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학교 가는 길에 길가 화분에 심어 놓은 '나리'를 보았다. 활짝 피어 있었고 주황색이었다. 습관적으로 카메라에 담았는데, 마침 학교에 꽃꽂이 수업이 있어서 꽃꽂이 선생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름을 물었다. '나리'네요. 구근식물입니다. 몰라서 물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꽃을 보면서 속으로 습관적으로 '나리'가 피었네. 했던 터였다. 그래, 그렇다. 알았는데, 왜 물었던 걸까. 이 꽃이 '나리' 인 것이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나리는 나리이되 뭔가 다른 복잡한 이름이 있을 것 같았다.
같은 날 학교 화단에 원추리가 피어 있었다. 원추리는 너무 흔하고 꽃치고는 사람의 눈길을 덜 잡아 끈다. 왠지 깔끔한 맛도 없고, 선명한 색에 비해서 화려한 맛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소박한 멋을 풍기는 꽃도 아니다. 보통 무리지어 피는데, 한 여름 내내 구석에 한 번 자리를 잡으면 끝도 없이 꽃을 피워 올리는 참으로 끈질긴 녀석이다. 이제 피기 시작했으니 아마 늦여름까지 줄기차게 꽃을 피워 낼 것이다.
그리고 백합, 이 녀석을 본 순간 떠올린 이름은 백합(百合), 백합이라는 이름은 땅속의 비늘줄기 여러 조각이 합쳐져서 하나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얗다고 붙여진 이름, 백합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주황나리를 보면 나리라는 이름이 떠오르고, 백합을 보면 백합이라는 이름이 떠오른다. 백합이 릴리지 아마..나리도 릴리 아닌가 결국..이런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물어서 오늘 족보를 따져 보았다.
'나리' 로 검색을 해도 '백합'으로 검색이 뜬다.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 백합속(Lilium) 식물의 총칭, 영어 사전에 검색을 하면 a lily. 그니까 나리가 릴리인거고 릴리가 나리인거다. 찾아 놓고 보니 넘 당연했던 사실이고 몰랐던 것 같지도 않다. 이제 피기 시작하는 구근류 나팔 모양의 꽃들을 보며 속으로 나리네, 백합이네, 그 어떤 단어를 중얼거려도 된다.
하얀색 백합을 보며 나리네. 해도 틀린 말이 아니고, 주황나리를 보며 백합이네 해도 맞는 말이다. 그런데 원추리는 백합목 백합과이긴 해도 자생종. 백합은 북반구 온대에 70종~100종이 있다고 검색되는데, 아마도 더 있지 않을까. 원추리는 어린 싹을 나물로 먹어도 되고, 백합류들의 뿌리들은 모두 식용가능이다.
5월에 섬의 길가에 아무렇게나 많이 피어 있어 깜짝 깜짝 놀라곤 했던, 앗, 저런 류의 꽃은 왠지 유럽의 깨끗하게 가꾸어진 정원에서나 볼 수 있는 꽃이 아닌가했던. 아마릴리스는 이름에 릴리가 들어가긴 하지만, 수선화과,
그리고 제주 곳곳에 이제 막 피기 시작했을 아가판사스(agapanthus). 식물화가들의 단골소재이자, 꽃집에서 절화로 판매도 하고 아프리칸 릴리로 불리는 이 아이도 결국은 릴리였던 거다.
릴리든 백합이든 나리든, 그게 그거라는 거. 아가판사스, 아마릴리스, 다 복잡하다. 이제 속편하게 스윽 훑어 보며, 릴리! 그러고 말아도 되겠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이 구근류의 아름다운 꽃들이 이제 막 앞다투어 피기 시작했다는 건 이미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거고, 여름은 눈으로 즐기기도 호사스러운 계절이라는 게,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쥐어짜인 치약 껍질 같은 그런 기분으로 길거리를 헤매거나 말거나. 여름은 이렇게 나리나리, 릴리~릴리~ 한 계절인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아무리 나리나리 릴리~릴리~ 해도, 당장 이 순간은 아침에 먹을 오이껍질을 까러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나의 '현실'이고 그 쯤은 나도 엄격하게 인정하고 있다. 는 얘기를 하느라고 나리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아닐진대. 늘 결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