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콜라보에디션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그녀는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대신 싸워달라고 남자 형제에게 부탁할 이유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우리 나라는 온 역사를 통틀어 나를 노예로 취급해 왔다. 우리 나라는 나를 교육시켜 주지 않았고, 그 자산의 조그마한 몫도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는 내가 외국인과 결혼하면 더 이상 '우리' 나라가 아니다. '우리' 나라는 나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을 나에게 허용하지 않으며, 나를 보호하도록 매년 막대한 금액을 다른 사람에게 지급하도록 강요하고, 그러면서도 나를 보호할 능력이 없어서 벽 위에 공습경보를 써놓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고 주장한다면, 이성적으로 진지하게 이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당신은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성적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내가 공유하지 못했고 아마도 공유하지 못할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싸우는 것이지, 나의 본능을 충족시키거나 나 자신 또는 나의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아웃사이더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사실, 여성으로서 나에게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나는 어떤 나라도 원하지 않는다. 여성으로서 나의 나라는 전 세계이다." -<3기니> P.348




20여년 전쯤에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오랜시간에 걸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의 내용은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하게 동성애 코드에 대한 느낌이 남아있다. 그리고 매우 지루하게 읽었던 기억. 그 기억 때문에 <자기만의 방>으로 너무나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를 여태 읽지 않고 미뤄두었다.


그렇게 뒤늦게 만난 버지니아 울프는, 익히 듣고 보아 알고 있는 유명한 문장,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를 <자기만의 방>에서 피력하는데, 자신이 아버지나 남편에게 혹은 다른 누구에게도 돈을 구걸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자기에게 꼬박꼬박 정기적인 수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힌다. 숙모님의 유산으로 고정된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에, 아부하거나 아양을 떨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는 거다.


이 명징하고 놀라운 통찰은, 이 책의 바로 뒤에 실린 <3기니>에서 더 날카로워지고, 더 분석적이 되고, 더 뚜렷해지며, 더 강해진다.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고,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썼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이 가질 수 없었던 것,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충분한 자료를 조사해 근거를 댄다. 그녀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박탈되어 있었다는 것, 이제야 비로소 '조금' 열렸다는 것, 그러나 그것조차도 학위로 인정해주는 건 모두의 반대로 인해 무산되고, 그래서 전문직을 가질 수 없다는 것까지. 교육받은 남성의 아들들이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서 돈을 쌓아갈 때 여자들은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갈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일절 임금이 주어지질 않는다. 결혼해서 남편이 버는 돈은 어차피 아내랑 같이 쓰는 돈이다, 남편의 돈이 아내의 돈이다, 라는 허울좋은 명목은 그 현금의 실체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무가치한 것이 된다. 만약 그 절반이 정말 아내의 돈이라면,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 아내의 손에 쥐어줘야 할 것이다.



남자들이 신문기자가 될 때, 법관이 될 때, 종교인이 될 때, 증권거래인이 될 때, 그래서 계속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쌓고 죽을 때까지 돈을 남길 때, 여자들은 가난하다가 가난하다가 가난하다가, 돈 한푼 없이 죽음을 맞는다. 이에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똑같이 주어야 하고, 직업의 기회 역시 똑같이 주어야 하며, 그 임금 역시 똑같이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금없는 노동인 아내와 엄마 그리고 딸에 머물러 있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때 돈을 남기는 것이 이미 죽은 자신에게 무슨 소용이겠느냐마는, 내가 돈을 남길 수 있다는 것과 남길 돈이 없다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자, 여자들의 교육을 얼마나 반대해왔는지, 여자들에게 허락한 교육비는 남자들에게 허락된 것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내가 보여줄게 잘 봐봐. 종교가 여자를 얼마나 박해했는지, 여자가 들어오기를 얼마나 막고 있는지, 그러면서 자기들은 얼마나 많을 가져가고 있는지 잘 봐. 여자들이 직업을 좀 가지려고 하면 남자들이 어떻게 반대했는지 잘 봐, 내가 알려줄게. 니네가 여자들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자 봐, 내가 알려줄게. 버지니아 울프는 전기문을 비롯한 숱한 책들과 신문기사들을 가져오면서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댄다. 도대체 이 책들을 언제 다 읽은걸까, 그리고 얼마나 읽은 걸까. 그녀가 <3기니>를 쓰기 위해 벼르고 찾은 것일까, 아니면 책을 읽을 때마다 밑줄 긋고 메모했던 것일까. 이 논리적인 글을 읽노라니 당연히 갖게 되는 의문인데, 책 말미의 <작품해설>을 보면 3기니를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준비한 시간이 10년이라고 되어 있었다.



『3기니』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텍스트이고 이 에세이에서 표명된 급진적인 정치적 입장 때문에 페미니스트 비평가들도 불편함을 드러내곤 했지만, 울프에게는 진지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여성의 사회적 ·문화적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 십여 년간 울프는 역사, 회상록, 전기, 이론서, 보고서, 일간신문 등을 광범위하게 읽으며 부단히 탐구했고, 그 연구의 결과가 바로 이 에세이로 집약된 것이다. -이미애, <작품해설> 中




버지니아 울프, 하면 <자기만의 방>으로 알려져 있지만, 나는 이 책 한권에 실린 <자기만의 방>과 <3기니>를 연달아 읽으니, <3기니>가 훨씬 좋았다. 왜 다들 자기만의 방 얘기를 하지, 여기 이렇게 놀라운 3기니가 있는데? 게다가 위에 인용한 문장에 있는, '여성으로서 나에게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를 읽을 때는 정말이지 소름이 쫙 돋았다.


