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 - 하 관자
관중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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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상권의 리뷰에서도 밝혔듯 《관자》의 사상은 무척 다양하다. 흔히 몇몇 사람들은 《관자》를 두고 《한비자》와 같은 법가사상으로 분류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다. 《관자》는 공자를 비롯한 유가의 왕도정치와도 다르고 법가의 패도정치와도 거리가 있다. 흥미롭게도 《관자》에서는 유가가 강조하는 도덕과 예의도 중시하고, 법가가 강조하는 법률 역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백성의 민생 역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민생을 구휼하는 데 있어 '경제정책'을 으뜸으로 손꼽는다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가와 법가의 공통된 맹점은 바로 경제관이다. 두 사상 모두 국가의 운영을 철저하게 정치학, 통치학으로 접근하는데 반해, 《관자》는 경제학적 시각으로 정치를 접근하고 있다. 이 점이야말로 《관자》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자》에서는 정치를 흥하게 할 조건으로 백성의 욕망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백성의 욕망이란 바로 의식주를 포함한 경제적인 실익을 뜻한다. 정치 문제를 철저하게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시각. 이것은 바로 상인 출신이었던 관중이 제나라를 경제 정책을 통하여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던 방법론과 일맥상통하다. 그렇기에 설사 《관자》가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은 아니더라도, 이런 부분을 통하여 독자는 《관자》라는 문헌이 관중의 사상을 토대로 정리되었다는 점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겠다.

 

 그럼 어떤 경제정책을 통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점은 상업을 중시한 것이다. 이 당시 대부분의 제자백가 철학서들은 경제정책에 대하여 농업을 강조하였다.(중농주의) 이는 유가와 법가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상인 출신인 관중은 상업의 유용성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어서 상업을 적극 진흥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자원을 융통성 있게 배분하려고 노력했다. 국가는 시장에 개입하여 수요와 공급을 통제하고 시세를 관장하였으며, 돈이 되는 소금과 철을 독점하여 국가의 자금을 충당하려고 하였다.

 

 게다가 《관자》에서는 분업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있어서, 사농공상 4개의 계층의 거주지를 나눠서 분업화, 경쟁 유도를 통한 전문화를 도모하였다. 경기부양을 도모하기 위해 부자들의 소비를 적극 유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의 용품을 만드는 수공업에 종사하게 하여 실업을 극복했다. 이런 모습은 거친 비교가 되겠지만 미국 케인스의 수정 자본주의 정책과도 유사하다. 또한 대외적으로 문호를 적극 개방하여, 자국의 우수한 물산들을 외국에 유통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제나라의 시장은 열국의 상인들이 드나드는 국제 시장으로 거듭났다.

 

 이렇듯 제자백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관자》는 경제에 대한 부분을 무척이나 강조한다. 정치가 중요한 것일까 경제가 중요한 것일까? 단순하게 우열을 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피부로 와닿는 것은 아무래도 경제일 수밖에 없다. 동양고전을 읽으며 커다란 맹점 중 하나는 바로 경제에 대한 담론이다. 유가와 도가 법가는 모두 정치적인 입장은 뚜렷하게 내세우지만 이에 상응하는 경제에 대한 담론은 결여되어 있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유가인데, 개인적으로 동양이 서양에게 뒤지게 된 핵심 중 하나가 바로 경제에 대한 무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한 시대 한 무제의 사상 일원화 정책 이후 중원에서는 유가를 숭상했으며, 이런 추세는 동아시아 국가들 전체로 확대되었다. 근대 이후 서구권에서는 애덤 스미스를 필두로 하여 경제학을 발전시켰고, 이는 서구 열강의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정책을 지탱하는데 커다란 근간이 되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경제에 문외한 유가 학문을 존숭하는 입장을 고수하였기에, 서구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만약 공자나 맹자의 유학이 아니라 관중의 《관자》를 존숭했더라면, 동양의 경제학도 크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한 가지 또 생각해 볼 점은 유학을 중원의 메인 철학으로 확정 지은 지도자는 전한의 무제인데, 무제 역시도 무조건적으로 '유학만을' 숭상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회 규범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유학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지, 실제 무제의 통치는 법가적 성격이 강했다. 또한 무제는 《관자》의 실용주의 정책도 참고하여 받아들였는데, 그 일환으로 막대한 정복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소금과 철 등을 국유화하여 국가에서 독점하여 관리하였다. 무제 이후에는 소금과 철에 대한 경제 토론이 심오하게 펼쳐졌는데 이를 정리하여 《염철론》이라는 명작 경제 고전이 탄생했다. 아무튼 유학을 존중한 한 무제도 유가의 철학만을 신봉하지 않고 법가와 《관자》의 경제정책을 참고하고 받아들였다. 문제는 후대로 가면 갈수록 사상의 고착화, 보수화가 심해져서 유학이 아닌 다른 사상들은 무조건 이단으로 치부하고 배척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현대는 유학을 으뜸으로 내세웠던 전근대 사회와는 다르다. 자본이 우선이고 중심인 자본주의가 보편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관자》는 오늘날 더 빛을 볼 여지가 많은 고전이다. 비록 2700년이라는 시대적인 거리가 있지만, 이익과 경제라는 측면을 우선하고 중시하는 입장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동양의 최초 경제학서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이 책을 탐독할 가치는 충분하다.

