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력을 키우는 방법 - 별난 내과의사가 알려주는
조왕기 지음 / 린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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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남자라면 '기운 센 천하장사'의 꿈을 꾸지 않는 자가 없겠지만 유달리 한국은 더 심한 듯하다. 몸에 좋다고 표현은 하지만 실제로는 정력에 좋다 하면 그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섭취하려는 의지의 한국인들이 많다. 또한 식욕이나 성욕 둘 중 하나라도 욕구가 떨어지면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내리막길로 간다는 이론도 남성들 사이에서는 굳건한 믿음이다.

본인 이름을 내건 내과를 운영하는 조왕기 원장이 쓴 <별난 내과의사가 알려주는 정력을 키우는 방법>(아무도 몰랐던 부교감신경의 놀라운 힘)은 그 제목만으로 많은 남성들에게 복음이 될만한 책이다.(이 책처럼 추천사 목록이 길고 분량이 긴 책은 처음이다.)


저자는 오랜 기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전공인 양방 외에도 한방, 명상, 기공 등을 오랫동안 공부하고 연구해서 환자들에게 '원스톱 치료법'을 제공하려는 의욕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정력을 내세우지만 이는 미끼에 불과하다. 정력 따로 건강 따로가 아니기 때문에 정력만 강하게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좋아야 정력도 따라서 좋아진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론을 설파한다. 따라서 정력 감퇴의 대표적인 발기부전은 오장육부 기능이 무너지기 수년 전부터 나타나는 경고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보자면 부교감신경은 발기를 담당하고 교감신경은 사정을 담당한다. 이 책은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교감신경'의 활성화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예상 독자들이 가장 민감히 찾아볼 정력 강화(발기부전, 정력감퇴, 성욕저하) 치료법으로는 수기법, 자가발전식 사정법, 풍선불기법을 들고 있는데 내용이 글로만 읽기엔 좀 단편적이라 아쉬웠다.


눈에 띄는 제목과 달리 '정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 많은 내용이 할애되진 않는다. 일반적인 건강 관리법이라 볼 수 있는 자율신경 활성화 방법이나 식사관리법으로 내용은 흘러간다. 여기에다 깨알 팁으로 '급성 복통을 치료하는 법'이라든가 '귀가 잘 안 들리는 분을 위한 회복법' 등이 추가된다. 저자는 단순히 정력 증강만을 위한 방법은 언급할 생각이 없고, 두루두루 건강을 잘 관리하면 결과적으로 정력도 좋아진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만 보고 혹 해서 집어 든 많은 독자들은 살짝 '낚였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그런 1급 비밀을 폭로하진 않기 때문이다. '정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비법을 찾는 이들에게나, 일반적인 건강론을 찾는 이들 모두 만족시키기 애매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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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뉴욕이다
이여행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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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금까지 3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으니 아마도 도시 숫자로 보자면 40~50개 도시는 다녔으리라.

뉴욕에 체류한 적은 없어도 미국 동부에 몇 달 머문 적이 있어 뉴욕은 자주 들렀었다. 방문한 많은 도시 중에서도 뉴욕의 이미지는 특별하게 남아있다. 도시 자체가 그 어떤 것이라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용광로 같았고, 살아있는 생명체 같은 활력이 넘쳤다. 브로드웨이에서 4대 뮤지컬이라는 작품들을 감상한 경험이 아마도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겼을 수도 있겠지만, 이해도 못 하면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뒷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Hearts of Darkness>(1991)를 보고, 큰 화면으로 포르노를 틀어주는 음습한 성인 극장을 호기심에 찾기도 하고, kg으로 파는 한인이 운영하는 간이 뷔페식 가게에서 허기를 다스리기도 했다.

필명으로 짐작되는 이여행이 쓴 <뉴욕은 뉴욕이다>는 뉴욕의 현재 모습을 일별할 수 있는 간략한 책이다.

좌측 페이지에는 사진이, 우측 페이지에는 사진에 소개된 핫스폿을 설명하는 기본 구성을 취한다.

