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여인의 편지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441
프랑수아즈 드 그라피니 지음, 이봉지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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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제국은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잉카 제국의 행정, 정치, 군사의 중심은 지금의 페루인 쿠스코입니다. 안데스 문명은 BC 약 1,000년 경 현재 푸나라고 불리는 페루의 고원지대에서 싹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초기의 잉카족들은 유목민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01년 페루의 새 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마추픽추 산정에서 두 팔을 펼쳐 취임의식을 치뤘습니다. 원주민 출신 첫 대통령으로서 잉카제국의 영광을 기리는 사진이 신문을 장식했습니다. 마추픽추는 '하늘의 정원', '공중 도시'로 불리는 수수께끼의 유적입니다. 해발 2,280 m 산 꼭대기에 세워진 계단식 성곽과 터, 누가 언제 왜 이런 신비스러운 건축물을 어떻게 세운 것인지, 어찌하여 사람이 절멸하고 폐허만 남았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1535년 소수의 스페인 군대가 정복해버린 잉카. 잉카 제국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왕권 다툼과 내분이 거대 제국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합니다. 



           from  "National Geographic"

           


잉카 제국과 마추픽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이 소설의 배경이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47년에 출간된 이 책 [페루 여인의 편지]는 프랑수아즈 드 그라피니의 18세기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영어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인기에 영합해 다른 작가들에 의해 속편까지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대학의 프랑스문학 교과과정에 필수적인 작품으로 포함되기도 했답니다.


18세기 이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던 두 가지의 문학적 전통인 애정소설이국취미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질리아는 페루 잉카제국의 방계공주로 태양신을 섬기는 처녀들의 수장이며 또한 페루의 왕위 계승자 아자와 정혼한 사이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식 날 아침, 그녀가 살고 있던 태양 사원에 난입한 스페인 군인들에게 포로로 잡혀 유럽으로 끌려갑니다.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녀는 약혼자 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그들의 행복을 회고하며, 그녀의 사랑과 그리운 마음을 토로합니다.  


"아자! 사랑하는 아자! 당신의 연인 질리아의 외침은 당신에게 닿기 전에 아침 안개처럼 흩어지고 맙니다.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내게 달려와 사슬을 부숴주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헛될 뿐입니다. 아! 어쩌면 내가 모르는 끔찍한 불행이 닥쳤는지도 모르겠군요. 만일 당신에게 더 큰 불행이 닥쳤다면..."


주인공 질리아는 그녀의 불안하고 암담한 마음을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될 연인 아자를 생각하며 치유와 인내의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편지가 엄밀한 의미에선 편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종이에 쓴 것이 아니고, 페루의 전통적 수단인 퀴푸를 사용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페루인들은 예로부터 색색의 끈 같은 것으로 매듭을 만들어 문자 대신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을 기록(표현)하기 위해선 엄청난 매듭이 필요했겠지요? 과연 인질로 잡혀간 처지에서 매듭의 재료인 색끈이 얼마나 제대로 공급이 되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만듭니다만..소설이니까. 이해해야겠지요. 이 소설은 또한 몇몇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 뒤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역사 소설도 아닌데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출간 초기 당시에 독자들은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설의 내적인 진실이라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에서 소설을 읽어나갑니다. 


첫 편지는 스페인 군인들이 학살을 자행하고, 신전을 더럽히고, 신전 곳곳에 있는 귀한 장식물들 중 특히 금으로 된 것들을 탈취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벽에 입힌 황금 판까지 모두 벗겨내는군요. 질리아는 신전에 숨어 있다가 그  혼돈의 와중에 틈을 내어 도망치려 던 중에 잡히고 맙니다. 왕비의 복장으로 넘었어야 할 문을 질리아의 눈엔 야만인으로 보이는 그 무리들에 의해 질질 끌려나오게 됩니다. 그 때 질리아는 퀴푸(매듭)를 소지하고 있었군요.  "아, 사랑하는 아자! 내 마음 속에는 사랑하는 영혼이 느끼는 온갖 고통이 다 모여 있어요. 당신을 보면 그런 것은 깨끗이 사라지련만!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어요."