 

※. 《관자 하》 권의 구성은 35장 치미에서 86장 경중 경까지 번역됐다. 나머지 부분은 상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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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 - 상 관자
관중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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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철학의 아버지가 소크라테스라면 동양 철학의 아버지는 공자를 손꼽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상사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 소크라테스나 공자의 철학도 앞선 시대의 선각자들의 사상이 있었기에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관자》의 저자로 알려진 관중은 공자보다 앞선 시대의 사람이었으며, 그의 사상은 공자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공자는 선대에 활약한 관중에 대해 묘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는 질투였고 또 하나는 동경이었다. 공자의 어록집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는 공자의 말과 행동을 최대한 찬양하며 기록했는데, 제자들이 그렇게 신경 쓰며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에 대한 공자의 질투심까지는 가리지 못했다.

 

 공자는 왜 관중을 그토록 질투했으며, 왜 그토록 동경한 것일까. 우선 질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공자의 철학은 인으로 대표되는 유가 사상으로 형식적인 예를 높이고 위계와 질서를 바로잡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관자》에 나온 관중의 철학은 공자의 그것과 무척 상이하다. 관중은 사상가이기 이전에 정치가였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다분히 실용적이었다. 공자의 철학은 현실주의를 '추구'하였지만, 허례허식과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관중의 철학은 추구를 넘어서, 그 자체만으로도 현실을 대변하는 성격을 가진다. 이렇다 보니 철학적, 사상적, 학술적으로 볼 때에는 공자의 사상은 성공했지만,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관중은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이 모신 왕에게 중원의 패자 자리를 선사했다.

 

 따라서 공자는 자신의 철학과는 상반되지만, 현실에서 성공한 정치가 관중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정치적 야심이 많았기에, 열국을 주유하며 자신의 이상과 철학을 실천하고자 노력했지만 끝내 시대로부터 외면당했다. 그러나 관중은 공자의 방법과는 상반된 방향으로 현실에서 성공했다. 공자에게 있어서 이는 무척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며, 현실에서 성공한 관중의 모습과 실패한 자신의 모습도 많이 비교하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공자는 관중의 부도덕한 면을 물고 늘어잡아 정신승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관중은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철학가, 경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관중의 사상과 관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책이 바로 《관자》라고 전한다. 학계에서는 이 책의 일부분이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라고 규정한다. 역자는 《관자》를 상가(商家 - 상업과 관련된)로 규정하고, 제자백가에 있어서 최초의 경제학자로 칭송한다. 실제로 관중은 제나라를 다스릴 때, 농업보다는 상업을 적극 권장하여 부강을 이뤘다. 이는 농업을 중시하는 유가의 입장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제나라는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하였기에 상업 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관중은 부유함이야말로 국력의 가장 큰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예의와 염치도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때에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점은 배가 고파도 곧 죽어도 인간답게 인과 예를 따르겠다는 공자의 사상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관자》가 경제학과 관련된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자》에는 유가, 도가, 음양가, 병가 등등의 여러 제자백가 철학들이 잡탕처럼 섞여 있다. 개인적으로 《관자》는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 아니라, 춘추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관중의 문하나 조국에서 활약한 여러 문인들의 생각들이 섞인 책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간다. 책의 챕터가 잡다하게 섞여있다는 점, 관중은 춘추시대에 활약했는데 전국시대에서 볼 수 있는 문체와 관념들이 보이는 점 등으로 볼 때 후대인이 관중이라는 이름을 빌려 가필한 책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겠다.

