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서술자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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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서술자!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있다. 올해는 과연 어떤 작가가 수상할까? 우리에게도 익숙한 작가가 수상할까? 궁금증을 안고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에세이를 읽었다. 국내에서는 최초로 출간된 토카르추크의 에세이다. 6편의 에세이와 6편의 강연록이 실려 있는데 표제작인 「다정한 서술자」는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기조 강연록이다.

대여섯 살 때, 토카르추크는 엄마의 처녀 적 사진을 보았는데 엄마의 표정이 슬퍼 보였다. 나중에 엄마에게 슬픔의 이유에 대해 묻자 작가의 엄마는 토카르추크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토카르추크를 그리워하느라 슬픈 거라고 말했다. 아직 토카르추크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토카르추크를 그리워하냐고 묻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때로는 순서가 바뀔 수도 있어.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그 사람이 거기 존재하게 되는 거란다." 334쪽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서술자'를 선물했다고 말한다. 사서인 아버지와 이렇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어머니 사이에서 어떻게 토카르추크가 이야기꾼이 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배운다고 누구나 서술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책과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의 영향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책읽기와 글쓰기, 문학의 역할(혹은 기능) 등과 관련해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는데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이고 통찰력 깊은 글들이 많다. 그렇다고 작가의 글들이 문학 속 세계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이 오기 전 작가는 여행을 즐겼지만 이제 더 이상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여유롭게 휴양을 즐기고 있는 반면 누군가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런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을 작가는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트렌디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다정함'이란 대상을 의인화해서 바라보고, 감정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나와 닮은 점을 찾아낼 줄 아는 기술입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대상에 끊임없이 생명령을 불어넣고, 인간의 경험들, 그들이 겪었던 상황들과 기억들로 대표되는 이 세상의 모든 작은 조각과 파편들에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정함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것을 인격화하여 그것에 목소리를 투여하고, 존재하고 표현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선사합니다. (…) 다정함이란 가장 겸손한 사랑의 유형입니다. (…) 다정함은 우리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면밀하고 주의 깊게 바라볼 때 구현됩니다. (…) 다정함이란 다른 존재, 그들의 연약함과 고유한 특성, 그리고 고통이나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 존재들의 나약한 본질에 대해 정서적으로 깊은 관심을 표명하는 것입니다. 363~364쪽

작가는 그저 이야기를 하는 서술자가 아니라 타인에게 공감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서술자가 되어야 하며, 새로운 유형의 서술 방식인 '사인칭 시점의 서술'을 꿈꾸고 있다고 말한다. "'사인칭'이란 단순히 문법적인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등장인물의 다양한 시각을 포괄하면서 동시에 개별적인 시각의 지평을 넘어설 수 있는 시점"(359쪽)이다. 작가가 꿈꾸는 '사인칭 시점'이 부디 구현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는 12편의 에세이를 통해 문학과 생명(인간과 동물을 모두 포함해서)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가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를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됐는지 이해됐다. 다정함은 서술자뿐 아니라 독자들, 그리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과는 다른 세계관을 인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실은 여러 가능한 모습 중 하나이며, 이 또한 우리에게 영구히 주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105~106쪽

인간의 심오한 능력 중 하나로 우리가 대안의 세계를 창조하고 다른 이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미래를 창조하고, 시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가장 원활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나아가 우리에게 공감을 가르치고,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닮은 존재이며, 또 닮지 않은 존재인지를 알려준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욱 커다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잠시나마 타자의 삶을 살아 보았기에 보다 폭넓은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112쪽

소설은 일부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엘리트 예술이 아니라 기차역이나 호텔, 노점에서 뒹구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예술이어야 한다. 115쪽

독서의 이력이 청춘을 맞은 인간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수는 없다. 116쪽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 책을 읽기 위해서다. 133쪽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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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07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냥반 책, 꾸역꾸역
나오나 보네요.

아직 제대로 읽지를
못했네요.

뒷북소녀 2022-10-07 16:49   좋아요 1 | URL
저는 소설은 한 권 밖에 읽어보지 못해서요...
우리같은 책쟁이들한테 와닿는 구절이 더러 있더라구요.
 
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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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를 이해하려면 있는 그대로 보고, 사유하고, 사랑하라!

