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프레이야 > 단식에서 깨어난 지율스님
지율(知律·48) 스님은 금정산에 있었다. 25일 오후 식물원길 지나 금샘길 들어서는 금정산 초입의 2층 사가를 찾았다. 스님이 거처하는 방의 동남쪽으로 난 창에는 금빛같은 봄 햇살이 잘게 부서졌다. 2003년 3월부터 시작한 단식을 다섯 차례 회향(回向)하고 이제 새봄을 맞는 스님이다.
스님은 천성산 고속철을 화두 삼은 100일 넘는 다섯 번째 단식 끝에 올 새해 벽두 동국대 일산병원에 입원하여 원광대 광주한방병원에서 퇴원하던 지난달 2일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엄혹한 겨울 한철을 났다. 광주의 모 사찰에서 보름쯤 머물다 이곳 부산에 온지가 벌써 한달째란다. 사람의 이목을 피해 몸을 추스려온 시간들이다.
10일 전쯤 첫 전화를 넣었을 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누워만 있다. 그리고 딱히 할 말도 없다"며 메마른 목소리로 인터뷰를 거부했던 스님은 뜻밖에 반가부좌를 단아하게 튼 채 일어나앉아 기자를 맞았다. 예상치 못한 빠른 회복이다.
▲단식을 끝내고 부산 금정산에 머물고 있는 지율 스님 | |
"화요일(28일)에 천성산으로 들어가려 합니다. 수행 중인 대중스님들께 불편을 줄까 염려되었고,암자 화장실이 재래식인데다 절집에서 100m나 떨어져 있어 여지껏 부산에 머물렀지요. 지금 있는 이곳은 도롱뇽 소송을 할 때 부산 사무실로 쓰던 곳입니다."
먼저 스님의 건강이 궁금했다. "제 건강이 관심사가 되면 안되는데…" 한동안 스님은 말을 아꼈다. 자신의 건강문제가 단식을 방편 삼아 수행해온 천성산이라는 화두를 손상할까 염려하는 인상이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제일 힘든 게 손발 등 몸에 마비가 온 것이었습니다. 남의 부축을 받아 이제 겨우 서는 정도인데,아직 걷지는 못해요. 단어를 곧잘 잊는 등 기억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감각신경이 회복되려면 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린다는데 저는 회복이 빠른 편입니다. 감각신경이 안 돌아오면 아프지 않는데,이제 신경이 돌아오면서 다시 아픕니다."
스님 앉은 자리의 왼쪽 벽에 단단히 붙박힌 채 요 위로 길게 늘여진 두개의 천이 눈에 들어왔다. "제 상상의 특허품"이라고 웃음 지은 스님은 "이번 단식때는 거리에서 찬바람을 맞아서인지 냉으로 마비가 왔고,붕어운동 등으로 마비된 몸을 풀기 위해 고안했다"고 한다. 인터뷰 도중 마비된 손가락을 연신 주무르던 스님은 "수행자는 혼자 사는 사람으로,병원에도 거의 안 가기 때문에 자기체크를 꾸준히 해야 하며 죽음도 자연사로 맞아야 한다"며 몸 관리에 대한 기본 생각들을 꺼내놓았다.
▲스님의 손은 얼마 전 그가 먹었다던 '쑥 줄기'를 닮았다 | |
그 동안의 단식에 대한 소회가 빠질리 없다. "단식을 하면서 선조들의 지혜에 놀랐고,지구에 적응해온 인간의 역사를 느끼게 됐다"는 스님은 "단식을 끝낼 때마다 먹고 싶은 음식이 달랐다"고 했다. 겨울에는 신장에 좋은 다시마 미역 호두 땅콩 등이,봄에는 간에 좋은 쑥 냉이 달래 등 봄나물이,여름에는 심장에 좋은 과일이,가을에는 폐에 좋은 매운 고추 등을 몸이 제스스로 알고 찾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단식을 풀 때도 음식 조절없이 몸이 요구하는대로 음식을 찾았다고 했다.
"남의 산 소나무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 집 짓는 데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집에 우리 산의 소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 동네에서 생길 수 있는 병충해 등을 그 소나무도 함께 겪어왔기 때문이지요. 남의 산 소나무가 아무리 곧아도 우리 산의 굽은 소나무만 못하지요. 몸에 가장 필요로 하는 음식은 우리 주변의 가장 흔한 것들이지요. 보약이 따로 없습니다."