 

 그러나 《관자》가 관중의 직접적인 저작이 아니라고 해서 책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로부터 중국의 지자들은 정치와 관련된 고전을 읽을 때 《관자》를 필독서로 여겼다. 삼국시대의 유비와 제갈량 역시 《관자》, 《한비자》, 《상군서》 등을 무척 애독했으며, 후주 유선에게도 읽을 것을 추천하였다. 관중이 직접적으로 저작을 하진 않았지만, 그의 사상은 이 책 안에 녹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다 보니 중국과 일본에서는 《관자》를 주기적으로 연구하고 애독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조선 이후로 사상이 성리학 유일주의를 추구하여서, 《관자》와 같은 실용 고전을 애독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관자》라는 책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늘날 시중에 완역된 《관자》는 총 2개인데, 하나는 지금 리뷰하고 있는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이며, 또 하나는 4명의 역자가 공동으로 옮긴 책이다. 두 책 모두 소장하고 있기에 비교해보자면, 주석이나 해설은 확실히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이 뛰어나다. 역자는 특히 《한비자》나 《상군서》와 같은 패도와 관련된 제자백가를 중시하는 입장인데, 이는 유가에 치우친 전통적인 학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패도와 관련된 중국 고전을 읽을 때에는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을 꼭 챙겨 보는데, 《관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관자》 상권에는 역자의 자세한 해설과 분석이 200페이지나 할애되어 있는데, 이 내용만 읽더라도 《관자》의 전체적인 내용이나 사상을 파악하는데 무척 도움이 된다. 책은 총 86장으로 나눠졌는데, 상권의 경우 1장 목민에서부터 34장 정언까지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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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 - 도가사상의 정수
열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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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노장사상을 대표하는 책으로 《노자》와 《장자》를 으뜸으로 꼽는다. 그렇기에 도가사상은 노장사상으로 통한다. 오늘 리뷰하려는 《열자》도 이런 도가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책이다. 《노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명의 화자가 무미건조한 어조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한다. 《장자》는 《노자》와는 다르게 작은 이야기집, 우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열자》 역시 이와 비슷하다. 그렇기에 《열자》와 《장자》는 우화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사상적으로는 도가사상에 기초한다.

 

비슷한 구성의 책이라서 그런 것일까? 왜 《열자》는 《장자》보다 덜 알려지게 됐을까? 역자의 자세한 해설을 읽고 나름의 짧은 지식을 통하여 생각해 본 바 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도가사상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신선'이다. 세속으로부터의 탈피, 원시적인 자연을 동경하며, 속세를 잊고 사는 자연인의 모습. 이런 모습들은 도가철학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심상이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과연 도가철학이 개인의 탈속과 자유만을 추구했느냐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서 《장자》는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와 탈속을 추구하는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럼 도가사상의 원류에 해당되는 《노자》는 어떠한가?

 

다양한 판본들을 읽어보고 나니 《노자》는 개인의 수양과 탈속보다는 공동체적, 즉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춘추전국 시대와 전한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도가적인 색채를 가진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들 정치와 관련됐다. 초한쟁패의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장량과 진평이 이에 관련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결론을 내려보자면 《노자》는 개인의 탈속보다는 국가의 정책과 방향과 관련된 정치서적 텍스트이고, 《장자》는 자유분방한 노자의 사상을 개인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책으로 볼 수 있다.

 

《열자》는 어떤 책일까? 표면적으로 봤을 때에는 《장자》와 비슷하게 탈속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 보인다. 그러나 우화들을 자세히 음미하다 보면 《노자》에서 추구하던 공동체와 정치적인 내용도 들어있고, 《장자》에서 추구하는 개인의 탈속과 관련된 내용도 들어있다. 역자인 신동준 선생님은 기존의 학계와는 다르게 고전을 색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열자》 역시 마찬가지다. 역자는 《열자》는 《노자》의 기본 사상인 정치적인 성격을 이어받은 우화집이라고 규정하고, 《장자》보단 《열자》가 《노자》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열자》를 읽으면서, 《열자》가 《노자》를 사상적으로 직접적인 계승을 했다는 논의에 갸우뚱한 부분은 있지만, 확실히 《장자》보단 《열자》 쪽이 정치적인 뉘앙스가 많다는 주장은 긍정한다. 그렇기에 역자의 주장과 나의 생각을 절충해보자면 《열자》는 《노자》와 《장자》의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듯 《열자》는 특유의 잡탕적 성격 때문에 역대 이래로 위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진서로 규정하는 것이 학계의 대세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은 양주와 관련된 내용이다. 중국철학은 대부분 공동체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농경, 정착 문화를 가진 민족이기에 철학 역시도 공동체의 효율적인 통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고찰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중국에서도 극단적인 개인주의 철학을 가진 사상가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양주다. 양주는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할 수 없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전체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던 그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그래서일까, 양주의 목소리를 담은 저작은 전해지지 않는데, 유일하게 양주의 관점을 볼 수 있는 책이 바로 《열자》다. 이뿐만 아니라, 《열자》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우공이산'과 같은 고사의 우화도 볼 수 있어, 이런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도 쏠쏠한 즐거움이었다.

