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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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등록을 시작하면, 단숨에 본선까지의 700여 페이지를 달리게 된다. 


피아노 콩쿠르장을 배경으로 천재 피아니스트들의 경연, 그 천재들 중에 초천재 꿀벌 왕자! 

온다 리쿠가 맘 먹고 쓰는 소년 소녀 캐릭터들이 엮이며 성장하는 이야기는 재미 없을 수가 없다. 서점대상 1위와 나오키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평소에 클래식 매니아였던 사람들이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인 내가 읽기에는 정말 재미있었다. 

피아노 콩쿠르 배경이고, 피아노 작품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도 그렇다. 온다 리쿠가 작품 속에서 심사위원들, 경연자들, 주변 인물들을 통해 해석하는 작품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과장되어 보이는 면도 없지 않지만, 어떤 그림 효과도 없이, 글로만 그려내는 작품 해석들의 심상은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다르게 읽힐 것이다. 


자연 그 자체와도 같은 천재 가자마 진(dust)과 어릴 적 천재 신동 피아니스트였으나 어머니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공연 직전 무대에서 도망친 에이덴 아야, 전방위 천재 마사루(victory) 그리고, 그런 그들을 엄격히 가르치고 심사하는 심사위원들, 스승들, 그들 모두를 성장시키는 건 '자연'인 가자마 진이다. 모두가 사사받고 싶어 하고, 가장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유지 폰 호프만이 사사했다고 하며 추천서를 써 준 그를 음악계의 '기프트'로 받아들일지, '재앙'으로 받아들일지, 모두가 시험에 든다. 


이 책에서 흥미롭게 여겨졌던건, '예술'과 '기술'과 '마케팅'의 '직업'인 콘서트 피아니스트들의 세계인데, 온다 리쿠는 책에서 끊임없이 다른 직업들과 비교하며 공용어로서의 세계 어디에서나 지구인 누구에게나 통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음악만의 고유한 점과 음악이 다른 생업과 같은 점들. 


"그녀는 만날 때마다 문학계와 클래식 피아노의 세계는 비슷하다는 말을 한다. 

봐, 비슷하잖아, 콩쿠르와 신인상의 난립. 똑같은 사람이 인정 받기 위해서 온갖 콩쿠르와 신인상에 응모하는 것도 똑같아. 그걸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은 양쪽 다 극히 일부지. 자기 책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 자기 연주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바글바글한데, 둘 다 사양산업이라 읽을 사람도 들을 사람도 한 줌밖에 안 돼." 


윽,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찌른다. 


" 하염없이 키를 두드려대는 것도 비슷하고, 언뜻 보면 우아해 보이는 점도 비슷해. 사람들은 이미 완성된 화려한 무대밖에 보지 않지만, 그걸 위해 평소 아찔하리만치 오랜 시간을 얌전히 틀어박혀 몇 시간씩 연습하거나 원고를 써야 해." 


콩쿠르도 신인상도 자꾸 늘어가는데, 지속하기 위해서, 그 바퀴를 계속 굴리지 않으면, 파이가 줄어버리니깐. 

하지만, 음악계는 투자비용이 다르지. 악기, 악보, 레슨비, 발표회 비용, 꽃다발값, 의상, 유학비용, 대관료, 인건비, 전단지, 광고비, 등등. 소설은 밑천이 들지 않지. 하지만, 소설이 음악에 당해낼 수 없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통하는 음악, 언어의 장벽이 없다. 


양봉가의 아들, 피아노도 없고, 정식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가자마 진이 '자연' 그 자체라서 인간계를 벗어난 것 같은 허술한 면이 있고, 에이덴 아야는 어릴적 도망쳤던 음악계로 다시 돌아와 끊임없이 고민하고 회의하는 것에 비해 운동선수 출신인 마사루, 이름마저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장신에 운동선수 멘탈에 음악 천재에 전략가이자 스타성마저 지닌 바다와 같은 연주를 하는 마사루. 음악인이 아니라 인간으로도 어디 가도 빛날 완전체이다. 그런 그마저 자신과 각기 다른 스타일의 천재들을 만나 성장하게 된다. 


