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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 읽는 인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책에서 마주친 한 줄』

 

이 책에 쓰여 있는 대로 살아가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갈래라면 나도 이 책의 주인공이 선택한 길을 가자, 그렇게 결심했지요. 제가 처음 그런 책을 일겍 된 것은 아홉 살 때입니다. …… 아홉 살에서 열세 살까지 오 년간은, 완전히 그 첫 책의 영향 아래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소설이었는데, 나카무라 다메지가 번역한 이와나미문고의 책이었습니다.

 

그다음 제 인생의 결정적인 책을 만난 건 열여섯 살 때였습니다. …… 이와나미신서에서 나온 책인데 지금은 이와나미문고에서 <<프랑스 르네상스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증보판이 나와 있어요. 정말 훌륭한 책입니다. …… 헌책방에서 이와나미신서판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을 발견하면 사두시기를 권합니다.

 

책을 읽는 데 유용하다고 느꼈던 점들 중 하나는, '재독, 즉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전신운동이 된다'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저자의 인생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나는 톰 소여의 모험과 함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어렸을 때 이미 읽었지만,​ 프랑스 르네상스 단장은 아직 읽지 못했는데 궁금하긴 하다.

작가 유년기 시절에 영향을 미쳤다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십대아이들의 모험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의 후편 혹은 속편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문학적으로 평가받는 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더 높다고 들었다.

어쨌든, 주인공의 삶처럼 살자고 포부를 밝힌 저자가 이 책으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하니 그의 앞으로의 포부가 짐짓 짐작이 된다.

​책을 읽다가 길을 잃었을 때, 혹 미로에 빠졌다고 생각하면 다시 방향을 찾아나서야 하는데 이 때 저자는 재독을 강조한다.

번역본의 경우를 예로 들면 이렇다.

한 권의 번역본을 읽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 혹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에 각각 빨강과 파랑, 두 종류의 색연필로

선을 긋거나, 약간 긴 구절이라면 선으로 상자를 만드는 것이 제 방법입니다. 선을 그을 연필의 색이 적어도 두 종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 색은 감탄한 부분, 매우 흥미로운 부분에 선을 긋은 긍정적인 행위를 위함입니다. 아울러 외우고 싶은 단어나 문장이 있다면, 특별히 선을 굵게

그어두는 게 좋습니다. 또 하나는,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싶은, 다소 부정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 오히려 그와 반대로, 진정 훌륭한 언어, 훌륭한 표현이다 싶어 기억해두고자 하는 부분은 붉은색으로 칸을 쳐둡니다.

 

가끔씩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면 머릿속에 쌓고 쌓일텐데 책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있느냐'고 종종 물어본다.

나의 뇌 용량은 무제한이 아니다. 책 뿐만이 아니라 공부하면서 터득한 정보들도 꾸역꾸역 넣는데 어떻게 일일이 기억할 수 있을까.

한 달에 기본평균 10권 이상은 읽고 나아가 1년동안 최소 20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모든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중요한 건 그 책이 나에게 어떤 것을 주었는지는 확실히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읽은 책 제목을 읊어주면 등장인물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 책이 나에게 어떤 것을 주었는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하다보면 줄거리도 기억나고 등장인물들도 어렴풋이 기억나곤한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왔기에, 나의 독서방식은 늘 변함이 없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다시읽기'를 매우 좋아한다. 책 결산에는 따로 넣지않지만 한 달에 한 권씩 이미 읽었던 책 한 권씩 꼭 읽곤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닌 책을 읽음으로써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고, 인간이 생각한다는 건 그 정신이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렇듯보면 저자는 단순한 글을 읽는 책 읽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저자의 인생습관이 된 독서의 기본 원리는 어떻게 될까? 그는 '배우기, 외우기, 나아가 깨닫기'를 하고있다.

습득하고, 타인에 의해 새로운 것을 알게되고, 스스로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깨닫기인 것이다.

나의 독서방법도 배우기-외우기-깨닫기인데,  외우기는 정말 마음 속 깊은 곳을 '띵'하고 울렸을 때만 하기에 다르다면 다른 점인 것 같다.