한나아렌트센터 선임 연구원인 사만다 로즈 힐이 2021년에 발표한 『한나 아렌트 평전(Hannah Arendt)』은 한나 아렌트의 생을 따라가며 그녀의 저작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그녀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당시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며 자랐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과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자리를 잃어야 했으며, 강제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수용소를 탈출해 뉴욕으로 건너간 아렌트는 미국인 가정의 가사 도우미로 일하면서 영어를 배웠다. 한나는 자신이 경험한 전체주의와 유대인 문제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사상을 펼쳤으며 그로 인해 많은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한나에게 유대인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 문제였다. 한나는 유대인에게 고향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유대 민족 국가 건립은 반대했다. 한나는 유대인 전선을 원했고 여러 국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의 연대를 바랐다. 157쪽

무엇보다 논란이 된 것은 이스라엘에서 열린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고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었다. 그동안 한나는 '악의 급진성(칸트가 최초로 사용한 표현으로,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이 되고자 한다는 뜻을 담고 있음)'을 주장했는데 실제로 아이히만을 보고 나니 악의 급진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평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은 엄청난 오해를 낳았다. 그녀는 이 말에 대해 오해를 풀려고 몇 년 동안 강의와 에세이, 기고문을 통해 해명해야만 했다. 

한 가지 오해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평범이란 단어를 어디에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렇지만 제 말은… 저는 그런 의미로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있다는 뜻, 그러니까 개개인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이 있고 또 뭐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 아니었어요. 전혀요! 이를테면, 제가 어떤 사람과 대화하는데 이 사람이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제 반응은 이래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그러니까 제 의도는 이런 의미였어요. 237~238쪽

재판에서 보여진 아이히만은 바보처럼 보였지만 아이히만은 바보가 아니었다. 단지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상상하는 능력인 포괄적 상상력이 결여"(238쪽) 되어 있었을 뿐이다. 한나는 평생 사유의 힘을 믿었는데, 만약 아이히만이 사유할 수 있었다면 아이히만은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가담한 자들과 저항을 선택한 자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대답은 '사유'였다. 가담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스스로 사유라는 것을 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나은 가치 체계를 가졌거나,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전체주의 이전의 판단 척도를 여전히 따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은 어떤 행위를 저지른 후 지금처럼 평화로울 수 있을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삶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동행'을 거부한 사람들은 스스로 사유한 사람들이었다. 240~241쪽

한나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사유의 힘'을 말하고 싶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악의 평범성'에만 주목하고 정작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것에는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수많은 저작들 가운데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뿐이다. 나는 이 책을 이해하고 싶어서 한나와 아이히만과 관련된 여러 편의 영화를 찾아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한나 아렌트 평전』 한 권을 통해 이렇게 속시원히 해결되다니. 이 책을 발견했을 때 한나 아렌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라 반가웠지만, 그녀가 쓴 대부분의 저작들을 읽지 못한 상태라 그녀를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그저 기우였을 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주저했던 그녀의 다른 저작들도 빨리 읽고 싶어졌다.

그녀 곁에는 늘 논란이 따라다녔다. 그녀가 자신의 사상이 담긴 책들을 발표할 때도 그랬고, 하이데거와의 파격적인 행보가 밝혀졌을 때도 그랬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누구보다도 똑똑해 보이는 그녀가 왜 이런 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일까'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녀의 삶이 이해됐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했을 뿐이라는 것을.

"정치를 논하는 작가는 이 세계를, 인간사가 뒤얽힌 이 세계를 사랑한다."

이 세계를 사랑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혹은 한나의 표현에 따르면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똑바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아모르 문디는 한나가 『인간의 조건』 서문에 적은 "멈추어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구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한쪽으로 비켜서서 균형감과 사유를 위한 고독의 장소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 안에서 자아 성찰의 한 형태를 볼 수 있다. 이 세계를 사랑하려면 먼저 이 세계를 살펴야 한다. 한나에게 그것은 나의 경험을 들려주려면 그 경험과 약간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214~215쪽



한나 아렌트에 대한 최고의 안내서! 이 책에 붙은 찬사들은 진짜였다!




아렌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는 지금, 아렌트의 일생과 사상을 간략히 만나 볼 수 있는 입문서로서, 힐의 『한나 아렌트 평전』은 꼭 필요할 때 출간되었다. 아렌트의 일생과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사유란 곧 역동적인 행위 중 하나임을 알게 된다. 아렌트는 우리와 함께 생각하는 동반자로서, 지금 반드시 읽어야 할 존재다.

_Women's Review of Books


힐은 각 장마다 아렌트 저서의 핵심을 명쾌하게 짚어준다. 아렌트의 저서와 정치사상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힐의 『한나 아렌트 평전』은 최고의 입문서가 될 것이다.

