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
전지영 지음 / 소다캣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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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에세이 #소다캣 #전지영 #귀를기울여나를듣는다 #요가 #추천 #명상

책을 읽고, 요가를 하며 글을 쓰는 전지영 작가의 <귀를 기울여 나를 듣는다>의 총 페이지수는 175쪽. 그마저도 서지정보랑 이런저런 페이지를 제외하면 150여페이지 정도랄까. 맘 잡고 읽으면 80분도 걸리지 않을 정도의 얇은 책이라 수업을 오가며 읽을 요량으로 가지고 나왔다가 아차 싶었다.
공간을 청소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하고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여유가 없다면 그건 비인간적인 삶이다. (...) 주변을 정돈하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있다면 이미 잘살고 있으므로 사는 것에 대해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26쪽
지난 봄에 이사를 해놓고 여전히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이 허락해준 나만의 방을 정리도 못하고 창고처럼 해두고 있었다. 최근에는 주말에 아르바이트까지 시작했더니 이젠 아이 밥상 차려주는 것 외에 이렇다할 요리조차 버거울 정도의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는데 ’비인간적인삶‘,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비인간적인삶이라니. 저자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준다.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았던 오피스텔에서는 작은 틈으로 들어온 빛에 고양이들과 함께 의지했던 시절이나, 섬으로 들어와 강한 태풍을 맞이하면서도 살아있어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된 때 등 저자가 지나온 때로는 혼자라서 외롭고 때로는 누군가로 인해 버거운 삶의 모습들이 내이야기 같아 마음이 동동거렸다.
명상가 마이클 싱어는 그 목소리를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미치광이 룸메이트에 비유했다. 내 머릿속에도 미치광이 룸메이트가 살고 있었다. 108쪽
요가에서는 마음과 영혼 그리고 변하지 않고 실재하는 자아, 이 모든 것을 구분지어 설명한다. 마지막의 변함없이 존재하는 나, 존재하기에 사라지지 않는 나를 아만타라고 하는데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생각이나 마음,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는 그 목소리가 다름아닌 ’미치광이 룸메이트‘다. 연인을 의심하게 만들고, 친구를 오해하게 만들고 자기비하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미치광이 룸메이트. 저자가 명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로 명상이란 마음이라는 방을 청소하는 일(109쪽)이었기 때문이다.
요가를 하면 몸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듣게 되고, 나에게 집중하는 훈련을 통해 명상이 자유자재로 될 거라 생각했다. 저자의 말처럼 저절로 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가장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고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과도한 욕망이나 욕구를 자제할 뿐 삶의 흐름이나 변화를 막아서는 것이 아니기에 그 중심을 잘 잡아야했다. 그 중심을 흐트리는 고통, 고통은 다음과 같다.
고통은 갈망과 혐오를 오가는 것이라고 한다. 무언가 간절하게 원했다가 가질 수 없어서 좌절하고 그로인해 혐오를 느끼고 다시 또 가지려고 발버둥 치다가 눈앞에서 놓쳐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고통이었다. 114쪽

고통으로 만들어진 몸, 고통체. 고통체가 정체성이 되어버린 삶이 무엇일까 굳이 궁금해하지 않는다.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고, 그런 삶은 언제고 다시 훈련되지 않은 내 마음을 통해, 다시금 나의 정체성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련은 특히 주변의 소중한 무언가를 잃은 상실감이 크게 증폭시킨다. 저자는 밋츠라는 고양이를 잃은 것이 생애 소중한 존재가 사라지는 첫 경험이었다고 했다. 두렵고 무서웠다는 글자가 그대로 마음에 와닿는다.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그것이 심지어 생과사를 누릴 수 없는 것이라 할 지라도 원치않은 상실은 흔적을 남긴다. 무언가를 남기는 것, 그것은 존재했다는 사실이고, 존재했음에 사라지지 않기에 저자는 다시 태어나도 같은 모습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에게는 아픔의 날들보다 다시금 꼭 만나 지키고픈 귀한 인연들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키워가는 것 같다. 내게는 아이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아이에게는 내가 어떤 존재일까 확신할 수 없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라파엘라‘라는 대천사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은 여성과의 대화가 등장한다. ’하느님의 치유를 상징하는 대천사‘라파엘. ’비인간적 삶‘이란 단어에 동동거리던 마음에서 우리가 만나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길 바라는 고운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어 고맙다. 누군가 이런 마음의 변화에 동참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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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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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고닉 #끝나지않은일 #글항아리

