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침몰 세트 - 전2권
고마쓰 사쿄 지음, 이성현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상,하권 두권으로 이루어져있는데..딱히 구분되어 있지는 않지만...1권은 SF 냄새를 풍기며(혹은 과학적)이고, 2권은 정치적인 느낌이 나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일본 주변의 한 무인도가 가라앉으면서 부터 시작하는 지질물리학의 지식은 꽤 신선한 느낌이다. 보통 재난영화, 재앙영화를 보면 대부분의 소재가 바로 지구의 지질특성이나 환경변화에서 나오는 발상이라고 봤을때, 영화가 아닌 글로써 그 스펙터클함을 상상하려 하니 힘이 부치긴 했지만 영화보다 좀 더 그럴듯한 단편적인 지식들을 내비치고 있는듯하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막 쓴 소설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소재들을 가지고 만든 영화들을 보면 그 스펙터클함이 바로 바로 인식되어버리니까 그 거대한 광경들로 인하여 시원한 감은 들지만, 책을 통해 글로써 읽어 내려가려하니 거시적 상상보다는 미시적 상상때문에 생각이 자주 멈추어지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개개인들이 풀어나가야할 절망이라는 안겨진 과제와 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이루는 작고 다양한 국부적 시스템들의 물리적 해체는 그럴듯한 논리로 풀어나간다.
 
물론 영화라는 이미지보다는 글이주는 정보는 스펙터클함의 거시적 상상보다는 좀더 세세한 상황을 표현하려는 미시적 상상을 더욱 자극했다. 또 읽어내린 글을 상상으로 다시 풀려하니 역시나 앞서 말한대로 힘에 부치긴 하였다. 무너진 세상을 머릿속에서 온전히 그려내는것이 이렇게 어려울줄이야. 물론 내가 상상했던 것들도 영화속 장면들에서 많은 부분 들여왔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일본이 지진으로 가라앉는 장면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순식간에 가라앉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물론 1년여정도의 시간차는 있지만...), 왜 가라앉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원인들의 분석과 가라않기전에 취해지는 대책들 이런것들이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아닌가싶다. 1편은 일본이 가라앉을거라는 확신을 갖기 위해 알아보는 분석 과정들이 세세히 묘사된다. 맨틀과 지각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부터 범 세계적인 지진대와 환태평양 조산대와 같은 일본과 매우 관계깊은 지진대까지 이 책에 나오는 과학 지식(지질학적 지식) 중 용어 부분만 따로 정리해놓아도 왠만한 지구물리 몇 챕터는 공부한 것과 마찬가지 일 듯 싶다.
 
보통 SF라 하면 이런 과학적 근거가 되는 뼈대에 얼마마큼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을 붙였는가가 핵심일 듯 싶은데. 이 부분에서는 나로선 만족스럽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과학적 근거 + 상상의 발로'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한 바로는 유일하게 일본만이 가라앉는다는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왠만한 지진대가 지구적으로 깊숙히 관여되어있고, 또 그 피해 범위는 더욱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 요즘에 쓰이는 영화적 소재라면(비록 영화속에서는 유럽과 아시아 이렇게 덩어리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 책은 한반도 남부를 제외하곤(이것도 거의 이야기되는 것이 없다) 오직 일본만이 덤탱이를 쓴다.
 
일본만이 가련한 피해자이고,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수도 없는 희생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2차세계대전과 연관지어 일본만이 세계에서 유일한 원폭 피해자라는 것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2차세계대전때의 원폭 피해와는 좀 차이는 있다. 왜냐하면 원폭 피해는 일본을 선의의 피해자라 보고 그들이 2차세계대전때 행했던 짐승같은 행동을 희석한 것일 수 있겠지만(일본을 옹호하는 시각속에 나타남...), 이 소설속에 나타나는 일본만이 입는 피해는 오히려 그들이 아시아, 세계속에 융화되지 못함을 비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일본인들에게 지진이라는 시련을 가정하고 피해를 가늠해봤을때, 좀 더 독선적이지 않고 아시아와 세계에 융화되려고 노력한다면 자국민을 좀 더 구제하고 피해를 줄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시각을 바탕으로 쓰여져있다.
 