_Spiked


책에 붙은 외국 매체의 찬사를 신뢰하지 않는데 이 책은 진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세기의 한나 아렌트 사상이 왜 지금의 우리에게도 유효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을 통해 하이데거의 행보와 발터 벤야민의 죽음을 알게 돼서 놀라웠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한나의 말대로 우리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눈앞에 놓인 것과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한나가 살던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한나가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은, 이 세상을 끊임없이 새롭게 바라보고, 새로이 한계를 설정하며, 다시 배열하라는 것 그리고 새로운 언어로 새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다.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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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0-0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샀으나 아직
읽지 않았음요.

밑줄이 아주 인상적이네요.

뒷북소녀 2022-10-07 16:48   좋아요 0 | URL
술술 잘 읽히더라구요.
이 책 읽고나니 그동안 겁나서 못 읽었던 아렌트의 다른 저작들도 읽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더라구요.^^
 
마케터로 사는 법
이주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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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중의적인 의미다. 실제로 어떤 물건을 팔기 위해 마케팅을 한다고 하면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 끊임없이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한다. 마케팅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므로 마케팅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런 이유로 여전히 마케팅 관련 책들을 찾고 있다.

『마케터로 사는 법』을 선택한 이유는 저자의 이력 때문이다. 저자는 제일제당 공채 1기로 입사해 28년간 CJ에서 근무했다. 다양한 마케팅 업무를 경험하며 백설팀장, 햇반팀장, 가정간편식 사업부장, 비비고 브랜드 그룹장 상무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밥상을 바꾸는 것은 물론 한식의 세계화를 꿈꾸며 마케터로 일한 저자의 감각과 시선을 엿보고 싶었다.

마케터, 상품기획자의 삶에서부터 조직 생활까지 총 3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아닌데 각 장들 마지막에 Tip으로 간단하게 정리까지 해준다. 누군가에게 상품의 핵심을 전달해야 하는 마케터로서의 습관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현재 그녀는 파이어족이 되었다. 휴가를 계획하던 중, 크리스마스이브에 갑작스럽게 퇴직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예민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만 하고 있을 뿐 어떤 이유로 퇴직을 하게 됐는지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역할이 최정점을 찍었을 때 퇴사하게 됐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28년간 대기업에서 근무한 마케터의 이야기라고 해서 솔깃했었는데, 예상과 달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책이다. 자신의 히스토리를 나열하기만 했을 뿐 마케팅의 핵심이 빠져있다. 그녀의 경력기술서를 아주 긴 책으로 보는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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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문구점 아저씨 - 좋아하는 일들로만 먹고사는 지속 가능한 삶
유한빈(펜크래프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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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취향은 OOO입니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이텀에서 나온 노트를 독서노트로 사용하고 있다. 여러 노트를 써보고 정착한 노트이다. 가격은 착하지 않다. 이 노트를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똑같은 노트를 계속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싫증이 나서 도중에 멈추지 않고 마지막 장까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 년 동안 독서노트를 몇 권이나 쓴다고, 기껏해야 한 권일 텐데 마음에 드는 노트를 한 권 사서 끝까지 사용하는 게 오히려 효율적인 게 아닐까? 종이 쓰레기도 줄이고.

나와 똑같은 생각으로 노트를 사용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우선 반갑고, 게다가 놀랍기까지 하다. 나는 내 취향에 맞는 노트를 찾아 꽤 오랫동안 방황했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노트가 없자 직접 만들어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이 노트를 많이 쓰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필사를 하더라도 노트 한 권을 다 쓰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오래 쓰는 제품인데 조금 아끼자고, 조금 더 벌자고 퀄리티를 포기하기는 싫었다. 112쪽

좋은 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쓰게 되기 마련이다. 180쪽

온라인에서 펜글씨 장인, '펜크래프트'로 더 유명한 저자 유한빈(이니셜은 HB, 문구 덕후가 되기에 딱인 이름이라고.)은 안 팔리면 자신이 평생 쓴다는 생각으로 노트를 만들었다. 진짜 없어서 직접 만든 사람이 여기 또 있다니. 비록 노트 한 권이지만 대충 만들지 않았다. 본인이 두고두고 쓸 작정으로 만들었으니 당연히 신경 썼을 테지만, 게다가 성격까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INTJ란다. 그런데 이 노트를 어디에서 팔까?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문구점에서 판다. 어릴 때부터 "이 담에 크면 문구점 아저씨가 될 거야"라고 말했던 저자가 진짜 '문구점 아저씨'가 된 것이다. 그것도 코로나 시국에, 망원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초등학생은 절대 들어올 일이 없는 분위기의 문구점을 오픈한 것. 저자를 보면서 "좋아하는 일들로만 먹고사는 지속 가능한 삶(이 책의 부제다)"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역설적으로 손글씨를 쓰지 않는 요즘이 손글씨가 가장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손글씨는 한번 연습해 놓으면 평생 써먹을 수 있을 만큼 가성비가 좋다. 171쪽

