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 안은영 오늘의 젊은 작가 9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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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 상상하기 어려운 두 사람의 시간은, 은영과 인표가 함께 보냈던 시간과 닮아 있을지 전혀 다를지 궁금했다.

마음속에서 부실한 선반 같은 것들이 내려앉는 소리가 났다. 어두운 곳에서 낡은 나사에  매달려 있던 것들이 결국에는 내려앉는 그런 소리였다. 여기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수도 있을 듯한데,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247)

 


외국소설과 한국소설의 좋음지점이 다르다. 외국소설의 경우는 시대나 배경, 주인공의 성, 인종 등의 점프를 통한 ‘새로운 경험이 소설 읽기의 중심이 된다. 나는 흑인이고, 남자아이고, 고아이다. 나는 미혼모의 딸이고, 그 동네에서 제일 가난한 집 막내딸이며, 그리고 워킹맘이다. 여기는 대학교 캠퍼스이고 여기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이고 여기는 미국이어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나를 상상한다. 한국소설은 다르다. 한국소설을 읽는 나는, 작가가 말하는경험을 이미 경험한 사람이다. 나는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것 같), 이상한 일인지 알면서도 왜 그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작가가 말하는마음속의 선반이 내려앉는 소리가 뭔지 안다. 그래서 좋다.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고등학교 동창과 통화하는 그런 기분이다.

 




넷플릭스 예고편과 유튜브 클립을 몇 개 보았는데 안은영 역에 정유미가 너무 잘 어울려 이 책은 정유미 때문에라도 영화화 됐어야 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한문 선생님이 좋아하는 배우인 건 감사한데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한문 선생님과는 많이 달라서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졌을지 그것도 궁금하다. 안은영이 힘이 딸릴 때마다 충전하는 게 좋았다. 충전 방식이 뽀뽀나 키스, 섹스가 아니라 한문 선생의 손을 잡는 것이어서 더 좋았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키워가는 시간 속에서 손을 잡는 것만큼 매력적인 접촉방식이 있을까 싶다. 가장 떨리고 가장 충격적이고 가장 오랫동안 사용 가능한 사랑 충전 방식, 손잡기. 손잡기를 애용하자.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자. 그 손을 잡고 내 삶을 충전해가자. 이상 안은영식 손잡기 캠페인.

 


결말이 너무 안전한 선택 아니었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 일부러 뺀 것처럼 로맨스적 장치를 뺀 듯했지만 마지막 그림은핑크빛 사랑이 담뿍 담긴 커플이었으니 말이다. 한 사람만을 위한 심장을 믿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가끔 폭풍우가 불어닥칠 때는 어깨를 파묻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인간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에게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듯 내게 필요한 사람도 딱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 딱 한 사람. 바로 그 사람.

 

 

요즘 고딩 사이에서는 곱창이 유행이다. 먹는 곱창 아니고 굵은 머리끈 곱창이다. 20년 전 유행이 다시 돌아온 듯하다. 아니다, 어쩌면 20년 내내 유행했는데 나만 몰랐을 수도 있겠다. 하여튼 유행에 민감한 우리 집 패션 리더에게 곱창을 몇 개 사줬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서 놀랐다. 검색 전문가 패션 리더는 링크를 보여주며 여기에서는 곱창 30개에 11,000원이라 굳이 알려주기에 심기 관리 차원에서 주문해줬다. 30개 중에서 내가 고른 게 이렇게 4개다. 며칠 전만 해도 나는 정세랑 덕분에 신비한 능력을 소유한 초강력 곱슬머리였는데, 이번 문단을 지나오면서 세련되지 못하고 정신없이 산만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결론적으로는, 이상한 능력을 소유한 초강력 곱슬머리의 정신없이 산만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인표는 꽃무늬를 싫어했다. 꽃에 반감이 있다기보다는, 그게 너무 쉬운 선택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꽃무늬를 고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세련되지 못하고 정신없이 산만한 편이라는 게 인표의 속생각이었다. 꽃무늬 원피스도 꽃무늬 가방도 싫다. 신발이라면 더더욱 싫다. 은영에겐 열대의 꽃이 다홍색으로 크게 번지는 블라우스가 있었고, 잔꽃들이 바랜 색으로 가득한 어정쩡하게 긴 원피스도 있었고, 복주머니처럼 힘없이 생긴 인조가죽 가방 안쪽은 뜬금없이 꽃무늬 안감이었고, 지갑조차 낡은 꽃무늬의 비닐 코팅 장지갑이었다. 별로 여성성을 강조하는 타입도 아니면서 은영은 늘 꽃무늬를 골랐다. (239)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만약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친절해지기를 거부한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치관의 차이니까.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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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5-17 2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기만 하고 글은 못 쓴 책... ㅎㅎㅎ 다시 읽어야 겠네요.(언제쯤?) 막 단발머리님 말씀 뭔지 알겠고 막 막 .. ㅎㅎㅎ

곱창끈 유행 돌아온 거 맞네요! 20년도 전에 했던 건데!! 오래된 곱창 얼마전에 하나 버렸음.ㅎㅎ 근데 곱창 이름 바꿀 수는 없나 급 생각이... 듭니다...ㅎㅎㅎㅎ

미미 2021-05-17 20:29   좋아요 2 | URL
그쵸?!! 채식 이름으로요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7 20:32   좋아요 2 | URL
난티나무님 / 다시 읽어도 좋으실듯합니다 ㅎㅎㅎ 유행은 돌고 돌아서 말이지요. 오래된 거는 다 레트로라 하대요.

