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눈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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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 따라 작품의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원문을 읽지 못하는 영알못에게는 출판사의 번역에 의존한다. 책의 말미에 있는 <빗속의 고양이>의 기존 작품 번역과 비교 번역문을 보며 수많은 명작이 쓰인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밀려오지만 게으름의 끝판왕이 해낼 수 있을지... 인친님 중 한 분이 올해는 원서 읽기에 도전한다는데 동참해 볼까 고민을 해 봐야겠다.


노인과 바다로 너무나 유명한 헤밍웨이의 단편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단편들은 문체가 짧고 간결해서 읽기가 쉬웠다. 하지만 그의 글은 <빙산 이론>으로 함축되어 있는 작품들이라 문장 그대로 받아들이면 작품을 읽고 나서 '뭐지?'하고 갸웃한다.


헤밍웨이의 <빙산 이론>은 <나는 늘 빙산의 원칙에 따라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우리 눈에 보이는 부분마다 물밑으로는 8분의 7이 있죠. 아는 건 뭐든 없앨 수 있어요. 그럴수록 빙산은 더욱 단단해지죠. 그게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 헤밍웨이의 말/ 마음산책>에서 나왔다. 그는 내용의 8분의 1만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그것은 그의 단편들을 읽고 나니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다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식당을 찾아왔다 그냥 간 킬러 이야기, 여름 날 기차역에 앉아 흰 코끼리를 닮은 산등성이를 보면 술을 마시는 두 남녀, 시골 대장간의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여자, 이탈리아에 피난 온 헝가리의 어린 혁명가, 창밖의 빗속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 여자와 남편 등의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단편들은 쉽게 읽혀지만 헤밍웨이가 빙산 아래 숨겨둔 생각을 읽어내기에는 어려웠다.


그래. 이제 그는 죽음에 관해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한 가지 그가 항상 두려워했던 것은 고통이었다. -중략 - 지금은 지독한 상처를 지니고 있었고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꼈을 즈음, 그 고통은 멈추었다. P53


주제작인 킬리만자로의 눈은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을 찾아 여행을 가다 다리를 다친 남자와 그를 간호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작가 해리는 가볍게 다친 다리를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아 다리가 썩어간다. 이 주일이 넘게 고립된 곳에서 죽음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낀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공포라는 단어와 한 쌍처럼 따라다닌다. 그런데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가 본 킬리만자로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실제일까? 허상일까? 환영일까? 무엇이 진짜일까? 비극과 희극을 교묘히 교차해놓아 헷갈린다. 글의 구조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결말이 있어 우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읽고 나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작품은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였다. 옮긴이의 작품 해설이 따로 없어 한참을 고민하였다. 몇 번을 읽어보며 몇몇의 단어들을 조합해 보기는 했지만 역시 작품 해설이 필요했다. 검색을 하여 몇몇 글을 읽어보서야 아! 하는 깨우침의 탄성이 나왔다.(바보 같은 표정이었을 듯)


"만약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꼭 할 필요는 없어.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나는 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당신 정말로 원하는 거야?"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당신이 정말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길 바라."

킬리만자로의 눈 중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 P90>


몇 번 반복하다 찾아낸 단어는 <수술>이었다 두 남녀는 마드리드로 수술을 하러 가는 길인듯 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원하지 않으면 (수술)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런 남자에게 여자는 (수술) 하는 것을 정말 원하는지 물어본다. 남자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한다. 기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여자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여행 가방에 모든 호텔에 라벨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지내는 사람들 같다. 그런 이들에게 어쩌면 아이는 구속일 수도 있다.


이 글은 <"당신 기분이 나아진 건가?" -중략- " 내게 나쁠 건 아무것도 없잖아. 나는 좋아." P95>라고 끝이 난다. (많이 공개되어 인용함) 수술을 하여도 나를 사랑하는냐고 물었던 여자는 어떤 선택을 하였기에 기분이 좋아진 것일까?