 

개인적으로 신동준 선생님의 동양고전 번역본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몇 년 전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을 듣고 무척 놀랐다. 그렇기에 역자의 이름으로 나오는 동양고전은 보기 힘들겠구나 아쉬웠는데, 이렇게 새로운 신간으로 《열자》를 만나니 오랜 지기를 보는 것처럼 무척 반갑다. 물론 이 책은 예전에 발간됐던 책인데 구간이 절판되어 새로운 표지와 편집으로 출간된 책이다. 돌아가셨지만, 새로운 편집본을 통하여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나름의 아쉬움을 덜어낸다. 《열자》를 시작으로 《논어》, 《맹자》, 《대학중용》, 《노자》, 《장자》, 《주역》 등등의 책들도 새롭게 복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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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스승 장량 더봄 평전 시리즈 2
위리 지음, 김영문 옮김 / 더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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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치고 장량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동양의 모사들을 통틀어 장량은 으뜸으로 추앙받았으며, '자방'이라는 그의 자는 최고의 참모를 뜻하는 고유명사로 통용되었다. 그러나 이런 유명세와는 다르게 그의 삶은 조명하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런 것일까?

먼저 생각해 볼 점은 그가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활동하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일생을 기준으로 하는 100년의 세월도 엄청 길게 느껴지는데 2000년은 오죽하겠는가! 물론 커다란 세월의 간격이 그의 삶을 조망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의 삶을 자세하고 명확하게 다룬 기록이 전해진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최고라는 수식을 받은 인물들의 삶은 기이하거나 신화적인 요소가 가미되기 마련이다. 장량도 마찬가지다. 그를 다룬 역사 문헌들조차 허구적이고 신화적인 요소를 배제하지 않고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최초의 기전체 역사서라 불리는 《사기》는 물론이요, 민담과 설화를 최대한 배제했다는 《한서》에서조차 장량의 기록은 한결같이 신비롭고 기이하다. 이렇다 보니 우리는 허구가 주축이 되어 만든 장량의 모습을 진실로 착각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의 삶에서 보이는 신화적인 요소를 무작정 무시할 순 없다. 서구 사회의 근간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해석하기에 따라 그 당시의 인간 군상의 보편적인 모습들을 신으로 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들에게 신체의 불멸과 능력의 완전함을 배제한다면 그들 역시 보편적인 인간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신들도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사소한 일에 분노를 하며, 실수를 하고, 질투를 하며, 사랑을 갈구한다. 불완전한 멘탈을 가진 것은 여느 평범한 인간과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장량의 삶에 깃든 신비로움도 쉽게 간과할 순 없다. 한나라를 건국한 뒤 부귀공명을 뒤로하고 적송자와 노닐다 신선이 되었다는 내용은 그만큼 그가 여느 개국공신과는 다르게 겸손했다는 내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황석공과의 만남과 《태공병법》의 전수, 곡식을 끊고 화식을 먹지 않으며 노년을 보냈다는 이야기 등등... 장량의 삶에는 기이하고 신화적인 측면을 유독 많이 볼 수 있다. 동양 고전이나 문화, 역사 기술 필법에 능한 사람은 이를 합리적으로 분별하여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겠지만, 그런 사람이 사실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와중에 이 책을 접했는데, 여느 다른 서적과는 다르게 장량의 삶을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책은 신화 속에 가려진 장량의 진면목을 합리적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덕분에 《사기》와 《한서》를 읽으며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도 배울 수 있었다. 장량이 최고의 참모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치고 빠지는 부분을 잘 계산하는 임기응변 덕분이리라. 정확한 형세 분석은 기본이요, 언제 치고 나가야 할지, 누구와 동맹을 맺어야 할지, 언제 빠져야 할지 등등을 잘 계산하는 인물이었다. 혹자는 장량을 두고 유교적인 인물로 파악하여 신의가 있고 군자의 풍모가 있다고 칭송하지만, 내가 본 장량은 철저하게 도가적인 인물이다.

