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받을 용기 2부작 북케이스 세트 - 전2권 (10주년 한정판) 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전경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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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프로이트 이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강하게 반박하고 싶다. 지금 우리의 마음 상태가 불안한 이유가 모두 트라우마 때문이고, 어릴 때 당했던 학대나 어떤 기억 때문이라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더이상 이런 류의 상담은 듣고 싶지도 않다.

이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아들러가 프로이트, 칼 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심리학의 3대 거장'인 줄 몰랐다. 프로이트가 싫어서 심리학을 피했던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 이 책은 아들러의 사상을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라는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원인론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현재의 목적을 위해 행동한다는 목적론을 제시한다.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은 변할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겪고 있는 심리적인 어려움들이 프로이트처럼 과거의 일 때문이 아닌 지금의 나 때문에 생기는 일이므로 지금의 나를 바꾼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들러를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심리학을 멀리하지는 않았을텐데.


국내 200만부판매 기념으로 스페셜 에디션이 나왔다. 전 세계에서 1000만 부나 팔린 베스트셀러라니.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 형식으로 쉽게 풀어쓴 것이 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요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권에서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고, 2권에서는 3년 뒤 찾아온 청년에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 설 수 있다며 자립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두 권 모두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짚고 있다. 결국 모든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고, 선택의 문제이다. 미움이든, 사랑이든, 용기가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 용기를 내보라!


우리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라는 주관에 지배 받고 있고, 자신의 주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네. 지금 자네의 눈에는 세계가 복잡기괴한 혼돈처럼 비춰질 걸세. 하지만 자네가 변한다면 세계는 단순하게 바뀔 걸세. 문제는 세계가 어떠한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떠한가 하는 점이라네. _ 1권 19쪽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 그것이 인생의 과제네. _ 1권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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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8 - 차이콥스키, 겨울날의 찬란한 감성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8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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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처럼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감성의 소유자라 오히려 좋아!

『난생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은 "연주회에서 누구보다 먼저 당당하게 박수 치고 싶었던 당신, 한 번쯤은 교향곡을 제대로 감상해 보고 싶었던 당신, 클래식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악보만 보면 머리가 아픈 당신, 듣고 나서 "좋다" 말고 다른 표현을 해보고 싶었던 당신,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 왠지 마음이 술렁이는 사람을 위한 책"을 표방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서울대학교 작곡과에서 음악 이론을 전공하고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프랑스 음악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민은기 교수로,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책을 가장 많이 낸 음악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고 한다.

『난생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의 8번째 음악가는 '겨울날의 찬란한 감성'을 오케스트라 선율로 표현해 낸 러시아 대표 작곡가 차이콥스키다.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이 워낙 유명해서 직접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도 대중가요나 광고 등을 통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차이콥스키의 음악뿐 아니라 그보다 덜 알려진 그의 개인사와 러시아 음악사까지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법학을 전공한 차이콥스키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웠고, 유리처럼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감성의 소유자였다. 덕분에 우리는 귀 호강을 하고 있지만 차이콥스키 개인에게는 행복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작곡가의 길을 걷던 차이콥스키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콜레라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오를로바라는 음악학자는 '명예 법정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법률학교 동문들이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동성애자인 차이콥스키에게 자살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최후의 걸작을 먼저 완성한 뒤에 죽겠다고 약속하고서 <교향곡 6번>을 초연하자마자 비소를 먹고 죽었다는 게 오를로바의 주장이다. 이 비소를 복용했을 때의 증상이 콜레라 증상과 비슷하다고 한다.

클래식 불모지에서 태어나 세계 최고의 음악가로 꼽혔던 차이콥스키가 죽은 후 러시아 음악계는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러시아는 이전의 러시아가 아니었다. 음악원을 통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꾸준히 한 덕분에 차이콥스키 사후에도 러시아 음악은 계속 성장할 수 있었고, 그의 두를 잇는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계속 등장했다. 뛰어난 기교를 가진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해 스크랴빈,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예프, 쇼스타코비치, 하차투리안이 바로 그들이다.

『난생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은 음악을 바로 찾아 들을 수 있는 QR코드, 사진과 그림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서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읽힌다는 것. 심지어 독자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 봐 각 챕터마다 요약한 필기노트도 실려있다. 책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까지 할 수 있다. 이토록 쉽고 친절한 책이라니! 전 시리즈를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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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연극 을유세계문학전집 130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이 지음, 홍재웅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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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나는 시도해 보았다!

만약 이것이 실패한다면, 그때가 다시 시도할 때일 것이다! _ 31쪽

『꿈의 연극』은 '스웨덴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대표작 가운데 두 작품을 묶은 책이다.

