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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미술 산책 2008/04/18 14:16   http://blog.hani.co.kr/bonbon/9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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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4-1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새 구본준 기자님 총애한다.(>_<)

순오기 2008-04-19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총애할만 한데요~ 이런것을 발굴해내려는 그의 생각이 존경스럽군요!

마노아 2008-04-19 08:0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 관심이, 그 감각이, 그 생각들이 참 좋아요^^

무스탕 2008-04-19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자분이시네요.
덩달아 이런 기사 퍼다주시는 마노아님도 사랑스러워요~ ^^*

마노아 2008-04-19 11:42   좋아요 0 | URL
헤엣, 무스탕님께 사랑받는 마노아군요! (^___________^*)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쁜 학교 담장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담길이라면 어디일까요? 덕수궁 돌담길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덕수궁 돌담길에서 조금만 더 정동쪽으로 올라가시면 아주 인상적이고 예쁜 또다른 담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쁜 학교 담입니다. 바로 이화여고 담길입니다.

 

IMGP0065.JPG

저 보기 좋은 돌담이 이화여고 담장입니다. 역사가 오랜 학교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담장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시면 다른 돌담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랫부분입니다.

돌담 아래 시멘트 구조 부분이 울긋불긋한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 부분은 경사로를 따라 점점 넓어지면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IMGP0071.JPG

투박하고 정감어린 돌담 아래 칙칙한 시멘트 담이 맞닿는 구조여서 전통의 정취가 그윽하려다 말수도 있는데, 저 그림이 들어가 정말 독특한 담이 되었습니다.

 

IMGP0069.JPG
IMGP0070.JPG

저 담에 그려진 그림은 정식 공공미술 작품입니다. 이름하여 <담꽃>. 작가는 김대성씨입니다만 계원조형예술대학과 이화여고 학생들이 참여한 모두의 작품입니다.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로 지난 가을 만들었습니다.

 

사진으로 보시면서 느끼셨을텐데, 저 담에 핀 꽃 그림은 아주 선명하지 않고 좀 희미하게 보일겁니다. 그 이유는 저 작품은 분필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작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이화여고의 저 예쁜 담이 반가웠던 이유는 서울에서 예쁜 담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600년 역사도시라고 하지만 서울에서 전통 담장을 만날 곳은 궁궐 주변을 빼면 극히 드문 실정입니다. 현대식 담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담을 굉장하게 꾸밀 필요도 없을 것이고, 담으로 예술할 것도 아닐 겁니다. 그러나 그냥 보기에라도 좋고 따라 걸으면 정겨운 담들은 정말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바쁘다보니 담을 별로 인식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담이라는 것 하나에도 참 많은 것들이 담겨있을지 모르거든요.

 

# 담이 담고 있는 것들

 

담이란 것은 참 묘합니다. 여기는 내땅이니 들어오지 마시오, 라며 가로막는 배타적인 구조물인데도 잘 꾸며놓은 담을 보면 정겨워집니다.  

특히 우리 전통 담들은 그 자체로 미술품처럼 예쁘고 정답습니다.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담이 가장 예쁘다고 하면 주관적이기 짝이 없지만, 제눈에는 우리 담장이 가장 멋져 보입니다.

 

한국은 분명 `담이 예쁜 나라'입니다.

우리 담은 궁궐처럼 담이 정말로 방어용인 곳을 빼면 대부분 사람 키를 넘지 않습니다. 사적 공간임을 알리고자 할 뿐, 남의 눈을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성껏 담을 가꿉니다. `꽃담'이란 일반명사까지 생겼을만큼 담은 전통 건축에서 주요한 장르가 되었습니다.

 

자경전곷담1.jpg
경복궁 자경전 돌담.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꽃담은 예쁜 벽돌로 무늬를 만들어 꾸민 담입니다. 우리 꽃담의 대표선수는 역시 경복궁 자경전 꽃담입니다. 창덕궁에 있는 낙선재 꽃담도 일품입니다.

 

일반 살림집에서는 저렇게 멋드러지게 꽃담을 짓기는 어렵지요. 기와조각, 그러니까 와편을 이용해서 모양을 내는 꽃담을 세우기도 합니다.

기와조각 담장인 와편 담장은 우리 전통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멋진 부분입니다. 와편담장에는 실용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비가 많이 오는데 흙으로만 담을 쌓으면 무너지기 쉽기 때문에 기와를 넣어 지탱하는 힘을 키워준 것입니다. 

 

외암리돌담1.JPG

충남 아산 외암리민속마을 돌담.


소박한 돌담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돌담이란 것이 대충 턱턱 줏어온 대로 쌓아놓은 것처럼 보여도 나름 엄청나게 과학적이라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돌 사이 틈과 구멍이 있어 바람과 물이 쉽게 빠지고 드나들며 물기가 얼고 풀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돌담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쌓습니다. 삐뚤빼뚤하게 쌓는 게 아니라 완만하게 곡선을 이루는데, 직선으로 쌓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곡선이 공학적으로 더 안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쌓은 것입니다. 그래서 돌담은 `숨어있는 조상들의 지혜'로 종종 꼽힙니다.

 

외암리돌담3.JPG

외암리 민속마을 돌담길. 각종 식물들이 어우러져 더욱 예쁘다.

 

이 정겨운 돌담들은 이제 정말 드물어졌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청이 2006년엔가 전통 돌담길이 잘 남아있는 곳들을 골라 문화재로 지정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로 지정되어버리면 개발 등을 못하게 되는 것을 우려한 주민들이 반발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문화재를 보존하면 복덩어리가 되는 풍토가 빨리 정착돼야 풀릴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 담이 보여주는 빼어난 상상력

 

우리 전통건축 담장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뜨리지 말아야 할 멋진 담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전통 정원의 백미라고 하는 전남 담양 소쇄원 담입니다.

소쇄원에서 반드시 봐야 할 곳이자 가장 멋진 부분이 바로 맨 윗쪽 계곡에 세운 담입니다. 

 

소쇄원계곡담장.jpg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담을 쌓으면서도 담장 아래를 자연석으로 괴고 길을 터서 계곡물이 흘러내려가도록 했습니다. 물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해서 수구문이라고도 합니다. 저 담 하나만으로도 소쇄원은 우리 건축문화재의 보물이 될만합니다. 

저 담은 아이디어 못잖게 생긴 것도 무척 멋집니다. 윗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왼쪽 계단식 담장을 한번 보시죠.

