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베트남에 간다니까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베트남에 간다고요? 그곳 위험하지 않아요?”  


“글쎄요. 우리나라가 더 위험한 것 같은데요.”
 

모두들 내 말에 웃었다.
 


  돌아와 보니 용산철거민참사사건과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글쎄, 어디가 더 위험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베트남 TV를 장식하는 들끓는 사건은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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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베트남 중부 지방의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말 그대로 현지인 반 외국인 반이다. 단체 관광버스가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부려놓으면 이들은 여기저기서 온 거리를 휩쓸고 다닌다. 단체 여행객들을 태운 시클로 부대가 열을 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은 카 퍼레이드마냥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넋이 나간 듯 쳐다보는 사람들은 우리 같은 이방인들뿐이다. 

  구시가지의 골목을 걷다보면 그림이나 공예품, 옷 등을 제작하거나 판매하는 가게들이 죽 늘어서있어 걷는 것이 즐겁고 마음도 따라서 아기자기해진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로컬 요리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식당도 많고, 웬만한 카페는 가이드북에 그 이름이 올라가있어 카페 순례라도 할 작정이라면 주머니 사정을 잘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여행객이 수업료를 치러야 하는 곳이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늘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면역체가 형성이 안 되어, 그 경험이 늘 새로운 게 있는데 바로 택시 타는 일이다. 이곳에서도 멀쩡히 눈 뜨고 당했는데 칼만 들지 않았을 뿐, 속이겠다고 작심한 택시 기사에게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혹시 다낭에서 택시로 호이안에 갈 계획이신 분은 다음 용모를 가진 택시기사를 조심하도록. 평균보다 훌쩍 큰 키에 건장한 체구로 여러 명의 택시기사가 호객을 할 경우 단연 돋보이며 나름 성실성을 겸비한 인상을 갖고 있다. 사기 수법은 간단하다. 13달러라고 흥정해 놓고는 나중에 17달러라고 말했다고 끝까지 우기는 거다. 세상에 내가 thirteen 과 seventeen 을 구분하지 못하겠냐고. 지가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겠냐고. 적선하는 셈 치자고 생각해도 내내 불쾌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종이쪽지에라도 써 놓을 것을.

  두 번째 수업료는 이렇다. 우리가 이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대부분의 숙소들이 그렇듯 간단한 여행업무도 함께 하는 곳으로 투어 신청이나 비행기표, 버스표, 기차표 예약도 해주는 곳이었다. 유명한 신카페를 찾아갈까 하다가 그곳이 그곳이겠지 하는 생각에 미선유적지 투어 신청과 호이안→후에, 후에→하노이 간 오픈투어버스티켓을 끊었다. 두 구간의 버스 요금을 처음에는 일인당 15달러라고 쓰더니 이내 25달러라고 고쳐 말하는 데 어수룩한 우리는 그때 그의 눈빛과 생각을 읽었어야했다. ‘내가 지금 장난치고 있는데 하려면 해봐. 굳이 강요하는 건 아냐.’ 이런 여유로운 표정에 우리가 넘어간 것이다. 침대 시트는 정리해주면서 베갯잇 없는 베개는 나몰라하는 무신경과 불친절을 진작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사실 바가지 전혀 안 쓰고 제 값 주고 산 게 하나라도 있을까 싶은 동네다. 조그마한 동네에서 마음만 잔뜩 상하다보니 느닷없이 중국 운남성의 리장이 그리워진다. 맑은 물이 흐르는 수로들, 밤에는 온 동네에 불이 난 것 같은 빨간 등의 행렬, 광장에서 춤추는 소수민족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곳은 늘 축제 분위기였다. 같은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려놓은 곳인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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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득이라는 왕이 있었다.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웬 왕조가 1802년 부터 약 150년 동안 13명의 왕이 다스리며 도읍지로 삼은 곳이다. 뜨득은 그 중 네 번째 왕이다.  

  가이드북에 있는 내용은 될 수 있는 한 인용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이 뜨득이라는 왕이 대단한 호기심을 유발시키지만 자료가 불충분하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베트남 역사를 뒤적거리기에는 내 열정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36년 간의 장기 집권, 104명의 부인과 수많은 후궁을 거느린 왕,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는 시기에 왕 자리에 있었던 왕. 어린시절 천연두를 앓은 후 키가 자라지 않아 153cm에서 멈추었고 자식이 없었던 왕.  

  후손이 없는 뜨득이 자신의 사후를 위하여 스스로 만든 왕릉이 바로 뜨득 황제릉이라는 곳이다. 넓은 대지에 있는 그대로의 지형을 살려 아름답게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배를 띄어 낚시를 즐겼다는 호수도 적당한 크기로 전체와 고즈넉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이곳은 죽은 자를 위한 능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운치있는 별장에 가깝다.  

