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동생 남자친구와 패밀리 레스토랑(VXXS)에서 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인공지능 기계 종업원이 그릇을 걷어가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우리 가족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함께 돈까스를 먹은 것은 내 평생 딱 한번있었던 일이다. 어린 시절 가난 에피소드 배틀은 자매들과의 낄낄 포인트라서 넉넉지 못하게 자랐다는 동생 남친도 분위기에 맞춰 없이 살던 시절 에피소드를 내놓았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 OOOO(유명 레스토랑 프랜차이즈)에서 맥주가 무한리필이라는 소리를 듣고 친구들과 당차게 입성! 처음으로 (술 먹고 취해) 업혀 나왔다고 오늘은 취하지 않겠다고 했다. 무한리필이라면 저도 할 말이 많아요. 고등학생, 우리 고장에 미피가 들어와 피자 뷔페 이벤트를 한 날이었다. 두 판을 먹을 다짐을 하고 전날 저녁부터 두 끼를 굶고 간 나는. 배가 너무 고팠던 나머지 전채로 나오는 음식들을 집어먹다가. 막상 피자가 나왔을 때는 두 조각 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너무 배가 부른 거예여... 그래서 집에 오는 길에.... 울었다. 점점 배가 꺼지는데 두 개 밖에 못 먹은 게 억울해서 울었어요. 가난 불행배틀 대결. 은. 내가 이겼다. 나 윈. 나 승. 이라고 적었지만... 갑자기 이걸 읽는 사람들이 뭐라 생각할지.


아우씨, 10대 때 맘을 고쳐먹고 부자 되기를 노력했어야 했는데. 가난의 방어기제는 너무도 치명적이라서 20대에는 부자를 미워하는 사상에 심취했다. (그 버릇을 개 못 주고 30대에는 남자를 미워하는 사상에 심취하게 되고마는 데...) 😩😩😩


동생이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라는 중국산 플랫폼 쇼핑몰에 대해 터놓았다. (작년 가을 우리는 미니멀리즘을 함께 보고 물건 중독에 대해 함께 반성한 바가 있었다.) 눌러놨던 욕망이 터졌어. 억만장자가 되고 싶어!ㅋㅋㅋㅋ 부자가 되고 싶으면 싸게 사려는 충동을 버려야 해. 싸면 눈 돌아가는 그거 가난뱅이의 특징이야. 가난뱅이의 심리로는 부자가 절대 될 수 없다!! 참아!


동생 걱정, 나라 걱정, 중국 걱정, 세계 걱정과 인공지능 걱정까지. 자리의 마무리는. 이런 질문이었다. 과거를 돌아보며 우리는 추억에 젖지만. 과거가 좋기만 했냐면, 아니오. 지금이 좋아요. 그러니까 일종의 가스라이팅 아닐까요. 미래의 불안. 미래의 불행. 미래에 대한 조바심. 미래라는 관념을 빌미로 지금을 초조하게 만드는. 우리들은 열심히 살아왔다. 그래서 과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낫다. 그래도 더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을 하던 커플에게 멈춰보라고 조언했다. 가만히 있어보세요. 그리고 놀아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인생은. 챗GPT는 인공지능은 못 놀아요. 놀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 질 겁니다. 그리고 뭐 어때요. 일 없으면. 놀면 돼지. (돈을 써야만 잘 놀 수 있다는 동생을 째려보며) 돈 없이도 잘 노는 방법을 연구해 봅시다.


그의 질문대로 책이 나에게 자기 계발이었다면(일정 부분 그런 것도 있지만), 이렇게까지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사실 놀고 있다. 열심히 놀지 못했던 시간까지 보상 받으려는 회복적 놀기 실현이랄까. 논다. 내가 신간 편하게 노는 것을 들키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나를 너무 배 아파할 것 같아서 바쁜척 하면서 열심히 갓생 사는 척 하면서 ㅋㅋㅋㅋ 놀고 있다.


지금부터 적을 이야기는. 어제의 가족 모임에서 하지 못한 약간은 추상적인 이야기. 이며 읽었던 책 #흠결없는파편들의사회 와 #끝나지않은일 에 대한 독후감이며. 실은 30대의 평범한 [번듯한 남성 + 일하는 여성] (아마도 외벌이로는 수도권에 집을 가질 수 없으며 육아가 너무도 부담스러워 결혼을 망설이는) 커플에 대한 인상 비평. 일지도.


참, 그 전에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은 이렇다. 혼자로는 부족해. 두 사람이 온전하다는 것, 그 결합에 대한 판타지 역시도 일종의 관습적 각본이지 않을까. 꼭 이성애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나는 혼자일 때 가장 온전하다. 그리고 이 말이 얼마나 오만하게 읽힐지 알아서 적기 겁난다. 하지만 요점은 내가 만족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결합보다 분리를 원한다. 연결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산하듯 온기가 필요해질 때가 온다면 이 역시 변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두 사람은 좋아 보였다. 둘 이라서 정말로 좋아 보였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느닷없이 둘을 처방하곤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렴풋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오늘 적고 싶은 것은 저번에 다 적지 못한 고독에 대한 이야기.