 

소쇄원담장.jpg
사진=네이버 백과사전

 

# 담은 우리를 비춘다

 

저런 담이 우리 주변에 많이 남아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꼭 전통 담이 아니어도 예쁜 담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긴 매끈하게 잘 만들어놔도 낙서에 광고지만 붙여대니 그것도 문제이긴 문제입니다.

 

담은 분명히 중요합니다. 땅의 소유 경계를 가르는 구조물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크고 도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상당합니다. 거리의 인상이 지저분하느냐, 깨끗하느냐는 담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시에 담은 중요한 문화공간이기도 합니다. 벽화며 그래피티 운동 등은 담이 있어서 생겨난 문화예술이라고 하겠습니다. 

 

담이 예쁘면 지나가는 사람들 마음도 풍요로워집니다. 예쁜 담길을 걷는 정취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겁니다. 덕수궁의 돌담길을 생각해보시죠. 덕수궁 내부 공간보다도 그냥 그 담따라 걷는 길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이화여고 담장은 담 하나만 바뀌어도 학교는 물론 거리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담은 휴식처이자 예술의 무대가 된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담은 우리를 담습니다. 담 안쪽으로는 주인만의 것이지만, 바깥으로는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담은 도시의 인격입니다. 담을 보면 우리가 보입니다. 우리 주변에 기대고 싶은 담, 따라 걷고 싶은 담이 늘어나주면 좋겠습니다.

 

구본준 기자 http://blog.hani.co.kr/bonbon/

 **

요새 구본준 기자 기사 보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얼마 전인가 지방의 어느 마을에선 집주인 얼굴을 담장에 그린 것을 소개한 블로그를 본 적이 있는데 무척 멋있다고 느꼈었다. 기사를 스크랲해둘 것을, 좀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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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4-16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나가 저 여고를 나왔는데요...학교가 얼마나 큰지..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가면 동이 틀려지더군요.

마노아 2008-04-16 20:57   좋아요 0 | URL
허억! 버스가 교정 안으로 들어오는 모 대학이 떠오르는군요. 학교 정말 크네요. 세상에!

Mephistopheles 2008-04-16 21:08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치곤 제법 크죠..저 학교가..

마노아 2008-04-16 21:21   좋아요 0 | URL
체육 시간에 운동장 돌기 엄청 힘들었겠어요^^ㅎㅎ 저 중학교 때 학교가 커서 운동장도 무지 컸거든요.

hnine 2008-04-1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경전 저 꽃담에 대해 레포트를 쓴 적 있어요. 대학교 때 <한국미술사> 수업 들으면서요.
좋은 글이네요.

마노아 2008-04-17 11:14   좋아요 0 | URL
와, 한국미술사 수업 재밌었을 것 같아요. 요 기자분 글들이 엄청 재밌더라구요. ^^

순오기 2008-04-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우리만의 것을 찾아내 알리는 것이 '세계화'인데... 죽어라 외국 흉내만 내려는 개념없는 인간들 때문에 미치겠어요.ㅠㅠ 너무 멋진 생각을 가진 구본준 기자가 궁금해집니다. 추천~꾹꾹하고 싶어요.
광주이벤트 때, 저 소쇄원 담장 잘 보고 가세요!

마노아 2008-04-17 11:15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소쇄원 담장 곧 볼 수 있겠다 기대하고 있어요. ^^
서울은 백제 시절부터 계산하면 역사가 2천년인데, 옛 손길을 찾기가 너무 어렵죠. 가슴 아픈 일이에요ㅡ.ㅜ

세실 2008-04-1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곱고 아름다워요.
덕수궁 돌담길은 시립미술관 가면서 보았는데 조금 더 올라가면 이화여고 담이 보이는군요. 색연필 담이 참 예뻐요. 다음에 가면 꼭 봐야 겠습니다. 아 나두 소쇄원 가고 싶어라~~ 님은 벌써 찜하셨군요.

마노아 2008-04-17 21:05   좋아요 0 | URL
시립 미술관 두 차례 가 보았는데도 덕수궁 돌담길을 보고 오질 못했어요. 담 기회에는 이화여고 담장까지 같이 보고 와야겠습니다. 세실님도 아이들 데리고 소쇄원 오셔요! 우리 영광의 상봉을 하는 겁니다^^

가시장미 2008-04-17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희 회사는 요 근처죠. ㅋㅋ 점심시간에 많이 걸어요. :) 시립미술관 바로 앞에 있는데..
언니 요 근처에 계시는거죠? 담에 밥이라도 같이 먹어요- 점심시간에 산책이라도 같이 할까요? 으흐
요즘 날씨가 좋아서- 점심에 나가면 자꾸 거닐고 싶다는 생각만 들어요. 근데, 점심에 나가면 사람들 정말 많죠? 참! 세실님께서 섹시하시다고 전해달래요. (긁적!) ㅋㅋ

마노아 2008-04-17 21:09   좋아요 0 | URL
앗!장미 동상! 어쩌다가 내가 시립 미술관 근처에 살게 된 거징??? 전혀 아닌데^^;;;;
점심 시간에 산책하기엔 좀 멀어멀어(>_<)
세실님의 섹시 소동은 장미 동상을 나로 착각한 것??? 아이 참, 나야 영광이지만 장미양에게 미안하잖아^^ㅎㅎㅎ

무스탕 2008-04-17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수궁 돌담길을 인식하며 걸어본게 지난 겨울인데 못 본거 같아요.. 왜 못봤지..? 아까비..
정말 매력적인 담이네요. 저렇게 그리느라 얼마나 정성을 쏟았을까요..?
저 이쁜 그림이 지워질거라니 아깝네요.

마노아 2008-04-17 21:09   좋아요 0 | URL
고흐전 때 보았어요? 전 지나가면서도 눈치를 못 챘어요. 사실 덕수궁도 못 가봤어요ㅠ.ㅠ
저 멋진 그림을 지우겠다고 박박 우기는 학교 관계자들은 반성하라!!!

조선인 2008-04-1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대 주변의 담도 참 예뻐요. 거미전의 성과라고 으쓱해지죠.

마노아 2008-04-17 21:10   좋아요 0 | URL
오홋, 그렇군요! 홍대 가게 되면 꼭 눈여겨봐야겠어요. 근데 '거미전'은 뭘까요???