책 읽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렇듯, 가끔은 내가 날 때부터 책을 읽은 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세상일을 까맣게 잊은 채 손에 책을 들고 있지 않았던 시간은 기억에 없다. - 책 본문 중에서-

어른이 되어 자기소개서를 비롯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독서'라는 키워드가 빠졌던 적은 없었다. 고리타분하게 보일테지만 실제 내 삶에 책은 항상 있었고, 특히 문학의 경우 모든 것이 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때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은 읽기에 관한 책이다. 그것도 '다시 읽기'. 고전은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항상 갖가지 이유로, 판형의 변화, 새 역자를 만나 거듭 출판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주변에 가까운 지인은 문학 뿐아니라 자기개발서인데도 초판본의 번역이 훨씬 동기유발에 효과적이라며 새 책 대신 도서관에서 대여하거나 중고서점을 기웃거린다. 역자의 역할도 당연 중요하지만 정작 책을 읽는 독자의 연령과 주변환경의 변화는 또 얼마나 다른 감상의 책 읽기가 가능한가.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다년간 마음에 품었던 서사가 느닷없이 불려 나오면 정신이 번쩍 들도록 심각한 의문점들을 맞닥뜨리기 마련이다. -본문 중에서-

고입을 앞두고 예비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국내외 잘 알려진 단편소설집을 여러 권 읽었었다. 아마 내가 읽은 고전에 절반 이상이 그 때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작품들을 다시 마주할 때면 책을 읽어야 할 '때'가 분명 있음을 느낀다. 그 시절 그렇게 읽었다고, 내용을 대충 알고 있다고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작품의 진가를 평생 모르고 살았겠구나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때 적어두었던 서평노트를 제출할 때 별도의 사본을 보관하지 않은 것이 속상할 정도다. 물론 그때는 서평이라기 보다는 줄거리 요약에 한 두 줄 정도의 감상이 달린 수준이었을테지만 <끝나지 않은 일>을 읽을수록 이전에 적었던 글, 읽었던 책들을 다시금 꺼내어 보는 것이 단순히 과거에 집착하거나 매달리는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새로운 경험과 자기인식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데, 대체 누구십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

"잘 모르겠네요. 제가 누굴까요. 전화하신 분께서 말씀해주시지요." -본문 중에서

자신을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하며, 단순히 사춘기시절의 자아찾기 이상의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쉽게 스스로를 알고 있거나 알 수 있다고 착각한다. 비비언 고닉의 경우 읽기를 통해, 또 쓰기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나 역시 어쩌면 내가 먹은 음식들이 아니라 내가 읽은 책들, 그 중에서 별도의 시간을 할애 해 기록을 남긴 책들이 나를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를 말하고자 할 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을 때 이 책이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엄청나게 얇은 이 티저북 만으로도 이토록 큰 공감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제 한 권의 온전한 책을 읽어야 할 차례다. 그러면 또 어떤 감상이 나를 찾아들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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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체중 - 크고 뚱뚱한 몸을 둘러싼 사람들의 헛소리
케이트 맨 지음, 이초희 옮김 / 현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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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신의 몸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255쪽

당신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 질문이 너무 멍청하게 들리겠지만 뚱뚱한 사람들의 몸은 때때로, 아니 의외로 자주 평가받고, 언어폭력을 당할 뿐 아니라 연애, 취업, 결혼은 말할 것도 없고 운동이나 여행앞에서도 죄인이 되고 만다. 도대체 뚱뚱해서 아프거나 일상생활이 힘겹고 불편해져도 뚱뚱한 사람들 자신인데 왜 주변에서 그들을 비난하는 것일까. 책속에 등장하는 영화 <더 웨일>의 포스터를 보고 처음 떠올렸던 표지가 있었다. 마사 너스바움의 <혐오와 수치심>의 표지였다. 영화 속 찰리를 회화로 표현한 것처럼 고도비만의 남성의 뒷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영화 포스터와 책 표지에 등장하는 남성의 표정은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탐욕스럽게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무언가, 스스로를 포기한 표정이었다.

