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목사의 꿈 일기 - 2005년 11월 이 달의 읽을 만한 책 (간행물윤리위원회)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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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현주 목사님이 육십이 되어서 말을 줄이고 침묵을 행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해를 보내기로 하셨다. 그리고 그 해에 선생님은 매일 꿈을 꾸게 되었다. 그리고 꿈이 깨어나서 생각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꿈에 대한 해석이 술술 마음에서 풀어져나왔다. 그렇게해서 이 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매일 꿈을 꾸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꾼 꿈을 모두 기억해낸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선생님은 가능한 한 선명하게 꿈을 기억했으며 그 의미성이 전달될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선생님의 일상의 마음대로 꿈의 해석도 이루어졌다. 선생님의 꿈일기는 선생님의 마음 공부요 자신의 공부를 점검해보는 척도이기도 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선생님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꿈은 일상의 느슨해진 표면의식의 틈새로 올라오는 잠재의식의 일부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챙기는 것 같다가도 꿈 속에서는 어느새 놓쳤던 나태함이나 두려움과 에고의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꿈을 통해 자신의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그리고 공부가 잘 되고 있는지도 꿈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더욱 공부가 깊어지면 꿈을 꾸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 때에 자신의 있는 곳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공부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현실의 일상생활이 공부이듯이 꿈 속의 일도 역시 공부다. 그래서 어떤 좋고 나쁜 일이든지 그것을 배움의 기회로 활용하고자 하는 한 그것에는 좋고 나쁨이 없게 된다. 그래서 이 현주 선생님은 좋고 나쁜 꿈은 없다고 했다. 모든 꿈이 좋은 꿈이라고 했다. 꿈에서 깨어난 현실도 또한 꿈이라고 '술몽쇄언'은 말한다. 진정한 꿈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그것이 꿈인줄 알게 된다고 한다. 우리가 꾸고 있는 인생의 꿈 속에 우리는 또 꿈을 꾼다. 그러니 꿈이나 생시나 모두 꿈 판인 것이다.

  꿈은 꿀 때에는 현실처럼 생생하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직접 현실에서 느끼는 것처럼 여긴다. 또한 꿈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일은 현실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육체적인 현상을 낳는다. 따라서 꿈 속에서 달리면 숨이 가빠지고 슬픈 일을 접하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깨고 보면 꿈 속의 일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저 모든 것이 지나간 허망한 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한바탕 웃음으로 넘길 수 있게 된다. 선생님의 꿈 이야기는 모두가 그렇다. 깨고 나면 그것이 나에게 주는 교훈과 경험의 흔적을 남길 뿐 더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된다.

  깨달은 자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인생의 꿈을 깨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살아있는 것을 참이라 하고 죽은 것을 환상이라 한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큰 꿈을 깨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인생의 큰 꿈을 깬 자에게는 인생이 한낱 꿈인 것을 알게 된다.

  "꿈 속 갈매기 따라 만리를 훨훨,

   깨어 보니 몸은 그대로 석양의 물가에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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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둔이 2006-04-1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이 무엇이고 현실이 무엇인가?
깬것을 드러대면 꿈이요, 깨지못하면 현실일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현실은 무한소급으로 깨어나야할 꿈인가?
궁극으로 깨어 삼천대천의 모든 것을 꿈이라고 할 무엇이 있는가?
누가 꿈을 꾸는가?
점 하나를 찍는 사이 토끼에게 뿔이 돋았다
 