조선인 2008-04-21 18:13   좋아요 0 | URL
홍대 미대에서 주최하는 거리미술전의 준말이에요.
제가 아직 학교 다닐 때부터 시작했고, 제가 그 근처 대학을 다녔던 터라 원정지원도 쪼까 했죠.
그림실력은 빵점이니까 주로 힘쓰는 걸로. ㅋㅋ

마노아 2008-04-21 23:58   좋아요 0 | URL
오홋! 거리 미술전의 준말이었군요.
아하핫, 힘쓰는 걸로 원정지원을 해준 조선인님이라니, 어째 잘 상상이 안 갑니다.
그치만 위문차 가서 같이 즐겁게 한잔을 했을 조선인님은 상상이 잘 가요^^

프레이야 2008-04-17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딸이 초등3학년 때 서울나들이를 갔다와서 감상기를 썼는데, 자경전 꽃담에 대한 글귀가
생각나요. 무늬가 도드라져 보이지만 만져보면 편평하다고...
전, 나즈막한 돌담이 참 좋아요. 우도의 낮고 동글동글한 담이 생각나요.
담이 하나로 서 있으려면 돌의 크기가 참 여러가지로 어울려있어야 해요.
크고 작고, 동글 납작, 그렇게 틈을 메꾸고 또 서로 어깨를 겯고 건재하더군요.
꽃담, 담꽃, 모두 참 정겹네요.

마노아 2008-04-17 21:11   좋아요 0 | URL
꽃담, 담꽃... 모두 예쁜 말들이에요. 어우러져서 한 편의 시가 될 것 같아요.
자경전 꽃담에서 그런 느낌을 받다니, 따님도 엄마 아빠 닮아서 예술가가 될 것 같아요.
아, 경복궁도 다시 가보고 싶네요^^

뽀송이 2008-04-17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예쁜 담장이군요.^^
분필로 그렸다니 믿어지지 않아요. 비가 오면 더 쉽게 지워지지 않을까요?
자기만의 집 둘레에 무시무시하게 세운 담에서 받은 살쌀함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우리의 소담스런 담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님~ 잘 지내고 계시죠? 저도 오늘은 짬을 내서 서재 마실 다니고 있어요.^^;; 내일부터 또 몇일 바쁠 것 같아서요.^^;;

마노아 2008-04-18 10:35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반가워요~ 바쁜 나날들의 연속이군요! 그래도 잊지 않고 알라딘 마을을 다녀가시니 기뻐요~
분필로 그린 예쁜 담장에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아요. 야트막한 담장 안에서도 안전하게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슬쩍 부러워집니다^^
 

[한겨레] “지각생이 줄었어요.”

광주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가 지각생들한테 시를 외우게 하는 벌을 주면서 안팎의 공감을 얻고 있다.

광주 무등중 2학년1반 담임 진선주(33·사회) 교사는 3월부터 아침 8시10분 등교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지각생들한테 방과 후 ‘햇살에게’(정호승), ‘제비꽃에 대하여‘(안도현), ‘단추를 채우면서’(천양희) 등 시 한 편을 암송하게 하는 벌을 주고 있다.

그는 “늦었다고 아침부터 야단치는 게 싫어서 부드러운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며 “아침에 2~3분 늦었다가 오후에 15분 넘게 남아있는 게 억울해선지 시외우기가 귀찮아선지 지각생도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반 전체 38명 중 월요일은 너댓명, 평일에는 한두명이 지각하곤 했지만 4월 들어 등교하는 발걸음들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진 교사는 종례 뒤 지각생들이 시를 외웠는지 검사하면서 외운 느낌과 늦은 이유 등을 두고 얘기를 나눈다. 외울감은 학생들의 자습공책에 들어있는 시와 글 중에서 30여편을 정해두고 계절이나 시사에 맞게 그날그날 선정한다. 대개 길이가 짧고 감성적인 시들이다. 학생들이 내용보다 길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비교적 긴 교과서의 시들은 드문 편이다. ‘지각대장’ 별명을 얻은 한 학생은 개학한 지 한달반만에 벌써 시 5편을 외우기도 했다.

이런 시암송 벌칙은 한 학부모가 아들이 외워온 시를 듣고 감동해 광주시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학부모 김아무개씨는 “평소 무뚝뚝하던 아이가 제 앞에 서서 싯귀를 들려주는 순간 ‘웬일이지’하고 어리둥절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지각생에게 체벌이나 야단대신 시를 외우게 한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훈훈해졌다”고 썼다.

진 교사는 “체벌보다 시간을 더 많이 들여야 하지만 아이들이 짜증내거나 싫어하지는 않는 눈치여서 지속할 생각이다”라며 “시를 주제로 얘기를 풀다보니 교사의 마음도 여유롭고 아이들의 얼굴도 밝아진 느낌”이라고 전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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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향기 2008-04-03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지네요!

마노아 2008-04-04 08:04   좋아요 0 | URL
아이디어 멋지죠. 선생님이 샌스쟁이에요^^

2008-04-04 0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4 0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4-04 0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선생님이군요. 학창시절에 외운 시가 제일 오래 남는 것 같아요.^^
지금은 외워도 며칠 지나면 가물거려서... 시를 외우는 것도 때가 있는 듯...
시도 외우고 영화도 보면서 멋진 봄날 되시기를~~~~ ZBSE-3232-98F0

마노아 2008-04-04 08: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학교 졸업하고는 통 시라곤 외어보질 못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 김수현 드라마에서 시를 외우는 시어머니(윤여정).... 목욕탕집 남자들인가봐요. 그거 보면서 참 멋지다고 생각했거든요. 낭만을 좀 찾아야겠어요. 쿠폰 감사해요. 두루두루 멋진 영화 많이 볼 거예요.(>_<)

L.SHIN 2008-04-0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좋은 아이디어 ^^

마노아 2008-04-04 14:44   좋아요 0 | URL
굿 아이디어~!

2008-04-04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4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4 15: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4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4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4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5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4-05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8-04-04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마노아 2008-04-04 14:44   좋아요 0 | URL
그죠? 완소 선생님이에요^^

무스탕 2008-04-04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센스 있으신 선생님이시네요.
아무래도 마노아님과 비슷한 선생님이신가봐요 :D

마노아 2008-04-04 16:12   좋아요 0 | URL
아이 참! 제가 닮고 싶은 선생님이죠. 그래도 기분은 둥실둥실^^

水巖 2008-04-11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학교 다닐때 엄청 시를 왜우고 다녔는데,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많이 지각을 했었나 봐요. ㅎㅎㅎ

마노아 2008-04-11 14:04   좋아요 0 | URL
아하핫, 수암님은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데 지각을 많이 하셨다구요? ^^;;; 시를 읊으시는 수암님, 너무 근사해요^^
 

정말 난산 끝에 나왔습니다. 한번 지으면 최소 100년은 갈 건물이니, 그것도 세계적 대도시 서울의 얼굴이 될 시청이니 쉽게쉽게 지을 수는 없겠죠. 내놓는 디자인마다 촌스럽다고 퇴짜를 맞기를 여러 차례, 이번에 서울시가 고른 디자인이 18일 공개됐습니다.