  이 뜨득이라는 왕에 대한 이야기는 온갖 수치가 곁들여진다. 3년 동안 이 왕릉을 짓는데 약 3,000명의 군인과 노동자가 동원되었으며, 식사 때마다 50명의 요리사와 50명의 하인이 수행했으며, 실제로 그의 시신이 안장된 (이 왕릉이 아닌) 제 3의 장소의 무덤안에는 엄청난 보물을 묻어놓고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공사에 참여했던 200여 명의 인부들을 모두 살해했다는 등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이 왕릉의 호숫가나 후미진 어느 구석, 혹은 아무 나무 그늘 밑이라도 잠시나마 앉아보면 연잎에 떨어진 이슬을 받아 차를 마셨다는 얘기가 거짓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 짓기를 즐겼고 철학, 동양역사,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에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후에에서 3달러짜리 여행사  일일투어를 신청하면 제일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이 이 뜨득왕릉이다. 이 3달러라는 요금에는 보트비용(오전 8시 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과 점심, 영어가이드가 포함되어있다. 점심 식사는 분명 포함 사항인데 배에 오르면 점심 메뉴판을 내밀어 메뉴를 고르게하고 음료수를 사먹도록 무언의 눈치와 압력을 가한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젖먹이 아기엄마가 내미는 메뉴판을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 중 한 가지를 고른다. 가격은 투어비용과 엇비슷하지만 워낙 투어 비용이 미안할 정도로 싼 가격이라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주기 마련이다. 우리도 그랬다. 그런데 점심으로 나온 국수는 베트남 여행 중 먹었던 것 중에서 제일 형편이 없었다. 강물을 퍼서 육수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속이 불편하더니 얼마 후 화장실로 직행해야했다.  

  누구는 연잎에 떨어진 이슬을 받아 차를 마시고, 누구는 강물을 퍼서 만든 음식을 먹고. 3~4개월된 젖먹이 아이에게 젖을 물려가며, 퉁퉁부은 젖을 가려가며, 노를 저어가며, 관광객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한 동정심을 유발하던 뱃사공 아낙이 내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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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비닐봉투에서 세면도구를 꺼내 이를 닦고 세수를 한다. 아차 스포츠타월을 큰 배낭에서 꺼내오지 못했군. 할 수 없지. 그냥 건조시키는 수 밖에. 록커에 비닐봉투를 넣고 열쇠를 뽑은 후 남편을 기다린다. 남자 화장실에 간 남편은 큰일을 보는 지 우리보다 늦게  나타난다. 

  2층 까지 한바퀴 대강 둘러본 후 통로에 나란히 있는 긴 의자에 남편과 딸아이가 함께 앉고 나는 옆 의자에 혼자 앉는다. 좌석 넓이는 2인용인데 뒤 등받이는 1인용의 삼각형 모양의 의자네, 특이하네, 중얼거리다가 눈을 감으니 그대로 잠이온다. 한 시간 쯤 자고 일어났을까. 아까부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이따금씩 우리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시야에 들어온다.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정신이 좀 맑아지는 것 같다. 이곳은 하노이 역사박물관. 

  반미라 불리는 베트남식 바게트를 세 개 산다. 각각 닭고기, 소시지, 햄버거용 고기가 들어있다. 부슬비가 내리는 호안끼엠 호숫가 벤치에 앉아 가위 바위 보를 한다. 내가 이겨서 햄버거용 고기가 들어간 반미를 집고 딸아이는 소시지가 들어간 것을 좋아라 먹고 꼴등인 남편은 닭고기가 들어간 것을 먹는다. 4분의 3쯤을 먹고는 남편이 내 것과 바꿔 먹자고 한다. 내것은 채 반도 못 먹었는데. 그렇게 몇 번 바꿔 먹으며 우리는 애들처럼 재미있어했다. 오늘 하루의 점심 식사였다. 

  호숫가에 있는 빨간색 다리가 인상적인 사원도 들어가 보고, 하노이의 필수 관광 코스인 수상 인형극도 관람한다. 굳이 예매하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었다. 9시 출발 라오까이행 야간 열차를 탈 때까지는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남아 본격적인 구시가지 탐색에 나선다. 신발 가게에 들어가서 신발을 신어보고 가격을 너무 많이 깎는 탓에 멋적어서 그냥 나오기도하고 길을 찾다가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다시 물어물어 원위치로 돌아오기도 한다. 특별히 갈 데가 없으니 그래도 계속 길을 찾는 척 어슬렁 거리며 배회한다. 구정 명절을 앞두고 하노이 시민들이 모두 시장으로 나왔는지 오토바이에 스쿠터에 시클로에 자전거에 길이 미어터질 지경이다. 거기에다 우리 같은 외국 여행자들은 왜 그리 많은 지. 여기가 국제적인 도시는 도시인가보다. 

  너무 피곤한 탓인지 저녁으로 먹는 국수가 맛이 까칠하다. 한인 여행사에 맡겨둔 배낭을 찾고 역까지 가는 시내버스 노선을 물어본다. 11번과 40번 시내버스. 알기만 하면 택시로 가는 것보다 훨씬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어서 좋다. 여행사의 젊은 사장은 여러 사람의 입소문처럼 굉장히 친절하다. 같은 사항을 반복해서 설명해준다. 마치 확인학습 시키듯. 고맙긴한데 살짝 짜증이 날 듯하다. 어디가면 제일 남의 말 안듣는 족속들이 선생이라고 하지않는가. 