“(145) ‘우리는 망가진 우정이나 박살 난 사랑의 불안과 고뇌 속에서 타인의 연민을 구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가장 가까운 인연과 갈라놓을 때, 참담한 불행의 그늘 속에 우리는 홀로 앉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가장 위대한 승리와 가장 어두운 비극 역시 홀로 걷는 겁니다.’ 손가락 말단까지 정치적 동물이었던 스탠턴은 이 사유를 여성을 위한 정치적 평등의 필요성과 연결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에게 행동 반경을 확장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의 논거로 그가 아는 가장 강력한 것은, *모든 삶은 궁극적으로 고독하다는 사실*이었다. (중략) ‘삶의 폭풍은 남자들에게 불어치듯 여자들에게도 나침반의 전방위에서 불어 칠 뿐만 아니라 더 치명적인 피해를 초래합니다. 남자들은 자기를 보호하며 저항하고 승리하는 훈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 그 모든 영혼은 각자 혼자서 다만 자기 자신만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길고 따분한 행진을 각자 혼자서 해야 합니다. (…) 나는 묻습니다. 누가 감히, 그 누가 감히 다른 인간 영혼의 권리와 의무와 책임을 대신 떠맡을 수 있단 말입니까?”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



“(164) 동시대의 20-40대 여성들은 성공에 대한 열망이 크며 능력주의에 대한 믿음도 강하다. 이들은 가시화된 성과가 자신을 구제하리라고 굳게 믿으며 직장에 나간다. 어떤 여성들은 성차별을 낡은 패러다임으로 여기고 능력주의를 실존 혹은 도래할 미래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그렇게 인식하는 여성들도 일터의 어디서고 느닷없이 등장하는 ‘여성성 지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19) *유리 낭떠러지는 기업이나 조직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나 경기 침체 시에 여성을 고위직에 임명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중략) 한국의 정당은 특정 필요에 의해서나 이미지 개선과 쇄신이 요구될 때 여성 의원에게 자리를 주지만 이들의 리더십은 곧 교체될 수 있는, 임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유리 낭떠러지는 남성동성사회가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여성을 희생시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직은 소모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능한 개인’으로 여성을 선택한다. 여성은 고위직에 올라갈 기회가 적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이미 남성들이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직무를 떠안고 수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물질적·정서적 지원이 불충분한 상황에서 여성은 실패하도록 설정된 지위를 받아들인다. 일터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면서 여성이 예전보다 쉽게 고위직에 임명되었다가 가파르게 추락할 위험 역시 커졌다. 최고위직에 오른 여성은 마치 ‘피해자 역할에 캐스팅되는 것’처럼 임명되는 것이다.” -김현미<흠결없는 파편들의 사회>



번듯한 남자가 되기 위해 남성은 고독의 시간들을 견딘다. (나는 그가 번듯해지기 위한 시간들을 노고를 치하한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과 고독의 시간. 그 노력의 성과로 일종의 트로피(가정-아내와 아이들-)를 얻는다. 그가 번듯한 성인 남성이 되었으므로 사회의 승인(특히 가장이라는 인정)은 딸려올 것이며 *그는 더 안정적으로* 일에 몰두할 것이다. 가정이 큰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사회적 성취는 쌓이게 될 것이다. 가족 생계부양자 모델 남자의 일생. (물론 그 삶은 어려운 일이다.)


번듯한 여자(그런게 있는지는 모르겠다)가 되기 위해. (실업이 만연한 현대 한국 사회는 유난히 경쟁의 밀도가 높다) 여성에게는 이중 메시지가 주어진다. 특별히 적성에 맞는 행복한 일을 선택한 예외적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생활 내내 여성은 갈등한다. 현모양처가 될 것인가 vs 성공한 여성이 될 것인가. (혹은 어떻게든 일을 좀 쉴 것인가) 후자를 선택, 유리 천장을 뚫기를 결단한 여성들에게는 일에서의 성취감 외엔 트로피가 없다. (이 시점에서 왜 민희진 대표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잘나도 유리 절벽. 애도 안 낳아 본 여자라는 생애 주기의 과업을 팽개쳤다는 미묘한 비난(비난이면 낫지. 스스로 느끼는 셀프 자괴감)과 독하면 독한대로 일 못하면 일 못한다는 평가들을 견디며 모두가 은근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유리 낭떠러지. 시시때때로 일이 포기한 가정(소소한 웃음 소리, 친밀감, 아가들)보다 소중한가 해보는 자문.


번듯한 여성에게 트로피는 무엇일까. 더 번듯한 남자의 사랑?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 폭력이 법적으로는 탄핵된 현대 사회의 ‘고통’이란 대체로 질병 아니면 ‘사회적 고통’임을 마주 보자. 그러니까. 그럴 필요가. 성공의 끝이. 고립무원일 필요가 있는가. 나만 나를 알아주면 되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소시오패스 일테니. 그런 의미에서 여성은 일종의 계급이 맞았다. 그렇다. 여전히 한쪽 성별은 2등 시민이라는 주장을 나는 하고 있다.


하여 여성의 능력주의와 남성의 능력주의는 다르다. (서백남이 조던 피터슨의 신봉자가 되는 데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 그 신봉에는 어떤 분열도 없다.) 유리 천장 이후엔 절벽. 여성의 능력주의는 조금 더 서글픈 무엇이 있다. 그리하여 견고한 이성애 중심주의의 사회 안에서 여성의 ‘고독’은 갈 길을 잃는다. 젠더화된 고독. 젠더화된 트로피. 젠더화된 정상성.