미미님 / 채식적 이름으로 뭐가 좋을까요. 꼬불꼬불하면서도 동그란 거니까.... 어니언링?
실용편: 너 어니언링 새로 샀구나! 완전 이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 2021-05-17 20:33   좋아요 1 | URL
으핫! 어니언링 너무 좋은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7 20:35   좋아요 2 | URL
괜찮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미님도 다른 거 추천해주세요! 채식으로다가요!!

미미 2021-05-17 20:38   좋아요 2 | URL
음...채식은 아니지만 꼬불이 어때요? 야채조차 다치지 않게ㅋㅋㅋㅋㅋㅋㅋㅋ그저 관념만으로ㅋㅋㅋㅋㅋ
난 어제 꼬불이 두개 샀잖아ㅋ

단발머리 2021-05-17 20:39   좋아요 1 | URL
와아아아아!! 꼬불이 괜찮은데요!! 👍🏼👍🏼👍🏼👍🏼👍🏼근데 저는 왜 꼬북칩 생각나지요? 🤔

미미 2021-05-17 20:41   좋아요 2 | URL
단발머리님 간식먹을 시간인거죠😆 딩동딩동!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17 20:43   좋아요 2 | URL
전 방금 팥죽 한 그릇 때린 사람이라는 사실과 요즘 꼬북칩 중에는 웬일인지 초코꼬북칩이 계속 할인중이라는 사실을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5-1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국 소설과 한국 소설의 좋은 점 다른 거 비유 참 좋네요~👍
저는 당분간 한국 소설은 안 읽을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지만, 언제가 문득 그리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손잡으면 충전되는 거 너무 좋아요~ 멀리 있으니 저는 리모컨 하이파이브로 단발머리님께 충전을 받겠어요~🙏

단발머리 2021-05-21 10:34   좋아요 1 | URL
좋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기뻐하고 있습니다요^^
기회가 된다면 붕붕툐툐님과의 더 격렬하고 화이팅 넘치는 실사 하이파이브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근데 왜 당분간 한국 소설 읽지 않으실 거라 느끼시는지 좀 궁금하네요~~~~

붕붕툐툐 2021-05-21 11:07   좋아요 0 | URL
실사 하이파이브~😍
어쩌다보니 쌓아놓은 읽을 책 리스트가 다 외쿡 작가라서요~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5-21 11:1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외국 여행 무사히 마치시고 곧 돌아오시어요!🤗

psyche 2021-05-18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외국소설과 한국소설의 좋은 지점이 다르다는 설명이 정말 찰떡이네요. 딱 맞는 거 같아요.

그리고 안그래도 저 작년에 한국에서 곱창 사 왔어요. 첨에 동생이 언니 곱창 사가라길래 먹는 곱창을 사가라는 줄 알고 뭔 소린가 했다는... ㅎㅎ 영어로는 scrunch라고 부르더라고요.

단발머리 2021-05-21 10:37   좋아요 1 | URL
프시케님도 그렇게 느끼셨다니 저의 느낌이 맞은 걸로 하겠습니다 ㅎㅎㅎㅎㅎ
한국에서 곱창이 유행이 맞긴 하네요. 미국까지 물 건너 갔군요. scrunch는 곱창머리끈이라고 나오네요. 미미님이랑 저는 어니언링이랑 꼬불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5-20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 너무 좋다. 인용하신 문장도 좋아요. 이 책 이미 읽은 책인데, 그리고 이미 정세랑 한껏 좋아하다가 이젠 좀 시들어진 편인데(시선으로부터 에서 저는 좀 매력이 반감됐어요), 근데 이 페이퍼 너무 좋고 인용문 너무 좋고, 맞아 정세랑이었지, 역시 좋아.. 했네요.

곱창 30개에 11,000원이라니. 그것도 좋네요. 뭐, 저는 이제 곱창 필요없는 사람이지만..


