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
줄리언 반즈 지음, 권은정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예전에 <그녀를 만나기 백 미터 전>이라는 경쾌한 노래가 있었다. 만나기 전 한 남자의 설레는 마음을 노래한 건데 이 작품을 보면서 우습게도 그 노래가 생각났다. 겪어보지 않고 상상만으로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어떤 존재도 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고 나서야 자기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한 남자가 있다. 결혼도 했었지만 불타는 정열적인 사랑이라는 것은 모른 채 살던 남자다. 그 남자가 한 예전의 여배우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전부인의 계략으로 보게 된 아내의 예전 영화를 보다가 질투심에 점점 사로잡히게 된다. 서양 속담에 질투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사랑에 질투는 필연적으로 따르는 것이고 그것은 집착과 광기와 심지어는 살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과거가 뭐가 그리 중요해? 라고 말하면서도 과거를 캐는 사람들과 그것으로 인해 사랑이, 결혼 생활이 깨졌다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요즘은 질투와 의처증, 의심들에 의해 자신의 아이도 유전자 검사를 하는 세상이다.


한 남자의 사랑이 질투에 사로잡혀 자기 파멸로 빠지게 되는 이 작품은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단순한 이야기를 세밀하게 영화처럼 묘사하면서 진부한 것을 진부하지 않게 포장하고 있다. 결말은 있지만 결론은 없는 우리네 삶처럼 이 작품도 아무런 결론 없이 끝난다. 결말만이 단말마처럼 울려 퍼진다.


사랑에 질투가 없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사랑을 안고 사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끝없는 질투가 포함된 사랑을 안고 사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치유되지 않는 정신병자와 함께 사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 책에서 말하는 균형감각을 깨트리려고만 존재하는 중이염처럼 나는 지금 책을 덮고 앓아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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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6-05-2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이 불행하게 끝날것 같네요.ㅠ.ㅠ

물만두 2006-05-2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이 아니니까 써도 되겠지^^

비로그인 2006-05-29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도 보셨군요. 저는, 그 남자의 질투의 과정이 우스꽝스럽긴 하는데 무턱대고 웃기는 좀 찜찜한 기분이었어요. 보는 이는 우습고 기괴해 보이는데 막상 겪는 사람에게는 죽어버릴 정도로 진지한 끔직함이랄까요. 무척 고통스러웠는데, 남에게도 권하고 싶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물만두 2006-05-29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 저는 우습다기보다는 모범생이 한번 불타오르면 무섭다는 걸,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네요.

moonnight 2006-05-2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운 책이네요. ㅠㅠ 맞아요. 남의 일일 때는 왜 저럴까. 이해가 안 되다가도 내 일이 되어버리면 말도 안 되는 행동도 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인가 봐요. ;;

물만두 2006-05-29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사랑을 해봤어야 알겠지만 진짜 사랑에 미치면 이 책의 주인공처럼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미치지 않고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가 또아리를 트네요.

비로그인 2006-05-30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집에 돌아가서 이 책을 다시 한 번 더 찬찬히 훑어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사둔 책은 많아도 두 번 세 번 들쳐읽는 책은 그닥 많지 않은데 이 책, 다시 읽어도 새롭습니다. 새롭다는 게 무서울 정도로 새로웠어요.

물만두 2006-05-3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께 다시 한번 새롭게 보실 수 있게 해드렸다는 뿌듯함이 생깁니다^^
 