이 소설엔 연애 편지를 쓸 때 도움이 될 만한 인용문들이 많습니다. 정서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아, 다행히 질리아의 편지(키푸)가 감옥의 창문을 통해 밖에 던져 놓은 것을 그것을 아는 누군가가 주워 아자에게 전하고 '온갖 지혜와 방법'을 동원한 아자의 답장이 질리아에게 전해집니다. 아자의 답글은 간단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매듭 짓는 솜씨가 서투른 듯 합니다. 질리아의 글이 계속 이어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당신 덕택이라는 것을 나는 결코 잊지 않습니다. 사실 당신이 좋아하는 나의 장점은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 장미의 화려한 빛깔이 햇빛 덕택이듯이 당신이 좋게 생각하시는 나의 정신과 감정의 매력은 모두 당신의 예지(叡智)덕택입니다. 내게 고유한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내 삶의 빛이여, 죽어가는 나를 살린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만일 죽음이 당신과 나를 한 번에 거둬 갈 것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나는 결코 삶을 보존하려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질리아는 프랑스로 끌려갑니다. 그녀의 편지 글이 프랑스 사회에 대한 관찰과 비판으로 넘어갑니다. 이국취미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는 분위기로 연결됩니다. 이 소설의 역자인 이봉지 교수의 해설에 의하면 프랑스 문학사에서 이국취미에 대한 관심은 크게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적으로 나뉘어진다고 합니다. 즉, 유럽 외부 세계의 문물소개와 비유럽인에 의해 관찰된 유럽 사회 묘사입니다. 이 [페루 여인의 편지] 이전에 출간된 이 경향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1731년 출간된 아베 프레보의 [마농 레스코]가 있습니다. 그 후에 나온 작품들 중엔 볼테르의 [캉디드]가 있고, 외부인에 의한 유럽 사회 관찰의 범주에 속하는 소설 중엔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 편지]가 거론됩니다. 


주인공 질리아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이는 그 당시 프랑스는 그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폄하 현상입니다. 불합리한 여성 교육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 여성에게 불공정한 결혼 제도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성인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고 합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이 소설이 18세기의, 그리고 프랑스 문학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소설의 하나로  인정받게 된 것은 여성 문제에 대한 이러한 심층분석에 기인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랑수와즈 드 그라피니는 1695년 당시 독립국이었던 로렌 공국(현재 프랑스 사북부 로렌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같은 지방의 귀족인 프랑수와 위게 드 그라피니와 결혼했으나 금전 문제와 남편의 폭력 문제로 불화. 이들 부부 사이에 세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모두 유아기에 죽었다고 합니다. 냠편 역시 7년간의 별거 생활 끝에 사망합니다. 볼테르의 도움을 받으나 불편한 관계가 발생되어 파리로 이주하게 됩니다. 편치 못한 파리 생활 중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했고, 이 [페루 여인의 편지]는 그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습니다. 이 작품은 초판 이후 30년 동안 46판이 출간 되었다고 합니다.  


"존재의 즐거움, 많은 눈먼 인간들이 잊어버린, 심지어는 아예 모르고 지내는 이 즐거움, 내가 있다,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이 감미로운 생각, 이 순수한 행복을 기억한다면, 그것을 즐길 줄 알고, 그 가치를 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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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3 -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3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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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내다볼 수 있는 안목을 키운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변화의 템포가 빠른 시대에는 특히 그러합니다. '란도샘'은 참 재능이 많으신 분 같습니다. 그 분은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라고 하시겠지만, 그 결과물을 놓고 볼 때 노력만 갖고 이루기엔 많은 업적이 쌓여지고 있습니다.

 


2013년,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라고 시작하는 2013년을 내다보는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13년 전망입니다. 역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경제입니다. 사회문화적으로 2013년은 조용한 한 해가 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규모가 큰 세계적 행사들이 비켜가기 때문입니다.

 


경기가 침체되고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 사회문화적 행사가 적으면, 시장 트렌드는 호황의 열기나 거대행사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비자와 기업들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형성해나가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2013년에는 더욱 빠른 눈치와 동작으로 트렌드 변화에 촉각을 기울여야 한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이야깁니다.

