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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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예전에 썼던 글입니다.~~~

가끔 신문의 칼럼들을 보면, 칼럼을 쓴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보다는 생각을 부드럽게 표현하는 그들의 글재주가 부러웠다. 또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다른시각으로 전파해대는 그들의 독특한 시각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 책을 본 지금, 난 그들 또한 무수히 많은 습작을 통해 연습 해왔으며, 그들이 써낸 주옥같은 글들은 보편적인 큰 틀안에서 벗어나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글쓰기의 전략'에 관한 것이다. 어떤 식으로 써야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더욱 편안하고 이해하기 쉽게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는 몇가지의 유형들이 제시되어 있으며, 그리고 이 모든 유형들은 단순히 여러 칼럼들의 저자가 이렇게 구성해야겠다 마음먹고 뼈대를 잡아놓은 것이 아니라, 글 쓰는 그들 자신이 자신의 습작안에서 이야기를 써 내려가다 보면 그것들은 자신만의 유형이 되어 글에 나타나게 됨을 말하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라는 책이다. 그 책에는 이 작가의 공상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 단편 몇개가 나의 심금을 울려서 내가 이 책을 좋아한다라기 보다는 그 책 머릿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어서 이 책을 좋아한다. "나는 첫 장편소설『개미』를 발표한 뒤에 이야기를 빠르게 지어내는 능력을 유지하고 싶어서 매일 저녁 한 시간을 할애하여 단편소설을 썼다. 그럼으로써 오전 내내 '두꺼운 소설'을 쓰는 데서 오는 긴장 상태로부터 벗어나곤 했다." 이 말을 난 누구의 말이나 글보다 좋아한다. <마크 트웨인>의 주옥같은 명언들보다도 훨씬 더 좋아한다. 그도 결국엔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유지하고 싶어하고 또 누구보다 연습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여러 유형의 글쓰기에 대한 구성을 볼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이다. "단순히 어떤 글을 쓸 때는 이러이러한 유형의 글이 보편적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책의 저자가 고른 멋진 칼럼들을 가지고 독자에게 접근하기에 이 책이 더욱 글쓰기에 욕심많은 나에게 와 닿는다. 확실히 이론적인 몇 마디의 말보다는 나에게 직접 그리고 명확히 다가온다. 더구나 이 책의 백미는 저자 자신이 썼던 칼럼 한편을 가지고 그때 자신이 썼었던 그때의 상황을 다시 회고하며,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글쓰기에 임했는지 나오는 부분이다. 자신이 쓴 글은 자신이 안다. 자신의 감정과 어려움, 그리고 글을 어떻게 진행시킬지 하는 구성의 과정등.. 이 모든 것을 초보자인 내가 직접 글속에 뛰쳐 들어가 느껴보며, 작가의 설명을 듣는것 처럼 생생하다. 마치 이 글을 읽고 있는 내내 글쓰기에 대한 과외를 받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고, 분명한 설명.. 거기에 부가적인 글쓸때의 유의해야 할 맞춤법이라든지, 주어와 서술어의 명확한 논리적 관계등.. 이 모든것이 뚜렷이 나에게 다가온다. 내가 이 리뷰를 쓰는 내내 이 리뷰의 내용보다도 주어와 서술어가 제대로 위치해있는지에 매우 신경이 쓰인다. 예전에는 좀 말이 되지 않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경향이 있었는데, 역시나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이것부터가 글을 쓰기 위한 습작 이전의 작은 변화 아닐까? 자신이 책읽기와 글쓰기에 기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볼 필요가 있고, 또 책상에 놓아둘만한 책이다.

<덧붙임>

** 이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몇가지 책에서 소개한 글들을 올려봅니다.

독서는 단지 지식을 얻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남의 문체, 구성, 표현력을 배울 수 있는 과정이다. (p. 35)

다시 말해 플롯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한 곳으로 작품의 모든 요소를 끌고 가서 이야기 되게하는 구심력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는 플롯을 뼈대라는 말로 비유하기보다 전기자장력이란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고 있다. (p. 119)

만약 여러분 중에 뛰어난 작가나 편집자, 칼럼니스트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인용노트나 독서노트를 만들어보기 바란다. 뛰어난 작가의 경우 인용노트나 독서노트를 만들어 인용할 경구를 미리 준비해둔다. (p. 201)