길을 찾은 사람들 김흥호 전집 2
김흥호 / 솔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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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흥호 선생님의 이름을 보는 순간 나에게 낯설지않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다석 류영모선생님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았던 분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안이 열린 분이고 그의 눈으로 찾아간 선현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들의 업적이나 인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이 지향한 바를 읽어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내가 별로 끌리지 않는 짧은 전기적 이야기를 묶은 책을 선뜻 들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은 우선 우리 나라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 살다간 유학자와 승려 그리고 다석 선생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리의 길에서는 깨달음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소통되지만 현실적 삶으로 나오게 되면 여러 가지 옷을 입게 되므로 서로가 달라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학자 간에 유학자와 승려 간에 서로 일치되지 않는 생각들은 드러난 문화적 차이일 뿐, 그들의 공부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건 내면을 궁구하건 결국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여 마음의 거울에 비친 상의 실을 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주자와 양명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주자와 양명은 서로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이론의 차이로 인해 현실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던 점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들어가면 결국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깨달음의 차이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고 깨달음의 문화적 관습적 차이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왕양명의 치지하는 마음바탕을 깨닫고 난 뒤의 격물의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떨림이 있었다. 깨달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지행은 합일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밖에의 행동밖에 못하는 것이리라. 겉으로 보기엔 행동이 철저해도 마음을 억지로 끌고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병통을 낳게 마련이니까.

  둘째 장에서는 제자백가사상과 노자, 순자, 주자, 육상산, 왕양명, 석가, 혜능, 조주에게도 치닫는다. 동양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들이 망라된다. 앞서 말한대로 깨달음의 깊이와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깨달음의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매진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마지막 장에서 김흥호 선생님은 왜 인도로 끝을 내시려했을까? 샹카라와 간디, 네루를 통해 좀 더 인류의 지혜의 원천이었던 인도 사회의 인물로서 마무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류의 스승 그 첫 자리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리한다. 물론 노자와 석가와의 연대기적인 비교가 분명히 매듭된 것은 아니지만 진리의 첫 길을 걸어가신 분에 대한 마음의 자리가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그 길을 처음 걸어가서 온 세상에 진리의 환한 빛을 드리운 분, 그 분이 있어서 후세에 많은 성현들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많은 선현들이 걸어간 길, 그 자취를 따라 곤이지지한 내가 미로처럼 미망을 헤치며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이렇게 많은 진리의 등불들이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어리석음이 너무나 커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넘어지고 넘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확연하게 존재하는 진리를 가리키고 있기때문에 비록 더디고 느리지만 진리가 있음을 확신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어두워진 밤에 불빛으로 밝혀 읽어내는 진리의 글들이 마음으로 스며들어 가슴이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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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26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충 책 구성이 짐작은 가는데요.
1999년도 책을 벌써 품절하는 알라딘의 책 보유 시스템은 간혹 황당합니다.
인기몰이에 연연해 하는 상업주의적 마켓팅에 화가 나지만
달팽이님의 '길' 리뷰에 마음에 순한 촛불을 밝히는 것처럼 온순해지는군요.
덕분에 오늘밤은 온순한 짐승으로 잠들 것 같습니다.

달팽이 2006-02-26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습니다.
마음 닿는 책이 대중적인 취향에 맞지 않아 품절된 경우에
때로는 아쉽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쉬움을 넘어 우리 출판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기도 합니다.
몇 일 동안 온우주를 헤매이었던 마음이 이 책으로 좀 더 차분해졌습니다.
고마운 책이었습니다.

이누아 2006-02-27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만이 목적은 아닌가 봅니다. 길을 찾기만 해도 환해지는군요. 닿기도 전에 이미 환해지는 마음. 그런 걸 초심이라고 하나 봅니다. 리뷰와는 관계 없는 얘긴가요? 읽고나니 엉뚱하게 초발심시변정각이 생각나서.^^

달팽이 2006-02-2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중용에 보면 天命之謂性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이 명해준 것을 성이라 한다.
첫말부터 가슴이 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목적지인줄 알았던 것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원래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금은 미망의 출발점이지만 돌아온 그 자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뻑차오르는 느낌들이 있기에 우리는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깨달음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우주의 중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술몽쇄언 - 꿈과 인생
김대현 지음, 남만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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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꾼다. 우리는 꿈 속에서 펼쳐진 상황이 진실인 듯 느낀다. 우리의 몸도 꿈 속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꿈 속에서 달리면 숨차오르고 꿈 속에서 어여쁜 여인을 만나면 가슴이 달아오른다. 꿈 속에 빠져 있을 때엔 그 꿈이 현실이다. 하지만 깨고 난 후에 꿈은 그저 한 때의 소일거리일 뿐 나의 하루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깨었다고 하는 이 인생이 한 편의 꿈이라면 어찌할텐가?