 

한 달에 최소 한 권은 읽어야 하는 게 책인 것 같다. 많이들 읽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놓고 있는 게 책인 것 같다.

모두가 책을 통해 많은 것을 터득하고 얻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책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가 소설가로서 해온 작업은, 경험을 한 당사자인 저로서도 매번 적극적인 의미가

있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그것이 저의 인생입니다. ……

"어쩔 수 없어! 나는 나의 상상력과 추억을 묻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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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무함마드 - 생각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라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4
최영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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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교과서 무함마드 : 생각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라

 

 

 

 

『책에서 마주친 한 줄』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이 창조한 지구를 인간으로 하여금 관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내가 태어나는 것도, 부모가 자식을 낳는 것도 모두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무함마드는 말한다.

 

죽음이란 신이 창조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재창조다.

 

무함마드는 오히려 신에게 감사를 드리라고 말한다. …… 아픈 것을 괴로워하고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며 무작정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생로병사의 본뜻을 깊이 이해할 때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현재의 자신에게 만족할 때 온다.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고, 자신의 현재 위치에 만족하고, 자신이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고,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할 때 오는 것이 행복이다. 만족하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고 만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곧 불행이다.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무함마드는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대답한다.

행복이 만들어지는 곳도 마음이요. 만들어진 행복이 머무는 곳도 마음이다.

그래서 행복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마음에 있으니 마음의 감각으로 발견하는 게 행복이다.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 천만금을 가진 자가 일 없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가난하지만 일이 있어 행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또한 행복은 감사하는 것이다. …… 행복은 자신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고, 어느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만들어가는 행복은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만의 재산이다.

 

진정한 천국과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과 내가 완벽하게 하나가 될 때 그곳은 천국이 되고 하나님과 내가 따로 있을 때 그곳은 지옥이 된다.

'나'라는 자아를 100퍼센트 소멸시켜 신일합일을 이루면 완전한 천국이고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를 50퍼센트만 소멸시킨다면 절반은 천국이고 절반은 지옥이다. 자아를 전혀 소멸시키지 않는다면 그곳은 완전한 지옥이 된다.

 

인간은 왜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 무함마드는 인간의 노동을 긍정적으로 보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행복해지는데 필요한 조건이라고 보았다.

무함마드는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행복을 모두 얻는 자가 훌륭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노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가장 깨끗한 재산이며 그 수입으로 살아가는 자가 내세에서 가장 큰 행복을 얻는 사람이다.

 

무함마드는 "너희에게 베풀어준 것으로 내세의 안식처를 구하라"라고 말한다. 현세와 내세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동을 통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행복일 것이다.

 

숙명과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고 실망과 절망에 빠진 자는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지옥을 택한다.
그러나 숙명과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기도하고 간구하면 귀가 되어, 눈이 되어, 손이 되어, 발이 되어준다고 알라는 말한다.

 

무함마드가 이렇게 육체와 마음의 청결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음과 발, 그리고 손은 모두 인간의 업적을 창출하는 도구기 때문이다. 마음은 뜻을 세우고, 발은 그 뜻에 따라 움직이고, 손은 그 결과를 수확한다.

물로 육신을 씻고 예배와 금식으로 마음과 영혼을 씻을 때 비로소 육신과 영혼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무함마드라고 하면 딱 알라신이 떠오른다. 그외에는 아는 게 전혀 없다.

무함마드라는 이름은 그의 할아버지가 직접 손주의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임신 중에 지은 아흐마드는 그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알라신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것도, 잘 알지 못한 인물이였는데 이번 기회에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인생교과서_무함마드』를 읽기 전, 바로 『인생교과서_예수』를 읽었었는데 비교하며 읽으니 훨씬 더 흥미로웠다.

아담과 하와하면 선악과, 뱀, 죄악이 떠오를 것이다.

성경에서는 뱀이 하와를 유혹하였고 그 유혹에 넘어간 하와가 아담까지 꾀어 같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둘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는데

무함마드는 이에 대해 추방된 것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구속받지 않았고 선악과를 맛보기 전까지는 아담과 하와는 죄없이 깨끗하기 때문에 쫓겨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즉, 죄의 속성을 지니고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선한 성질을 가지고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맹자의 성선설이 번뜩 떠오른다.