그는 혈압이 치솟는데도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가기를 거부한다. (...) 찰리는 지독한 비만혐오에 빠진 의료계와 적대적인 사회의 구속이 아니라 자신의 뚱뚱함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 183-184쪽

저자가 말한 것처럼 뚱뚱한 사람들이 결코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경우가 다름아닌 '뚱뚱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 말은 그 어떤 욕과 비난과 견줄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뚱뚱한 사람들의 고개를 떨궈버린다. 그런 비난과 혐오가 싫으면 다이어트를 하면 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체중감량이 생각을 바꾸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그 수많은 다이어트 관련 약을 포함한 보조제나 프로그램등이 지속적으로 개발될 수 없을 것이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애더럴과 그 비슷한 약물은 필요한 사람이 적정량을 복용할 경우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여러 문제 중 특히 불안증을 치료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 212쪽

실제 어린시절의 학대를 당했거나 지나친 스트레스나 우울증상 등으로 인해 식이의 문제가 발생해 뚱뚱한 경우가 많다. 혹은 그런 문제가 없었더라도 뚱뚱해진 이후 지속되는 비만혐오 혹은 비만으로 인해 받은 차별등으로 인해 비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다이어트로 인한 즐거움과 만족감보다 과식이나 폭식등으로 더 빠르게 즉각적으로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세상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당신에게 더 좋은 곳이 되어야 한다. 특히 극히 무의미하지만 널리 퍼진 '미'의 경쟁에 사람들을 자동으로 끌고 들어가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267쪽

흔히 불가능한 바람을 가졌을 때 '다시 태어나야 한다'라고 말할 때가 있다. '세상이 다시 만들어져야'하는 것과 스스로가 '다시 태어나야'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쉬울까. 아니, 어떤 것이 더 옳을까. 내가 아무리 변해도, 아무리 다시 태어나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만족스런 결말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서두에 적은 것처럼,' 당신의 몸은 당신을 위한 것'이 당연하다면, 결국 저자의 말처럼 잘못되어 있는 경쟁심과 비만혐오가 사라져야 한다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저자가 말한것처럼 체형은 물론 여러 혐오에서 벗어난 세상에서 아이들이 살길 바라는 부모의 희망은 이루기 어려운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뚱뚱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기로 한 저자의 작은 실천을 어른들이 하나하나 이뤄간다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한 세상보다는 이루기 쉬울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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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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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전문 퇴마사'라고 들어보았는가. 소설 쓰는 여자, 작희는 첫 장에 등장하는이 퇴마사의 직업이 심상치 않다. 잘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 은섬은 작업실을 같이 쓰는 동료들에 의해 퇴마사와 만나게 되었지만 구마를 위한 생활규칙은 마치 유명 작가들이 제시한 노하우, 집필 규칙처럼 실용적이었다. 가령, 정해진 시간동안 반드시 글을 써야 한다든가, 식사는 규칙적이며 영양소를 균형있게 섭취해야 한다든가 하는 내용이었다.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은섬은 퇴마사가 제시한 규칙을 따르면서 큰아버지의 조언대로 실력있는 작가에서 '잘팔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 1930년대에 활동했던 소설가 오영락 기념관 사업에 동참하게 된다. 그의 오래된 문서와 함께 발견되었던 일기장이 다름아닌 '작희'의 일기였고, 고문서를 복원일을 하던 퇴마사의 도움으로 오영락의 이름으로 발표된 소설 중 한 편이 실제 저자가 그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렇게보면 마치 이 소설이 작품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가는 추리물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작품은 여성의 학업과 사회활동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가정폭력이 비일비재했던 참혹한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몰입해서 읽으면서도 해도 너무한 내용들, 하지만 분명 있었을법한 일들이기에 화가나 책을 잠시 덮기도 했다.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핏물로 물드는 저녁 하늘을 보았다. 이곳은 온통 한스럽고 고통으로만 가득찬 수라와 같은 세상이다.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이 또 있는가. (본문 중에서)


작희는 어쩌다가 오영락에게 글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을까. 애초에 그녀는 여성이기에 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절에 글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려고 했을까? 소설가가 꿈인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작품 속 안나처럼 준비없이 우연한 계기로 작가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꿈이라고 차마 말하진 못해도 '언젠가 한 번은 꼭' 책을 쓰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왜 그렇게 쓰고 싶은것일까? 소설속에서도 서로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까지 글을 쓰고 싶어하냐고.