오랜 세월 뉴욕을 상징했던 브로드웨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센트럴 파크, 월스트리트(의 황소), 매디슨 스퀘어 가든, 뉴욕타임스, 타임스퀘어, 할렘, 코니 아일랜드, JFK 공항, 리틀 이태리, 뉴욕 증권거래소, 브루클린 다리...

도시는 멈추지 않는다.

뉴욕 역시 9.11 테러의 아픈 기억을 딛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대체한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비롯해서 과거 열차노선으로 쓰였던 곳을 공중공원으로 만들어 우리나라 도시 계획에도 귀감이 된 '하이라인', 허드슨 야드에 새로 들어선 거대한 조형물 '베슬'(Vessel), 월가의 명물 황소 앞에 생긴 동상 '겁 없는 소녀'(Fearless Girl), 9.11 테러 이후 평화를 기원하는 '그라운드 제로' 등이 늘 새로운 "New" York의 이미지를 만든다.

몇 년 전 LA는 다시 갈 일이 있었으나, 뉴욕은 안 간 지 오래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눈으로나마 뉴욕에 대한 팬심을 되살려본다.

이민자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도착하던 관문이었던 뉴욕은 이제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이 되었다. 배트맨의 고담 시 모델은 뉴욕이었고, 뉴욕을 너무나도 사랑한 마틴 스코세이지나 우디 알렌은 경력 대부분의 작품을 뉴욕을 배경으로 찍었고, 폴 오스터는 뉴욕 3부작을 바쳤다. 뮤지컬의 본산 브로드웨이는 여전히 클래식과 신작이 각축전을 벌이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꿈꾸며, 운동권의 구호였던 '양키 고 홈'의 양키를 팀 이름으로 한 '뉴욕 양키스'는 MLB 최강의 프로야구팀이다.

뉴욕은 여전히 24시간 지하철이 다니고, 기마경찰이 순찰을 도는 도시다.

뉴욕은 뉴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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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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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과 2019년 부커상을 공동 수상한 버나딘 에버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부커상 최초의 흑인 여성 수상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 소설은 영국에 정착한 흑인 여성들의 '아프리칸 디아스포라'를 12명의 삶으로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12명의 간략한 인생사가 한 챕터씩을 이루며, 이를 따라가다 보면 영국 흑인 여성들의 거대한 벽화를 완성하게끔 구성되었다. 저자와 가장 닮은 꼴인 앰마를 비롯해서 아마도 주변인들과 그들의 증언을 통해 소환된 많은 인물들이 결합되어 12명의 이름이 명명되었으리라. 대략 150여 년의 시간을 살아내는 12명의 여성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몇 단계를 연결하면 누구와도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버나딘 에바리스토는 여기서 그런 관점이 아니라 각자 개별 서사인 밑그림을 연결해 결국 모두가 주인공인 '우리', 흑인 여성들의 큰 그림을 바라보게끔 하는 의도로 소설을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제1장을 여는 첫 번째 주자 앰마는 야즈의 엄마요, 도미니크의 절친이자 셜리의 친구이기도 하다. 셜리의 가장 성공한 제자가 캐럴이며, 캐럴의 엄마가 버미요 라티샤는 캐럴의 친구다... 이런 식으로 계보를 만들어낼 수 있게끔 이들은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영국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애당초 원주민은 아니었다. 이들의 선조는 나이지리아, 아비시니아(현재의 에티오피아), 바베이도스 등 다양한 지역에서 흘러들어왔고 세대가 바뀌면서 다양한 혼혈이 되었으나 영국 사회에서 언제나 비주류의 입장에서 차별당하고 멸시 속에서 생활을 이어왔다. 흑인이라는 정체성에다, 아직까지 굳건한 남성 위주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삶을 살아야 하고, 게다가 일부는 레즈비언의 성적 취향까지 지녔으니 이들의 인생은 고난과 수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운명의 파트너 은징가를 만나 미국까지 갔지만 결국 그녀의 경악스러운 참모습을 보게 된 도미니크, 10대의 나이에 집단 성폭행을 당한 캐럴, 각기 아빠가 다른 3명의 자녀를 키우는 미혼모 라티샤, 생모가 누군지 모르는 퍼넬러피, 세상에 남/녀로만 구분되는 성(性, SEX) 정체성에 반기를 들고 '그네'의 삶을 살기로 한 메건/모건...

