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 관람을 기다리며...쉴레 표지 보고 문동꺼로 샀는데 열린책들에도 나오넹 ..
쓸쓸하며 명민하고 고독한 영혼의 향기....
우리는 떠돌아다니고 있다.
- 릴케
그러나 시간의 걸음은
늘 머물러 있는 것 속에서
미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모든 총망한 것은
금세 지나갈 것이다.
머물러 있는 것이 비로소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것이다.
소년들이여
부질없는 속도나 허망한 비행에
마음을 쏟지 마라.
어둠도 밝음도
꽃도 책도.
나는 훈훈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아직은 이상할 게 조금도 없다. 그것은 `구토`속의 조그만 행복인 것이다. 이 행복은 끈적끈적한 물구덩이 밑에, `우리의` 시간-자줏빛 멜빵과 움푹 패인 의자의 시간-의 밑바닥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폭이 넓고 말랑말랑한 순간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둘레에서 기름의 티처럼 확대되고 있다. 그 행복은 태어나자마자 이내 늙어버린다. 20년 전부터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47p
그는 <여름>공원에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그 생각을 해보았다. 거의 7시가 되었다. 공원은 텅 비어 있다. 무언가 어두운 것이 일순간 지는 해를 스쳐 지나갔다. 공기는 답답했고 멀리서 소나기가 오는 징후가 느껴졌다. 지금의 관조적 분위기가 그에게는 어떤 유혹과 같았다. 그는 외부 대상에 기억과 이성을 고정시키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는 무언가 현실적이고 긴요한 것을 잊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눈을 들어 자신의 주변을 바라보는 첫 순간에, 그가 그토록 탈피하고 싶어했던 자신의 침울한 상념을 또다시 인식하는 것이었다.352~35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