아, 정말 놀랍지 않은가. 1882년에 태어난 여성이, 여성에게 교육이 허락된지 20년도 안된 즈음에 이런 글을 써냈다는 것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고, 고전이 되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앞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책장도 따로 한 칸 마련해야겠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들도 하나씩 하나씩 다 읽어보겠어. <3기니>를 읽는 건 매우 짜릿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3기니>는 정말이지, 강력하게 추천한다.



마침 <자기만의 방>으로 센스있는 사진을 찍어보았기에 거침없이 올려본다.


(자기만의 방 &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방 & 쓰리 에이스)






덧. 아래 인용문은 모두 <3기니>에서.



삼 년의 세월이란 편지에 답장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기에는 긴 시간입니다. - P175

우선,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누구나 본능적으로 그리듯이, 편지를 받을 사람의 스케치를 그려보도록 합시다. 편지의 저편에서 숨 쉬고 있는 따뜻한 사람이 없다면 편지란 무가치한 것이니까요. - P176

언제부터 교육받은 남성이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여성의 견해를 물어보았습니까? - P176

양성은 여러 가지 본능들을 다소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여성이 아닌 남성의 습관이었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습성이든 우연히 습득된 것이든 이러한 차이는 법과 관행으로 더욱 발전되어 왔습니다. 역사상 인간이 여성의 소총에 맞아 쓰러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새와 짐승을 살해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었지요.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 P181

이제 교육받은 남성의 딸은 이전에 지녔던 영향력과는 다른 영향력을 수중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것으 ㄴ위대한 레이데 세이렌의 영향력이 아닙니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투표권이 없었을 때 발휘했던 영향력도 아니지요. 또한 투표권은 있었지만 생계비를 벌 수 있는 권리가 없었을 때 발휘했던 영향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릅니다. 매력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영향력이기 때문입니다. 돈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영향력이기 때문이지요. 여성은 더 이상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게서 돈을 얻기 위해 애교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이 그녀에게 재정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견해를 표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종종 무의식적으로 상황에 따라 경탄과 혐오감을 표현했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녀는 순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판할 수 있지요. 마침내 그녀는 공평무사한 영향력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 P198

여성에게 의복의 용도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지요. 몸을 감싸주는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 의복은 다른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당신의 성에게서 찬사를 이끌어내는 것이지요. 1919년-채 이십 년도 지나지 않은-까지 여성에게 개방된 유일한 직업이 결혼이었기에, 여성에게 의상의 중요성이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의상과 여성의 관계는 소송 의뢰인과 당신의 관계와 같습니다. - P203

그러나 고도로 정교한 당신의 의상은 분명 다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벌거숭이를 감싸고 허영심을 충족시켜 주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그 의상을 입는 사람의 사회적, 직업적, 지적 지위를 선전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초라한 비유를 너그러이 봐주신다면, 당신의 의상은 식료품 가게의 꼬리표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건 마가린이다, 이건 순수한 버터다, 이건 시장에서 제일 좋은 최고 품질의 버터다."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다-그는 석사다. 이 사람은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다-그는 박사다. 이 사람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그는 메리트 훈장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기묘하게 여겨지는 것은 당신 의상의 이러한 기능, 즉 선전 기능입니다. 성 바울로의 견해에 따르면, 그러한 선전 행위는 적어도 우리 성에게는 어울리지 않고 정숙하지 않은 행위입니다. - P204

법 또는 사업, 종교 또는 정치와 관련하여 어떻게 우리가 진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아직도 많은 문들이 닫혀 있고 아니면 기껐해야 조금 열려 있으며, 우리의 배경에는 자본도 세력도 없는데 말입니다. 우리의 영향력이란 표면에서 그치고 말 듯합니다. - P209

버닛 주교는 교육받은 남성의 누이들이 교육을 받으면 그릇된 기독교 종파 즉 로마 가톨릭이 부흥할 거라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그 돈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고, 그 대학은 결코 설립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사실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이러한 사실들은 양면성을 입증합니다. 즉 교육의 가치를 입증하지만 또한 교육이 결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교육은 모든 상황에서 좋은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것도 아니지요.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만,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만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영국 국교에 대한 믿음을 낳는다면 좋은 것이고, 로마 교회에 대한 믿음을 낳는다면 나쁜 것이지요. 그것은 한 성에 그리고 어떤 직업에는 좋은 것이고, 다른 성에 그리고 다른 직업에는 나쁜 것이지요. - P215

시험에 통과한 여성이 스스로를 B.A.(학사)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은 "더없이 확고한 반대에 맞닥뜨렸다. ……투표 당일에 학내에 거주하지 않는 학자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1,707대 661의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었다. 투표 참여자 수가 이에 버금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 평의원회는 투표가 끝난 후 일부 학부생들의 행동이 유례없이 유감스럽고 불명예스러웠다고 발표했다. 많은 학생들이 평의원 회관을 나와 뉴넘으로 가서 초대 학장인 클러프양을 기념하여 세워진 청동 문을 부서뜨렸다. - P221

