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 금지된 소설들에 대한 회고
아자르 나피시 지음, 이소영.정정호 옮김 / 한숲출판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테헤란에서 문학 모임을 결성하고 함께 롤리타를 읽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 책의 존재를 알고나서 나는 이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사려고 했지만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고 동네 도서관에는 이 책이 없었다. 다행히 책바다 서비스를 통해 이 책을 대여했는데, 대여한 후에는 2주간 이 책을 최선을 다해 읽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다시 읽게된 것이다. 아무래도 이 책을 읽기 위해서라면 롤리타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채로 읽는것 보다는 생생할 때 읽는게 더 도움이 될것 같아서였다. 테헤란에서 여자들이 롤리타를 읽는데 과연 어떤 말을 할까, 나는 그들의 감상을 먼저 읽기보다는 내 느낌을 더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그런 후에 테헤란에서의 롤리타를 읽는다면, 그것이 칭찬이든 비난이든 나의 감상과 견주어볼 수 있을 터였다. 저자인 '아자르 나피시'는 문학교수이니만큼, 내가 놓친게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었다.



아자르 나피시는 아버지가 테헤란 시장을 지내기까지 했지만 반정부적 행태로 쫓겨나자 스위스, 영국, 미국에서 공부하다 이란으로 돌아온다. 테헤란에 돌아와 테헤란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맡게되는데 그 해가 1979년, 이란혁명이 일어난 해였다. 이란의 국왕을 몰아내고 이슬람의 종교지도자가 나라를 통치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들에겐 강제로 베일이 씌워진다. 여자들은 가장 먼저 직장에서 베일을 써야했고 그 다음엔 상점에서 베일을 쓴 여자만이 거래를 할 수 있었다. 이를 어기는 사람에겐 벌금과 채찍질형이 내려졌다. 여성들의 결혼 연령은 열여덟살에서 아홉살로 낮춰졌다. 대체 아홉살에 결혼을 허락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홉살에 결혼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건, 누가, 무엇을 얻고자 함인가. 이게 대체 왜 필요한 법인가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부는 공공장소에서의 여성들의 의상을 제한하고 여성들에게 차도르나 긴 겉옷과 스카프를 강제로 착용하게 하는 새로운 규정을 통과시켰다.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이 규정이 준수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로 시행하는 것뿐이었다. 이 법에 대한 여성들의 엄청난 반대 때문에 정부는 우선 직장에서 새 법을 강제로 시행하였고 후에는 상점으로 확대했다. 상점에서 베일을 쓰지 않은 여성과의 상거래를 금지시켰다. 이 법을 어기면 벌금이 부과되었고 최고 일흔다섯 대의 채찍질과 구치소생활을 해야 했다. 후에 정부는 악명 높은 도덕분대를 창설했다. 네 명의 무장한 남녀가 흰색 도요타 순찰차를 타고서 이 법이 시행되고 있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거리를 순찰하였다.- P326



혁명으로 인해 수업이 종종 휴강되곤 하는데, 그 때 아자르 나피시는 학생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 불만을 잔뜩 품은 학생으로부터 항의를 받는다. 이토록이나 나쁜 소설을 우리가 왜 배워야 하느냐는 거다. 그렇게 아자르 나피시의 문학 수업시간에, 개츠비에 대한 재판이 일어난다. 검사는 이 책을 고발한 남학생이고 변호사 역시 이 수업을 함께 듣는 여학생이다. 미국에 대한 증오, 서구문화에 대한 증오는 내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컸는데, 거기에는 이란이 미국에 석유 수출은 급증했지만 그로 인해 부자가 된건 정부관리들 몇몇 뿐이었다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 혁명의 배경에는 이렇게 미국에 대한 증오가 있었고 정부 관리들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의 학생은 개츠비가 영 못마땅한 거다.



그는 논고를 계속하면서 점점 더 생기를 얻었지만 논고 내내 의자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개츠비는 정직하지 못합니다.˝ 그는 크게 외쳤고 목소리는 이제 쉰 소리를 냈다. ˝그는 불법적인 수단으로 돈을 벌었고 유부녀의 사랑을 돈으로 사려고 노력합니다. 이 소설은 미국인의 꿈에 관한 것이지만 그것은 어떤 종류의 꿈입니까? 작가는 우리 모두가 간음자가 되고 무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입니까? 미국인들은 퇴폐적이고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꿈 때문입니다. 그들은 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죽은 문화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P252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라서 개츠비를 읽고 그 줄거리를 아는 사람이 많을텐데, 게다가 나는 개츠비를 두 번인가 세 번 읽었던 것 같은데, 개츠비를 읽고 작가가 '우리 모두가 간음자가 되고 무법자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맞닥뜨리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불륜 소설이라면 작가는 '불륜을 저지르자'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에 대한 증오가 너무 커서 소설을 소설로 보지 못하고, 그 안에 일어난 이야기를 보지 못하고, 개츠비는 미국소설이고 불법으로 돈 번 자들의 불륜 이야기는 나쁘다, 라는 것으로만 생각하다니. 아아, 문학이란 무엇인가. 소설은 왜 읽는 것인가. 



˝우리의 존경하는 검사님은 놀이 공원에 너무나 가까이 다가가는 오류를 범했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검사님은 허구와 현실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의자의 덫에 걸려 있는 ˝우리의 검사님˝을 향해 유연하게 돌아섰다. ˝검사님은 두 세계 사이에서 어떠한 공간도, 숨쉴 여지조차도 전혀 남겨두지 않습니다. 검사님은 자신의 약점-소설을 그 자체로 읽어내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검사님이 아는 것이라고는 기고만장하게 옳고 그름만을 조야하고 단순하게 가치 판단하는 것입니다.˝ 니야지 씨는 이 말을 듣고 안색이 시뻘겋게 변하면서 고개를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주인공이 고결해야지 소설작품이 훌륭합니까? 니야지 씨가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소설에 부과하기를 고집하는 그 도덕심에서 어떤 소설의 등장인물이 벗어나게 되면 그 소설은 나쁜 것입니까?˝- P.254


소설을 그 자체로 읽어내지 못하는 무능력함, 이라고 개츠비의 변호사가 말했는데, 나는 무능력함 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자르 나피시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상상력'과 '공감능력'에 대해 거듭 강조한다. 상상력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드는 것만이 상상력이 아니다. 상상력이란, 내가 있지 않은 곳에 나를 둘 수있고 내가 경험하지 않은 일을 마치 내가 경험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그 상상력이 있어야 비로소 공감이 가능해진다. 책을 읽고 그 안에 일어나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내것인것처럼 받아들이면 거기서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거다. 상상력은 소설을 읽는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고, 상상력 있는 사람이 소설을 읽어야 소설로부터 뻗어나오는 여러가지 감정을몸소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을 무시하고 별 거 아닌걸로 취급하는 사람들, 소설 읽으면 남는게 뭐가 있어 거짓부렁 이야기지, 라고 취급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는 이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본다. 상상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걸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이란 그 어떤 인문학이나 자기게발서보다 더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주고 일깨워준다. 소설은 다루지 않는 것이 없다. 차별받는 사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도, 역사적인 중요 사건들 앞에서 정면으로 맞섰던 사람과 그런것들로부터 멀어져 혼자 조용히 지냈던 사람의 이야기까지, 소설 안에는 이 모든 것이 다 있는 거다. 무엇보다 소설은 지금 여기, 현재의 나를 잠시나마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일전에 읽었던 '엘케 하이덴라이히'의 『세상을 등지고 사랑을 할 때』에서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로 모텔에 들어가 섹스를 나누는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혁명이 일어나 어지러운 시국에서 아자르 나피시는 위대한 개츠비를 두고 토론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 힘든 시간들에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그 시간들은 우울함이 채우지 않았을까.



나는 그 날 수업이 끝나고 기분이 괜찮았다. 끝나는 종이 울렸지만 많은 학생들이 종소리마저 듣지 못했다. 공식적인 평결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보여주었던 흥분은 나로서는 최상의 평결이었다. 내가 강의실 밖으로 나온 후에도 학생들은 논쟁을 계속했다. 그들은 인질들이나 최근의 시위집회들 또는 라자비와 호메이니 옹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츠비와 그의 빛 바랜 꿈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P270




혁명이 끝나고 전쟁이 찾아왔다. 이라크와 이란은 장장 8년간 전쟁을 시작한다. 테헤란은 수시로 폭발음이 들리고 사람들은 폭발음이 멈춘 뒤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너희들은 다 괜찮니, 나는 괜찮아.


이 소란한 시간들에게 아자르 나피시에겐 헨리 제임스가 있었다. 폭발음이 들리고 전기가 나가고 두려움과 우울함으로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때에, 아자르 나피시는 데이지 밀러를 읽고 또 읽는다. 


책을 계속해서 읽고 있을 때 세 가지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내 딸이 내 방에서 나를 불렀고, 전화벨이 울렸으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촛불을 집어들고 딸 네가르에게 곧 가겠다고 말하고는 전화기로 다가갔다. 그 순간 현관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촛불을 들고 들어오면서 물었다. 너희들은 괜찮니? 두려워 말아라! 거의 매일 밤 폭발이 난 후에 어머니는 촛불을 들고 우리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행동은 제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 딸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였다. 그녀도 또한 우리들이 모두다 괜찮은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마치 폭발소리가 테헤란 시의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울린 것 같았다.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안전한지를 확인하는 일은 또한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은 어떤 다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P364


놀랍게도 어머니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하기 전 아자르 나피시가 읽었던 데이지 밀러에서는, 데이지 밀러가 윈터본에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나는 두렵지 않아요, 라고 말한 부분을 읽고난 후였다. 적색 사이렌과 백색 사이렌이 교차되는 밤에 아자르 나피시는 끝도 없이 책을 읽는다. 그 후에 있을 강의들에 이 시간이 준비 과정이 되었다고 아자르 나피시는 말한다. 소설을 읽는 것, 좋아하는 소설들이 늘 곁에 있었던 것, 이미 읽었던 것인데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두려운 시간에 피난처가 되어주었다. 은신처이자 피난처가 되어주는 소설. 혁명에는 개츠비가 있었다면 전쟁에는 헨리 제임스가 있었던 거다.




아자르 나피시는 교수직을 사임한뒤에 그동안 자신이 가르치면서 명민했던 학생들 일곱을 모아 문학모임을 제안한다. 일주일에 한 번, 자신의 집에 모여 같은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모임이다. 학생들 저마다 개성이 강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 모임은 2년동안 계속된다. 모두들 목요일 아침이 되어 교수님의 집에 도착하면, 자신을 감싸고 있던 검은 베일과 긴 옷과 검은 장갑을 벗고 비로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낸다. 빨간 매니큐어도 있고 금발도 있다. 그렇게 홀가분한 자기 본연의 모습이 되어 그들은 책에 대해 말한다. 첫 책이 롤리타 였다. 롤리타에 대해 아자르 나피시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롤리타』를 예로 들어보자. 이 소설은 갈 곳이 한군데도 없는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였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자신의 판타지로, 죽어버린 자신의 사랑으로 바꾸고자 노력했고, 그녀를 파멸시켰다. 『롤리타』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최고의 진리는 더러운 늙은이가 열두 살 소녀를 강간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인생을 다른 사람이 몰수하는 것‘이다. 만일 험버트가 그녀를 완전히 삼켜버리지 않았더라면 롤리타가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완성된 소설작품은 희망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소설은 단순히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야씨처럼 롤리타도 박탈당한 삶을, 평범한 일상생활을, 모든 정상적인 즐거움을 옹호한다.
흥도 나고 갑자기 신도 나서 나는 나보코프가 사실 우리 자신의 유아론자들한테 복수할 기회를 노렸던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P71

롤리타를 읽을 때 내가 분노했던 게 바로 저 지점이었다. 롤리타에게서 유년시절을 빼앗아간것. 롤리타로 하여금 성학대 피해자로 살아가게 해서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한것. 그 일이 앞으로의 롤리타에게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아자르 나피시는 그 후에 롤리타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것이 롤리타가 험버트로부터 도망치고 자유로운 삶, 본인의 건강한 삶을 찾았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그것과는 의견이 다르다. 만약 롤리타에게 험버트가 없었다면, 롤리타의 인생에서 험버트를 만나지 않았다면, 롤리타가 결혼하고 임신해서 생계를 해결하지 못해 아버지에게 돈을 좀 달라고 편지를 쓰는 일도 역시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롤리타는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테니스를 해서 코치가 되어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롤리타의 삶을 그 일로 인해 꺽여버린 중간에 부숴져버린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롤리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지금 여기가 아닌, 지금 이 사람이 아닌 사람을 향해서 어쨌든 방향을 틀고 전력질주 하니까.