내 생각에 1세대 페미니스트. 엘리자베스 스탠턴의 이야기. 여성의 ‘고독’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문장은 현시점에서는 *더 직접적으로 ‘번듯한 남자’라는 남성 사회의 신화가 깨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하지만 그건 남성 사회가 스스로 깨어야 한다. 애꿎은 눈 높은 여자 탓하기를 멈추라!) 이는 뒤집어 말하면 신자유주의를 살아가고 있는 여남 모두가 ‘돌봄’을 폐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와 같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자유주의가 돌봄마저 돈으로 다 치환해 버릴 때까지 한 쪽 성별이 바뀌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 즉 실리콘밸리 남성들의 기획이 바로 오늘날 기술/과학에 대한 추앙의 이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뇌과학 자기계발에 가져다 쓰는 박사님들아 멈춰서 사유 좀 하세요.)


이제는 여남 불문 어른이 된 모두가 각자의 기준에서 각자의 고독을 짊어지고 각자의 돌봄을 수행해야 하는 조건.이 2024년의 한국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셀프로 그럴 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생각은 이 글에서는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 생각이 흩어지니까. 촌스럽게도 내가 ‘실존주의’를 버릴 수 없으며 끝끝내 보부아르(혹은 아렌트ㅋ 명예남성)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종종 탈여성이라고 놀림 받는다) 여기에 있다. 내 몫의 고독을 충분히 감당하고 싶어라 하는 남성(but 가부장의 권위에서는 이탈한)이 되고자 하는 마음.


여기서 또 한 가지 질문. 그런데 남성은 정말로 고독을 사랑하는 여성을 견딜 수 있는가?

남성 자신들이 아닌. (남자들은 또 고독한 남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ㅋㅋㅋ 어후 나르시시즘. 오져. 처자식을 애초에 둘 생각을 하지를 말라니깐요. 둘 중 하나만 해라. 그러나 그게 되겠냐. 남자는 가임기가 없는데. 남자도 가임기 법적으로 처방하자. 서있는 데가 달라지면 사람이 바뀐다.) 글쎄. 있긴 있겠지. 현실에서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있다 하더라도 나만큼 이렇게까지 생각해 보겠냐. 위치가 남성의 몸인데. 내가 게이 책만 읽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단다.


맨 박스에 갇힌 현시대의 남성들에게 *가장의 부담을 내다 버려도 좋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실제로 그 짐을 지려하거나 감당도 할 수 있는 조건의 사내들- 즉 이 시대의 알파남들-에게 나의 이야기는 권력(그들이 고독과 노력을 통해 얻어낸)을 반납하라는 소리로 들릴 것이다. 거기에 나의 인식이 닿으면 나는 빡이치고 더 극단적인 글을 써서 이들의 에고에 상처를 내고 싶지만. ㅋㅋㅋㅋ 요새는 나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안 들을 사람에게 쓸 생각이 없으므로. 냅두고.


나는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세계와 대결하는 남성이 아닌 그의 아내가 되기를 은연 중에 주입받아온 이성애 핵가족 중심 사회에서 2등 시민 여성인 우리가 나의 몫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능력주의 이전에) 나의 고독을 마주 보기로 결단하는 것이며. 돌봄의 무능과 고독에의 무능은 확실히 다른 카테고리라고. 돌봄의 가치를 절대 폐기하지 않으면서 고독에도 유능해지자고. 이는 어쩌면 여남 모두에게 살아본 적 없는 완전체에 가까운 삶을 주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누구라서. 인생은 한.번.뿐. 이며. 모두가 아무도 살아본 적 없는 자신의 삶을 산다.


그게 어쩌면 엘리자베스 스탠턴이 말하는.

인간 모두가 겪어야 하는 정말로는 실존적인 고독이며.

연결의 무능에서 나오는 외로움과는 다르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까. 견고했던 사회적 각본과 그에 따른 자신의 낡은 신념을 재고할 겨를조차 없는 여남 개인들에게 신자유주의라는 조건이 복수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존 기계로 만 살기를 거부해야 참 생존이 가능해지는 인류. 모두가 독립해야 하고. 모두가 자아가 되어야 하고. 모두가 개인이 되어야 한다. 강제적 각자도생. 이게 나쁜가. 실존적으로는 원래 모두가 각자 도생이었다. (아, 니체스러워.)


보부아르와 고닉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인데. (그녀들은 놀랍게도 아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년을 찬미한다!) 나를 돌보기 위해서 나의 고독을 보존하기 위해서! 독서는. 읽고 쓰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언제부턴가 나 역시 늙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책 속에 그 여자들이 있으니까. 나는 고독 속에서 이 것을 발견했다. 삶을 살고, 읽고, 멈춰서, 사유하고, 쓸 것. 그것을 반복할 것.


“(207) 이번에도 나는 책이 처음에 상정한 독자가 되기까지 성장해야 했고, 책은 그런 나를 내내 기다려주었다.”


돌봄은 조금 더 공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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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6-02 23: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난 배틀, 하면 말이죠. 나도 지지 않을 자신 있는데 ㅋㅋㅋㅋㅋㅋ 네, 대충 여기서 그만할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비언 고닉의 <짝 없는 여자와 도시>가 생각나는 글이에요. 전 그 책을 아직 안 읽었습니다만, 고독과 자유에 대해 쟝님이 쓴다면 비비언 고닉 못지않은 좋은 글이 나올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쓰지만...
제가 쓰고 싶은 글이에요, 이 글은.
부럽고. 심히, 매우, 대단히, 엄청나게 부럽고. 그리고 존경합니다!!