아니, 그리고 저 역시도 손잡기를 예찬합니다. 손잡기 너무 좋지 않나요? 손잡는게 짱이에요. 손잡는 걸로 다 돼요.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손잡기로 판가름 나는 것 같아요. 크-
충전을 뽀뽀로 하면 진짜 제가 책 속으로 들어가서 다 부숴버리고 말았을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단발머리 2021-05-21 10:40   좋아요 1 | URL
저는 다락방님의 ‘이 페이퍼 너무 좋다‘를 위해 이 페이퍼를 쓴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시선으로부터 읽는데 매력이 반감되고 있어 나 왜 이러지? 하고 있었단 말이지요. 무려 그 책은 제 책인데 말이에요. 역시나 나의 느낌은 옳았어요. 전 그래도 정세랑 몇 개 더 읽으려고 해요. 제가 애정합니다, 정세랑!!!

손잡기 충전법은 많이 장려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연애 초기에만 많이 애용되지 않나 싶어요. 지긋한 부부들이 손잡고 걸으면 의심의 눈초리가.... 진짜 부부라면 손을 잡지 않을텐데.... (허걱)
 
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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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Olive, Again』을 같이 읽고 있다. 일주일에 한 챕터씩 읽기가 계획인데 미루는 성격이라 금요일 오후쯤 되어야 아! 올리브! 하고 책을 찾아 이리저리 헤맨다. 숙제가 급한 초등학생처럼 바쁜 마음으로 읽기를 시작하지만, 소설 자체가 갖는 이야기의 힘 때문에 나도 모르게 휘리릭 빨려 들어간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참 좋다.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58)

 


이 구절이 좋았다. 올리브가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잭의 전화를 받고 그의 집에 막 도착했을 때, 영화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올리브의 생각이 그대로 표현되는 장면.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올리브의 생각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상황. 그런 순간이 좋다. 전능자가 되어 버리는 것 같은. 상황과 생각, 계획과 예상 그 밖에서 마치 인형 같은 주인공을 내려다보는 순간. 올리브는 오지 말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이 책을 사야지! 하고 결심했다.

 

 

소설은 흔히 가볍고 쉬운 이야기라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역사의 격랑’, ‘이념 간의 갈등’, ‘세대 간의 불화와 타협같은 거대 담론을 주제로 삼지 않으면 더더욱 그런 취급을 받아왔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하고, 사랑을 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괴로워하고, 자신을 기억하는 예전 학교선생님 덕분에 용기를 얻고, 먼 도시로 아들을 떠나보내고, 남편과 사별 후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이제 더는 혼자 살 수 없어 요양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이 모든 과정은 인간으로서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경험들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 이런 경험들은 모두 하찮게 여겨진다. 중요한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인간으로서의 불행과 행복은 이런 작은 순간에 맺혀 있는데도 말이다.

 

가까운 친구 중에 엄마를 집에 모시고 있거나 아침저녁으로 돌보거나 저녁을 챙겨드리는 친구들이 모두 넷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맙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는 일이 너무 버거울 때, 그때 느끼는 무력감과 죄책감은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울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 모든 일을 사랑과 도리, 효와 애정의 문제로만 설명한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전가한다. 그 모든 무거운 짐을 껴안는 사람은, 대부분의 경우 딸, 며느리, 손녀는, 말 그대로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하지만, 말할 수가 없다. 불평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랑이 부족해서이고,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않은 일이고, 효심이 부족해 생기는 마음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어나 이생을 살고 늙어가고, 그리고 죽음을 준비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소설이 좋았다. 무리 부인하려 해도 우리는 결국 인간이고, 그래서 또는 그러므로,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숨기지 않고 말해줘서 좋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건 다른 인간의 관심과 애정, 따뜻한 음식과 다정한 손길이라는 걸 말해줘서 좋았다. 

 


좋았던 또 하나의 구절은 바로 여기다.

 


잠시 뒤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내에게 수잰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할 것이다. 대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한 가지도 밝히지 않을 것이다. 수잰이 그를 어떻게 도와주었는지는 그만의 비밀로 남겨둘 것이다. 사람들이 오래도록 혼자 간직하는 숱한 비밀을 생각해보면, 그런 정도의 비밀은 전혀 나쁠 게 없다고, 그는 일어서면서 생각했다. (189)

 


만나자마자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해결책을 찾는다기보다는 고민의 토로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그냥 들으면 된다. 고민을 넘어 쉽게 비밀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있다. ! 하는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져도 차분히 그 이야기를 듣는다. (단발머리의 고민 상담소 : 비밀 보장) 내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비밀이라 내게 말하는 것일 테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경우의 수는 없다. 마주 앉아 가만히 비밀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웬만큼 비밀을 털어놓은 후 어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이제 네 차례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저요? , 뭐요? 제 고민이요? 아니, 제 비밀이요? 그니까? ? 작은 거밖에 없어요. 제 고민은 다 자잘하고. … 제 비밀이요?

