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 가지고 싶다. 읽기보다 소장용으로. 세트로만 구입된다니 선택의 여지도 없고. 미니멀리즘은 점점 멀어지는가. 저 매력 돋는 표지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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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7-27 1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건 또 뭡니까!! ㅎㅎㅎㅎㅎ

blanca 2021-07-27 10:05   좋아요 2 | URL
흑, 너무 해요. 다락방님도 가지고 싶어질 겁니다 ㅋㅋㅋ 읽은 거랑 안 읽은 거랑 섞여 있긴 한데 큐레이션도 기가 막힙니다.

다락방 2021-07-27 10:06   좋아요 2 | URL
책장에 꽂아 놓으면 진짜 뽀대날 것 같아요! 그렇지만...그렇지만.....

잠자냥 2021-07-27 10:16   좋아요 2 | URL
다락방 님 이거 한 세트 더 있어요... 밤세트 낮세트... 일케일케.. (아니 저건 그냥 20권짜리군요. 전 어젠 밤/낮 세트 따로 파는 것만 봤거든요... -_-)

잠자냥 2021-07-27 10: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어제 봤는데, 열린책들 상술 너무하다.... 하면서도, 거의 다 읽은 작품들이면서도 자꾸 눈돌아가네요. ㅠㅠ

blanca 2021-07-27 11:02   좋아요 2 | URL
저는 낮세트는 다행히 30프로만 읽었다는... 이 뿌듯함은 뭐죠? 덜 읽어서 더 구입이 정당화되는...

잠자냥 2021-07-27 11:05   좋아요 1 | URL
부러워요...;; 30%면 사셔도 될 거 같아요. ㅋㅋㅋㅋ

blanca 2021-07-27 11:06   좋아요 2 | URL
ㅋㅋㅋ 이건 다 잠자냥님 때문입니다. 결제로 갑니다.

새파랑 2021-07-27 12: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ㅜㅜ 완전 가지고 싶네요 ㅜㅜ

blanca 2021-07-27 12:22   좋아요 2 | URL
이건 완전 소장각이잖아요.

유부만두 2021-07-27 1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두 세트라니…

blanca 2021-07-27 12:23   좋아요 1 | URL
한 세트만 하시지요.^^;; 저는 읽은 것이 적은 쪽으로...

수이 2021-07-27 1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 디자인팀이 작정하고 사장들이랑 합심해서 요즘 디자인 쪽으로 밀고 가던데요. 두 명의 사장 중 한 사장의 디자인 감각이 탁월하다고 하던데 이것도 그 분 작품인 거 같습니다. 허허허허허허 하고 웃고 저도 지르러 갑니다 ㅋㅋ

blanca 2021-07-27 12:55   좋아요 1 | URL
아! 그런 거군요. 디자인이 탁월해서 뭔가 있겠거니 했어요. 결국 사고 말았어요. 또르르...

수이 2021-07-27 13:35   좋아요 1 | URL
울지 말아요 블랑카님 다 읽고 리뷰 써주세요 헤헤헤 신난다

페넬로페 2021-07-27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너무 갖고 싶어요
그냥 책꽂이에 떡하니 있기만 해도 좋을것 같아요^^

blanca 2021-07-27 12:56   좋아요 2 | URL
아, 요새는 책들이 다 왜 이런 거죠? 물욕은 끝이 없네요.

카스피 2021-07-28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개인적인 견해는 맘이 움직이면 지르는 것이 정답입니다^^

blanca 2021-07-29 08:30   좋아요 1 | URL
ㅋㅋ 카스피님 말씀 듣겠습니다.

transient-guest 2021-08-06 0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우 너무 아름답습니다.ㅎㅎ 일단 바구니에 담긴 했는데...보관함이 넘쳐서 바구니에 그냥 두고 조금씩 사다가 보니 이젠 바구니도 넘치네요...-_-:

blanca 2021-08-08 08:52   좋아요 2 | URL
종이책들이 오히려 더 예뻐지고 상품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의 물성이 주는 기쁨이 커요.

단발머리 2021-08-08 1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서 가격 보고, 두꺼운 책 3권 정도야~~ 하고 기뻐하려다가 아니... 두 세트요? @@
두 세트 가격이 그거였네요. (저 뭐 보고 온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blanca 2021-08-09 08:24   좋아요 0 | URL
가격도 참 예쁘죠? ^^;;
 

한 지역을 중심으로 그곳의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연작 소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사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다.
