공쟝쟝 2024-06-03 05:45   좋아요 3 | URL
단발님의 이보다 더한 칭찬과 인정 욕구가 충족되는 댓글이 있겠사오며.... 늘 그렇듯 제가 호들갑은 다 떨었는데... 단발님이 먼저 다 읽어놓으셨다. 고닉 역시ㅋㅋㅋ 전 아직 글항아리 전집의 1,2권은 안읽었는 데 이번 3권은 다른 책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또 너무 좋아버려서... 걱정이네요.

비비언 고닉 슨상님이 닦아놓아주신 요 장르를 제가 한번 걸어보겠습니다. 그러러면 겪어야 할 것들이. 느껴야 할 것들이 아주아주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요.좋은 소식은 책과 함께라면 이젠 아주 무섭지는 않아졌다는 것?

당분간은 흠결 ‘많은‘ ‘파편‘으로 살아 볼까 싶어요. 광폭 독서자님께서는 제가 흠이 없어지려거든 붙잡아 주시옵고.... 저의 존경 또한 곱절로 되돌려드립니다!

잠자냥 2024-06-03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피라고 해서... 미피 캐릭터가 쟝 어린 시절 그 동네에 상륙한 줄.... ㅋㅋㅋㅋ
근데 진짜 피자 두 조각 먹어서 억울해서 울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글은 참 좋구나~!

공쟝쟝 2024-06-03 10:37   좋아요 1 | URL
미스터피자~~!! 배가 점점꺼지는데.. 더먹고올걸더먹고올걸..하면서......눈물이.....
저 서울와서 가장 놀랐던게 햄버거집이 역마다 있어서예여... 왜냐믄 우리 시에는 통털어서 햄버거 프랜차이저가 두 군데 있었기 때문이라져.. (지금은 스벅도 있고 다 있다 ㅋㅋ)

건수하 2024-06-05 15:00   좋아요 0 | URL
저도 미피 뭔지 몰라서 그런게 있나보다 했는데... 그런데 잠자냥님은 어느새 알아차리신 거였네요.
(줄임말에 약한 자)

서곡 2024-06-03 1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기요 혹시 계피가루 쏟으신 건지??? 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6-03 16:30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나 : 계피많이요~~
직원 : 네. 췩췩 (펑!)
나 : 콜록 콜록 ㅋㅋㅋㅋㅋㅋㅋ
계피많은 파편…

달자 2024-06-03 18: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언제나처럼 오늘도 공쟝쟝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신자유주의가 돌봄마저 돈으로 다 치환해 버릴 때까지 한 쪽 성별이 바뀌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 즉 실리콘밸리 남성들의 기획이 바로 오늘날 기술/과학에 대한 추앙의 이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정말 기립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2024-06-05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4-06-05 15: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누군가 없이도 각자 잘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서 남자들이 그렇게 결혼을 좋아하는 거였구나. 새삼 깨닫고 갑니다...
 

https://blog.aladin.co.kr/jyang0202/11748355

북플이 보여주는 20년의 나… 대표님 잘 지내시는 지. 그때는 몇년 후에는 조금은 이해될 줄 알았는데… 다시 생각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나쁜쉒이었다. ㅋㅋㅋㅋㅋ 그러면 안된다. 물론 자기도 멈추는 법을 몰랐겠지. 역시 무리하면 사람이 망가지는 것 같다.

나도 이젠 대표다. (규모는 작고 직원은 없지만) 일로만 치면 그가 하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부러 안하는 것들도 있고 그가 못하는 것도 다 한다. 그래서 그사람의 강약약강 비굴과 직원들에 대한 폭언과 모욕적 행동들에 대해 더더 이해해 줄 생각이 없어졌다. (이래서 내가 성공을 못하는 건가 보다. 그런데 안 할래 성공. 성공은 안 해도 언제나 거래처에 일은 제대로 ‘해준다’. 그것이면 된 거 아닌가.)

4년 후 오늘의 비슷하고 다른 다짐 : 나의 무능력을 인식할 것. 그러나 그게 나의 어떤 가능성을 미리 포기하는 근거여서는 안됨. 인정하고 노력하자.

내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때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져 있는 것도 느낀다. 기쁘다.



주인공이 자신에게 상황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더욱 의미심장하게는 자신의 무능을 존중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 그렇다고 그녀가 완전히 환경 제약과 자신의 한계에 구속된 존재라는 말은 아니다. 반대로, 오로지 이전에 구획된 경계가 어디에 놓여있는지를 직접 인식하게 됨으로써 그녀는 바로 그 경계를 뛰어넘는 법을 알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혼동과 우연성의 한가운데에서, 오로지 자신의 지성과 감정을 가지고서만, 유의미한 삶을 건설하는 법을 독자에게 가르쳐 준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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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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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이야기를 A가 된 것 처럼 듣는다.


