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산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난 임산부도 청소년도 아니다.   

폐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어차피 죽을때는 다 병으로 죽는다. 

늙으면 몸은 고장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는 동안 즐겁게 살란다. 무슨 원인으로 저 세상에 가게 되던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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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1-21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너무 많이 피진 마십시오. 안 좋은 건 사실입니다.

플라시보 2010-01-21 14:51   좋아요 0 | URL
네. 알고는 있는데 쉽지가 않네요. 글만 좀 안써도 덜 피울텐데 말입니다. 쩝 ㅠㅠ
 



(밖에서 비교적 멀쩡한 모습으로 일하는 중) 

가끔 정신없이 원고를 쓰다가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일 할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휴가 가서 놋북과 고속도로 휴계소에서 일하고 있는 중.)
 

(이게 완전 하이라이트. 정말이지 이마를 훌러덩 까고 저러고 있는 모습은 내가 봐도 좀 무섭다. 매우 바쁠때는 주로 저런 형상으로 앉아서 일을 한다.) 

일하는 모습이 멋있다는둥 일하는 당신이 아름답다는둥 하는 말은 

내가 볼 때. 다 뻥이다.  

뭔가에 몰입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대게 얼빵해 보이거나 멍때리고 있는것 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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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겠지만  

내게는 이른바 뾰족 구두로 불리우는 하이힐형 구두가 하나도 없다. 

겨울에는 어그 부츠와 납작한 세무가죽 부츠로 버티고 

봄, 가을에는 운동화와 남성용마냥 투박한 구두로 버티고  

여름이면 샌들이나 버켄스탁 쓰레빠를 끌고 다닌다. 

(비가오면 왕왕 장화도 신는다.) 

 

오늘 쇼핑을 하러 갔다가 

양가죽이라 엄청 부드럽다는 점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서 

뾰족한 하이힐을 샀다. 

킬힐 까지는 아닌데 

맨날 낮은 굽의 구두만 신던 나에게는 '킬' 그 자체였다. 

 

점원의 말과 달리 

신고 하루종일 여기저기 뛰어 다녔더니 

어느새 내 발등은 상처 투성이가 되었다. 

다행스러운건 뒷꿈치는 전혀 까지지 않았다는 것. 

이 신발이 나에게 길들여지려면 얼마나 걸릴까? 

혹은 내 발이 이 신발에게 길들여지는 걸까? 

새로산 신발은 예쁘기는 하지만 

언제나 내게 그것에 합당한 적응의 고통을 안겨준다.  

구두 하나에 적응하는데도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사람에게 적응하려면 대체 얼만큼의 시간이 걸릴까? 

적응했다고 믿었는데 

어느순간 보면 딴 사람 같이 멀리 느껴질때, 

나와 꼭 맞는다고 생각했고  

서로에게 충분히 길들여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걸 느꼈을 때. 

그럴때 나는 생각한다. 

새 구두 보다 헌 구두가 좋고 

새로운 사람 보다는 옛날 사람이 좋다고... 

그래서 그런가? 

요즘은 자꾸 옛날 사람들만 만나게 된다.  

그것의 익숙함과 편안함이 

나를 다른 곳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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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이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사이코패스 같은 인간들은 거의 변하지 않지만 

(단, 그들도 처음 태어났을때 부터 교육을 철저하게 하면 변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것- 을 습득하고 지킬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보통 인간들이 가지는 도덕성이나 양심의 문제가 아닌 어디까지나 교육에 의한 학습일 뿐이다.) 

그런 인간이 아니라면 나는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나쁜 일을 저지른 사람이라 하더라도 

반성을 하고 뉘우칠 수 있다고 믿는다.  

 

나 역시도 참 많이 변했다. 

아직까지 괜찮은, 혹은 좋은 인간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부족하겠지만 

굉장히 모나 있었던 부분들이 조금씩 둥글어졌고 

사람을 미워하는 쪽 보다는 사랑하는 쪽을 택하려고 노력한다. 

 

변하지 않는 인간은 무섭다. 

자기안의 틀에 갖혀서 외부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혹은 내면의 어떤 변화도 꾀하지 않는 

그런 인간들은 좀 무섭다. 

간혹 이렇게 세월이 흐르건, 어떤 일을 겪건 전혀 변하지 않는 인간들을 만날때면 

좀 안됐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가 아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고  

자기의 행동은 늘 정당하다고 믿고 

남들은 다 틀렸거나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인간들. 

이런 인간들은 자기 위에 사람 없고 자기 밑에만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한다. 

 

되도록이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왜냐면, 나 자신도 일단 남에게 상처를 받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싫은건 남들도 싫은거다. 

좋은게 좋은거다라는 식의 삶의 태도를 굉장히 싫어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좋은게 좋은거란 생각이 든다. 

그나마 이렇게 바뀔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남을 굳이 아프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렇게나 늦게 깨달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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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혹 가다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자기의 모든걸 던져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사랑? 

글쎄다.  

이젠 사랑이 대체 무엇이더냐 할 지경이다보니 

연애에 대해 늘 얘기해야 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연애의 중심핵인 사랑에 대해 의구심마저 드는 실정이다.  

하도 오래되어 거의 다 까먹은 

너무 오래 방치되어 먼지가 다 덕지덕지 앉은 

그런 감정. 

그게 지금 내가 생각하는, 혹은 내게 전부인 사랑이다. 

 

그런데 말이다. 

굉장히 가끔씩 (이게 중요하다.) 

매우 매우 드물게 (이것 역시 중요하다.) 

사랑에 내 모든걸 확 던져버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약간은,  

혹은 일부는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던져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던진다는게 좀 뭣하면 약간 내어놓기? 양보하기? 포기하기? 

등등등등 

뭐라 불리우든 암튼 그렇게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여기에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 

나는 던지시겠다는데 

상대가 아니 받으시겠다면 어쩌지? 

아하하 

쓰고보니 사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받고 안받고간에

아예 상대가 없다는거지, 

그런거지, 

이건 된장. 

하고 싶어도 나는 못한다. 던지건 받치건간에 

받아줄 누군가가 없다.  

그렇다고 기억속에 유령처럼 존재하는 그들을 불러내어 

다시 이 한몸 불사를 마음을 먹는다면 

달아야하리 달아야하리 

머리에 꽃 달아야 하리 

것도 알록달록 아주 컬러플하고도 정신사납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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