  여행사에 충전을 부탁해놓은 딸내미의 mp3를 되찾으며 남편이 한마디 쓴소리를 한다. 귀 버릴까봐 안사주려고 했는데,하며. 그런데 그 목소리에는 오늘 하루의 피로와 고달픔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나 보다. 딸아이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조용해진다. 속으로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있을거다 분명. 그리고 그 후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이어폰을 귀에 꽂지 않았다. 

  살얼음판 같은 이 험악한 분위기에 숨 죽이며 겨우 하노이역에 도착하니 탑승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다. 속이 불편한 남편은 다시 화장실로 향하고 우리는 말없이 조용히 대기실에 앉아 있는다. 

  드디어 열차에 오르고, 침대에 누워 보고는 우리의 기대 이상인 열차 시설에 감탄하며, 거짓말처럼 우리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헤헤 웃으면서. 

  야간 침대 버스에 시달리다 오전 7시경에 하노이에 도착한 이후 14시간 만의 우리 공간이었다. 오늘 밤 우리가 쉴 우리의 집이었고 우리의 방이었다.  

  집에 대한 고마움을 절실히 느낀 우리는 이후로 호텔 체크아웃 시간을 늘리는 방법으로 우리의 공간을 지켜나갔다. 보통 오후5시까지 체크아웃 연장을 기준으로 호텔에 따라 부과 요금이 다른 데 하루 숙박료의 30%에서 50% 혹은 75%까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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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 2023-09-0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불쌍한 딸..
 

  우리가 탄 라오까이-하노이 왕복 열차는 4인실 소프트 침대칸이었다. 컴파트먼트로 되어 있고 시건장치도 완벽하여 독립적이면서도 쾌적한 공간이었다. 공동 화장실만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정말 완벽한 열차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노이행 열차에서 우리 칸에 함께 탄 사람은 가이드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베트남 청년이었다. 나중에 보니 서양인 부부가 그의 고객이었다. 붙임성이 좋은 이 청년은 우리 딸아이를 보자 마치 말문이 터진 양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손금도 봐주는 등 잠시 우리를 유쾌하게 해주었다. 5개 국어를 할 수 있다는 이 청년은 확실히 언어 감각이 뛰어나 보였다. 우리끼리하는 우리말을 금방 따라하는 것으로 보아 영어도 어렵지 않게 배웠을 성 싶었다. 따로 영어를 배웠나싶어 물어보았더니 고등학교 때 배운 영어란다. 자신의 뇌는 95%가 언어를 조종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서 한 번 들은 말이나 사람의 얼굴은 절대로 잊어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총명한 눈빛과 영어 구사 능력으로 보아 언어 감각은 타고난 것처럼 보였다. 누구는 평생 영어 공부해도 늘 버벅거리며 잊어버리고 등 돌리면 다시 공부해야 하는 처절한 운명을 타고 났는데 말이다.

  남편이, 베트남 사람들은 대부분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앞으로 베트남이 크게 발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 했더니 이 청년은 베트남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숨김없이 드러내보였다. 지도자들이나 공무원들은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배 채우기만 할 뿐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쏟아냈다. 아, 이런 젊음이 부럽다.  

  이 청년 얘기를 꺼낸 것은, 사실은, 이제 중학교 입학을 앞둔 우리 딸아이가 이 청년의 얘기를 대강은 알아듣고 질문에도 주저없이 대답을 한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물론 질문이라야 별 것 없지만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은 것이다.  

  육아일기 한 번 쓴 적 없는 어미로서, 이런 여행기를 빌어서나마 아이의 성장한 모습을 조금은 기록으로 남겨야하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몇 줄 써넣는 것이니 이 글을 읽는 분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고자한다. 

  이 번 여행 중 딸아이한테서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엄마가 가끔 싫어질 때가 있는데...여행을 함께 다니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 언제? 비행기에서 승무원 언니가 잃어버린 볼펜 주워서 엄마가 가졌을 때? 물건 값 깎을 때? 그리고 지난 번 버스 앞좌석에 앉겠다고 우길 때?"  

"응."  

.......

"그리고 가이드가 하는 설명을 못알아들었을 때 엄마한테 물어보면 내가 알아들은 말만 설명해주더라." 

"너도 나 만큼은 알아들었어? 그러면 엄마 실력 다 알았어?" 

"응." 

...... 

" 너, 엄마가 싫을 때가 많지? 엄마도 그랬어. 엄마도 외할머니 싫어한 적 많아. 괜찮아. 그러면서 크는거야." 

....... 

  부모와 자식간의 피할 수 없는 변증법적 애증 관계를 막 시작한 딸아이가 한편으로는 대견하다. 엄마, 아버지 늙어가는 것보다 더 빨리 자라거라, 딸내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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