한 세계에서 교육받은 남성의 아들들은 공무원, 판사, 군인으로 일하고 그 일에 대한 보수를 받습니다. 다른 세계에서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은 아내, 어머니, 딸로 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에 대한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머니, 아내, 딸의 노동은 화폐로 환산해 볼때 국가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걸까요? 이 사실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너무 놀라운 것이라서 우리는 그 완벽한 휘터커에게 다시 한 번 문의하여 확인해야 합니다. 그의 책을 다시 찾아보기로 합시다. 그 책장들을 모두 넘기고 다시 넘겨봅니다. 믿을 수 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합니다. 이 모든 직업들 가운데 어머니의 직위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 모든 급료들 가운데 어머니의 급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주교의 업무는 국가에 연간 만 5000파운드의 가치가 있습니다. 판사의 업무는 연간 5,000파운드의 가치가 있지요. 사무차관의 업무는 연간 3,000파운드의 가치가 있습니다. - P261

육군 대위, 해군 대위, 기병, 하사관, 경찰, 우편집배원- 이 모든 직무는 세금에서 나오는 급료를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온종일 일하는 아내, 어머니, 딸 들의 노동은 전혀 보수를 받지 못합니다. 그들의 노동이 없다면 국가는 붕괴하여 해체되고, 그 노동이 없다면 당신의 아들도 존재 하지 않을 텐데요.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 P261

대의명분과 유흥과 자선 행위에 그녀가 지출하는 비용은 매년 수백만 파운드에 이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금액의 대부분은 그녀가 누리지 못하는 즐거움에 지출 되었지요. 그녀는 자신의 성이 출입 금지된 클럽에, 자신이 말을 타지 않는 경마장에, 자신의 성이 배제된 대학에, 수천 파운드에 수천 파운드를 내놓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마시지 않은 포도주와 자기가 피우지 않은 시가의 청구서에 매년 막대한 돈을 지불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교육받은 남성의 아내에 대하여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오직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그녀가 더없이 이타적인 존재라서 공동 자금의 자기 몫을 남편의 오락과 명분에 쓰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감탄스럽지 못하지만 더욱 가능성이 높은 두 번째 결론은 그녀가 더없이 이타적인 존재가 아니라, 남편 수입의 절반의 몫에 대한 그녀의 정신적 권리가 점차적으로 소멸하여 실제로는 식사, 잠자리 및 용돈과 옷을 사기 위해 매년 받는 푼돈으로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 P264

첫 번째 사실은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그들의 공적 봉사에 대해 공공 기금에서 받는 보수가 대단히 적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이 사적인 봉사에 대해서는 공공기금에서 전혀 보수를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세번재는 남편의 수입에서 그들의 몫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혹은 명목상의 몫이며, 아내와 남편 둘 다 옷을 차려입고 음식을 먹은 다음 명분과 유흥과 자선 행위에 쓸 수 있는 잉여 자금은 기이하게도 남편이 즐기고 인정하는 명분과 유흥과 자선 행위 쪽으로 명백히 이끌려 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급료를 받는 사람이 그 급료를 쓸 용도를 결정할 실제적 권리를 가진 듯합니다. - P266

우선, 우리의 잠재적 원조자 범주에서 결혼이 직업인 대규모의 집단을 배제해야 한다는 점이 명확해집니다. 그것은 보수를 받지 못하는 직업이고, 남편 급료의 절반에 대한 정신적 몫은 실제적 몫이 아님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자적 수입에 입각한 공평무사한 영향력은 제로입니다. - P266

어느 신문의 어느 호에 교육받는 남성 셋이 죽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119만 3251파운드를 남겼고, 다른 사람은 101만 288파운드를 남겼으며, 다른 사람은 140만 4132파운드를 남겼습니다. 당신도 인정 하시겠지만 이것은 민간인이 모으기에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우리도 그들처럼 그 금액을 모아서는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 P281

공직이 우리에게 개방되었으므로, 우리도 연간 1,000파운드에서 3,000파운드를 버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법조계가 우리에게 개방되었으므로, 우리도 판사로서 연간 5,000파운드를 벌 수 있으며 법정 변호사로서 연간 4만 또는 5만 파운드를 버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교회가 우리에게 개방되면, 우리는 매년 만 5000, 5,000, 3,000파운드의 급료를 받고 그와 더불어 관저와 지방 부감독 관구를 받을 것입니다. 증권거래서가 우리에게 개방될 때 우리는 피어폰트 모건이나 록펠러처럼 수백만 파운드를 소유한 백만장자로 죽을 것입니다. - P282

우리가 전문직에 종사하기만 하면 이 모든 부는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길로 모여들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연간 30파운드 내지 40파운드를 현금으로 받고 덤으로 식사와 잠자리를 현물로 제공받는 가부장제의 희생자에서 연간 수천 파운드의 소득을 올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챔피언으로 우리의 지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현명하게 투자하면 우리가 죽을 때쯤 수백만 파운드라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금액을 소유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이것은 가히 매혹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입니다. - P282