롤리타를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나서 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 여러번 생각해야 했다. 롤리타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는 가슴이 아프고 또 나보코프가 이 글솜씨로 왜 하필이면 아동의 육체에 대해 묘사했는가부터 그리고 왜 아동성학대 이야기를 썼는가, 까지 괴로워하면서, 그러면서도 나보코프가 그 안에 담아낸 것들에 놀라워했으니까. 나보코프는 아동대상 범죄가 언제 주로 일어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아동을 보호하기에 나라가 제대로 법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범죄자가 이렇게 범죄를 시작한다고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토록 잘 쓴 글에 대해 감탄했고, 그래서 고통스럽고 슬프면서도, 롤리타의 빼앗긴 유년시절 때문에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면서도, 그러나 책을 읽는 시간은 즐거웠던 거다. 아, 이런 책이 있어, 엉엉, 롤리타 어떡해, 하는 복잡한 감정이 독서하는 내내 따라붙었고, 롤리타의 빼앗긴 유년시절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런 마음을 주는 것이 문학의 본질이 아니던가, 생각하게 된거다. 그리고 아자르 나피시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학생들과 문학 모임에서 하게된다. 




미트라가 생과자로 손을 뻗으면서 어떤 문제가 얼마 동안 자신의 망므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 괴롭히고 있다고 말한다. 『롤리타』나 『보바리 부인』과 같은 소설, 즉 그토록 슬프고 비극적인 소설을 읽으면서 무엇 때문에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는가? 그런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죄스러운 것은 아닌가? 만일 신문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게 되어도 아니면 혹시 우리에게 그런 일이 발생하여도 우리는 이런 식으로 느낄 것인가? 만일 우리가 여기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서의 우리의 삶에 대하여 글을 쓴다면 독자들이 행복감을 느끼도록 써야 하는가?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그날 밤에도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우리 모임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p.95


잠자리에 들지 못한 나자르 아피시가 그러나 그것이 고통과 괴로움 때문은 아니었다. 이 질문은 그 자체로 기쁨이었다. 흥분이었다. 그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거기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나는 나보코프가 모든 위대한 소설을 동화라고 한다고 말했다. 글쎄, 동의할 수 있다. 우선 우리가 기억할 것은 동화에는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 무서운 마녀들이나 아름다운 의붓딸들을 독살하는 사악한 계모들, 그리고 숲 속에다 아이들을 두고 나오는 나약한 아버지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마력은 선의 힘에서 나오고 그 세력은 나보코프가 지어놓은 이름대로 맥페이트가 우리에게 부과한 제한이나 한계에 굴복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준다. 

동화는 모두 다 현재의 한계점들을 초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하므로 어떤 의미에서 동화는 동화는 현실이 부정하는 자유를 제공한다. 모든 위대한 소설작품에는 그들이 묘사하는 냉혹한 현실과 상관없이 그러한 삶의 무상함에 본질적으로 대항하는 삶에 대한 확신이 있다. 삶에 대한 이런 확신은 작가가 현실을 자기 식으로 다시 말하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세계를 창출함으로써 현실을 지배하게 되는 그런 방식에 들어있다.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찬양이고 그것은 배신, 공포, 삶의 배반행위들에 대항하는 불복종 행위라고 나는 호언장담할 것이다. 형식의 완벽함과 아름다움은 주제의 추악함과 비열함에 반항한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보바리 부인』을 사랑하고 엠마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고, 어리고 천박하며 시적이고 도전적인 고아가 된 주인공 롤리타로 인해서 우리의 가슴이 무너지도록 아플지라도 우리는 욕심스럽게 『롤리타』를 읽는 것이다. -P.100




그리고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의 강의가 있고나서 한 남학생이 그녀를 따라나온다. 그는 제인 오스틴을 비난한다. 제인 오스틴이 반-이슬람적인 작가일 뿐 아니라 식민주의적인 작가라는 것이다. 그는 수업시간 중에는 조용히 있다가 수업이 끝나면 계속해서 연구실까지 따라와 오스틴을 비난한다. 그가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를 읽지 않은 것이 확실한데 그는 어떻게 맨스필드 파크가 노예제를 묵과했다고 말하는걸까. 아자르 나피시는 며칠 뒤에야 그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을 읽고 무조건 제인 오스틴을 비난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슬람 근본주의자가 오스틴을 비난하려고 사이드의 책을 인용해야 하다니 정말 대단한 아이러니였다.(P.560)


어느 날 정말로 소모적인 논쟁을 벌인 후에 나는 그 학생에게 말했다. 나비 씨, 한가지 일러두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나는 절대로 학생을 엘리자베스 베네트와 비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학생에게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과 쥐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서로가 다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다아시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몰라요. 끊임없이 다아시의 결점을 찾아다녔고 그 사람이 자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거의 반대 심문하다시피 했잖아요? 위캄과의 관계도 생각나죠? 엘리자베스는 동정의 기초를 위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기보다는 다아시에 대한 위캄의 악감정에 두었던 것도 아시죠? 나비 씨가 서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나비 씨는 서구라는 단어에 형용사와 같은 한정사-퇴폐적이다, 타락했다, 오염되었다, 제국주의적이다-를 쓰지 않고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엘리자베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심해서 보세요!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비 씨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P560



집착적일 정도로 오스틴을 비난하는 저 학생도 남자였고, 공교롭게도 개츠비를 비난하던 검사도 남학생이었다. 같은 수업에서 같은 책을 읽는데 왜 유독 남학생들은 이 작품들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이 서구적인 것, 미국적인 것, 꿈과 자유, 낭만과 사랑,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고자 하는 욕망 같은 것들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어떻게든 이것을 '나쁜것'으로 보아야만 했던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란에서 사는 여자들은, 이 독서모임의 멤버들도 그렇고, 결국은 이란을 떠나야만 우리가 그나마 삶다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를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굳이 그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살기에 이란은 좋은 곳이니까. 남자들은 네 번까지 결혼할 수 있고(그들의 성욕은 존중되어야 한다!) 게다가 아홉살 짜리와도 결혼할 수 있다. 베일을 쓰는 것도 여자고 집이 폭발되었을 때도 점잖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니 집에서도 언제나 얌전한 차림을 입고 있어야 하는 것도 여자다. 여자들이 이곳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건 당연할것인데, 거기에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을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 막아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나는 남학생들이 이 작품들을 비난하는 그 이유들은 사실 그들이 말하는 것일뿐, 오히려 그렇게 비난에 집착하는 그 태도가 그 책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수많은 정치범을 만들어냈다. 아자르 나피시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도 아주 많은 학생들이 잡혀갔고 감옥에서 고문당하다 죽기도 했다. 어떤 학생들은 시위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잡혀가 간수들의 윤간의 대상이 되기도한다. 너무 예쁘다는 이유였다. 이런 여자를 그냥 내보내서는 안된다고 간수들은 돌아가며 그녀를 강간한다. 여자들의 목소리도 머리카락도 성적으로 자극적이라고, 이란의 남자들은 생각한다.



대부분의 혁명 단체들은 개인의 자유 문제에 대하여 정부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짐짓 겸손한 체하면서 그것들을 ˝부르주아적˝이고 ˝퇴폐˝한 것이라고 치부했다. 이런 까닭에 새로운 지배계층 엘리트들은 몇몇 개의 아주 보수적인 법률 조항들을 쉽게 통과시킬 수 있었고 심지어 사랑을 포함한 감정의 표현이나 일부 제스처들을 불법화시키기까지 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새 헌법이나 국회를 확립하기 전에 결혼 보호법을 먼저 폐기했다. 새 정권은 발레나 춤을 금지시켰고 발레리나들에게 연기자나 가수 중에서 선택하라고 지시했다. 훗날 여자들은 가수도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가 머리카락과 마찬자기로 성적으로 자극적이므로 계속 감추어 두어야할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P214



체포되어 감옥에서 다른 학생들과 마주치기도 하는데, 그들은 그 안에서 아자르 나피시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것에 대해 얘기한다. 소설을 읽고 그 소설로 일어난 에피소드를 얘기하며 함께 웃는 일이, 감옥 안에서 가능했다. 


그가 나가자 마하타브는 저는 선생님과 우리 반 학생들을 생각했어요, 라고 말했다. 첫 번째 심문이 끝난 후 그녀는 다른 열다섯 명의 죄수와 함께 한 감방에 배당되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내 강의를 들었던 라지에를 만났다. 내가 권한 작은 찻잔을 한 손에 들고서 차도르를 내리지 않은 채 그녀는 말했다. ˝라지에는 알자라 대학에서 수강한 선생님의 헤밍웨이와 제임스 강의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나는 그녀에게 『개츠비』논쟁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지요. 우리는 한참 웃었어요. 선생님도 아시지만 라지에는 처형당했어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라고 그녀는 말했다.- P423


감방에 갇혀 시간을 보냈지만 처형되지 않았기 때문에 '운이 좋다'고 말하여지는 삶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서 문학에 대해 얘기한다는 것은? 문학은 절대 선이 아니고 모른다고 해도 삶에 지장이 있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문학이 있는 삶은 확실히 더 나은 삶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혁명속에서도 전쟁속에서도 손이 닿을 곳에 문학이 있다면, 우리는 잠시나마 세상과 나 사이에 벽을 쌓아두는 시간을 만들어둘 수 있으니까. 책장을 덮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여는 순간, 내가 쌓아둔 벽은 금세 무너지겠지만, 그러나 다시 책장을 열면 그 벽은 얼마든지 금세 또 쌓을 수 있다. 



아자르 나피시가 테헤란에서 겪었던 것들-혁명과 전쟁-은, 살면서 겪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들이다. 내가 아는 사람 혹은 내가 언제 무슨 이유로 잡혀갈지 모르고 우리집에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시간들을 견뎌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테니까. 게다가 전쟁은 8년간이나 일어났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시간들은 과연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인 것일까. 아자르 나피시에게는 어린 아이들이 있었다. 폭발음이 들리면 아이들이 무사한지 살펴야하는 시간들은 맨정신으로 버텨내기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문학이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신이 읽었던 책을 읽고 또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녀가 가진 큰 능력이며 동시에 행운이다. 그녀는 책을 읽으면서 노트를 꺼내두고 메모를 한다고 햇는데(나도 그렇다), 그런 시간들이 그녀를 교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테헤란을 떠난다. 지금은 미국에서 문학교수를 하고 있다는데, 문학 교수라니,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라니, 너무 근사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고 또 명확하게 어떤 것이다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묻고 답을 구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지 않은가. 이게 너무 좋은데, 그런데 왜이렇게 좋은걸까, 하고 자꾸 생각해본다는 것. 어려움 속에서도 책장을 열고 그 안의 이야기에 빠지고 또 인물들에게 동화된다는 것. 이런 일을 경험한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은 알레고리가 아니라고 나는 강의시간이 끝나갈 즈음에 말했다. 소설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육감적인 경험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세계로 들어가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숨을 죽이고 그들의 숙명에 연루되지 않으면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공감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감은 소설의 핵심입니다. 이런 식으로 여러분은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경험을 흡입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숨을 쉬세요. 나는 다만 여러분이 그런 점을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P220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의 글을 읽는 시간이라 너무 즐거웠다. 책장에 오래 잠자고 있던 데이지 밀러도 꺼내 읽어야 겠다. 맨스필드 파크도 민음사에서 새로 나왔던데 그것도 사야겠고. 나보코프의 서적들은 뭐가 있나 검색해보았다. 나보코프의 번역된 작품들도 하나씩 천천히 다 읽어야겠다. 무엇보다 읽어야할 소설이 아직도 이토록이나 많다는 게 너무 기쁘다.


