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에서 - 간호사가 들여다본 것들
김수련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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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 간호사로서 겪어온 이야기, 91년생 김수련 간호사의 이야기다.

1부는 간호사로 일한 이후 개인적 경험과 2부에서는 임상에서 마주친 상황에 대한 이야기, 3부는 사회적인 내용을 담아냈다고 했다.

책을 시작하는 글에 '병원은 자기주장 강한 간호사를 원하지 않는다.' 이 말에 공감하게 되었다.

간호사는 말없이 묵묵히 일하는 존재여야 했다. 그걸 처음 배운건 학생때였는데,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대놓고 원하는 것, 노조에 가입한 선배가 있는 학교의 학생은 뽑지 않는다는것, 선배가 노조에 있는 병원에 면접을가면 질문에 노조 관련 질문이 생긴다는것을 알게 했다. 그때부터 병원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이외에도 신규 시절부터 우리는 병원이 원하는 대로 생산된 부품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병원에서는 늘 간호사란 자리에 맞는 정량화된 사람이 근무하길 원하는 것을 목도 했던것 같다. 자리에 맞는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만큼 굴리고 또 굴려져야 그들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새가 다듬어지는데 그것은 기본 3년-10년이었다. 개인의 역량에 따라 그것도 부족하다고 여길 수도 있는 시간이 흘러야 하지만, 그것을 트레이닝이라는 명목하에 2개월도 안되는 시기에 던져버리는 원하는 병원의 상식이 이해되지 않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자리에 맞지 않는 불량품인 경우 병원이라는 환경에 맞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교체되거나 철저히 맞게 개조되어 쓰이는 사람들이 간호사라는걸 간호사로써 공감하게 하던 책이었다.

그 내용이 1부에 담겨 있었다.

간호사에게 자기 몫의 전쟁은 언제나 치러야 할 과제였다. 남이 깨지고 부서지는 모습을 보고 있어도,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아픔을 보지 못한 것처럼 여겨야 할 때가 많았다.

6시까지 출근을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는 일은 일상이었다. 3교대의 불규칙한 출근 시간 덕에 늪에 빠지는 것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하루하루 연명하듯 살아가는 신규 시절의 이야기가 굉장히 처절하게 공감되었다. 지금도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느껴지는 물품 카운트, 시간부터 입력 속도와 비례하지 않는 인계 속도를 적응하는 일, 인계가 끝나자마자 기계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산더미같이 쌓여버리고 해결해도 해결되지 않는 일의 연속과,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매일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는 일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사실 병원 일은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병원마다, 파트마다 직무마다 다르기 때문에 실무적인 것은 모두 그냥 부딪혀서 익혀야 한다. 근데 그 선택이 사람 목숨을 좌우하는 일이라면 등 뒤에 식은땀은 기본적으로 달고 살아야 하는 일이라는 게 칼 같은 현실이었다.

동시에 여러 개를 하지 못하는 사람도 무조건 해내야 하고, 그렇게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녀도 빠지는 일이 생기면 다시 미안해하고 사과해야 한다. 3교대가 있는 이유가 일의 로스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여기지만 막상 일하다 보면 모든 처리는 내 근무 때 해야 하는 도리라는 것을 금방 익히게 된다.

내용중에 작가님의 신규 시절 자살을 생각한 이야기가 있는데 굉장히 신경 쓰였던 부분이었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지만 자살이 아니더라도 사고를 당하고 싶다는 생각, 사고에서 이어진 무단 퇴사를 생각한 간호사가 실제로도 상당히 많다는 설문과 경험담을 많이 들어 본 입장인지라, 실제 자신이 죽음을 생각한 순간 친구가 준 편지와 브라우니로 지금까지 버텨왔다는 글은 담담하지만 가슴 아프게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글이었다.

3부에서 담아낸 사건들에서 신규 시절 외과 강사에게 당한 성희롱 문제와, 당한 여러 사람이 뭉치면 단체가 될 수 있지만 왜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침묵한 것에 대한 분노가 클 수밖에 없는지, 병원의 책임 소재에 관한 이야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현실이 어떤지 화를 내면서 읽었던 부분이었는데 읽기만해도 분노가 오르는데 그것조차 담담히 잘 담아낸 이야기여서 기억에 남는다.