만약 남성이 외국의 지배로부터 영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녀는 자신에게 ‘외국인‘이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녀가 외국인과 결혼하면 법적으로 그녀는 외국인이 되니까요. 그러면 그녀는 강요된 우애가 아니라 인간적 공감에 의해서 명실공히 외국인이 되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들은 그녀의 이성에 다음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아주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그녀의 성과 계급은 과거 영국에 대해 고마워할 것이 거의 없었고, 현재에도 고마워할 것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또 한편으로는 미래의 그녀 일신의 안전 또한 상당히 의심스럽지요. - P347

그렇다면 유아 집착증은 어디에서 이 놀라운 힘을 얻은 것일까요? 이 사례들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부분적으로는 이 유아 집착증이 사회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자연, 법, 자산 모두가 그것을 변호하고 숨겨줄 준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배렛 씨, 젝스블레이크 씨와 패트릭 브론테 목사는 그들 감정의 본질을 스스로에게 쉽게 숨길 수 있었습니다. 만약 딸이 집에 머물러 있기를 그들이 바랐다면, 사회는 그들이 옳다고 동조했습니다. 만약 딸이 항의하면, 자연이 그들을 도와주었지요. 아버지를 버린 딸은 자연법칙에 반하는 딸이고 여성성이 의심스러운 존재니까요. 혹시라도 그녀가 더 고집을 부린다면, 그때는 법이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아버지를 버린 딸은 스스로를 부양할 수단이 없었지요. 합법적인 전문직은 그녀에게 차단되어 있었습니다. - P389

마지막으로, 만약 그녀가 여성에게 개방된 유일한 전문직, 무엇보다도 오랜 역사를 지닌 전문직에서 돈을 번다면, 그녀는 여성성이 박탈된 것이지요. 의심할 바 없이 그 유아 집착증은 어머니가 감염될 때에도 강력한 영향을 발휘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감염되면 그것은 세 배나 강력해집니다. 그에게는 그를 보호할 자연, 그를 보호할 법, 그를 보호할 자산이 있으니까요. 그러한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패트릭 브론테 목사는 그의 딸 샬럿에게 여러 달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게 하고 그녀의 짧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몇 달 훔쳐도, 그가 목사로서 성직을 수행하는 영국 국교회로부터 어떤 책망도 듣지 않는 일이 전적으로 가능합니다. 그가 개 한 마리를 고문했다든가 시계를 훔쳤다면, 그 동일한 사회는 그에게서 성직을 박탈하고 그를 쫓아냈겠지요. 사회는 아버지이고, 역시 유아 집착증을 앓고 있는 듯합니다. -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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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3-1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3기니>가 더 좋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다른 글에 비해 너무 안 알려져서 안타깝지요.

다락방 2020-03-18 08:03   좋아요 0 | URL
<자기만의 방>에 대해서라면 이미 유명하고 얘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막 뭔가 강타하는 건 없었거든요. 그런데 <3기니>는 내용을 전혀 모른채로 읽기 시작했다가 정말 강타당한 느낌이었어요. 너무 좋아요, 너무!!

Jeanne_Hebuterne 2020-03-18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 1학년 때 제게 몇 권의 버지니아 울프 책을 권해준 남자는 ‘버지니아 울프는 혁명이야‘라고 덧붙였어요.

다락방 2020-03-18 08:04   좋아요 1 | URL
세상에, 대학1학년 때 버지니아 울프를 권해주는 남자가 주변에 있었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떤 아름다운 인생을 사신겁니까, 쟌님. 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저에게 울프를 권해주는 남자는 하나도 없었는데요.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고요. 진정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계시네요...
 
콜롬비아 산타 로사 - 1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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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무실에는 커피메이커가 있고, 매일 보쓰는 이 커피메이커를 통해 내린 블루마운틴을 마신다. 보쓰가 마시는 특별한 브렌드, 꼭 그 커피만 마시는데, 그 커피를 내리노라면 사무실에 향이 가득 퍼지고 그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아주 오래, 그리고 아주 많이 그 커피를 마시곤 했다.


드립백은 내 성격에 안맞으니, 그렇다면 원두를 핸드드립분쇄로 사서 저 커피메이커에 내려마시자, 하고는 <콜롬비아 산타 로사>를 주문했다. 처음에 내리면서는 향에서 산미가 확 느껴져서 동료 직원과 함께, '역시 커피향은 보쓰가 마시는 게 최고야' 했더랬다. 그리고 마셔보니, 맛도 그랬다. 보쓰가 마시는 커피, 그러니까 내가 십년이상을 마셔온 그 커피는 산미가 전혀 없는데, 콜롬비아 산타 로사는 산미, 산미가 강하다... 커피맛을 잘 모르는 나는 그 커피가 쓴지 아닌지, 진한지 아닌지, 신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단 말야? 마침 막 배송되어 왔던 지난 주 금요일에 타부서의 동료에게 이 원두 사진을 보내주며, '이거 왔는데 한 잔 내려줄까' 했더니 좋다면서 자신의 머그컵을 가지고 올라왔다. 사무실에는 콜로비아 산타 로사 향이, 내가 두 번이나 연달아 내리는 바람에 매우 강했다.



