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멀고도 가까운 나라’는 어디일까? 그 1순위는 단연 미국이다. 지리적 거리로 보면 먼 나라인 것은 사실이나, 미국은 현재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우리와 매우 가깝다.

오른쪽 세로의 13개 줄은 모태가 되는 13개 주를 상징하고, 왼쪽 위에 담긴 별들은 연방에 가입한 주의 숫자이다. 1959년 알래스카와 하와이가 연방에 합병되면서 별의 숫자가 50개가 되었다. 별이 추가될 때마다 국기는 새로 만들어져야 했다.

만약 미국 북동부 도시들 중에서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곳으로 한 도시만을 선택해서 여행해야 한다면 어디를 선택할까? 바로 보스턴이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16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영국의 보스턴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

보스턴차사건Boston Tea Party은 북아메리카가 독립 전쟁으로 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775년 6월 17일에는 보스턴 민병대가 벙커힐 전투에서 영국군에 일격을 가했다. 식민지인들이 막강 영국군에 대항해서 싸울 만하다는 자신감을 일깨워 준 중요한 전투였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다. 1947년 대회에서 처음으로 참가한 서윤복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워 동양인 최초로 우승했고, 1950년에는 함기용 선수가, 그리고 2001년에 이봉주 선수가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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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절망이 여기도 있다.

"역사의 필연은 바꿀 수 없어. 말릴 수도 없어." 다카유키가 말했다. "그걸 뼛속 깊이 인식한 아버지는 자신과―자신의 명예와 나와 다마코에 대해 생각하셨겠지."

"터무니없는 전쟁의 길로 걸어가던 당시 일본 육군 안에도 이 정도로 앞을 내다보고 군부의 독재를 걱정하며 경고를 보냈던 인물이 있었다―그런 명예를 아버지는 얻으려 한 거지. 사후의 명예라 해도 이만한 명예가 어디 있겠나."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딱 한 방울이었지만 다카시의 뺨을 타고 흘렀다.

―말해 봤자 아무 소용없으니까.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다. 역사는 그 사실을 안다. 어쩌면 한두 명, 또는 열 명 정도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전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미리 손에 얻은 결과를 토대로 처신할 길을 함께 고민한다 해도, 그건 역시 세부의 수정에 불과하다. 열 명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꼴이 된다.

"이제 전쟁이 온다고. 앞으로 군부에 의한 진짜 독재가 시작되고 테러나 또 다른 쿠데타를 두려워하는 정치가와 의회는 명색뿐인 무기력한 존재로 영락하여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외쳐 볼까."

다카시는 아무 대답 않고 팔을 들어 눈가를 훔쳤다.

"난 무서워." 다카유키가 중얼거렸다. "무서워서 외치지 못해."

"아버지가 남긴 그 문장은 지저분한 새치기의 집대성이야."

"새치기?"

"그렇지 않아? 아버지는 미래를 봤어. 결과를 알았다고. 미리 알고 나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간 사람들이 앞으로 이룰 일들을 비판한 거야. 아버지 혼자만 변명거리를 준비한 거지. 이게 새치기가 아니라면 뭐가 새치기겠어?"

눈길을 요란하게 통과하는 전차와 군화의 울림, 기름 냄새.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그 광경을 떠올리며 다카시는 한 가지 커다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나도 가짜 신에 불과하다―.
2·26사건은 끝났다.

"가모 대장에게 미래를 보여 줬고, 대장의 생각이 바뀌었고, 대장이 후세를 위해 육군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다소 곤란한 일이 생겼다고 했어. 자신은 그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더군. 그 일로 죽게 되겠지만 이미 살 만큼 살았다며 웃었어. 충분히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구로이는 약속대로 왔습니다. 도련님께 전해 주세요.
―아가씨, 행복하세요.

문득 히라타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가짜 신의 어쩔 수 없는 업보지.

후키가 미소를 지으며 다카시의 팔을 잡더니 살며시 흔들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원대原隊로 돌아가라."
"네?"
후키가 웃으며 말했다. "삐라에 씌어 있었죠?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다카시 씨는 나랑 다른 부대의 군인이에요. 게다가 신병이에요. 돌아가야죠."

시간은 지나며 흔적을 남긴다
타르코프스키 <희생>

"나 말이야, 과거를 보고 왔거든. 덕분에 알게 됐어. 과거는 고쳐 봐야 소용없고 미래는 고민해 봐야 쓸모없다는 걸 말이야.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니까. 그래서 나, 더욱 똑바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 변명 같은 거 안 해도 되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아빠는 배우지 못했지만 지금껏 있는 힘을 다해 살아 왔으니까 그걸로 충분해."

안녕히 주무세요―그렇게 말하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다카시를 다이헤이는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내일이 되면 방금 전 대화를 꿈이라 여기고 잊어버리겠지.

