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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이성 - 헤겔학 총서 7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지음, 임석진 옮김 / 지식산업사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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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810년 슈타인의 뒤를 이어 프로이센의 근대화 개혁 정책을 계승한 총리 하르덴베르크에 의해 설립된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은 1818년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이 책은 그의 역사철학 강의 1822년에서 1828년까지의 첫번째 초안과 1830년의 두번째 초안을 싣고 있다. 1831년 사망하기 직전까지의 그의 강의록이란 점에서 그의 역사철학의 대강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면서도, 그가 직접 쓴 책에 비해 읽기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강의의 전반적 줄기는 그의 [정신현상학]에 있다. 세계사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태는 이성적으로 진행되어욌다는 이성에 대한 확신이다. 역사가 어떤 이성적 의지에 의해 섭리되어진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야기하는 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을 닮았다. 하지만 헤겔에게는 신적 의지는 일반화된다. 선택이 아닌 일반계시가 전적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인류전체는 이미 이 [신의 백성]으로서 역사를 자신의 것으로 해석하고 그 긍정에 힘입어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럽적 가치에 있어 죄가 더 이상 문제되지 않고 모든 유럽인은 혹은 독일인은 이미 선택받은 신의 백성이라는 그들의 정체감과 물려있다.
이런 섭리의 궁극목적, 혹은 운동의 방향은 자유이다. 더 많은 자유. 역사는 그렇게 움직여왔다는 것이다. 해방. 그래서 고찰의 대상은 인간적인 자유의 이념 The idea of human freedom이다. 이념은 세계사 속에서 가장 구체적 현실성을 나타낸다. 현실로 나타나는 정신은 결국 개별자(개인)로 환원될 수는 없다. 헤겔은 이 정신의 현실적 구현, 현상을 국민정신으로 본다. 국가를 통해 이성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는거다. 인간은 이런 국가안에서만 자신의 본질을 지니며 자유를 얻는다. 국가는 목적,시민은 도구라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 하지만 이건 헤겔이 직접한 표현이다.
이런 이해는 자연스레 나로 하여금 우리민족의 사명과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끈다. 헤겔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규정성 안에 놓인 자유에 관한 정신의 의식과 그 발전의 단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1) 동양의 감각적 동기의 포기의 단계와 2) 그리스의 국부적 특수성을 소멸하는 보편성의 발견의 단계 3) 규정한계의 인식과 새로운 규정의 창출이 이런 역사의 발전 단계이다. 이 단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 놓인 현재적 세계정신을 파악하는 것은 정신이 세계사의 노동을 통하여 이루어낸 정신 자신의 행적을 아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기 역할을 감당할 우리 민족의 사명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국가에 속한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첫째는 정신의 이해이다. 개인은 교양을 쌓아 정신에 관한 자기의 개념을 확립하여야 한다. 개인은 스스로 앞선 시대의 각기 다른 영역을 경과하여야만 이런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정신이 지금 현재 속에서 그 단계들을 거쳐야 한다면 [우리나라의 단계는, 나의 단계는?] 이라는 질문과 함께 당연히 그 이해의 틀로서 [정신현상학]을 사용하도록 이끈다. 이는 신학(정신의 포착)을 벗어나 각 개인도 철학과 정치로 가라는 권유이기도 하다. 둘째는 세계사적 개인이 되고자, 정당하고 필연적인 것을 의욕하고 완수하려는 열정과 의지이다. 실현의 능력이며 열정으로 집중하여 정신이 현상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 이들은 보편적 실체에 대한 통찰력으로 또한 이 정신의 현실적 실현으로 말미암아 이 역사의 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민족이 역사속에 실현하고, 봉사하여야 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관점이 우리 역사이해의, 나아가 [인간의 사명] 이해의 단초인가? 즉 역사발전 혹은 신적 의지에 의한 인간자유의 지상적 실현에 있어 이 민족이 어떻게 타오르 횃불이 되고 또 사그러져야 하는지(타고르)를 아는 것이 우리의 존재와 의미를 규정지을 수 있는가? 진정 그러한가 그리고 그것이 인간존재 목적의 모두다인가? 헤겔이 말한 집단적 의미(大我) 이외에 개인실존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긴 진정한 신의 모습이 그리스도가 아니던가? 헤겔은 혹시 그가 원하는 모습만을 그리스도에게서 보는 것은 아닌가? 국민교육헌장적인 인간이해와 개인의 존엄성은 과연 같은 것인가?
결론부에서 헤겔은 신의 자기귀착적 목적성(웨스터민스터 교리문답1번,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을 전용(轉用)하여 정신의, 또 그 현재형으로서의 국가의 합목적적 자기정당성을 획득하게 한다... [개인은 정신 혹 국가를 위하여 존재한다] ...필요한 생각이며 그리스적 이기주의의 파행을 극복하는 길임에는 틀림없으나, 나는 나 자신을 이런 목적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