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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미친 짓이다
주디스 워너 지음, 임경현 옮김 / 프리즘하우스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과거 결혼은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말을 하면서 내가 늘 예로 든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엄마가 나에게 한 일들을 나는 똑같이 자식에게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목욕을 할때마다 꽃잎을 뜯어넣어서 컬러 감각을 키워주던 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설사 당신이 낮잠을 주무셨을 망정 책을 손에 들고 읽는 척이라도 하셨던 일. 거기다 초등학교에 나오는 모든 과학실험은 집에서 직접 해 본 일 등등. 일일이 손꼽고 나열하기조차 힘들만큼 엄마는 완전하고 완벽했다. 엄마의 인생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는 언제나 우리들이었고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주 가끔 나는 그런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당신의 인생을 위해 애쓰거나 노력하는게 아닌, 드러내놓고 너희들이 잘된다면 지금 나는 사지가 다 뜯겨서 죽어도 괜찮다는 것을 공공연히 말할때면 고맙다기 보다는 섬뜩함을 느꼈었다. 우리 엄마는 마치 엄마가 되기 위해 이땅에 태어난 사람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엄마라는 역활을 그 어떤 사람보다 열심히 해냈다. 물론 엄마의 노력만큼 우리가 잘 되었더라면 이 스토리는 행복하게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애를 쓴 엄마 밑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들과 별반 다를바 없거나 오히려 훨씬 못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엄마가 당신이 엄마의 역활을 얼마나 애써서 해냈는가를 말씀하시기 위해 자주 비교하는 대상은 바로 이모였다. 이모는 평생 직장이 있었고, 직장 때문에 아이들 교육 문제랄지 사사로운 일들에 대해 거의 무심할 정도로 사셨다. 그러나 이모네집 아이들은 모두 빗나갈꺼라는 엄마의 예상과 달리 이종사촌들은 모두 멀쩡하게 잘 자랐다. 그리고 겉으로만 보자면 이종사촌들은 여동생과 나 보다 훨씬 더 잘 나간다.
여태까지 내가 읽었던 모든 엄마에 관한 이야기들은 모두 어린시절 엄마가 얼마나 아이에게 지극정성을 쏟고 애를 써야 하는가에 대해, 혹은 그러지 않았을경우 그 아이는 십중팔구 범죄자, 정신병자, 사회의 낙오자가 된다는 것들 뿐이었다. 세상은 엄마탓을 하기로 작정이라도 한 것 처럼 그렇게 우리가 기억도 할 수 없는 유아기를 거쳐 태내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엄마들에게 똑바로 잘 할 것을 강요했다.
엄마들은 최고가 되기 위해 늘 애쓴다. 아이에게 좀 더 나은 환경과, 교육여건을 제공하고자 자신을 끊임없이 희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덧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여자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그 이전에 그녀가 어떤 일을 했건 어떤 사람이었건간에 그 모든 것들은 다 거세를 당한채 오로지 엄마라는 역활만이 기묘하게 강조된다.
이 책은 완벽한 엄마 신드롬이 얼마나 교묘하게 생겨난 것인지를 말한다. 그것은 단지 관습이나 문화가 아닌 정치와 경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모성 신화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말한다. 아무도 도전할 수 없으며 도전해서는 안되는 모성 신화. 그것 때문에 오늘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오로지 엄마의 역활만을 완벽하게 수행할것을 강요 당하는지를 얘기한다.
여자라면 누구나 어떤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래봤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되겠다기 보다는 아이를 어떻게 내 마음대로 키우겠다는 바램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피아노를 시켜야지, 바이올린도 시키면 좋을꺼야, 나처럼 수학을 못하지 않게 하려면 어려서부터 수에대한 두려움을 없애줘야지. 그래 운동도 잘하면 좋겠어 적어도 나처럼 자전거하나 못타지 않게 말이다. 언뜻 생각하면 아이에게 수많은 것을 제공해주겠다는 나열처럼 보이지만 자세하게 살펴보면 저 안에는 단지 제공의 의미만 있는건 아니다. 나에게 못다이룬 꿈, 혹은 내가 실현시키고 싶은 꿈을 아이에게 반영하는 것이다.
엄마도 인간이다. 따라서 아이에게 무조건적으로 베풀기만 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극성스런 엄마들일수록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많다. 내가 이만큼 해 주었으니 너는 또 그만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바램이다. 이 바램은 아이와 엄마 모두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엄마는 엄마대로 자신의 희생이 값어치 없다는 생각을 할 것이고 아이는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정보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엄마들은 광신도처럼 몰려다닌다. 식탁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몰아내고 유기농 음식만을 고집해야 한다고 믿고, 아이들의 교육에 좋은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건 배워서 익힌다. 그리고 내 아이만 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그 어린것들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러군데의 학원을 다니게 한다. 그런데 이게 정말 옳은 것일까? 저 모든것을 제공하기 위해 오로지 엄마만으로 사는 여자는 행복할까? 대답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적어도 이 책은 말한다. 단지 엄마가 되기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엄마의 역활이 중요한것은 더 말 할 필요도 없겠지만 자신을 던지고 희생해서 그야말로 온 힘을 다해 자식을 잘 길러내는 것 만이 죽을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은 한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