서평을 쓰려 검색을 하다 마음산책에서 펴낸 <헤밍웨이의 말>에 대한 리뷰를 읽게 되었다. 헤밍웨이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 그의 문체, 삶 등을 알 수 있는 그의 말들이 담겨있다. 그가 왜 마지막에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져서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을 번역한 번역가 이정서는 <번역은 직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직역의 의미는 '작가가 쓴 문장의 서술 구조를 살려주는 번역'을 의미한다.>라고 말한다. 번역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더라도 작품의 의미는 전달이 된다 생각했었다. 하지만 비교 번역문을 보니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봄 출판사에 이정서 번역가의 작품이 더 있어 찾아 읽어봐야겠다. 특히 좋아하는 <어린 왕자>의 번역본도 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는 책과 어떤 부분이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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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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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락시아」와 「아포니아」를 추구하는 에피쿠로스 학파는 기원전 340년대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되었다. 에피쿠로스는 14살 때 문법학교 교사들이 헤시오도스의 글에 나오는 <카오스>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에 실망하여 직접 공부하며 철학에 입문한다. 그리고 32세에 아테네에 자신의 학교를 세운다. 그리고 학교의 『정원』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토론을 한다.


「에피쿠로스」가 주장하는 최고선은 아타락시아와 아포니아라는 소박하고 지속 가능한 「쾌락」을 누리는 것이라 믿었다. 아타락시아의 뜻은 마음이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평정한 상태, 즉 평정심을 유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포니아는 몸 고통의 부재라는 뜻인데 몸은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 고통을 정신적으로 극복하여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을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때 오는 카타르시스와 비슷하다. 쾌락에 대한 그리스 학파는 스토아학파도 있다. 그들은 쾌락을 멀리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절제하는 삶을 지향한다. 에피쿠니스 학파와는 반대점에 있다.


에피쿠로스는 700여 권이 넘는 책을 썼지만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신』,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서신』,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낸 서신』, 『주요 가르침』 4권만 현재 남아있다. 책의 1장 피쿠로스의 생애와 4장 현자론은 그의 제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글이다.


에피쿠로스에 대한 책이니 그의 일생이 첫 장에 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갑자기 자연학과 천체학이 나오다니... 그나마 세 번째 편지는 철학에 관한 것이라 어렵지는 않았다.


2장 헤로도토스에게 보낸 서신은 37권으로 구성된 자연학의 소요약집이다. 문과계열이라 과학과는 친하지 않는데 <철학 체계 전반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사람들도 이렇게 기본적인 원리를 요약해놓은 것을 암기해두어야 한다. P43>고 하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읽었다. 원자와 원자 운동, 우주와 우주의 구성, 유체 등 당시 그리스의 자연과학에 대해 에피쿠로스의 주장뿐만 아니라 다양한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3장 피토클레스에게 보낸 서신은 천체, 우주에 대한 글이다. 얼마 전 심채경박사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조금 읽었다. 우주라는 단어는 신비롭고 비밀스럽다.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그래서 우주에 관한 부분은 조금 더 유심히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모두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주는 물체와 허공이다. P46>이라는 문장과 그 당시 이미 지구의 공전, 일식, 월식들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그들이 그것들을 어떤 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짧은 지면에 모두 다 적지 못하지만 8장 중 가장 많은 밑줄을 그었다. 이 장에서는 인텍스를 붙이다 붙이다 지쳐 연필로 밑줄을 그었다.


한 권의 책으로 「밀레토스 학파」부터 「에피쿠로스 학파」까지 그리스 학파의 계보를 모두 볼 수 있었다. 그리스 철학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할듯하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하는 아타락시아,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하고 있을 때 가장 편안한 기분을 느꼈었는지 고민해 봐야겠다. 평균수명이 길어진 지금 앞으로 남아있는 인생을 무엇으로 채워갈지 생각해 보게 한다.


