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하여 - 자유와 탄생편
김유정 지음 / 자유정신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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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면에서는 [나]를 이해하는 것이 [남]을 설명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이야기한다고 할 때 듣는 사람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지는 나도 모릅니다. 그저 내멋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상대방이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 들일 것이라는 착각말입니다.


저자와 함께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렵니다. 저자는 이 책이 사흘의 여정에서 변화된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멀리서 한 사람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조용히 오두막 카페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삶의 예지자(叡知者), 붉게빛남으로 불리고 있었다."


여기서 '붉게빛남'은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열심히 달려가고는 있으나, 그 방향이 맞는지 어떤지 확실하게 생각되지 않는 세 사람이 '붉게빛남'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 온 것입니다. 저자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들의 표정과 대화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마치 내기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양쪽의 모습을 잘 관찰하고 있습니다. 장기판과 다른 점은 훈수를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들으며, 바라보며 조용히 느낄 뿐입니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잘 살다 가는 삶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요?  그대 지금 잘 살고 있으신지요?  돈 걱정 없이 산다면 잘 사는 것일까요? 같은 이야기지만, 성공적인 삶은 어떻게 그려질까요?  '붉게빛남'이 이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한 삶은 대부분 부도덕적이고 어리석은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 그들을 성공했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부도덕이 통용될 정도로 권력과 재력을 갖추어야 하고 자기 자신을 잘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빠야 한다. 그러므로 성공한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적용되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잘 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산다는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성공가도에 있는 사람 또는 성공했다는 사람(사실 본인은 여전히 달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하겠지요. 욕심은 끝이 없기에..)들은 타인의 눈과 마음에 억지로 투영을 시키지요. 그 모습이 본인의 맘에 안들게 비쳐지면 본색이 드러나게 되지요. "내가 누군지나 알고 그러는거야!"


다른 사람들을 다 속여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속이는 나와 그것을 알아채는 나 중에서 누가 [나]인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안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가 되기도 합니다. 장소가 옮겨집니다. 멘토 주변에 멘티들이 더욱 많아집니다. 보다 깊은 질문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독자인 나는 저자보다 조금 더 떨어진 위치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습니다. 가끔 저자의 표정도 살펴가면서 말입니다. 고등학생 때 철학의 내음을 풍기기 위해 "군중속의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뜻도 깊이 생각안하고 입으로 떠든 적이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진정한 '고독'의 의미도 모른 채 말입니다. 감옥에서 독방에 가둘 때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이 나온다지요. 겁에 질려 있다가 결국 미치던가 또는 깊은 사색의 즐거움에 잠기던가 둘 중 하나라지요. 요즘 스맛폰 덕분에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그것을 그 손에서 뺏고 아무것도 없이 혼자 며칠씩 가둬놓으면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요? 그래도 혼자서 잘 놀 자신이 있으신지요? 


'붉게빛남'은 우리 삶의 고귀함을 유지하기 위해 "현 시대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귀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 쓸모없는 말들에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이제 우리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잘못된 지식으로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의 입을 다물도록 하는 것이다. 사유의 시간을 주기 위해, 중요한 것, 고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기 위해." 내 입부터 막아야겠습니다. 


'붉게빛남'은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그 스스로는 쓸모 있는 말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때 귀를 막아야하는지(또는 눈을 감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더러 진부한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광산에서 다이아몬드를 캘때 다이아보다 돌이 훨씬 더 많습니다. 책을 보면서 다이아를 발견하는 심정으로 봅니다. 