「미스 줄리」는 '자연주의'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으로, 당시 보수적이었던 스웨덴 사회가 이 작품의 상연을 허용하지 않아 초연은 파리에서 이루어졌다. 연극의 무대는 하지절 전야, 백작의 부엌이다. 백작의 딸 '미스 줄리'가 하인 '장'과 요리사 '크리스틴' 사이에 끼어든다. 하지절 파티 때 장은 크리스틴의 춤 파트너가 되어주기로 약속했는데, 미스 줄리가 자신의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제안한다. 장은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을 걱정하지만 미스 줄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장에게 플러팅을 보낸다. 장은 미스 줄리의 플러팅을 사양하는 척하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다. 미스 줄리를 처음 봤을 때 사랑에 빠졌으며 죽을 결심까지 했다고 말이다.

사람들이 백작의 부엌으로 몰려오자 미스 줄리는 장의 방으로 몸을 피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이 벌어진다. 다음날 새벽, 미스 줄리를 취한 장의 태도가 돌변한다. 미스 줄리 역시 돌변한 장의 태도에 당황한다. 자신이 모시던 미스 줄리와 장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눈치챈 크리스틴은 더 이상 존경할 수 없는 주인을 모실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하지절은 스웨덴의 전통 명절로, 젊은 미혼 여성이 하지절 전야에 아홉 종류의 꽃을 꺾어서 베개 밑에 넣고 자면 꿈속에서 자신의 미래 배필감을 보게 된다는 전설과 함께 에로틱한 의식이 행해지는 날이라고 한다.

이렇게 에로틱한 의식이 행해지는 날, 신분이 다른 두 남녀(심지어 그들은 꿈도 상반된 꿈을 꾼다)가 서로를 희롱하고 농락했으니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미스 줄리 : 가끔 꾸는 꿈이 있는데 지금 그 꿈이 생각나ㅡ기둥 위에 올라가 앉았는데, 내려갈 방법이 없는 거야. 아래를 보면 아찔해. 내려가야 되는데, 뛰어내릴 용기는 없어. 더 이상 내가 있는 그곳에 있을 수가 없어. 너무 뛰어내리고 싶어. 근데 그게 안 돼. 내려가기 전까진 안식도 없고, 쉴 수도 없어. 내려갈 수만 있다면 날 땅에 묻어 버리고 싶은데 …… 이런 거 혹시 알아?

: 아뇨! 전 어두운 숲속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누워 있는 꿈을 종종 꿔요. 거길 기어오르고 싶어요. 오르고 올라서,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햇빛이 찬란한 경관을 둘러보고, 새 둥지에 있는 황금 알을 훔쳐 보고 싶어요. 전 올라가고, 또 올라가는데 나무는 너무 굵고 미끄럽고, 첫 번째 가지까진 아직도 멀었어요. 첫 번째 가지에만 닿을 수 있다면 꼭대기까지는 사다리 오르는 것처럼 수월하리라는 걸 압니다. 아직 거기 닿진 못했지만, 전 언젠가 그곳에 오를 겁니다. 비록 꿈속에서라도요.

_「미스 줄리」, 48쪽




표제작 「꿈의 연극」은 스트린드베리가 가장 사랑한 작품이자, 연출가라면 누구나 꿈꾸어 보는 작품이라고 할 정도로 어려우면서도 많은 가능성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인드라(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삼주신인 브라흐마, 비슈뉴, 시바를 제외하면 신화 내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신으로 인도 신화에서 신들의 왕으로 불린다.)의 딸이 '사람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가장 어둡고 무거운 땅인 지구로 내려와 경험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드라는 딸에게 사람들의 불평을 듣고, 그들이 비통해하는 이유와 원인도 알아보라고 한다. 인드라의 딸은 '자라나는 성'에서 장교를 구해주고, 변호사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이혼한다. '사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시인'을 만나서 '꿈'과 '시'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에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각자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불에 태워 버린 후 퇴장한다. 인드라의 딸은 신발을 벗어 불속에 넣는다. 이제 사람들의 고통을 모두 들여다보고 경험했기 때문에 여행을 끝낼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작가는 「꿈의 연극」을 "일관성이 없지만 논리적으로 보이는 꿈의 형태"를 모방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작품이 완성된 것은 1901년인데, 1900년에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나왔다. 제목에서부터 그들이 말하는 꿈의 특성까지 유사성이 보인다.

프로이트는 "꿈은 일관성이 없고, 가장 큰 모순을 쉽게 조정하며, 불가능한 것을 허용하고, 당대의 영향력 있는 지식을 제쳐두고, 우리가 윤리적, 도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라고 설명한다.

_「해설」, 241쪽

시인 : 전에도 이런 경험을 한 것 같아요…….

딸 : 저도요!

시인 : 꿈을 꾼 걸까요?

딸 : 아니면 시를 쓴 건지도요, 어쩌면!

시인 : 시를 쓴 건지도요!

딸 : 그러면 당신은 시가 무엇인지 알겠군요!

시인 : 나는 꿈이 무엇인지 알아요!