여교사 올리브 키터리지는 여기에서 하나의 매개체이자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녀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니다. 퉁명스럽고 직설적이고 소위 오지랖이 넓다. 그리고 이 점이 바로 타인과의 소통의 시발점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냉담하고 타인에 관심이 없는 자기 중심적 인물이었다면 다른 사람들과 엮일 일이 사실 별로 없을 것이다. 올리브의 성격은 마을 주민들의 삶에 싫든 좋든 끼어들기 좋은 설정이다. 작가가 그녀를 동원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독자들은 그녀에게 쉽게 감화된다. 다른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번거롭고 흥미로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인물은 어떨까.


평범하고 젊은 기자다. 특이한 사항이라고는 어머니를 일찍 잃었고 아버지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겉돈다.
















올리브의 역할을 하는 소년 조지 윌러드는 가상의 마을 와인즈버그 사람들의 외부적 관찰자이자 내부적 청자의 역할을 한다. 그가 직접 중심 인물이 되어 움직이는 이야기도 물론 있지만 대체로 그는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페르소나 역할에 충실하다. 보고 듣고 느끼고 기록한다. 


조지 윌러드는 마을에 소속되어 있고 마을의 전형적인 인간형이었으며, 그 자체로 마을의 정신을 현현한다고 느껴졌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셔우드 앤더슨


그가 올리브와 다른 점은 이야기를 통해 성숙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미 중년을 넘긴 올리브와는 다른 성장 단계에서 그를 통과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소년의 극적인 성장과 개안을 이룩한다. 그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어떤 그로테스크함을 발견한다. 삶을 알고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절대적인 단일한 진실은 없다는 점, 개개의 삶마다 다른 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것이 때로 사람을 망친다는 점을 직시하는 것이다. 셔우드 앤더슨이 이야기하는 성장은 이런 점에서 슬프다. 


그리고 자신의 시간이 무로부터 생겨나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미 주어진 삶을 다 살고 무로 돌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행진하듯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성숙의 슬픔이 소년을 찾아온 것이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셔우도 앤더슨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을 이해한다는 것의 초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것에서 자신의 개별성과 유일함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기자신도 그들의 무리 중 일원임을 깨닫는 것, 거기에서부터 성장은 이루어진다. 지상에서 유일무이한 절대적 존재로 스스로를 실감했던 그 찰나 같은 시간들은 엄연히 박살나기 위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씁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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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단 한 대의 피아노가 주인공이 되는 일대기. 어떤 극적인 드라마도 사건도 없이 그저 400명의 노동자가 조연이 되어 묵묵히 일 년 가까이 88개의 건반과 240개가 넘는 현이 만들어 낼 소리의 잠재태를 위하여 투신하는 이야기. 그런데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마음이 한없이 먹먹해지는 이야기. 
















저자인 [뉴욕 타임스] 기자인 제임스 배런은 K0862의 성격과 인격을 형성하는 스타인웨이 공장 노동자들 곁에서 피아노의 거대한 림을 만드는 출발점부터 조율을 거쳐 유명 피아니스트들이 연주를 하는 '독립'의 피날레까지 전과정을 밀착 취재하여 기록했을 뿐 아니라 이민 노동자들 개개의 서사, 스타인웨이 가문의 전사까지 더불어 치밀한 태피스트리처럼 엮어낸다. 피아노를 만드는 과정은 기술의 혁신, 사람들의 관심사 변화와 더불어 많이 진화했지만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가 가지는 어떤 고전성을 수호하는 여전한 수작업과 오랜 시간 공력이 들어가는 지난한 시간의 경과를 화석처럼 품고 있고 이것은 다른 제조업 노동자들과는 다른 자부심을 각 공정의 노동자에게 불어 넣는다. 전임자는 후임자에게 정형화된 자동 매뉴얼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 형태를 보고 그것을 체현하는 형태의 도제 시스템을 통해 하나의 악기의 분업화된 업무를 전수한다. 스타인웨이 공장의 노동자들은 서로 피아노를 가르치기도 하고 가족을 영입하기도 하며 하나의 단단한 결속력을 가진 부족처럼 끈끈해진다. 


효율과 능률과 IT 기술이 선봉에 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과는 거리가 먼 영역에서 여전히 느리고 진중하지만 과거의 가치를 믿고 수호하려 애쓰는 분투의 현장의 목격은 그 자체로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렇게 완성된 K0862의 연주자의 이름이 낯익다.
















피아니스트 조너선 비스의 언어는 마치 잘 다듬어진 선율처럼 독자를 설득한다. 그의 음악 이야기는 마치 하나의 근사한 연주회를 다녀온 듯한 느낌을 자아낼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답다. 그것은 언어와 음악이 가지는 한계를 서로 상쇄하며 이루어내는 절대 경지의 표현과 소통의 처절한 앙상블이다. 