누구 하나 호락호락한 인생사가 없다. 하지만 이들 12명은 사회의 편견과 냉대에도 굴하지 않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태생부터 불리한 조건이었다고 삶을 포기하거나 비뚤어진 시선으로 세상에 반항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와 본인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으로 당당히 세상에 맞서서 투쟁하고 인생의 열매를 얻어낸다. 소설의 감동은 여기서 온다.

이 소설은 운문 형태를 띠는 산문으로, 문장 부호 사용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작가 자신은 이 작품을 '퓨전 픽션 fusion fiction'이라고 일컫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형식으로 설명하자면 일종의 산문시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마침표를 사용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흐르는 문장이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이렇게 자유롭게 흘러가는 문체 덕분에 작가는 인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과거와 현재를 쉽게 넘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 옮긴이의 말, P 631

책 읽기에 곤란한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소설의 서사와는 다르기에 익숙하진 않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음식을 비롯한 문화적인 코드도 대부분 생소해서 체감되는 느낌은 덜 했다. 페미니스트의 주장도 과격함에 있어서 정도가 많이 다르고, 기껏해야 성적 소수자란 LGBT 정도 아는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다양한 분류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작가가 12명의 인물을 창조했다기 보다, 12명의 인물이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글을 통해 자신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는 흔하지 않은 독서 경험을 제공하는 이 책은 영국에 사는 흑인 여성들의 한풀이 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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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가오 옌 그림, 김난주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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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이 애묘인들이 많은 세상에서는, 기겁할 제목의 <고양이를 버리다>는

하루키가 그다지 추억거리가 많지 않은 아버지를 회상하는 99쪽의

짧은 에세이다.

다양한 산문을 출간한 하루키지만 가족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었던 걸로 아는데, 이번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글을 모아 가오 옌의 추억 돋는 일러스트와 함께

포켓 사이즈의 소책자로 출간되었다.

아무래도 글의 성격이나 문장의 결이 다른 책과 함께

엮이기는 어려워 독립된 책으로 나왔다는 게 출판의 변이다.

'하루키'가 도서명에 포함된 모든 책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하늘의 별처럼 많은 그의 팬들에게는

하루키의 가장 내밀한 속내음을 맡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흥분된다.



사람의 행위에는 대부분 계기가 있고, 목적이 있다.

하루키의 부모님은 모두 교사였고, 특히 아버지는 꽤 훌륭한 교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외아들인 하루키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다지 살갑지 않아

하루키가 전업작가가 된 이후에는 거의 절연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이십 년 이상 전혀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대화도 연락도 하지 않는 상태를 지속하다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에야 겨우 얼굴을 마주했다고 한다.

그랬던 하루키가 왜 아버지 이야기를 들고 나왔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암고양이 한 마리를 버리러 해변으로 간

에피소드로 아버지 '무라카미 지아키'와의 추억 여행은 시작된다.

다행히 버려진 그 고양이는 어찌 된 일인지 무라카미 부자보다 빨리

집에 도착해서 부자의 안도감(!)을 이끌어냈다.

무라카미 지아키는 2차 대전 무렵 무려 3번이나 징집되었으나

용케 살아남았고 당시 보고 겪은 일들을 뜨문뜨문

아들 하루키에게 전했다.

그중 중국 병사가 처형된 모습을 목격한

기억은 가장 강렬하게 저장되어 있다.


하루키는 부친의 사망 이후 아버지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기도 하고, 관계있는 사람들을 만나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조금씩 듣기도 하는 식으로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자신의 핏줄을 더듬는다.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치열한 전장으로 보내졌다면,

아니면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하루키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지아키는 영화를 좋아해서 아들과도 극장 나들이를 자주 했고,

타이거스 팀이 지면 몹시 언짢아할 정도로 열렬한 한신 타이거스 팬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하이쿠를 좋아해서 직접 자작도 많이 한 문학도였다.

어느덧 슬슬 부친이 사망한 나이에 점차 다가가는 하루키는

특유의 무덤덤한 쿨한 어조로 아버지를 추억한다.