어쨌든 모든 인간이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얀 공책처럼 원선의 상태로 탄생한다는 것이 무함마드의 변론이다.

 

전에 책에서 봤던 인샬라에 대해 이번에 알게되었다. 무슬림들이 말하는 '인샬라'는 '알라의 뜻이라면, 알라께서 원하신다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무함마드가 질문을 받았는데 그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내일로 미루자 사람들이 조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때, 알라가 가브리엘을 통해 알지 못할 때는 내일이라 말하지 말고 인샬라라고 대답하라며 일러주었다고 한다.

말이라는 게 워낙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말을 내뱉음에 있어서 항상 주의해야 한다.

마음에서 생각이 나오고 그 생각에 따라 좋은 말과 바른말, 나쁜 말과 그릇된 말이 나오는데 그 습관들이 모여 여러 가지 성격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인간의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가 말을 함에 있어서는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무함마드에게 죽음이란 관점은 재창조이다. 신이 창조한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것으로 말이다.

오히려 신에게 감사를 드리라고 말한다. 무서워하고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는 것보다, 생로병사의 본뜻을 깊이 이해하며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럼 무함마드에게 행복이란 관점은 어떨까? 그의 행복의 관점은 현재 자신에 대한 만족에서 온다고 한다.

즉, 행복의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대답한다.

행복이 만들어지는 곳도 마음이요. 만들어진 행복이 머무는 곳도 마음이다.

그래서 행복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마음에 있으니 마음의 감각으로 발견하는 게 행복이다.

또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며 감사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마음이 만들어가는 행복은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만의 재산이다.

 

팽글팽글 놀기보다는 인간의 노동은 행복의 조건이라 강조한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행복을 모두 얻는 자가 훌륭한 인간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노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가장 깨끗한 재산이며 그 수입으로 살아가는 자가 내세에서 가장 큰 행복을 얻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무함마드는 "너희에게 베풀어준 것으로 내세의 안식처를 구하라"라고 말한다. 현세와 내세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동을 통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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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예수 - 사랑, 먼저 행하고 먼저 베풀어라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1
차정식.김기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 인생교과서_예수 : 사랑, 먼저 행하고 먼저 베풀어라

 

 

 

 

『책에서 마주친 한 줄』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가?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제대로 죽는다는 것이고, 그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을 내다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서'라고 외치며 질주를 계속한다.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주변 세계와 친밀하게 접촉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외로움은 깊어가고, 숨은 가빠지고, 행복은 분주함의 파도에 떠밀려 해안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간다.
예수는 저마다 불행하다는 사람들 앞에 남들과 경쟁하지 않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땅 위의 현실에만 붙들리면 자기가 본래 누구인지, 왜 이 세상에 왔는지를 묻지 않게 된다.
그는 불의한 현상 질서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사람들을 북돋우면서도,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는 행복에 눈을 뜨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이 예수의 신학적 이념형을 포괄적으로 대표한다면 그것이 실제로 이 땅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은

'구원'이란 말로 표현된다. 구원이란 말은 복음서에서 동사와 명사 표현을 합해 모두 쉰한 번 등장한다.
특히 동사로 사용될 때는 수동태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구원이 자기 스스로 노력하여 획득하거나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권능에 의해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임을 암시한다.

희랍어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망 속에 '구원'이란 개념과 '치유'라는 개념이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전혀 이상한 표현이 아니다.
요컨대 구원은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우리의 온전한 생명 체계가 망가진 상태에서 정상적으로 회복해 다시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뜻하는

다른 명칭이다. 이는 예수에게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탈출하는 현실적인 삶의 반전과 구원의 의미가 밀접하게 연관됐음을 시사한다.


대중사회 속에서 '복'이나 '축복'이라는 말의 함의는 이중적이다.
순탄한 생의 여정을 보장한다는 의미의 무병장수, 자손의 성공과 출세, 사업의 번창과 풍부한 재물 소우, 번듯한 명예나 권세 획득, 가정의 평안 등의

희원은 겉으로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더라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바라는 욕망이다.