"글이 너에게 뭘 해줄 거라 바라고 글을 쓴 건 아니지 않니? 그냥 기쁠 때가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행복할 때나 매일같이 쓴다고 하지 않았어? 네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사는 거지. 작희야, 그렇게 글에 기대 사는 거다." (본문 중에서)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시련이 찾아왔을 때 책을 읽는다고 슬픔이 사라지거나 괴로움이 줄어들진 않는다. 심지어 바쁠때일수록 소설과 시는 변함없이 가슴을 두드리고 마음을 흔들어댄다. 작희를 만나서, 또 은섬을 만나 또 다른 누구의 문장을 품에 안을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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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학자의 아웃사이더 인생 수업 - 젊은 민들레들을 향한 한 식물학자의 힘찬 응원가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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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하면 떠오르는 것이 죽여도 죽여도 살아남는다는 것. 결코 죽지 않는 강인함 정도일 것이다.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잡초를 통해 종의 다양성, 유전자의 다양성 그리고 개성의 존재이유 등을 언급하며 다른사람과 똑같아 지기 위해 애쓰거나, 다른 사람과 달라야만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쉽게 알려준다. 마치 수업처럼 구성되어 목차 또한 1교시, 2교시 등으로 분류했으며, 설명 또한 친절하고 거듭 말하지만 쉽다. 처음 1교시와 2교시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평균, 수치 그리고 등급이나 분류체계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둔 제도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A와 B중 무엇이 더 크고 작은지, 어떤 능력이 뛰어나며 어떤 부분이 취약한지 등은 개성의 문제일 뿐 우열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이유는 모두가 똑같아서 경쟁하고 멸종하지 않기 위한 생존 능력이다. 잡초 뿐 아니라 19세기에 있었던 아일랜드 대기근을 사례로 들며 품종이 우수한 단 한 종의 감자를 심었다가 어떤 재앙을 맞이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넘버원 만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것 같지만 실제 자연계나 인위적인 실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각자 영역에서 침해하거나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꼭 그런것만은 아니다. 또, 개성이 생존의 이유라면 무조건 ‘온리원‘은 되어야 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 역시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이를 ‘니치‘라고 표현하는데, 니치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에게는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영역이 있는데, 이렇게 넘버원이 될 수 있는 단 하나의 영역을 생태학에서는 ‘니치(niche)‘라고 한다. ‘니치‘라는 말은 원래 장식품을 꾸미기 위해 교회 벽면에 설치한 홈을 말한다. 하나의 홈에는 하나의 장식품만 걸 수 있듯이 하나의 니치에는 하나의 생물종만 들어갈 수 있다. 106쪽

니치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요즘, 나만의 니치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특히 잡초를 표제로, 또 핵심주제로 삼은 잡초의 강인함인데, 이것이 평소에 생각해온 부분과 조금 다른 점이었다. 6,7교시에 이어진 잡초가 ‘강한‘ 진짜 이유는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죽여도 죽여도 살아남아서? 경쟁에 우위를 차지해서가 아니었다. 잡초가 강한 이유는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 때문이었다.

영국의 생태학자인 존 필립 그라임은 식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의미에서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는 경쟁에 이긴다는 의미다.(...) 혹독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것이 두 번째 강하다는 의미다.(...)세 번째는 변화를 이겨 낸다는 의미다. 161-162쪽

처음에는 책을 읽기 전에 알 수 없었던 자연계와 분류체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 때문에 흥미로웠고, 3교시 이후에는 잡초와 다양성에 관한 사례가 등장하기 때문에 몰입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지금껏 ‘강함‘이라고 생각해왔던 정의와 인식이 깨어지는 신선한 충격에 시간을 두지 않고 한 번에 다 읽어버렸다.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맺음말까지 어느 한 페이지 그냥 넘길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그저 우리는 우리 그 자체로 다 소중하고 누구와도 결코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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