오늘 출근해서 보쓰의 커피를 먼저 내리고 그 후에 내 커피를 내렸다. 당연히 새로운 종이 필터에다 했지. 그런데 와, 이 산미가 느껴지는 향이, 어느게 더 향이 좋냐고 물어본다면 사실 다수가 '블루마운틴'을 선택할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콜롬비아 산타 로사 향이 너무 좋은 거다. '시다' 라는 향이 확 느껴지는데 더 따뜻한 느낌이랄까. 이 커피가 내려지고 사무실에 향이 퍼지면서, 아 나는 어쩌면 이 신맛에 그리고 신향에 이제 익숙해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원두를 좀전에 또 주문했다. 나의 3개월간 알라딘 순수총구매액은 39만원에 육박하고 있고, 오늘 주문하여 아마 더 커지겠지만, 뭐 어떠랴.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신맛이 느껴지는 커피향(향에는 산미를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산향?)이 익숙해지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기분도 좋아졌다. 히히히히. 커피는 맛보다 향인가보다, 했다. 커피는 정말이지 향이 다 하는 것 같아. 아하하하하하하하. 너무 좋다! 게다가 커피 메이커가 내려주니 세상 편한것이야. 나는 그저 물과 간원두만 넣어주면 끝.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너무 좋아.

이렇게 가다간 나는 커피 전문가가 될지도 모르겠어?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진은 커피 내린 오늘 아침. 사진엔 없지만 에이스랑 같이 먹었는데 너무 맛있다. 아마도 그건..에이스가 맛있어서?


이 리뷰를 오전 08:15에 작성완료했는데 지금 알았다. 비공개로 써놨다는 걸 ㅠㅠ

밥통.. 바부팅..



(feat. 정원 있는 나의 사무실, 알라딘 커피, 알라딘 머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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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3-1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립 내리다 성질 나빠질 거 같아서 (맛도 오락가락 시간은 오래 걸리고) 커피메이커 하나 질러 말아 하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0-03-16 11:4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처럼 핸드 드립 내리면서 차분해지는 대신 성질 나빠질 것 같다면, 커피메이커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0-03-16 11:52   좋아요 0 | URL
커피메이커 커피 맛을 한 번 보고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ㅎㅎㅎ

2020-03-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3-22 15:11   좋아요 0 | URL
제가 저걸 언제 무얼 사고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나님, 구하실 수는 있습니다. 아래 링크 들어가보세요~

https://www.aladin.co.kr/shop/wbrowse.aspx?CID=144461&BrowseTarget=List&ViewType=Detail&SortOrder=2

2020-03-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3-22 19:07   좋아요 0 | URL
앗 저도 제가 보낸 링크에서는 저거 똑같은 걸 보지는 못했어요. ㅜㅜ
제 생각에도 알라딘에 연락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요.. 알라딘에 연락한다고 구해질지도 잘 모르겠지만요. ㅠㅠ

2020-03-22 19: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2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22 1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0-03-22 19:30   좋아요 0 | URL
네 비댓으로 돌리셔도 됩니다~~

bona 2020-03-2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그럼 남은 저녁도 편안하게 지내세요^^

다락방 2020-03-22 19:36   좋아요 0 | URL
주말이 가는 건 언제나 너무 아쉬워요 ㅠㅠ 보나님도 남은 주말 밤, 잘 보내세요!
 
요가의 언어 - 걱정과 고민을 툭, 오늘도 나마스떼
김경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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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써의 '아사나'가 궁금했는데 마침 이 책을 알게 됐다. 목차에서 드러나듯이 모든 아사나를 아사나 이름 그대로 제목으로 달아두었다. 우르드바 다누라 아사나, 아도무카 스바나 아사나, 하고 발음하는 게 좋아서, 가만 내뱉는 게 좋았는데 마침 맞춤한 책. 아사나를 그림으로 그려둔 것도 알아보기 쉬웠고 설명도 잘 해두었지만, 요가를 전혀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사실 책을 보고 자세를 잡는 건 불가할 것 같다. 일단 요가를 한 달이라도 선생님으로부터 배워보고 그 후에 책이라든가 영상을 보고 따라하는 게 좋을 듯. 


'코브라 자세'가 '부장가 아사나' 라는 걸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달 자세'가 '아르다 찬드라 아사나' 라는 걸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책.


아사나의 이름을 내뱉는 것처럼 가만가만한 책이다. 