 

일단 디자인부터 보시지요.

언론들은 이 사진을 많이 썼던데, 그 모양새를 정확히 알기는 좀 힘든 각도입니다.

 

서울시청주정면.jpg
 

이 건물의 정확한 모양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이 그림을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서울시청주간.jpg

요즘 건물들은 철골조에 겉은 유리 구조여서 야간 모양새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간 모습도 따로 이미지를 미리 만들어놓았습니다.

 

서울시청야간.jpg
 

이번 당선작은 건축가 유걸씨의 디자인입니다. 유걸씨는 앞서 제가 기사로도 쓴 적이 있는데, 개방공간을 중시해 내부에 큰 공간을 만들고 다양한 동선과 구조로 다채롭게 꾸미는 건축이 특징인 분입니다. 또한 내부와 외부의 연결과 소통을 중시하는 건축갑니다.

(블로그 글 참조= http://blog.hani.co.kr/bonbon/8241)

 

일단 당선안의 디자인적인 특징은 전통 건축물의 처마와 곡선미를 디자인 모티브로 삼은 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음영이 생기는 곡선이 두드러지네요.

또한 유걸 건축가의 작품답게 건물 전체 면적의 30% 이상을 다목적홀이나 스카이라운지 등 시민문화공간으로 배치한 점이 눈길을 끕니다.

디자인 열쇳말은, '시민, 전통, 미래'라고 합니다.

 

그럼 좀더 들여다 보겠습니다.

 

서울시청수평적전통미.bmp

서울시가 낸 자료에 있는 기본 모티브가 된 건물 처마입니다. 종묘로 보입니다만, 별다른 설명은 따로 없습니다. 이런 전통 건물의 선의 미학을 현대식으로 해석했다는 이야기죠.

 

서울시청수평적전통미2.jpg
 

그 단면을 보면 디자인의 착안점을 확실하게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내부 공간 모습입니다.

 

서울시청다목적홀.jpg
 

아직 모양을 잡아가는 단계로 보이는 그림인데, 다목적 홀의 모습입니다.

 

서울시청스카이라운지.jpg

스카이 라운지 입니다. 역시 아직 세밀하게 디자인이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 기본 구상이 이렇다고 보여주는 것이어서 조금씩 바뀔 것 같습니다.

 

서울시청에코플라자.jpg

새 시청건물의 특징적인 내부 공간인 `에코 플라자'라고 합니다.

 

이번 디자인에서 가장 내세우는 특징이기도 한데, 수평적인 서울광장의 흐름이 신청사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구조라고 합니다. 요즘 건축의 특징이자 유걸 건축가의 특징이기도 한데, 내부와 외부의 길, 그러니까 흐름을 이어주고 겹치는 효과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시청앞 광장에서 들어오는 수평적 공간이 수직적인 건물과 만나서 이어지게 되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개방공간을 외부 공간과 연결시키는 것은 건물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개방감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애용됩니다.

 

이번 디자인은 진통을 여러번 거친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끕니다. 오늘 나온 이 최종 디자인은 지난해 연말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 디자인입니다. 그동안 서울시는 디자인 콘셉트로는 4차례, 총 디자인 회수로는 5차례 신청사 디자인을 바꿨습니다. (이 과정은 김규원 기자의 글(http://blog.hani.co.kr/bum0823/9555 )에 재미나게 잘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새 디자인에 대해 서울시는 "높게만 뻗어나간 수직적 건물보단 우리 전통건축 양식의 저층의 수평적 비례요소와 처마지붕의 깊은 음영 및 곡선미를 현대적 신청사에 재해석해 내는 지혜를 발휘, 옛것에 대한 친근감이 돋보이게 했다"고 선정 이유로 밝혔습니다.

또한 건물 앞 광장에서 본관, 그러니까 현 석조 시청건물을 지나서 신청사로 진입로가 이어지는 '순차적 진입방식'은 전통적인 이동기법을 현대화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건물은 보시면 알겠지만 유리로 외관을 뒤집어 씌워 투명성이 두드러집니다. 이런 구조는 겨울에 햇빛이 많이 들어오므로 동절기 난방에 유리합니다. 건무을 덥혀 공기를 대류시켜 자연환기에도 좋아 요즘 최신식 건물들이 선호하는 방식입니다. 

서울시는 새 청사가 태양광·태양열, 지열등 자연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에너지 절약방안을 제시하는 모델하우스의 역할도 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는데, 역시 투명 유리 구조인 영국 런던 시청이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을 것 같기도 하군요.

 

2005년 처음 시청 본관 뒤에 짓기로 결정한 뒤, 서울시가 고른 디자인은 문화재심의에서 부결되어 반려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차례 디자인을 바꾸고 문화재 심의를 거쳐서 지난해 10월 최종 문화재 심의를 통과했지만, 이번에는 여론에 두들겨 맞았습니다. 서울을 상징할만한 건물로서 상징성과 전통성,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 대표급 건축가들을 상대로 다시 설계를 받았습니다. 서울시가 찍어서 지명한  4명의 국내 대표급 건축가는 유걸(아이아크 대표), 박승홍(디자인켐프 문박 디엠피 대표), 류춘수(건축사 사무소 이공대표), 조민석(매스 스타디 대표) 등 4명이었고, 이 가운데 유걸씨의 작품으로 결정된 것입니다. 면면으로 볼 때 네 분 모두 가장 훌륭한 작품을 내놓는 작가들임에 분명합니다.

 

평가는 이제부터입니다. 건축물이란 처음 볼 때 이미지로만 확실하게 눈에 자극을 주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서울시청같은 중요한 건축물은 미학적 가치는 물론이고 여러가지 사회적 개념과 시대 가치를 잘 담아내야 하는 중요한 기호가 됩니다. 동시에 그 안에서 서울시민들을 도울 일꾼들이 쾌적하게 잘 일할 수 있고, 시청을 찾는 시민들이 즐겁게 머물 수 있는 편리한 공간으로서 기능도 중요합니다.