"친구들이여! 인간 일반이 즐거움을 느끼는 원인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함에 기원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는 것보다 자신의 존재를 표출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그러나, 자기 표출을 통한 만족은 지속성이 결여된 순간적 자기 만족임을 잊지 말라. 자기 표출을 통한 자기 만족(즐거움)은 타자(표출대상)로부터의 도움 없이는 성취 불가하다는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얼떨결에 따라나선 '나'를 찾는 여행. 참 버겁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듣다보니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우아함, 예술, 의지, 창조적 힘, 교육, 통합 세계, 지식, 학문, 권력, 미(美),이상, 음악과 감성, 철학, 시, 시인, 인식 등등 단어 하나만 갖고 씨름 하기에도 힘이 딸립니다. 이틀 째쯤은  그만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저자와 함께 또 다른 청자가 되어 자리를 지켰지요. 끝까지 자리 하기를 잘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내용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회복력''항상성'입니다. 나의 마음, 우리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없이 무너져 내렸다가 일어서곤 합니다. 단지 내색을 안 하고 지낼 뿐이지요. 무너져 내린 마음은 때로 맥없음으로, 때로는 짜증으로 주위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지요. 다시 일어서지 못하면 정말 힘든 상황, 어둠의 골짜기로 스스로 걸어갈 수도 있기에 꼭 일어나야만 합니다. 회복되어져야만 합니다. 여인의 곱고 아름다운 가슴을 잘 감싸주고 있는 그 무엇처럼 형상을 기억하는 합금이 내 마음에도 자리를 잘 잡고 있어야 합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힘든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지를 잘 해야겠지요. 지금까진 순전히 나의 생각이었고..'붉게빛남'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시겠습니까.


"나의 벗이여! 우리 인간에게는 두 가지 고귀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회복력과 항상성이다. 인간은 자신의 자아가 파괴되는 듯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더라도 자아는 자기 회복력에 의해 다시 복원된다. 이 회복력에 대한 근원적  힘은 모계로부터 물려받은 자기 보존의 본능이다. 자아 파괴의 순간, 인간은 이 생존 본능에 의해 자기 자신을 복원시켜, 그 파괴의 소용돌이로부터 출구를 스스로 찾아낸다.(.....) 인간의 독특한 개성과 성상 유지의 근원은 바로 회복력과 항상성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닙니다. 다녀왔습니다만, '나' 를 찾았다고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이 여정은 이 땅에서 호흡하며 살아가는 동안 계속 가야할 길입니다. '불게빛남'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나에게 던져주는 숙제입니다. 그대도 한 번 떠나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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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상 끝에서 외박 중 -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 <남극의 눈물> 김진만 PD의
김진만 지음 / 리더스북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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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이런 말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방송국의 PD를 칭할 때 한글의 '피디'를 적용해서 (피)곤하지만 (대)단한 직업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물론 '대단한'이라는 부분은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PD의 영역과 역량은 대단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자 김진만 PD는 대학 재학중 고시에 패스해서 모범적이고 착한 법관이 되려던 꿈을 접고, 보다 가슴 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불현듯 피디가 됩니다. MBC에 입사해서 예능국, 교양국, 시사제작국, 편성국 등을 두루 거칩니다. 그가 다큐멘타리 피디로 지내는 동안 정글 한복판에서 원시의 삶을 살아가는 조에족과 남극 대륙에서 홀로 겨울을 견디는 황제펭귄을 만납니다. '지구의 눈물' 시리즈 중 하나인 [아마존의 눈물]은 한국 다큐멘타리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합니다. [남극의 눈물] 역시 많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 극장판 3D 영화 [황제펭귄 펭이와 솜이]로 재탄생됩니다. 


이 책은 저자가 다큐멘터리 피디로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특히 지구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방송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사연들, 화면 뒤편에 숨어 있는 웃음과 눈물, 고난 등을 일기 쓰듯이 솔직하게 드러내며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애초에 계획한 대로 실현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무수한 선택의 순간이 주어졌고 그 순간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가슴 뛰는 일을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저자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대의 권력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각계각층의 전문가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최고 스타들의 삶을 따라가 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장 감동적인 사람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들이었다고 합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남을 위해 헌신하고 세상을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고 교훈이었다고 합니다. 


아마존의 많은 부족들이 문명화에 휩쓸려 그들의 역사마저도 상실되어가는 시점에, 자신들의 전통을 꿋꿋이 지켜가며 올곧게 살아가는 조에족. 사냥을 해도 절대 무리하게 하지 않는다. 딱 먹을 만큼만 합니다. 시간 약속을 할 땐 손으로 태양의 고도를 가리킵니다. 하늘의 중간을 가리키면 낮 12시지요.