꼭 세속적인 행복과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이 대립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삶의 지향점을 어떻게 잡고 사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요컨대 예수가 본 진정한 복의 기준은 자신의 기원과 본체를 심층적으로 파악하여 동물적인 소유 지향적 삶을 지양하고 '의'와 '자비'와 '평화' 등의

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공변된 선교적 삶을 실천하는 데서 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가 견지한 복의 중추적 요소는 수직적·수평적 관계의 견실한 토대 위에서 소명으로 자각한 삶의 충실성을
발휘하면서 초지일관 용기 내어 앎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가 이해한 기도의 자세와 방식과 내용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열린 소통으로써 근본적인 관계의 충실성을 도모하는

'영혼의 호흡'이었던 것이다.

결국 신적 은총이 특정 대상의 구원으로 실현되는 것은 당사자의 '믿음'이 필히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에게 있어서 삶이란 무엇인가?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는 일이었다.
…… 그에게 낯선 타자는 없다. 모두가 한 호흡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들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쳤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그래서 생명이고 사랑이다.

학창 시절에 영어 단어를 외울 때 '죄'를 의미하는 두 단어 'crime'과 'sin'을 구별하면서 전자가 실정법에 위반되는 사회적인 범죄 일체를
의미하는 반면, 후자는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죄를 의미한다고 배웠던 것이 기억난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관점이 유지되는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적인 죄를 일컬을 때 대체로 'sin'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이 예수가 이해한 '죄'에도 유효할까. 그는 죄를 어떻게 보았고 어떻게 그것을 용서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죄의 용서에 관하여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가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7)
②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눅 17:3-4)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진실과의 정직한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용서는 피해자가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세상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갈릴리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는 그곳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게 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다. 오로지 택함을 받은 백성들을 위해 그곳에서 살았다.

남을 위해 사셨던 예수에게서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산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였을까? 대개 사람들은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물음에 바로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같아도 막상 그런 질문을 받으면 말문이 막힐 것만 같다.

예수는 산다는 것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제대로 산다는 것은 제대로 죽는다는 것이고, 그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을 내다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에게 있어서 삶이란 무엇인가?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온전하게 하는 일이었다.
…… 그에게 낯선 타자는 없다. 모두가 한 호흡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이들의 생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바쳤다.
그것이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그래서 생명이고 사랑이다.​

예수는 산다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남을 위해 일평생 사셨던 예수는 그렇게 자기 백성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셨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행복을 이루기 위해 살고있다.

행복을 위해 만들었던 그 모든 것이 지금은 인간 개개인을 너무 피폐하게 만든다.

행복을 위해 만들었던 그 모든 것이 발전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너무 빨라서 자연스레 우리의 삶 또한 빨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로인해 편안함은 극대화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개개인에 대해 문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만남이 줄어드니 개개인이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이 매우 커지고, 무엇보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빡빡한 삶이 이어지고 있다.

행복을 위해 우리가 흔히 바라는 축복은 성공, 출세, 권력 획득 등 욕망과 관련되었다.

대부분 물욕과 관련된 이 욕망은 바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변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행복과 하나님이 주신 행복이 대립적이지는 않다고 한다.

단, 우리가 어떻게 삶의 지향점을 잡는지에 달려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않는 마음으로 앎을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간절히 원하는 바를 위해 기도를 한다.

그럼 기도는 정말 들어주시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정성있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지금 내가 두손모아 단순히 비는 것 또한 기도일까?

일단, 기도는 내가 하나님에 대한 강한 믿음이 필히 수반되어야 한다.

왜냐면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 지칭할만큼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서의 유일하고 중요한 소통이기 때문이다.

그럼 예수는 우리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무엇일까? 열심히 기도하라는 것? 그렇지않다.