이 책은 이 책 자체로 문학의 쓸모를 말해주는 것 같아서 너무 좋고 또 읽고 싶은데 절판이라 유감이다. 하루빨리 어느 출판사에서든 새로 내어주었으면 좋겠다. 








당시 사나즈에게는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아주 중요한 두명의 남자가 있었다. 첫 번째는 남동생이었다. 그는 열아홉 살 이었고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으며 부모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들이었다. 두 딸(딸 하나는 세 살 때 잃었다)을 낳은 후 마침내 얻게 된 아들인지라 부모님한테는 아주 끔찍한 아들이었다. 그는 버릇이 없었고 오로지 집착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누나인 사나즈였다.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누나를 감시했고 누나의 전화 통화내용을 엿들었으며 누나의 자동차를 몰고 돌아다녔고 누나의 행동을 일일이 참견했다. 부모님은 사나즈를 달래면서도 누나로서 인내하고 이해하며 동생이 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모성 본능을 발휘해줄 것을 간청했다. - P38

사나즈는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자기처럼 젊었을 때 어머니의 상황과 비교하고 있을까? 사나즈는 어머니 세대의 여자들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거나 남성들과 즐겁게 교제할 수도 있었으며 경찰대에 들어가거나 비행기 조종사도 될 수 있었고 여자에 관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진보적인 법률 하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을까? 사나즈는 혁명 이후의 새로운 법률에 의해 결혼 가능 나이가 열여덟 살에서 아홉 살로 낮추어졌고 또 다시 간통이나 매춘에 대해 돌로 쳐죽이는 형벌이 허용되었다는 사실로 인해서 굴욕감을 느끼고 있을까? - P60

『천일야화』의 기본적인 틀이 되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왕의 불합리한 규칙의 희생자가 되는 세 종류의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셰에라자드가 등장하기 전에 이야기 속의 여인들은 배신하고 살해되는 사람(왕비)과 배신할 기회도 갖기 전에 살해되는 사람(처녀들)으로 구분된다. 셰에라자드와 달리 처녀들은 이야기 속에서 목소리가 전혀 없어서 대체로 비평가들이 무시하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저항도 항거도 없이 그들의 처녀성과 목숨을 내어준다. 그들은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개죽음을 당하다시피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왕비의 부정은 왕의 절대적인 권위를 앗아가지 못하고 단지 그의 균형을 깨뜨려 놓았을 뿐이었다. 두 타입의 여성-왕비와 처녀들-모두가 왕의 세력 범주 안에서 행동하고 자의적인 법률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왕의 공적인 권위를 암묵적으로 수용한다. - P45

셰에라자드는 다른 약속조건을 포용하기로 선택함으로써 폭력의 순환을 깨뜨린다. 그녀는 왕과는 달리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상상력과 사유를 통하여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 P45

야씨는 또한 녹색 정문을 통하여 대학을 들어설 때 느끼는 희열감도 묘사했다. 이 시와 그녀가 제출한 다른 글에서 이 (대학의)정문은 그녀의 삶에서 거부되고 있는 모든 평범한 일들이 가능한 금지된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마법의 입구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녹색 정문은 야씨에게는 그리고 내가 가르치는 다른 아가씨들에게는 닫혀 있었다. 정문 바로 옆에 커튼이 달려 있는 조그만 통로가 있었다. 그것은 정도에서 어긋난 통로로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곳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만한 침입자의 권위로 뻐끔히 벌어져 있었다. 이 통로를 통하여 내가 가르치는 아가씨들을 포함한 모든 여학생들이 점검을 받기 위해 조그맣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첫 번째 회합이 끝나고 세월이 흐른 후에 야씨는 이 방에서 행해진 일들을 묘사하곤 했다. - P64

"우선 나는 옷을 제대로 갖춰 입었는지 검사를 받곤 했다. 코트 색깔, 유니폼의 길이, 스카프의 두께, 신발 형태,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물건들, 심지어는 눈에 띄는 아주 옅은 화장의 흔적, 반지 크기나 반지가 시선을 끄는 수준 등 내가 대학 캠퍼스에 들어갈 수 있으려면 이 모든 것이 점검되어야 했다. 바로 이 대학에서 남자들도 교육을 받고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대학의 표상과 깃발이 달려 있는 으리으리한 정문이 아무 편견 없이 활짝 열려 있었다." - P65

그녀(야씨)는 이슬람의 도덕체계와 번역을 가르치는 교수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교수님은 필즈베리 도우보이(빵 굽는 사람의 모자를 쓴 밀가루로 만든 사람으로 필즈베리 회사 광고에 나옴-역주)처럼 생겼어요 하고 야씨는 말했다. 아내가 죽고 삼 개월 후에 그는 처제와 결혼을 했다. 왜냐하면-이 부분에서 야씨는 목소리를 낮추었다-‘남자들한테는 특별한 생리적 요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 P65

궁극적으로 아버지는 불복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혐의에서 벗어났다. 그 불복종을 나는 항상 기억한다. 그후 그것은 나에게 하나의 생활방식이 되었다. 한참 후에 나보코프의 ‘호기심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불복종이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아버지한테 내려진 판결이 떠올랐다. - P97

나스린은 침착하게 종이들을 푸른 홀더에 집어넣고 각 파일마다 날짜와 주제를 적어 넣으면서 자기 막내 삼촌이 상당히 믿음이 좋고 신실한 사람인데 자기 나우 겨우 열한 살이었을 때에 조카인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말했다. 삼촌은 미래의 아내를 위하여 몸을 정결하고 순수하게 지키고 싶기 때문에 여자들과의 교제를 거부했다고 말하곤 했던 사람이라고 나스린은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었다. ‘정결하고 순수하게,‘ 나스린은 조롱하듯이 그 말을 되뇌었다. 다루기 힘든 성격인 데다 가만히 있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는 나스린을 삼촌이 일주일에 세번씩 일 년동안 개인교습을 했다. 그는 조카에게 아랍어를 가르쳤고 또 어떤 때는 수학도 가르쳐주었다. 책상에 나란히 앉아서 공부하던 시간에 삼촌은 아랍어의 시제를 반복해서 가르치면서 두 손으로 나스린의 다리와 온 몸을 더듬었던 것이다.

- P103

결혼승낙을 한 날 나는 내가 이혼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자기 파괴적인 충동이나 내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는 모험은 전혀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 P167

이름: 오미드 가립
성별: 남자
체포날짜: 1980년 6월 9일
체포장소: 테헤란
감금된 곳: 테헤란의 카스르 감옥
죄목: 서구화된 가정에서 야육되어 서구화됨, 연구를 빌미로 한 유럽에서의 장기체류, 윈스턴 미제 담배를 피움, 좌파적인 경향을 나타냄.
선고 내용: 3년 징역, 사형 - P192

대부분의 혁명 단체들은 개인의 자유 문제에 대하여 정부와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짐짓 겸손한 체하면서 그것들을 "부르주아적"이고 "퇴폐"한 것이라고 치부했다. 이런 까닭에 새로운 지배계층 엘리트들은 몇몇 개의 아주 보수적인 법률 조항들을 쉽게 통과시킬 수 있었고 심지어 사랑을 포함한 감정의 표현이나 일부 제스처들을 불법화시키기까지 했다. 새로 들어선 정권은 새 헌법이나 국회를 확립하기 전에 결혼 보호법을 먼저 폐기했다. 새 정권은 발레나 춤을 금지시켰고 발레리나들에게 연기자나 가수 중에서 선택하라고 지시했다. 훗날 여자들은 가수도 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여성의 목소리가 머리카락과 마찬자기로 성적으로 자극적이므로 계속 감추어 두어야할 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 P214

전쟁에 대한 우리들의 양면적인 태도는 주로 이 정권에 대한 우리들의 양면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테헤란에 대한 첫 공긊에서 부유층이 살고 있는 지역의 한 가옥이 공격을 받았다. 그 가옥 지하에 반정부 게릴라들이 숨어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하세미 라프산자니는 겁먹은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금요기도회에서 아직까지 폭격으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폭격 희생자들은 조만간에 처형될 예정이었던 "거만한 부자들과 파괴 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여성들에게 잠을 잘 때 옷을 점잖게 입으라고 충고했다. 그렇게 되면 집이 공습을 당하더라도 그들은 "이방인들의 눈에 점잖지 못하게 노출되지"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P312

정부 내 몇몇 인사들과 과거의 일부 혁명가들은 이슬람 정권이 우리 지식인들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결국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를 강제로 지하로 끌어 내렸지만 정부는 또한 우리를 더 매력적이고 더 위험하고 이상하지만 더 강력하게 만들어버렸다. 정부는 지식인의 숫자를 줄여놓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지식인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다시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그들이 지식인들을 좀더 통제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 것도 그런 결정을 내리게 한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그들은 한때 퇴폐적이고 서구화되었다고 낙인을 찍었던 나 같은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 P344

나는 처형당한 내 학생에 대해서 그녀에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들이 감방에서 어떻게 지냈으며 그들이 함께 있을 때 어떤 다른 추억들을 서로 나눴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만일 마하타브가 이야기해 준다면 내가 꼭 어리석은 짓을 할 것만 같았고 그러면 오후 강의를 할 수 없을 것처럼 느꼈다. 나는 아기의 나이를 물어보았으나 그녀의 남편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그녀에게 내가 좋아하는 질문을 할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은 서로 사랑했어요? 나는 많은 여학생들이 감옥에서 풀려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여하튼 결혼이 정치활동에 대한 해독제라고 생각하는 교도관들의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한 부모에게는 이제 그들이 "착한"딸들이라는 것도 증명할 수 있었으며 또 그저 결혼 이외에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결혼을 했다. - P424

"임시 결혼은 어때요?" 나스린이 오렌지 껍질을 퍼즐 조각처럼 접시 위에 가지런히 놓으면서 말했다. "여러분들은 우리 대통령이 내놓은 개화된 대안을 잊고 있는 것 같군요." 나스린은 이란에만 있는 이슬람교의 규칙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규칙에 의하면 남자들은 네 명의 공식적인 아내를 얻을 수 있고 원한다면 임시 아내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이러한 규칙을 만든 논리는 아내들이 남자들을 충족시킬 능력이 없거나 아니면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없어서 충족시킬 수 없다면 남자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어떻게든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십 분 정도로 짧은 기간이나 아니면 길게는 구십구 년 동안 그러한 계약관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개혁주이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가지고 있던 라프산자니 대통령은 젊은 사람들이 임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498

남자들은 그저 이 나라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때때로 든다고 말하는 미트라는 초조해 보였다. 남자들한테는 더 쉽지요 하고 야씨가 말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곳은 남자들의 천국일 수 있잖아요. 하미드가 말하는데 만일 우리가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면 우리는 언제라도 해외로 휴가를 떠날 수 있을 거래요 하고 미트라가 말했다.
분명 남자들한테는 상황이 훨씬 낫지요. 하고 아진이 말했다. 결혼이나 이혼과 관련된 법을 보세요. 종교와 관련이 없는 소위 보통사람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 번째 아내를 데리고 사는지 보시면 알잖아요. 만나가 말했다. 특히 일부 지식인들 말예요, 자유나 그런 모든 것에 대한 주장을 펼쳐서 유명해진 사람들도 그래요. - P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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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8 0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20-06-08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려고 롤리타를 다시 읽으셨군요.
이 소개글 정말 좋네요.
절판이 아니라면 바로 사서 읽고 싶어요.
저도 도서관을 한 번 뒤져봐야겠어요.

다락방 2020-06-08 15:17   좋아요 0 | URL
저희 동네 도서관에는 없어서 저는 광진구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보게 됐어요. 회원판매 중고가는 너무 비싸고요 ㅠㅠ 감은빛님 제인 오스틴 책 재미있게 읽으셨잖아요. 이 책도 아주 재밌게 읽으실 것 같아요!