따라서 우리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바른 지식은 우리 삶에 무한한 시간을 더해주는 방식이 아닌, 불멸에 대한 갈망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삶의 필멸성조차 즐길 수 있게 한다. P109


우리는 한 번 태어날 뿐, 두 번 태어날 수 없다. 한 번 태어난 후에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너는 시간의 주인이 아닌데도, 행복을 뒤로 미루로 우물쭈물하다가 인생을 낭비하며 우리 각자 쓸데없이 분주히 움직이다가 죽는다. P140


삶을 포기하기 위한 그럴듯한 변명을 많이 가진 사람은 정말 형편없는 사람이다. P143

에피쿠로스 쾌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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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 영화로 읽는 ‘무진기행’,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 ‘안개’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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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무진에 내려온 윤과 무진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인숙의 마음이 서로 교차하다 만난다. 윤은 서울의 회사에 문제가 생겨 무진으로 온 것 같은데 인숙은 왜 무진을 떠나고 싶어 할까?


성악을 전공한 인숙은 무진 중학교에서 음악선생님을 하고 있다. 가끔 세무서에 들러 직원들과 어울리며 그들이 노래를 요청하면 가요를 성악 스타일로 부른다. 세무서 서장 조한수는 인숙에게 추파 던지고 무진 중학교 국어교사 박 선생은 인숙을 사랑한다. 하지만 인숙은 두 사람 모두에게 관심이 없다.


인숙 - (명랑하게 꾸미며) 앞으로 오빠라고 부를 테니 저를 서울로 데려가 주시겠어요?

윤 - 서울에 가고 싶단 말이지?

안개 P69


인숙의 방 벽에는 그녀의 사직이 가득 붙여져 있다. 사진 속의 인숙은 즐겁게 웃는 모습, 친구들과 어울려 익살을 부리는 모습 등이 담겨있다. '내가 대할 다닐 때를' 말할 때마다 하는 이유는 그 시절이 인숙에게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때였기 때문일 것이다. 세무서에서 유행가를 부르고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치건덕거림을 당하는 현재의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해 경멸하는 것일까? 그래서 무신을 벗어나 가장 환하게 빛나던 시절이 있는 서울로 가고 싶은 것일까?


죽음으로부터의 도망, 병균으로부터의 도망, 그리고 또 ······ 도망 다녀야 하는 사람의 심정을 아십니까?

안개 P105


기준은 625사변에 의용군에 끌려갈까 어머니에 의해 동굴에 숨겨진다. 그리고 영장이 나와 군대에 가게 되었을 때도 어머니의 반대로 다시 동굴에 갇히게 된다. 그 후엔 폐병이 나서 근처 바닷가에 지내게 된다. 무언가로부터 숨고 도망 다니는 인생을 살아간다. 현재도 무진에 도망을 와 있다. 도망치는 곳은 항상 무진이다. 기준에게 무진은 도피처였을까?


안개는 이 세상에 한이 있어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그것을 헤쳐 버릴 수가 없다.

안개 P23


자신을 가장 잘 숨길 수 있는 무진으로 도망 온 기준과 가장 행복해서 잊지 못하여 집착하게 된 서울로 떠나고 싶은 인숙의 길 잃은 마음이 어느 순간 교차되어 만나며 공감한다. 기준은 무진의 안개에 자신을 감추고 싶고 인숙은 안개에 휘감긴 무진이 답답하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을까?