그 역시 처음부터 예쁘게 글씨를 썼던 것은 아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몽블랑 만년필을 사서 글씨를 썼는데 그의 글씨는 몽블랑 만년필의 품격에 걸맞지 않은 초등학생 글씨 그 자체였던 것. 만년필과 어울리는 품격 있는 글씨를 쓰기 위해 여러 책들을 보면서 연습해서 만든 글씨가 지금의 글씨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씨 쓰기 강연도 하고 유튜브도 하는데, 글씨 쓰기를 통해 번 돈으로 문구점을 차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그의 삶은 덕업일치가 아닌가.

좋아하는 게 비슷해서인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나는 책을 읽어야 해서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데, 내가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을 들으면 책을 읽곤 했다. 그런데 저자는 나와 똑같았다. 이렇게 똑같다니, 정말 신기할 정도다. (저자는 INTJ, 나는 ISTJ인데 말이다.)

음악을 들으며 글씨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일을 못한다. 우리의 뇌는 음악 청취와 작업을 빠른 속도로 왔다 갔다 하는 거지 동시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214쪽

이어폰은 끼고 있지만 음악은 켜지 않는다. 그냥 귀마개의 역할을 할 뿐이다. 231쪽

스프링 노트는 음, 일단 못생겼다. 173쪽

어쩌다 읽게 된 책인데, 이 책을 몰랐다면 정말 아쉬울 뻔했다. 기회가 된다면 그가 운영하고 있는 동백 문구점도 한번 방문해 보고 싶고, 그가 했던 것처럼 김훈 작가의 소설을 다시 한번 필사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가 소개했던 펜들은 이미 사서 사용하고 있다.) 솔직히 다음 에세이가 기다려진다. 그런데 문구점 이름이 왜 '동백'일까?

여러분도 인생 책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써보는 경험을 살면서 꼭 한 번은 해봤으면 좋겠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책의 새로운 면모까지 보게 될 것이다. 뿌듯함은 덤. 200쪽

필사를 하면 구사 가능한 어휘가 다양해져 어휘력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문장력이 향상된다. 또 손으로 쓰면 기억에 오래 남고, 천천히 읽게 되니 눈으로 읽었을 때 놓쳤던 부분을 자세히 보게 된다. 따라서 심오한 의미가 담긴 문장을 필사를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211쪽

중요한 내용이 담긴 노트는 그 사람만의 보물이 된다. 179쪽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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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2-06-28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이텀 좋죠!!

뒷북소녀 2022-06-28 14:22   좋아요 1 | URL
왜 그동안 스타벅스 다이어리에 집착했는지 모르겠어요.
시즌마다 바뀌는 디자인, 정말 싫었거든요.
이제 로이텀으로 깔맞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보물선 2022-06-28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겉모습도 보고 싶어요.

뒷북소녀 2022-06-28 14:24   좋아요 1 | URL
지금 사용하는 노트가 이제 3페이지 밖에 남지 않아서 조만간 독서노트에 대한 포스팅을 올릴 예정입니다.
기다려주세요, 제발~~~~~~~~~~~ㅋㅋㅋ

보물선 2022-06-2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 개정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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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가 예술가의 부드러운 손놀림이라면, 도스토옙스키는 한낱 클럽에서의 주먹질에 불과하다!

러시아 문학 작품 소개들을 읽다 보면 종종 나보코프의 평들과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 아주 짧게 실려 있어서 어떤 이유로 그런 평가를 내렸는지 궁금해서 찾다가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발견했지만 절판돼서 아쉬웠는데 개정판이 나왔다.

189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나치 정권을 피해 1940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나보코프는 1941년부터 대학에서 유럽과 러시아 문학 강의를 했고, 1955년에는 『롤리타』를 발표했다.

『러시아 문학 강의』는 당시 나보코프가 러시아 작가들에 대해 강의했던 강의록 필사본 중 일부를 실은 것으로, 러시아 작가 6명(니콜라이 고골 1809~1852, 이반 투르게네프 1818~188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1821~1881, 레프 톨스토이 1828~1910, 안톤 체호프 1860~1904, 막심 고리키 1868~1936)의 작품 세계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신랄한 분석과 비평을 담고 있다.