모두가 답을 척척 맞추며 잘남을 인정 받는 그 공간에서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한없이 한없이 바보 멍청이가 된 것 같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 박아서라도 콩콩콩 두더지처럼 사라지고 싶었던 A가 짠해서 울었다. 같이 울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면 얼굴 아니 온 몸이 화끈 거려서 지구를 우주를 탈출하고 싶다고 그 애는 말했다. 그걸 가장 피하고 싶어. 매주 반복되던 골든벨 시간. 그걸 피하려고 살아온 것 만 같아,라고. 


누군가의 어떤 마음도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 않아진다. 어떤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어졌다. 다만. 느끼지 않으려고 할 때, 오로지 그것만이 목적이 될 때. 기를 쓰고 애를 쓰고 온 에너지를 다 써서 그것을 거부할 때. 삶이 복수를 한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우리는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까. 그것을 느껴야 하니까. 까닭은. 그 때와 다른 내가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서글픈 반복 강박의 진실이며. 때로는 배우지 않기 위해 자라지 않는 방법을 택하고 싶다. 

 

비비언 고닉의 <끝나지 않은 일>


당연히 당연히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 

끝 없이 끝 없이 수다를 떨 수 있을 것 같았고. 

너무도 너무도 지혜로워서. 

한 없이 한 없이 나의 읽기를 갱신하고 싶은 그런 독후감들이었다.


이웃들의 페이퍼를 읽으면서 나도 책이 준 것들에 대해 적어두마 싶었다. 내가 꼽은 문단 하나는 일단 이것. 


“(93) 감정을 두려워하는 그 심리야 말로 우리가 서로의 영혼을 자근자근 살해하고 정기를 마취하고 심장을 옥죄는 원인이다. 그것이 욕망을 목 조르고 감상을 욕보이며, 전쟁을 짜릿한 것으로 만들고 평화를 침울한 것으로 만든다. 내가 깨달은 게 하나 더 있다. 작품세계 전체를 놓고 보면, 산문이라는 표면 아래로 끊임없이 신경의 저류가 흐르고 그 근원엔 *심리적 손상*이 있는 작가들이 있다.”


이젠 셀프 독서광으로 정체화하고 있지만,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여전히 어렵다. 서사에 몰입하기에 머릿속이 너무 뒤죽 박죽인 건가. 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감정을 느끼기를 싫어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피상적이고 들뜬 기분 만으로 삶을 연명하기 좋은 시절이다. 슉슉 지나가는 릴스와 쇼츠, 드라마 10분에 몰아보기. 음악 조차 일하기 위한 용도로만 듣는 나는 가끔 좀 진지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개념들로 얼룩진 책을 읽고 그것들을 더듬어 분석하는 글을 적어 본다. 그 역시 주로는 머리를 쓰는 것. 뇌를 좀 지치게 만들고 나면 역시 어떤 것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던 건 아닐까. 알코올과 다른 형태의 마취? 문학을 기피하는 나는 모르는 채로 알고 있었을지도. 절반의 타협같은 느끼기/느끼지 않기의 연마로서의 독서랄까.


분명한 건 정말로 나를 흔드는 독서 경험은, 어떤 종류의 감각을 드러내는 소설일 때가 더 많았다. 그게 나와 ‘심리적 손상’이 비슷한 작가들을 만날 때 였구나 하게 되었다. 그 농도가 부담스러운 공감은 좋은 부분도 있어서. 느끼기 싫다기보다는 빠져나오기 어렵달까. 현생을 뚜벅뚜벅 살아야 하는데 감상적이고 싶지 않다.는게 솔직한 맘이다.  


문득 떠오르는 소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내 이름은 루시바턴>이다. 그 소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목구멍이 좁아져오는 느낌이 들어서 눈을 딱 감고, 꼴깍 침을 삼킨다. 음. 어떤 마음을 먹으려고 하면 여전히 심호흡을 해야한다. 마음이 먼저 아주 멀리 가 있다. 그걸 느끼기 싫어서 머리를 먼저 아주 저 멀리 가 있게 만들어 버린다. 애달프고 슬프고 그리운 마음. 마음들을. 느낄 여유를 내가 나에게 줄 수 있기를. 


어떤 소설들을 정말로 읽기 위해서는 더 살아야 하며 더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읽고 싶고, 살고 싶다. 


**​


이어지는 다른 문단은 좀 뻔하지만. 


“(141) 페미니즘의 관점들은 여성을 복속시킨 사회적 관습의 중핵에 자리한 불안과 방어기제를 분석했고 그렇게 결국은 인간의 조건의 총체를 다루었다. 남자가 완전체 인생을 살 용기를 낼 수 있게끔 여자는 반쪽짜리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암묵적 협약은, 저 깊이 흐르는 불안이라는 관점을 통해보자 별안간 이해가 되었다. 이런 불안 때문에, 우주에서 인간은 혼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더라도 제정신으로 그 주장을 밀고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고독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성차별주의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인식, ”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더 똑바로 마주하고자 했던 불안과 방어 기제를 다루고 있어서, 고닉 성림한테 이해받은 것 같아 뿌에엥- 울었다. 이 주제로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살짝 서운해질 뻔했는데. 내가 짊어져야 하는 것이 조금 다른 질감의 고독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뻔한 말이 아니다. (인용된 스탠턴의 문장들 전혀 뻔하지 않게 읽힌다) 실존 혹은 기투 그런 게 아니다. 연결과 연대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제도로서의 이성애와 가족을 (인류가 그것으로 존속해 온 까닭과 이점이 있다) 낮춰 보는 것도 아니다. 고립이 연결보다 우수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상황 인식. 30대 비혼율 45%는 우리 세대가 감당해야 하는 조건(신자유주의, 플랫폼 자본주의...)이라는 것이고. 만연한 실업. N포. 긱잡. 번아웃. 불안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계발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안정적이지 않은 세계에서. 결혼은 물론 이성애 로맨스라는 판타지를 즐길 수도 없을 만큼 어떤 함께의 이상이 허탈하게 찢어져 버린 것에 대해. 신포도 논리도 아니고. 그냥 허심한 인정. 이랄까.