 


2013년으로 무대를 옮기기 전에 저자는 먼저 2012년 대한민국 소비자 어떻게 살았나? 에서 2012년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역시 사건이 많은 한 해 였습니다. 2012년은 가히 '힐링 신드롬'의 해였다고 하는 점에 대해 공감합니다. 힐링이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상처받고 힘든 마음들이 많다는 이야기겠지요. 치유와 보살핌이 많이 요구되었다는 것이지요. 힐링 서적, 영화, 연극, 음악 등을 통해 '비움 뒤에 채움'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싸이'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군요. 복고열풍, 남성상과 여성상의 변화 등은 앞으로도 수명이 길것 같습니다.

 


자, 그럼 2013년은 어떻게? 저자는 2013년의 소비트렌드 키워드를 뱀의 해에 걸맞게 COBRA TWIST 라고 썼습니다. "불확실성의 2013년을 잡아낼 승리의 필살기"라는 타이틀이 붙습니다.

그저 문자만 갖고는 감이 잘 안잡히는 단어들이지만, 각 키워드의 첫글자를 조합해서 만든 트렌드 키워드입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독자들에게 승리의 '필살기'를 전수해 드리고자 하는 소망을 담았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 선 사람들의 도시.  난센스의 시대. '스칸디맘'이 몰려온다.  소유냐 향유냐.  나홀로 라운징. 미각의 제국.  시즌의 상실.  디톡스가 필요한 시간. 소진사회.  적절한 불편 등입니다.

 


저자는 다시 이 10대 키워드를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1) 계속 날카롭고 치열해지는 한국 사회의 변화   (2) 그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몰두와 침잠으로 대응하는 개인적 대처 그리고   (3)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대두 등입니다.

 


'스칸디맘'(Scandimom)이 궁금하시지요? 공감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스칸디맘'은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북유럽식 자녀 양육법을 추구하는 30대 젊은 엄마들을 가리킵니다. 극성스럽고 과도하게 경쟁적이었던 육아환경에서 벗어나 자녀와 질적인 정서적 교감교육을 추구하고, 자녀와의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것이지요. 상당히 해피한 변화입니다. 자녀를 통해 엄마의 자아를 채우려는 '엄마의 행복'이 아니라 '자녀의 행복'으로 교육철학을 바꾸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진작 그랬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듭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좋습니다. 힘내십시다. 스칸디맘!

 


2013년 트렌드 중에 나홀로 라운징(Alone with lounging)이 있습니다. '라운지'에 '나 혼자'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사람을 만나고 가볍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라운지에 ing를 붙인 용어입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인간관계의 폭은 넓어졌지만, 그 안에서 공허를 느끼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개인적 노력을 '라운징'이라고 부른답니다. 편히 기대어 발까지 걸칠 수 있는 휴식용 의자. 라운지체어의 판매량이 늘고 있답니다. 자연스럽게 솔로 이코노미의 성장이 가세하고 있습니다. 나홀로족의 증가를 통해 새로운 쇼핑 문화가 창출되었던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더욱 증가될 추세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신간 서적 중에 '남자의 공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만, 책이 유혹을 하고 있습니다. 저 처럼 머리가 허연 한 사내가 소파에 누워 두 다리를 펴고, 팔베개를 하고 누워있습니다. 부제는 '남자는 행복한 혼자를 꿈꾼다" 입니다. 저도 꿈을 꿔보렵니다. 소문은 내지 말아 주십시요.

 

 