범인들에게 와닿는, 천재를 동경하고, 음악가의 세계로 다시 발들인 아카시도 있다. 음악가였다가 포기하고 악기점에서 일하다가 준비해서 콩쿠르 막차를 탄 그의 온화한 연주 역시 이 콩쿠르를 통해 성장하고, 길을 찾게 된다. 


가자마 진의 연주가 경연자들이나 일반 관중들에 비해 심사위원들에게 공포와 패닉을 선사한 것은 그들 마음의 연약한 부분, 과거의 꿈과 이상을 묻어둔 방을 건드리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을 조금씩 자기편으로 만들며 매 예선 아슬아슬 턱걸이로 통과한 것.  


"프로가 되면 그 작은 방은 상당히 미묘한 존재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품고 있었던 '정말로' 좋아하는 음악의 이미지. 음악에 대한 풋풋한 동경이, 어린아이의 얼굴로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음악가가 되면 좋아하는 음악과 훌륭한 음악은 다르다는 업계 내의 상식이 몸에 밴다. 일로 하는 음악, 상품 가치가 있는 음악을 제공하는 데 익숙해질수록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 공언하기 어려워진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주,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주가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 것인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프로 경력이 길어질수록 허들은 계속 높아지고 이상은 멀어져 가슴속의 작은 방은 점점 더 신성한 장소가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작은 방을 열어보는 일도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평소에는 그 존재를 일부러 잊게 된다." 


이상에 도달할 수 없고, 그 이상은 높아져만 가고, 업계에 내려오는 '훌륭한' 음악이 정해져 있고, '일'이고 '상품가치'를 생각하는데 익숙해 지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도 쉽지 않고,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수불가결한 일이 되고, 결국은 기술은 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과 이상의 갭은 점점 커져가는 것일까. 순수예술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예술을 위한 예술. '돈'이 필요 없는 예술. 


엉뚱한 가자마 진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아버지 친구인 꽃가게에서 먹고 잔다. 책 읽는 내내 꽃이라면, 꽃일이라면 상상하면서 읽었는데, 실제 꽃꽂이 선생님의 꽃꽂이 이야기가 나온다. 


"음, 꽃꽂이는 음악하고 비슷하네요." 

"그래?"

진이 가위를 다다미에 가만히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재현성이라는 점에서 꽃꽂이하고 똑같이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이 세상에 계속 붙잡아놓을 수는 없죠. 언제나 그 순간뿐, 금방 사라지고 말아요. 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고, 재현하고 있을 때는 영원한 순간을 살아갈 수 있죠." 


순간의 영원성이라.. 찰나의 예술, 어떻게 즐기냐에 따라 그 찰나가 좀 더 길어질수도, 짧아질 수도 있지만, 찰나라는 것은 같다. 재현하고 있을 때만이 영원한 순간이라기엔, 플로리스트는 재현하고 뒤로 빠지지. 그리고, 그 순간부터 꽃의 생명은 시작이고. 


이 뒤에 섬찟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도가시 아저씨가 꽂으면 가지도 꽃도 살아 있네요. 마치 자기가 살해당한 줄도 모르는 것 같아요." 


살해당했다니, 어이, 천재씨. 꽃꽂이는 꽃의 생명을 끊는 것이 아니라, 연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가장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여튼, 난 무슨 이야기를 읽던지간에 꽃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무려 꽃선생님이 나와서 꽃이야기를 해주니 황홀했다. 꽃선생님이 감수했다면 '이건 아닌데' 싶은 것도 있지만, 뭐, 사소하다. 넘어가자. 


음악계의 많은 이들이 평생을 걸고, 인생의 시간을 쏟아 부어 소리를 만들어낸다. 


"음악가란 직업의 무게, 그것을 생업으로 삼는다는 의미. 

생업이라니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 또 있을까? 실로 이것은 업, 살아 있는 업이다. 허기를 채워주는 것도 아니다, 무엇이 남는 것도 아니다. 그런 대상에 인생을 걸다니 업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렇게나 다른 세상에 잠시 다녀왔다. 