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며 프리셉터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준 것도 고마웠다. 현재 대한민국 병원의 상황과 턱없이 부족한 간호인력에 대한 이야기, 여전히 보수적인 문화와 간호과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는 소극적 저항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가 처절하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자신의 이야기하는 소리 내는 간호사가 많아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우리는 자신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목소리를 죽여왔다. 흘러가는 대로 흘러갔고, 그렇게 후배들에게도 흘러가라고 권하는 건 독약을 권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뀔 수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호사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가 부족하다는 말은 매번 나오는 뉴스 중 하나인데, 간호 대수를 늘려 인원을 많이 뽑는다고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걸 간호사들은 알고 있다. 간호사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관심을 가질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노력해서 고단하고 팍팍한 현실이 조금 더 나아지는 날이 되면 더 이상은 스스로 간호를 포기하는 간호사들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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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5-05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호사 직업이 정말 힘들거 같아요. 저는 병원을 거의 안가긴 하는데 아픈 환자를 계속 상대하다보면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힘들거 같아요 ㅜㅜ 친구들중에 간호사 일을 오래하는 애들을 못본거 같다는... 힘든 만큼 처우가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러블리땡 2023-05-12 01:49   좋아요 1 | URL
그냥 나는 평범한 회사원1이다라고 생각하고 마음 비우고 살고 있는데 간간히 번아웃 올때가 있어서 그게 좀 버겁긴해요 모든 직업은 다 힘들죠 간호사만 힘든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지금보다 처우가 조금만이라도 나아지고 인식도 조금만 더 바뀌면 좋겠다는 바램은 있어요 간호법만봐도 쉽진 않겠지만요 감사합니다 ㅎㅎ 그냥 이책처럼 목소리내는 책이 있음 좋겠다 싶어요!!!:)

2023-05-09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러블리땡 2023-05-12 01:50   좋아요 0 | URL
친구가 있으시군요ㅎㅎ 요즘은 갈수록 더한것 같긴해요 사회적 분위기가 그래서 그런가봐요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뭐든 조금은 더 좋아질거라 생각해요:)♡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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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만한 지구본을 돌리다 보면 나오는 작은 마을의 이야기다.

이 마을은 신비로운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날개는 없지만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능력을 가지고 웃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곳이었다.
평화롭고 좋은 냄새에 이끌린 신비로운 눈동자를 가진 여자가 마을에 들어와 마을에서 처음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여자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불안이라는 감정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제껏 잊고 지낸 불안이 갑자기 불연듯 떠올라 어느 날 밤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낸다. 

내년이면 성년이 되는 딸아이가 가진 능력을 알리고 조절하는 방법을 미리 익히게 하자는 이야기였다. 
자신은 마을 사람들과 달리 능력이 없는 줄 알았던 딸은 부모님의 이야기를 몰래 옅듣게 되고, 남들과 달리 두 가지 능력을 한꺼번에 가졌다는 말에 놀랍고 혼란스러웠으나 마음을 가다듬고, 평소처럼 잠을 청하게 된다.

그날 밤, 사랑하는 이들이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모두 떠나버리는 악몽을 꾸고, 울며 잠을 깨어나게 되는데, 하필 그때 자신에게 사람들의 슬픔을 치유하는 능력과 꿈을 실현시켜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동시에 사랑하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과 이별을 하게 된다.

현실보다 잔혹한 꿈을 겪고, 순식간에 가족을 잃은 소녀는,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타인을 위해 써야 하는 능력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고 만다. 결국 능력은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았고, 계속해서 꿈을 꾸고 꿈에서 깨어날수록 소녀는 생기를 잃고 감정도 잃어간다. 셀 수 없는 반복을 겪고 다시 태어난 날, 자신이 좋아하는 꽃의 지명인 메리골드라는 마을을 선택하고, 그렇게 노력해도 기억나지 않던 부모님과의 마지막 밤 대화가 기억이 떠오르게 되자, 자신이 바라는 가족을 다시 만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렇게 메리골드 마을의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를 위해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타인을 위해 쓰기로 마음먹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사가 굉장한데 일단 메리골드의 마을에 세탁소를 차려 사람들의 아픈 기억과 마음을 지워주는 일을 하는 이야기였다.

주인공 소녀의 이름은 지은이었다.
지은의 메리골드 세탁소의 업무는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지워주는 일로, 일을 맡기 전 루틴이 있었다.

일단 그녀가 주는 차 한 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통해 상담을 한 후, 하얀 옷을 받게 된다. 하얀 옷을 입고 난 후 지우고 싶은 기억을 떠올리면, 입고 있는 옷에 얼룩이 생기게 되는데 사실 지은이 내어주는 차와 털어놓음으로 얼룩을 지울 수 있지만 세탁기에 넣어주는 건 손님에 대한 지은의 작은 배려라고 했다.