이 책에선 그동안 탈아입구론적인 일본의 정책때문에 일본 주위의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인의 구호에 어느정도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본이 그 주위의 나라(한국과 북한을 포함하여)에 이웃의 정으로 구원해달라는 것이 아닌 인류애적인 감성을 가지고 구해달라는 것은 어찌보면 일본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그들도 그들 자신이 아시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냉소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2권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것들이다.
 
작가는 무너져 내리고 가라앉는 일본을 무덤덤히 그리고 가능한한 비참하게 그리려 하고 있다. 작가 자신은 아마 그럴듯한 악몽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가가 꾸었던 이 악몽을 일본인들도 같이 꾸어보자고 동참시키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악몽은 어느 한 사람(이 책의 작가)만 공유하기엔 너무 아까운 악몽이다. 그러니까 이런 악몽은 꿈 꿀 만하고...어차피 꿈과 현실은 다르니까 이 악몽을 깬 순간 일본인들은 기쁨의 안도를 느끼며 정말 예전과는 다른 일상을 맞이하지 않을까 하는 것을 작가가 노렸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가끔 정말 무서운(혹은 너무 슬픈...) 악몽을 꿈꾼 다음에 잠에서 깨어 그것이 한낱 꿈이고 허상이었다고 느끼는 순간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며 정말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가.(특히 어렸을때 꾸는 꿈 중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과 같은...)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전체적으로 든 생각은 '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을 향해 경고를 한다기 보다는 일본인들이 느껴야 하는(일본인들을 계속 존재케 하는 이 땅과 국가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일본인들이 가지는 자신만을 위하는 독선적인 논리와, 일본이 하는 행동은 절대로 그릇된 것이 아니며, 절대로 나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결국엔 전후(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오직 일본의 성장과 발전만을 위해 희생한 일본인 아버지, 어머니들을 잊고 지내는 전후 2세대들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는 생각이 든다.
 
'너희들이 바라보는 도쿄의 스카이라인이 시사각각 변하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일본제품의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지고 있는 지금, 그 성장의 이면속에 희생하고 고통당했던 전후세대를 외면한다면 너희들의 모든 부는 일순간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유흥에만 힘쓰는 니들만이 옳고 잘 산다고 떠들지 말고...자중하며 살아라...'
 
나는 웃기게도 이 책속에서 이런 글을 본 듯 하다.
 
이 책이 1973년에 쓰여졌으니까 이 말이 맞을 듯 싶다. 지들(일본인들) 속에서 지들만 잘 살아보세 하다가 지들 땅값 올리고 결국 더 부자되었다는 소리 듣고... 그러다 거품경제로 일 순간에 쌓은 부가 사그르르 사라지게 되니까 말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 말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꿈이었을때 행복한 것이다. 지금 우리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꿈(악몽)이 현실로 되어가는 나라..
 
푸훗...
 
만약 이런 소설(그러니까 한 국가를 악몽속에 놓이게 하는 상상이 들어있는)이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쓰여진다면.. 일본이 지진으로 무너지는 것과는 다르게, 전쟁(제 2의 6.25라 부를 수 있는)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그릴 수 있을 듯 싶다. 전쟁의 악몽. 그런데...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한 우리 역사의 침탈 또한 하나의 악몽이며, 이는 현실이다. 일본의 말도 안되는 독도를 통한 영유권 침탈(분쟁은 일본측 말...)도 하나의 현실이니 실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악몽이 현실로 바꿔지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80년대 90년대에 이런 것들을 악몽으로나마 접해봤다면...지금과는 양상이 다르지 않을까? 다르다면 어떻게 다를까.물론 악몽만 꾼다면 한국의 미래상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바판도 당연히 나올 수 있겠지만(부작용도 나올 듯 싶다...), 아무튼 악몽을 꾸어보지도 못하고 바로 현실로 만나게되니 왠지 대책없이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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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이사카 고타로 지음, 윤덕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어디에선가 "나의 죽음은 우주의 종말과 같다"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죽음으로 내가 누려야할 모든 것들은 그걸로 끝이다라고 할까...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의미의 뉘앙스를 풍겼다. 그런데 이 책은 우주의 종말로 인한 나와 우리 모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정확히는 우주의 종말은 아니고 지구의 종말이며, 더 정확히는 지구 생명체의 종말이다. 그러니까 혜성과의 충돌이 있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남은 시점에서 이 소설은 시작한다.
 