'꿀벌과 천둥'의 세상. '봄과 수라'의 세상. 

 

원서와는 다른 국내 표지, 휘리님 특유의 수채 초록 벌판에 숨어 있는 작은 피아노 하나가 인상적이다. 

이 책과 무척 잘 어울리고, 이 책이 만들어내는 심상과도 잘 어울린다. 


음악은 항상 ‘현재‘여야만 한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는 전시품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이 아니면 의미가 없어. 아름다운 화석을 캐냈다고 거기에 만족해서는 그냥 표본에 그쳐 버리기 ㅐ문이지.

이 아이의 프로그램은 호프만 선생님이 골라준 게 아니다.
그렇게 직감했다. 아마도 이것은 이 아이가 직접 만든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에게는 타고난 편집 능력이 있다. 편집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쓰임이 있는데, 최근 음악가들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다. 셀프 프로듀스 능력이라고 해도 좋다.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지, 어떤 음악가로 보이길 원하는지. 그런 객관적 시점을 갖춘 음악가만이 남들과 구별되고 살아남을 수 있다. 리사이틀이든 뭐든 라이브 무대라는 것은 그때마다 한 장의 앨범을 구성하는 작업이다. 그게 남의 곡이든 각기 다른 시대의 곡이든 마찬가지다. 자기 내면으로 끌어들여서 곡을 통해서, 프로그램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뭔가를 깨우치는 순간은 계단식이다.
비탈을 느긋하게 올라가듯 깨우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연습해도 제자리걸음,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있다. 여기가 한계인가 절망하는 시간이 끝없이 계속된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순간이 찾아 온다. 이유는 몰라도 느닷없이, 그때까지 연주하지 못했던 부분을 연주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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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7-08-03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온다 리쿠는 <밤의 피크닉>,<흙과 다의 환상>,<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환상> 이런 종류인데, 이 책은 어떤지 궁금해지네요. 한동안 정신없이 온다 월드에 빠져있다가 한참동안은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ㅎㅎ

하이드 2017-08-03 11:52   좋아요 1 | URL
그 안 쳐다보던 시기에 별로인 작품들 많이 나왔고, 이 작품으로 다시 온다 세계에 빠지실 수 있으실겁니다! 영민한 소녀 주인공!
 
고양이처럼 생각하기 - 행동학에서 본 고양이 양육 대백과
팸 존슨 베넷 지음, 최세민 옮김, 신남식 감수 / 페티앙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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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책들 나오면 대충 다 읽어보는 편인데, 딱 이거다 싶은 책들은 많지 않다. 이 책에서는 이런 점은 좋지. 정도?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대충 목차만 훑어보고 말았는데, 이제야 제대로 읽어봤다.  아, 이거 나와 고양이들의 인생묘생 고양이 책이었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는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개는 맹목적이고, 고양이는 독립적이라고. 개는 혼자 두면 우울증 걸리고, 고양이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 반박해, 아니다, 고양이도 우울해 한다.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의 만능대답인 '개묘차'가 있지요. 고양이마다 다르지요. 가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고양이를 숭배하고, 사랑하며 함께 살기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책에도 나온다. 고양이 보호자들에게 필요한건 딱 두가지라고. '사랑'과 '인내심'. 대부분의 보호자가 전자는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후자는 부족하다고. 


개사람과 고양이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수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동네 동물병원 원장님은 누가 봐도 개사람이고, 본인 스스로도 개파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 행동학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해주신다. 고양이도 병원에도 자주 가고, 밖에도 나가보고 해서 사회화되어야 한다고. 그 때는 개사람이라서 사회화에 관심 많구나. 정도로 생각했지만, 시간 지나면서 보니, '사회화'는 생명에 직결된 중요한 것이다. 