예수는 다른 그 무엇보다 용서와 화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진실과의 정직한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용서는 피해자가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세상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용서와 화해, 사랑을 먼저 베풀라는 예수의 말은 태초부터 누구나 꼭 배우고 느껴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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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없이 사랑하고 싶다 - 사랑하지만 상처받는 이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 상처 없이 사랑하고 싶다: 사랑하지만 상처받는 이들을 위한 관계 심리학

 

 

 

 

 

『책에서 마주친 한 줄』

 최초의 열정은 금방 사그라질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능력이 있다면 최초의 뜨거운 불꽃은 언제든 파트너십의 부드럽고

은은한 화롯불로 바뀔 수 있다.


우리는 자아감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자존감을 규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르시시즘의 자양분을 공급하고 언제든 직면할 수 있는 좌절에도 잘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인간은 다른 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됩니다.


자기도취적 애정 관계에서 부족한 것은 '정겹게 흐르는 사랑의 물결'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물결이 흘러넘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일곱 가지 태도가 필요합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

·상대와 그의 삶에 대한 호기심

·상대의 감정과 욕구에 대한 공감

·파트너 간의 적절한 거리

·화해

·감사하는 마음

·존중과 인정


최초의 열정은 금방 사그라질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더욱 깊은 관계를 맺을 능력이 있다면 최초의 뜨거운 불꽃은 언제든 파트너십의 부드럽고 은은한 화롯불로 바뀔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원하지 않는지를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상대방이 언젠가 눈치채주기만을 바랄수밖에 없습니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세상의 모든 이들은 행복이 넘치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인간관계 또한 말이야 쉽지, 참 어려운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인간관계로 인성을 파악하곤 하는데, 그만큼 인간관계는 본인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실패'라고 하지는 않겠다.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남녀관계의 관계를 보면 실패하는 사람들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상대방과 사랑에 빠졌지만 얼마 지나지않아 거절당하는 남자들, 모든 것을 다 해줬는데도 거부당하고 이해받지 못했다는 느낌으로 괴로워하는 여자들,

급작스럽게 단절을 겪거나 버림받은 부정적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의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신에게 사랑에 빠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파생된 단어가 나르시시즘, 바로 자기도취이다.

나르시시즘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의 실체를 깨닫지 못하고 늘 자기 자신에게 멈춰있다.

자신의 모습에 시선이 멈춰있다보니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파괴될 수밖에 없고 심지어 자기애적 집착으로까지 이어지곤 한다.

즉,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과 방어적 태도는 사랑하는 관계를 무력화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가 사랑을 갈구한다. 자신의 방식으로 혹은 상대방의 방식으로.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천지차이이다.

영원히 깨지지 않는, 처음처럼 변치않는 사랑에 도달하지 못하고 현실에 부닺히면서 생기는 상대방에 대한 집착, 실망, 분노 등의 부정적 감정들이

봇물터지듯 나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나를 너무 사랑하기에, 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크기에 늘 상대방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우리가 원하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이상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조언해주고 있다. 대개 어리기만한 나를 인정하지 못하기에 이런 문제를 초래한다고 하는 것이니

나를 너무 컸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어리기만한 나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포용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건강하고 긍정적인 자기애가 생겨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방향이 어긋나면 이렇게 관계에 나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긍정적인 자기애를 위해 어리기만한 나를 진심으로 안아주고 이해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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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위인전 - 위인전에 속은 어른들을 위한
함현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 찌질한 위인전

 

 

 

 

 

『책에서 마주친 한 줄』 

 

이렇게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에는 반드시 한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기 자신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합리화, 그럴듯한 명분은 망설임을 지우기도 한다. 망설임은 때로는 우리 행동을 적절하게 제어한다.

그러나 명분이 망설임을 지웠을 때, 우리가 스스로 '나는 지금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야'라고 합리화하며 끈을 놓아버렸을 때, 그것이야말로

갖가지 찌질한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때가 아닐까.

 

불안의 본질이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면, 불안해하는 우리는 이미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무엇, 잃을까 두려워하는

그 무엇이 영원하지 않고 '유한'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는 것과 특별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자존감의 측면에서는 양극단에 있는 자의식으로 볼 수 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인식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그의 성격은 자신의 경험을 대하는 자세에서 가장 밝게 빛을 발한다.

 

 

 

『하나, 책과 마주하다』

시인으로 살기 위해 자기를 고발한 남자인 김수영부터 빈센트 반 고흐, 이중섭, 넬슨 만델라, 좌절과 도취를 반복했던 인격장애자였던 스티브 잡스까지…!