그렇지만 다카시의 머릿속에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후키가 있다. 스무 살의 후키. 하얀 앞치마 차림의 후키. 걱정하는 후키. 화내는 후키. 웃는 후키. 차가운 손의 감촉. 눈에 뒤덮인 가모 저택. 자기 생애에 지워질 리 없는, 다카시의 기억이 숨 쉬는 장소.

거기에선 지금도, 오도카니 서 있는 후키의 머리카락에, 어깨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그날, 쇼와 11년 2월 26일의 눈이 내리며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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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시내의 교차점에서 오사카 사단 군인이 적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려 했는데, 순사가 꾸짖으며 주의를 줬다네. 그 일로 인해 황군의 위신이 떨어졌다며 다툼이 일어났지."

"군과 경찰이 어중간한 꼴로 화해했지. 원래 ‘화해’할 만한 성질의 사건이 아닌데 말이야." 가쓰라기 선생이 얼굴을 찡그렸다.

"세상의 흐름이라는 거지."

그 흐름의 끝에 길고 비참한 태평양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갑자기 이곳에 있는 게 끔찍해진다. 얼른 현대로 돌아가자고 떼라도 쓰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무리다―히라타가 쓰러져 버렸으니까. 게다가 후키도 구해야 한다. 그걸 잊어선 안 된다.

"‘중국일격론中国一撃論’이야."

"네?"

"쉽게 말하자면 중국 따위는 일격에 평정할 수 있다, 진짜 적은 북방의 소련이라는 의견일세. 가모 대장 각하도 병으로 쓰러지기 전엔 이 주장의 지지자였지만, 쓰러지시고 난 후 마음이 바뀐 모양이더군. 그런데 육군사관학교 교관인 뒤쪽 저택 주인은 그런 각하를 변절자라며 호되게 비난해서 말이야."

"뭐야 그게……, 그럼……."

다카유키는 마리에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은 집 안에 있다는 말이죠."

"총성이 들렸을 때, 우리는―나랑 요시타카 씨는 함께 방에 있었어.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 난 모델이었고. 다카유키가 전하러 와서, 그래서 알게 된 거야."

"그럼 총성을 들었다는 거네요?" 다카시가 반문했다. "그런데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여기지 않았나요?"

"지방인이란 게 뭔가요?"

"아, 결국 민간인이라는 얘기야. 군인 이외의 인간 말일세."

다소 낮춰 부르는 듯한 표현이다. 군인의 대단함에 비하자면 나머지 사람들은 바깥에 있다는 얘긴가. 그런 태도로 대장은 요시타카와 지냈고 요시타카는 형에 대해 굴절된 증오의 감정을 품었다―.

―죽을 때 죽지 못해 욕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이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군인으로서 부끄러움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시더군. 난, 경솔하게 자결이라는 길을 택하시면 안 된다, 그것만은 약속해 달라고 말씀드린 후에 대답했네."

자결할 게 분명한 인간을 일부러 죽일 바보는 없다.

다카시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보며 코웃음 쳤다. 역시 즉흥적인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구나―.

순간 거울 속 얼굴의 웃음이 지워진다.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자결할 인간을 죽일 바보는 없다―정말 없을까. 그런 케이스는 전혀 가정할 수 없는 걸까.

다카시가 사는 ‘현대’에선 분명 가정하기 어렵다. 상당히 힘들다. 왜냐하면 ‘현대’에는 더 이상 ‘자결’이라는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자살’은 있어도 ‘자결’은 없다.

"아무것도 모릅니다. 저희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지에가 딱 잘라 말했다. 노인의 얼굴에는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면 좋지 않아’라며 타이르는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다.

‘이 난로―?’

생각났다, 트립에 실패해서 쇼와 20년 5월 공습의 한가운데 떨어져 버렸을 때 일이.

그때 가모 저택은 불타고 있었다. 벽돌로 만들어진 건물인데도 안쪽에서 불을 내뿜고 있었다. 그로 인해 후키가 죽었다. 잊을 리가 없다. 새카맣게 눌어붙은 그녀의 손이 다카시를 향하던 그 순간을.

가모 대장의 유령 말이에요.

아니다. 유령이 아니다. 이젠 단언할 수 있다. 프런트맨이 본 건 살아 있는 가모 노리유키 대장이다. 살아 있는 가모 대장이 히라카와초이치반 호텔에 나타나 돌아다녔던 것이다.

"이모님은 여기에 왔었어요. 그리고 이모님의 힘으로 가모 대장은 미래에―현대로 트립했죠. 그렇죠? 가모 대장은 미래를 봤죠?"

그래서 병을 앓고 난 뒤 사상이 일변하게 됐다. 요시타카가 감탄스럽다는 어조로 말하지 않았던가. 형님도 상당히 생각이 바뀌셨군. 그렇다. 바뀌고 말았다. 육군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나 과거에 자신을 숭앙하던 황도파 장교들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한 결과 테러리스트에게까지 위협받는 처지에 이르렀다. 미래를, 앞으로 일어날 전쟁의 양상을, 전쟁의 결과를, 일본의 장래를, 일본군의 종말을 모두 알게 되어 사상도 사람도 바뀌고 만 것이다.