말로는 4개월령까지 부모묘, 형제묘들과 함께 자랐고, 나에게 왔다. 보통 2-3개월 정도면 데려오는데, 한 달이나 더 있다 데려온 셈이고, 페르시안의 성격이 느긋한 점도 있겠지만, 안정적인 새끼냥 시절을 보내서 별 탈 없이 건강하고 무난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리처는 4개월령에 버려진건지, 구조된건지, 내가 다니는 동물병원에 오게 되었고, 동물병원에서 임보하며 분양하고 있었는데, 입질이 너무 심해서, 혹은 병원에서 분양 조건으로 중성화, 혈청검사 등등을 달아 두어서? 혹은 검은 고양이여서? 여튼, 특이한 폴드 믹스에 올검에 호박색 눈임에도 불구하고, 몇 달이나 입양되지 않다가, 내가 동생 제주 가자마자 머릿수 하나 줄었다고, 냉큼 데려 온 케이스로, 병원에 4개월 정도 있었기에, 병원 당연히 익숙하고, 사람들에도 익숙하다. 말로도 리처도 어디 데려다 놓아도 지 자리 찾아서 느긋하게 드러눕는 녀석들이고, 낯선 사람 따위 겁내지 않는 덕분에, 무심한 집사지만, 무던하게 아이 둘과 지낼 수 있었다. 


집사 10년차인 나에게도, 초보 집사에게도 필요한 내용들이 빼곡히 나와 있는데, 서양권 고양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상황에 좀 안 맞는 이야기들도 많지 않고, 저자가 명확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산책냥은 위험함', '발톱 제거 수술은 학대'(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서), '중성화 수술 해야 함', '아프면 동물병원' 등이 내가 생각하는 부분과 잘 맞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선택을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사례 들어 이야기해 준다. 굉장히 디테일하게 모든 부분을 커버하면서도, 같은 볼륨의 비슷한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사전적 나열이라 지루하지 않고, 고양이 정말 좋아하고, 오래 키운 수의사 친구가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같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 책의 모든 부분을 읽고 또 읽어 내 것으로 만들 것이지만, 내가 즉각적으로 반성한 것, 해야 겠다고 생각 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고양이 놀이와 이름 부르기. 고양이 이름 불러서 오게 하기를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고 했는데, 고양이는 부른다고 오는 동물 아니잖아? 그리고, 그걸 또 매력처럼 소화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훈련에 대한 방법들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모든 훈련의 방법은 같은 원리 이므로, 책을 보면 '인내심'을 가지고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훈련은 훈육이나 강압이 아니다. 보호자와의 유대감을 높이고, 안전하고, 몸의 건강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 이름 부르면 오기. 를 훈련 시키면, 위험한 상황에서, 고양이가 집을 나갔을 때, 이름 불러서 오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야 할 재해 상황은 흔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불러도 안 오는 고양이.라면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집 나가는 고양이는 매일 매일 너무 많이 보고 있고.. 


고양이와의 상호작용 놀이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놀아주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이 되었지만, 야생성이 남아 있는 고양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놀이는 보호자와의 유대감은 물론, 고양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집고양이인 경우, 움직이게 하여, 몸건강, 정신건강에 모두 좋다. 단 5분이라도 꾸준히 매일 놀아 주는 것이 좋은데, 하루에 두 번에서 세 번. 아침에 출근 전에 놀아주면, 고양이들은 사냥(놀이)의 만족감에 하루 종일 자다 깨다 하면서 보호자를 기다린다. 집에 와서 또 놀아주고, 매우 활발한 고양이가 있다면, 밤, 새벽 우다다를 방지하기 위해 자기 전에 놀아주는 것도 좋다. 


앞으로 해야겠다 생각한 것들도 많지만, 고양이 CPR 배워두고, 말로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정착할 수 있는 집을 찾아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에 나는 굉장히 불안한 정신상태였고, 나쁜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있는 두 고양이 생각하며, 속상해 했고, 급기야, 말로랑 리처 나이 들어 죽으면, 나도 그 때 죽어야지. 까지 갔지만, 이십년은 더 살테니, 의미 없어져서 그냥 그렇게 마음 가라앉혔다는.. 4개월부터 매일을 함께 해 온 말로는 이제 열 살이고, 나는 십년의 방황을 했고, 앞으로는 이 아이가 나와 함께 하는 동안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이 이 책의 주제이다. '고양이처럼 생각하기' 나는 그렇게나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도,  말로 입장에서, 리처 입장에서 뭔가를 생각하려고 노력조차 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고양이 행동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책 한 권 읽고, 어렴풋한 정도이지만,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에 새로운 관점을 주는 책이었고, 그건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하다. 