감은빛 2020-06-11 15:24   좋아요 0 | URL
우리 지역구 관내 공공도서관 전체를 검색해봐도 이 책은 없네요.
다른 자치구까지 찾아보는 건 현재 제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요.
일단은 중고 알림을 등록했어요.
알라딘에 등록된 중고책들은 모두 정가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등록되어 있네요. ㅠㅠ

책식동물 2023-06-14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갑작스러우셨겠지만 북플 친구 신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리뷰를 읽는데 다락방님이 많이 보이셔서 친숙하기도 했고, 아자르 나피시의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 리뷰 쓰신 것을 무엇보다 인상 깊게 읽어서 신청 드렸습니다. ㅎㅎ 중학생 때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인식하고 ‘hmm...노잼‘ 이랬는데(학생아...) 이 리뷰를 읽고 책을 샀습니다...! ㅋㅋㅋ 저도 잘 읽고 리뷰 보태서 다른 독자를 이 책으로 이끌고 싶네요. 앞으로도 올리시는 리뷰 재밌게 잘 읽겠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다락방 2023-06-15 07:39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기묘한고라니 님. 2020년에 쓴 글인데 2023년에 이렇게 누군가에게 댓글이 달리네요. 글은 그대로 다 기록이 되고 흔적이 되어 남는 것 같습니다. 현재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는 절판인데 중고로 구매하셨나요? 저는 도서관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여 빌려 읽었습니다.

앞으로 종종 뵙겠습니다, 기묘한고라니 님!

책식동물 2023-06-15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고로 구매했습니다. 정가랑 비슷한 가격이어서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ㅎ 롤리타 말고도 오만과 편견도 있잖아요. 저의 최애소설 top3 중 두 권이 있어서 그냥 샀습니다ㅎㅅㅎ 다락방 님 리뷰도 있어서 책이 맞지 않더라도 의미를 부여하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말할 수 없는 비밀 (2disc) [일반판]
주걸륜 감독, 계륜미 외 출연 / 프리미어 엔터테인먼트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점심식사를 하면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와, 밥 먹다가 젓가락질을 멈추기를 여러번이었다.


1. 오글거림

와, 이세상 오글거림이 아니다. 진짜 깜짝 놀랐다. 주인공은 고등학생들인데, '상륜'은 전학온 예고에서 '샤오위'라는 여고생과 처음 만나게 된다. 첫만남에서 상륜은 샤오위에게 반하는데, 음악실에서 네가 피아노로 쳤던 곡이 무어냐, 물으니, 샤오위는 까치발을 하고 상륜의 귀에 자신의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대고


"비밀이야."


하는게 아닌가. 와...세상 오글거림. 아니 이런 오글거림이라니. 이런 오글거림은 도대체 뭐지. 아무리 고등학생들이라지만, 아니 고등학생들일수록 더더욱 이런 오글거리는 행동은 안하지 않나. 게다가 수시로 '날 잡으면 말해줄게' 하고 자기 잡으라고 뛰는 씬이 나온다. 오...마이....갓.... 세상 놀래버렸네. 2008년 개봉작인데, 가만있자, 2008년에 내가 몇살이었더라? 그때는 이런 오글거리는게 자연스러웠던가. 귓속말로 '비밀이야' 하고 도망가는거, 나는 그간 살면서 연애에서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건데, '날 잡으면 말해줄게' 하고 도망가는 거, 그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샤오위랑 상륜이 그거 너무 잘해서 깜놀. 어쩌면... 그래서 샤오위는 진정한 사랑을 받고 산것인가.. 나 잡아봐라 안해서 나는 연애가 항상 금세 끝났나.. 긴 연애는 나 잡아봐라 가 정답인가... 와, 까치발로 비밀이야 하는데 마라탕 먹고 있다가 중국당면 던질 뻔...




2. 피아노 연주

샤오위도 상륜도 피아노 전공하는 학생들이라 피아노 연주 장면이 많이 나온다. 특히나 전학생 상륜은 재학생인 피아노 전공자와 피아노 배틀 붙는데 너무 좋았다! 이 영화에서는 뭐니뭐니해도 다른 사람들이 늘 말해왔던 것처럼 피아노 배틀 장면이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다시 열심히 밥을 먹다가, 피아노 배틀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멈춰서는 계속 화면만 봤다. 크-




3. 장르 전환

한시간 가량은 이세상 감성이 아닌 감성에 푹 젖어서 진행되는 영화인데, 나는 정말이지, '와 이세상 감성이 아니다' 이러면서 이 오글거림을 어쩔 줄을 몰랐는데, 갑자기, 와, '너 혼자 춤췄잖아' 라는 대사에 영화는 급속하게 장르를 변경하는것인가...........이거, 들은 적 없는데 호러였던가, 하고 밥먹다가 또 멈췄다. 오늘은 냉모밀과 히레까스 셋트를 먹고 있었다. 처음간 돈까스 집이었는데 히레까스의 고기가 아주 두꺼워서 '내일 다시 와서 모밀 치우고 히레까스만 먹어야지' 생각했다. 돈까스 소스에 겨자 섞어서 먹으면 너무 맛있다.

.

.

.

.

무슨 말 하고 있었지?

아, 장르, 장르는 호러가 되는것인가, 사람들 의리 있게 입다물고 이것이 호러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것인가, 깜놀했다가, 그러나 이것은 변함없는 로맨스였음에.....



여러차례 밥먹기를 멈추게된 영화였지만, 그래도 남김없이 다 잘 먹었고, 대만 로맨스는 나랑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이 영화 하나 보고 생각하다가(아니야, 나 또 뭐 본 거 있지 않나?), 그래도 한 편쯤은 더 보도록 하자, 생각하다가, 설마 다른 영화에도 까치발로 비밀이야~ 이러면서 도망가는 장면 나오는건 아니겠지, 2008년 감성이라 그런거겠지, 생각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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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6-0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포스팅 보면서 여러 차례 흐흐흐흥 웃었어요.
아 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세상의 오글거림이 아니라니 어떤 지경인가 정말 궁금하지만 안 볼 거 같아요. 앜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다락방 님 단발머리 님은 창비 책 2권 뭐 신청하셨게요? 궁금하죠?
‘날 잡으면 말해줄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03 14:54   좋아요 0 | URL
이를 어쩌나요? 단발머리님이 무슨 책을 받으셨는지 저는 이미 알고있지롱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뇌와 죽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여주는 말을 할 때도 가끔 똑바로 서서 하지 않고 고개 약간 15도 정도 기울여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왜저렇게 얘기하지? 진심 궁금했습니다...........................................피아노 치는 장면만은 진짜 좋았어요! 으흐흐흐

잠자냥 2020-06-03 15:11   좋아요 0 | URL
아잉참, 메일 새로 받고 새로 신청하셨다니까요. ㅋㅋㅋ 그건 모르죠?
‘날 잡으면 말해줄게~‘(고개를 15도 각도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왠지 유행어 될 거 같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03 15:13   좋아요 1 | URL
뭐..뭐...뭐라고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세상에나 네상에나!!! 잠자냥님 잡으러 뛰어야겠네요? 거기서욧!!

=3=3=3=3=3=3=3=3=3=3=3=3=3=3=3=3=3

단발머리 2020-06-03 15:2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그 쪽으로 뛰지 마시고요. 진지하게 물어볼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까 다락방님 이메일 못 받으셨어요? 창비세계문학 리뷰대회 팀장이 본명 걸고 어제 이메일 보냈는데 말입니다. 일단 그게 확인이 되야 ‘나 잡아봐라‘가 가능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 제 차례죠? 나 잡아봐라!!!

다락방 2020-06-03 15:30   좋아요 2 | URL
제 생각엔, 아마도 제 이메일을 받고 ‘원하는 걸 말해봐라‘가 된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러니까 제가 5/26에 이런 메일을 보냈더란 말입니다.



랜덤으로 보내주신다고 하는데, 저는 이미 창비세계문학전집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바,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이반일리치의 죽음>은 피해주시기 바랍니다.

가급적이면,
<주군의 여인 1,2>, <대위의 딸>,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중에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1-10부터 다 가지고 있고요 드문드문 미하엘 콜하스, 패니와 애니 또 여러권 가지고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이렇게 보내서 답장도 받고 책도 주군의 여인으로 받았어요!!

단발머리 2020-06-03 15:41   좋아요 1 | URL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 놀랍고 기쁜일은 창비에 탄원서를 보내신 잠자냥님과 창비 직원 중에 알라딘 글 읽는 사람 많아요 하시며 어쩌면 상황을 전달하셨을 수도 있는 순오기님, 그리고 이런 이메일을 보내신 다락방님의 수고와 노력의 결합으로서 이루어진 듯 합니다.

어제, 창비에서 이멜을 보내와서는 여자저차 불만 후기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됐다. 우리에겐 이런이런 사정이 있었으나 아무튼 미안하다. 좋아하는 책 두 권을 보내드리겠다.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더랩니다. 우리 이메일 공유하는 사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저는 ***을 보내달라 하였더랬죠. 하하하!

잠자냥 2020-06-03 15:43   좋아요 1 | URL
이거슨 집단지성의 힘(잉?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6-03 16:07   좋아요 1 | URL
역시 말은 하고 볼 일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6-03 15: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저는 여태 1인 시위하시겠다는 잠자냥(20.여)님하고, 거기에 가세하시겠다는 다락방(24.여)님 덕택인 줄 알았는데 다락방 님은 또 지하에서 이리 맹활약을 하셨군요. 감격입니다. 흑흑흑....

다락방 2020-06-03 16:08   좋아요 1 | URL
아무튼 그래서 결과적으로 모두가 다 원하는 책을 받을 수 있게 된것이지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모두 다행입니다. 꺅 >.<

저는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을 가장 원하긴 했는데, 딱 두 권만 정해서 얘기할 걸 그랬어요. 괜히 선택의 여지를 줘서 1등으로 원한건 안왔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험버트는 40대 중반의 남자로 글을 쓰며 살아가고 삼촌이 남겨준 돈으로 딱히 궁핍하지 않게 생활하고 있다. 그런 험버트가 잠시 샬로트라는 과부에 집에 머물게 되는데 거기에서 그녀의 딸인 롤리타를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이 때 롤리타의 나이는 열두살 이었다. 애초에 미성년 여자아이에게 성욕을 느끼는 이상증상을 가진 그였지만, 롤리타를 보고는 그 욕망이 최고조에 달한다. 샬로트가 없는 틈을 타 롤리타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고 롤리타를 훔쳐보고 싶어하고 만지고 싶어한다. 그를 향한 연정을 품고 있던 샬로트는 그녀의 마음을 그에게 고백하며 자신의 마음은 이루어질 수 없을테니 자신의 집을 떠나달라 그에게 말하지만, 그는 롤리타의 곁에 있기 위해 샬로트와 결혼하기로 한다. 롤리타가 캠프에 참가하느라 집을 떠나 있는 틈에 험버트와 샬로트는 결혼을 하고 그 소식을 캠프에 가 있는 롤리타에게 알리고 부부생활을 시작한다. 험버트는 롤리타와 빨리 만나고 싶고 떨어져있고 싶지 않은데 샬로트는 십대의 롤리타가 험버트를 귀찮게 할까봐 걱정하며 그녀가 캠프에서 돌아오면 기숙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 자신의 계획과는 반대로 일이 흘러가자 그는 불면증을 핑계로 수면제를 처방받아와 샬로트를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샬로트는 그가 죽이기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험버트가 숨겨둔 일기장을 읽어보니 그 안에는 롤리타에 대한 더러운 욕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캠프의 롤리타에게 편지를 쓰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편지를 써 급한 마음에 우체통에 넣으러 가다가 사고를 당한 것. 만약 그녀가 그 때 죽지 않았다면 험버트의 욕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졌을테고 롤리타는 엄마와 함께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죽는 바람에 험버트의 더러운 욕망은 처벌받는 대신 실현된다. 그는 캠프로 찾아가 롤리타를 데려오고 엄마가 죽었다고 말하면서 그녀를 데리고 1년간 여행한다. 롤리타를 만지고 싶다는 욕망이 가득한 채로 지내다가 롤리타의 엄마가 죽고나서는 그녀를 강간하기 시작하는 거다. 물론 험버트는 그것을 '사랑을 나눈다'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사십대의 남자와 열두살의 여자가 하는 섹스가 '사랑을 나누는 것일 리' 없다.