지금도 내 인생에서 손으로 꼽는 값진 경험 중 하나가 어렸을 때 무리해서 배운 피아노다. 재능이 없는데 재능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던 엄마와 소곡집 연습만 해도 대단한 연주를 듣는 듯 감격했던 주변인들의 과장된 박수가 얼마 안 되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지금도 피아노 앞에 앉으면 설명할 수 없는 증폭된 감정들이 소용돌이친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절에 대한 향수, 실현하지 못한 꿈들, 그리고 결국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 그럼에도 여전히 그러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손가락의 기억에 대한 신비로움이 한데 섞인 것이다. 울림 페달을 밟으면 나의 원래 실력보다 한 뼘쯤은 더 그럴듯하게 들렸던 그 기만의 연주에 취했던 그 어리석었던 과장의 시간들은  가감 없이 직시하는 현실의 황량함과 대비되어 언제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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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SF에 푹 빠져들지는 못한다. 그 세계와 현실과의 갭 사이 어디쯤에서 항상 서성인다. 테드 창과 김초엽의 이야기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모든 작품에 전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떤 공명 지점도 결국 SF 세계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세계와 현실의 접점의 보편 정서가 얘기되는 곳이어서 가능했다. 


















아, 그런데 뒤늦게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에 흠뻑 빠져 버렸다. "로켓의 여름이었다." 이런 문장 하나로도 사람을 끌어당길 수 있는 작가라니. 존 스칼지가  열두 살에 실물을 영접한 마법사 같은 작가로 레이 브래드버리를 회고한 서문은 이 책을 다 읽고 마무리로 맞춤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성 연대기>를 읽는 일은 아쉽게도 열두 살은 아니지만(그 때 이 마법에 걸린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황홀할까) 마법사가 만든 마법의 왕국에 로켓을 타고 탐사를 다녀온 느낌이다. 허무맹랑한데 그냥 무작정 설득된다. 잠들어 있던 그 무엇이 하나하나 깨어난다. 올더스 헉슬리가 브래드버리를 시인이라고 칭하자 "그런 망할 일이."이라고 응답한 에피소드를 고백한 것은 겸손이 아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이야기가 맞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어로 화성의 연대기를 만들 수 있는 작가가 이 지구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그가 설계한 화성은 지구와 동떨어진 곳이 아니다. 지구인들의 탐욕과 오만, 질서, 차별 의식을 벗어던지고 남은 실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지구인들은 연이어 원정대를 보내고 그곳을 또 오염시키려 한다. 그들만의 공고한 관념과 욕망은 다시 삶의 음험한 두려움과 불안, 유한한 생의 한계를 불러온다. 그의 비판 의식은 언뜻 화성과 지구를 대척점에서 대비시키는 것 같지만 화성은 결국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삶과 생의 핵심을 정면으로 직시해야 하는 전환기의 공간으로 위치한다.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허공에서 너무나 사소해져 버린 지상을 내려다보며 자신의 삶을 조망하듯 이 작가의 렌즈로 비로소 우리와 우리가 채운 지구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화성 연대기>의 스물 여덟 편의 이야기는 연작처럼 묘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1999년 1월부터 2026년 10월로 상정되는 기간은 저마다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다. 그것은 화성에 정착한 지구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연인들이 정착한 화성으로 떠나기 전의 여인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화성에서 이미 전멸해 버렸다고 생각한 화성인과 노인이 재회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사라져 버린 아름다운 환영과의 재회, 과거, 현재, 미래가 교차하는 이야기, 돌이킬 수 없는 작별들을 송환하는 메아리이기도 하다. 한 편 한 편은 브래드버리의 서정적이고 다채로운 언어들로 직조되어 인류의 거대한 출항의 서사시처럼 들린다. 


브래드버리 자신의 이야기를 빌려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과거로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이다. 미래의 이야기에서 그리운 빛바랜 과거의 향수를 다시 발견하는 즐거움은 특별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작은 초에 불을 붙이면 풍등은 천천히 빛을 품고 부풀어 올랐고, 이미 오래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친척들은 우울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떠나보내기 싫은 반짝이는 환영이었으니까. 풍등을 손에서 놓으면 인생의 한 해가, 또 한 조각의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셈이니까. 풍등은 빛을 품은 채로 따스한 여름밤의 별자리 사이로 흘러갔고, 빨갛고 하얗고 파랗게 물든 눈들은 함께 베란다에 앉아 아무말 없이 그 모습을 좇았다. 