누가 고양이책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이제 일단 이 책 읽어보시라 추천해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과 보호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일단 나와 내고양이들 챙겨야지. 


내가 요 며칠 캣시터 하는데, 캣시터 하는 집의 냥님들과도 상호작용놀이를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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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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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관련된 다양한 소설/비소설이 나오고, 기존에 읽었던 책들도 페미니즘 안경을 끼고 읽게 되면 더 재미있어진다. 그 동안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았던 SF 장르의 책들 중에 여자 작가가 쓴 여자 이야기들이 많은 것은 좀 신기하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봤어서, 남자가 여자로 바뀌기만 해도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는 걸 왜 모를까. (이건 요즘 한국 영화 이야기) 여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아직 사지 않았던 책인데, 애인이 도서관에서 빌려줬다. 단편집인데, 정말 너무 아름다운 책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을 읽고, 정말 단편이고, 장편이고, 너무 훌륭하고 재미있어! 감탄했는데,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책에는 옥타비아 버틀러와 또 다른 감동과 여운이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이 더 이야기 공식에 충실한 재미가 있다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이야기들은 아름답다. 어슐러 르 귄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해피엔딩이라 할 만한 것은 한 편도 없다. 주인공이 죽거나 파괴되거나 멸망하거나 엄청 슬픈 사실을 알게 되거나 등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찝찝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아름답고,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그 세상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인데, 좀 더 나아질 여지가 있는 세상일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더 여운이 많이 남는 이야기들.


단편들이지만, 이야기의 어떤 부분을 보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것 같다. 표제작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얼핏 공익적인 소설같이 보이기까지 하지만, 모험심 가득한 소녀의 여행, 우정, 순수한 열정 같은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해피앤딩으로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도 다양한 감상을 끌어내는 소설일 것 같다.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영화적이고, 많은 영화 장면들을 떠오르게 하는데,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왠지 <로건>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서는 <로그 원>!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에서는 현실과 현실을 외면하고 배달부가 된 온 세상 사람이 자매인 배달부가 나오는데, 나 역시 현실보다 배달 여행을 가는데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내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목차가 1. 사랑은 운명 2. 운명은 죽음 으로 나뉘어 있는데, 음.. 역시 의미심장하다.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 

나는 앞의 이야기들이 더 좋았다. 불멸의 사랑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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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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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선은 간데없고 악이 이렇게 판을 쳐대는지, 

어째서 평범한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괴로워하고 이런 쓰라림을 맛봐야 하는 건지 …….


강상중 선생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페터 회의 '수잔 이펙트' 바로 다음에 읽었다. 

페터 회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생각과 내가 평소 헤어나오지 못했던 생각들, 당장 닥친 문제들에 대한 답이 보이는 것 같다. 이런 사유를 책으로 내주신 선생님 계신 곳으로 절. 


가장 근본적인 주제들을 현실을 통하여, 고전들을 통하여 풀어내는 것을 읽고 있으면, 생각의 힘, 마음의 힘, '소설'의 힘 등을 생각하게 된다. 책에서 답을 찾는 나에게 이 책은 '그래, 책 안에 답이 있어'를 저자가 깊이 인용하고 분석해주는 소설들을 보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풀어낸 책을 보고 이중으로 느낀다.


저자가 악에 대해 고찰하기 전에 예로 드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가와사키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살인사건(중고생 소년들이 중1소년에게 심각한 고문과 폭행을 가한 후 한 겨울에 발가벗겨 강물에 던짐. 시체를 옮길 때 발로 굴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의 분노 폭발) 환자 1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군마대학병원 사건(2010년에서 2014년에 걸쳐 복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 8명이 사망. 이 사망사고 전부에 40대의 한 집도의가 연관되어 있고, 이 집도의가 관여한 개복 수술에서도 수술 후 10여명의 환자가 사망했음이 알려짐), 나고야대학 여학생 살인,상해,방화사건(나고야의 여학생이 77세 여성을 살해한 후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고 발언. 살인을 저지르고 집에 가는 길에 저택에 방화, '장례식에서 불에 탄 시체를 보고 싶어서' 라고 함),잔학무도한 IS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구체적인 습관,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서입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습관이란 '사는 법'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사는 법을 체득한 사람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사는 법이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죽음의 충동을 조금씩 길들여 제어하고 조절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나고야 여학생은 이 구체적 습관인 '사는 법'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죽음의 충동을 길들이는 방법을 모르는 공허한 존재,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파괴충동을 분출시키는 것이라고.