병원 여러 군데를 거쳐 MRI 촬영을 했고 경추와 요추에 약간의 디스크 이상이 보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진료를 받는 도중에 이런 조언을 들었습니다. "허리는 수술해도 재발할 확률이 높고 수술해도 완전히 좋아지는 건 아니니 척주기립근(척주의 양옆을 따라 길게 뻗은 강한 근육)을 길러서 뼈를 보호할 수 있도록 매일 운동하세요." - P6

울적할 때 마츠야 아사나를 하면서 감정을 받아들입니다. 대부분의 후굴 동작이 우울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물고기 자세를 추천합니다. 숨을 쉬기가 편안하고 정수리를 바닥에 대고 있으면 머리가 시원하거든요. - P96

부장가에서 양손을 다 떼는 게 처음부터 된 것은 아닙니다. 요가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부터 코브라 자세가 숙면에 좋다는 말을 듣고 습관처럼 잠들기 전에 매일(약 16년 동안)했거든요. 그 결과 지금은 손을 짚지 않고 하는 게 더 편해졌습니다. 힘을 적절히 쓰기 때문에 아무리 뒤로 젖혀도 허리에 통증 없이 편안합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무언가 갑갑할 때에도 이 자세를 하면 좀 살 만해졌습니다. 그래서 부장가는 제 영혼의 단짝이자 ‘최애‘ 아사나라고 할 수 있어요. - P101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옛말로 다시 돌아가봅니다. 하지만 그 원숭이는 죽지 않았다면 다시 나무에 올라갈 겁니다. 삶은 계속되니까요. - P155

보트 자세를 하면 균형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몸은 많이 움직이면 피로가 쌓여서 아프고, 한 자세로 오래 있으면 굳어서 아픕니다. 그래서 움직임과 멈춤 사이에도 적당한 균형이 필요해요.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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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3-1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관심 갑니다. 읽어봐야겠어요.감사합니다^^

다락방 2020-03-16 07:46   좋아요 0 | URL
코브라 자세가 부장가 아사나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다른 대부분의 자세에 대해서는 아사나 이름을 모르고 있었거든요. 이 책은 아사나 이름 다 알려주고 그림으로 그려줘서 그런 쪽으로는 확실히 도움이 됐어요! 다 외우진 못하지만요...
 
성적 동의 - 지금 강조해야 할 것
밀레나 포포바 지음, 함현주 옮김 / 마티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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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셋 준 리뷰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비구매자들의 백자평을 보고 하나 더 올리기로 한다. 그들이 백자평을 통해 주장한것, 그러니까 '동의에 대한 비아냥'은 정확히 이 책에서도 사례로 언급되어진다.



동의에 관한 한 우리가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물어보기다.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그럼 섹스를 할 때마다 법률 계약서를 써야 하냐"는 비아냥 어린 질문을 들어봤을 것이다. 본질을 벗어나는 이런 질문은 대화를 계속할 수 없게 하고, 일상생활속 성폭력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반증할 뿐이다. 법률 계약은 성적 동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 동의는 소통과 배려, 인간적 존중이 있어야 가능하고 이런 것들은 법으로 규제되지 않는다. ( p.60-61)


내가 별을 셋 주고자 했던 까닭은 이 책이 너무 기본적이기 때문이었다. 뭐야 이런건 읽지 않아도 아는거잖아, 라는 생각을 했으므로 중간에 덮을까도 여러번 생각했다. 그때마다 '겸손해지자'고 내가 나를 달랬다. 이 책은 매우 기본적인 페미니즘 입문서이자 관계 입문서이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혹은 인간 관계, 남녀 관계에 대해서 일단 기초부터 시작해야 겠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이런 책이 대체 왜 필요한가 싶다가도 이런 책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런 걸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 싶어서 씁쓸하다가,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사항들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이 책을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이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들긴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 책에 달린 비구매자 백자평에서 볼 수 있듯이, '야 자연스런 섹스에 일일이 동의 물어보고 분위기 깨라는거냐' 라며 비아냥대겠지. 그게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나 그러나 이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는 뜻도 될것이다. 뭐야 계약서 받고 섹스하라는거야? 라고 비아냥 대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을 생각이나 할까? 안한다에 오십원..



중간중간 작가와 나의 생각이 달라서 갸웃했다. 어떤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그래, 그건 그럴 수 잇겠구나' 했지만, 어떤 다른 지점에 대해서는 '그건 아닌것 같은데' 했다.동의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 책은 강간문화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개념을 알려준다. 실제로 '야 강간 문화가 어디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귀찮고 어차피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은 설명해준다고 듣지도 않을 것이고. 강간문화와 강간신화, 성적 동의에 대한 기본 개념에 대해서 아주 잘 알려주는 책이니, 몰라서 알고 싶은 사람은 물론이고 그런게 어딨냐고 비아냥 대는 사람들도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다시 말하지만 입문서로 적절하다 하겠다.




강간 문화는 가해자가 성폭력을 저지르기는 쉽고,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고 그에 맞는 지원을 받는 것은 어렵게 만드는 사고방식과 관습, 사회 구조의 총체다. 여기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정관념이 포함된다(성적으로 남성은 적극적이고 여성은 소극적이라고 여기며, 이에 어긋나는 여성은 ‘음탕하다‘라고 낙인찍는 사회 분위기 등). 또 강간으로 판단되는 상황과 ‘진짜‘ 강간 피해자라면 응당 어떤 행동을 보이라고 단정짓는 것도 강간 문화의 일면이다(육체적 폭력이 수반된 경우에만 ‘진짜‘ 강간이라는 인식, ‘진짜‘ 피해자라면 사건을 즉시 신고할 것이고 정신적 외상이 심하겠으나 지나치게 히스테리를 부리지는 않으리라는 인식). 강간범은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온 괴물이며, 남자친구나 아버지, 대학생이나 정치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 또한 강간 문화의 일부다. - P17

