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안일을 좀 하고 나면 10시 30분가량 된다. 물론 언제나 이렇게 여유있는 것도 아니고, 야근을 하는 날은 씻고 잠들기 바쁘지만 될 수 있는 한 10시 30분 이후는 휴식을 취하려고 노력한다. 3월이 좀 지난 어느 날 요즘 유행하는 반신욕이 어떤 것인가 궁금하던 참에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지인의 감언이설 따라  10시 30분 이후의 황금 같은 시간을 이용하여 시도해 보았다.

다이어트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온 몸을 다 담그던 목욕과는 다르게 반신욕은 혈액순환이 잘 되고 몸이 아주 따뜻해져서 수면 중 체온저하로 항상 추위를 타던 내가 포근한 잠을 자게 되었고 그리하여 나는 거의 매일 반신욕을 하는 추종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따뜻한 탕 안에서 땀 흘리며 책 읽는 재미도 남달라서 미루어 두었던  ‘핀치의 부리’도 읽고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도 한 번 더 읽었다. 책이 좀 눅눅해 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야말로 느긋한 휴식이 아닐 수 없었는데... 지난 3월 마지막 날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탕에 더운 물을 받으려 욕조를 닦는 내게 물었다.
“엄마. 반신욕 매일 안하면 안돼요?“
“왜?”
“우리나라는 물 부족 국가인데 물이 아깝잖아요?”
“... 엄마도 하고 어떤 때는 아빠랑 너도 하고 그러잖아?”
“그래도 그렇게 낭비하면 이제 먹을 물도 없을 거라는데요”
“...”

일찍 잠들어 엄마의 반신욕을 잘 모르던 아이가 며칠 지켜보며 내린 결론인 것 같다. 세계 물의 날을 맞이하여 식수 고갈과 빈곤국의 물 사유화를 우려하는 뉴스를 보면서도 나의 반신욕과는 연결을 짓지 못하였는데 아이는 매일 룰루랄라 태평하게 목욕하는 엄마를 보며 걱정스러웠나 보다.
욕조를 반 넘게 채운 맑은 물이 아까워 손빨래도 하고 변기청소도 하고 걸레도 빨곤 하지만 그래도 그냥 흘려버리는 날이 더 많았기에 어른스럽게 한 마디 하는 그 말에 나는 그제도 어제도 욕조에 몸을 담글 수가 없었다. 

아들놈 눈치 보여서 목욕도 마음도 못하겠네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 이 무슨 호사더냐 나혼자 쓰자고 그 많은 물을 매일 소비하다니 정말 심했구나 하는 반성도 들고...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들도 깨끗하고 풍부한 물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주려면 나부터 아껴야 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름대로 행복했던 반신욕의 미련을 깨끗이 접기로 했다.

하지만 오늘은 영 몸이 추운 듯하니 누구 말대로 혼자 반신욕 하기 딱 알맞을 거라는 그 옛날의 ‘빨간 고무 다라이’ 라도 하나 구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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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2004-04-08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오랜만이죠 팀장님!!
명직이 정말,,,,
4학년이예요 벌써!!
몇주전 정문에서 보니 정말 아이들이 많이 자랐어요...
자영이는 딱 팀장님이고,,, 명직이는 이제 애기때 모습이 없고,,,
암튼!! 이글 읽고 명직이 때문에 저도 반성 좀 하고,,, 웃어보기도 했습니다..

조선인 2004-05-2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네요.
 

햇빛을 잘 받는 화단엔 백목련이 만개하여 어느새 질 채비를 하고 있다. 좀더 격조있어 보이는 자목련은 이제 자주색 입술을  벌려 하얀 속살을 보인채 본격적인 봄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는 듯한데... 새벽같이 나오고 저녁늦게 퇴근하니 꽃이 피었는지  잎이 지는지 도통 알 길이 없던 내가 주말에 모처럼  아파트를 산책하니  어느새 봄이 이렇게 성큼 다가와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인천 바닷가에 있는 직장은 서울보다 2~3도는 기온이 낮은 것 같다. 바닷 바람은  항상 출근길의 내 옷차림을 고민하게 만들어서 남들보다 겨울을  못견디게 아쉬워 하는 차림으로 버스를 기다리게 만든다. 교정의 꽃 소식도 늦기만 하여서 오늘 아침 출근길에 새삼스럽게 둘러보니 목련은 이제야 하얀 봉우리가 엄지 손가락만하게 맺혀있고 벚꽃 새순은 아직 몽올 몽올한 채로 마악 움트려하고 있다. 그나마 개나리는 노란 꽃잎을 피웠지만 아침 추위에 잎을 오므리고 얌전하게 서있고...