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곳이 직장이건 공공장소이건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아주 섬세하게 사회적인 룰이 결정됩니다. 공허한 존재의 악은 세계의 그런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죽음의 충동으로 분출되지 않았을까요. 


죽음의 충동은 공허한 존재에 숨은 마물입니다. 악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마물을 길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허함이란 너무도 간단하게 우리에게 들러붙곤 하니까요. 그러니 우리의 세상은 결코 악의 세계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 끔찍한 나고야 대학생 사건의 뿌리를 우리가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니, 이 학생 속의 악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니. 일견 이해가지 않지만, 이런 끔찍하고, 인간 같지 않은 범죄들을 보며 도대체 왜? 어떻게? 끔찍함을 넘어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게 했던 '악'의 존재에 대해 내가 사는 이 사회에 함께 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얼마전 필리핀 성매매남들을 잡는 장면이 현지 뉴스 페북라이브로 중개 되면서 '성매매하는 한국남자들' 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성매매남 관상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고, 사귀면서 겪게 되는 갈등들, 이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나를 관찰하는 것 등을 경험하는 대신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는 여자만 만나봐서 사회에 나와서도 적응 못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이 얼마짜리가. 하며 분노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그렇게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눈빛이 죽은 동태눈깔처럼 되서 '성매매남 관상'이 된다고! 얼른 성매매를 그만 하고! 인간으로 살라고! 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위에 이야기한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며 섬세하게 결정된 사회적인 룰, 세계의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동태눈깔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그렇게 '공허함'이 들어찬 곳에 '악'이 자리잡는다는. 


이런 것이 역사상 대규모로 나타난 것이 '나치' 였다. 

목적성도 생산성도 없는 파괴(살육)행위를 위해서 모든 수단을 소비해버린다. 

나치 독일이 품은 악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공포인데, 이것은 나치 독일 안의 '악의 이면성'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과대망상적으로 크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과 자신이 병적일 정도로 작은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에 관한 것.


이런 분열된 이면성 속에 나고야 대학생이 안고 있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포, 그 공동감(속, 핵심, 중심이 비어 있는느낌) 의 반작용으로 '과대망상적으로 자기를 긍정'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악의 이면성'이 낯설지가 않다. 


과거의 악의 축이 나치였다면, 오늘날 악의 축으로 떠오르는건 IS의 폭력과 테러이다. IS를 이슬람원리주의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활동은 고전적 원리주의와 거리가 멀고,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이슬람의 규칙을 인터넷상에 카피 엔 페이스트, '복사해서 붙여놓고' 이를 폭력을 정당화하는 지표로 삼았다"는 느낌만 든다.

이런 얄팍한 원리주의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든지 다른 스티커로 바꿔 붙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현대의 자본주의를 '익명의 시스템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1장 '악의로 가득한 세상' 에 나오는 악의 여러가지 얼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2장 '악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악'의 존재, 악의 정체를 탐구하는 장이다. 성서에 나오는 '베르제바브, 바알세붑 들의 이야기, 욥기의 욥 이야기 등과 고전으로 넘어 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토마스 만의 작품 등이 소개 된다. 뒤로 가면서 소개 되는 문학작품 레퍼런스들로는 강상중 선생의 책을 오래 읽은 사람이라면 짐작하듯이 나쓰메 소세키, 도스토예프스키('악'을 탐구하는 소설로 이만한 작가가 있을까) 가 나오고, 자본주의를 현대의 시스템악으로 규정한만큼 베버도 나온다. 