이렇게 세탁이 끝나면 얼룩과 함께 기억과 추억이 함께 사라지니 세탁을 맡길 때는 신중해야 함을 연신 주의 받는다.

메리골드는 사장 지은의 고향처럼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명목으로는 지은이 사람들의 마음을 세탁해주지만 무수한 세월을 겪으며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주인공의 마음을 서서히 녹여가는 건 그녀의 세탁소 손님들이었다. 

언제나 친근한 김밥집 아줌마와의 인연을 맺고 메리골드 세탁소의 첫번째 손님 무명 영화감독 재하의 소원을 시작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연희, 가족들의 희생양이었던 인플루언서 은별, 메리골드를 매의 눈으로 주시하는 영희, 세탁소의 특별 손님 연자, 그리고 해인까지 아픈 상처가 하나씩 존재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 소설이었다.

한편의 동화같은 전체적 분위기와 작가님의 따뜻한 멘트들이 주옥 같았다. 거기다 해가 예쁘게 지는 메리골드를 선택한 것부터가 반칙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녀가 살던 마을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에서 사람들은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던 점, 웃음 뒤에 슬픔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른 모습으로 굉장히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어려보이지만 말투에서는 연륜이 느껴지고, 메리골드보다 청초하고 아름다우나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지은의 모습이 더 불안하고 금방 사라질 신기루 같게 느껴졌으나 전생에서 시도 하지 않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 사람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자신의 슬픔도 함께 타오르는 햇빛에 날려보내면서 점차 자신의 능력을 행복한 것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며 읽는 내내 굉장히 가슴 따뜻함을 느끼게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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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너희 세상에도
남유하 지음 / 고블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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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내가 좋아하는 단편 모음집이었다.

일단 작가님은 이번 작품으로 처음 만났는데, 워낙 다른 작품으로 유명했던 분이라 읽기 전부터 나름 기대치가 있었다. 내 취향에 부합하는 내용들로 꽉꽉 채워져 있었는데, 이번 작품을 시작으로 다른 작품들을 읽어봐야지 마음먹게 했다. 

표지가 살짝 을씨년스럽지만 매혹적인 부분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는데 내용은 좀 더 서늘하고 비현실적 내용 속에 현실이 녹아 있어서 작가님의 매력을 듬뿍 담아냈던 작품집이었다.

[반짝이는 것은] 
주인공은 80이 넘은 노년의 남자였다. 
7년 전 ACAS라는 후천성 심정지 증후군이 처음 생겨났다. ACAS란 후천적 심정지 증후군이란 뜻으로 심폐기능은 저지되지만 뇌가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식욕만 살아남은 사람들 일명 좀비가 존재하는 세계였다. 

감염률이 높지 않지만 주인공은 감염 증상이 나타났고, 감염 억제제를 맞고 자체적으로 마지막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월세방을 전전하던 가난을 평생 지고 살았던 그는, 얼마 전 감염자 소탕 작전 중 부인이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국가 보상금으로 편안한 노년을 보내는가 했는데, 이렇게 감염자가 되고 말았다. 가족과의 연대가 끈끈하지 않았던 게 탓이었을까? 얼마 전 자신을 모시겠다고 합가를 했지만 감염자가 되자마자 가족에게 버림받게 되고, 결국 죽음을 선택하고자 했지만 안락사조차 돈이 없어서 좌절하게 된다. 물 없이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인간이 물이 햇빛에 반짝거리는 걸 쫓는 것처럼 자신도 죽음의 반짝임을 쫓다 삶을 마감하는 이야기가 꽤나 잔잔하지만 충격적이었다.

[에이의 숟가락]
어느 날 운명처럼 한 숟가락을 만나게 된다. 평소 소유욕을 숨기고 살았던 소녀가 숟가락의 능력을 발견하고 소유욕의 욕망의 현실화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데스노트가 생각나게 했다. 사실 죽음보다 자신이 소외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삶을 중요시하는 주인공이 소름 끼쳤는데, 그것의 실현해 주는 숟가락의 핏빛 능력이 둘이 꽤나 합이 잘 맞는 파트너처럼 보이게 해서 소름 돋았던 작품이었다.

[뇌의 나무] 
모든 것을 알려주는 나무는 인간을 평화롭게 만들었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결국 인간을 헤치게 했다. 결국 모든 건 돌고 돌아온다는 걸 알려주는 이야기 같아서 한편의 잔혹 동화 같았다.