리뷰가 좀 길어졌지만, 한 가지만 더 살펴볼까 합니다. 한국에서 독일로 날아간 철학자(한병철)가 현대사회를 비판한 [피로사회]를 출간해서 많은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비록 책 안은 못 들여다봤지만, 제목만 보고도 "그래 맞아! 진짜 피곤해~". 피곤한 일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건만 이젠 '현대인들이 모두 수용소에 갇혀 있는 것'처럼 된 상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2013년 트렌드 중에 소진사회(Surviving burn-out society)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불금'이 성화입니다. 중고생들 사이에선 각성효과가 있다는 고카페인 에너지 드링크가 인기입니다. 극장과 커피 전문점은 24시간 스탠바이 상태입니다. 열정이란 미명아래 스스로를 '과잉'의 상태인 '소진사회'에 휩쓸려 지냅니다. 이어지는 것은 탈진입니다. 방전상태입니다. 2013년 대한민국은 탈진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들 이야기처럼 멀리 내다보라고 손짓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오늘의 모습이자, 내일의 모습입니다. 이미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지만, 2013년에 더 두드러지게 나타날 현상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2007년 부터 해온 이 작업. 해가 갈수록 자체 평가하는 트렌드 키워드의 예측력이 좋아지고 있다는 점은 그 만큼 공을 들인다는 것이겠습니다. 더구나 올해부터는 [트렌드 코리아]의 영문판을 발행하고 해외수출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하니 축하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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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 성장의 종말과 세계 경제의 미래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노승영 옮김 / 부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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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교과서가 없어진다고 합니다.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동안 어느새 새로운 지식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경제학'분야에서 두드러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경제학 분야가 다른 어떤 사회과학 분야보다도 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동원해 논리적으로 이론을 전개해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과연 앞으로도 그렇게 잘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단지 경제학 분야에만 국한 시킬 수는 없겠지요.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도움을 줄 수 있는 통합된 지식이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요즈음입니다.


저자인 리처드 하인버그는 경제학자인 제임스 K. 갤브레이스의 거의 양심선언적인 말을 인용하면서 그의 생각과 논리를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경제학계를 주도하는 학자들은 (...)중요한 정책 사안에서 매번 잘못된 선택을 했다.(....)이들이 예언하는 재앙은 결코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으리라 말하는 사건은 반드시 일어난다. 가장 기초적이고 타당하고 현명한 개혁에 반대하고, 그 대신 위약(僞藥)을 처방한다. 경기 후퇴처럼 곤란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언제나 화들짝 놀란다."


결론 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면서도 충격적입니다. 우리가 알던 경제 성장은 끝났다. 아니 결딴났다 입니다. 물론 지역이나 국가나 산업에 따라 당분간 성장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다른 지역이나 국가나 산업은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가능한 성장은 '상대적 성장'뿐입니다. 세계 경제는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으며 승자들이 나누어 가질 몫은 줄어만 갑니다.


저자는 앞으로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은 다음의 세 가지라고 합니다. 

@ 화석연료와 광물을 비롯한 주요 자원의 '고갈'.

@ 자원의 채굴과 이용 - 이를테면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 - 으로 인한 '부정적 환경 영향'의 확산.

@ 기존의 통화, 금융, 투자 시스템이 자원 고갈과 치솟는 환경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지난 20여년 동안 쌓인 막대한 정부, 민간 부채가 도를 넘어 - 경제가 위축하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다 - 발생하는 '금융 붕괴'.


이 정도로 그치면 다행인데, 살아가면서 당장 몸으로 부딪는 일들이 더욱 문제입니다. 더 안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 기후변화 때문에 국지적 가뭄, 홍수, 심지어 기근이 일어난다.  - 에너지, 물, 광물이 부족해진다.  - 은행 도산, 회사 부도, 주택 압류가 속출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암담한 소식만 접하게 되면, 그나마 삶의 희망과 의욕을 잃을까 염려가 되는지 그래도 위로의 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성장이 계속 될 수 없는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우울해진다. 하지만 이 심리적 장애물을 넘으면 꽤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 성장이 종말에 이르렀다고 해서 반드시 삶의 질마저 종말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경제가 성장하지 않더라도 신나고 안전하고 보람 있게 사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성장이 끝장난다고 해서 변화나 개선까지 끝장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장하지 않는 경제 또는 평형 경제에서도 손재주, 예술적 표현, 기술 등은 끊임없이 발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는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서의 삶보다 평형 경제(equilibrium economy)에서의 삶이 더 나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장은 일부에게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경쟁을 부추기지요. 누군가는 완승하고 또 누군가는 완패하는 와중에 공동체 안의 인간관계가 허물어 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는 점입니다. '더 많이'가 아니라 '더 낫게'를  추가하는 삶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무작정 경제 활동을 증가 시킬 것이 아니라 소비를 부추기지 않으면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경제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7 챕터로 나누어 그의 논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먼저 경제사와 경제학의 기초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경제 성장이 휘청거린 이유를 세계 통화, 금융 시스템 내부에서 찾고 있습니다. 경제가 회복하여 다시 성장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금융 시스템 외부에서도 찾고 있습니다. 효율과 대체 논리.  세계 경제 성장이 주춤하면서 인구 통계, 세계 발전, 화폐 전쟁, 지정학적 경쟁 등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파헤칩니다. 그 다음엔 성장 의존형 경제에서 위축하는 경제 또는 정상 상태 경제로의 불가피한 전환을 무난히 수행하기 위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상황 변화를 대비하고 탈성장, 탈탄소 경제와 생활 방식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개인과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을 논의합니다. 희망적인 신호이자 기회로서 전환 운동과 공동안보클럽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국제 유동성 증가'와 '자산버블' 그리고 금융위기의 확산과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가 그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된 저금리 기조로 인한 국제유동성 증가는 훗날 글로벌 금융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부동산 가격 급등 등 자산 버블의 매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특히 감독 및 평가 체계의 미흡으로 자기 통제력을 상실한 주요국들의 금융 시스템과 리스크 고려가 미흡한 다양한 파생상품들의 양산이 자산 버블의 촉매제로 작용했다는 분석입니다. 이처럼 내실에 기반하지 않은 자산의 버블은 결국 붕괴로 이어졌고, 이와 연관된 많은 금융기관들이 부실화되거나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된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이러한 원인이 결국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로 이어지게 되면서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 '금융불안과 실물경제 위축'의 진행 과정이 형성됩니다. 