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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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사람이 말한다. 인생이 릴레이였음 했다고. 그럼 인생이 릴레이가 아니었단 말인가?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인생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서조차 주인공이길 바란다. 세상에서 자신만이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로 각인되길 원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잠시뿐이고 점차 우리는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서조차 자신은 주인공이 될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닌가 불안해하다가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생에서 몰아내버린다. 주인공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이제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주인공의 모습이고 인생에서 자신의 원하는 모습이 진짜 주인공의 모습인가를. 영화나 드라마를 보자.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홍보를 할 때 주연배우만을 집중적으로 홍보를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보고 나면 보는 사람에 따라 주연보다 더 연기를 잘하는 조연과 엑스트라라도 제몫을 톡톡히 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빛나게 하는 장면이 더 많이 회자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역을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있다. 높은 빌딩이 보이고 에셔의 작품전이 열린다는 포스터가 보인다. 그곳에는 떠돌이 개가 있고 외국 여자가 아름다운 일본말을 적어달라고 백지를 들고 서 있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가면서 만나기도 하지만 결코 서로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는다. 잠시 붙잡아준 문, 도둑질하러 들어간 곳에서 만난 동창과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는 전화를 받는 여자, 그리고 신흥종교의 교주를 믿는 남자와 토막연쇄살인사건, 실직한 뒤 이혼하고 마흔 번의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매번 거절만 당하고서도 비틀즈 노래를 듣는 남자와 자신의 꿈을 이루어 주리라 생각하고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화상과 여행을 가는 화가...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되기 때문에 더 풍요로운 거라고 말하는 것 같은 작품이다. 마치 남루한 인생 군상들만을 모아 놓고 시간과는 무관하게 그들의 삶을 이리저리 배치해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들고 에셔의 작품 속 병정들처럼 높은 곳에 올라갔더니 그곳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는 듯이 술주정뱅이 인생이 한 바퀴 돌고 나나 풍요로운 인생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가끔 삶에서 비켜났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말한다. 인생이란 다 그런 거야. 누구도 알 수 없는 거라고. 맞다. 어긋났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다. 단지 일그러졌을 뿐. 그런데 그렇게 일그러지게 그림을 그려놓은 피카소는 그 그림으로 명성을 날리지 않았던가. 일그러지면 일그러진 채, 빗나가면 빗나간 채 나름대로 ‘It's all right' 외치며 살아가는 것도 과히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같은 단어에도 상반된 뜻이 포함되어 있듯이 우리네 인생도 그런 것 아닐까. 어떤 것을 취하느냐는 취하는 자의 몫이다. 풍요롭거나, 술주정뱅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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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5-2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담하게 쓸쓸해요.

물만두 2006-05-2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인생이 담담하고 쓸쓸하잖아요^^;;;
 
나는 모조인간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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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에 나는 태어난 것이 아니라 아늑한 보금자리에서 밀려났다고 말하는 듯 작가는 한 소년의 탄생을 색다르게 시작한다. 그 시작에 좀 더 나아가 간난아이 때 자신은 창아 (娼兒)였다고 말을 서슴없이 한다. 오오, 발칙한 작가로다. 처음부터 발칙하고 당돌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작가는 소년이 자라는 성장과정을 기묘하게 묘사해 나아간다.


이름도 독특한 주인공은 이름처럼 악마적으로, 자신이 추앙하는 미시마 유키오처럼 되고자 애를 쓴다. 때로는 유약하고 때로는 악의적이고 때로는 모사꾼처럼 행동하는 주인공은 그러나 다르게 바라보면 그저 보통의 아이들과 다름이 없는 성장과정을 거친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작가의 의도적 변이에 의해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지만 그래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더욱 와 닿는다.


남는 것은 결국 ‘나’라는 개인의 인격체인가, 아니면 ‘나’를 가장한 수많은 다른 인간의 패러디와 합성에 의해 이루어진 모조품인가 이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년은 청년으로 자라게 마련이지만 온전히 하나의 주체를 가진 유일한 인격체로 자라지는 않는다. 그 동안 많은 사람을 모방하고 따라하고 지도받고 습득하고 그러는 학습과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나’라는 것보다 복제되어 양산된 모조인간들만이 더 많이 남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 자신이 하는 생각, 하는 행동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작가도 주인공도 마찬가지고. 해서 작가는 당당하게 ‘나는 모조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결국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스스로 거짓인 줄 알면서도 존재하는 ‘나’와 수많은 것들을 모방할 수 있고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모조인간’ 사이에서 당당히 모조인간을 선택한다. 그 모조인간은 바꿔 말하면 무엇이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는 존재다. 이제 그는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모조인간이란 결국 소년의 자아찾기를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모조인간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나는 모두가 모조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 당신도 예외는 아니고. 그런데 모조인간이면 어떤가. 그게 나쁜 것도 아닌데.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의 경계를 자신의 의도대로 나누는 인간보다 모조인간이 차라리 낫다. 모조인간이 득시글대기 때문에 세상이 점점 바벨탑을 쌓는 느낌이 들지만 어차피 바벨탑이란 무너지기 위해 쌓게 되는 것 아니던가. 그렇다면 걱정할 것은 없다.