어려움 끝에 나온 이번 디자인이 과연 어떤 평가를 받으며 어떻게 지어질지 지켜볼 일입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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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2-2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구본준 기자님 글일 거란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오옷! 예술의 전당 편만큼 재밌네~

Mephistopheles 2008-02-22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나온 개념상실의 디자인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모습입니다만. 초기안에서 얼마나 변경이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우리나라 관공서 건물들의 경우 초기안과 막상 지어진 건축물을 봤을 때 차이점이 엄청나거든요. 왜 그러는지 그 심리상태는 잘 모르겠지만 공직에 계신 양반들은 좌우대칭적며 정형적인 건물을 병적으로 좋아라한다더군요..^^

마노아 2008-02-22 10:28   좋아요 0 | URL
푸하하핫, 좌우대칭적이며 정형적인 건물을 좋아한다구요? 아니, 당신들은 전혀 대칭이 안 되면서 말입니다ㅡㅡ;;;
같이 링크 걸린 기자분 글도 읽어봐야겠어요. 은근 재밌더라구요^^

전호인 2008-02-2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겉모습만 보고는 댐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부의 모습을 보니 럭셔리한 느낌이 드는군요.


마노아 2008-02-22 12:56   좋아요 0 | URL
물이 흐르는 모습이 댐을 연상시켜요. 내부 사진이 엄청 럭셔리 합니다.
근데 선입견인지 내부 사진을 보는 순간 '상업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어요...;;;;

Mephistopheles 2008-02-2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는 시민문화공간으로 계획된 그 30%가 온전히 시민에게 공개가 되느냐겠군요. 관리와 유지를 위해 꽁꽁 닫아버리고 일부 특정 시민들에게만 오픈을 하던 관행(?)이 여전하다면 그냥 빛 좋은 개살구처럼 될지도 몰라요.^^

마노아 2008-02-22 12:57   좋아요 0 | URL
시청 잔디광장 생각이 나네요. 처음에 잔디 깔고 출입금지 시켰던 해프닝들... 빛 좋은 개살구를 제발 졸업했으면 좋겠어요..;;;

무스탕 2008-02-2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어드라이기 옆모습 같은 느낌이...

마노아 2008-02-22 12:57   좋아요 0 | URL
아하핫, 독창적인 발상이에요. 전 '호미'가 떠올랐어요^^ㅎㅎㅎ

L.SHIN 2008-02-22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 주변 건물들과 잘 안어울려라~ ㅡ.,ㅡ
이쁘긴 하다만...과거, 만화속에서 저런 특이하고 기형학적인 모양의 건물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지금, 우리가 그 미래속에 들어가고 있네요. 늘 그렇듯, 만화가들의 상상력이란 앞을 내다보는 천리안이? ^^

마노아 2008-02-23 00:04   좋아요 0 | URL
저 자리에는 어떤 건물을 세워도 이질감이 클 것 같아요. 시청 건물 자체가 워낙 오래되어서 앤틱하잖아요.
만화가들의 상상력에는 늘 혀를 내두르게 되죠. 그래서 더 존경해요^^

프레이야 2008-02-2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계천이 딱 떠올랐는데.. 종묘정전이 모티브가 된거라니, 좀 어이없네요.
처마끝의 날렵함은 다 어디로 가고.. 억지스러운 변형입니다.

마노아 2008-02-23 00:04   좋아요 0 | URL
좀 어거지스럽죠? 그래도 저게 모델이라니 별 수 있나요. ㅡ.ㅡ;;;;
종묘가 화 내겠어요. 어따 대고 비교질이야! 이러고요^^
 

안녕하세요? 건축과 만화를 맡고 있는 구본준 기잡니다. 
15일로 예술의전당이 벌써 20년이 되었습니다. 문화예술 창달, 국민의 문화향수 어쩌구 저쩌구하면 지겨우실터이니, 예술의전당 20년에 얽힌 뒷이야기나 잠깐 들려드리려 합니다.

사실 이런 초대형 문화공간에는 늘 그 시대의 문화코드가 담기며, 당대 여러 사람들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생겨납니다. 우리의 예술의전당도 마찬가지랍니다.

 

예술의전당2.jpg
 


# 나도 알고보면 문화적인 대통령이야-전두환 문화 3종세트
 
1982년, 전두환 정권은 새로운 기획을 합니다. 총칼로 국민을 죽여가며 집권한 군사독재정권은 시뻘건 핏빛으로 물든 자신들의 얼굴을 화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화’를 골랐습니다.

앞서 전두환 정권은 대중문화에서 섹스와 스포츠와 스크린(영화)으로 대중들의 관심을 돌려 정치에 관심 갖지 않게하는 ‘3S 정책’을 폈었습니다. 그 다음 작업으로  흔히 고급문화라고 하는 분야에서도 뭔가 있어보이고 자기네들 치적처럼 될 것을 만들고자 한 거지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은 늘 건축을 선호합니다. 굳이 멀리 찾지 말고 청계천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두환 정권은 이런 건물 짓기 좋아하는 속성이 더욱 강했습니다. 그래서 문화적인 뭔가를 남기자며 문화부처가 추진하는 3대 사업을 벌였습니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잘 아는 천안의 독립기념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서울의 예술의전당입니다.


 
# 뚝섬은 달동네가 보이니 아니되오-서초동으로 가게 된 사연
 
빛나는 머리로 무지막지한 생각을 가차없이 실현하는 전두환 대통령은 앞서 독립기념관을 기획한 팀에게 예술의전당 기본 기획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라고 해도 초대형 시설이 들어설 곳이 쉽게 뚝딱 생길리 없지요.


기획팀이 처음 서울시에 달려가 땅좀 주세요, 해서 제안받은 첫 부지는 경희궁터, 그러니까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너무 좁아 제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로 찾은 곳이 서울 서초동 정보사 부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정보사가 얼마나 무소불위의 힘을 지녔는지 40대 이상들은 다 아시죠? 그런 정보사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했으니 당연히 퇴짜를 맞았죠. 

실무팀은 다시 새 땅을 골랐습니다. 한강 푸른 물결이 바라보이는 뚝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진희 당시 장관이 퇴짜를 놨다고 합니다. 뚝섬에서는 바로 강북 한강가 저소득층 밀집지역이 눈에 들어와서 안된다는 거였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에 수많은 외국인들도 올텐데 창피하지 않겠느냐, 그런 이유였다고 당시 참여했던 한 실무자는 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3전4기로 찾아낸 곳이 지금 예술의전당이 들어선 서울 서초동 우면산 자락입니다. 당시 허허벌판, 말죽거리의 중심지에서도 벗어난 곳, 8차선 남부순환도로만 씽씽 달리는 우면산 기슭에 갑자기 예술이 몰려가 전당을 차린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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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 건축가 선정부터 파란, 거장들을 누른 김석철의 스타탄생
 
국가대표 문화공간을 짓는 일이니 설계를 국내외 최고 건축가들끼리 시합을 붙이는 현상경기로 뽑았습니다. 당시 한국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과 김중업은 물론 외국 유명 건축가까지 참여한 경기에서 우승자는? 건축가로선 약관에 가까운 40살의 소장 건축가, 김석철 현 명지대 교수였습니다.