그러나 대체로 우리말에서 '-의'는 대부분 '철수의 책'과 같은 소유나 '사랑의 의미'와 같은 종속의 의미로 쓰인다. 그러니까 '-의'를 '하락'과 같은 동작이나 '성실'과 같은상태의 의미를 가지는한자어와 쓸 때에는 이를 '주어-서술어'로 풀어 쓸 수 있는가를 늘 점검해보아야 한다. (p. 326)

2005.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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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공간
미치오 가쿠 / 김영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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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지구(Earth)라는 행성에서 땅에 발을 딛으며 살고 있다. 다시 다른말로, '가이아(Gaia)'에서 우리는 태어났고, 아마도(거의 99.999...%)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어쨌든, 이 '가이아'는 '땅과 대기'를 모체('가이아'는 어머니를 나타내는 여성의 상징으로 많이 쓰인다...)로한 생명론적인 관점에서 본 것이고(그래도 외계인과 조우하여 우리가 사는 이 푸른별을 설명할 기회가 왔을때, 왠지 '지구'라는 말 보다는 '가이아'가 더 잘 어울릴 듯 하다...그 외계인이 칙칙한 행성에서 온 경우에는 더더욱...), 지구라는 이 행성은 우리가 떠나는 날(죽거나, 아니면 정말로 우주함선 타고 지구를 뜨거나...)까지 벗어날 수 없는 공간일 것이다.
 
공간...이 '공간'이라는 단어가 이 책의 주제이다. 물론..제목은 '초공간(Hyperspace : 공간 이상의 공간 쯤..해석 가능하려나?)'이니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물리학자들과 수학자들을 제외하고는...)은 공간 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공간이 무너진다거나, 공간이 휘어진다거나, 공간이 사라져버리는 이와같은 아주 비상식적인 것들은 과학의 개념보다는 초자연 미스테리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누구나 다 마찬가지 일 것이다(그런데..정말로 우리는 휘어진 공간에서 살고 있지 않나요? 우리 지구가 구면체 이니까요..위에서 눌려..좀 찌그러진 구면체...그러니까..휘어진 공간에 대한 인식은 편견에서 비롯..)
 
그런데 예전에 문득 한가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만약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우주에서 유영하고 있는 우리는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일까? 물론 우주인들이 쓰는 물리적 좌표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것을 생각하지 말고, 단순히 일반인이 가지는 상식선에서 우리의 위치를 표현한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지구의 위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구의 아래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구의 옆에 있는 것일까? 표현하기가 애매하다면, 우주에서 유영을 좀 더 해본다고 가정하자. 그래서 그 유영을 통해 지구의 극지방(남극이든, 북극이든) 상공에 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자세를 좀 가다듬어 지구위쪽에 똑 바로 서있어 본다고 했을때. 우리는 지구를 발 밑에 두고 있는 것일까? 다시 자세를 바꾸어 머리가 지구 쪽으로 가게 해보자. 근데..그렇다고 바뀐게 과연 무었인가. 갑자기 회의론적인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물구나무를 서서 지구를 들고 있다는 생각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이런 일련의 어리석은 생각들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좌표가 없을때 생기는 혼란이다. 좌표는 곧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지질학적) 위치 표현(에 대한 정보)을 말한다. 지구에서의 생활은 좌표에 대한 인식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이 공간에 시간을 더한 '시공간 space-time'이라는 개념도 또 다른 좌표이다. 즉, 시간도 곧 위치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알리바이'를 들 수 있겠다. 아무리 공간적인 좌표를 대봐야, 시간개념이 없으면 그 역시 허둥지둥할 수밖에 없다. 특히, 약속이 그렇다. 친구와 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했을때, 시간을 말하지 않았다면, 그 장소에서 24시간 기다리거나 아니면 아예 그 장소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모르는데, 그 장소에 나간다는 것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러니까 '시간' 또한 좌표이고, 좀 말이 우습게 들리겠지 모르겠지만, 일종의 위치이다. 일종의 '비가역적인'(반응이 일어나고 나면 돌이킬 수 없는) 위치가 곧 '시간'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너무 서론이 길어졌다. 그러니까...이런 시간+공간의 기본 개념을 이루는 것은 '차원 dimension'이다. 우리도 흔히 알고 있지 않은가. 0차원은 점이고, 1차원은 선이고, 2차원은 면(혹은 평면)이고, 3차원은 입체 공간(혹은 입방체)이고, 4차원은 시간의 개념이 들어간다면, '시공간'이고 시간의 개념을 뺀다면 (역시 4차원은)미스테리한 세상이 된다. 이런것들을 우리는 역시나 알고 있고,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본능이다(특별한 신경학적 불편함이 없는한...<'올리버 색스>의 책을 읽어봤다면, 질병보다는 불편함으로 인식하는 것이 나을 수 있겠다....).
 