다카시를 바라보던 히라타의 눈꺼풀이 처지면서 턱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가능한 한 크고 분명하게, 다카시가 충분히 알아볼 수 있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총을―."
다카시는 뒤돌아봤다. "네?"
"총을, 조심, 해." 히라타가 말했다.
"누군가, 가지고 있어. 조심, 해."
그의 얼굴에 웃음은 지워져 있다. 그는 진지했다.

"잘 들어 보게. 각하는 자결하셨어. 유해 옆에는 자결에 쓰인 권총이 나뒹굴었고. 목격자는 충격 속에서 그 권총이 다른 사람도 죽일 수 있는 무기임을 깨달았겠지. 다시 말해, 각하의 자결로 충격을 받은 누군가가 마음속에 비수를 품고 자신의 결의를 달성하기 위해 현장에서 권총을 들고 사라진 거야. 가능한 얘기 아닌가?"

역사의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가능한 건 세부의 수정뿐.

그렇다. 다카시가 태연스레 의사당으로 찾아가 살기를 내뿜고 있는 결기 부대 앞에서 그런 얘기를 떠들어 봐야 헛일이다. 결국 총에 맞아 죽어 쇼와사史의 2·26사건 항목에 "사건이 한창인 가운데 민간인 사상자가 한 명 발생하였다"고 덧붙여질 뿐이다. 시간 여행이라는 건 실로 유쾌하지 않은가.

2·26사건을 계기로 강력한 무력을 지닌 군부의 국정에 대한 발언권이 강해졌고, 이내 일본은 군부 독재에 의한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지금 시대의 전환점에 서 있다. 전차가 팬터그래프를 바꾸듯, 쇼와 역사도 진행 방향을 결정하고 이제 전철기轉轍機를 바꾸는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아무리 분위기가 밝다 한들, 청년 장교를 응원하는 공기가 흐른다 한들, 쿠데타에 희망을 건 시민이 존재한다 한들, 역사는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고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유럽과 아메리카는 지들은 실컷 제국주의적 침략을 해 온 주제에, 잘난 척 정의의 가면을 쓰고 아시아 문제에 개입하고 있네. 만몽滿蒙 문제도 그래. 리턴 보고서만주사변을 일본의 침략 행위로 규정하고 만주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에 우리 측 해명은 전혀 실리지 않았잖아? 시찰하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났지. 지금 우리 나라와 독일은 전 세계의 악역을 떠맡은 듯한 느낌이 든다고."

"그런데 말이야, 전쟁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단 말일세. 전쟁이란 일종의 외교 수단 아니겠나? 제대로 된 목적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어야지 전쟁도 의미가 있는 걸세. 그러나 작금의 군인은 의미 따위 전혀 모르고 있어. 요시타카 씨가 그랬지. 군인은 주먹만 휘두르는 바보라고. 나름 이치에 맞는 얘기라 생각하네." 의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 사람의 인품과는 별개로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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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카시는 보았다. 멀리 줄기차게 내리는 눈의 장막 너머로 바리케이드가 길을 막고 있는 모습을. 그 건너편에 늘어선 군인들의 검은 그림자를.

분명히 군인들이 있다. 언뜻 봐서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모두 바리케이드 건너편에 서서 이쪽을 향하고 있거나 그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다.

몸을 감출까 생각했다. 겁을 먹은 정도가 아니다. 무릎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걸음을 옮기자 곧바로 발이 스르르 미끄러져 몸이 허우적거렸다.

―자네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돌아다니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사흘간.

히라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모 저택에 있을 때는 막연히 흘려듣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을 뼛속 깊이 절감했다.

2·26사건으로 사망자가 나왔던가?

그러나 발은 움직이질 않는다. 식은땀이 마구 흐른다. 전쟁도 테러도 폭도도 모르는 우리 세대는 일단 진짜 ‘무력武力’과 부닥치면 바로 무릎을 꿇고 만다. 아무리 그게 눈의 장막 저편에서 유령처럼 소리 내지 않고 오가는 군인들의 어슴푸레한 그림자뿐이라고 해도.

"미, 미, 민간인입니다."
스스로도 한심할 정도로 상기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저, 저는 민간인입니다."

다카시 손에서 떨어진 초롱이 타 버린 잔해는 거의 다 눈에 쌓여 가려졌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마치 자신의 겁먹은 마음이 타 버린 것 같은, 그런 잔해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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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하고 어두침침하여 서 있는 것만으로도 병에 걸릴 것 같은 부엌. 일부러 고용인들에게 불쾌한 환경을 주기 위해 저택 안에서 가장 채광이 안 좋은 장소를 골라 만든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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