​그렇다고 연결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고요. 친밀함에 대한 욕구와 합일 혹은 사랑에 대한 욕망이 아주 없는 건 아니며, 가임기라는 조건을 여성은 매달 겪기 때문에 더 시시각각 초조하긴 하지만. 포기하면 편하고. (포기하면 편해요ㅋ) 가족은 재생산의 기능과 안전함을 제공하는 기능이 분명 있으니까. 그런데 그전에 먼저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독을. 내 몫의 불안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마주 보아야 하는 현실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물러설 수 없어요. 이젠 나도 나로 완전체예요. 완전체로 사회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용기를 내서 완전체가 되기로 했고. 알아 버린 것은 아프지만. 몰랐던 대가로 혹은 모르고저 한다 해서 지금의 조건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것이 연결을 부정하며 친밀함의 욕구를 억지로 거세시키겠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두려워하지 않기로 하는 것. 자유로워지는 것. 즉 불안에 익숙해지기로 하는 것. 


나약해지고 싶을 때. 이렇게 다짐한다. 난 남자다. 그래서 (의식적 정신이) 남자인 내가 혐오하는 것은 가부장이 아니다. 가장의 짐을 질 생각도 없으면서 외로움은 감당 못해 친밀함과 관계를 돈 주고 사려는 남자들이다. 그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은 돈이 가장 쉽다는 진실을 끝끝내 모른다는 것. 관계와 친밀함과 돌봄과 인정은 배려의 노동이다. 섹스 역시 배려를 주고-받는 노동이다. 


이젠 어떤 욕구들이 결핍되어 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나는 부족하지만 부족한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불안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적는 이 문장이 대단히 오만하다는 걸 안다. 자칫 능력주의로 빠질 수 있으며. 라떼는~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돌봄의 윤리를 사유해야하며. 사실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이 인생의 진짜 조건임을 똑바로 보아야한다고 어렴풋이 느낀다. 그러나. 지금의 인식에 닿기까지도 실은 정말 어려웠다. 그래서 조금은 더 굳히기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 조준과 겨냥을 감당 못함에 두고. 삶을 살면서 깨지면서 알아가기랄까. 


1인분의 인간(남자 시민)이 정말로 1인분(뒤에는 2등시민 여성의 자연화된 노동이 있다)이 아니었다는 것을 배워 알면서도. 이토록 무리해서 1인분이 되었으니 각자의 고독을 전제하는 관습적 이성애와는 다른 각본의 연결을 도모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고. 그러나 이 인식은 솔까 정상성에 집착해 온 아직은 젊은(다고 느낍니다) 여성의 인식일 뿐. 남성도 그러고 있는지는. 이젠 정말 모르겠고. 올해 초엔 가전제품 부자 청소왕 브라이언을 보면서 희망을 (...ㅋㅋㅋ 이게 왜 여기서 나와 😩?)


읽을 때 마다 큰 성림으로 모시겠다 다짐하게 되는 비비언 고닉의 책을 매만져본다. 

어떤 각본에도 기댈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나에게 부탁합니다. 

나를 부탁합니다. 

인간의 고독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성차별주의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는 인식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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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5-28 0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경야독 플러스 기도빨의 이 귀한 페이퍼 꼭꼭 야무지게 읽어보겠습니다. 일단 출근 좀 하고요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4-05-28 07:49   좋아요 1 | URL
출근 으으 ㅠㅠㅠㅠ 힘내요😫😫🌈🌈🌈🌈

수이 2024-05-28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출근하지 않은 자, 다 놀고 와서 이제 읽었습니다. 나두 리뷰 써야지!!! 님의 글 다시 읽고.

공쟝쟝 2024-05-31 10:31   좋아요 0 | URL
놀순 언니! ❤️ 출근 보다 더 중요한 앎과 삶의 세계가 있다☺️ 저는 덜 벌고 더 읽자 입니다!

단발머리 2024-06-01 1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황 인식. 내 몫의 불안에 대해 오래오래 생각했습니다.
이미 완전체인 쟝님을 제가 열렬히 응원합니다. 제 응원을 알고 있을거라 생각해요. 열심히 말고 살살 일하고, 꼭 쉬는 시간 확보합시다! 화이팅!!

공쟝쟝 2024-06-02 22:57   좋아요 0 | URL
같은 말을 돌려드리며... ㅋㅋㅋ!! 3중 노동(3번에는 읽고 쓰기 아시죠?) 화이팅!
 

바쁘다 바빠. 한 시간만 읽어야지.
어제 서점에서 사 온 책은 한병철의 #권력이란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꽤 오래 생각했던 것 같다. 제목이 군더더기 없었기에 읽어볼 요량. 




