 이루는핵심적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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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시대부터 오늘날까지 결혼한 여자는 사유재산제에 고의로 희생됐다. 남편이 쥐고 있는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여자의 예속이 더욱 엄격해진다는 것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자의 종속은 언제나 부유한 계급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오늘날도 부유한 지주 계급 안에서 가부장제 가족은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 남자는 자신이 사회적·경제적으로 강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더 권위적인 가장이 된다. 반대로 공동의 빈곤이 부부 관계를 대등하게 만든다. 여자를 해방시킨 것은 봉건제도도 가톨릭교회도 아니다. 가부장제 가족에서 진정한 부부 중심의가족으로의 이행은 농노제에서 출발했다. 농노와 그 아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고, 오직 그들의 집과 가구와 도구만을 공유할 뿐이었다. 남자는 재산이 전혀 없는 아내의 주인이 되려고 애쓸 이유가 없었다. 반면에 그들을 결합하는 노동과 이해관계가 아내를 반려자의 지위로 승격시켰다. 농노제가 소멸하여도 빈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대등한 부부 관계는 농촌의 작은 공동체와 장인들 사회에서 볼 수있었다. 아내는 물건도 하녀도 아니었다. 그런 것은 부유한 남자의 사치인 것이다.
가난한 남자는 자기를 배우자에게 결부시키는 관계의 상호성을 경험한다. 아내는 경제적·사회적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노동 속에서 구체적인 자율성을획득한다. - P161

유럽의 모든 법전은 여자에게 모두 불리했던 교회법과 로마법 그리고 게르만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나라가 사유재산제와 가족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런 제도의 요구에 따르고 있다. - P163

이 시대에 가장 단호한 페미니스트는 1673년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은 저서 『양성평등에 관하여De regalité des dense sexes」를 간행한 풀랭드 라 바르François Poullainde la Barre(1647~1723)다. 그는 남자들이 강자이기 때문에 어디서나 남자들에게 혜택을 주었고, 여자들은 습관적으로 이런 종속을 받아들인다고 평가했다. 여자들은 단 한 번도 기회를 얻지 못했다. 자유도, 교육도, 따라서 과거에 여자들이 한 일을 가지고 여자들을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열등하다고 가리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부학상의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의어느 것도 남자들을 위한 특권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풀랭 드 라 바르는 여자들을 위한 탄탄한 교육을 주장한다. - P178

18세기의 민주주의와 개인주의의 이상은 여자들에게 유리했다. 여자들은 철학자 대부분에게 남성과 동등한 인간존재로 보였다. 볼테르Voltaire(1694~1778)는 여자들의 운명의 불공정성을 고발했다. 디드로는 여자들의 열등함이 대부분 사회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간주했다. 그는 "여성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동정하오!"라고 썼다. "온갖 관습 속에서 민법의 잔혹성은 여자들에게 등을돌리고 자연의 잔혹성과 결탁하고 있다. 여자들은 지적장애인처럼 취급되었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몽테스키외는 여자들이 가정생활에서 남자들에게 예속되어야만 하는데, 모든 것이 여자들에게 정치적 행동을 하도록 준비시킨다고 역설적으로 평가했다. "여자들이 집주인이 되는 것은 이성과 자연에 반하는 일이다.(…) 여자들이 제국을 통치하는 것은 이성과 자연에 반하는 일이 아니다." 엘베시우스claude Adrien Helvetitus(1715~1771)는 여자를 열등하게 만드는 것은 불합리한 교육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달랑베르Jean Le Rond d‘ Alembert(1717~1783)는 이 의견에 동의했다. 한 여자, 시레 부인에게서 경제적 페미니즘이 수줍게 나타나기 시작하는것을 볼 수 있다. 메르시에 Louis-Sebastien Mercier(1740~1814)는 거의 유일하게 저서 『파 - P179

리의 풍경』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해 분개하고, 여성 노동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1743~1794)는 여자들이 정치적 생활에 접근하기를 원했다. 그는 여자들을 남자와 동등하게 생각했고 전형적인 공격에 맞서 여자들을 변호했다. "여자들은 (…) 본질적으로 정의감이 없고 양심보다 감정에 따른다고 한다. (…)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가져온 것은 천성이 아니라 교육이며 사회생활이다." 또 다른 곳에서는 "여자들이 법률로 예속되면 될수록 그들의 세력은 더욱더 위험해졌다. (…) 만일 여자들이 그 세력을 지킬 이유가 적어진다면, 그리고 그 세력이 여자들을 방어하고 억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수단이 아니라면 그 세력은 작아질 것이다." - P180

부르주아 여성은 자기의계급적 특권을 중히 여기기때문에 자기가 묶인 사슬에 집착한다. 그녀는 여성의 해방이 부르주아 사회를 약화할 것이란 말을 끈질기게 들어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남자에게서 해방되면그녀는 노동해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사유재산에 대해 남편의 권리에 종속된 권리밖에 가지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재산이 없어지는 것을더욱더 개탄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노동자 계급의 여자들과 아무런 연대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직물 짜는 여공보다 남편이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남편의 이익이 곧 자기 이익이다. - P186

여자는 가정을 벗어나 공장에서 생산활동에 재참여했기 때문에 선사시대 이래 잃어버렸던 경제적 위세를 다시 쟁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변혁을 가능하게 한 것은 기계였는데, 남녀 노동자의 신체적 힘의 차이를 기계로 많이 해소했기 때문이다. 산업의 갑작스럽고 비약적인 발전이 남자 노동자의 노동력보다 현저히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으므로 여자들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여자의 운명을 변화시키고 여자를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여는 19세기의 대혁명이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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