그러니까...5차원 이상부터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다. 혹자는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겠고, 혹자는 컴퓨터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그 이상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역시 이 영역에 들이대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양자나 우주를 다루는 이론 물리학자 혹은 위상을 다루는 수학자, 혹은 좀 더 다른 분야... '피카소'와 같은 공간을 분해해서 평면에 나타내는 초현실주의적 입체파 예술가(맞나?)들이다.
 
<미치오 가쿠>의 『초공간 Hyperspace』은 10년도 더 된 오래된(그렇다고 고전적 '차원'은 절대 아니지만...) 책이다. 초반에는 '차원'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고는 있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은 아니다. 물론 그림들은 나와있다. 그러니까...똘똘말린(혹은 '다시 회귀가능한'...이 얼마나 추상적인가..) 10차원의 공간같은 그림들...상상이 간다면, 대단한 것이다. 그리고 양자나 소립자들의 역사, 블랙홀이나 시간여행(time travel), 워프(warp), 우주여행과 같은 개념들이 나오는데, 이 역시 어느정도 쉽게 설명은 되어 있지만, 요즘의 책들(<미치오 가쿠>의 또 다른 책『평행우주』나,<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와 같은 책들...)만큼의 쉬운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게 그거지만...
 
그러니까..차원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다음에 다른 책을 읽고 리뷰쓸때 쓰고 싶다(그렇다고 '차원'이 무엇이다라고 할 만큼의 지식도 없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차원'은 무었일까? 그리고 차원은 절대적일까? '절대적' 이라는 말이 더욱 중요할 듯 싶다. 솔직히 '차원'의 개념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들 몸소 체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절대적' 차원은 좀 다르다. 우리는 단정짓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차원안에서 차원을 느낄 필요가 없으니까. 특히 거시세계(macro world)나 미시세계(micro world)의 세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일종의 거시세계이다. 또한 뉴턴의 법칙들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주의 세계(COSMOS)는 어떨까? 이것도 거시세계이다. 이 세계야 말로 정말 거시세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세상은 '준 거시세계'...예를들어..'quasi-macro world'정도의 표현이 맞겠다(그런데 아마도..이말은 없을 것이다.. 그냥 이해를 돕기위해..). 우주의 거시세계는 일종의 아인슈타인 영역이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우주를 설명했다는 것 때문에 아인슈타인이 유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미시세계는 어떨까? 미시세계는 양자세계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 가지고는 들어맞질 않는다. 무언가가 모자르다. 뉴턴은 당연히 맞지 않고... 아무튼...우리의 세상은 '준 거시 세계'의 차원이고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느정도 사물을 알아볼 수 있는 아이가 높은 곳에 올라섰다고 봤을때, 그 아이는 분명히 느끼고 있다. 높이에 대한 공포를, 공간에 대한 인식을... 
 
그런데...책에서도 나왔지만, 비행기 날개는 평면이다(두께는 생각하지 말고...차라리 날개 윗부분이라 하자), 그렇다면, 그 날개를 확대해보자. 페인트가 칠해진 그 날개가 과연 평면일까? 계속 zoom-in을 해보면 알 수 있다. 그 속에서도 또 다른 공간이 있으며, 또 다른 차원(3차원이든..몇 차원이든..)이 있다는 것을. 책도 마찬가지이다. 책 종이위(평면)를 확대해보면, 그 속에는 수많은 생명체(일명, 정말 책을 엄청 좋아하는 '책벌레')들이 있을 것이다. 이 또한 또 다른 차원속의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절대적 '차원'에 있지 않다. 이 말을 확대(zoom-in은 아님..)해서 생각한다면... 우리의 3차원적인 공간은 또 다른 차원속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책벌레'가 우리의 공간을 느낄 수 없듯이...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차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책벌레' 또한 우리 공간의 파트너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말은 맞다. '책벌레' 또한 우리 차원(혹은 공간)의 일원이다. 그러나..'책벌레'(가 우리를 느끼지 못하는 것 처럼..)를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정말 또 다른 차원에 있는 것이다. 계속 들어가면, 미시세계의 일이 된다. 어느 순간 이 차원은 우리의 차원이 아닐 수 도 있다(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인생이 확률의 연장인 것 처럼...).
 