아마존의 또 다른 부족 자미나와족의 무궁한 약재 활용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이름 그대로 생약입니다. 단적인 예일 수도 있겠지만, 알라시아라는 자미나와족 여인의 이야기는 문명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문명인가 그 반대인가 말입니다. 알라시아는 페루에서 온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합니다. 도시에 가서 생활하던 중 자궁암에 걸립니다. 죽더라도 고향에 가서 죽겠다고 친정 아버지곁으로 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 치료, 약초치료로 병을 깨끗이 고친 후 새 추장이 됩니다.  그리곤 본인처럼 도시로 향한 부족민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귀향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습니다. 촬영팀은 눈을 질끈 감고 악어 고기도 먹습니다. 그들의 만찬에서 인상을 쓰고 앉아 있을 수가 없지요. 

 

비록 언어가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지만, 사람의 마음은 어디나 똑같습니다. 진심과 진실이 있으면 안 될 것 같던 일도 됩니다. "소통을 하려면 진심으로 다가서야 한다. 그리고 연애처럼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해야 한다. 가식적인 모습은 상대가 귀신처럼 알아챈다. 진심이 통하면 기대 이상으로 그들과 가까워지면서 훨씬 깊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김피디는 '열바다'에서 '썰렁해'로 무대를 옮깁니다. 남극으로 날아갑니다. 이미 남극에는 여러 나라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각 나라들은 언젠가 나눠 가질지 모를 남극의 영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군요.  이 중 아르헨티나가 막대한 국가지원으로 이미 1952년부터 사람이 살기 힘든 땅 남극에 유일한 인간 마을 에스페란사를 건설한 것은 참 선견지명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남극에 간 김피디는 아델리 펭귄과 황제 펭귄들을 밀착 취재합니다. 특히 황제 펭귄들이 암수가 만나 짝을 짓고 알을 부화시키고, 키우는 과정은 정말 눈물겹습니다. 아마도 사람은 그렇게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들은 알을 발등으로 받아 4개월 동안 눈만 먹으며 암컷들이 바다에 가서 영양보충을 하고 다시 돌아 올 때까지 키워야합니다. 바닥에 떨어뜨리면 다시 발에 올리지도 못하지만 수 분 내로 알이 얼어버린답니다.

 

책을 참 재밋게 봤습니다. 촬영팀은 취재 기간 300일 동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겠지만, 프로그램을 보고, 책을 읽는 재미는 참 쏠쏠합니다. 제법 많은 사진들이 글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제작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글도 잘 쓰네요. 읽으면서 미소를 짓게 만드는 부분이 제법 많았습니다. 저자가 책 말미에 적은 부분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때론 사람이 세상의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역시 사람이 희망일 수밖에 없다.

황제펭귄이 황제펭귄답게 살아가려면 조에족이 조에족답게 살아가려면 사람들이 저마다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오늘 내가 기록한 조각들이 누군가에게, 그리고 세상에 자그마한 희망과 치유의 힘이 되어 주길 바랄 뿐이다."

 

지구는 여전히 둥급니다. 제목으로 쓰인 '세상 끝'은 사실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원의 특징이자 장점이지요. 굳이 이 책을 읽기 전이라도, 힘들고 어려운 지금 그 자리가, 그대가 다시 시작하는 '스타트 라인'이 되길 소원하는 마음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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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체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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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장 보드리야르(1929~2007)는 사회학과 철학의 변방에 머물면서 어느 한 곳의 집단에 포함되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현대사상의 경향과 유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리를 확보한 사상가이자, 끊임없는 도전과 도발을 시도한 급진적인 이론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보드리야르의 글쓰기와 사유는 헤겔, 마르크스, 니체, 하이데거 등의 독일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마르크스 자본주의 비판을 소비 사회의 상품, 패션, 미디어, 광고, 성 등과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사회 조건과 상황에 비추어 마르크스 이론을 재구성합니다. 기존의 이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론가이자 현대성에 뛰어난 해석자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분야는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분리 시킬 수 없는 유, 무형적 테마들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인, 분위기, 자동차, (골동품) 수집, 애완동물, 손목시계, 로봇, 소비, 신용, 광고 등등입니다.