어쨌거나 육신의 반은 지아키에게서 왔고,

이 책에서 그다지 큰 비중은 아니지만 어머니에 대한 언급도 살짝 보인다.

하루키의 문재(文才)와 야구 사랑은 그냥 뚝 떨어진 건 아닐 거다.

이유 있고 의미 있는 내적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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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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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는 학대받은 여자들의 피난소 '여성 궁전'이란 곳이 있다. 그곳은 노숙자, 매 맞는 아내, 야만적인 할례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온 아주머니들 '타타' 등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존엄을 유지시켜주는 고마운 공간이다. 여기에 잘나가는 변호사였다가, 패소한 의뢰인이 눈앞에서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번-아웃 증상이 와 삶의 쉼표가 필요한 솔렌이 자원봉사를 하러 온다. 처음엔 살아온 환경이 극과 극이라 마음의 한구석조차 내어주지 않던 이들은 점차 서로를 보듬는 관계가 되고, 이 과정에서 솔렌도 자신만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게 된다.

"그중에는 심각한 병이 있는 이들도 있어요. 알코올 의존증이나 마약 중독 문제를 지닌 경우도 있고요. 또 과도한 빚에 짓눌린 사람들도 있죠."

과거 매춘부였다가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 범죄자로서 재사회화 과정을 거친 이들, 장애 때문에 경제 활동에 나서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했다. 다양한 경로로 프랑스 땅을 밟은 이주민 혹은 난민 여성들도 있었다." - P 70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여성 궁전'의 설립자인 구세군 블랑슈 페롱의 이야기로 1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떻게 이런 거룩한 공간이 생기게 되었는지 1925년부터 시작해서, 공간이 설립된 '26년을 거쳐 블랑슈의 마지막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바친 아낌없는 헌신과 봉사가 그려진다. 이 건물터는 과거 은거 수녀 공동체가 운영하던 수도원이 있던 자리로, 풍문에 의하면 17세기 유명한 문필가였고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주인공인 시라로 백작이 여기 궁전 아래 묻혀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겪은 결핍은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거든요. 가족의 식탁에서 배불리 먹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 늘 배고픔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 P 205


세상에는 뭔가를 창작해야만 하는 드물지만 축복받은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을 쓴 래티샤 콜롱바니가 그렇다. 국내에 소개된 오드리 토투 주연의 <히 러브스 미>를 만든 영화감독이기도 하며,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건 물론이고 가끔 출연까지 한다고 한다. <여자들의 집>은 <세 갈래 길>에 이은 콜롱바니의 두 번째 소설이다.

굳이 '페미니즘'이란 좁은 틀로 구속하지 않아도 될 빼어난 여성 서사다.

'여성 궁전'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여성들의 다양한 사연은 여성 작가의 손끝에서 커다란 공감과 따뜻한 연대로 마무리된다. 보통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갈 처절한 여성의 삶은 분노를 자아낸다. 아직도 아프리카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관습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끔찍한 여성 할례, 같은 노숙이라도 여성 노숙자는 늘 성폭력의 위험에 놓여있고,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도 남편의 폭력은 부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주위 사람에 대한 신경질로 존재의 이유를 찾던 '상처 입은 짐승'이었던 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건물 거주자는 물론,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는 데 1년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형태로든 취약성을 안고 있고, 저마다 폭력과 무관심을 경험한, 사회의 주변부 최하층에 속한 소설 속 여성들의 이야기는 생생하게 활자로 살아난다.


"여성 학대란 자연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야.

만물의 영장이라는 생명체들이 여성을 대상으로 분출하는 이 파괴 욕구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지?" - P 220


한 봉사 단체에서 5년 이상 활동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진실로 도움을 받고 치유가 된 건 내 영혼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솔렌도 사실은 정신적인 피로감과 우울증 극복을 위해 봉사 활동을 도피처로 삼은 거였지만 결국은 본인 자신이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된다.

몰랐던 사실을 알아가는 깨달음과 더불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각자의 삶이 정교하게 교차하는 <여자들의 집>은 소설을 읽는 재미를 새삼 느끼게 하는 좋은 작품이다. 저자의 데뷔작 <세 갈래 길>이 너무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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