  장자는 호접몽에서 꿈에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나는 꿈을 꾸다가 문득 깨어보니 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돌이켜 생각하메 나비의 꿈에 장자라는 인간이 등장한 것인지 장자의 꿈에 나비가 등장한 것인지 헷갈리더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우리들이 육체로서 느끼는 오감각들이 진실을 파악하는 데 한계를 가진다는 생각에서 보면 이 인생이라는 것도 진리를 접하기 전에는 한 편의 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가끔 나도 꿈을 꾼다. 때로는 어떤 꿈이었는지도 기억되지 않는 것이 있는 반면, 때로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되는 꿈이 있다. 처가 인천에 떨어져 살았을 때 나는 산아래에 집을 구해서 혼자 생활하고 있을 때였다. 그 때 나의 공부에 도움이 되었던 시기였는데 한 때 나는 꿈 속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한 여자가 자연스러운 속옷차림으로 내 옆에 눕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지만 처가 아니었다. 순간 깜짝 놀라서 등을 돌렸는데 그녀는 뒤에서 길고도 검은(정말 새까만 머리가 얼마나 생생한 느낌을 주던지...)머리칼로 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나를 뒤에서 껴안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꿈에서 깨었다.

  친구들에게 가끔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나보고 '바보'란다. 꿈에서 왜 굴러온 떡을 차버리냐.하는 것이었다. ㅎㅎㅎ...그러나 꿈 속에서 여인의 속살이 비치는 젊은 몸을 보고도 마음이 전혀 흥분되지 않았고 이상한 느낌만이 가슴을 가득 채운 나는 그 꿈을 이렇게 해석하였다. 내 속에 있던 낯선 모습의 나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 곁에 늘 있어왔던 그것이었다고...그것이 무엇이냐고? 그 때 난 나름대로 마음공부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내가 늘 바라마지 않던 그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삶도 한 편의 꿈이다. 하지만 우리는 삶 속에서 환상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러 가지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예쁜 얼굴의 여자에게도 마음이 뺏기고, 좋은 아파트에도 마음이 뺏긴다. 멋진 차에게도 마음이 뺏기고 자식의 교육과 성장에도 마음이 뺏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에 마음이 빼앗긴다. 자아에 혼을 빼앗기고 만다. 그래서 없는 괴로움을 스스로 만들어 마음에 쌓고, 희노애락의 마음을 짓는다. 세상은 아무런 의도없이 나에게 주어지는대도 나의 마음이 망견을 지어 스스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 이런 인생의 꿈을 깨면 모든 것이 달라보이는데도 말이다.

  이 책도 마음 속에서 큰 의심과 분심을 만들어내게 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과연 삶이 한 편의 꿈이라고 하는데 그럼 깨어난 세상은 어떠한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작되는 꿈이 또 다시 잠들면서 다른 꿈으로 이어진다. 하루 24시간을 꿈꾸면서 살고 있는 우리들, 언제 그 꿈 한 번 깨어보고 죽는가? 아니, 죽는다는 꿈도 깨어볼 것인가? 깨어있지 못하면 지금 이것이 꿈이라는 것은 알고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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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4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팽이 2006-02-24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른다는 의문은 놓치면 안됩니다.
그 의문 속에 온 세상을 담아내면 당신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오직 모를 뿐입니다.
님께선 좀 더 읽기 수월한 책부터 접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달라이라마님의 책들이나 틱낫한 스님의 책들을 읽어보심도 괜찮을 듯...

비로그인 2006-02-24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오직 모르뿐!^^;;
의식하면서 살아야 한다정도로 알아두겠습니다.
사실 저도 대충 이것 저것 책을 읽어보긴 했지만 삶에 녹아들게 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니 꾸준히 마음을 닦는 공부를 해야겠죠..
근데 달라이라마 책은 꼭 도덕책 같아요...