​위대한 위인들이지만 실상 그들의 맨얼굴은 찌질함을 감추고 있었다. 그 중 김수영과 스티브 잡스 이야기가 꽤 솔깃했다.

​김수영 시인은 유학생활 중 의지했던 이종구의 잘 아는 동생이였던 김현경과 사랑에 빠져 둘은 곧 결혼하고 첫째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강제로 의용군에 끌려갔는데 어찌저찌하여 결국 살아서 돌아갔지만 이종구와 김현경이 한집에 같이 사는 것을

보고선 경악을 금치못한다. 그는 자신의 심정을 시로 표현하곤 했는데 당시 심정을 표현한 시인 '너를 잃고'이다.

너를 잃고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억만 번 늬가 없어 설워한 끝에

억만 걸음 떨어져 있는

너는 억만 개의 모욕이다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은 꽃들

그리고 별과도 등지고 앉아서

모래알 사이에 너의 얼굴을 찾고 있는 나는 인제

늬가 없어도 산단다

(하략)

​시에서 나왔듯이 그는 김현경없이도 살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없어도 나는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헤어졌지만 김현경은 김수영 시인에게 다시 돌아온다.​

당시 김수영은 아들이 보는 앞에서 김현경에게 간간히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보통은 가해자측이라면 숨겨급급할법도 한데 이를 시로 표현했다는 게 참 대단하다. 시인 김수영은 인간 김수영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시로 표현했다.

누가 자신의 밑바닥, 즉, 치부를 드러내고 싶겠는가!

이것이 내가 이 책의 첫 번째 위인으로 김수영을 소개하고자 한 가장 큰 이유이다.

'불가능한 꿈과 이상', 그리고 '스스로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어찌보면 식상하기 그지없는 이 말이 김수영이 나에게 던져준 가장 묵직한 울림이었다.​

 

교통사고로 떠난 김수영 시인, 그의 유작인 '풀'을 읖조려본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을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하략)

 

애플의 아버지, 애플 자체였던 스티브 잡스. 그의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다룬 책부터 전기까지 베스트셀러였다.

프레젠테이션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스티브가 매번 애플의 신제품을 들고나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모습은 실로 대단하기만했다.

 

누구나 다 알고있듯이 스티브 잡스는 입양아다. 자연스레 기계와 친해질 수 있었던 계기는 그를 키운 양부가 자동차 수리공이였기 때문이다.

유복한 생활은 아니였지만 양부모가 성실했기에 순탄한 청소년기를 보냈던 스티브는 '버림받았다'와 '나는 특별하다'에서 많은 고뇌가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말들이 많지만 스티브가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고들 말한다.

대인관계에 있어서 남을 무시하는 태도는 스티브가 20대 초반에 들어간 게임회사에서 보인 태도였다.

애플에서도 천재 혹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분류하거나 기가 막히게 괜찮은 생각 혹은 쓰레기같은 생각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현실 왜곡장'이다.

기한 내 처리할 수 없는 양의 업무를 주면 스티브 잡스는 확신에 찬 눈빛과 어조로 신뢰감을 주었다고 한다.

그것을 버드 트리블이 [스타트렉]에 나오는 용어를 차용해서 말한 것이였다.

그러나 이 '현실 왜곡장'이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장점을 갖고있는 반면에 상대를 힘들게 한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현실 왜곡장(reality distortion field,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추진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별한 사람이었던, 그런 삶을 살아왔던 '스티브 잡스'!

그의 특별함이 그를 빛나게, 힘들게, 혹은 상대방을 힘들게, 빛나게 했음에는 틀림이없다.

하지만 그에게서 배울 점은 분명히 있다.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말이다.

 

위대할수록 찌질한 인간의 면이 묻어나있었던 위인들.

그들에게도 이런 찌질함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생각이 들었다. 우리보다 좀 더 특별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에.

이렇게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에는 반드시 한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기 자신의 밑바닥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인식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그의 성격은 자신의 경험을 대하는 자세에서 가장 밝게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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