그렇게 일년여를 여행하다가 정착해 롤리타를 학교에 보내지만, 험버트는 롤리타에게 집착한다. 롤리타가 남자아이들과 노는 것도 금지되어있다. 롤리타와 험버트가 사는 집에서는 학교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험버트는 롤리타가 자기를 떠날까봐 걱정하고, 자신이 주는 용돈을 롤리타가 모으고 있다는 것에 두려워한다. 자신의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어딜 갔나 초조해하며 찾아야 하고 혹여라도 자신과 섹스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그런 롤리타가 학교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고 연극을 아주 재미있어 하게 되었는데 공연을 앞둔 일주일전, 롤리타는 험버트에게 다시 여행을 하자고 한다. 이번에는 자기가 가자는 대로 가자고. 그렇게 다시 여행을 하면서도 그의 신경은 언제나 롤리타가 다른 남자애들과 히히덕거리지 않을까에만 쏠려있다. 어느 날 몸이 아픈 롤리타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틈을 타 험버트로 부터 도망친다. 험버트는 롤리타를 찾아 헤매기를 3년, 그 사이에 다른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데, 롤리타로 부터 돈이 필요하다는 편지를 받는다. 그렇게 찾아간 롤리타는 열일곱의 나이에 결혼과 임신을 한 상태였고, 남편의 벌이가 좋지 않아 돈이 필요했던 것. 험버트는 롤리타에게 자신이 가진 돈을 충분히 쥐어준 뒤, 자신을 떠나게 만들었던 남자를 찾아가 살해할 결심을 하고, 그대로 한다.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헤밍웨이는 까페에서 우연히 보게된 여자를 자신의 글에 등장시키고 싶어하다가 그녀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아 이내 포기하고 자신이 쓰던 글을 마저 쓰는 일에 대해 기록한다. 글은, 쓰는 사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다. 특히나 소설은 지어내는 이야기인지라 거기에는 내가 등장시키고 싶은 인물을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등장시킬 수 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 안에서 나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룬 것으로 표현할 수도 있고 만나본 적 없던 멋진 남자를 등장시킬 수도 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 안에서 세상은 이미 성평등을 이루고 있을 수도 있고, 성범죄자는 사지가 찢겨 죽을 수도 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 안에서는 나에게 모든 권한이 있어 그리고 싶은 세상을 그릴 수 있는 거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은 전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악인을 등장시키거나 범죄자를 등장시킨다고 해서 그것이 범죄를 조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폭력을 드러냄으로 인해 폭력의 정당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악인을 등장시키고 범죄를 등장시켜서 그것들이 더 유해함을 말할 수 있다. 그건 충분히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를 꾸며내지만, 어쩔 수 없이 글쓴이의 마인드가 글쓴이의 글로 인해 드러나기도 한다. 영원한 사랑을 말하고자 했던 <달의 영휴>는, 그러나 독자인 내가 읽기에 아동성애를 위한 변명으로밖에 보이질 않았다. 어린 아이랑 사랑하는 노인남자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을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꼴이랄까.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재독이다. 이미 몇 해전에 읽었던 책이고, 그때도 글을 참 잘 썼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최근에 읽고 싶은 책이 생겼는데 그 책을 읽기 위해서는 준비과정으로 <롤리타>를 다시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괴로움을 감수하고 다시 읽기 시작했다. 괴롭다는 건 그 안에 분명한 아동성학대가 담겨있다는 걸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까닭이었다.


읽으면서 나보코프가 이 책을 왜 썼을까, 를 당연히 여러차례 생각했다. 옮긴이는 해설에서 나보코프는 굳이 예술이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최소한 나보코프가 아동성애를 위한 변명으로 이 글을 쓴 건 아니라는 거였다. 아동성애를 조장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코프는 아동성학대가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지는지 그 누구보다 명확히 아는 사람이었다. 이 책 속에서 험버트는 아동성애를 가지고 있는 성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의 성애가 드러나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것은 숨겨야 할 것임을,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롤리타를 만지고자 할 때는 그것이 노골적으로 만진다는 티가 나서는 안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고, 롤리타의 '엄마'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것도 무엇보다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있는 곳, 보호자가 있는 곳에서는 그 아이를 만져서는 안된다, 큰일난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인거다. 이런 이상성애(아동성학대 범죄욕망)를 가진 험버트는,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해자에게 서사를 주는 그대로, 어릴적에 스스로 상처 받은 경험이 있던 사람인가? 험버트는 그렇지 않았다. 험버트는 유복한 집에서 자랐고 교육도 잘 받은 사람이었다. 험버트를 둘러싼 어른들은 험버트를 폭력적으로 대하지도 않았고, 마땅히 그러하게도 성학대도 당하지 않았다. 험버트는 자신이 아동에 대해 성적욕망을 갖게된 경위를, 자신의 십대에 사귀었던 십대 소녀와의 이루지 못한, 다다르지 못한 섹스 때문이었다고 얘기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다해도, 그것이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변명이나 핑계는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무수히 많고, 그들 모두가 범죄자가 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험버트는 자신의 아동성애가 세상에 드러나면 안되기에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결혼을 한다.



뚜쟁이의 앨범이 어떻게 데이지꽃 화환으로 연결되는지는 모르지만 내 안전을 위해서 나는 곧 결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규칙적인 생활, 집에서 만든 음식, 결혼에 딸린 온갖 관습들, 잠자리에서의 상투적인 절차, 또 누가 알겠는가, 어디선가 도덕적인 가치가 꽃피고 정신적 능력이 생겨나 나를 도울는지. 위험스럽고 타락한 내 욕망을 정화시키지는 못한다 해도 조용히 다스릴 수 있을지는 모른다. (p.36)

험버트는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결혼을 선택한건데, 그렇다면 그의 아내는... 그의 아내의 인생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책을 읽는 내내 너무 가슴이 아팠다. 롤리타가 당한 성학대 때문에. 험버트는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롤리타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롤리타에게 선물 공세를 퍼부으며 자신들의 섹스를 '사랑을 나눈다'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열두살 아이에게 가해진 것은 섹스일 수 없고, 그것은 강간이다. 롤리타는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험버트와 내내 둘만 함께 있으면서 그동안 내내 그에게 성적대상이 된다. 험버트는 자신은 참으려 했지만 롤리타가 처음에 유혹했다고 말한다. 정말 역겹기 짝이없는데, 그러니까 자신은 롤리타의 순결을 지켜주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성경험이 있는 까진 소녀였다는 거다. 롤리타가 이미 성경험이 있든 없든 설사 천번 있다고 하더라도, 사십대의 험버트가 열두살의 롤리타를 안을 합당한 이유는 결코 되지 못한다. 롤리타는 험버트와 같이 지내면서 화가 날 때면 '당신이 날 강간했을 때' 라고 그것이 강간임을 얘기한다. '엄마가 살아있었을 때도 날 범하고 싶어했잖아' 라며,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역시 드러낸다. 무엇보다 나는 이 강간이 롤리타의 엄마가 죽고 나서 이루어졌다는 것 때문에 너무 슬펐다. 이 범죄는 롤리타가 '고아'인 상태에서 벌어진다. 롤리타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사십대의 남자 험버트는 엄마도 없는 고아 롤리타를 롤리타의 집으로부터도 데리고 나와 롤리타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내내 데리고 다니는거다. 롤리타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없고 그 누구도 롤리타를 지켜주지도 보호해주지도 못한다. 롤리타가 가끔 밤에 혼자 울때마다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 롤리타를 안고 도망치고 싶었다. 


이것이 범죄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험버트가 비열한 건,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그렇듯이, 이 아이가 가장 약한 상태를 노렸다는 거다. 아이라는 존재 자체로 어른보다 약한게 사실이지만, 그 아이를 둘러싼 주변 어른들이 있다면 그 아이를 그렇게 함부로 하기는 쉽지 않았을테니까. 롤리타에게 아빠 엄마가 다 있었다면, 그들과 함께 살았다면, 험버트의 강간은 그저 욕망에 그치고 실현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그러나 롤리타에겐 아무도 없었고, 무엇보다 험버트는 롤리타에게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자신이 롤리타의 아버지를 자처한 사람이 아니던가. 나는 이점이 너무가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리고 현실의 뉴스를 통해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약한 상태의 아이가 학대와 폭력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범죄란 원래 비열한 것이지만, 약한 사람이 더 약해진 틈을 타 공격을 하는 건 더 비열하다. 그 비열한 어른 남자의 욕망에 몇 년간을 피해 입은 롤리타 때문에 몇 번이나 울고 싶었고, 그러나 그 피해로부터 벗어났다 해도 평생을 그 기억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앞으로 롤리타의 삶은 대체 어떻게 될것이란 말인가. 롤리타는 험버트로부터 성학대도 당하지만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만약 네가 이 일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나는 감옥에 가는 걸로 끝나겠지만, 너는 그렇다면 위탁가정을 전전하다고 의지할 곳도 없어 살기가 힘들어져, 그러니 입닥쳐야 해, 라고. 열두살 아이가 열세살이 되고 열네살이 되는동안 듣는 말로 지나치게 가혹하다. 이것이 이 아이의 어린시절이라니.



롤리타가 다른 사람과 함께 도망쳤고, 나는 그 사람이 험버트와 롤리타의 관계를 알고 롤리타를 거기에서 꺼내주려는 것인줄로만 생각했다가, 롤리타를 데리고 도망친 연극부 남자선생이 영화에 출연시켜준다고 꾀어 롤리타에게 포르노를 찍게 했다는 사실 때문에 또 내내 아파야 했다. 한 번 범죄의 희생자가 되었던 아이는 이렇게 또다시 범죄에 노출된다. 롤리타가 함께 있던 아버지가 친아버지였고 아이에게 진득한 사랑을 주는 그런 보호자였다면, 연극부 선생이 롤리타를 납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험버트가 롤리타를 찾기 위해 롤리타의 옛집에 찾아갔을 때 거기서 피아노를 치는 소녀를 본다. 피아노를 치던 소녀는 험버트를 발견하고는 놀라서 자리를 피하고 그 때 아이의 아버지가 나온다.




내가 살던 집에 들어가볼까? 투르게네프의 단편에서처럼, 거실의 열린 창문에서 이탈리아 음식이 쏟아져 나온다. 어떤 낭만적인 영혼이 피아노를 치는가, 로의 사랑스런 다리 위에 햇살이 비치던 그 미혹의 일요일에 뚱땅거리는 피아노 소리는 없었는데. 나는 곧바로 알아챘다. 내가 풀을 베던 잔디에서 황금빛 피부에 갈색 머리, 흰 바바지를 입은 아홉, 열 살쯤 된 님펫이 크고 검푸른 눈에 야생의 황홀함을 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네 눈이 참 아름답구나, 라고 별 뜻 없이 그저 의례적인 찬사로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 했는데, 그녀는 급히 안으로 들어갔고 음악이 갑자기 그쳤다. 그러고는 땀이 번들거리는 거칠게 생긴 거무스름한 사람이 나와서, 나를 노려보았다. (p.394)



롤리타를 처음 만난 그때, 롤리타에게도 누군가가 있었다면. 롤리타를 바라보는 험버트를 거칠게 쏘아봐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린 존재에게 보호해줄 어른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가. 그래서 그 아이가 맞이하게 된게 대체 무엇인가. 험버트는 어른으로서 그리고 나중엔 아버지로서, 대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건가. 내가 험버트를 죽인다고 해도 롤리타의 어린 시절은 그대로일 것이다. 죄를 범한 사람에게 합당한 벌이 내려진다 해도 롤리타의 어린 시절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 괴롭다. 너무 괴롭다. 그녀가 살아갈 인생은, 험버트가 없었다면 다른 식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 괴롭다.



