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볼 때 우리 부부는 사이가 꽤 좋은 사람들로 보일 때가 많다.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는 일에 서로 어색해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함께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는 게 부부 사이가 아닐까.
설 특선 영화로 '내 아내의 모든 것'이 했었는데,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봐서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중간 중간 영상은 기억이 남지만, 인물들의 개성이나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편은 영화 속 임수정의 모습이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딱 너를 보는 것 같았어.라고 말했지만, 난 임수정의 모습이 어떤지 아직도 잘 모른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조회로 아는 내용으로도 난 도저히 그녀의 모습이 어떤지 잘 알 수가 없다.
난 가끔 남편을 향해서 막말을 잘 한다. 남편과 다툴때 절정을 이루는데, 속에 있는 말을 잘 담아두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뚜껑 열린다고 하는 말이, 딱 내 말이다. 뚜껑이 열리고, 그동안의 금기어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그러다보니 별 일 아닌 일도 나의 말실수로 불이 붙어 더 큰 싸움이 될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 부부의 사이는 정말 좋지 않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우선 다시 봐야겠다. 나와 그녀의 비슷한 점이 무엇인지 알아봐야지.
오늘 아침엔 아이들 데리고 '해양경찰 마르코'를 보러 갔다. 남편은 혼자 '베를린'을 봤다.(난 벌써 개봉할때 봐서)
어제 저녁에 집 근처에서 치맥을 먹었는데, 나갈때는 기분 좋게 나갔는데 막상 먹다가 현수가 자꾸 돌아다니고, 음료수를 테이블과 바닥에 쏟고, 기본 안주로 나오는 강냉이를 더 먹겠다고 하는 바람에 남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현수에게 너 때문에 이제 외식은 안해. 이게 뭐야? 하고 말하는데, 그 말에 동조를 해주면 좋은데, 마음은 동조하면서도 그렇다고 애한테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어? 하고 말하니 다시 또 싸움이 되었다. 급하게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서 또 현수가 물컵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남편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현수를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고 하고, 현수는 방에 들어가 엉엉 울었다. 정말 사소한 실수였다. 나 어릴적에도 할 수 있었던 평범한 실수, 그런데 그게 바깥에서부터 시작한 일이 집에서까지 계속 된 것이다. 방에 들어가 괜찮다고, 소리 질러서 오히려 미안하다고 달래주고, 아빠께 죄송하다고 조심하겠다고 말하면 좋겠다고 해서 현수가 울음을 그치고 나가 말하는데 쿨하게 그래 괜찮아, 하고 말해주면 좋겠는데, 남편은 또 한 소리를 더 하려고 하고, 나는 그걸 말하지 못하게 하려다보니 또 둘이 틀어져 버렸다.
일요일 아침 그러니까 다시 오늘 아침, 아이들과 남편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극장 나들이를 나간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카드가 50%할인에 팝콘세트를 주는 게 있어서 영화는 저렴하게 봤고, 아이들은 팝콘에 음료수까지 기분내며 영화를 봤다. 영화 자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믹이라 웃으면서 보긴 했는데, 맨 앞자리에 앉아 보는 바람에 머리가 좀 아팠다. 남편 영화 끝날 때까지 현수 소아과에 잠시 데려갔다오고(같은 건물에 있어서) 목이 많이 부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영화 끝나고 아빠 기다리는 동안 현준이는 자꾸만 배가 고프다고 말하고, 나도 집에 들어가 밥 차리기 싫어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고 하는데 어제의 일을 상기시키며 현수에게 주의를 주는데 남편의 그런 모습이 어쩜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굳이 어제 잘못한 일을 밥 먹으러 가지 전에 말해야만 했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드니 마음이 불편하고, 그러다보니 말이 곱지 않게 나가고, 그러다보니 또 남편과 삐거덕거리게 되었다. 네 사람이 서로 불편하게 점심을 먹었다. 아들은 컸다고 눈치보며 먹었고, 딸은 여전히 눈치는 없지만 앉은 자리에서 꼼짝 않고 먹었으니 답답하긴 했을 것이다. 밥을 먹고, 아이들은 산책하고 싶다고해서 집 근처라서 걸어 올라오라고 하고, 남편과 난 잠깐 슈퍼에 들러 간단하게 장을 봤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면 전화하라고 했는데 현수가 전화해서 집에는 잘 들어왔는데, 오빠가 오는 길에 토했다고 알려줬다. 불편하게 밥을 잔뜩 먹은게 원인이었을 것 같다. 바로 집으로 들어가서 따뜻하게 낮잠을 재우고, 나도 따라 같이 자고 났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낮잠 자고 일어나 모두 돌아가며 샤워를 했더니 더 개운해졌다.(겨울엔 춥기 때문에 바로 따라 샤워를 한다. 그래야 따뜻한 물도 잘 나오고, 욕실도 따뜻하고)
저녁엔 아이들 좋아하는 소시지구이를 하고, 샐러드를 만들었다. 남편과 캔맥주 하나씩 나눠 마시고, tv에서 하는 마술쇼를 보고 와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렇게 낮동안의 일은 시간의 흐름 속에 묻혔다. 다시 아이들은 까불고, 떠들고, 남편도 나도 재잘재잘 말이 많아졌다. 함께 내딸 서영이를 보고, 내사랑 나비부인을 보고, 아이들은 잠이 들고, 일요일 밤이 또 조용하게 지나간다. 언제 삐거덕거렸냐는 듯이.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여전히 삐거덕거리며 살 것이다. 함께 살지 않았던 시간들만큼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삐거덕거리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재잘거리며 살아갈 것이다.
황동규 시인의 신작이 나왔다. 이성복 시인의 신작도 나왔다. 이성복 시인의 시에 흠취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 시집은 아직 주문하지 못했다. 그런데, 황동규 시인의 '사는 기쁨'은 살까말까 고민없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어려운 말, 현란한 말, 그런 것보단 진솔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그립다. 어떤 말이 담겨 있을지 아직 모르지만, 제목만 봐도 힘이 생긴다. 산다는 것이 기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기쁠 때가 더 많다는 걸 살면서 배우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