 

저자는 독자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일상의 사물은 증식하고, 욕구는 증대하고, 생산은 욕구의 탄생과 죽음을 가속화하며, 사물에게 붙일 어휘는 부족해졌다. 우리는 급격히 변화하며 묘사적 체계에 이르는 사물의 체계를 분류할 수 있을까?"

 

또한 사물이 어떻게 존속하게 되는지, 사물이 기능적인 욕구 이외에 어떤 다른 욕구에 따르게 되는지, 어떤 정신적 구조가 기능적 구조와 뒤얽히고 어긋나는지, 사물의 일상성이 어떤 문화적(하위문화적 또는 초문화적)체계 위에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거울'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거울의 사회심리학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전통적인 농민층은 거울을 무시하는데, 아마 거울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울은 약간 마법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실제 일련의 가구로 꾸며지는 부르주아의 실내에는 벽, 옷장, 식기대, 찬장에 거울이 달려 있습니다. 요즘은 냉장고에도 조그만 거울이 달려서 나오지 않던가요. 광원처럼, 거울은 방에서 특별한 장소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부분들이 거울은 부유한 가정의 어디에서나 잉여, 여분 , 반사라는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맡는다고 합니다. 즉, 자신의 특권을 행사할 기회, 즉 자신의 이미지를 증대시키고 자신의 부를 즐기는 기회를 제공하는 풍요로운 사물이라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의 삶에 비해 현대인의 삶은 영혼의 움직임과 사물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분위기'의 세계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염려합니다. 즉, 현대적 '실내'의 외면화된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는 내면화된 분위기가 사라졌다는 것이지요. 광고는 도처에서 장식의 새로운 유행을 강조하고, 조장합니다. '당신의 아파트 베란다를 더 넓게 사용하세요!"

 

소유에 집착하는 사례 중에 '수집'이 있습니다. '수집' 취향을 나쁘다고만 볼 수 없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선 수긍이 갑니다. 저자는 모든 사물은 두 가지 기능을 갖는다고 합니다. 하나는 흔히 쓰이는 것(실용적)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되는 것입니다. 전자는 주체에 의한 세계의 실제 총계의 영역에 속하고, 후자는 세계를 벗어나 자기 자신에 의한 주체의 추상적 총계의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기능은 서로 반비례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 실용적인 사물은 엄밀히 사회적 지위를 갖습니다. 예를 들면 '기계'가 있습니다. 반대로 기능이 없거나 그 사용이 모호한 순수한 사물은 엄밀히 주관적 지위를 갖습니다. 바로 그것이 수집의 대상이 됩니다. 모리스 렝스의 말을 인용합니다.  "수집의 취미는 일종의 정욕적인 유희다." 

 

'소비'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소비를 하려면 수중에 돈이 있어야겠지요. 소비는 대부분 물질 곧 사물입니다. 소비를 통해서 그 사물이 나의 '소유'가 됩니다. 저자는 사물은 '행해진 일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집을 포함해서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 몸에 걸치는 것, 탈 것, 당장 필요는 없으나 사 두는 것 등등 모든 것이 그 대상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장차 획득할 것을 꿈꾸면서 일을 합니다. 즉 삶은 노력과  보상이라는 엄격한 방식으로 체험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획득된 사물은 과거에 대한 보상과 미래에 대한 보장을 나타냅니다. 요컨대 사물이 자본이 되는 것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소비의 행태는 결국 기호를 소비한다는 담론을 제시합니다. 사람들은 TV나 인터넷의 광고가 전해주는 기호를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비의 사물이 기호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지요. 여기엔 사물의 기능을 기호로 보고 소비를 사회의 언어활동으로 보는 기호학적 사유가 깔려 있습니다.  이 책의 메인 테마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일련의 작업은 물질문화의 기호학과 일상생활의 상품화 사이의 관계, 즉 일상생활의 변화에 대한 감수성에서 촉발된 일상성에 대한 분석과 소비 상품과 기호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장 보드리야르의 비망록에 담겨 있었음직한 글을 인용하며 리뷰를 마무리 합니다. 