 


비밀이라. 이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비밀이라고 말했는데 온 세상이 이미 다 알고 있는 경우도 무척 많은데. 하지만 내게도 한두 개의 비밀은 있다. 그 사실 자체가 비밀은 아니지만, 지난한 과정과 구구절절한 사연이 비밀인 비밀. 난 누구에게도 그 비밀을, 비밀들을 말하지 않았다. 글로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만약 내가 아주 오래 살게 된다면, 그 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났다면, 내 심경에 변화가 생긴다면, 94세쯤에 비밀과 비밀들에 대해 쓰고 싶다. 내가 내렸던 바보 같은 결정과 그로 인한 파장,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과 그래야만 했던 결정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후회에 대해 쓰고 싶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다고 소리쳤던 수많은 밤과 밤처럼 어두웠던 낮과 눈물의 기도들과 내 기도의 응답에 대해 쓰고 싶다. 94세쯤에 그 사람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면. 하지만 그전에는 말하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고 쓰고 싶지 않다. 내 비밀은, 내게는 이렇게나 크다.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버니가 수잰을 위로해줄 때, 앞으로 그녀가 간직하게 될 비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비밀의 책임은 네가 지고 가는 게 좋겠다고 말할 때, 좋았다. 수잰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한 버니의 말을 들으며 내가 안심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내 비밀도 그냥 가지고 있어도 된다고 버니가 허락해 주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좋다. 올리브를 읽는 시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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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3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7 1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05-04 0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저도 너무 좋아요. 번역본 읽기 위해 원서도 다시 이북으로 읽거나 보고 있는데 처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들이 찾아와서 막 눈물도 나고 그래요.
저는 이번편에서 수잰이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잘 자라왔다고 말하는 장면이 너무 좋았어요. 그런 환경에서 살면서도 결코 망가지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남편은 아내를 학대하고 엄마는 아들을 학대하고 아들은 여성혐오살인을 했는데, 거기에서 바람핀 거 가지고 내가 잘못했어,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수잰을 보면서 인간이란 대체 무엇일까.. 싶더라고요. 왜 어떤 이는 여자를 찔러 죽이는데 어떤 이는 바람핀걸로 고통받나. 왜 특히 그 부분 있잖아요. 아버지가 바람피웠던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처럼 될까봐 너무 걱정된다는, 그 부분이요. 저는 거기서 너무 아팠어요. 저도 다시 올리브 다시 읽으면서 너무 좋아서 그 부분에 대해 페이퍼 쓰고 싶었는데 바빠서 못썼네요.

다시 올리브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1-05-07 12:03   좋아요 1 | URL
전 무엇보다 이렇게 인간으로서 중요한 경험들이 사소하게 여겨지는게 그런게 너무 아쉬워요. 수잰에게 버니는 사실 동네 아저씨잖아요. 아빠의 대리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잰을 아는 사람… 이런 관계가 무척 중요한거 같아요. 근데 요즘은 점점 더 이런 관계를 갖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이사도 잦고 또 아무래도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해지고 그러니까요. 전 그 챕터 읽으면서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느슨하지만 긍정적인 관계, 인사를 나눌수 있는, 경쟁하지 않는 관계…

다시 올리브는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저한테도 그래요.

mini74 2021-05-04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과 같이 읽으신다니
부러워요. *^^* 같이 밥 먹으면 식구라는데 같은 책 읽으며 감정을 공유한다는 건 마음의 식구가 되는 건가요 ㅎㅎ

단발머리 2021-05-07 12:08   좋아요 1 | URL
‘마음의 식구’라는 미니님 표현은 제가 오래오래 기억하고 사용하고 싶어요. 같은 책을 읽는 건 그 어떤 일보다 마음을 나누는 일이 맞는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알라딘 이웃님들도 제게 그런 마음의 식구입니다*^^

공쟝쟝 2021-05-10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 땐 (꼭 이럴 때만) 제가 나이어린게 다행입니다. 94세에 단발님 비밀 이야기의 굳 리스너가 될겁니다. 제가 번호표 1번 뽑아써요? 예약이예요.

단발머리 2021-05-13 07:54   좋아요 0 | URL
우아아아아아아앙!!!! 번호표 1번이 쟝쟝님이라면 94세가 아니라 74세 정도로 확 당길까 해요. 예약증은 문자로 발송됩니다.
시간 엄수하시고요. 번호 지나가면 기다리셔야 돼요!!!

초딩 2021-06-0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좋은 밤 되세요~

단발머리 2021-06-07 12:5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초딩님!! 제가 답이 늦었네요!
오늘 월요일이지만 좋은 날 되시길 바래요!

서니데이 2021-06-04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21-06-07 12:5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 좋은 날 되시길 바랍니다!
 










전통과 통념으로 퉁쳐졌던(?) 주장들이 ‘과학’의 옷을 입었을 때 어떤 일이 있어났는가에 대한 고발.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과학에 대한 맹신이 어떻게 기득권을 보호하고 여성을 억압하는지 세세히 보여주는 책.