유가는 인간을 사랑한다는 인간 중심의 철학이지만 도가는 인간에 대해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이 없다는 것은 차갑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 보자면 도가는 인간을 악하게 규정하는 법가보다도 훨씬 냉혹한 사상이다. 장량의 모책도 비슷하다. 그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도 서슴없이 저질렀으며, 작은 예절이나 법도에 구애받지 않았다. 참모에게 있어 중요한 점은 나의 책략이 통하느냐 안 통하느냐이다. 그 계책을 실행하는 가운데에서 인의와 도덕을 지킬 수 있다면 최고의 선택이겠지만, 도의적으로 잃는 것이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계산해 봤을 때 이득이 많다면 이를 과감하게 주장하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장량은 이를 정확하게 계산했다. 그렇기에 어느 상황에서는 도의와 대의를 쫓으며 명분을 따를 것을 강조했고, 어느 상황에서는 자질 구례한 예절보다 실제적인 이득을 취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책략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상황에 맞게 기민하고 융통성 있게 바꿔나갔다.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뛰어난 사람을 분류해보자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천재형, 두 번째 노력형.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량을 천재형으로 손꼽는다. 나도 그랬었다. 장량의 삶에 깃든 기이함과 신비로움은 선천적인 능력을 한층 우러르게 만드는 매개체들이니까. 그러나 그는 노력형 인물이었다. 그의 삶을 살펴보면 금수저 도련님에서 협객, 방랑자, 의용군의 우두머리, 부활한 한(韓)나라의 재상을 거쳐 유방의 참모로 활약하게 된다. 그의 심리 변화도 주목할 만 한데 처음에는 조국 한(韓)나라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던 성격이었지만, 풍파의 세월을 겪으면서 조국 한(韓)나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난세를 종식시킬 수 있는 현실적인 측면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그는 외면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입체적인 인물이었으며, 날 때부터 천재가 아닌 숱한 실패 속에서 자신을 가다듬은 노력형 인물이었다. 특출나고 비범한 삶에서 찾을 수 있는 평범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남다르다. 실패와 좌절 속에서 자신의 방향을 찾기 위해 분투한 지식인의 고독한 모습은 오늘날 노력이라는 가치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무튼 책을 통해 실제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장량의 숨결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용의 전개는 기존의 평전 스타일이 아닌 역사소설처럼 풀어냈는데, 군데군데에 《사기》를 인용하여 서술의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장량과 관련된 내용을 읊은 문인들의 시(詩)도 풍부하게 담고 있어 전기 특유의 무미건조함도 덜하다. 번역도 괜찮은데 《동주 열국지》, 《원본 초한지》 등등 장량과 관련된 배경을 다룬 소설 고전을 옮긴 역자의 솜씨라서 무난하게 읽힌다. 장자방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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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의 협상법 - 인생의 승부처에서 삶을 승리로 이끄는 협상비법
신용준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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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계발서를 즐겨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정성 들여 쓴 양서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광고를 볼 때에는 모든 것을 다 알려줄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독자가 원하는 것은 주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식인데,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뜬구름만 잡고 두루뭉술하게 끝맺는다. 즉 간만 보여주고 노른자는 안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이런 부류의 책을 볼 때 두 가지를 철저하게 고려한다. 첫 번째, 주제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료하며 현실적인가? 두 번째, 돈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책인가?

다행히 이 책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했다. 책에서는 협상기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었으며 다양한 예시와 풍성한 훈련을 들어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도록 서술됐다. 내용은 합격이며 책값도 합리적이다. 그러니 시간을 투자하여 읽어볼 가치가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한 권의 양서는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정성과 응축된 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찍어내는 숱한 자기계발서와는 결이 달랐다. 폭탄이 아니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완독을 할 수 있었다.

협상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반사적으로 사업과 영업이 떠오른다. 두 영역에서 협상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도 협상은 무척 중요하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타협과 협상이 필수적이다. 나 자신과의 협상, 타인과의 협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는 수많은 협상을 하며 살아간다. 구멍가게에서 할인을 요구한다거나 재래시장에서 흥정을 하거나, 아이가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을 사달라고 하거나... 이런 일련의 행위들은 모두 협상의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

'굳이 이런 협상을 다룬 책을 읽을 필요가 있겠어? 그냥 내키는 대로 조율하면 되는 거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세상이 너무나도 영악하다.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남들에게 호구처럼 취급되진 않아야 한다. 그렇기에 당하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협상 기법을 알아야 한다. 협상의 핵심은 이익의 절충이다. 문제는 나의 이익을 무제한적으로 추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나의 이익은 필연적으로 타인의 이익과 맞물려 있다. 우리는 이 욕망의 충돌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에서 '올바른 협상'이 필요하다.

책을 통해서 협상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게 됐다. 협상에 관련된 전문적인 용어와 기술적인 스킬, 그리고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도 여러모로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협상에 관하여 전반적인 개념을 잡고 싶거나, 기술적인 기법을 배우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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