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길을 찾은 사람들 ㅣ 김흥호 전집 2
김흥호 / 솔출판사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김흥호 선생님의 이름을 보는 순간 나에게 낯설지않은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다석 류영모선생님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았던 분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래서 심안이 열린 분이고 그의 눈으로 찾아간 선현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그들의 업적이나 인생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이 지향한 바를 읽어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내가 별로 끌리지 않는 짧은 전기적 이야기를 묶은 책을 선뜻 들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은 우선 우리 나라에서 진리를 찾기 위해 살다간 유학자와 승려 그리고 다석 선생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리의 길에서는 깨달음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소통되지만 현실적 삶으로 나오게 되면 여러 가지 옷을 입게 되므로 서로가 달라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학자 간에 유학자와 승려 간에 서로 일치되지 않는 생각들은 드러난 문화적 차이일 뿐, 그들의 공부는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건 내면을 궁구하건 결국엔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여 마음의 거울에 비친 상의 실을 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주자와 양명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주자와 양명은 서로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이론의 차이로 인해 현실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었던 점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들어가면 결국엔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깨달음의 차이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고 깨달음의 문화적 관습적 차이도 하나의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왕양명의 치지하는 마음바탕을 깨닫고 난 뒤의 격물의 가능성에 대해서 많은 떨림이 있었다. 깨달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지행은 합일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밖에의 행동밖에 못하는 것이리라. 겉으로 보기엔 행동이 철저해도 마음을 억지로 끌고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병통을 낳게 마련이니까.
둘째 장에서는 제자백가사상과 노자, 순자, 주자, 육상산, 왕양명, 석가, 혜능, 조주에게도 치닫는다. 동양사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들이 망라된다. 앞서 말한대로 깨달음의 깊이와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깨달음의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자신의 주어진 삶에서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매진하여 깨달음을 성취하여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마지막 장에서 김흥호 선생님은 왜 인도로 끝을 내시려했을까? 샹카라와 간디, 네루를 통해 좀 더 인류의 지혜의 원천이었던 인도 사회의 인물로서 마무리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류의 스승 그 첫 자리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리한다. 물론 노자와 석가와의 연대기적인 비교가 분명히 매듭된 것은 아니지만 진리의 첫 길을 걸어가신 분에 대한 마음의 자리가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무도 걷지 않았던 그 길을 처음 걸어가서 온 세상에 진리의 환한 빛을 드리운 분, 그 분이 있어서 후세에 많은 성현들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많은 선현들이 걸어간 길, 그 자취를 따라 곤이지지한 내가 미로처럼 미망을 헤치며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이렇게 많은 진리의 등불들이 곳곳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어리석음이 너무나 커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넘어지고 넘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고마운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확연하게 존재하는 진리를 가리키고 있기때문에 비록 더디고 느리지만 진리가 있음을 확신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어두워진 밤에 불빛으로 밝혀 읽어내는 진리의 글들이 마음으로 스며들어 가슴이 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