양심의 가책 없이 모성 거부 증후군에 대해 읽을 수 있는 어머니는 거의 없었다. 여성이면 누구나 때때로 "왜 그런지, 알고 싶어 하는 성가신 두 살배기의 열 번째 요구를 외면하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혼자 15분 동안 계속해서 울부짖게 내버려 두게 되고, 네 살짜리와 이야기하는 동안 딴 데 정신을 팔거나 혹은 아이를 "거부했다." 집을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하게 유지하려고 애쓰는 전업 엄마는 분개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영아나 취학 전 자녀를 마치 다 자란 적수처럼 순간적으로 미워하게 된다. 모성이 "충족"을 뜻한다면 이러한 순간적인 적대감은 정상적이고 선하고 고결한 것에 대한 배신이자 은밀한 파괴임에 틀림없다. 과학은 이러한 감정들을 어머니-아이 관계라는 에덴 동산에 있는 뱀 같은 타락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 결과는 괴로운 자기의심이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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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04-2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등! 을 축하드립니다!! (혹시 제가 일등할까봐... 걱정했거든요..? 안심ㅋㅋㅋ) 저도 이제부터 부지런히 읽어야겠어요! 바쁘다 바빠... 매월 말일마다...ㅠㅠ

단발머리 2021-04-27 16:13   좋아요 0 | URL
(ㄷㄷㄷ 들어온 이후로) 월말마다 마음 편안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수고많으세요!!! 저는 바버라 다른 책 읽고 있다는 거를, 그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4-27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월 중순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1등을 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잠깐 한 눈을 팔다가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니...... 4월도 며칠 안 남았으니 얼른 커피 사발 앞에 놓고 읽어야겠습니다. 저 색연필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단발머리님, 저걸로 줄 그으면 다 제 영혼 속으로 흘러들어올 거 같아서요.

단발머리 2021-04-27 16:24   좋아요 0 | URL
물론 저도 그렇게 알았습니다. 수연님 바쁜 틈을 타서 제가 과감한 깜빡이 신공과 엑셀 밟기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좋은 결과를 이루고야 말았습니다(소감은 윤여정급) 저 색연필은 스테들러 노리스 슈퍼 점보 색연필이며 (일명 코끼리 색연필) 색상은... 이것이 중요합니다. 레드가 아니라 보르도입니다. bordeaux 보르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상 생활자의 요가 - 생각 많은 소설가의 생각 정리법
최정화 지음 / 창비교육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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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으로서의 요가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편 읽어봤는데, 이 책은 또 나름대로 의미와 재미가 있다

 


학교에서 제일 많이 나를 곤란에 빠뜨린 과목은 늘 체육이었다. 한 번도 내가 체육을 좋아하게 되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심한 욕을 듣거나 매를 맞은 때도 체육시간이었다. , , 수 시간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7)

 


여기까지. 여기까지 나랑 똑같다. 나와 달라지는 지점은 저자가 장편소설을 준비하면서 체력 보충을 위해 요가를 시작하는 지점부터다.

 


동네 주민을 위한 요가 수업에 일 년 반 정도 나간 적이 있는데, 거의 무료에 가까운 강좌라서 50대부터 70대까지의 어머님들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스트레칭에 가까운 쉬운 동작이 주를 이뤘고, 그런데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자세가 꽤 있었다.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니고 언니가 접수해 주어서, 같이 가주어서 시작한 운동이라 툭하면 빠지기 일쑤였다.

 

꾸준히 하다 보니 순서에도 익숙해지고, 묘기처럼 보였던 쟁기 자세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잘하려고 한 적이 없고 그냥 몸에 좋으려니, 언니가 하자고 하니까, 수업 끝나고 언니들이랑 잠깐 놀 수 있으니까, 그렇게 수업에 참여했다. 안 되는 자세를 해보려고 힘써 본 적이 없었다. 하다가 안 되면 매트 위에 살포시 누워버렸다. 다리로 하는 동작들은 어렵지 않았지만, 코어의 힘이 약하고 팔 힘도 약해서 팔을 이용해 몸을 떠받치는 동작은 모두 어려웠다. 드세요! 하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하나 늦게 시작해서, 그만! 하시기 전에 혼자 내려왔다. 무리하지 말라, 는 선생님의 충고를 지나치게 충실히 따랐다. 무리한 적이 없으니 힘들지도 않았다. 운동을 마치고 느끼는 몸의 개운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개운할 만큼 애쓰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이런 나다. 심지 않고 거두려 하고,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 하고, 애쓰지 않고 받으려 하는, 도둑 심보를 가진 나. 하지만 지금의 나는 결국 이런 나다. 열심히 하지 않는 나. 포기가 쉬운 나. 늦게 시작하고 먼저 끝내는 나. 요가 매트 위에 누워 자체적으로 휴식 시간을 갖는 나.