달팽이 2006-02-2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이라마 님의 책은 아주 쉬운 것 같지만 깨달음의 원을 한바퀴 돌아온 분의 글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닦일수록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기도 하죠.
저도 잘 모르지만 인간의 몸으로써 닦아나가는 과정의 거의 끝에 세상 모든 사람들과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내는 단계로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 분의 책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누구나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 평이하게 서술한 글이지만 그 분의 마음으로 들어가면 성장의 과정에 따라 누구나가 읽을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누아 2006-02-24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자처럼 꿈을 꾼 적이 있어요. 어느 절간의 작은 방에서 새벽에 깨어났어요. 이 작고 어두운 방에 왜 내가 있는 거지? 아, 나는 꿈을 꾸고 있구나. 대구에 있는 내가 충청도 절에서 자는 이런 꿈을 왜 꾸고 있지? 했는데 아이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전 정말로 그 절의 작은 방에서 잤던 겁니다. 근데 대구에 있던 내가 너무 익숙해서 절에서 새벽에 눈뜬 제가 꿈 속에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꿈. 근데 꿈 속에서도 놀라고 두려워하고 기쁘고 최선을 다해 달리기도 합니다. 지금처럼요. 전 이 책이 좋아요.

이누아 2006-02-2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이 꿈 얘기 전에도 한 적 있나요? 꼭 두 번 말하는 것 같네요.^^

달팽이 2006-02-25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글쎄요. 그런가요?
마음이 좀 더 투명해진 어느날 다시 잡고 싶은 책입니다.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변한다
달라이 라마 지음, 공경희 옮김 / 문이당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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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공부의 지루함을 벗어나기 위한 외유가 많다. 호학하는 자세로 지에 대한 열정을 키워나가는 공부 속에서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일상에서 잡다한 생각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공부의 힘이 생활로까지 뻗어나가지 못하는 끈기의 부족을 질책하는 의미로 이 책을 들게 되었다. 작은 마음 하나가 나의 마음을 어지럽히었고 그것은 나에게는 좋지 못한 체험이었다. 불현듯 그 생각의 계기가 되었던 일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그 생각의 뿌리가 보이기도 했을 때에 조금 안정이 되었다.

  분노와 미움을 성숙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사람들 중에 이 분만한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그것도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 국민에 대한 생각에서부터 비롯된 미움과 분노를 사랑과 자비로 해결했던 그의 성숙한 방법은 전세계인들에게 새로운 씨앗으로 가슴에 심어지고 있다. 이 책은 달라이라마께서 인생을 보람있고 가치있게 살기위해 신도들과 대중들에게 한 연설의 내용이다. 때로는 불자들의 궁금증에 대한 답을 통해서 마음을 변화시키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몸이 그동안 많이 편했다. 그만큼 자유로워야 할텐데 몸이 갇힌듯 잡다한 생각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어디 마음내키는 대로 돌아다니고 놀러다닐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이것을 기회삼아 글공부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은 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잡다한 생각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공부가 머리로만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손이 간 것이 이 책이다. 두꺼운 책을 읽기에는 외유가 길어질 것만 같았고 소설이나 시집에는 마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전 전교조 연수 때 연수집의 어느 페이지에서 한면을 온통 차지했던 그 분이 흑백사진이 마음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음 속의 좋지 않은 생각들이 생길 때에는 그것을 분석적으로 쳐다보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것은 외부의 현상이나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자신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의 뿌리는 언제나 자아이다. 무지하고 아는 것이 없어 게으르고 게을리 공부하는 나에게도 이 자아의 뿌리가 깊어서 언제든 불현듯 솟구쳐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면 호흡을 고르거나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으로 넘길 때도 있지만 집중의 틈새로 올라와서 어느듯 나를 상하게 하는 생각들을 보고 있으면 좀 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표면의식 속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마음을 느끼기 위해서는 섬세해져야만 한다. 거친 의식을 물리치기 위해서 격물이 필요한 것이다. 오온에 의해 현상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을 피하고 그 속에 변하지 않고 지속되는 마음의 밑바닥에 정신을 집중하려는 생각들이 우리를 앎으로 이끈다. 이것이 화두일수도 있고 깨어있음이기도 하다. 짧고 짧은 인생길에서 느닷없이 부딪히게 되는 죽음앞에서 우리가 진실로 가져갈 수 있는 보물이 있는데도 우리는 마치 이 인생이 영원한 것인양 느낀다. 영원한 보물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 현상이 좀 더 순순해진다. 