그녀는 테니스보다 수영을 좋아했고, 수영보다 연극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주장한다. 만일 그녀 내부의 어떤 것이 나에 의해 부서지지 않았더라면-아, 그때는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그녀는 그 완벽한 폼에다 이기겠다는 의지를 덧붙여 진짜 여성 챔피언이 되었을 것이라고. 팔 밑에 라켓 둘을 끼고 윔블던에 있던 돌로레스. 아라비아의 낙타를 선전하는 돌로레스. 프로 선수가 되었을 돌로레스. 영화에서 여성 챔피언을 연기할 돌로레스. 돌로레스와, 흰 머리에 겸손하고 말 없는 코치인 남편, 늙은 험버트. (p.316)


나보코프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학대가 그 어린아이를 망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또 아이가 가장 약한 틈을 타 비열하게 이루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성학대 피해자이자 생존자인 롤리타 때문에 몇 번이고 울고싶었고 가슴 아팠는데, 이 책을 읽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이런 마음을 갖지 않겠는가. 롤리타를 읽는다면 롤리타의 학대받은 어린 시절에 함께 아파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롤리타는 왜이렇게 치명적으로 나쁜 소설의 대명사가 되었는가. 나는 내내 그것을 찾아 헤매야 했다. 우선, 아동을 성적대상으로 묘사할 때 지나치게 자세하고 아름답다는 데 있었다. 만약 아동성애라는 범죄적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묘사에 치중해 자신의 욕망이 더 발현될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롤리타가 당한 학대라든가 아동 성범죄가 일어나는 비열한 순간들에 대한 것을 캐치하지 못하는게 아닐까. 그것이 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나쁜 영향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이 괴로운 소설이 왜 그렇게 악명을 얻게 된 것인가, 생각하면서, 이 소설은 결코 아동성애를 조장하는 게 아닌, 오히려 아동성범죄가 일어나는 배경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음을 잘 말해주는데, 그런데, 왜 굳이 아동성학대에 대한 이야기여야 했는가, 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했다.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다루는 것이, 굳이 아동성학대여야 했을까. 자연스럽게 필립 로스 의 <휴먼 스테인> 생각도 났다. 필립 로스는 그렇게나 재미있고 고민이 많이 담긴 훌륭한 이야기를 써내면서, 그러나 그 안에서 페미니스트를 치명적인 멍청이로 묘사한 거다. 필립 로스는, 그렇게나 잘 쓰는 글솜씨로, 굳이 그래야했을까, 가슴이 아팠는데, 나보코프에 대해서라면 그것이 아동성학대이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정말 가슴 아픈건, 이 책의 옮긴이가 쓴  이 책 말미의 <작품 해설>을 읽고나서였다. 아, 나보코프여, 당신이 이 소설을 쓴 건 잘못이었네요. 왜? 


비평가들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소설이었기 때문에.


나는 작품 해설을 읽으며 몇 번이나 연필을 가지고 물음표를 그려야했다. 세상이,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난 후의 감상을 드러낸 비평가들이, 이 옮긴이를 포함하여, 다들 멀쩡한 사람들인건가, 책을 읽어보긴 한건가 싶었다. 



처음 읽으면 내용이 전통적인 도덕 관념을 상당히 벗어나 읽는 이에게 거부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40대 남자가 열두 살의 어린이와, 그것도 법률상의 아버지로서 딸과 육체적인 사랑을 하는 부도덕한 소설이라니! 그러나 읽을수록 이 괴물 같은 주인공의 눈물은 우스꽝스런 느낌에서 동정으로 바뀌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어느 순간엔가 읽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친다. 포르노 소설, 또는 도덕적 금기를 다루었다는 이유로 출판의 거부라는 시련을 겪고 하마터면 재로 변해 버릴 뻔한 소설이 이제는 현대 주요 작가의 대표작이 된 걸 보면 소설 어딘가에 감동의 근원이 숨겨져 있으리라. 작가가 그것을 보물찾기라도 하라는 듯 교묘하게 숨겨놓았으니 비평적 반응이 다른 소설의 경우보다 더 구구한 것은 당연한 듯싶다. -작품해설, p.433-434


험버트에 대한 동정으로 바뀐다니,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왜 동정하는가. 롤리타가 떠나서? 남들 몰래 '사랑'을 해야 해서? 자신의 사랑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못해서? 대체 여기 어디에 '감동'의 소지가 될 것이 있단 말인가.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숨겨야 할 것, 감춰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숨기고 감추는 거다. 아동에 대한 성욕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감춰야 해서 괴롭다고? 그건 동정의 여지를 줄 수 없는 부분인거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를. '감동' 만큼 롤리타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또있을까. 


문제는 계속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옮긴이의 문제가 아니다.



작품의 프로이트적 심리 분석이나 알레고리, 신화적인 분석등을 나보코프 자신이 거부하는 탓인지 [롤리타]에 대한 대부분의 비평은 주인공 험버트의 도덕성을 토론하는 경우가 많다. 라이오넬 트릴링은 이것을 페트라칸 시인들의 로라에 견줄 만한 순수한 사랑이야기로 보며, 더글러스 파울러는 험버트의 도덕성을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험버트는 샬로트를 죽이지 않았으며, 변함없이 롤리타를 사랑한다. 험버트를 먼저 유혹한 롤리타는 이미 성적으로 더럽혀졌으며, 퀼티는 험버트의 왜곡된 악을 상징하는 바 그를 죽임으로써 험버트는 도덕적으로 정화되었다는등의 해석이다.

리이L. L. Lee는 작품의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험버트는 도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롤리타를 가두어둔 것은 죄악이지만 행복하게 해주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것은 충분히 동적적이다. 부드러움과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험버트에 비해, 퀼티는 이런 사정을 모르기에 그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부드러움과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험버트에 비해, 퀼티는 이런 사정을 모르기에 그가 죽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험버틀 둘러싼 사회와 퀼티가 죄인인 험버트보다 더 부패했다는 식의 분석이다. 레바인도 소설의 끝에서 험버트는 죄를 깨닫고 참회하며, 자신의 악덕을 순화하기 위해 퀼티를 죽인다고 험버트에게 동정을 표시한다. -작품 해설, p.438-439



아아, 나보코프의 잘못은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거다. 비평가들로 하여금 개소리를 하게 만든 거. 험버트를 동정하게 만든 거. 그건 나보코프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맙소사, '변함업이 롤리타를 사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롤리타를 사랑한다면 롤리타에게 보호자로서 어린 시절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했다. 롤리타를 '변함없이 사랑'한다면서 몇 년간 감금하고 강간하는게 말이 되는가. 도대체 저 비평가들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게다가 아동납치, 성학대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만큼의 도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인가. 가두어두었지만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으니 동정한다고? '가두어둔다'와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가 함께 올 수 있는 말인가? 비평을 하는 사람들이 대가리가 비었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납치하고 성학대했지만 먹여주고 학교보내주고 옷도 많이 사주니까 괜춘괜춘해~ 이러는거야? 대체 아동성학대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어째서 감금하고 성학대를 일삼은 자에게 동정하는가, 비평가들이여...




당시의 몇몇 비평가들이 롤리타는 망명자 나보코프가 본 아메리카라는 상징적 해석을 내렸던 것에 비해, 최근의 해석은 이와 같이 험버트에게 동정을 표시하는 쪽이다. 그가 일견 괴물처럼 보이는 부도덕한 인간이지만, 그의 변함없는 사랑과 참회는 동정을 느끼기에 충분하고 퀼티를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정화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분석에도 불구하고 [롤리타]에는 험버트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이상의 아픔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작품 해설, p.439


나보코프의 문제, 이 롤리타의 문제를, 나는 작품을 읽으면서도 밝혀내지 못하다가, 작품 해설에 이르러서야 알아차린다. 나보코프는 남자 비평가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려운 소설을 썼다. 그 누구보다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문제가 많은 것이고, 그걸 드러내기 위해 이야기를 이렇게 짜임새 있게 구성했지만, 그러니까 나중에 자신이 빼앗아버린 롤리타의 어린 시절을 참회하는 것 역시, 나는 나보코프가 부러 넣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금과 가스라이팅과 강간이 이루어지는 그 비열한 상황에 대해 얘기하고 또한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다는 것까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놈의 비평가들은 자꾸 그걸 가지고 '진실한 사랑'운운하고 있는 거다. 대체 어른 남자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그건 상대를 학대하고 괴롭혀도 내가 충분히 사랑해 사랑해 해주면 완성되는 것인가? 역겹기 짝이없다. 

나보코프는 험버트의 입을 빌어, 아이를 보호하는 장치가 법적으로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걸 책에 넣어두었다.




여러분들은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진실로 법적인 상황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아직도 모른다. 아,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조금 배우기는 했다. 앨라배마 주에서는 보호자가 피보히인의 주소를 법원의 허락 없이 바꿀 수 없다. 미네소타 주에서는, 그곳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지만, 친척이 열네 살 이하의 아이를 영원히 맡게 되는 경우 법원은 어떤 간섭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질문: 숨막히게 예쁜 사춘기 귀염둥이의 의붓아버지, 한 달 동안 의붓아비였고 상당 기간은 신경증이 있는 홀아버에, 작지만 독립적인 수입이 있고, 유럽 태생이며, 이혼을 했고 정신병원에도 조금 있었는데 그런 사람도 친척이 되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보호자가 될 수 있는가? 만약 안 된다면, 나는 복지국에 신고를 하거나, 탄원서를 제출하여(어떻게 탄원서를 제출하나요?) 법원 사람이 유순하고 수상쩍은 나와 위험한 돌로레스 헤이즈를 조사하게 할 수 있나요? 크고 작은 마을의 도서관에서 내가 내밀히 조사한 결혼, 강간, 양녀등에 관한 책들은 국가는 어린이들의 최고 보호자라는 알쏭달쏭한 말 외에는 별로 알려주는 게 없었다. 필빈과 자펠-내 기억이 옿다면-은 결혼의 법적 측면에 대해 논한 아주 두꺼운 책에서 엄마 잃은 딸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의붓아버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어느 순진한 노처녀가 먼지 앉은 뒷창고에서 애써 구해다 준 사회 봉사 책자(시카고, 1936)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인데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다. <모든 미성년자가 보호자를 가져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법원은 수동적이어야 하고 오직 아이가 굉장히 위험한 상태일 때만 개입한다.> 내 결론은 보호자란 오직 그가 경건하게 공식적으로 희망했을 때에만 임명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의 출두 명령을 받아 그의 잿빛 날개 두 쪽을 펼치는 데 몇 달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고운 악마 아이는 법적으로 내버려진다, 돌로레스 헤이즈의 경우처럼. 그러고 나서 출두 명령이 오겠지. 판사의 몇 마디 물은, 변호사의 확인 답변, 웃음, 고개를 끄덕끄덕, 바깥의 부슬비, 그리고 날짜가 정해진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감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멀리 떨어져, 쥐처럼 구멍 속에 웅크리고 있다. 법원은 오직 돈 문제가 개입될 때만 열을 올리는 법이지. -p.234-235




나보코프의 문제는 이 책을 읽을 성인 남자들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토록이나 가해자의 서사에 집중하고 가해자에게 동정적이 되는 시선을 가진 남자들이, 이 소설을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 마음으로 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가해자가 참회하는 씬에서 동정을 느끼며, 늘 잘해주고자 했던 가해자의 마음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어른남자 독자들은 이미 가해자에 대해서는 순수한 마음이 된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이 비열한 범죄를 진정한 사랑으로 보다니, 보다보다 진짜 별꼴을 다보는 거다. 자, 열받지만 작품 해설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인용해보겠다.