작가인 '이사카 고타로'의 다른 작품들(요즘 인기있는...『러시 라이프』나 『중력 삐에로』,『사신치바』,『마왕』...등등...그러고 보니...요즘 들어서 이 작가의 책들이 많이 쏟아지는 느낌이다...)를 읽지 않았으므로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어떤식으로 이야기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대충 다른 서평이나 책 소개 페이지의 작가소개를 읽어보니 인생에 대한 무거운 소재들을 유머스러우면서도 그리 심각하지 않게 다룬다는 글들을 보았다.
 
『종말의 바보』의 경우만 하더라도.... 종말을 향해 다가가는 사회의 혼란은 담담하게, 그리고 그곳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은 무거운 것들과는 반대로 증폭을 시키는 듯하다. 그러니 무겁고 어두운 소재들은 이것들이 가지는 심각성이 밝고 사랑스러운 소재들에 비해 심하게 가려지는 듯 하다. 그는 부정적인 것들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 긍정적인것에 대해 이야기하길 원해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는 이것이 '이사카 고타로'의 문체이다. 긍정의 문체.
 
이 책에서도 인간이 가지는 죽음을 경배하는 폭력성과 이기심, 종말에 따른 혼란등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을 혜성 충돌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폭발적으로 늘어놓는다.
 
보통 이런 종말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내용들은 예기치 않은 죽음이 아닌, 결정되어 있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삶을 유지하는 힘들 중 자신의 죽음이나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 전혀 예견할 수 없다는 것도 한 몫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가족과 친구, 사랑하는 사람도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이 책의 구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자면...여러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다른 단편의 엑스트라...그러니까 같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이웃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이 주민들은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이웃이다.
 
단순한 질문이지만...이 소설은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만약 세계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앞으로 한 3년정도 남았다."
 
이 책의 작가인 '이사카 고타로'의 답은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은 '가족과 함께(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다. 물론 대처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소설 속 주인공들의 유일한 종말을 대비한 움직임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여러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구가 혜성과 충돌 3년을 앞둔 시점에...서로 소원했던 부모와 자식이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이야기, 어지러운 세상속에서 부모를 잃고, 자식을 잃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끼리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여 힘을 모아 마지막까지 살려는 이야기, 비록 세상의 종말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를 낳아 더욱 강한 가족의 결속력을 추구하려는 이야기..등등... 거의 대부분의 단편들이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혜성의 충돌로 인한 세상의 물리적 종말이 아닌 정신적 메마름에서 나타나는 이 사회의 각박함과 이기주의적이고 개인적인 관념들로 인한 세상의 피폐함을 가족의 해체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작가 생각대로 이 사회의 미래를 그려본다면 역시나 혜성이 충돌하든 안하든 각박한 이 세상은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중일지도 모를일이다.
 
혜성이 다가오고 이 지구상 어느곳에도 피할 곳이 없다. 그래도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기도 하며, 가족들을 위해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기도 한다. 그러니까 가정의 존재는 절망적인 사회를 유지하게끔 하는 유일한 생명끈인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속에서도 어느정도의 혼돈의 시기가 지나가고 다시 그럭저럭 사회의 모습이 유지되는 장면들이 나온다. 물론 따지면 따질것이야 많지만(사회의 혼란속에서 의외로 먹을 것은 쉽게 구하는 듯...)...이는 판타지적 장르라 여기고 보면 머라 할 말이 없다. 암튼 이러한 세상의 종말을 향히 치닫고 있는 불행한 과정속에서 야기되는 사회의 혼돈과 모순을 해결해주는 것은 곳은 국가도 아니고 사회도 아닌 각 개개인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정(혹은 가족)이다.
일례로 가족이 없는 가장의 자살 또한 이 책에서는 그려지고 있다. 
 