그런데 내가 작가에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작가 후기에서였다. 자신의 책만 보게 하고 싶다는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당신이 모조인간이라고 거기서 확신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주인공의 행동도 일관성이 있어서 좋았다. 이 작품을 나는 모조인간의 탄생기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모조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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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소년 2006-05-22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생각 안 나신다더니...
생각 안 나는 상태에서 쓰는 게 이 정도면
읽고 바로 썼으면 어떤 작품이 나왔을지?
(자만이 하늘을 찌르는 만두 공주님, 결론은.. 부럽 부럽 ㅠ.ㅠ)

물만두 2006-05-22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래소년님 생각이 나나 안나나 거기서 거깁니다^^;;;

로쟈 2006-05-2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평 쓰겠다고 받아놓은 책인데, 이제 2악장을 읽고 있습니다. 부지런한 분들은 따로 계시군요.^^

물만두 2006-05-26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서평단 도서는 받는 즉시 읽고 쓰지 않음 까먹어서 되도록이면 빨리 읽고 쓰려고 합니다^^;;;
 
벨칸토 1
앤 패챗 지음, 김근희 옮김 / 민음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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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작품의 제목인 벨칸토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벨칸토는 이탈리아말로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며 이는 극적인 표현이나 낭만적인 서정보다도 아름다운 소리, 부드러운 가락, 훌륭한 연주효과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결과 기교적 과장에 치우치는 폐단이 있어 글루크나 바그너는 벨칸토를 배척해 왔다. 그러나 벨칸토 자체는 고도로 예술적인 기법으로 현재 이탈리아오페라나 모차르트의 오페라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창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기교적 과장에 치우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이 보여주려는 점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의 눈을 가려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드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96년 페루의 일본 대사관 점거 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 사건이 남긴 것은 유명한 ‘리마 신드롬’이 있는데 그것은 이 작품에서도 보여주듯이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으로 그 사건에 대해, 신드롬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면 1997년 페루 리마에서 반정부조직 요원들이 127일 동안 인질들과 함께 지내면서 차츰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가족과 안부 편지를 주고받고, 미사 의식을 여는 등의 현상을 보였다는 데서 '리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인질사건은 1996년 12월 17일 페루 반군들이 일본대사관을 점거하고 400여 명의 인질을 억류하면서 시작되어 이듬해 4월 22일 페루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끝이 났다. 당시 14명의 인질범은 모두 사살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인질범들은 인질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인질들을 위한 의약품류의 반입을 허용하는 한편, 자신들의 신상을 털어 놓는 등 인질들에게 동화되는 여러 가지 이상 현상을 보였다. 리마신드롬은 이러한 현상을 빗대어 심리학자들이 붙인 범죄심리학 용어이다. 즉 인질범들이 인질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자신을 인질과 동일시함으로써 공격적인 태도가 완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여기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인물들이 동화되지만 완전한 리마신드롬이라고 하기보다는 같이 동화되고 자신이 갇혀 지내는 동안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회상을 하며 잃었던 것들을 발견하고 조그만 공동체를 이루어 그래도 살아가고자 한다는 점이다. 이 작품을 만들어가는 두 인물은 록산 코스라는 오페라 가수와 겐이라는 일본 회사 사장의 통역관이다. 한 사람은 낭만이라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역할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소통이라는 실제적인 일상  생활의 역할을 담당한다.


첫 장면부터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이런 점은 바그너의 배척하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이러면서 은근슬쩍 나를 바그너와 같은 선상에 놓아보았다. 이것도 이 작품만큼이나 너무 기교적인 과장스런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읽을수록 결말이 궁금해지게 되는 작품이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돈 많은 회사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사장의 생일 파티를 열고 그가 좋아한다는 오페라 가수를 비싼 돈을 지불하고 초대를 한다. 하지만 사장은 투자할 생각은 없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오페라 가수를 보기 위해 왔다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인질이 된다. 인질들은 대통령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고 대통령만을 납치해 밀림의 본거지로 갈 생각이었지만 대통령은 드라마를 보기 위해 불참을 하는 바람에 그들은 협상을 위해 남자들과 오페라 가수를 잡고 대치를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보면 극명한 대비를 볼 수 있다. 이 상황에서도 노래를 연습하겠다고 악보를 요구하는 여가수와 창문이 있는 집, 텔레비전을 처음 보는 어린 테러리스트들의 이질적이면서도 가슴 아픈 대비, 여가수도 삶을 위해 살고 어린 테러리스트들도 삶을 위해 산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지. 마치 누군가에게는 꿈꿀 자유조차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마지막으로 치닫는 과정과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도 망각을 위해 애쓰는 이들을 보면서 곡물 값 안정을 위해 바다에 곡물을 버린다는 말을 듣고 저 곡물들을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왜 주지 않는가를 알아봤더니 그보다 기름 값이 더 먹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허무함과 씁쓸함이 느껴졌다.