「안개」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자을 쓴 작가가 직접 각색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작가 김승옥을 감독 1편과 15편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각색 작품을 남기는 영화인으로 변신시켰다. 하지만 제10회 동인문학상, 제1회 이상문학상 등을 받으며 작가로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도시로 간 처녀와 안개로 김승옥 작가를 만났다. 「무진기행」이 김승옥 작가의 <23살 때 작품>이라니 그가 등단했을 당시 왜 문학계가 충격을 받았는지 알겠다.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인 안개를 읽었니 헤어질 결심과 무진기행도 읽어보아야겠다. 작가의 한 작품을 만나게 되면 연쇄반응으로 또 다른 작품을 읽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안개에 감싸여 감춰진 무진이라는 바닷가 도시의 비밀스러운 모습이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들고 버스에 올라보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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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간 처녀 - 처음 공개되는 작품으로 상영중단까지 당한 사회고발 문제작 김승옥 작가 오리지널 시나리오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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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보이던 버스안내양이 어느 날 사라졌다. 그렇게 그녀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책은 인권의 가장 밑바닥에 있던 버스안내양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삥땅>이라는 단어는 어떤 이의 기억에는 정겹게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아마 가장 많은 삥땅의 핑계는 책을 산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학생이었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영화도 보고, 빵집에서 소보르빵을 먹고 싶은데 돈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삥땅은 엄마에게 잔소리나 회초리 몇 대면 끝이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모이지 않는 돈에 버스 차비를 삥땅하는 버스안내양들에게 돌아온 것은 남자인 박총무앞에서 벌거벗은 몸을 수색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삥땅을 하지 않은 문희에게까지 강요된다. 같은 버스안내양이지만 정직한 문희를 비웃으면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다.


영옥 - 김 기사님하구 나하구 택시 사업하는 생각!

도시로 간 처녀 P68


자신의 옳다고 여기기는 것을 꿋꿋이 지켜가는 문희의 모습도 인상 깊어지만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올인한 영옥도 기억에 깊이 남았다. 택시를 사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함께 하고 싶은 사람도 스스로 선택한다. 잘못된 선택이긴 하였지만 끝까지 쿨한 모습에 조금 반한듯하다.


건물의 높은 곳에 올라 소리치는 문희의 모습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가도 세상의 밑바닥 인생은 존재하기 때문일까? 문희가 뛰어내린 모습에 버스안내양, 그녀들의 모습은 변했을까? 사람은 고쳐 써는 게 아니라지만 문희에 의해 개과천선한 돌아온 광석은 문희와 만났을지...


김승옥 작가는 직접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버스회사와 버스안내양들을 취재하여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그러나 영화가 상영되자 자동차노조연맹과 버스안내양들은 항의를 한다. 이에 영화진흥공사에서 우수영화상으로 선정되고 대종상 작품상을 수상할 예정이었던 작품은 상영이 중단된다. 이후 작품을 수정, 재검열 후 다시 상영되어지며 6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촬영상 동상을 수상한다.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조리, 불합리, 인권유린, 고용 착취는 현재는 사라졌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왜 그러한 문제들을 외면하게 되었는지, 잊혀져가는지, 듣지 않게 되었는지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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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생리학 인간 생리학
루이 후아르트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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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대 프랑스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생리학’시리즈가 대유행했을까? P13


프랑스는 1830년 7월 혁명 이후 루이필리프 입헌 왕정 시대를 지나 1848년 2월 혁명으로 다시 제2공화국이 들어선다. 하지만 56년 만에 되찾은 공화국은 온건파가 득세하며 루이 나폴레옹은 제2제정을 출범한다. 정치는 공화국에서 제정시대로 퇴행하였으나 산업은 발전하며 파리의 모습은 시시각각 크게 변하며 ‘현대’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그리고 바쁜 도시의 거리를 산책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생리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리학이 아니다. 산업화로 인한 발달로 혁명의 시대는 가고 자본의 시대가 오면서 인간성이 상실된다. 이에 인간에 대한 관념적, 정서적 이해가 불가능해진다. 그리하여 과학과 의학을 통해서라도 인간을 제대로 통찰해 보고자 하며 <생리학 시리즈>가 크게 인기를 얻게 된다.