  이제 술이나 한 잔 하러 일어나야겠다. 조금 차가워진 날씨가 술맛을 더 좋게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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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2-09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암이 열하를 건너면서 죽도록 고생하고도 '술'을 잊을 수 없던 것처럼
술은 문객들의 진정한 벗인가 봅니다.
이왕이면 달빛이 고고한 밤이 되셨기를^^

달팽이 2006-02-09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빛은 어디두고 상투만 풀어헤쳤군요...
오늘은 햇살 너무 눈부신 하루입니다.
 
나를 쳐라 - 세상을 치는 경허 스님의 죽비소리!
경허 스님 지음, 한용운 엮음, 석성우 옮김, 김홍희 사진 / 노마드북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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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학과 더불어 떠난 직원연수는 변산반도의 내소사를 거쳐서 고창의 선운사와 도솔암 그리고 돌아오는 길의 선운사를 끝으로 해서 삼사순례를 하게 되었다. 내소사도 선운사도 대웅전을 한 눈에 담고 뒷 산을 배경으로 바라보기엔 힘들게끔 세워진 대웅전 앞의 구조물때문에 그 멋이 한 층 반감되었다. 내소사의 뒤산의 삐쭉삐쭉한 절경에 눈쌓인 설산을 배경으로 한 대웅전과 그것을 둘러싼 조용한 산사의 절은 내 마음 속에서도 고요하고 조용한 절대의 공간을 찾게 하였고, 선운사의 풍경 뒤로 걸린 동백꽃 군락지와 설산의 웅장함들이 기나긴 세월에 파묻힌 풍경들의 오늘을 보여주었다.

  연수기간동안 이 책을 들고 다녔으나 펴보진 못했다. 하지만 마음마저 잊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 근대불교의 선구자라고 불리우는 경허스님의 글들을 만해 스님이 정리하였다. 아마 경허스님의 본래 글을 남겨두었더라면 좀 더 그 느낌이 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 것은 사실이지만(글의 표현에 옮겨놓은 것 같은 색채를 지울 수 가 없었고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느낌을 반감시켰음을 어찌할 수 없다.) 그래도 경허스님의 글을 통해 스님의 마음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음에 감사한다.

  2006년의 새해가 올랐다. 비록 새로운 해를 구경가지는 않았지만 종각의 종소리를 놓칠 수는 없었다. 집에서 TV를 통해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올해는 내가 더욱 마음 밝아지는 해가 되기를 기원하였다. 올해에는 형식적으로 하는 일체의 안부를 삼가자. 내 스스로에게 묻는 안부도 제대로 못하는 한 해를 보내지는 말아야겠다. 그래도 새해의 시작을 이 책과 함께 시작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김 홍희 사진작가의 시원스럽고도 마음을 틔우는 사진들에서 이미 새해를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선운사를 옆으로 지나 오른 도솔암의 마애불 사진이 이 책에 나왔을 때 명치부분의 땜빵부분에 눈이 갔다. 난세를 극복하는 비결을 끄집어낸 자리. 하지만 그것이 어찌 글로 씌여진 물질적인 것이었겠는가? 그것은 단지 몇 치의 바위를 부수고 그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난세를 구하는 비결이 있을까? 아니 더 급박하게 내 삶의 혼미를 구해낼 수 있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한 치 앞을 보지못하는 어둔이들의 삶 속에서 떠오르는 새 해가 우리들의 앞길을 비춰주기를 바란다.

  병술년 한 해의 새해. 하지만 날마다 새 해가 아니던가? 이미 우리는 부처님의 빛의 영광 속에 놓여진 하루하루를 맞이하고 있지 않았던가? 다만 우리들의 눈이 어두웠을 뿐이다.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어두운 나의 눈을 뜨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삶이 돌고 돌아 나에게로 온다. 세상이 돌고 돌아 나에게로 온다. "나를 쳐라." 경허 스님의 말씀이다. 세상 누구도 나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세상의 중생을 구원해야겠다는 서원이 시작된다. 우선은 "나를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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