마찬가지로 거시세계 또한 우리 차원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슨 차원일까. 이 책에 따르면, 거시 세계, 즉 우주는 10차원이라고 밝히고 있다(물론...11차원이라는 말도 있다. 나 자신도 11차원으로 알고 있었는데...그게 그거다...). 암튼..10차원이라 하니 믿을 수 밖에... 다른 차원, 예를 들어 8차원이나, 15차원은 될 수 없다. 수학적 기교(수학자 '리만'의 기교라 부를 수 도 있겠다...)에 따르면 그렇다고 한다. 암튼...차원은 절대적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편견에 휩싸여 있다는 것.. 이 정도가 대충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영역(혹은 차원)일 듯 ....
 
4차원 이상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도 없으며, 쉽게 상상도 할 수 없다(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표현된다. '고차원 공간을 시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p.28). 오로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해서만 확인 될 수 있다. 그런데...우리가 미스터리하다고 생각되는 차원의 문...이것도 굉장한 과학적 가설이다. 단순히 상상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차원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가 방안에서 담배를 핀다고 가정해보자. 방안의 담배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비가역적인 방향...시간도 비가역적으로 흐른다)방향으로 분자들이 브라운 운동(그러니까 쉽게 말해..제멋대로 운동...)을 통해 확산된다. 그 확산은 결코 3차원적인 것이 아니다. 연기 자체를 우리 공간의 파트너로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연기를 이루고 있는 분자들, 그 분자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 그리고 그 원자를 이루고 있는 소립자들(쿼크..같은..), 그리고 그 소립자를 이루고 있는 그 무언가들...그리고 그 무언가를 움직이고 잇는 그 무언가들..결국...파고들면...어떠한 물질개념을 떠나 진동개념으로 들어서며, 그 진동을 하고 있는 것은 끈(string)이다. 지금의 우주물리 학자들이 우주의 진상규명을 하려하는 것도 이것이다. 끈....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끈(혹은 줄..)과는 조금 다르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초끈(super-string)'이라 부른다. 결국엔 이것들이 진동을 하여..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이것도 확률적이다. 초끈일 수 있고, 아닐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믿지 않을 수 있고...
 
암튼...새로운 차원안에서 진동하고 있는 '초끈'이어야 말로...(뉴턴은 어차피 집어치우고....) 상대성의 세계(아인슈타인의 세계)와 양자세계를 통합하여 설명할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인슈타인은 아인슈타인대로 우주에서 놀고 있고, 양자세계는 양자세계대로 따로 놀고 있다.
 
과학자들(여기서는 물리학자들)이 그렇지만은,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은 단순하다. 단순하다는 것은 단 한마디로 설명가능하다. 예를 들어...E=mc같은 것...혹은 F=ma같은 것... 그런데...이들을 통합시켜 아름다운 수식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야 하는데..쉽지 않다. 아인슈타인도 그의 마지막 30년(꽤 긴 30년이라 할 수 있겠다...)동안 힘의 통합이론을 힘쓰다 아쉽게도 우주인(일부 과학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명왕성 근처에 그-혹은 그녀-의 혼이 모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니까..이 책은 '지금도 우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과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의 연구 과정이나 결과물들을 그린다. 물론, 우주의 기원이나 양자세계를 설명해주는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미치오 가쿠>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법칙은 고차원에서 더 간단하다." 라고...
 
근데...여담이지만..확실히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미치오 가쿠>는 더 고차원적이 된 듯 싶다.
 
그의 또 다른 저서『평행우주 Parallel World』는 더 쉽고 더 간단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덧붙임>
 
1. 이 리뷰는 정확한 리뷰가 아닐 수 있습니다. (이 책 내용에 대한 해석을 제가 잘못했을 수도....)
 
2. 제목이...차원이 뭐냐고 묻긴 하지만, 제 대답은 알 수 없고,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다입니다. 다만, 수식적으로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쪽으로 느끼실 수는 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그래도..차원에 대한 좋은 설명이 들어있는 좋은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 우주 관련 다른 책들을 읽고...계속 이에 대한 생각을 붙이겠습니다. (글이 좀 유치하죠?)
 
4. 이 책은 절판된 책이므로...'차원'에 대한 개념을 떠나..우주를 느끼길 원하시는 분들은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나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나  역시 <브라이언 그린>의『엘러건트 유니버스』나 <샤이먼 싱>의『빅뱅』을 읽어보시는 것이 나을 듯 싶습니다...(이 책은 절판을 떠나..약간은 번역이 부드럽지 못한 듯 싶습니다. 이런 책은 정확한 논리적인 표현이 우선이어야 하는데...가끔..주어나 술어의 관계가 부정확한 것이 종종 발견되더군요...)
 