책의 원제목인 <Physiolgie du  >에서 는 무념무상으로 한가롭게 거니는 자로 <소요(逍遙) 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도시 거리를 거니는 여러 다양한 이들을 일반적으로 말하는 <산책자>로 옮겼다고 한다.


만일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외에 있다면, 그 이유는 산책할 줄 알기 때문이다. P29


<다른 동물>은 교양 없는 동물적인 사람을 뜻한다. 루이 후아르트는 다양한 파리의 산책자들을 관찰한다. 그는 자신이 관찰한 파리 산책자들의 모습을 당시의 사회 모습에 빗대어 반어법으로 위트 있게 풍자하며 비평한다. 그는 <누구나 다 산책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산책은 집을 나와 느긋이 거리를 거닐면 되는 것이 아닌가? 산책을 하는데도 자격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루이 후아르트는 산책자에게도 정신적, 도덕적 자질을 요구한다. 그리고 오래 멀리까지 걸어야 하기에 건강한 신체적 자격도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산책은 하지만 산책자가 아닌 이들을 대해 이유를 설명한다. <‘오늘은 기념물을 열한 개는 볼 거야.’>라고 외치는 외지에서 온 여행객의 설명은 지금 현대에도 있는 모습이며 가끔은 나의 모습이라 살짝 뜨끔하였다. 여행을 가면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보고 싶은 곳들은 많아 빽빽하게 일정을 잡는다. 그러나 막상 그중에 절반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음에는 여유 있게 계획을 세우자 다짐하지만 또다시 반복한다. 외지에서 온 여행객들은 일정에 쫓기어 제대로 거리를 거니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기에 <산책자>가 아니라 한다. 그리고 무위도식자, 부랑자들도 <가짜 산책자>라 한다.


<튈르리 공원>을 산책하기 위해서는 무도회장처럼 정중한 복장이 요구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챙 달린 모자를 쓰고 왔거나, 윗옷만 입었거나(양복의 윗옷인듯하다), 짐 보따리가 많거나, 강아지를 데려오면 입구를 지키던 보초병에 의해 입장이 거부되었다. 그리고 해 뜨고 나서부터 해질 때까지만 공원을 산책할 수 있었다. 19세기의 파리는 왠지 재미난 모습들이 있었다. 파리의 지도를 보며 그 당시의 파리의 리슐리외가, 생토노레가, 샤플리에가 등의 파사주(파리의 상점가)들을 찾아보며 산책을 하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다음과 같은 자질을 소유하지 않은 자는 산책자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소유할 자격이 없다. P203


<산책자의 자질>이 있다. 그중 몇 가지만 적어본다.

▶ 어떤 경우에나 명랑할 것.

▶ 필요할 때는 성찰할 것.

▶ 항상 관찰 정신을 지닐 것.

▶ 독창성은 그닥 없어도 됨.


독창성은 그닥 없어도 된다고 한다. 나는 산책자의 자격 중 몇 가지나 가지고 있는지 고민해 봤다. 명랑한 것과 독창성은 없다는 것 정도일까? 산책을 하며 주변을 별로 관찰을 하지도 않으며 성찰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짜 산책자였다니 반성을 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산책을 하게 된다면 루이 후아르트가 말한 산책자의 자격을 되새기며 해야겠다. 지금까지와의 산책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 산책이 될까?


요즘은 산책로를 따라 산책하는 사람이나 운동을 위해 걷는 이들이 많아졌다. 산책을 하면서도 핸드폰을 보거나 혹은 운동 앱 등을 본다. 온전한 산책을 즐기지 못한다. 빨리빨리와 할 일이 가득한 현대인들의 바쁜 걸음을 한 템포만 늦춰보는 건 어떨까? 그리하면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나무나 꽃, 하늘, 그리고 옆에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랑하는 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 적지 않은 나머지 <산책자의 자격>을 궁금해하여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루이 후아르트가 이야기하는 <산책자의 작은 행복들>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리하여 <진정한 산책자>자로 거듭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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