 
암튼...이 책의 작가..'이사카 고타로'는 다시한번 질문을 한다.
 
'당신의 가정은 안녕하신가? 세상의 종말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말이다.
 
만약 세상의 종말이 없다면...그러니까 지구로 다가오는 혜성이 정말 천운으로 궤도가 바뀌어 지구를 스처지나거나 '자유호', '독립호'(영화..'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하는 영화 '아마게돈'에서 나오는 혜성 폭파 임무 비행선들 이름)가 출현하여 혜성을 폭파시킨다면...혼돈 후의 이 세상을 살아가게끔 힘을 주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자신의 가족일 것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 자신과 연이 없는 타인들도 누군가의 가족으로 생각하고 대한다면 아마 세상의 종말같은 것은 있지도 않겠지. 그럼 더욱 훈훈한 사회가 될 것이기에...
 
작가는 참으로 따끔한 소리를 빙빙 돌려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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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숲, 숲으로 가자 - 어머니 약손처럼 찌든 삶과 아픈 몸을 어루만진다
윤동혁 지음 / 거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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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비온뒤 아니면 아침이슬 머금은 숲속을 거닐다 보면 풀의 냄새, 땅의 냄새가 코끝에서 진하게 묻어나온다. 머라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냄새. 이 냄새가 과연 무엇이길래 편안한 마음이 들게할까? 저자인 윤동혁 PD는 이것이 일종의 '자연의 호르몬'에 의한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인간 또한 자연이 내놓은 산물중의 하나이기에 자연속의 인간이 제일 편안하고 인체의 모든 작용은 자연속에서 더욱 더 원만해지고 풍부해진다는 소리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느 때부터인가 자연과의 동화를 스스로 거부하고, 자연속에서 무언가를 캐낼 궁리만 하기 시작했다. 자연은 항상 우리에게 그 알수 없는 무언가를 베풀어 주지만 인간은 자연의 고마움을 어느샌가 잊고 지낸다. 이는 자연과 인간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연위에 인간이 있을 수는 없다. 절대로.
 
요즘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어린이가 예전보다 부쩍 늘었다. 우리는 항상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한다라는 일종의 치료적 행위라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있는 듯 하다. 이 책은 이런 점들을 지적한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자연과의 동화는 아토피의 증세를 뚜렸이 감소시켜준다. 이는 저자가 국내에서 국외에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지켜본바에 따른 것이다. 그 흔한 식물조차 그들 자신을 자연환경에 맡기고 끊임없이 환경에 동화시키려 하는데...인간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자연이 주는 해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자연이 주는 가공되지 않은 해법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이 몸소 자연에 몸을 낮추고 있다. 그는 항상 맨발로 숲길을 거닐며, 땅에서, 숲에서 나는 음식으로 자신의 영양분을 채워간다. 물론 현대사회라는 각박한 생활 속에서는 쉽지는 않다. 저자 또한 자연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고백한다. 그렇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숲의 냄새를 쉽게 맡을 수 있는 곳은 의외로 많다. 다만 우리가 거기까지 발품 팔기를 원하지 않기때문에 자연과 멀어지지만 말이다.
 
숲이 인간에 맞출 수는 없다. 물론 인간은 숲을 불러오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인공 '피톤치드'일 것이다. 이 '피톤치드'라는 것은 식물이 해충이나 곰팡이를 피하려고 내놓는 일종의 저항물질이다. 인간은 이렇게해서라도 자연을, 숲을 불러들이려고 노력을 한다. 물론 저자 또한 이런 인공물질들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숲에 갈 수 없다면 이런것이라도 써야 한다는 융통적인 사람이다. 특히, 저자의 식견대로라면 화분 또한 비중이 크다.
 