5. 이 책을 읽고 난 후...읽다 중단된...<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라는 책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2006. 12.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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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피터팬
제랄딘 맥코린 지음, 조동섭 옮김 / 김영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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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0년만에 돌아온 피터팬. 이야기속에서는 20년의 시간이 흐른뒤이다. 20년뒤 네버랜드는 과연 떤 세상이 되었을까? '돌아온 피터팬'은 상상과 모험을 멋지게 그린 이야기이다. 상상하면 음식이 나오고, 요정의 가루를 뿌리면 말 그대로 마법처럼 날아다닐 수 있고, 시간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않으며, 이 모든 상상이 꿈의 공간 네버랜드라는 곳에서 펼쳐진다. 솔직히 피터팬이 돌아온 이야기가 아니라, 전편 주인공들이 다시 네버랜드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난 이 책을 읽은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꼬마가 나한테 이렇게 물어본다면...
 
"형(실은 아저씨쪽에 가깝지만..), 후크가 악어에게 잡아먹힌거 알아?"
 
난 무어라 대답해야 할까?
 
글쎄, 피터팬의 속편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그 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말해줘야 될까? 아니면, 그 꼬마말대로 후크의 최후의 모습에 동의해야할까?
 
그러니까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 책은 '팬픽'에 가깝다고나 할까? 피터팬의 후속 이야기로는 전편의 명성이 너무 크다. 그리고 내 생각이지만...아마도....후속편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다고 할까. 전편을 능가할 것이라고는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후속편을 쓰려면 전편에 결말지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이끌어내기 위한 구실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구실은 꽤 괜찮은 듯 보인다. 흔들리는 네버랜드, 흔들리는 피터팬...
 
꿈과 상상의 땅 '네버랜드', 우리는 꿈속에서 날아다니는 꿈을 꾼다. 꿈은 항상 내가 중심이다. 비록 피터팬과 같이 있더라도 말이지... 그런데 이야기의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 그들의 모험담이 좀 빈약하다. 다시말해 앞서 말했던 그 구실에 관한 설명이 너무 많다. 왜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 꿈속의 모험은 이유가 없는데, 굳이 '왜' 라는이유를 단 모험담이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피터팬만큼이나 꽤 멋진 반동적 인물이 후크다. 오히려 전편에서 후크때문에 피터팬이 돋보였을 정도니까(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후크의 매력은 이유없이 네버랜드의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유가 없다. 그는 해적이고, 또 해적들의 선장이니까. 이것만 가지고도 그는 충분히 악(동)의 이미지를 가진다. 근데 이 후속편 '돌아온 피터팬'에서는 또한 이유를 곁들인다. 왜 그가 나쁜사람이 되었는지, 왜 그가 네버랜드에 왔었는지... 그게 머 중요하다고...
 
그리고 조금 더 맘에 안드는 것은 후크의 변신이다. 그의 변신은 어른인 나에게는 매우 약하다. 내가 어리다고 가정해도, 글쎄..요즘 무수히 쏟아지는 판타지 모험 이야기들 (해리포터등등...)과 비교해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물론 소설의 크기가 해리포터 시리즈와는 비교도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결국, 나의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은 여러 구실들에 대한 조금은 지루하고 약간은 횡설수설적인 점이며, 어느정도라 딱히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부자연스럽다는 것. 그리고 여러 인물들이 가지는 이야기들에 거의 중심점이 없으며, 그냥 방탕해지고, 독선적인 피터팬만을 위한 소설이었다는 것에 있는 듯 하다. 이야기속에서 교훈을 결코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 책을 본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이야기의 구성에는 좀 실망했지만, 그래도 이야기의 내용물...머라 말해야되지? 그러니까...피터팬과 아이들의 상상하는 점이랄까? 이런것은 꽤 맘에 들었다.
 
맨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먹을 것을 얻기위해서는 피터팬이 상상을 해주어야하고, 날기위해서는 요정의 가루가 필요하고, 추운 산속에서 요정이 불을 피워주고, 비록 구체적으로 네버랜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은 잘 나진 않지만, 여러가지 사연이 깃든 지명을 가지고 있는 그곳이 맘에 들었다.
 