[화면 공포증]
화면 공포증이란 화면을 보면 이유 없이 불쾌해지고 공포를 느끼다가 결국은 미쳐서 자신의 해치게 만든다는 공포증인데, 주인공은 어느 날 영화관에서 갑자기 자해를 해서 죽은 남자를 목격하게 되고, 실제 화면 공포증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화면 없이 살아가는 걸 느끼게 되고, 자신 또한 스크린에 눈을 뗄 수 없이 살아가는 걸 느끼고 화면 공포증을 겪고 있다는 걸 눈치채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실제 우리의 생활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공포증의 소재라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실제 우리는 새로운 만남을 갖는 순간에도, 밥을 먹거나 쉬는 순간 등 시간의 빈틈 사이에 언제나 휴대폰이나 모니터 화면을 보게 되는데 이에 대한 경고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숨 쉬어가듯 우리의 눈과 정신을 화면에서 멀어지게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들게 했던 이야기였다.

[미래를 기억하는 남자]
기시감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끔 기시감(한번 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지만 이미 경험한 것 같은 익숙함)을 느끼곤 하는데, 그것이 미래 혹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설정이었다. 

기시감을 무시할 것인지, 아니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현실에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진지하게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었다.

[이름 먹는 괴물] 
어느 날 교실에 분홍색 물체가 날아들고, 아이들을 잡아먹게 된다. 무분별한 피해가 일어나고 괴물은 어떤 규칙에 의해서만 움직임을 알게 되는데, 순수한 아이들조차 돌발 상황에서는 파괴의 생존 본능이 발휘된다는 것을, 흥미로운 소재로 표현한 작품이었다. 

[목소리] 
'살고 싶으면 열두 시간 안에 사람을 죽여라'
어느 날 머릿속에 영문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들리고, 무시하기엔 무시무시한 현실이 벌어지는 목소리라는 걸 알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살아남는 눈치 싸움의 시작, 인간의 생존 본능은 어디까지일지 굉장히 충격적 반전이 있는 작품이었다.

[부디 너희 세상에도]
주인공은 작가다. 글이 막힐 때면 사우나로 향하여 글발을 받는 작가가 어느 날처럼 사우나의 도움을 받으러 가는 길에 사건이 일어난다. 이 작품의 소재도 좀비였는데, 작품을 써 내려간 작가가 상상할법한 특이한 소재였고, 주인공이 화면 밖으로 나와 작가를 저주하는 것이 굉장히 작가의 상상 속 인물이 현실이 되는 느낌이라 색다른 느낌의 작품이었다.

일상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작품을 사랑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이 그러했다. 있을 법해서 무서운, 그리고 두려운 작품들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었고, 여러 부분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순간이 많아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현대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라 반가웠고, 그들의 원초적인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던 것이 굉장히 솔직하게 느껴졌던 부분이었다. 조금 있으면 무더운 계절이 돌아오는데 후덥지근한 날씨에 서늘한 공기가 그리울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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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쇄 위픽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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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부터 주인공은 눈을 떴으나 눈앞은 검은 암흑이었다. 눈을 검은 헝겊으로 가렸고, 손은 등 뒤로, 양 발목은 무릎끼리 맞닿은 채 묶여져 있다. 

곰이나 멧돼지가 손을 묶을 수는 없으니 자신을 묶은 사람은 분명 사람일 거라 짐작한다. 그렇담 왜 자신을 죽이지 않고 묶어만 뒀는지 파악을 해야 한다. 그렇게 끊긴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음이 부담스럽고, 남의 이목을 끌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무기는 총보다는 칼이다. 위협이란 걸 느끼지 못한 찰나의 순간에 칼은 그녀의 눈앞 허공 사선을 가른다.

 그들은 산속에 훈련을 위해 왔다. 6개의 배낭에는 각종 금속과 연장, 탄환 등 무기가 가득했고, 식량도 상당했다.
합숙 연수라는 말로 들어온 산속 생활은 잠시만 방심해도 칼이 날라오고 목이 잡혀 벽에 매달리게 된다.
먹고 씻을 물을 구하기 위해 매일 새벽부터 산허리를 넘어 계곡까지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다.

봉을 쥐여주고 하고 싶은 데로 공격하라고 판을 깔아줬지만 오늘도 봉을 상대에 쥐여주고 공중에 한 바퀴 돌아 바닥에 나뒹굴게 하고. 다시 또 봉을 뺏어보란다. 힘껏 달려들어도 시도하다 어깨와 다리에 무수한 목봉 세례가 쏟아진다. 그 이후에는 나무 두 개에 줄을 묶어 줄 위에 매달리게 하고 칼을 집어던진다던 지기도 한다.