그렇다면 외국의 전문가들이 보는 금융 위기는 어떨까요?  마이클 쿰호프와 로맹 랑시에르는 국제통화기금 보고서 [불평등, 레버리지, 위기]에서 금융 위기의 단순한 모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1) 불평등이 커지면 중산층의 소득이 감소하고 부유층의 소득이 증가한다.  (2) 중산층은 소득이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도 생활 수준을 계속 향상시키려고 부자들의 돈을 빌린다.  (3) 이를 중개하려고 금융 부문이 팽창한다.  (4) 결국 신용 위기가 발생한다.  이 역학 관계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에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삶은 속도를 올리는 것이 다가 아니다.        - 모한다스 간디 (민족 운동 지도자)


저자는 책의 상당 부분에서 암울한 경제 전망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참으로 한숨만 쉬다 말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대안과 희망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미래의 경제적, 환경적 위기를 대비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 결속력을 다져야 한다고 합니다. 공동체의 연대를 다지고 지켜 내기가 사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과 친하게 지내기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정치, 종교, 문화를 공유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힘든 시기가 닥칠 때 서로 기댈 언덕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안면을 트고 신뢰를 쌓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정자나무 가지치기를 어떻게 할지 묻거나 텃밭에서 남은 채소를 나눠 주는 등 무난 한 것부터 시작하기 바란다는 충고를 주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복원력"을 위해서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 운동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화된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뜻이 모아져서 '공동 안보 클럽(Common Security Club)'이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점차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채택한 클럽이 많아지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이 공동 안보 클럽은 세 갈래 전략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 공동 학습.  - 상호 부조.  - 사회 참여  등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 앞에 놓인 미래는 정치 지도자들이 단타성으로 제시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를 것입니다.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의 손자, 손녀가 맞이할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는 지금 그 누구도 선명하게 그려 낼 수 없을 것입니다. 한시적인 우리 삶에서 그저 내가 숨쉬다 가는 그런 세상으로 마감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의 아이들 그리고 그 후까지도 좀 더 평안하게 살게 되는 지구별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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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의 일본어 클리닉
이동근 지음 / 시사일본어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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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한자로 써 있는 것을 보면 대충 그 뜻이 감이 잡히지만, 막상 그것을 발음할 때 혼란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한자가 같으니 그 뜻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대방이 전혀 알아듣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발음이 안 좋아서 그런가 했더니 경우에 맞지 않는 표현을 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다른 일본어 교재와 차별화된 편집이 되어 있습니다. 크게 3장으로 나뉘어 있군요. 같은 단어 다른 뜻, 일본에는 없는 단어, 약어 및 외래어 등입니다. 이런 부분들은 다른 교재에선 챕터와 챕터 사이 쉬어가는 코너 형식으로 본 기억이 납니다만, 이 책에선 이 세 기둥을 통해 좀 더 일본어와 친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의료계 종사자이기 때문에 의료 계통의 이야기가 나오면 더욱 주의를 기울여 공부를 하는 편입니다. 우리말에서는 '몸의 건강상태를 검사하는 것'을 "건강검진", "성인병 검진" 또는 "건강진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몸의 건강상태를 검사하는 일을 "建康珍斷"이라고 표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이 사용하는 건강검진이란 진찰 및 각종 검사를 통하여 건강상태 전체의 정도를 평가하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健珍" 혹은 "建康審査"라고 표현 한다는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檢診"이란 암검진과 같이 처음부터 일부 장기에 대하여 이상 유무를 체크하여 정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이라고 일본인들도 자주 쓸 것이다라는 생각 자체를 주의해야겠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교복(校服)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선 학생들이 입는 옷을 "制服"이라고 합니다. 물론 일본어 사전에 엄연히 校服이 있지만, 일상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이랍니다.  "교복"의 사전풀이가 "학교에서 학생들이 입도록 정한 제목"이라고 합니다. 