그러나 쳔연 자연의 기운을 느끼려면 역시 발품을 팔아야한다. 숲을 불러들이기 보단 숲으로 가야한다. 그곳에서 이름모를 수많은 풀들과 나무들, 그리고 시원스레 내려오는 물줄기의 기운을 받아야한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삶이다. 자연이 주는 것을 공짜로 받아먹는다 해서 전혀 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상 나무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듯이, 우리 또한 나무곁으로 가 그 나무를 껴안아야한다.
 
좀 웃긴말 같지만 사실이다. 저자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나무곁으로 가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주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숲이 주는 시원함을 느끼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름에 계획했던 지리산 등반이 태풍에 의해 취소가 되어서 가지 못해 아쉬웠던 적이 있었는데...하지만 다시 가면 된다. 항상 산과 숲과 나무는 그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급할 것은 하나 없다. 여름이 가고...더욱 산과 숲에 가기 좋은 가을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속엔 여러 숲의 풍경들이 실려있다(물론 여러 식물들의 사진도 실려있다). 특히 표지에 실린 숲 사이를  내리쬐는 햇살은 정말 아름답고 포근하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숲(혹은 산)속 좀 높은 곳에 올라 침낭을 깔고 그곳에서 별을 보며 잠드는 것이다. 이 책은 숲도 숲이지만 하늘도 쳐다보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다.
 
자...짬을 내어 자연에 몸을 담가보자.... 자연으로 달려가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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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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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이 리뷰는 소설속 이야기에 관한 스포일러는 없지만...소설의 구성에 대한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며..더불어..'미하엘 엔데'의 단편인 《긴 여행의 목표》라는 이야기의 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역시나 리뷰입니다. 프리뷰가 될 수 없겠네요... ~~~
 
이 소설은 많은 것들을 연상시켜준다. 가령 '뫼비우스 띠'라든지, '물방울'이라든지, 심지어 『모모』의 작가인 '미하엘 엔데'의 단편집『자유의 감옥』中에서《긴 여행의 목표》라는 단편 하나가 생각난다. 많은 것들이 생각났음에도 우선 이 세가지 정도로만 구체화 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소설은 특이하다. 그러니까 장르를 따진다면, 미스터리쪽이 맞겠지만 소설의 마지막 한 자까지 읽고, 책 말미의 '옮긴이의 말'까지 읽어본다면 이 소설은 오히려 작가 '온다 리쿠'의 에세이의 느낌도 물씬 풍긴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작가가 쓰고 싶어하는 책을 미스터리의 성격으로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하나의 예고편쯤...
 
책을 읽고 난 뒤의 이런 느낌이 상당히 강하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볼 수도 있고, 자신의 머릿속에 날라다니는 상상을 붙잡고 제대로 관찰한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이 소설은 누구를 위한 소설일까?' 라는 물음에 작가 자신을 위한 책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한다면 5편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고, 더 엄밀히 따진다면 단 한편의 이야기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심지어 8편의 이야기라고도 말 할 수 있다.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말할 수 있다. 가만생각해보니 거참..재밌다. 그만큼...작가의 상상력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결국, 앞서 말했던 세가지('뫼비우스 띠' , '물방을', '긴 여행의 목표')의 것들로 내 스스로가 정제 시켜버렸다.
 