-레이 브래드버리 <풍등>


이 책을 손에서 놓으면 인생의 한 해가, 또 한 조각의 아름다움이 별빛 사이로 떠가는 풍등처럼 사라져 버린다. 다행히도 풍등을 떠나 보내는 마음은 사라져 버리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의 가치와 무게로 바로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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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역주행이다. 사십 대에 갑자기 김연수의 <스무 살>을 ,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는 일. 이십 년도 넘게 지난 스무 살의 정서는 이제는 과거완료형이다. 그럼에도 나는 더 깊이 더 풍부하게 주인공들의 정서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건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이 비로소 완결되고 나서야 뒤돌아보고 나서야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인생의 많은 일들과 스무 살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스무 살은 그렇다. 하나의 사건 같다.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헤어지고 넘어지고 구르는 일, 모두가 빛난다고 최고라고 하는 시기를 통과하며 전혀 그렇다고 느낄 수 없는 그 거리감에 한없이 추워하면서도 내가 과연 서른 살과 마흔 살을 기다리는지 확신할 수 없었더 시간들.

















정말 놀라운 것은 하루키가 스물아홉 살에 갑자기 "아무 생각 없이 쓴 소설"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결국 오늘날의 하루키가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인간의 심연, 삶의 비의의 원형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물론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ㄱ 심플한 문장들이 하루키스러운 그 무엇의 강렬한 울림을 더 원색적으로 제공한다. 스물한 살의 남자애가 또래 여자애와 나누는 그 살아 있는 대화들, 갑자기 튀어 나오는 너무 무겁고 진지한 삶의 이야기들은 불협화음처럼 들려야 하는데 또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도 그랬다. 뜬금없이 스무 살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식. 삶의 모든 철학적 진의를 이미 다 알아버린 듯한 허세. 스무 살은 그런 부조화와 모순과 불협화음의 결정체여야 스무 살 답다. 논리적이고 담담하고 겸손하다면 그건 스무 살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다. 마땅히 지워버리고 싶은 많은 부분을 품고 있어야 제법 스무 살 답다. 내 생각은 그렇다.


김연수의 <스무살>의 친구 재진과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친구 쥐는 크게 닮은 점이 없다. 아니, 오히려 반대다. 재진은 온순하고 사회의 정형화된 틀에 맞는 성공의 코스를 성실히 답습한다. 쥐는 그렇지 않다. 반항하고 도망친다. 둘은 각각 주인공의 청춘에 강렬하게 각인되는 주변인으로 그려지지만 어쩌면 자신의 내부에 있던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일런지도 모른다. 결국 김연수도 하루키도 화자가 아니라 재진과 쥐를 그려내기 위해 단지 나의 스무 살과, 스물한 살을 빌려온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결국 이러한 것을 이미 우리는 다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이미 스무 살에 직관적으로 알았다는 것을 고백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구. 조건은 모두 같아. 고장난 비행기에 함께 탄 것처럼 말이야. 물론 운이 좋은 녀석도 있고 나쁜 녀석도 있겠지. 터프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나약한 녀석도 있을 테고, 부자도 있고 가난뱅이도 있을 거야. 하지만 남들보다 월등히 강한 녀석은 아무 데도 없다구. 모두 같은 거야.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언젠가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겁을 집어 먹고 있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자는 영원히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있지. 모두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빨리 그걸 깨달은 사람은 아주 조금이라도 강해지려고 노력해야 해. 시늉만이라도 좋아. 안 그래? 강한 인간 따윈 어디에도 없다구. 강한 척할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뿐이야.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종내는 고장나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죽음으로 향한 비행기에 함께 타고 있다. 다 두려워하면서 그것을 숨기기도 하고 잊기도 한다. 이미 그걸 우리는 아주 어려서 알고 있었다. 그래도 계속 잊어 버리고 욕망하고 시샘하고 절망한다. 청춘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죽음과 상실과 직시함으로써 제대로 복기할 수 있다. 가뭇없이 사라져 버리는 그 찰나를 복원하는 것은 그래서 어렵고 여전히 유효하다. 노인이 되어서 다시 스무 살의 이야기를 읽는다 해도 여전히 나는 또 가슴 뭉클할 것이다. 너무 멀어져 버려서, 너무 가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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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7-13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아무 생각 없이 써야지 좋은 작품이 나오나 봐요. 전 하루키 작품 중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참 좋아했거든요. ㅎㅎ

blanca 2021-07-14 08:01   좋아요 1 | URL
저 이거 얼마전에 읽었어요. 정말 좋더라고요. 진짜 힘이 쫙 빠진 담백한 서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