 

나는

20세에는 파타피지시엥,

30세에는  상황주의자,

40세에는 유토피아를 꿈꾸는자.

50세에는 횡단하는 자,

60세에는 바이러스성을 지니고

계속 정신을 억압하는 자였다.

 

 

P.S  :  '파타피지시엥'... '파타피지크'(pataphysique)는 [Encyclopaedia Britannica]에 의하면 '복잡하고 기발한 넌센스 논의'라고 되어 있군요. 저자는 프랑스 태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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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식, 세계 최강의 팀을 만드는 힘
야스다 유키 지음, 곽지현 옮김 / 에이지21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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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 폭력 문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습니다. 그 주제들이 학교 담을 넘어 책으로, 영화로 제작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해결해보자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관계의 훈련과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학으로, 사회로 나오게 됩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나 자신을 훈련시키는 것, 직장이나 사회에서 적응하는 법을 강조하지만, 정작 친구와 동료간의 관계 형성에 대한 지혜를 전해주는 책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야스다 유키는 사람이나 조직의 연결 방식을 고찰하는 '사회 네트워크 분석'이 전문입니다. 네트워크의 형태가 사람이나 조직에 미치는 영향력을 대학과 기업, NPO등과 연계하여 연구중이라고 합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모델 케이스는 일본의 국민 만화인 [One Piece]입니다. 1997년부터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가 된 국민 만화라고 합니다. 2011년 8월 현재 63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63권은 초판으로 390만부가 발행되었고, 이는 만화책뿐만 아니라 일본의 모든 서적 부분에서 신기록이라는군요. 63권까지의 누계 발행부수가 2억 4천만 부라고 하니, 실로 대단합니다.

 

저자는 이 만화가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분석해본 결과 '원피스'의 중심 테마가 '동료'이기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내 아들도 루피 같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자가 NHK방송에서 진행한 "만화 [원피스] 대박의 비밀" 프로그램중 어느 주부의 말이라고 합니다. 주인공 루피는 밀짚모자 해적단의 선장이라는군요.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동료'란 그저 무리지어 움직이는 피동적 상황이 아니라, '꿈을 공유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꿈의 공감대가 커질수록 동료가 많이 늘어나겠지요. '동료 파워'라는 표현을 씁니다. '동료를 모으는 방법', '동료와 서로 돕는 방법', '동료와 신뢰를 쌓는 방법', 동료와 함께 성장하는 방법'이 그것입니다.

 

최근 SNS 덕분에 온라인 친구가 수백, 수천 또는 그 이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찬, 반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온라인 친구가 살아가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반대하지도 못합니다. 긍정적인 면도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동료의 숫자가 아닌 동료의 질'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는 오프 라인 친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지요. 그러나 온라인 친구에게도 적용되는 말인 듯 합니다. 페북을 열심히하다 어느 계기를 통해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상처받은 마음, 우선 문을 닫아 걸고 생각해보자는 이야기가 됩니다.

 

살아가면서 도움을 줄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복(福)입니다. 단지 물질적인 도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벼랑 끝에 서 있는 절박한 마음뿐일 때, 내가 손을 내밀어 붙잡고 싶은 마음의 손. 그리고 그 손을 붙잡아 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때로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담긴 생각이나 절망적인 말, 위기 상황에서 구원을 요청한 동료에게는 반드시 대응한다."

 

살아오면서 위기 상황 때마다 뜻밖의 사람들을 통해 도움을 받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럴때마다 찬찬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나는 누구에게 절실한 도움을 준 적이 있었던가. 내가 받은 도움을 꼭 그 사람에게 갚을 상황이 못 된다면, 다른 사람이 힘들어할 때 나 역시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줘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경우에 합당한 말을 보태주고 있습니다. "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알게 모르게 도와주고 싶은 존재가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사실 '동료'라는 존재는 야누스적인 상황입니다. 서로 도와주는 협력 관계이자, 경쟁 상대입니다. 입사 동기가 승승장구 앞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 편해 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내색을 안하고, 혼자 삭히며 칼을 갈던 무대를 옮기던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료들과(그리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 선, 후배들과도) 함께 나아갈 때 좀 덜 힘이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상사에게 받는 비난과 불이익은 뒷 담화로 풀지언정 동료간의 불협화음은 힘들지라도 서로 마음을 의지하며 견뎌낸다면 시간이 지난 다음엔 '그땐 그랬었지" 하는 시간이 마련되겠지요.