내게 요 질문을 조금 비틀면 관계란 무엇인가, 모두에게 깔끔한(?) 이별은 무엇인가.이다. 일상을 휘감고 있는 (생산하는) 권력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온몸을 뒤틀면서 괴로워졌던 이유는 나는 왜 그토록 많은 권력이 나를 지배하도록 스스로를 허락했는가.에 대한 의문였다. 나는 나를 내버려두었다. 때로는 기꺼이 반납했으며, 어쩔 때는 남김없이 쓰이고자 했다. 왜, 왜 그랬을까. (어쩌면 정말의 인식은 그 질문부터가 시작일 테지만) 가까스로를 지나 어느덧 내린 결론은. 거의 딱 하나.

별로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인데. 나를 잊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응, 있다. (어쩌면 자기가 안 그런 줄 아는 사람이 제일 그런 사람인 경우가 인 것 같기도. 그런 억압.)

나 자신에 대한 책임 회피. 그걸 스스럼 없이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떫은 경멸감을 표현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했던 시간들도 이젠 지나갔다(기를 바란다). 어쨌든 자기 PR시대라는 담론 폭격을 정통으로 맞으면서 살아왔음에도 나이 서른이 넘도록 나를 주장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어떤 존재(사람, 개념, 명분, 직위 그리고 가끔은 책의 권위)들의 뒤로 숨고만 싶어했다. 그게 익숙했고 그게 편했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의 사회화. 시간 없음. 여유 없음. 그리하여 내가 없기를 바라는. 일견 누추하고 비루하고 어쩌면 그래서 더 거대한(없음으로써의 전능에 대한 갈망) 마음들에 대해 옹호하고 싶었다. 여전히 옹호하고 싶어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나를 다 내어주지 않는 존재들. 지킬 것이 많은. 자기 자신이 너무도 많아서. 누군가들이 반납하는 것을 기꺼이 취하는. 아니, 그걸 취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때로는 알기에 너무 잘 알기에 어쩌면 그렇게 행동하는 이들의 비굴한 발연기를 경멸하는. 으르렁거림. 실제로 내가 들으면서 가장 할 말을 잃었던 말 중 하나는. 어차피 (네가) 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할 거먼 제대로 하고, 할 거면 똑바로 해. 뭐 이런 종류의 언사였는데. (나의 대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비슷한 말을 같은 주저함을 지닌 사람들에게 반복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에 대해서 이제 나는 궁금하지 않다. 어쩌면 빤해졌다. 빤해서 재미없어.

스스로를 잊어버려도 상관없을 만큼 어쩌면 정말로는 아무런 자원이 없는 조건에 처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권력은 필요한 관계는 필요한 이별은 무엇일까. 얇고 예쁜 이 책을 그런 질문들을 견주며 읽어 볼 생각이다.

권력이란 무엇인가.





이 책이 보여주려 하는 것은 권력이 폭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이다. - P5

권력은 근본적으로 독백적monologisch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권력의 결정적 약점이 있다. (…) 권력에 종속되어 있는 자들만이, 즉 복종하고 있는 자들만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다. - P7

(이 책을 통해서) 적어도 사람들이 도대체 권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해서 생겨나는 권력만큼은, 권력에서 제외되어야 할 것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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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4-05-27 09: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권력을 정치력과 연결시키고 쉽게 결론을 얻으려 하는 저는, 권력에 대한 쟝님의 이러한 진지한 물음이 참 좋네요.
주경야독, 성실근면의 학인의 이런 진지함이 어떤 식으로든 보은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의 간절함은 곧 기도입니다!

공쟝쟝 2024-05-28 00:28   좋아요 2 | URL
기도 감사합니다. 기도 빨 받아서 홀린 듯 독후감 작성하였습니다. 케켁. 주경야독 안하기로 맘 먹은지 꽤 됐는데. 책임지시죠.
 
흠결 없는 파편들의 사회 - 한국 2060 여성들의 일 경험과 모험
김현미 지음 / 봄알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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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일감 쳐내다 근로의욕 상실하고 농땡이치러 나온 흠결 많은 파편. 액상과당과 정제곡물로 목숨줄을 줄이고 당스파이크를 올려서 일을 끝낼 생각은 없고, 번뜩이는 두뇌회전으로(;;)신자유주의하 K-여성의 노동을 사유하는데…




플래그 붙이다가 모든 페이지에 붙이다가 화나서 걍 구매한 책 #흠결없는파편들의사회

현실감 바짝 조여오는 문장들이 살을에고 뼈를 때려서 개🐶강추를 하지 않을 수 없네.