원죄와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근원적인 악'과 '진부한 악' 으로 나누어 놓고 있다. 

한국에서는 '악의 평범성'으로 번역되는데, 일본판에서는 '진부함'으로 나오고 있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나 맥베스가 아니었다. 더욱이 '악당이 되어주지'라고 한 리처드 3세의 결심만큼이나 이 진부함과 무관한 것도 없으리라 (중략) 완전한 무사상성 - 이는 결코 어리석음을 뜻하지 않는다 - 이것이 바로 아이히만이 그 시대 최대의 범죄자 중 한 사람이 되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깐, 진부한 악이란, 사려와 상상력의 결여이고, 이 '무사상성', 사상 없음은 우리에게도 있다. 


짧은 책이고, '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성경과 고전, 역사속의 사건과 인물들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낯익고, 마음에 와닿을 일인가 싶다. 지금이 '악의 시대' 이고,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갈구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 


악이란 결국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악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병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악은 '텅 빈'마음에 깃드는 병입니다. 



루프트한자 계열 항공기 사건과 같은 일은 앞으로도 더 일어날 거라 보고 있습니다. 파일럿 중에서 사건을 모방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악이란 기억과 관습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악행을 저지른 것을 기억합니다. 일단 악행을 저지른 인간은 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악행은 반복되는 것이지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악의 연쇄는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비극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간에도 악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악은 세간이라는 몹시 진부한 인간 사회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크건 작건 공허함을 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세상을 거절하고 싶을 정도의 증오에 휩싸이는 일도 있겠지요. 공허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파괴 충동이 있으며 사람을 상처 주거나 멸시하는 데서 오는 어두운 기쁨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런 암흑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이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의 충동‘과 어떻게 타협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길이 소세키가 생애를 바쳐 그린 세간의 삶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바깥쪽에서는 타협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로애락 가운데 이어지는 나날이 있는 것이라며 소세키는 세간의 세부를 그려내 보였습니다.
서로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생활을 소세키는 달관하여 희극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일 따름인 절망의 자본주의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시스템 자체가 악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 자체가 인간을 고뇌하게 하고, 그런 고뇌를 계속 만들어내 시스템을 유지하는 악의 연쇄를 낳습니다. 말하자면 전 지구적인 규모로 악이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절망 속에서도 타자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 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조금은 타자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누그러질 순간이 있을 터입닏. 비록 일시적인 공감일지라도 이를 얻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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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4-2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니요. 흡사 우리나라 일인줄 알았어요. 특히 나고야 여자 대학생이야기가 충격적이면서도 얼마전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요. 악은 텅빈 마음에 깃드는 병이란 글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ㅜㅜ 함께하는 사회이니 그 이유를 함께 찾아보자는 말씀도 공감되고요.

하이드 2017-04-22 10: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우리나라 뉴스들에 나오는 사건들이 많이 오버랩되더라구요. 뉴스 볼 때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사람이? 정말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는데, 이 책 읽고, 많은 부분 더 생각할 거리들을 얻었습니다.

 
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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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9천 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에 늘 감동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떠올랐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책에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들, 주인공의 선택과, 선택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포기, 혹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책에 쓰여진 것만큼이나 선연하게 다가와서 종이에 쓰여진 것보다 더 강하게 가슴을 친다. 


단편도 아니고, 장편도 아닌, 노벨라, 중편 소설이다. 1930년대 초반, 히틀러가 태동하기 직전에 인생의 한 사람을 만난 소년의 이야기이다. 역사책을 이미 읽어버린 우리는 유대인이었던 소년과 유명한 독일 귀족가 아들의 우정의 결말을 알 것 같다. 이 시기의 이야기들은 많이 읽은 것 같지만, 근래 읽었던 'Hhhh'와 이 책 '동급생'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부터 한숨이 나기 시작했다. 동급생이었던 두 소년이 좋아했던 독일 고전 문학의 한 장면 같다. 아름다운 문장들과 중편의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다.


책의 여운이 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오랜만에 소설의 아름다움, 소설이 마음에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가 생각하게 된다.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고, 서문 두 개와 옮긴이의 말은 나중에 읽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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