최종 세 후보까지 오른 설계안은 나중 당선된 김석철, 그리고 한국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 그리고 미국의 한 건축가의 것이었습니다. 사실 80년대까지 한국 건축계는 두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두 김씨인 김수근과 김중업 두 양반이 꽉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어떻게 둘 다 떨어졌던 것일까요?

 

당시 예술의전당쪽이 제시했던 공간배치 프로그램은 앞 도로쪽으로 건물들이 나와 있도록 배치하는 컨셉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수근, 김중업의 안은 그런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독창적인 생각대로 갔습니다. 지금 예술의전당을 보시면 도로쪽으로 건물들이 있고 그 뒤로 넓은 공간이 나오며 산쪽으로 다시 시설들이 이어지는 식으로 공간이 구성되어 있지요. 김수근의 안은 앞에 개방 공간을 배치하고 뒷쪽 산쪽 경사를 따라 건물들이 들어서는 구도였습니다. 반면 김석철의 안은 마스터플랜의 의도를 정확하게 따른 것이었습니다.

 

김수근과 김중업이란 두 거장에게 모두 배운 유일한 건축가인 김석철 교수는 두 스승을 이기고 사상 최대의 문화공간 프로젝트를 따내며 건축계의 스타가 됐습니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김석철 교수에 대해 동창인 이헌재 전 부총리가 했다는 유명한 말이 전합니다. "석철이가 천재인 줄 알았는데, 석동이를 만나보니 더 천재더라"는 이야깁니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차관이 김석철씨의 친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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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의 주요한 자랑거리인 `세계음악분수'. 건축가 김석철씨가 설계한 것으로, 가로 43미터, 세로 9미터 수조에 노즐 800여개 수중등 500여개를 달아 음악에 따라 물줄기가 춤추며 여러가지 효과를 연출한다.


 

 
#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니 갓과 부채를 올리거라
 
모든 대형 프로젝트가 그렇듯 예술의전당도 계획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김석철의 디자인도 크게 바뀌게 됩니다.  

고위층에 계신 어느 분이 홀연히 “한국 땅에 짓는데 한국 전통적 이미지를 넣어야 한다”고 하시는 바람에, 예술의전당은 갑자기 한국적 디자인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음악당은 부채 모양으로, 오페라하우스는 갓 모양이 됩니다.

한 건축평론가는 “양복 입고 갓쓰고 도포 입고 중절모 쓴 꼴”이라고 평하더군요. 평가는 모두의 몫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평가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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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갓모양으로 만든 오페라하우스, 오른쪽이 부채모양 음악당이다.
 


# 애초 찬밥이었던 음악, 예술의전당을 음악의 전당으로 바꾸다
 
지금 예술의전당은 사실상 클래식 음악의 전당입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당시 첫 구상은 지금같은 클래식 음악 중심 문화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애초 벤치마킹 모델은 70년대 후반 세계 문화계에 충격을 준 파리 퐁피두센터였고, 시각예술과 자료관을 중심으로 하며 소규모 음악 공간들이 딸리는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처음 추진됐습니다. 5공 정부는 당시 방송광고공사에 이 새 문화공간 사업을 검토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공사는 부랴부랴 여기저기 아이디어를 찾은 결과 프랑스통인 한 인사로부터 퐁피두형 공간 아이디어를 접수해 발의를 했지요.


그러나 이후 음악계에서 강하게 오페라하우스 설립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봤잖느냐, 세계 선진국들은 오페라하우스가 다 있다, 우리도 이제 제대로 된 오페라하우스 하나 만들자, 는 의견이었습니다. 반대도 많았습니다. 한국에서 무슨 오페라를 얼마나 하냐고 오페라하우스냐, 는 반발이었습니다.


논란 끝에 간신히 결국 오페라하우스는 막차로 건립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을 열고나자 예술의전당 여러 공간들 중에서도 가장 수요가 많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문제는 음향이 너무 안좋다는 거.

반면 애초 예술의전당 계획에서 구상됐던 소규모 음악공간들은 대중 접점도 적고 사용빈도도 적어 지금은 존재감이 별로 안느껴지지요. 결국 오페라하우스를 짓기로 한 게 옳았던 셈입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jpg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전경.


 

 
# 각하, 터널부터 뚫고 지어야 한답니다
 
 예술의전당은 원래 올림픽의 해인 88년이 아니라 아시안게임이 열린 86년에 개장할 예정이었습니다. 공사가 2년 늦어진 것은 예술의전당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설계안을 받아든 예술의전당쪽은 서울시에 건축 협의를 하러 갑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니 당연히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심의 불가’ 판정이 나왔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하고 알아보니 예술의전당이 들어설 부지에 일찌감치 터널 공사 계획이 잡혀 있었던 겁니다.


천하의 무지막지 전두환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업인 덕에 그나마 절묘한 타협 아이디어가 채택돼 공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터널 공사는 도시 계획 전체에 따라 잡혀있지만 당장 뚫는 것은 아님. 예술의전당은 무조건 각하의 임기에 지어야 함. 그렇다고 예술의전당 먼저 지으면 나중 그 밑으로 터널 못뚫음. 그래서 나온 방안이 먼저 예술의전당 들어설 부지 밑으로 터널부분을 뜷어놓고 그리고 예술의전당 짓고, 나중에 터널 뚫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먼저 예술의전당 들어설 지하에 80미터짜리 터널을 뚫었습니다. 그 뒤 예술의전당이 착공됐습니다. 그러나 터널 뚫는 데만 2년이 걸렸고, 결국 예술의 전당은 아시안게임 대신 올림픽의 해에, 간신히 올림픽 전에 열어야 한다는 청와대의 엄명으로 음악당만 먼저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대통령은 빛나던 분에서 물기운 강한 분으로 바뀐 뒤였습니다.

예술의전당 때문에 미리 80미터만 먼저 뚫어 놓았던 희한한 운명의 터널이 바로 지금의 우면산 터널입니다.