“(15)신경아의 표현대로 “여성들은 종속적 안정성을 잃은 대신 독립과 표류의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얻었다”
(16)하지만 이들 여성 모두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 딸, 부인, 어머니라는 역할 질서 바깥에 존재하게 됐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그런 이들에게 조금 더 확실한 삶과 자족의 근거는 무엇일까? 괜찮은 일과 일터다. 임금노동이, 일이 정말 중요해졌다. 자립할 만한 경제력을 갖춘 여성들, 자신의 삶에서 남성 생계 부양자를 안 만들기로 한 여성들, 그를 떠나보낸 여성들, 남성 배우자 없이 아이를 기르는 여성들, 여성들끼리 벌어 먹고사는 여성들, 혼자 사는 여성들, 고양이나 개와 같은 다른 동료 종을 돌보는 여성들 등, *이들 모두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계속 일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혹은 일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존재하는가*가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이들의 존재감을 구성한다.
한편으로 여성들이 사무직·전문직 일자리로 대거 진출한 현상은 ‘비혼 결정’에서 비롯된 결과인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돌봄 노동을 하지 않는 남성을 표준적인 노동자상으로 삼아 조직된 남성 중심적인 일터에서 생존하고 성공하기 위해 ‘비혼‒무자녀 상황의 유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도 많다. 공적인 일 경험과 결혼, 출산, 양육과 같은 사적 경험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 임금노동과 돌봄 노동은 시간, 정서, 노력 면에서 갈등 관계에 있다. (17)돌봄 노동에서 상대적으로 면제되어왔던 남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듯, 남성 중심의 일터에 들어간 여성들 또한 결혼, 출산, 양육을 수행할 여력을 상실한다. *한쪽을 말끔하게 정리해야 생존이 가능한 구조에서* 여성들은 자발과 강제를 구분할 수 없도록 사회가 구성한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선택권을 잃거나, 고통스러운 선택으로 내몰려왔다.”

#한쪽을말끔히정리한다고생존이가능할줄알았더냐


딸 가진 많은 모부가 성 평등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중산층 집안의 똑똑한 딸들은 경력 단절로 좌절한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어주고, 독박 가사노동의 서러움에 공감해주고 손을 보태고자 하며, 어머니와 함께 쇼핑을 한다. 엄마가 ‘꼰대 아줌마’가 되지 않도록 행동, 말투, 매너를 살피고 교정해주며 유행을 알려준다. 한편 한국 대중문화를 통해 양산된 딸 바보 아버지들은 사랑하는 딸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이때 딸은 그 자신의 독립성이나 인격과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현대판 ‘으스대기 감정’을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떠안는다. - P34

왜 일터에서 혹은 노동의 조건으로 여성성을 수행하는 방법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가는 정치경제학적 질문을 필요로 한다. 젠더 수행성은 문화규범으로서 자본의 축적 체제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여성의 관계는 "엇갈린 축복mixed blessing"이라 불린다. 어떤 여성들에게는 긍정적인 기회를 선사했으나 동시에 가중된 억압을 만들어냈다는 의미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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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4-05-23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액상과당과 정제곡물로 목숨줄을 줄이고 당스파이크를 올려서 일을 끝낼 생각은 없고, 번뜩이는 두뇌회전으로 --> 응원합니다!! ㅎㅎ 사진 멋지네요 ㅋㅋ 저도 내일 카푸치노 사 마셔야겠습니다~~

공쟝쟝 2024-05-23 23:46   좋아요 1 | URL
먹다말고 헝ㅋ분ㅋ해서 일단 사진 찍은ㅋㅋ 시나몬 퐝퐝 뿌려서 드셔요. 서곡님. 더 더워지기 전에 따수운 걸루~

단발머리 2024-05-23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왼쪽에.... 노트가 보이네요. 많이는 안 보이고 쪼금 보이지만, 공부하는 사람의 공부 중일 때 나오는 노트같네요. 참 멋있습니다. 따봉!

공쟝쟝 2024-05-23 23:50   좋아요 1 | URL
매의 눈! 종횡무진 제 노트 맞습니다. 이런 저런 공부는 사실 좀 지쳐요...... ㅜㅅㅜ 근데 신자유주의가 훈련시켜줘서 숙련된 자기계발러답게 자기계발이다 생각하고 걍 합니다 ㅋㅋㅋㅋㅋ

은오 2024-05-24 0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으아 액상과당이랑 정제탄수화물 단거단거단거 너무 젛아요!!!!!!!!!! 사진 보자마자 혈당스파이크 처맞는 느낌에 행복 ㅋㅋㅋㅋㅋㅋㅋ
고닉 언니 책도...😭 저 지난주엔가 다읽었는데 넘 좋았다요 쟝님!!!!

공쟝쟝 2024-05-24 08:47   좋아요 2 | URL
단 거 먹으면 안된다는 유튜브 보고 단 거 더 땡기는 거 내 안의 죽음충동인가요? ㅋㅋㅋ 고닉언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의 사랑이시며!! 은오님 이 책 흠결 정말 너무 짱짱 좋아요! 저도 동감되지만… 취준기간 긴 딸들이 일케 힘들었겠구나 ㅜㅜ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진짜 진짜 힘들겠구나 하면서 ….!! 그래도 내 안의 능력주의를 똑바로 보면 나한테 좀 관대해지니까! 추천합니다…!! 아직 안 읽었음 꼭 읽어요!! (간절🥹) 젠더는 섹슈얼리티, 계급 그리고 ‘나이’에 따라서 무지무지 다르게 경험된다는 거!!를 새삼느끼고 은오님 생각도 많이 났어요 ㅠㅠ

은오 2024-05-25 05:34   좋아요 3 | URL
헐... “이 책 읽으면서 니 생각 했어!!” 이거 반칙인데 쟝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럼 안 읽을 수가 없자나요!!!!!! 알게써요 >_<♥️♥️

공쟝쟝 2024-05-26 14:14   좋아요 1 | URL
반칙 ㅋㅋㅋ 아앗!! 찐으로 이대녀 은오님 생각났다! 물럿거랏 요망한 팬더!!! ㅋㅋ

2024-05-25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5-26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