청소를 싫어하는 피터팬이 웬디에게 툭 던진 이말..'청소하기 싫으면 악몽이나 쓸어' 이런 말들이 좋았다. 너무 기똥차지 않나? 이 한마디가 얼마나 피터팬이 뚱딴지처럼 행동하는지..그냥 단 한줄의 문장이지만 피터팬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것들이 그나마 이야기속에 집중시키는 감초였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야기는 좀 어수선하지만...
 
그러니까 난 투박한(?) 빵속의 부드러운 크림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피터팬과 아이들의 모험담은 그리 매력있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피터팬의 생각들, 상상들...이런것은 맘에 들었다.
 
2006.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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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마술사 1 링컨 라임 시리즈 9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책 읽으실 분들은 무조건 패쑤~ 하세요...
 
이 글 제목을 '반전의 마술사(= 제프리 디버)가 펼치는 마술의 향연'이라고 적기는 했지만, 사실 반전이 무어냐에 따라 조금 거리감이 있을 수 있다. <제프리 디버>는 말 그대로 반전의 마술사이다 . 그의 작품 속에서 반전이란 시시각각 범인을 지목하는 나침반의 바늘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을 읽어 내려가며, 범인은 이 사람일꺼야..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그 인물이 범인과는 맞지 않는다. 아니, 순식간에 상황이 변해버린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시리즈를 읽다보면 바로 이런 인물들이 소설속에서 겪고있는 상황에 대한 역전 현상이 반전으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 범인과 <링컨 라임>의 두뇌싸움이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사라진 마술사』('디버'의 2003년 작이긴 하지만...)는 상황이 좀 다르다. 범인이 달라짐으로써 반전이 되는 것이 아닌, 범인의 행보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그러니까 범인을 쫒는 주동인물(<링컨 라임>과< 아멜리아 색스>를 제외하고),과 반동인물들이 가지는 상황이 실제로 반전 다운 반전은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으며. 범인은 시종일관 그 '놈'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금까지 나온 몇 편의 <링컨 라임>시리즈는 항상 범인이 변하였다. 그렇다면 작가인 <제프리 디버>는 어떤 식으로 그의 작품의 성격을 유지(독자들이 범인을 지목하게 유도한 뒤, 나중에 그것을 뒤엎어버리는...)하면서, 기존 작과는 차별을 두었을까?
 
그것은 사건의 '범인'의 형체를 숨겨두는 것에 있다. '범인'은 마술사이다(이것은 스포일러는 아님...). 그는 카멜레온 처럼 항시 변한다. 그러니까 범인은 '그 놈'이지만, 결코 전과 똑같은 '그 놈'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프리 디버>의 전작과는 큰 차이점인듯 싶다.
 
『사라진 마술사』로 <링컨 라임>시리즈와 첫 대면하든, 다른 이야기로 대면하든...확실히 재미는 보장된다. 그런데 계속 그의 작품을 읽어와서인지는 몰라도 머랄까...실망스러운 점은 결코 아니지만 기대 이상으로 무엇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 듯 하다. 예전 『돌 원숭이』편을 읽을때에도, 크게 변하지 않는 소설의 형태는 나중에 왠지 '독(毒)'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머랄까...작가의 '매너리즘'이라 해야하나? 아무튼, 그리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면서 까지는 아니었는데,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는 머릿속 다른 한켠에 이러한 생각들이 계속 자리잡고 있었다.
 
<제프리 디버>의 소설 <링컨 라임>시리즈의 주인공인 <링컨 라임>은  신체가 마비되어(가슴 아래쪽부터 전부...) 손가락 하나만을 움직여가며 그의 최첨단 실험실(혹은 병실...)에서 사건을 진두지휘한다. 그의 조력자이자 사랑을 하고 있는 <아멜리아 색스>는 <링컨>의 손발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쉽게 변할 사항이 되지 않는다. <링컨>이 기적적으로 일어서지 않는 한, 이 소설의 구조는 아무래도 이대로 계속 갈 듯 싶다. 그래서 이 소설은 범인의 프로파일링이 중요하며, 사건 현장에서 얻은 단서로 다음 사건을 막으려 하거나, 추격하게 되는데... 문제는 항상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도 지목했던 그 '독(毒)이 바로 <링컨 라임>(혹은 '나는 놈')이다. 그는 비록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소설 후반부에 가서는 항상 범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까..이 시리즈가 거듭되면 거듭될 수록 독자들은 그 독(毒)에 점점 중독되어 소설의 맛을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조금은 염려가 된다(물론 이 시리즈의 세가지 이야기 -『곤충 소년』,『돌 원숭이』. 『사라진 마술사』-가 한 해(2006년)동안 모두 출간되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출간되는 시간 간격이 조금만 넓었더라도 이런 생각은 옅어졌을지도...물론 나를 포함한 그의 책을 빨리 보고 싶은 독자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튼 이번 이야기는 거의 <링컨>에 맞먹는 범인이라는 점, 그리고 그 범인은 결코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 드러냄이 바로 마술의 효과와 같이 쓰였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 같다. 마술을 보여주기 앞서 항상  마술사의 이곳 저곳을 보여주지 않는가(숨긴 것은 없다라면서...). 범인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따라오게 함으로써(마술의 효과와 같은), 범인은 관중(경찰과 <링컨>의 팀들...)의 눈 앞에서 마술의 방법을 부리는 것이다. 홀연히 사라지는...
 