그러나 한반도 어디든지 봄은 오고 있으려니 봄이 늦은게 아니라 내 마음이 봄을 맞을 채비를 하지 못한 것이겠지. 진달래는 어느새 드문 드문 피어 연초록 색을 띄기 시작한 나무들 속에서 수줍게 서있었는데  산수유는 이제 만개하여 절정을 향해 노란 빛을 뿜어대고 있는데 뭐가 그리 피곤한 나는 그 고운색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겨울 이부자리 속에서 꼼지락 거리며 잠만 자고 있었는지... 

오늘은 점심을 서둘러 먹고 나무들이  연한 색 옷을 차려입고 수줍은 듯 그러나 지지않으려  뽐내는 교정을 찬찬히 거닐며 그들을 만져보아야 겠다.  수줍은 봄이 발그레해지도록 그들을 애무하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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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30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화장을 하는 여자.

한 시간 남짓 되는 출근길은 여러모로 유용한 시간이다. 학생들이 많이 타기 때문에 다른 버스보다 책을 읽는 이도, 이어폰을 낀 사람도 눈에 많이 띈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고 게임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만 대다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졸린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 내 옆에 앉은 남학생은 미처 마치지 못한 리포트를 열심히 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감기가 들었는지 연방 코를 훌쩍인다. 남들보다 냄새, 소리에 좀 예민한 편인 나는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으려 눈을 감지만 일정한 박자로 훌쩍... 고개를 들면 좀 나으련만 숙제를 하느라 그러지도 못하는 눈치다.

통로를 넘어 옆에 앉은 아가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커다란 가방을 열고 화장품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한다. 석 달 넘게 같은 시간대의 버스를 타다보니 대략 듣게 된 휴대전화 내용으로 모 고교에 다니는 기간제 교사임을 알게 되었다. 이 아가씨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줄은 선 사람들 사이에서 앞이 지나치게 간격이 떨어지던 상관 않고 멍하니 서 있다가 새치기를 당하기 일쑤여서 뒤에서 보는 내가 조바심을 내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항상 젖은 머리로 버스에 올라타서 시작하는 일은 커다란 체크무늬 가방을 열고 기초 화장품부터 꺼내어 정성들여 화장을 하는 것이다. 아가씨가 스킨, 로션, 에센스, 영양크림을 정성들여 바르고 나니 한 십분은 훌쩍 가는 것 같다. 달리는 버스에서는 눈이 어지러워 책을 읽지도 못하고 옆의 학생이 훌쩍이는 소리에 잠을 자지도 못하는 나는 마침 옆에 앉은 아가씨의 화장하는 진지한 동작을 옆 눈으로 다 보게 되었다.

난 화장도 잘하지 않는 게으른 성격일 뿐 아니라 거울을 보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게 어색한 좀 내숭스러운 성격이여서 남이 있으면 화장실에서 거울도 슬쩍 한번 보고 마는데 아가씨는 사람이 꽉 들어찬 버스 안에서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화장을 하니 내가 관심을 가져도 크게 실례는 아닐 것 같다.

기초화장을 끝낸 아가씨는 이제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느라 한 오 분, 파운데이션을 바르느라 또 오 분을 보낸다. 그 작은 얼굴에 그렇게 꼼꼼하게 바르는 파운데이션은 거의 예술의 경지이다. 버스 앞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가방위에 올려놓은 거을을 보며 얼굴 구석구석 찾아서 바르고 두드리는 그 세밀함. 마지막으로 명암을 주는 작업까지 끝내고 이제 콤팩트를 꺼내어 살짝 두드리듯 찬찬히 구석구석 눌러대기 시작한다. 상표를 보니 'CLIO'다. 처음 보는 상표라서 나도 모르게 클리오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제 도화지를 원하는 색으로 꼼꼼히 채운 예술가는 가방에서 하나씩 기묘한 작업도구를 꺼내어 본격적으로 화폭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곱게 밀어서 거의 보이지 않던 눈썹이 우아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달리는 차안에서 어찌 저리 날렵한 손놀림으로 가벼운 Touch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본격적으로 감탄하기 시작한다. 눈을 살포시 아래로 뜨고 연필로 속눈썹이 난 부분의 아이라인을 살짝 그릴 때는 난 신기(神技)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계속 가방 속으로 손은 들락거리고 그럼에 따라 아가씨의 얼굴은 세수만 한 애 띈 얼굴에서 직장 생활에 익숙한 사회인으로 변해간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불편하여 몸을 뒤채던 말던 아가씨의 다소 부산스러운 창조생활은 계속되고 난 그 큰 가방 속에서 속눈썹을 위로 올리는 집게가 나오지 않는 게 다행스러울 뿐이다.