'러시아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 그 개념 자체에 대해 비러시아인들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대여섯 명의 위대한 작가들이 배출되었다는 사실을 우선 떠올린다. 산문뿐 아니라 번역 불가한 시인들까지 포함시키는 러시아 독자들에게는 그 범주가 더 확장되지만, 이들 역시 러시아 문학이라고 하면 눈부신 대작들이 탄생한 19세기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하면, '러시아 문학'은 최근의 사건이다. 게다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러시아 문학을 이미 완성되고 종결된 것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지난 40년간 소비에트 체제 아래에서 보잘것없는 주변 문학들만 만들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27쪽

보통 '러시아 문학'은 19~20세기의 몇몇 작가로 대표된다. 다른 나라 문학에 비해 역사도 짧고 폭도 좁은 것처럼 보인다. 나보코프는 본격적으로 강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러시아 작가, 검열관, 그리고 독자」를 통해 왜 이런 오해가 빚어지게 됐는지 언급한다. 다른 나라 문학들은 몇 세기에 걸쳐서 발전해 왔지만, 러시아 문학은 그런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됐다. 늦게 시작했지만 아주 빠른 속도로 오래전 서구 국가들이 이루었던 문화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소비에트 체제가 시작되면서 러시아 문학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소비에트 정부는 40년간의 절대 통치 기간 동안 예술에 대한 통제를 놓은 적이 없었다. 나보코프는 "19세기 예술가의 혼을 앗아 가려 했던 세력, 소비에트 경찰국가가 예술에 가한 압박은 안타까움보다는 혐오를 자아낸다(45쪽)"며 "21세기의 러시아가 지금보다는 더 매혹적인 나라가 되어 있기를 기대한다(12쪽)"고 썼다. 현재의 러시아가 그의 기대만큼 매혹적이지 않다는 걸 그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아쉬워할까?

이 책에 실려 있는 6명의 작가들(니콜라이 고골, 이반 투르게네프,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레프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막심 고리키)에 대한 나보코프의 평은 고르지 못하다. 나보코프는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를 순서(1위 톨스토이, 2위 고골, 3위 체호프, 4위 투르게네프)대로 꼽고 있는데 충격적이게도 이 순위에 도스토옙스키는 없다. 나보코프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무려 163쪽에 걸쳐 분석하고 있는데, 그는 안나를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으로 꼽기도 했으며 작품 자체는 별로 대단치 않다고 평가한 조지프 콘래드를 어이없는 망언을 한 사람으로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톨스토이를 향한 그의 애정(편애)은 책 전반을 통해 드러나지만, 반대로 "도스토옙스키는 위대한 작가는 아니다. 훌륭한 유머가 번득이긴 하나 문학적 진부함이라는 황량함을 지닌 평범한 작가에 불과(196쪽)" 하며 감상주의자라고 비판했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읽고 나서 톨스토이의 글들이 좀 더 내 성향과 맞다고는 생각했지만 이토록 신랄한 비판이라니. 그것도 미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아직 낯선 자국의 대작가를 소개하는 강연에서 말이다.

문학, 진정한 문학은 심장이나 뇌(영혼의 위라고 할 수 있는)에 좋다는 물약 삼키듯 단숨에 들이켜 버리면 안 된다. 문학은 손으로 잘게 쪼개고 으깨고 빻아야 한다. 그래야만 손바닥의 오목하게 파인 가운데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향을 음미할 수 있다. 그것은 아삭아삭 씹어서 조각난 상태로 혀 속에서 굴려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가진 진귀한 향기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부서지고 쪼개진 부분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하나로 통일되면서 당신이 다소간이나마 자신의 형기를 투자한 그 작품 전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208~209쪽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이 낯선 미국 대학생들을 위해 해당 문장들을 언급하며 아주 디테일하게 작품을 분석하고 있는데, 이런 분석적인 해설은 아마도 그가 문학 작품들을 단숨에 읽지 않고 잘게 쪼개고 아삭아삭 씹어서 오랫동안 음미하는 방식으로 읽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러시아 문학처럼 방대한 분량의 작품들을 읽을 때는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읽기보다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약을 삼키듯이 단숨에 읽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려면 통독을 한번 한 뒤에, 나보코프처럼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러시아 문학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보코프의 분석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나보코프는 본인이 활동했던 시기의 러시아 문학 작품들은 소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시절을 대표하는 작품들은 대부분 나보코프처럼 해외 망명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의 전성기가 또다시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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