<제프리 디버>는 이 소설을 통해 그만의 보여준 효과와 방법들을 최대한 이용한다. 자신의 소설(<링컨> 시리즈)에서 항상 제한된 정보와 단서로 사건을 미궁에 빠지게 하는 것이 이 소설에서는 '미스 디렉션'(마술을 하기 위해 관중들의 시선을 일부러 다른 곳으로 이끄는 것. 그 짧은 시간 동안 관중은 잘못된 방향으로 시선이 향해 있으며, 순간 마술은 이루어진다. 예전에 -아마 지금도 유효할 듯...- 마술에서 '미스 디렉션'을 이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미녀'이었다)을 이용한다. 그 자신이 소설에 쓰는 기법을 소설 속 인물들이 향연을 펼치는 것이다. 서로 속고 속이고...
 

 
다음 <링컨> 시리즈는 내년 5월 쯤에 나온다는데, 그 때나올 신작은 어느 정도 다른 방향(순전히 독자의 이기심...)으로 전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봐야 내내 '미스 디랙션'과 '효과'와 '방법'들로 이루어져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암튼, 이번 편 역시 정말 재밌는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재미는 보장한다. ~~
 
2006.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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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스티븐 킹의 장편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통 그의 작품들은 영화로 보곤 했었다. 이번 『셀』은 상당히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기전에 이미 읽었었던, 알수없는 '괴물'의 습격을 소재로한 그의 단편 『안개』나 핵전쟁으로 세상이 파괴된 후, 갑자기 출현한 '뱀파이어'와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는 한 남성을 그린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상당히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셀』에 거는 기대는 상당하였다.
 
또한, <조지 로메로>의 『시체들의 새벽 Dawn of the Dead』과 같은 일명 '시체 시리즈'를 책으로 보진 않았지만, 익히 그 명성을 들어왔기에(그리고 '좀비'가 등장하는 영화의 유사 작품들을 흥미있게 봐왔기 때문에...) 이런 여러가지 호러적인 것을 섞어서 만든 『셀』은 무엇보다도 먼저 봐야 할 작품이었다.
 
<스티븐 킹>은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앞서 책의 속표지에 '리처드 매드슨과 조지 로메로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경애의 문구를 써 넣었다. 그만큼 <스티븐 킹> 작가 자신이 이 두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왔고, 후배 소설가로서 이들 선배들에게 굉장한 신뢰와 존경을 듬뿍 보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스티븐 킹>은 <리처드 매드슨>의 작품을 읽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말을 할 정도이기에, 이 두 작가를 이 작품에서 거론한다는 것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창조되었지만, 작품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재미에 대한 보장을 스스로 내비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럴까?
 
그의 전작들을 읽지 않아 머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의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와 비교해도 그의 초반 러쉬는 대단하다. 내가 지금까지 느껴왔던 <스티븐 킹>보다는 한 템포 정도 빠르게 본격적인 궤도에 도달한 듯 싶다. 독자가 주인공을 느끼고, 작가가 주인공을 소개할 틈도 없이 바로 그냥 소설속 태풍에 휘말려버린다. 그의 영원한 테마인 '호러'속으로...
 
한번의 격정이 지나간 뒤(태풍이 휘몰아치고 잠시 숨죽이려 잠잠해진 뒤...), 그의 이야기는 서서히 발동이 걸린다. 그제서야 주인공을 돌아보고, 주인공과 같이 할 주변 인물들도 돌아봐진다. 그리고 소설은 주인공과 그 친구들로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뒤다. 그의 전매특허가 사라지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가서(실은 여기까지가 거의 1권에 해당한다...), 조금씩 의문이 생긴다. 사건의 원인은 <스티븐 킹>의 독자에게 필요치 않다. 그리고 솔직히 그 해결도 필요치 않다. 그러니까 내가 <스티븐 킹>에게 바라는 것은 그의 고유의 필력(筆力)이 들어있는 '전개'이다.
 