약어 및 외래어. 인터넷의 광역화로 축약된 단어들이 마구 양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셀폰의 문자 보내기와 맞물려서 점점 약어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일본어의 특징 중 하나는 외래어를 많이 사용하며, 나아가 그 외래어를 줄여서 사용함으로 독특한 자신의 언어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이 책의 장점은 일본인들의 일상 생활이 우리와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설명해줌으로 실제 일본을 여행하거나 잠시 거주를 하게 될 때 유용한 tip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얼마전 TV에서 일본의 음식문화와 그 언저리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우리하곤 다르구나 하는 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부부와 아들 즉, 가족들이 운영하는 장어집을 봤는데, 새삼 알게 된 것이지만, 일본에선 우리나라 만큼 배달음식이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 프로그램에선 배달이 일반화되지 않은 메뉴인 장어를 그 식당의 아들을 통해 배달을 하면서 매출이 몇배로 향상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일본인들은 주로 피자나 소바, 꼬치 등이 대표적인 배달 음식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실제 일상에서 활용도가 높은 유용한 표현들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일본어의 기초가 잡히신 중급 수준 정도의 분들에게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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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러스 마너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조지 엘리엇 지음, 한애경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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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기 초반, 사일러스 마너라는 이름의 리넨 직조공이 지금은 버려진 채석장의 바위 웅덩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즉 래블로라는 마을 근처의 멋진 덤불 사이에 있는 오두막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소설의 무대인 래블로는 새 시대의 조류에 물들지 않고 아직도 구시대의 메아리가 많이 남아 있는 마을입니다. 그렇다고 이 마을이 문명 세계 밖에 있어서 말라빠진 양떼나 목동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런 쓸쓸한 교구는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이 마을은 '살기 좋은 영국(Merry England)'이라 불리는 비옥한 평원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영적인 면에서 보자면 내실 있는 십일조를 내는 농가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사일러스 마너가 래블로에 온 지도 15년이 흘렀습니다. 당시 그는 그저 툭 튀어나온 갈색 근시안의 창백한 젊은이였지요. 그의 외모는 평범한 교양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별로 이상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이주해 살게 된 마을 사람들에게는 직조공이라는 특이한 직업이나, 그가 미지의 '북쪽'지방 출신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뭔가 신비하고 특이한 느낌을 주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래블로에 오기전 사일러스 마너의 삶은 활발한 육체적 활동과 정신적 활동, 그리고 친밀한 우정으로 나름대로 풍성한 삶을 살고 있었지요. 그러나 다윗과 요나단 같은 친구 사이로 불리웠던 믿음의 형제 윌리엄 데인에게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윌리엄 데인은 그에게 도둑 누명을 씌우고, 그의 약혼자까지도 가로챕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지요. 그가 래블로에 와서도 마을 사람들과 융화를 못하는 이유는 그의 마음 상처가 그 만큼 깊기 때문일것이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사일러스 마너가 마법의 힘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어느날 신발 한 켤레를 고치러 나갔다가 불가에 앉아 있는 구두장이의 아내가 심한 심장병과 수종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측은지심으로 그 여인을 바라보던 그는 같은 증상을 갖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갑자기 떠오르게 됩니다. 그는 간단히 조제한 디기탈리스 풀을 먹고 그의 어머니가 효험을 봤던 기억이 난 것이지요. 결국 사일러스 마너의 '신비로운 약'을 먹고 여인의 병이 회복되는 사실이 온 마을에 퍼집니다. 