이상과 같은 소설의 줄거리에는 사회에 대한 얘기, 현실적 문제, 정치 이야기나 작가의 도덕적 주장 등은 전혀 실려 있지 않다. 마치 동화 같다고 할까. 예를 들면 샬로트가 죽는 장면이나 퀼티가 죽는 장면에는 전혀 현실감도 긴박감도 없다. 오직 리얼한 것은 롤리타라는 인물 묘사와 험버트의 감정이다. 다시 말하면 이 소설에서 리얼한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이것을 읽고 있으면 우리는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운명적이고 격정적이고 마술적인 것, 극도의 자제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광적인 것. 롤리타 급우들의 이름을 시처럼 읊던 험버트,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던 험버트, 그녀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하던 험버트, 그녀를 잃어버릴까 하는 두려움으로, 감시하면 할수록 그녀가 더 포악해지는 사랑의 역효과를 깨닫지도 못할 만큼 험버트는 롤리타의 노예였다. -작품 해설, p.442



 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거에요.....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니겠는가, 라니. 갑자기 이 세상 모든 집착 스토킹 남들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그러니까 롤리타를 읽으면서도 이것을 사랑이라 생각하잖아. 그걸 읽는 독자들은 그러니까 헤어진 여자친구 찾아가서 다시 만나주지 않는다고 폭행하고 그러는 남자들인거야. 나는 너 싫으니까 이제 연락하지 말라고 해도 계속해서 집착해대는 남자들이 롤리타를 읽는다? 사랑인거죠. 상대가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시달리는데도 '나는 너가 좋아' 이러면, 이것이 그냥 사랑이 되는 매직... 야, 세상에, 어떻게, 열두살 아이를 감금 강간해놓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냐..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볼 수 있어. 롤리타에서 리얼한 게 사랑이라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사랑이란 게 뭔지에 대해서 기초부터 공부해야 한다. 내가 널 만지고 싶은 이 마음, 너가 싫다고는 하지만, 너가 어리긴 하지만, 그런데 너 만지고 싶어, 이건 사랑이야... 이딴.. 와...... 나보코프는 잘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독자들을 상대로 아동성범죄자를 등장시키면 안되는 거였다. 그게 나보코프의 큰 잘못이다. 개인적으로는 십대 소녀에 대한 육체 묘사를 너무 많이, 그렇게나 잘 쓰는 글솜씨로 해놔서 유감이었는데, 성인 남자들이 이걸 사랑으로 말하고 험버트 동정하는 거 보니, 나보코프의 잘못은 애초에 이 작품을 썼다는 데 있다. 가해자에게 이입하는 성인남자들이 세상의 절반인 이 세상에, 나보코프는 아동성학대 소설을 써서는 안되었다. 거기에서 그러면 안된다를 읽는 사람보다 그것은 사랑이다 를 읽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 이 소설을 내놓아서는 안되는 거였다. 나보코프는 성인 남자독자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나는 십대 시절을 성학대 당하며 살아야 했던 롤리타 때문에, 그런 롤리타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데, 거기다 대고 사랑 타령하는 놈들 때문에 세상은 암흑이 되어버렸다. 원래도 밝지 않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롤리타를 이 소설속에서 꺼내오고 싶다. 꺼내와서 허브공원에 데려가서 여기서 뛰어놀라고 하고 싶다. 올림픽 공원에 데려가서 함께 산책하고 싶다. 누군가 롤리타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본다면, 롤리타 앞을 가로막고 서서 뭐야 이새끼야, 두 눈 부라리며 욕해주고 싶다. 




험버트가 한 건 사랑이 아니고 성학대다. 이걸 사랑으로 읽는 독자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런 소설을 쓴 나보코프가 잘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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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0-05-31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도 하셔라. 언제 이렇게 길디 길게 쓰셨대요. 롤리타에 대한 만감이 교차하는 다락방님의 페이퍼. 비록 롤리타를 읽지 않은 저는 쭉 따라 읽었답니다. 뭔가 비위가 대단하시다.. ㅋㅋㅋ..
인용해주신 부분에서 이부분 특별히 역겹네요.
˝리이L. L. Lee는 작품의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험버트는 도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롤리타를 가두어둔 것은 죄악이지만 행복하게 해주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것은 충분히 동적적이다. ˝ -> 대부분의 데이트폭력 혹은 학대 가 이런 거 아닌가요? 폭력-잘할게-폭력-잘할게! 이거를 반복하니까 피해자는 온탕과 냉탕 왔다갔다 하면서 혼란스러워하다 정서적으로 미치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한결같이 쭈욱 폭력적인 폭력은 피해자도 해석해내기 쉽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험버트의 행동은 도덕적 성장이 아니라 학대의 본질 같은데요??... 그걸 저렇게 쓰다니.. 가해자에 감정이입 오져버리는 것입니다. 진짜.................... 가해자에 너무 이입하는 독자들 싫다...!

다락방 2020-06-01 08:34   좋아요 1 | URL
제가 금요일밤에 이 책을 다 읽고 가슴을 움켜쥐면서 토로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너무 졸려서 일단 자고(응?) 토요일에 쓰고 가려고 했지만 이래저래 바빠서 못쓰고.. 일요일에 써야지 하면서도 토요일 지나친 음주가무로(응?) 또 너무 뻗어있는라 계속 미루다가, 이렇게 미루기만 하다가 못쓰겠다 싶어서 무거운 엉덩이를 이끌고 서재 책상으로 가 다다다닥 뿜어냈습니다. 저는 이게 너무 가슴이 아팠거든요. 롤리타가 당한 학대도 그렇지만, 아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운 유년시절이 몽땅 사라져버렸어요. 험버트는 롤리타로부터 인생을 낚아챘습니다. 너무 괘씸하고 화가 나요. 이 슬픈 소설을 읽고 그런데 많은 비평가들이 사랑타령 하는거 보고 저는 뒤로 나자빠지는 줄 알았어요. 다들 사랑에 미친놈들 같아요. 사랑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랑에 미치니까 세상이 암흑이 되는겁니다. 하아.

소설 읽으면서 소설의 등장인물에 공감하는 것도 괴로울 때가 많지만, 독자인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괴롭기도 한 것 같아요. 롤리타의 고통을 보기만 하는게 너무 괴로운 독서였어요. 아이들의 인생을 갈취하는 어른들은 사라져야 마땅해요.

단발머리 2020-05-31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보코프가 험버트의 입을 빌려서 아이에 대한 법적 보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지적한 지점이 눈에 띄네요. 전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이런 부분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어요. 롤리타와 그녀의 어린 시절을 안타까워하는 다락방님의 마음이 너무 절절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험버트에게 동정을 표하는 수많은 평론가들의 이해력 부족은 의도적인 게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험버트에게 진지하게 감정이입한게 아닌가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됩니다. 좋은 사유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 2020-06-01 08:38   좋아요 0 | URL
나보코프의 치명적 잘못은, 이해하지 못할 독자들을 염두에 두지 못하고 함부로 아동성학대를 다뤘다는 것입니다. 아마 나보코프도 이럴줄은 몰랐을 것 같아요. 진정한 사랑이라뇨. 미친놈들이 사랑에 환장했어요 진짜. 아이의 고통과 빼앗긴 유년시절이 고스란히 앞에 놓여있는데, 사랑이라뇨. 자기 사랑 챙기면 전부입니까? 어쩜 그렇게 이기적인가요. 너무 고통스럽고 슬픈 독서였어요. 잃어버린 롤리타의 유년시절은 대체 누가 책임져줍니까. 사십대의 아저씨가 그걸 책임져주나요? 어쩌면 거기다대고 사랑을 말해요? 사랑에 환장한 놈들 다 똥통에 처박혀 죽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단발머리님. 읽는 동안 너무 슬펐어요. ㅠㅠ

잠자냥 2020-06-0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에 대해선 전 양가감정이 있어요.
처음 읽을 때 그 역겨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는데, 그 역겨움을 넘어서니... 작품이 아름다워서(그만큼 나보코프가 잘 쓴 것이지요) 이 작품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심지어 저는 험버트를 동정하는 부류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작품을 좋아한다는 건 문학적으로 좋아하는 의미이지, 마음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참, 이런 작품을 문학적으로나마 좋아하고 있는 제가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하면서... 암튼 <롤리타>는 참 제게 모순적이 작품이에요.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을 읽을 때도 그렇고요. -_-;;

어제 이 긴 글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많이 했어요.
<롤리타>는 문학동네 버전이 번역이 매우 괜찮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걸로 한 번 더 읽어볼까 늘 벼르고 있던 작품인데, 지금 읽으면 제가 좀 생각이 달라질까요? ㅎㅎ

다락방 2020-06-01 11:36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의 양가감정이 저는 뭔지 알겠어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양가감정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 경우에도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롤리타의 처지 때문에 너무 슬펐지만, 아동성학대에 대한 책을 뭐 이리 글을 잘썼단 말인가...하면서 막 마음이 찢어질 것 같더라고요. 글 왜이렇게 잘쓰는건가요? 글 너무 잘쓰잖아요. 엉엉 ㅠㅠ 그래서 너무 속상했어요.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이런 글솜씨로 굳이 아동성학대 얘기해야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요. 저 역시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난 후에도 복잡한 마음이 들었더랬어요.
저도 이 책 다시 읽기 전에 문동 번역이 정말 좋다고 문동판으로 추천 받았는데, 가지고 있는 책이 민음사라 그냥 민음사로 읽었어요. 읽으면서 몇 번 가독성 떨어지는 문장들 만날 때마다 흐음, 역시 문동으로 갈 걸 그랬나 싶었지만, 어쨌든 읽었습니다.


저도 오만년전에 읽고 지금 다시 읽으니 감정이 많이 달라진 걸 느껴요. 저는 처음 읽을 때 변태새끼..라는 정도의 개념만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오만년만에 다시 읽어보니 너무나 글을 잘쓰는 나보코프가 구성도 치밀하게 성학대가 이루어지는 과정까지 다 써놓았더라고요. 이번에 읽으면서 롤리타의 사라진 유년시절 때문에 저는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ㅠㅠ


저는 문학이 해야 할 일을 나보코프야 말로 잘한게 아닌가 싶어요. 아동성학대라는 소재 때문에 저는 여전히 자꾸 마음에 걸리지만, 이렇게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난 후에도 사람을 휘몰아치게 만들잖아요. 문학은 이래야 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재독하시게 되면 감상 들려주세요!

감은빛 2020-06-03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들은 왠지 이 책을 읽으면 안 될것 같은 생각이 강박처럼 들어요.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세상에서는 더더욱.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을 혹은 읽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마치 아동성애자임을, 변태임을 드러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예전에 문학동네 롤리타가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을 산 건 아니고 다른 책들을 잔뜩 사고,
알라딘 굿즈 중 표지가 롤리타 표지인 알라딘 수첩을 받았어요.
어느 회의 자리에서 옆 자리에 앉았던 선배(여성주의 활동가)가 이 수첩 표지를 보고 깜짝 놀라면서,
마치 제가 아동성애자인 것처럼 반응해서 저도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그날 이후로 그 수첩은 밖에 갖고 다니지 못하고 집안 어딘가에 처박아 두었답니다.

암튼 그런 핑계로 이 책을 못 읽었다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네요.
남성인 제가 읽더라도 중년 남성이 어린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장면들은 불편할 것 같아요.
이렇게 힘들어하시면서도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으셨다니!
다락방님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새삼 깨닫습니다.

다락방 2020-06-03 14:42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읽고 나보코프가 더 궁금해졌어요. 나보코프의 다른 책들도 읽고 싶었는데, 국내에 번역된 것 중에 제가 다른 것도 읽어보긴 했더라고요.
책은 어차피 독자의 몫이잖아요. 나보코프가 어떻게 썼든 독자가 해석하는대로 작품은 다가가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면에서 볼 때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많은 성인 남성들에게 아주 잘못 해석되어 잘못 다가가게 된 경우인 것 같아요. 저는 아이를 성학대하고 아이의 유년시절을 빼앗은 성인 남성을 동정하고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해줄 거라고는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어요. 롤리타가 밤에 혼자 운다는 게 저는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말예요. 어휴..

매우 슬프긴 했지만, 그렇게 깊은 감정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보코프는 정말 글을 잘쓰는 작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릇 문학은 독자를 쥐락펴락하는게 아닙니까.

날시 좋아요. 오늘 점심 먹으러 나갈 때는 땀이 나더라고요! 저는 여름이 좋아요! 으하하하하하하하 (딴소리)

유부만두 2020-06-0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롤리타와 그 엄마가 너무 멍청하게 그려진 것도 너무 싫었어요. 삐걱거리고 기괴한 험버트도 물론 견디기 어려웠고요. 하지만 읽으면서 이게 아름답다, 고 생각은 안 했어요.
다들 칭송하는 ‘문체‘가 그닥... 이었거든요. 그 문체를 즐기자고 이 전체 소설을 택할 이유가 안 보였어요.