이곳 스님의 거처 풍경은 살아온 이력을 닮아 있다. 고속철도가 지나갈 천성산 계곡,안적암으로 가는 꽃길이 큰 사진으로 벽에 나붙어 있다. 책상 위에는 지구의가 놓여 있고 그 위로 천성산 소쩍새 사진,다시 위로는 '천성산이 아파요'라는 제기에 새긴 판화 아닌 판화가 찍혀 있다. 노트북에는 천성산 살리기에 앞장 서온 '초록의 공명'이 깜박이고 있고,소담한 바느질함과 카메라함 언저리에는 '나무도감''금정산 생태''지율,숲에서 나오다''천성산환경영향평가서' 따위의 서적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율 스님이 직접 만든 동영상 플래시와 '상상의 특허품(?)'을 설명하고 있다 | |
"천성산 지키기 운동의 중심은 '초록의 공명'입니다. 제가 잘한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가 플래쉬인데,생태 사진을 찍다가 아는 분으로부터 2시간만에 배웠지요. 다들 잘한다고 그래요. 고속철 지나가는 계곡의 아픔과 문화가 어떤지,자연이나 물 생명에 대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 천성산을 지키는 것이 스님의 꿈이라면 플래쉬는 말의 힘을 구체화하는 매체이자 공간이다. 자연스럽게 화제가 천성산으로 옮아갔다.
"천성산은 천성(千聖)의 길이 있습니다. 천성산을 구하거나 혹은 아프게 하는 길이더라도 말입니다. 천성은 천성의 길이 있고 천성 아래 사는 저에게는 제 길이 있지요. 하늘의 큰 뜻은 모르지만 인륜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아는 부분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저를 극단적이라고 보는 분들이 있는데,사실 제 성격은 낙천적입니다.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있을 때 어느 교수님이 말을 걸었는데 제가 그랬대요,즐겁지 않으면 걷지 않았을 거라고요. 마취 상태에서도 늘 웃고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제 잠재의식이 고마웠어요."
새만금 대법원 판결 이후 천성산 대책회의를 한번 가졌다는 지율 스님.
"천성산은 희망의 다른 모습"이라며 "천성산 도롱뇽 소송은 이 시대의 동화"라고 했다. 신화와 동화를 통해 천성산 문제에 접근하겠다는 스님은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보고 싶은데,초록의 공명을 통해 신화를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는 창을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길에 있어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중심에 놓겠다고 했다.
"주위에서 도와주는 분들이 많아 감사합니다. 하지만 매도 맞으려 합니다. 몸에 마비가 오다보니 제 스스로 손바닥 발바닥에 매를 때리고 있습니다. 혈을 자극하니 되레 건강해지지요. 지혜로운 분들은 상대방을 공격해도 선행으로 하지요. 자기 삶에 진실하지 않으면 운동이 진실할 수 없다고 보아요.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아야 사회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른 스님이 남들이 다들 안된다고 하는데 왜 붙들고 있느냐고 말씀하셨을 때,스님 요즘 2%가 얼마나 유행하는지 아십니까 하고 반문했지요. 예전에는 천성산 고속철 공사에 반대하는 분들이 0%였다면 지금은 한 20%는 됩니다."
▲지율 스님의 화두인 '천성산'은 여전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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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금정산 자락의 지금 이 집이 참 좋다고 했다. 동남향의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소리의 에너지를 느끼고 있다 한다. 빛과 소리 에너지에다 좋은 생각 에너지도 자기를 건강하게 바꿔주고 있다는 말도 했다. 뇌나 장기의 손상 없이 이번 단식에서 깨어난 것만 해도 기적이라는 스님은 이번 단식에서 자신의 위해 기도하는 분들의 힘,선하고 착한 제3의 에너지를 느꼈다고 한다.
지리산이 고향인 스님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개인사에 대한 질문에는 말문을 굳게 닫았다. "지금 있는 금정산이나 제가 들어갈 천성산이 우리 국토의,백두대간의 막내입니다. 우리 속담에 막내둥이가 집안을 세우면 형들도 따라온다고 하지 않던가요. 천성산 금정산이 살아나면 우리 국토가 살아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과 꿈이 중요하지요. 꿈이 우리의 희망이라면,말은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길입니다. 꿈이 피어나도록,희망의 작은 봄바람이 불어왔으면 합니다."
글=임성원기자 forest@, 동영상·사진=전대식기자 manb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