이 쯤에서 이 소설의 저자인 조지 엘리엇(George Eliot, 1819~1880)을 소개하겠습니다. 19세기 영문학 사상 중요한 작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황무지]를 쓴 T. S 엘리옷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지 엘리엇은 19세기의 영국 소설가이고,  T. S 엘리옷은 20세기 미국의 시인이지요.  조지 엘리엇은 여류 작가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편견 때문에 본명인 메리 앤 에번스(Mary Ann Evans)라는 이름 대신 조지 엘리엇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합니다.  조지 엘리엇은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국내엔 이 책 외에도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미들 마치], [아담 비드] 등이 번역 출간 되어 있습니다. 


사일러스 마너와 그 주변에 많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마포 직조일로 벌어들인 금화를 혼자 밤마다 세어보며 불빛에 비춰보는 일이 그에겐 큰 낙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그 금화를 도둑맞게 됩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어느 결에 다른 쪽 문이 열린다는 말대로, 은둔형 외톨이나 다름 없던 그에게 마을 사람들이 살갑게 대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잃어버린 금화를 잊지 못해 마치 금화가 제 발로 문을 열고 들어오길 바라는 그런 심정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가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장작을 다시 모으려고 몸을 구부린 순간, 희미한 그의 눈에 벽난로 앞 마룻바닥에 금화 같은 것이 보였다. 금화다!  내 금화가 돌아왔다! (....) 금화 더미는 혼란스러운 그의 시선아래 빛나면서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침내 앞으로 몸을 구부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손에 익은 테두리의 딱딱한 금화 대신에, 부드럽고 따뜻한 곱슬머리가 그의 손가락에 닿았다.(...)그것은 잠이 든 아기였다. 온통 부드러운 금발 곱슬머리의 동그랗고 예쁜 아기였던 것이다."


누군가 혼자 사는 그의 집안에 아기를 두고 간 것입니다. 금화가 아닌 금발 머리 아기를 말입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갈앉히며 상념에 젖습니다. 어쩌면 이 어린애가 그의 저 머나먼 과거 삶에서 그에게 보내진 메시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경외감과 신비감에 젖어듭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아이가 내 집에 들어왔나 살피던 중, 아이의 엄마가 그의 집 근처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가 제 발로 그의 집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어쨌든 사일러스는 아이(에피)를 키우면서 그의 상실된 마음도 치유되어 가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제는 돈 버는 일에 목표를 갖게 해 주던 돈더미 대신에 다른 무언가가 찾아와서, 그의 희망과 기쁨을 끝없이 돈 이상의 다른 것으로 이끌고 갔다."


그는 에피를 통해 이웃들, 즉 레블로 마을 공동체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인간에 대한 신뢰와 사랑 및 공통체와 관계를 회복하게 됩니다. 16년 전 마을에서 행방불명 되었던 던스턴이 채석장 옆 물웅덩이에서 발견되면서, 사일러스의 금화를 훔친 것으로 판명됩니다. 그 외에도 어린 아이 에피 주변의 사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이 작품은 크게 두 개의 플롯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류층과 하류층, 19세기 초 발전하는 산업도시와 조용한 농촌사회 등의 대조 등입니다.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게 서술 했습니다만, 여러 인물들의 등장과 배경 속에서 나타나는 것, 특히 사일러스의 정신적 회복은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인간관계가 갖는 치유력'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소 권선징악적인 도덕적 해석으로 귀결됩니다. 옮긴이인 한애경 교수는 엘리옷의 이러한 점이 워즈워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공감합니다.


낭만주의자인 워즈워스는 그의 시 [마이클(Michael)]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쇠락해가는 사람에게, / 세상이 줄 수 있는 모든 선물보다 더 많은 것, 

 즉 희망과 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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