 

책에 언급된 '코카 콜라' 광고를 보았던 기억이 떠오르며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유투브에서 조회수가 꽤 많았었지요. "The Coca Cola Friendship Machine."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구요. 이 광고에 등장하는 코카콜라 자동판매기는 일반 자동판매기의 2배 이상 되는 높이였습니다. 혼자서는 돈을 넣는 투입구에 절대로 손이 닿지 않습니다. 누군가와 협력해야만 합니다. 목마를 타거나 기마전 할 때처럼 여러 명이 한 명을 들어올려서 콜라를 구매합니다.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도 친구들은 그저 즐겁습니다. 어렵사리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1캔 가격에 2캔의 콜라가 나옵니다. 그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모르지만, 환한 미소와 동료애를 느끼게 하는 CF 였습니다.

 

국민 만화로 불리우는 인기 만화를 텍스트로 해서 그 인기의 비밀을 분석하는 것. 이를 일상에 끌어들여 교훈으로 삼자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문득 이 만화 [원피스]의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집니다. 만화가는 창작과 그림 그리기의 두 가지 재능을 가진 사람인데, 이 만화가는 현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화두인 '소통''나눔'에 깊은 관심을 지닌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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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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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두움에 빛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 /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 기도문이 떠올랐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평화의 기도" 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제불황은 우리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각 기업은 명퇴의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스피노자를 만나봅니다.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수학책을 방불케 하는 공리와 정의, 증명들로 가득합니다. 이 건조한 윤리학의 주제는 우리의 감정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인의 열쇠는 감정에 있습니다. 감정이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용에 대한 표현이지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연적인 외적 원인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상태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더 나은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쁜 길을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수동적 신체를 능동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는 스피노자가 [에티카]에서 보여준 다소 난해한 기하학과도 같은 문장들을 '치유의 방법론'으로 만들어보겠다는 구상을 하게 됩니다. 스피노자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의 셀리 케이건 교수에게 하는 말인듯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자유인은 죽음을 성찰하지 않으며, 그(자유인)의 지혜는 삶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셀리 케이건 교수가 한 마디 안 하고 지나갈 사람은 아니지요.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우리는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고시원. 그저 앉아서 책을 볼 공간과 누우면 더 이상의 여백이 없는 곳. 스피노자는 이 시대의 외로운 사람들, 때로는 좌절의 무릎을 꿇고 누군가 일으켜 세워주길 기다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위로해주기 위해 매일 밤 성냥갑 같은 고시원의 우중충한 화장실에 나타납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각 질환을 앓고 있는 대상들은 바로 우리의 이웃들입니다. 20대 백수, 학업과 친구들과의 건강한 관계가 힘든 여고생의 우울증, 감시받고 있다는 피해망상증, 가족이 나를 구속하고 있다고 믿는 신경증, 몽크와 같은 강박증,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과대망상증, 성적으로 또는 물건에 대한 도착까지 포함하는 도착증, 느닷없이 찾아오는 불안감과 발작의 공황장애, 현실을 외면 또는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던 것이 중독이 되는 경우, 집착을 넘어 넘어 경계선 인격 장애, 기분의 업 앤 다운이 심한 조울증, 모든 것이 나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의 관계망상, 광기가 드러나는 분열증 그리고 끝없는 공포감 등.


어쩌면 우리 모두는 위의 증상을 몇 가지 브렌딩한 칵테일을 가끔 한 잔 씩 목으로 가슴으로 넘기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의 일상이 우리의 평정심을 흩어놓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저자가 이런 증상들을 나열하면서 현학적인 설명만 늘어놓았다면 이 책은 참으로 무거운 주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그리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이웃입니다. 겉으론 매우 평범해보이는 그 사람들입니다.