한편, 여성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자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만큼 술을 마시거나 밤늦게 혼자 다니는 것은 강간을 유발하는 행동이며, 이 때문에 남성은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고정관념도 강간 신화의 대표적인 예다. 또 여승의 음주는 비난의 이유가 되고, 남성의 음주는 자기 행동에 대한 핑계가 된다. 이로써 강간의 책임이 가해자에게서 피해자에게로 옮겨 간다. 잠재적 가해자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피해자에게 ‘강간당하지 말라‘고 말하는 형국이다. 이는 공공장소를 자유롭게 다닐 권리,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기본적 권리를 제한한다. 이런 신화들은 성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행동으로 동의를 추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양산한다. - P40

특정 집단을 소외시키는 인종화(피부색이나 혈통을 근거로 타자화하는 것)도 강간 문화에 상당히 기여한다. 예컨대, 미국 문화에서 강간은 보통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죄라는 인식이 오랜 기간 만연해 있었다. 이는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노예와 여성 토착민을 강간했던 역사를 지우고 수정하려는 의도적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아픈 역사는 지금까지도 흑인 여성과 토착민 여성을 심각하게 억압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흑인 여성과 토착민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는 비율이 백인 여성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흑인 여성이나 토착민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해도 수사관이나 검사가 피해 여성들의 증언을 귀 기울여 듣지 않을 뿐더러 불신하여 사건을 추가 조사하지 않는다. 유색인 여성을 성폭력에 취약하게 만드는 편견은 이 밖에도 많다. - P42

성적 동의는 나와 상대방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하는 것이다. 타인에게 마땅히 보여야 하는 신중함과 배려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내가 그런 것처럼 성관계를 맺을 의사가 상대방에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적 동의를 고민할 때 신체적 자율권 개념은 순전히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나의 신체적 자율권을 행사하고 싶다면 당연히 타인의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다고 섹스와 섹스를 둘러싼 모든 결정 과정이 재미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성관계가 어느 한쪽의 만족감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즉, 우연한 만남에서든 오래된 관계에서든 성관계는 ‘상호‘ 교류를 의미한다. - P55

계속해서 동의 상태를 확인한다는 것은 묻고 답하는 순간에 일단 행동을 멈추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섹스를 자기 욕구 만족을 위해 타인의 몸을 이용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타인을 존중하면서 서로 행복한 성적 경험을 공유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 나뿐 아니라 상대방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해진다. 즉, 상대가 만족하는지, 내 행동을 상대가 좋아하는지, 여전히 동의하는지 거듭 확인해야 한다. - P64

경찰관이 강한 어조로 안 된다고 말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사용자가 재생할 수 있는 앱도 있다. 이 앱의 개발자는 성관계를 강요하는 사람에게 이 영상을 보여주면 거절 의사를 더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모호한 대답은 곧 ‘좋다‘라는 뜻이며 ‘싫어하는 척하는 것일 뿐이다‘라는 강간 신화가 깔려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신체적 자율권을 존중받기 위해 경찰 영상까지 동원해야 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 된다. - P79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백래시는 역사가 길다. 예를 들어보자. 1991년에 미국 안티오크 대학의 한 페미니스트 단체가 캠퍼스 강간과 데이트 강간 관련 캠페인을 벌였고, 대학 당국은 ‘말을 통한 지속적 동의‘ 여부로 강간을 규정하도록 정책과 교칙을 수정했다. 즉, 육체적 관계가 진행되는 내내 서로 동의가 유효한지 말로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학내 강간 가해자들은 징계를 받거나 퇴학당했다.
안티오크 대학의 사례는 뉴스 방송을 타고 전국에 퍼졌고, 누구나 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여론은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1993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 나왔던 ‘이것이 데이트 강간?‘이라는 콩트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콩트에는 한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그녀의 옷차림을 칭찬해도 되는지, 입에 키스해도 되는지, 엉덩이를 만져도 되는지 과장되게 물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 P182

이것 말고도 안티오크 대학 정책에 조롱을 던지는 백래시는 많았다. 당시 사람들은 성적 관계에서 동의의 초점을 맞추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 기대이며, 말로 동의 여부를 확인하면 ‘분위기를 망치고‘ 덜 ‘자연스러워‘진다고 말하곤 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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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겟타 2020-03-09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문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거라면 좋은책이겠지요? 기본이 중요하니깐요..저도 다음번에 읽어볼게요.

다락방 2020-03-10 07:38   좋아요 0 | URL
네. 별 것도 아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인데(상대의 동의를 얻고 섹스하라!) 이걸 비아냥대는 사람들이 있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런 책이 왜 나오나 했더니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오나봐요. 휴..

추풍오장원 2020-03-1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군요. 백자평 중 하나는 비아냥으로만으로 치부하기엔 힘든 측면도 있는것 같아 읽어보고 판단해야겠습니다.

다락방 2020-03-11 17:21   좋아요 0 | URL
네. 직접 읽고 판단해야죠.
그 구매자평들은 안읽고 판단했으니까요.
 