먼저...뫼비우스 띠... 엄밀히 말해서..앞과 뒤가 없는 무한순환의 띠. 이는 이 소설의 마지막 단편인《회전목마》가 주는 의미와 비슷하다. 특히 4부의 마지막 부인 이 단편은 실제의 삶을 사는 작가와 작가의 소설속 인물들의 삶이 섞여있다. 그러니까 작가의 생각과 행동이 이 단편이 진행하는 도중 흘러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5편으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속 세계가 '뫼비우스 띠'의 안쪽이라면, 작가가 몸담고 있는 현실세계는 '뫼비우스 띠'의 바깥쪽이 되는 것이다. 가상 세계와 현실의 혼돈속에서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의미있지는 않다. 앞서 언급했지만, 소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구성(왜 이런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써야 하는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뫼비우스 띠와 엮어낼 새로운 시리즈의 첫 발이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물방울... 물방울이라고 해도 좋고 물(액체)라고 불러도 좋다. 하지만 역시나 물방울이 맘에 든다. 물방울은 하나이다. 그런데 반으로 뚝 잘라 물방울 두개를 만들었다고 해보자. 이는 다른 물방울인가? 그러니까 독립된 개체인가? ...
너무나 깊숙히 들어가면 재미없다. 아뭏든... 이 소설은 하나의 물방울에서 여러개의 물방울로 갈라낸 것이나 다름없다. 서로 다른 이야기의 각 이정표들은 결국 통합된 하나의 큰 이야기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뫼비우스 띠'와 닮아있다는 부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전체 소설이라는 물방울은 또 다른 이야기(그곳에서 파생된)의 작은 물방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을 물방울을 닮아 있다고 부르고 싶다.
 
마지막...'미하엘 엔데'의 작은 이야기 《긴 여행의 목표》와 닮아 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앞서 《긴 여행의 목표》의 스포일러 부분이 될 수 있음을 미리 알린다.
 
《긴 여행의 목표》의 목표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다 치워놓고...대략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한 남자가 한 그림에 반하게 된다. 이 그림은 예술작품이다. 이 남자는 이 그림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지 알 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이 그림이 풍기는 특이함이 맘에 든다. 이 그림의 작품 이름은 '긴 여행의 목표'이다. 그리고 이 그림이 어떤 그림으로 되어 있는가하면...캄캄한 밤, 커다란 바위들만이 가득한 계곡위에 우윳빛의 반투명한 색을 내는 궁전이 있는데 아울러 여러 명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수도승, 임금 기사, 요정..등등..). 그리고 궁전의 모든 창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궁정 출입문 바로 위의 창가에 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는데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무엇을 만류하는 것 같기도 하는...좀 이상한 그림이다. ('미하엘 엔데'의 『자유의 감옥』p. 44~46 中에서...)
 
그래서 이 남자는 이 그림을 구매하게 되고...주절주절...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결론은...이 남자는 일행들과 탐사 여행(그림의 배경이 될만한 곳을 찾아보는...)을 하게 되는데... 추위를 만나 얼어죽게 되고...이 남자는 어느 건물을 기어 오르다가 얼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7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그 금방을 지나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데..앞서 말했던 그림속의 광경이다. 그림속에서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무엇을 만류하는 것 같기도 하는 이 그림자는 바로 그 남자인 것이다. 그런데 이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 광경을 그림속의 광경처럼 보고 있다(처음에 남자가 이 그림을 보고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것을 말함...).
 
이게 아주 대략적인 《긴 여행의 목표》라는 단편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그림속 가상 세계가 결국엔 미래의 어느 현실의 시점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주인공(그림을 구입했던 남자)은 그림속의 등장 인물중의 한명(애석하게도 죽어간)이다. 책을 다시 읽을 수가 없어서 좀 더 세밀한 이야기는 하지 못하겠지만...아뭏든..이 책이 내용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소설과 매치가 되는 듯 하다.
 
가만보면..'미하엘 엔데'의 솜씨도 대단하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현재 진행중이고 미래의 어느 시점이 될(자신이 쓰고자 하는 소설을 정말로 쓰기 시작할 때의 시점..) 이야기를 하나의 빨간 표지의 소설속에서 미리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소설속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4편의 단편소설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소설에 불과하다. 그래서 결국 이 소설은 8개의 단편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이 책은 소설 내용보다 구성이 치밀하다. 그만큼 작가의 계산속에 그려진 이야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온다 리쿠'를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곘다.
 
다만...나는..잘 모르겠다...왜냐하면..이제야 한권을 읽었을 뿐이니까...
 