 
# 조용필이고 뭐고 오페라하우스는 안되…, (퍽! X 퍽!) 그럼 공연하세요ㅜ.ㅜ
 
새천년을 앞둔 1999년, 예술의전당은 모처럼 진보적인 기획을 하나 내놓습니다. 조용필씨가 새천년 맞이 연말 12월에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는 기획이었습니다.

그냥 콘서트가 아니라 극장에서 하는만큼 뮤지컬 식으로 구성하는 새로운 공연을 하자고 예술의전당에서 조용필씨에게 제안합니다. 들어본 조용필씨,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당시 예술의전당 기획은 한국 대중음악이 팝음악을 누르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고, 그런 기여를 한 최고 가수는 당연히 조용필씨니 그런 ’아티스트’를 무대에 세우자, 는 지극히 문화적인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기획팀은 걱정도 컷습니다. 오페라의 최고 무대이니 성악계가 반발할까 하는 우려였죠. 그리고 예상대로 이 계획을 발표하자 성악계는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지금이야 대중음악계 원로 톱스타들이 대형 극장 무대에 서지만, 당시만해도 ’순수 고급 클래식’의 공간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이나 예술의전당에 대중음악가수들에게는 좀처럼 개방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성악계의 반발에 이번에는 우리의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여론은 너무나 예상대로 가왕 조용필의 편이었고, 그 덕분에 예술의전당의 과감한 기획은 성사되었습니다. 이후 조용필씨는 2005년까지 해마다 예술의전당에서 연말 콘서트를 했습니다.

 

그러나 조용필 이후로는 예술의전당은 다시 다른 대중음악인들에게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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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슈퍼스타 조용필. 클래식과 팝의 구분이 점점 사라지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 저기, 지휘 좀 대신 해주실래요?-사상 유례가 없었던 지휘자 공수대작전
 
2001년의 일입니다. 런던필하모니오케스트라, 줄여서 런던필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휘자는 그 유명한 쿠르트 마주어. 1927년생이니 당시 74살의 노지휘자였습니다. 협연자는 장영주. 공연은 2회 짜리였습니다.

그런데 첫날 공연 도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지휘를 하던 마주어의 팔이 뚝하고 아래로 처지고 맙니다. 갑자기 그의 몸에 이상이 왔던 겁니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마주어는 간신히 공연을 마무리한 뒤 바로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직행합니다.

그럼 남은 다음 공연은? 당연히 지휘 못하죠.

 

예술의전당 기획팀은 기절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밤새 마주어급의 세계적 지휘자를 대타로 물색하는 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서울은 밤이지만 유럽은 낮이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여기 코리안데요, 세계적 지휘자로 지금 아시아에 계신분 누가 있나요, 여기저기 물어본 끝에 3명이 아시아에 있다는 것이 파악됐습니다. 훗날 KBS교향악단 지휘자로 왔던 드미트리 기타옌코,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의 볼프강 자발리쉬, 그리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필하모닉의 유리 테르미카노프였습니다.


이중 기타옌코는 알아보니 이미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여차저차해서 유리 테르미카노프가 급박한 예술의전당쪽의 사정을 듣고 착하게도 무대에 서주기로 합니다. 다행히 유리가 지휘하는 상트페테르부르그필하모닉은 일본 순회 연주중이었는데, 중간에 하루 일정이 비어있었습니다.

유리 테미르카노프는 부랴부랴 새벽 일본 나고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낮 12시에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번갯불에 콩볶듯 교향악단과 연습, 그리고 숨돌릴 틈없이 그날 저녁 공연을 합니다. 세계적 지휘자답게 급하게 대타로 선 무대를 훌륭히 선방해준 그는 그 다음날 새벽 다시 서울에서 일본 삿포로행 비행기로 일본에 건너가 공연을 잘 마쳤습니다.


이렇게 하룻밤 사이에 세게적인 지휘자를 대체해 공연한 경우는 무척이나 드문 일입니다. 전화위복이었을까요, 이 일로 세계 공연계에서 예술의전당은 대처능력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섭외에 응해준 착한 유리 테르미카노프는 그 인연으로 뒤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필을 이끌고 2차례 내한해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예술의전당이 20주년을 맞은 올해 11월 12일과 13일, 다시 한번 상트페테르부르그필이 온답니다. 지휘자는 당연히 유리 테르미카노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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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진은 유리 테르미카노프나 쿠르트 마주어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만 음악당 내부를 사진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 예술의전당에서 받아왔습니다.


 

 
# IMF라 공연료를 못드립니다-그럼 절반이라도 주실래요?
 
1997년 봄, 예술의전당은 영국 국립극장인 로열내셔널시어터의 연극 <오델로>를 다음해인 98년 2월에 서울에서 공연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연출자는 샘 멘데스. 어디서 들어본 듯 하시다구요?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그 샘 멘데스 감독입니다. 사실 이분은 부인이 더 유명한 편이죠. <타이타닉>의 통통한 히로인 케이트 윈슬렛에게 장가를 갔거든요.


그런데 그해 겨울,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강타합니다. 원화가 폭락하면서 1파운드가 1400원에서 3000원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오셀로>를 기획한 예술의전당이 황당해집니다. 예산을 1억5000만원~2억원 사이로 잡았는데, 외환위기 때문에 환율을 계산해보니 3억원을 훌쩍 넘기게 된 겁니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답이 안나와 결국 예술의전당쪽은 정말 창피함을 무릅쓰고 공연을 못하겠다고 통보합니다. 이런 국가대표급 공연장에서 갑자기 공연 취소는 신용에 치명상을 입게 되어 절대 피하는 일이지만 그만큼 어쩔 도리가 없었던 겁니다.