몸에 상처가 늘어가는 만큼 수업의 진도는 목표를 향해가고 양이 넉넉하지 않아서 극도로 지친 날 허락한 달콤한 코코아를 마신 게 이 일의 시작이었다는 걸 기억하게 된다.

류와 조각의 프리퀄이었다.
조각이 킬러가 되기 위해 산속에서 시행된 목숨 건 1:1 수업 
죽을 만큼 힘들게 만들던가, 아니면 죽을 만큼 힘들게 해놓고 쉬는 틈에 마음을 놓게 만들었다가 빈틈이 있으면 언제든 공격이 시작된다. 체격에 비해 힘만 세던 그녀에게 기술로 몸을 익숙하게 만들게 한 비결이다.

탄환이 일으키는 회전의 감각이 팔꿈치를 타고 나선형으로 흐르는 느낌, 상대의 뒷모습과 발걸음을 주시하면서 움직임을 체크하고 어떻게 움직여야 경제적인 몸짓이 되는지 익히게 만드는 일을 생생하게 겪어나가는 시간이 소설의 짧은 분량이 짧지 않게 꽉꽉 채워져 있었다.

조각이 무기로 칼을 선호했는지, 어떻게 류에 대한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알 수 없었던 류의 마음도 조각에게 거침없이 대하는 행동 속 오묘한 기류를 일으키는지 몇몇 장면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파쇄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아래 두 문장이 맘에 든다면 당장 이 책을 시작하라고 슬쩍 영업하고 싶다.

'저 인간을 죽이기 전에는 여기를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 같다.'- p39

'이차에 타고난 다음에는, 네 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만들 거야, 머리부터 팔다리, 몸통이고 내장이고 다 뽑아다가 도로 붙일 거다 괜찮겠어?'-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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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9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0 1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4-26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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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에 산 책이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다가 책장 뒤로 뒤로 들어가서 눈에 안 띄었고, 그렇게 신간에 묻혀 보관만 잘하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파쇄란 작품이 나왔고, 파과의 프리퀄을 다룬 내용이라고 해서 아 그럼 빨리 파과를 읽어야겠네?라며 바로 파쇄를 구입하고 파과를 읽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무례한 50대 후반 남자가 서서 졸다가 눈앞에 임산부석에 앉은 만만해 보이는 젊은 여자를 향해 큰소리로 면박을 준다. 그것을 보다 못한 50대 여성이 자리를 양보한다. 사람들의 눈총에도 당연스럽게 자리를 양보당한 남자는 졸릴 것 같지도 않은데 자리에서 눈을 감는다. 죽여도 싼 인물이라고 생각할 때쯤 수많은 지하철 인파 속에 원래 거기 있었던 인물인 것 같은 평범한 60대 노인이 칼에 독을 묻혀 목표물인 그 남자를 순식간에 제거하고 나간다. 이게 시작이었다. 의뢰된 작업을 시행하는 것을 그들 사이에서는 방역이라고 불렸고, 노인은 방역 업자였다. 

일단 서사가 탄탄했다. 

주인공 이름은 조각, 하지만 과거에는 손톱, 현재는 여사님, 대모님, 그리고 할머니라고 불리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현직 킬러였다. 

그녀에게는 판자촌에서 태어나 15살에 당숙 집에 더부살이를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본의 아니게 쫓겨나게 되어 자신을 방역 업자로 만든 류를 만나게 된다. 

그 이후부터 쭉 방역 업자로 살아온 인생은 그녀의 감정만큼이나 무미건조했고, 뇌리에 남는 사건은 없는 듯했으나, 그녀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한 투우라는 남자가 무언가 해결할 일이 남은 듯하게 그녀의 회사에 입사하고 그녀 곁을 맴돌게 된다. 

진짜 재미있었다. 

구병모 작가님의 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글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는 것인데, 거기다가 말수 적은 주인공의 감정선이 눈에 그려진 게 여러 번이었고, 65세의 늙은 킬러의 마음이 오래된 칼날처럼 무뎌지는 순간이 위태위태했지만 결국 결말은 내 걱정을 안심시켰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킬러로서의 마지막이나, 혹은 자신의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아직은 마지막이 될 수 없다는 걸 암시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남겨져, 내가 마지막 읽어야 할 프리퀄 이외의 외전이 꼭 필요한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길복순'이 바로 떠올랐는데, 길복순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파과 역시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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