기회되면...우리나라에서 발간된 『밤의 피크닉』과 『굽이치는 강가에서』도 읽어봐야 겠다...(물론 이 소설들은 단편들과는 무관함...)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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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 - 젊은예술가의 세계기행 2
박훈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게 아니라는 것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비록 성공의 보장이 없더라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본문 中 >

처음 이 책을 들었을때, 심심한 경우에만 조금씩 맛보려고 하였다. 한 이야기당 글도 거의 한 페이지이고, 그림이나 사진이 나머지 한페이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조금씩 읽어내려가려고 하였던 것이 처음 한 두 페이지를 지나자마자, 그 다음 페이지로 계속 읽어나가다 결국엔 앉은 자리에서 한권을 후딱 해치워버렸다. 물론 이야기가 많지 않을 뿐더러 그림이나 사진들이 있어서 술술 넘어간것도 이유지만, 어찌됐든 이 젊은 남자의 이야기에 홀딱 빠져버렸다.

이 책은 한마디로 무작정 외국으로 떠나고 그 외국에서 일어났었던 일화들과 자신이 한국에서 살아왔던 배경, 그리고 요즘 하고 있는 일등으로 대략 마무리 짓는다. 그 중에서 제일 흥미있게 본 부분은 바로 외국에서 지냈던 일인데, 실상 그의 고생담이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는 그 쏠쏠한 재미에 빠져 들었다. 그의 경험은 매우 독특했다. 길거리에서 그림이나 초상화를 그려주고 돈을 받는 일명 '길거리 예술가'로 외국에서 혼자 벌어먹고(?) 살았으니 말이다.

그 이야기가 단순히 그의 이야기로만 끝난다면 이 책은 재미는 있을지 언정 호감은 사질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공통점이 잘 녹아있다. 바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이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물들과 같이 지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점이라든지, 불편한 점, 아님..재미와 흥미있었던 점등이 생길 것이다. 이 책의 재미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이자 저자는 책 제목 그대로 언더그라운드적인 삶을 살고 있고, 지금은 어느정도 지하세계를 빠져나온 것 같지만, 작가는 아직도 자신이 언더그라운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의 예술이 classic한 것이 아니라서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언더그라운드적이라고는 이젠 더 이상 말 할 순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앞서 말한 classic한 면과는 개념면에서 어느정도 반대선상에 있는 modern적인 면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그의 예술은 바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어렸을 때의 꿈인 만화가에서 나온 것이고, 이 모든 것의 모체는 '그만의 선(line)'에 있다고 느껴진다. 그는 '그만의 선'을 찾음으로써 자신감도 찾게되고, 더 나아가 제일 중요한 운이 따라 준것같다. 그의 이야길 들어보면 직접적으로 아마 언급이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바로 운이 함께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운은 단순히 일확천금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닌, 자신의 노력한 만큼의 결과에 플러스 되어서 작용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 운조차도 그는 얻을 자격이 있는 것 만은 사실이다.

참..역시 작가가 디자이너다보니..이 책의 구성이 특이하다. 앞서 말했지만, 글과 그림이 1:1로 배치되어있고, 그림이 큼지막해서 좋다. 그리고 그가 외국에 있을 때 외국 풍경(거리의 풍경)과 여러 사람들을 그린 크로키는 정말 생생하다. 마치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본 느낌이 들 정도로..모든 것이 상세히 그리고 간결히 표현되어있다. 정말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 책의 값을 할 것이지만 마음만은 심장의 고동침으로 평안한 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나도 먼가 하고 싶다라는 혹은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심장의 쿵광거림은 정말 어찌 표현 할 수가 없다.

이 책속의 글을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작가와 보통 사람들 혹은 나와의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바로 추진력이다. 당장에야 좋은 결과가 안나올 수 있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해야 결과가 나오니까..말이다. input이 들어가질 않았는데 결코 output을 바래선 안된다. 물론, input이 들어가도 output이 안 나올 순 있다. ^^

아무튼..여행이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도전이란 좋은 것이다. 그래서 젊음이 좋다고 하나? 난 왠지 한숨만 나온다.

2006. 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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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6-10-05 0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더를 벗어났으니까 책도 쓰는거겠죠??^^

쿼크 2006-10-10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일리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책 속의 이야기 중 언더쪽에 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