 


내가 가장 어려워했던 동작은 아무 힘도 쓸 필요 없는 사바 아사나였다. 지금은 틈만 나면 하는 동작인데 처음에는 그 자세로는 아무래도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일단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나를 이완하지 못하게 했다. 모르는 사람이 곁에 누워 있는데 내가 어떻게 힘을 풀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내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누군가는 거친 호흡을 하고 있다. 나는 사바 아사나 시간에 오히려 더 몸에 긴장이 들어갔다.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생활에 익숙해져서 누군가와 그렇게 가깝게 있다는 것은 나를 긴장 상태로 몰고 갔다. (68)

 


45분 요가 수업을 마치면 마지막 수련 자세는 사바사나(Sabasana)’. 사바사나는 말 그대로 매트 위에 누워있는 게 전부다. 턱을 당기고 다리를 편안하게 벌리고, 팔을 몸 옆에 그대로 놓고 손바닥을 위로 가게 하고 손가락에 힘을 빼고. 호흡을 길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호흡을 통해 몸을 치료하는 수련이 사바사나다. 요가는 미용상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련을 위한 운동이다. 복잡한 동작을 배우고 익혀서 이효리 같은 동작을 따라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면(원하는 바가 그쪽이라면 그쪽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 사진 참조), 결국 요가 수련을 통해 도달하고자 목표는 명상이다. 사바사나는 명상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다. 단순하게 누워서 쉬는 자세 같지만, 사바사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그것이 사바사나가 쉽지 않은 이유다.


 



45분 요가 수업을 마치면 사바사나. 나는 사바사나가 너무 좋았다. 수련에 열심히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내내 쉬었는데, 공식적으로 쉬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매트에 똑바로 누워 팔, 다리, 손가락의 힘을 빼고 명상에 빠지는 그 짧은 5분이 그렇게나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빛 때문에 깨어난(?) 나는, 다른 분들은 이미 선생님과 인사하기 위해 바르게 앉아 있는 걸 보게 됐다. 나는 이제 막 일어났는데. 괜히 옆에 있던 언니에게 짜증을 냈다. 언니! 나 왜 안 깨웠어요? 그 다음 주였다. 이번에는 나도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바르게 앉았는데, 내 앞에 옆의 옆에 앉으신 분이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잣말하신다. 아이고, 누가 코를…… 그 누구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았다.

 


차가운 마룻바닥. 피곤하지 않은 오전 시간.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있노라면 걱정이, 염려가, 딴생각이 몰려올 것 같기도 하다만. , 나는 사바사나 전문가가 되어서는 끝도 알 수 없는 명상의 저 어느 깊은 곳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고 만 것이다

! 나의 명상이여! ! 나의 사바사나여!

 


별로였던 요가 수업을 계속하게 해준 나의 즐거운 사바사나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다음 수업부터 사바사나시간에는 진정한 명상에 도달하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처음에는 딴생각을 했고, 그다음에는 오늘의 할일을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혼잣말을 하고, 마지막에는 오늘의 기도를 했다. 의식을 놓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50분 수업 시간 중에서 가장 애쓰는 시간이 되었다. 진정한 명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의식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물론 수면은 사바사나와 다르다. 수면은 생리적인 의식 상실 상태로서, 외부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 상태인 데 반해, 사바사나는 의도적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며 몸의 순환에 집중하며 에너지와 호흡을 느끼는 수련이다. 하지만, 깊이 있는 명상의 순간과 수면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꿈과 환상과 깨달음은 수면과 사바사나 중 어느 한 곳에만 속한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몸의 긴장을 이완시키고, 얕게 호흡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는 과정은 수면인가 아니면 사바사나인가.

 


즐거운 사바사나 시간은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홈트를 통해 새로운 사바사나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무리하지 않기. 늦게 시작하고 빨리 끝내기. 마무리는 사바사나로. 이제 결심만 남았다. 어디 보자, 결심이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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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4-07 11: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은 또 뭐죠? ㅋㅋ 이것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아니 세상에 읽을 책 왜이렇게 많아? 참 그래서 좋으면서 싫으네요.

사바아사나 저도 진짜 좋아해요! 사바아사나를 위해 다른 모든 수련을 견디는게 아닐까 싶을 만큼요. 크-
저는 사바아사나가 쉬운 자세라고 하지만 처음에 그 자세를 못잡았어요. 저같은 경우는 인용하신 문장처럼 누가 신경쓰여서가 아니라 원체 거북목과 라운드 숄더가 심해서 누우면 어깨가 땅에 닿질 않았어요. 그래서 사바아사나 시간에 선생님이 돌아다니시다가 항상 제게 오셔서는 양 손으로 살면시 제 어깨를 바닥을 향해 눌러주셔야 했답니다.

