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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이레 / 2006년 6월
평점 :
처음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많은 독자들을 얻은 이 책을, 처음에 나는 외면했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이 '명상집'의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 등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도 앞의 책과 같은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그 순간에 감동 받고 감명 받고, 깨달음을 얻어도, 약발은 오래 가지 않아 나는 곧 다시 평소의 나로 돌아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걸 자꾸 되풀이하는 것은 꽤나 참담한 기억을 준다. 나는 다시 또 현실에 좌절하고 다시 또 반짝! 힘을 내며, 또 다시 거꾸러져서 의욕을 잃게 된다. 그 패턴의 반복이 결국 인생일 수도 있지만, 나는 꼭 나 자신이 놀림 당하는 것 같아서 이런 책이 선뜩 집어지지가 않았다.
책을 구입하게 된 계기는 솔직히 말해서 1+1 때문이었다. 때마침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를 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부서의 동료가 그 책을 탐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겸가겸사 나도 책 읽고, 선물도 하자!라는 마음으로 주문을 했다. 처음엔 도서 이벤트가 진행중이어서 이틀 만에 다 봐야지!하고 시작했지만, 정작 이 책을 다 보게 되는 데에는 3주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지금에서야 인정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보는 게 이 책의 독서로는 더 어울리기는 했다.(핑계기도 하지만..^^;;;;)
그래서, 얼마만큼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이 책의 밑줄긋기에 무려 20개나 적었다는 말로 대신하겠다. 읽을 때마다 조금씩 추가를 했는데, 아까 세어보고는 깜딱 놀랐다. 헉... 이렇게 많이 올리다니...(게다가 그 수많은 오타에 더 경악을 했다지....;;;;;)
사실, 너무나 좋은 말들의 집대성이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을 수십 년간 지켜봐오며, 또 그들에게 힘을 주고 삶을 관찰하고 성숙시켜온 작가의, 게다가 그 자신이 또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하는 말들이니 얼마나 금같고 옥같은 말들이 나오겠는가. 과장을 조금 더 보탠다면 버릴 게 없이 좋았다.
그러나 또, 내가 나를 아는 까닭에, 그 수많은 감탄과 감동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또 좌절하기 쉬워지는 평소의 인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도 쉬이 변하지 않는다. 이런 책은 내게서 잠깐의 평안과 위로를 줄 수는 있어도 나에게 결정적인 힘을 실어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꽤 많은 도움을 얻은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용서"라는 대목에서 그리 느꼈는데, 오래도록 내 마음에 응어리진 어떤 감정들을 조금은 더 객관화시켜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기본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뉘우치지 않고 변화되지 않고 여전히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그 피해를 고스란히, 여전히 받고 있으면서도 그이를 용서한다는 것을, 나는 아직까지 용납이 안 된다. 그건 나더러 성자가 되라는 의미와 같다. 그래서 늘 감정이 힘들고, 방황하고, 다시 추스려 보지만 또 다시 미끄러지기 일쑤였던 게 나였다. 그런데 책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용서의 부재는 결국 내 짐을 내려놓지 않음과 마찬가지였다. 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처럼, 상대를 불쌍히 여긴다면... 잘못을 잘못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 뻔뻔한 무지에도 측은함을 보인다면...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아니,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 생각하니... 깊은 숨과 동시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십 년간에 걸쳐서 얻어진 지혜와 감동을, 또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을 통해서 얻어진 그 깨달음을 책 한권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행운이다. 밑줄긋기가 몹시 도움이 될 때가 이럴 때 같은데, 마음이 힘들어지고 지칠 때, 한번씩 더 들여다 보면... 매번 잊고 마는 나이지만, 그래도 그 순간에 달콤한 치료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지금... 저자 두분에게, 그리고 역자에게조차도 몹시 고마움을 느낀다. 인생 수업... 이렇게 값없이 제공해 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