등장 인물 중 '상시로 우울증 약을 지니고 다니는 소녀'를 만나볼까요? 

우울증(憂鬱症, depression)은 병리적인 수준의 우울한 상태를 말합니다. 일시적으로 우울한 기분을 느끼는 우울감과는 다르지요. 우울증에 대해선 각 나라마다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그 미케니즘이 명료하게 밝혀지진 않은 상태입니다. 워낙 그 기저 원인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지요. 여고 1년생인 이한별. 어느 날 저녁 이 소녀는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하나를 계산대에 올려 놓지만, 편의점 알바의 눈에 소녀의 점퍼 안에 소주로 추정되는 물체가 숨겨져 있다는 의심을 받자 가방을 던져놓고 도망을 갑니다. 가방안에는 우울증 약과 함께 다량의 수면제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자를 통해 스피노자는 마음의 감기라 불리우는 우울증에 대한 처방을 내려줍니다. 


"사람들은 삶을 살아가는 내재성의 차원을 갖습니다. 이 내재성의 차원은 관계 맺기의 차원을 의미하며, 관계는 사랑과 욕망을 형성합니다. 부부, 가족, 학교, 감옥, 병원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갖게 되는 생각은 그것이 어떤 관계 맺기인가에 달려 있지 개개인의 마음 상태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어서 스피노자는 사람은 어떤 관계를 갖느냐, 어떤 식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정서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답니다.  따라서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울감을 만들어내는 관계로부터 벗어나거나, 색다른 관계를 맺어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결코 녹록하지 않은 현실이 큰 걸림돌이지요. 상대방이 부모일 경우, 내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의 상사인 경우 등..어쩔수 없이 감당해나가야 하는 관계일 경우가 문제이지요. 그렇게 되면 관계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욕망은 감소되고 위축되며 우울해질 수 밖에 없지요.


스피노자의 말이 이어집니다. (책에 등장하는 스피노자의 말은 저자 자신의 직설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에티카]에 씌여져 있는 글들을 현대적 해석으로 집어 넣은 것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세상에는 그런 예속된 관계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색다른 것, 특이한 것이 생성되고 창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것은 사랑과 변용의 힘이겠지요.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색다른 아이디어가 생기고, 어떤 말이든 자꾸 건네고 싶고, 그 사람과 무엇인가 창조해 보고 싶은 생각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서의 기쁨만이 아니라, 창조와 생성의 욕망이 극대화하는 경우겠지요. 저는 그런 관계의 차원이 공동선에 기반한 민주적 관계망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관계에 사로잡혀 꼼짝 못하거나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는 새롭게 배치되고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관계의 차원을 바꾸어야 우울한 감정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습니다. 자유인이라면 자신의 관계를 선택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는 셈이죠."


에티카 본문을 인용해보겠습니다.  [3부,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중 정리 19에 나오는 말입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파괴되는 것을 표상하는 사람은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유지되는 것을 표상한다면 기뻐할 것이다.'  자신의 활동 능력을 촉진하고 증대시키는 것은 기쁨이겠지만, 자신의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고 억제시키는 것은 슬픔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기쁨을 가져다주는 관계를 찾아나서라는 조언을 해주는군요. 관계의 배치를 바꾼다. 슬픔의 관계를 떠나서 기쁨의 관계 속으로 떠난다. 이 떠남이 결코 셀프서비스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럴 때 바로 우리가 주는 위로의 말과 손내밈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쇼생크 탈출'처럼 드라마틱한 상황만이 필요할 수도 있지요.


책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굳이 [에티카]를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에티카]를 아직 구경도 못했다고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책에 그 엑기스가 녹아있으니 그냥 책을 읽으면서 간간히 스피노자를 만나보시면 되겠습니다. 옴니버스 형식의 글들을 읽으면서 '철학' 열차를 탑승한다 생각해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단, 스피노자가 우리의 눈물을 닦으라고 건네주는 손수건은 그(스피노자)가  안경 세공을 하다가 건네주는 것인만큼 대충 닦는 시늉만 하시고 꼭 되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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