이번엔 영국국립극장이 황당해집니다. 영국국립극장은 98년 2월 한국 예술의전당만이 아니라 그 전에 중국 찍고, 한국 찍고, 다시 일본찍는 3개국 순회공연을 잡아놓았던 겁니다. 한국만 중간에 비면 자기네도 미칠 노릇입니다. 영국국립극장쪽은 결국 개런티를 절반으로 깎아 주겠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계약 당시 한국 환율 부담대로 하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마음을 곱게 쓰면 복이 오는 법. <오델로> 공연이 대박을 칩니다.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은 살판이 났던 시절입니다. 똑같이 달라로 돈을 받는데 한국 돈으로 바꾸면 소득이 2배로 늘어나게 되니까요. 돈이 많아지면 문화적이 되지요. 이 사람들이 <오델로>한다니까 안오던 연극에 몰려왔습니다. 당시 <오델로> 관객 중 외국인 비율이 무려 30%였습니다. 12회 공연이 전회 매진됐고, 예술의전당쪽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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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얼굴 모양으로 디자인한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 날아간 지하도로, 튀는 육교, 어떻게 했든 여전히 불편한 진입로
 
원래 예술의전당 건설 계획에는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예술의전당까지 지하도로 연결하려 했다고 합니다. 지하도 공간에는 쇼핑몰도 입주시킬 계획이었는데, 공사비 문제로 취소가 되었답니다. 예술의전당을 차없이 가는 시민들은 결국 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남부순환로를 불안감을 느끼며 건널목으로 건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남부터미널쪽에서 예술의전당으로 가는 중간쯤에 2004년 이상한 육교가 그나마 들어섰습니다. 왜 육교가 이상하냐면 무려 55억원이나 들여 만든 ‘아트 육교’이기 때문입니다. 남부터미널 부근 부지가 개발되면서 개발 주체가 지어 기증한 육교인데,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란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입니다. 강선으로 상판을 잡아당기는 사장교 육교죠.

 물위의 사장교는 보셨겠지만, 땅 위의 사장교는 못보셨죠? 남부순환로를 가다가 산쪽에 비스듬히 뉘운 유리 구조물이 있고 거기서 연결되는 육교가 바로 그 육교입니다.

엄하게 육교가 들어서주긴 했는데, 여전히 예술의전당 가는 길은 걸어서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차로 오란 이야긴가요?

 

아트육교1.jpg
아트육교2.jpg
조명발을 받을 때 훨씬 나은 서초구 우면산의 `아쿠아 아트 육교'. 이 아트육교는 군인공제회가 55억원들 들여 지어 서초구청에 기부채납한 것이다. 프랑스의 건축디자이너 다비드 피에르 잘리콩이 디자인했다. 잘리콩은 기(氣)와 풍수에 관심이 많은 건축가로 “남산의 화기(火氣)가 지나는 우면산의 에너지를 도시로 전달하는 배관, 구멍과 같은 상징적인 역할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면서 “기를 통과시키되 불의 기운을 낮추기 위해 물이 흐르는 터널 형태로 만들었다”고 디자인의 의도를 설명했다.

 

 

# 그리고 갖가지 기록들
 
20년 동안 예술의전당에서 한 공연과 전시를 합치면 1만3879건입니다. 총 관객은 지금까지 2780만명. 일렬로 세워 인간띠를 만들면 지구 한바퀴(4만6286㎞)를 돌 정도며, 서울과 부산을 50회 왕복할 길이랍니다. 올해 안에 3000만명을 넘을 것 같습니다.

관객이 많이 든 공연물은 주크박스 뮤지컬 선풍을 일으킨 <맘마미아>였습니다. 2006년에 76일 107회 공연해 20만7514명이 들렀습니다. 전시부문은 기록이 더 셉니다. 지난해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오르세미술관전>이 42만9000명을 동원했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예술의전당에 있는 서울서예박물관이 세계 유일의 서예 전용 전시장인 거. 서예전시로 최다관객은 2002년 <조선왕조어필전>이 세웠던 7710명이었습니다.
 
예술의전당이 오래 해온 간판 프로그램은 ‘교향악 축제’입니다. 전국 각지 유수 교향악단이 총출동하는 최대의 클래식 잔치입니다. 1989년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이 교향악축제에 가장 많이 참가한 지휘자는 누구일까요?
정명훈? 아닙니다. 지금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박은성 감독이랍니다. 17회 참가. 2위는 16회 참가한 부천필의 지휘자 임헌정 교수입니다.
 교향악축제에서 가장 많이 협연한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씨로 조사됐습니다. 11번 협연. 그 다음은 5차례 협연한 피아니스 김용배, 김대진, 이경숙씨 세분입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예술의전당-앰블럼.jpg
예술의전당이 20주년을 맞아 도입한 엠블럼. 슬로건은 "예술의 전당과 함께 뷰티풀 라이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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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16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축은 그 시대의 사상과 예술과 시류를 담고 있습니다.
참고로 저 예술의 전당이 지어진 시기가 어떠했는지는 설명 안해도 아실꺼에요..^^
그냥저냥 위정자의 구색맞추기용 건물이에요.시간이 지나 시민들의 공간으로 조금씩 탈바꿈하고 있긴 하지만 저리 불손한 의도로 지어진 건축물은 대한민국에 질리도록 많답니다.^^

마노아 2008-02-16 22:57   좋아요 0 | URL
그렇게 시대의 사상과 예술과 시류를 담고 있는 많은 것들이 현재도 진행중이겠지요.
복원될 숭례문도, 절대 무산되길 바라지만 진행되고 있을 대운하라든가 기타 등등이요.
기사 재밌게, 씁쓰레하게 읽었어요. 그나저나 기자분이 딸기님 오빠분이어서 더 눈이 가기도 했답니다6^^

순오기 2008-02-17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끄덕이며 읽었어요. 뭐든지 밀어부치면 되는 대한민국?이 좀 난감하군요.ㅠㅠ
예술의 전당에 가본 건 두번 뿐이군요.
'그리스로마신화전'과 '세잔느에서 반고흐까지' 그나마 방학중에 친정 갔다 광주촌넘인 우리 애들을 위한...^^

마노아 2008-02-17 15:42   좋아요 0 | URL
예술의 전당에서 오르는 무대와 전시회를 아꼈는데 어쩐지 좀 배신감이 들기도 해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관의 압력이 너무 큰 대한민국 같아요.
공연계는 더 한심하다는...ㅜ.ㅜ

bookJourney 2008-02-1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의 전당은 위치부터가 일반 서민과는 거리가 멀지요. 교통편이 어찌 그리 불편한지 ... ㅠ.ㅠ
이 글을 읽고 나니 더 심란해지네요.

마노아 2008-02-17 20:20   좋아요 0 | URL
지하철 타고 마을 버스 타고 꾸역꾸역 가야만 했죠. 진짜 자가용 가진 사람들 위주의 위치선정이에요.
게다가 표값은 늘 어쩜 그리 비싼지, 귀족의 전당이라니까요..ㅡ.ㅡ;;;;

2008-02-17 2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8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8 0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8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08-02-2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군요.
서민들의 품으로 돌아올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마노아 2008-02-20 14:04   좋아요 0 | URL
서민들에게도 예술이 산 너머가 아닌 날을 고대해요. 우리 모두의 유산이 되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