근데, 이 소설은 조금 갸우뚱 거린다. 그는 호러 작가이지 SF작가는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SF를 데려와서 호러로 끌어들인 것 까진 좋은데, 과연 이 SF가 가지는 논리의 뒷감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진 의문이었다. 소설은 어느 순간에 휴대전화를 하고 있는 불특정한 사람들이 휴대폰에 나오는 신호에 속박을 당해 그들의 모든 뇌속의 데이터가 포맷되어지는 것으로 시작되는데(여기까진 좋다...), 아쉬움을 느낀 것은 2권을 넘어 중반으로 가면서부터는 사실 이러한 SF적인 소설의 플랫폼이 전혀 필요없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부터이다. 그러니까, <리처드 매드슨>의『나는 전설이다』는 호러와 SF의 적절한 배치로 소설을 이끌었다면, 『셀』은 솔직히 별 중요하지 않은 SF가 호러를 어느정도는 잠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소설의 길이가 길어진다면, 초반 이것저것 늘여놓은 것을 후반에 가서 처리하기엔 벅찰 수도 있다. 하지만, 『셀』에서는 솔직히 늘여놓은 것도 없는데 설명이 부족하다. 물론 『셀』의 완벽한 엔딩을 보려한 것은 아니다(따지고 보면, 이런 소설에서 엔딩은 삭막한 지평선을 떠오른는 태양하나면 충분하다). 단순히,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과의 고군분투를 더욱 보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방적으로 당하던가...아니면 게릴라 전법을 동원하여 좀비들을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던가...이 둘중의 하나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일방적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일방적이지가 않는다. 『나는 전설이다』는 특히, 양 진영(인간 vs 뱀파이어)간의 서로 반복되는 일방적 타격이 상당한 재미를 주었다.  스포일러 때문에 머라 말 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 주인공과 그 친구들, 그리고 좀비가 어우러지며 소설 속 사건이 주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 좀 아쉬웠다.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그 이야기의 전개의 모체 되는 사건들과 이런 사건 전개의 묘사는 탁월했는데, 마무리(사건의 마무리가 아닌, 말 그대로 책의 남은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을 한뒤로...)로 돌아서며, 기대치로부터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셀』을 보길 원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앞서 말한 『스켈레톤 크루』라는 단편집의 첫 이야기인 『안개』의 엔딩을 원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이 소설 『셀』은 나에게는『안개』를 대신한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데 왠지모를 엔딩의 방향은 『안개』마저도 같이 밟아버린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스티븐 킹>은 『안개』를 단편(사실은 중편정도 되는 길이이지만...)으로 놔두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도저히 결말을 지을 수 없다는 심정으로...).
 
 
암튼...<스티븐 킹>이 생각한 엔딩이 최고의 선택일 수 있겠지만, 독자인 나에게는 상당히 약하게 마무리되는 호러라는 점에서 엔딩으로 가는 과정이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이 점때문에 100%의 완성도를 이끌었다고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웬지 모르게 <스티븐 킹>이 이 소설의 작가라는 사실은 마음 깊이 와닿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참, 이 글 제목이 '『셀』,『나는 전설이다』에 대한 오마주? ' 라고 하였는데, 솔직히, 상당부분 『나는 전설이다』의 구성을 따라가는 것 같다. 이 역시 스포일러 떄문에 말을 할 수 잆지만, 세대별로 나뉘어진 좀비가 그 대표적. 『나는 전설이다』에서도 새로운 종(種)이 출현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 두 작품에서 가장 공통적인 키워드는 '생존'이다. 좀비든, 뱀파이어든, 인간이든... 다만, 『셀』에서의 좀비는 한차원 높은 '복제를 통한 증식'이라는 타이틀이 걸릴 듯...이점이 SF를 끌어들였음에도 오히려 호러를 망쳐버린 점이라 못내 아쉽다. 더 이야기하면 안될듯...
 
아무튼 『셀』은 이야기로 빠져드는 몰입도도 높으며, 호러를 일상으로 맞아들인 주인공들의 공허감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나는 전설이다』와 『안개』를 재밌게 보신 분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라고 언급하고 싶다.
 
2006.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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