시계는 이제 버스를 탄지 40분이 지났음을 알리고 있다. 작업은 거의 끝나가고 마무리 작업이 남았다. 입술라인 형성 작업과 입술 면을 채우는 가장 진지한 작업이 남았음을 알고 있다. 달리는 차안에서 립스틱을 바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사람은 다 안다. 그런데 나의 짓궂은 기대(?)와 어긋나게 아가씨는 화룡정점을 하듯 커다란 붓으로 립그로스까지 바른 후 가방을 챙기기 시작한다. 젖었던 머리도 이제 말랐고 버스에 타던 사람과 지금 옆에 앉은 사람은 너무도 달라서 새삼스럽게 그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인조인간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변한 아가씨다. 내가 그렇게 보아서 그런가? 한 시간 여 동안 저토록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는 아가씨는 마음과 머릿속을 화장하는 데는 하루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할까? 반성해, 오늘도 대충 엘리베이터를 내려오며 립스틱 몇번 칠하는 너는 직장 여성으로서 예의가 없다고 말을 듣잖아? 아 난 지금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나중에 우리 아들이 저런 아가씨를 데려와서 결혼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군. 내 터무니없는 상상은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다. 아니야. 저 타입은 아닐 거야. 저 엉뚱하도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대담함을 우리 아이는 감당하기 어려울 거야. 솔직히 말해봐.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거지 뭐. 아니 그보다도 저렇게 두꺼운 화장품으로 감춘 젊은 피부가 너무 안타깝군. 그냥 말그레한 피부가 훨씬 예쁘던데 그걸 본인은 모르나보지...  아 나도 늙었군. 별 걱정을 다하고... 이크 내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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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여름 백두산을 오른 후 어렵게 일정을 맞추어 용정을 찾아갔다. 안내자는 '아무 볼 것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가기를 꺼려했지만 윤동주가 자란 용정은 꼭 가보고 싶었고 용정하면 떠오르는 선구자 노래속의 소나무 자취라도  혹 볼 수 있을까 싶어 어렵게 일정을 맞추었다.


자욱한 안개속에서 해란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소나무 대신 일송정비가 말없이 우뚝 서있었다.


 

 

 

 

 

 

 

 

 

 

 

해란강이 흐르는 용정시 전경

인적없이 낮으막한 산 언덕, 일송정비 양 옆으로 고향의 봄 노래비와  선구자 노래비가 서있었는데 세련되지는 못하여도 개인들이 사비를 들여 장만한 마음이 묻어나 보였다.


 

 

 

 

 

 

 

 

 

 

 

노래비가 양쪽에 서있는 일송정비

중국을 통해서 가게 되었기에 백두산이 아닌 장백산이라는 푯말을 배경으로 천지 사진을 찍어야 했고 그 때문에 마음이 내내  착잡하였다. 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용정을 어렵게 찾아가서 언덕 위에 외롭게 솟아있는 일송정비 앞에 서니 그 옛날 먼 이역 땅에서 외롭게 독립 투쟁에 앞장섰던 님들의 높은 뜻을 잠시나마 되새겨 볼 수 있었다.   황무지처럼 붉은 땅, 소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기념비가 서있고... 그래도 이렇게 가끔씩 찾아오는 조국의 후손들 때문에 넋이라도 있다면 선구자, 님들은 외롭지 않겠지...



 

 

 

 

 

 

 

 

 

 

 

일송정비 뒷면 하단 복원기


 

 

 

 

 

 

 

 

 

 

 

고향의 봄 노래비


 

 

 

 

 

 

 

 

 

 

 

선구자 노래비

그랬는데... 그랬는데...

3월 5일 뉴스를 보니 지난 9월 중국 당국이 그 선구자비를 시멘트로 무참하게 훼손시켜 버렸다한다. 고구려사 말살 정책과 맞물려 돌아가는 속통인가?  왜? 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렇게 어지러운 정국속에서 약소국의 슬픔을 새삼스럽게 되새겨본다.  

다음에 꼭 다시  연변에 오리라 아이들과 약속하였는데 그래서 백두산 푯말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자고 하였는데...  선구자 노래속의 그 용정 일송정을 다시 찾자 하였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백업해둔 자료를 뒤져 안개로 그늘이 드리워진 사진이라도 올려 보지만 마음은 사진과 같이 어둡기만 하다.


훼손된 선구자 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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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온 다음날 선물받은  사진이지요.
매일 지나치던 풍경이 동화 속 나라 같이 아름습니다.
그런데 실제 세상은 사진만큼 아름답지는 않은데...
가끔식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면만 보기 위해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저같은 경우  예쁘고 젊게 나온 사진은 앨범에 넣고 못나왔다 생각되는 사진은 슬그머니 감추거든요. 사진은 어른들의 환상을 채워주는 장난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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