우린 여전히 아름답게 살아가야 한다. 남보다 더 아름답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기 위해 마치 절대로 보여주지 않는 달의 반대편 얼굴처럼 우리가 진짜 봐야 하는 것들은 보지 않고 있다. 누군들 아름답게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것을 단지 잘못 태어났음만을 원망하라고 말해야 한다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하는 유명한 성악가를 떠올려보자. 들어주는 이 없이 노래하는 이가 무슨 소용이며 내 배 채우기 위해 다른 아이 배를 골리는 일이 무에 다른 일인지를.


지금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재능이 있는 지도 모른 채, 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시들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이 작품이 바쳐졌으면 좋겠다. 진정한 아름다운 노래를 위해서... 

 

여담이지만 책 띠가 있을때는 보이지 않고 아름다운 여인의 우아한 드레스 차림만이 보이는데 띠지를 벗겨보니 그 드레스 밑에 핏 자국이 선명히 보인다. 이 핏자국은 과연 누구의 핏자국일까? 우리의 피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작품보다 표지가 더 마음에 들었다. 정말 작품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표지는 못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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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5-2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엄청 멋진 리뷰여요!

반딧불,, 2006-05-2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사이 만두님 리뷰 읽고 있으면 황홀해요.

반딧불,, 2006-05-20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0148205

참 여전한 인기!


물만두 2006-05-20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런스님 밥먹으러 가기전에 후다닥 올려서 고칠려고 왔느데 벌써 읽으셨네요^^;;;
반디님 무슨 황홀씩이나요^^;;; 인기가 아니고 구글로봇의 상주입니다 ㅠ.ㅠ
 
달을 쫓다 달이 된 사람
미하엘 엔데 지음, 박원영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첫 단편 <‘따분이’와 ‘익살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따분이’는 보고 나면 누구나 잊어버리는 인물, 기억 못하게 되는 인물이고 ‘익살이’는 만났는지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는데 뒤에 가서 기억하게 되는 인물이다.


‘따분이’는 아무리 진실과 사실과 진짜를 알려 주도 소용이 없어 슬프고 ‘익살이’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거짓과 도둑질과 온갖 나쁜 짓을 해도 그 당시에 알 수 없고 지난 뒤 기억 속에서만 떠올리게 되므로 재미있어 한다.


우리의 삶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좋은 건 뒤 돌아서서 잊어버리고, 나쁜 건 당한 뒤에 후회해도 이미 때가 늦고... 세상에 이 둘이 공존하는 한 우리의 삶은 언제나 망각과 후회의 연속이 될 것이다. 그것이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든 작은 개인사에 국한되든지 간에.


이런 면에서 <거울을 보지 않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이 미하엘 엔데가 들려주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것은 우리가 이런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울이 아무리 진실을 보라고 해도 백설 공주의 동화 속 왕비처럼 우리는 눈앞의 이익에 눈멀고, 자신만의 행복에 겨워 절대 거울을 보지 않는 것뿐 아니라 그 거울을 없애기도 한다. 보면 무엇이 보일지 뻔히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두운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글픈 아이러니지만 위트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예’ 혹은 ‘아니오’>와 <원맨쇼의 달인>은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함을 남겼다. 그러고 보니 전체적으로 그리 밝은 작품들이 아니다. 그래서 아쉽냐면 그건 아니다. 어차피 사는게 그런 건데 꼭 밝은 것만 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미하엘 엔데의 단편집 속에는 언제나 그림이 들어 있다. 이번에는 칸딘스키다. 칸딘스키가 이렇게 환상적인 작품을 그렸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그림 보는 재미가 대단했다. 정말 환타스틱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림들을 보면서 이 작품이 주는 무거움을 그림이 얼마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림만 보더라도 그저 좋을 수밖에 없는, 가끔 꺼내서 읽고 싶은, 보고 싶은 책이 되리라 생각된다. 소장하고 있다가 우울할 때 꺼내서 그림을 찾아보고 글을 읽어보면 식탁에 놓여 진 봄꽃처럼, 밥상의 싱싱한 채소처럼 삶의 입맛을 돋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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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2006-05-18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감사합니다..Thanks to!!

물만두 2006-05-18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요^^

가넷 2006-05-19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보신거여요?.

물만두 2006-05-19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로님 작아서 금방 볼 수 있어요. 저는 그림 찾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