아, 사바아사나 할 때가 너무 그립네요. 요즘 너무 요가를 안해서..
사바아사나 시간에 주무시는 분 많아요. 저도 까무룩 잠들 때도 있었어요. 어떤 날은 눈물이 또르르 흐르기도 했어요. 사바아사나에 온전히 나를 맡기기 위해서 사람들은 요가를 하는게 아닐까,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사바아사나에 대한 글을 단발님의 리뷰로 읽다니 진짜 너무 행복합니다. 요가 만세 단발머리님 만세!
단발머리님의 사바아사나와 요가를, 홈트를, 명상을 응원합니다.

아, 맞다. 저는 쟁기자세 여전히 못한답니다? 다리가 뒤로 안넘어가는데 뱃살 때문일까요? ( ˝)

단발머리 2021-04-08 09:56   좋아요 1 | URL
저는 다락방님 요가 이야기가 너무 좋아요. 안 되는 자세에 도전하는 거나 흠뻑 젖는 땀 이야기나 선생님 이야기 전부 다요. 전 운동을 원래 좋아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크게 전념하고픈 마음은 안 들지만, 어떤 운동이든 하게 된다면 그건 요가일 거 같아요. 요가가 저한테 맞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부끄럽네요.

전 집에서 그 유명한 ‘요가 소년‘과 요가하다가 사바사나 하는데, 집에서도 그렇게 깊은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었어요. 전 정말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 집중력이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사바사나를 그렇게 좋아해요.

응원 감사합니다. 요가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 ˝)

미미 2021-04-07 1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찜합니다!! (요가 책으로 좀 하다 말았던 1인🙄)

단발머리 2021-04-08 09:45   좋아요 1 | URL
이 책 말고도 요가에 대한 에세이가 여러 권인데 어쩌다보니 전 4권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요가는 안 하고 요가책 읽는 포스^^

공쟝쟝 2021-04-07 12: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나의 사바사나!!!! 맞아요 사바사나 최고죠 ㅠㅠ 쟁기자세도 너무 좋지 않나요?? 저도 모닝 요가로 아침을 여는 그런 멋진 백수를 꿈꾸었으나... 당분간은 러닝 한우물만 파자로 (24시간이 모자라)~ 그치만 단발님의 요가글 기다릴꺼예요! 글구 전 디아님의 요가책도 추천해요! (더덕모임에서 다락방님께로 갔던 책..ㅋㅋ)

다락방 2021-04-07 12:27   좋아요 4 | URL
요거는 제가 단발머리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 절반쯤 읽었어요. 호호.

공쟝쟝 2021-04-07 13:12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읽고 단발님께 전하세요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1-04-08 09:44   좋아요 1 | URL
저, 어제 침대 위에서 쟁기자세 되는 게 맞는가, 이게 정말 맞는가 확인하는 위험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쟝쟝님의 러닝이 전 더 근사해요. 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런닝이 최고 아닌가요. 저 요가에 진심 아닌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러분의 합동 작전으로 저 요가 열심히 할까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1-04-07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가하다가 사바아사나 하다가 코 고는 모습 사운드 모두 다 재현됐습니다 쿠쿠쿠쿠

단발머리 2021-04-08 09:42   좋아요 0 | URL
증강현실 ㅋㅋㅋㅋㅋㅋ

붕붕툐툐 2021-04-07 2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바사나 진짜 너무 좋죵? 넘나 기다려지는 시간~ㅋㅋㅋ 저 며칠 전에 물구나무서기 성공해서 혼자 신났어요~ 물론 젤 쉬운 기초동작으로요~ㅎㅎ
요가가 수련이라 너무 좋아요~ 내 몸을 돌아보고 살펴볼 수 있는 시간. 단발머리님 페이퍼 읽으니 또 요가에 대한 애정이 불끈!!

단발머리 2021-04-08 09:4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요가를 하는 분들은 모두 사바사나 좋아한다고 그러시대요. 저도 이제 슬슬 다시 요가 매트를 펴볼까 싶은데 워낙 작심하루라 좀 걱정스럽기는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회주의 페미니즘 - 여성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자유
낸시 홈스트롬 엮음, 유강은 옮김 / 따비 / 201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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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대에 놓지도 못하고 손을 벌벌 떨며 책을 읽을 수도 있겠고, 한 발짝이 아니라 두 발짝 혹은 세 발짝 멀찍이 떨어진 채로 읽을 수도 있다. 일단 이 책은 그냥 들고 읽기에는 너무 무겁고 (832), 읽다 보면 가끔 이 책에서 멀리 멀어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다른 세상 이야기 같은 난해한 주제들). ‘여성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완전한 자유라는 부제로 낸시 홈스트롬이 여러 작가의 글을 묶은 책이다. 관심 있는 주제만 찾아 읽어도 좋겠고,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봐도 좋겠다.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데 약속한 시간을 넘겨서 다 읽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먼저 읽은 사람들은 공통으로 1 <, 섹슈얼리티, 재생산>이 좋았다고 하는데, 나도 1부가 제일 좋았다. 그리고 리스 멀링스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정치 전략에서 젠더의 지도를 그리다가 기억에 남는다.