《트라우마》그래도될까?
트라우마 - 가정폭력에서 정치적 테러까지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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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원제가 《Trauma and Recovery》인만큼, 나는 리커버리를 기대하며 읽었다. 외상의 피해자가 고통을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법들이 있을까, 를 기대한 것. 책은 기대와 달리 '치료자'와 피해자의 관계, 치료자가 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생존자가 해나가야 하는 방법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으나 그렇다해서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치료자에게 조력자도 필요하다고 말해주고 또 집단 치료의 효과에 대해서 말해주기 때문에, 외상의 피해자에게는 역시 전문 치료가나 치료방법이 가장 효과적이겠구나, 를 알 수 있었으니까. 그런 치료자와 함께 더 나아진 삶을 살게 되고 치료가 됐다고 믿었던 환자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다시 플래시백, 과거로 끌려들어가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외상의 피해자는 그러니까 외상이 없었던 것처럼 살 순 없다는 거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살아가기를 택하는 것 뿐.



외상 피해자들의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데 이렇게나 근친강간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또 놀라면서 읽었다. 근친강간, 집단강간, 아동학대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치료를 받고 또 자기의 경험을 이야기해줄 때마다 자꾸 울게 된다. 진심으로 그들이 치료될 수 있기를, 나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품게 되고.



치료자를 찾지 않고 혼자 극복하는 방법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외상의 생존자들이 집단치료하는 그 과정들 속에 나도 가끔식 참여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은 독서였다.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트라우마 없이 살아가는 운좋은 사람들도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물음 너머로, 생존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물음에 대면한다. ‘왜 나인가?‘ 운명이 지닌 임의성과 무작위성은 세상이 정의롭고 예측 가능하다는 기본 신념을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외상 이야기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생존자는 죄책감과 책임이라는 도덕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겪지 않아도 됐을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사실을 납득시켜 주는 신념 체계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러나 생존자는 단지 사고하는 것만으로 의미를 재구성할 수 없ㅂ다. 부당함을 고치기 위해서는 행동이 필요하다. 생존자는 무엇을 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 P297

애도 과정에서, 생존자는 가해자에게 똑같이 갚아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안전한 환경에서 분노를 풀어낼 수 있다면 무력했던 분노는 점차 가장 강력하고 만족스러운 형태의 분노로 변화할 것이다. 올바른 분노. 이러한 전환으로 생존자는 가해자와 함께 남아야 하는 복수 환상으로부터 해방된다. 생존자는 범죄자가 되지 않고도 힘이 있다는 느낌을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복수 환상을 포기한다고 해서 정의를 달성하는 과제에 실패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제 생존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해자가 범죄에 책음을 지도록 그를 포위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다. - P315

혐오든 사랑이든, 이로써 외상을 몰아낼 수는 없다. - P316

가해자가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다행히도 생존자는 이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삶에서 회복되어 가는 사랑을 찾아낸다면 생존자도 치유받을 수 있다. 이 사랑이 가해자에게까지 확장될 필요는 없다. - P316

한번 경계가 침범당하고 나면 치료자는 치료를 위한 거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유지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무모한 일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계를 침범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환자를 착취하는 일이 된다. 초기 의도가 아무리 좋았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 P320

말할 수 없었던 것을 말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다는 신념으로, 생존자들은 말하기 시작한다. - P346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범죄는 공동체의 온전함을 방해하고, 공동체를 중대한 위험에 빠뜨렸다. 그러므로 가해자는 정의 앞에 세워져야 한다. ……수리해야 할 것은 국가 그 자체이며, 복구해야 할 것은 톱니바퀴가 어긋나 버린 공공질서이다. …… 다시 말해서, ㅇ겨야 하는 것은 원고가 아니라 법이다." - P348

완성된 회복이란 없다. 외상 사건의 영향력은 생존자의 일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퍼져 간다. - P351

지위가 높은 남서오가 지위가 낮은 여성이 집단 지도자가 되는 전통적인 지도 형태는 외상 생존자 집단에게 절대적으로 부적절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는 여전히 흔한 일이다. - P369

피해자와 가해자의 충돌에서 도덕적인 중립이란 선택 사항이 아님을 말한다. 그 모든 방관자들과 마찬가지로, 치료자 또한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한다. 피해자와 함께 서고자 하는 이들은 불가피하게 가면을 벗은 가해자의 광포에 대면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에게 이보다 더한 영광은 없을 것이다. -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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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3-05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 책 받고 너무 기뻤어요. 곧 읽어야지~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트라우마 없이 살아가는 운좋은 사람들도 읽어보길 추천하는 책이다.˝ .. 트라우마 없이 살아가는 운좋은 사람은 아닌 저로선 꼭 읽어보고 싶어요.



다락방 2020-03-05 10:09   좋아요 0 | URL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책에서 언급된 강간,아동학대,전쟁 같은 너무나 비극적이고 큰 사건들이 아니여도 말입니다. 물론 이 일들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요.
사례들이 많이 나와서 수시로 재경험에 시달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책을 읽은 게 좋았어요. 부디 이 책이 비연님의 마음도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발머리 2020-03-05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저하게 되지만 도전할만한 책이 있는것 같아요. <페이드 포>가 그랬던 것처럼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20-03-05 14:1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은 어떻게 읽으실까요. 단발머리님의 감상도 매우 궁금합니다. 특히 읽고 써주실 글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