그나저나 제게 명성과 다르게 지겹도록 싫은 소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에요.
베르테르가 그토록 바라는 순수한 사랑...은 상대 여자의 의사는 아랑곳 없이 자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주인공이 감정 이입하는 하인의 경우) 살인까지 하는 거잖아요. 소설도 막 잘 쓴 거 같지도 않은데 왜 우린 아직도 괴테의 소설을 명작에 넣어주는 걸까요.

다락방 2020-06-04 13:43   좋아요 0 | URL
저는 롤리타가 멍청하게 그려졌다는데에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네요. 오히려 그 나이때의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보여지거든요. 갈 곳도 없고 보호해줄 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롤리타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알고 어떻게든 기회를 엿보려고 하는 호기심과 자유에의 의지가 있다고 느껴졌거든요. 아이가 연극에 대한 재능과 흥미를 보인다는 것도 꽤 상징적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이 책이 굉장히 대단하게 생각됐어요. 롤리타는 아동성범죄의 피해자이지만 그렇다고 성적대상화 되는 것에서만 멈추는 게 아니라, 인격을 가진 소녀이고 자기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입체적인 인물임이 드러나서요.

아동의 육체를 묘사하는게 너무 노골적이고 성적 대상화 되어 있어서, 그걸 너무 잘써서, 아, 나보코프 이걸 어떻게 이렇게 쓰나, 자기 자신이 설마 아동성애자인건가, 생각할 지경이었고 또 실제 성범죄자들이 그 묘사를 읽으면서 충동을 느끼고 범죄로 연결될까봐, 그 지점이 두고두고 안타깝긴 한데(왜 하필 아동대상 성범죄에 대한 소설을 썼나..), 저는 나보코프의 이 책을 읽으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됐어요. 구석구석 너무 치밀하게 잘 썼더라고요. 저는 나보코프의 소설을 다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유부만두 2020-06-04 13:55   좋아요 0 | URL
아... 롤리타의 의지를 읽으셨네요. 전 인물들 전부가 자기 생각은 하나도 없어 보였어요.
(하지만 다시 읽어볼 용기는 나지 않아요)
롤리타가 완전히 험버트의 의도를 몰랐다고는 할 순 없겠죠. 하지만 그 줄거리나 상황이 너무 끔찍해요.

전 나보코프의 ‘절망‘이 좋았어요. 그리고 ‘문학강의‘도요.
그런데 그 책들이 ‘롤리타‘로는 연결되지 않았어요.

다락방 2020-06-04 14:02   좋아요 0 | URL
[절망]을 오래전에 읽었는데 뭐라고 써놨나 찾아보니 2011년에 지루했지만 읽기를 잘했다고 써놨네요. 이것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2020-06-04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건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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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가 불법이었던 시절에 아니 에르노는 임신을 했고 낙태를 해야 했다. 그녀의 나이 이십대초반, 대학생일 때였다. 그녀는 혹여라도 낙태해줄 의사가 있지 않을까 병원을 방문해보지만 언제나 싸늘한 시선을 받고 돌아선다. 엄마한테도 임신이 들킬까봐 초조하고 나는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알려진대로 뜨개질바늘을 자기가 스스로 자기 안에 넣어보기도 한다. 이내 포기하지만..


이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 그녀를 임신시킨 남자는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자기가 살아왔던 그대로의 삶을 여전히 그대로 살아갈 뿐. 남자와 여자가 '함께'한 섹스인데 고민과 고통은 모두 여자의 몫이라니. 게다가 육체적 정신적인 피해가 모두 온전히 여자의 몫이라니.


아니 에르노는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이미 기혼인 남자지인으로부터 혹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자신의 비밀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너의 일에게 그녀가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한 여성의 이름을 알려주긴 하지만, 자신의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녀에게 섹스를 제안한다. 그로서는 너무 안전한 일이었다. '이미 임신한 여성이니' 자기가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었던 셈. 아니 에르노는 그 날의 일을 회상하며 그 남자를 딱히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아니 에르노를 좋아하고, 그녀의 <단순한 열정>을 매우 사랑하지만, 그러나 .. 오늘 아침까지도 내내, 아니 에르노가 그렇게까지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면 그녀는 정말이지, '남자 없이 못사나?' 싶을 정도로 남자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아.



그녀를 도와줄 여자가 드디어, 나타나고 그녀에게 어디로 가면 수술을 (몰래)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며, 그에 해당하는 비용도 빌려준다. 그러나 그 수술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간다.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차있다.

성적으로 순결한, 더럽혀지지 않은 여자를 원하는 남자들이 많지만, 그러면서 자기들은 언제나 여자를 만나면 섹스하기를 종용한다. 섹스를 남자랑 여자랑 하는데, 아니 생각을 해봐, 늬들이 섹스하는 상대가 여잔데 어떻게 순결한 여자를 바라는거야? 대가리 텅 빈 부분? 돈주고 성을 사면서, 그러나 성을 파는 여자들을 창녀라고 욕한다. 여기에서 어떤 모순을 감지하지 못하는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렇게 좋다고 섹스해 놓고서는 임신을 하면 나 몰라라 한다. 낙태를 불법으로 만들어놓고는 사생아는 사생아라며 욕하고. 낙태하면 또 낙태했다고 흉보고. 오래전 읽었던 소설 중에 자신이 사랑한 여자가 일전에 낙태한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 남자가 몹시 분노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뭐 어쩌라는건지 모르겠다. 어쩌라고? 섹스한 후에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고 임신하고 낙태하는 것도 여자의 몫이고, 여기에 들어가는 모든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도 모두 여자의 몫인데 이러거나 저러거나 다들 지랄들이여.. 임신하면 모른척하는 남자도 남자지만, 하아, 이미 임신한 여자니 콘돔없이 안전하게 섹스할 수 있을 것 같아 덤벼대는 남자는 또 세상 무슨 쓰레기여... 그러면서 또 낙태 수술은 안된대.. 세상이 대체 여자한테 어떻게 살라는건지 모르겠다.



낙태수술을 한 여자는 생각보다 많다. 낙태가 합법이 아닌데도 그렇다. 이건 무엇을 의미할까.



젊은 아니 에르노가 고민하는 내내 함께 고민했다. 영화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에서 낙태수술을 하고 나오면서 무너지듯 울던 여자의 모습이 내내 겹쳤다. 낙태수술 한 후에도, 심지어 수술할 때 같이 가주지도 않고 돈을 주지도 않아서 내가 대신 그 자리에 있었는데도, 그 남자랑 다시 만나던 친구도 떠올랐다.

여자들은 자신을 함부로 대한 남자들을 그리고 세상을 너무 봐주면서, 이해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심지어 사랑까지 했어.


보통 한국 사람들에 대해 얘기할때 '한(恨)의 정서' 라고들 하는데, 나는 이 '한'이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있을 것 같다. 다들 가슴속에 홧병 품고 살고 있을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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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hanje 2022-10-07 0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홧병을 품고는 사는데 부르주아적 삶을 포기도 못하죠 ㅎㅎ. 낙태를,, 제 주변에선 미혼은 아니고 기혼녀들 낙태를 몇 번 봤고 저도 따라가본 경험도 있는데 여자들은 순종적 동물들 같이 행동하는 것 같아요. 말 잘 듣는 순종적 동물,, 아니 에르노가 어떻게 살았건 느꼈건 상관없이 제가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전 여자들에 대해 연대의식을 버린지 오래에요. 에르노 소설을 읽진 않았지만 대충 이해는 하는 나이가 되서리.. 에르노가 분노를 느끼지 않았다면 그건 아마,, 그녀가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가 아닐까 싶네요. 그것에 분노하기엔 그녀가 너무 많은 걸 겪고 알았기에.. 저도 별로 분노는 느끼지 않았을 거 같아요. 걍 웃기는 작자군 정도.. 그런 수작 거는 작자야 뭐 세상 살다보면 흔하게 보는 작자들이니까요.

junhanje 2022-10-07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쁜 일이 너무 많으면 사소한 나쁜 일은 별로 다가오지도 않게 되죠. 슬픈 일이지만요. 그럼에도 그 작자가 그녀에게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됐다면 역시 소홀히 넘기진 않았다는 거죠. 세상은 참,, 그렇게 생각하면서 떠올리겟죠. 큰 슬픔 위에 작은 슬픔,, 을 얹어주는 그 작자,, 슬픔 위에 또 슬픔,, 세상사가 그렇더란. 세상이 나쁘면 절대 나쁜 일들의 연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하리오 플라스틱 드리퍼 - 레드, 1~2인용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플라스틱인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전문적으로 내려마시는 사람도 아니고 걍 한 번 사보는 거니까 나름 내면의 쇼부를 친건데 아주 잘샀다. 저렴한 것도 마음에 들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무엇보다 드리퍼와 함께 케이스 안에 들어있던 계량 스푼! 12g 까지를 계량해 넣을 수 있는 스푼인데, 이게 완전 쏙 맘에 들어서 이 드리퍼 구매는 별 다섯의 만족감을 주었다. 나 그동안 커피메이커에 내려 마실 때 걍 무작위로 봉지째 부었던 게으른 사람이건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숟가락 있어서 너무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데 단 한 번 12g  계량해서 원두 넣었고 그 다음부터는 그냥 단순히 퍼서 옮기는 용도로 쓰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숟가락 개마음에듦.


오늘 아침의 뜨끈뜨끈한, 막 원두 덜었던 숟가락 사진 첨부한다. 숟가락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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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5-2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숟가락 탐나네요;; 저도 대충 집어 넣는데;;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5-22 11:36   좋아요 0 | URL
숟가락 너무 좋아요. 드리퍼보다 더 좋지 뭡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5-22 11:45   좋아요 0 | URL
락방 님께 땡스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5-22 11:46   좋아요 0 | URL
너무 하찮은 금액이 가겠네요. 36원이냐;;;;???

다락방 2020-05-22 11:47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게 어딥니까. 안주셨으면 없는 돈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북깨비 2020-05-22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첫 하리오 드리퍼가 윗쪽은 유리로 되고 받침은 플라스틱으로 된 (씻을 때 꼈다 뺐다 할 수 있음) 합체형 모델이었는데요. 오래 썼어요. 근데 얼마전에 보니까 플라스틱 받침 아래쪽 표면 (커피 폿트나 머그컵에 얹을 때 닿는 부분)이 벗겨지더라고요. 오랜동안 수증기에 노출되서 그런건지 씻을때 수세미로 너무 박박 문질러 그런건지 하여간 작은 먼지처럼 바스라진다 해야하나.. 커피속으로 들어가는 거 같아서 찜찜해 가지고 암튼 그래서 얼마전에 돈을 좀 더 써서 세라믹으로 된 것으로 바꿨어요. 저처럼 플라스틱 벗겨질 때까지 너무 오래 쓰진 마시고 써보고 맘에 드시면 세라믹 모델로 업그레이드 추천합니다. 😉

다락방 2020-05-22 13:30   좋아요 1 | URL
오오, 깨알같은 팁 감사합니다!!

저는 제가 이걸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어요. 워낙에 게으른 인간인지라 사실 제가 드리퍼를 이용해 내려마시게 될 일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어쨌든 샀으니까 얼마간 이용은 하겠지만 오래 못갈것 같고.. 혹여라도 제 예상과 달리 제가 오래 사용하게된다면, 북깨비 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고!! 좋은 걸로 갈아타도록 할게요. 플라스틱이라는 건 사실 저도 약간 찜찜한 부분이거든요. 후훗. 제가 근면성실하게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람이 되어.. 아니지, 사실 저는 게을러서라기 보다는 성질이 급해놔서 잘 못내려 마셔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마음의 여유를 찾는 사람이 되어 커피를 쫄쫄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이 된다면, 말씀하신대로 세라믹으로 업그레이드 하도록 하겠습니다. 뽜샷!!

반유행열반인 2020-05-2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테인리스에 티타늄 코팅한 드리퍼를쓰는데 종이필터를 안 써도되서 쓰레기도 줄고 커피맛도 종이냄새 안 배어나와 좋습니다. 대신 드리퍼 관리는 신경이 쓰이네요. 내린 커피 마시기 전 뜨거운 물로 드리퍼 먼저 헹구는 부지런함이 있어야...안 그러면 다음커피 내릴 때 막혀서 찔찔쫄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