 


1991 7, 조지 H. W. 부시가 공화당의 흑인 보수주의자 클래런스 토머스를 연방대법원의 판사로 지명했을 때, 그와 함께 일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변호사 애니타 힐은 토머스가 자신을 성희롱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생중계된 인사청문회에서 토머스는 부정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면서 청문회를 건방진 흑인들을 때려잡는 하이테크 린치라고 규정했다(612). 전통적인 흑인 민권단체, 교회 연합체, 민족주의자들은 토머스 임명에 찬성했다. 애니타 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토머스 임명은 인준되었다. 흑인이었으되 백인이었던 토머스의 활약(?)으로 민원운동의 성과들은 크게 저지되었다.

 

 

토머스는 대법관에 오른 지 4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여성, 빈민과 노동자, 모든 미국인의 민주적 권리와 기회를 약화시키는 조치를 지지했다. 그것도 캐스팅보트를 쥔 인물로서 말이다. (615)

 


노예 해방운동의 동지였던 백인 남성들은 중요한 의사 결정 자리에는 백인 여성들이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백인의 인종차별주의에 함께 저항했던 흑인 남성들도 흑인 공동체의 지도력을 흑인 여성들과 나누려 하지 않았다. 성차별주의에 함께 저항했던 백인 여성들은 항상 운동의 중심에는 자신들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가장 큰 절망은 언제나처럼, 흑인 여성들에게 있다. 그녀들은 그 시간을, 그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속 마야의 친할머니, 미세스 핸더슨. 시내에서 백인 여성에 대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다리가 불편한 아들을 감자 바구니에 숨기는 사람. 백인들의 비웃음 속에 둥둥 떠내려온 흑인의 시체를 옮긴 후 충격에 휩싸여, 백인들은 왜 이렇게 우리를 미워하죠? 라고 묻는 십 대의 손자에게 아무런 답도 줄 수 없는 사람. 그녀가 견뎠던 시간이 한없이 무겁다. 나의 남자들. 남편과 아들, 조카와 사위가 흑인 남자라는 이유로 무차별적이고 비이성적인 폭력의 희생자가 될 때 느끼는 절망. 토머스의 인준에 찬성한 흑인들의 심정을 아주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었지만, 그런 결정을 해야만 했던 흑인들의 절망을 혹은 희망을 모른 척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역사적 투쟁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해방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 가진 잠재력의 완전한 실현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계급 착취, 인종차별, 젠더 종속에 맞선 투쟁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실현되려면 이론과 실천 속에서 이 셋이 통일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 투쟁에 완전하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데서 여성들을 배제할 수 없다. 어느 아프리카계 형제가 가나의 속담을 인용해서 내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모두의 손을 보태야 한다.” (6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멈출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페미니즘이 여성 해방에서 시작되었지만, 거기에 머무를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계급 착취와 인종 차별, 젠더 종속에 대한 투쟁은 함께 가야 한다. 모두의 손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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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4-01 1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1-04-01 19:17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다락방님! 수고가 많았습니다, 제가 🙄

다락방 2021-04-01 1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줄 그어진 책 보는 거 너무 좋아요! 😍

단발머리 2021-04-01 19:23   좋아요 1 | URL
책을 구입한 사람만 누리는 기쁨이랄까요 ㅎㅎㅎㅎ 저 이 책 네번을 대출하고 이번에 줄치면서 읽으니 넘 좋더라구요.
역시 책은 사야 제맛입니다! 😍

미미 2021-04-01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완독 수고하셨어요!😉👍👍

단발머리 2021-04-01 21:15   좋아요 1 | URL
우아아앙!! 감사합니다! 미미님도 수고 많으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공쟝쟝 2021-04-01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독이다 💕🌟🔥 우리 함께 손을 보탭시다~~!! 고생하셨어요 단발님!

단발머리 2021-04-02 07:22   좋아요 1 | URL
쟝쟝님처럼 꼼꼼하게는 못 읽었 ㅠㅠㅠㅠ그래도 완독에 방점을 찍습니다.
고마워요, 쟝쟝님!!! 😘

수이 2021-04-02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고생하셨어요 단발머리님!! 강조하신 문장 넘 좋아요. 가슴 속 깊이 새겨 넣습니다. 마야 안젤루 책 얼른 읽으러 가야겠어요.

단발머리 2021-04-02 11:52   좋아요 0 | URL
우앗!! 전 진짜 고생 많았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름 보람이 있어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고생만 남을 뻔 했습니다. 수연님 진작에 4월책으로 이동하셨다는 소문 돌던데 말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