딸 : 전에 우리가 다른 곳에 서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시인 : 그러면 현실이 무엇인지 곧 알아낼 수 있어요!

딸 : 아니면 꿈!

시인 : 아니면 시!

_「꿈의 연극」, 쪽

'스트린드베리'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 수도 있는데, 우리에게 낯선 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해 소개하는 것이 <을유세계문학전집>의 매력이다. 고전의 멋스러움을 더하는 브라운 톤의 표지 디자인은 덤이다. 앞으로도 <을유세계문학전집>을 통해 다른 세계문학전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작품들을 볼 수 있기를 응원한다.

✎ 밑줄긋기

인생이 그렇지!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행하면 항상 추한 것이 옆에 있고…… 무언가 선함을 행하면, 다른 사람에겐 유해하지. _「꿈의 연극」, 115쪽

인간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대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_「꿈의 연극」, 176쪽

모든 인생은 재연일 뿐이에요……. _「꿈의 연극」, 177쪽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요? _「꿈의 연극」,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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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암실문고
마리아 투마킨 지음, 서제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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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교만한 우리에게!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가끔 자신의 고통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이다. 과연 이해할 수 있다, 공감한다, 이런 말을 감히 건네도 되는 건지. 혹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줘도 되는 건지.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은 내가 의문을 품고 있던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자 마리아 투마킨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고통이 가지고 있는 성질 때문이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정돈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한다.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누구라도 자신의 고통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고통에 대해 가지런히 정리해서 전달한다면 냉정한 사람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겪은 고통을 문장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읽다 보면 이야기가 뒤죽박죽 섞여 있어 집중이 되지 않고,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해서 산만하고 당황스러운데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고통스러운 경험을 듣게 된다면 바로 그런 식으로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문장 자체가 고통 역시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 아닐까.


저자 마리아 투마킨은 현재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소련 하르키우에서 태어나 10대 때 가족들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했다.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인간 내면의 수수께끼 같은 측면을 함께 탐구하며 그 과정을 독특한 산문으로 풀어내는 것으로 주목받았다.




<암실문고>는 '서로 다른 색깔의 어둠을 하나씩 담아 서가에 꽂아 두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암실문고> 시리즈는 처음인데 저자의 문장만큼 디자인이 독특하다. 처음에는 컨셉인 줄도 모르고 인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 깜짝 놀랐다. 이것 역시 의미가 있는 컨셉일까? 이를테면 희미했던 일들이 일련의 작업들을 통해 선명해진다는 그런 의미일까.


인간들은 자신의 고통을 가지고 무엇을 할까? 그 고통이 참을 수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모든 선택지가 사라져 버리는 순간은 언제 찾아올까? 철조망 속에 갇힌 상황에서는 어디로 움직여야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_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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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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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소설가이면서 여러 작품을 번역해서 발표한 번역가이다.

그가 처음으로 번역한 책은 피츠제럴드의 소설집 마이로스트시티였고, 몇 권의 소설집을 엮어 낸 후에 장편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번역했다. 내가 피츠제럴드와 개츠비를 알게 된 것도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를 통해서였다. 이 소설에는 개츠비를 애정하는 인물이 한 명 등장하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개츠비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이야기하듯이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10월의 일이었다.


나가사와 선배는 잘 알면 알수록 묘한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기이한 사람과 만나고, 서로 알고, 스쳐 지나왔지만, 그처럼 기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아직 없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은 따라잡을 수도 없을 정도의 굉장한 독서가였는데, 죽어서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책에는 원칙적으로 손도 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 책 외에는 신용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현대 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야. 다만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걸 읽느라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지. 인생은 짧아."


_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58~60쪽



나의 책읽기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후부터 달라졌다. 나 역시 이전에는 현대문학을 신뢰하지 않았고, 특히 고전이 아닌 외국 현대문학은 읽지 않았는데 이때부터 기준이 달라져서 읽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작가의 오후에는 하루키가 고른 8편의 단편소설과 5편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이 조합을 어떻게 안 읽을 수가 있을까. 나는 이 조합 자체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좋아하는 작가를 향한 애정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든, 번역을 통해서든 맘껏 뽐낼 수 있는 하루키가 부럽다. 


✏️

이 책을 위해 내가 고르고 옮긴 작품은 주로 그가 말 그대로 '자기 몸을 축내며' 살았던 암울한 시대에 내놓은 작품들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깊은 절망을 헤치고 나아가려는, 그리고 어떻게든 희미한 광명을 움켜쥐려는 긍정적인 의지가 줄곧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피츠제럴드의 작가로서의 강인한 본능일 것이다. 자기 연민이나 자기기만을 능가하는 힘을 지닌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생각을 이 책에 수록된 작품에서 독자가 느끼고 읽어낼 수 있다면, 번역자로서 이보다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_ 하루키,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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