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린치의 이기는 투자 - 월가의 영웅, 피터 린치의 개인 투자자를 위한 주식·펀드 투자법, 2021 최신개정판
피터 린치.존 로스차일드 지음, 권성희 옮김, 이상건 감수 / 흐름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식을 시작하면 대부분 먼저 배우는 것이 가치 투자다. 가치 투자란 무엇인가? 기본적 분석과 거시경제, 그리고 기업의 성장성을 고려하여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하여 장기간 보유하여 이득을 남기는 기법이다. 보통은 우량하며 독과점적인 기업을 선택하여 장기적으로 투자한 뒤 주가 성장과 배당을 통하여 이득을 취하는데 벤저민 그레이엄, 워런 버핏, 그리고 피터 린치 등등이 가치 투자자에 속한다. 그러므로 이들이 쓴 책들은 투자의 고전 반열에 올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 역시 주식을 처음 배울 때, 가치 투자를 메인으로 배웠었다. 그러므로 위에 언급한 거장 세 사람의 저서들을 가장 먼저 배우기 시작했는데, 초보자 입장에서 가장 무난하게 읽힌 책은 피터 린치의 저서였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글은 초보자가 읽기엔 너무나도 복잡하고 학술적이다. 가치 투자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증권분석》, 《현명한 투자자》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러나 《증권분석》은 분량도 방대하고 내용도 전문적이다. 그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평이하게 저술했다고 자부하는 《현명한 투자자》도 생초보들이 접하기엔 진입장벽이 높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자이자 대학교수였기에 글의 수준이 무척 현학적이다. 무턱대고 덤볐다간 부러질 여지가 다분하다.

 

 가치 투자를 상징하는 아이콘 워런 버핏의 글은 어떨까? 시중에 워런 버핏을 다룬 책은 많지만, 관찰자의 시점으로 쓰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그의 친필 주주서한을 모아놓은 《워런 버핏 바이블》이나 《워런 버핏 라이브》, 《워런 버핏 주주서한》 등등이 그의 육성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저서들이다. 그의 글은 그레이엄의 글보다는 친숙하고 유머러스하다. 투자에 있어서 주옥같은 부분들이 많지만, 초보자 입장에서는 핵심을 파악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초보자가 대가의 주총 질의문답, 주주서한 등을 완벽하게 이해할 순 없기 때문이다.

 

 반면 피터 린치의 저서는 앞의 두 사람의 책과 비교해 볼 때 무척 친절하다. 세 거장의 글들 중 린치의 글은 가장 가독성이 뛰어나며, 투자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더라도 읽는 데 무리가 없도록 최대한 배려하였다. 국내에 피터 린치의 책은 총 3개가 번역되었는데 하나씩 열거해 보자면 앞서 리뷰했던 《피터 린치의 투자 이야기》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그리고 그의 투자 경험론이 녹아있는 《피터 린치의 이기는 투자》다. 셋 중 투자자를 위한 입문서는 《피터 린치의 투자 이야기》를 추천하고, 피터 린치의 일대기와 무용담을 가장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책은 《피터 린치의 이기는 투자》다.

 

 흔히 고전을 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름은 알지만 읽지 않은 책이라고 한다. 투자 고전 역시 마찬가지다. 고전이 읽기 힘든 이유는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이질적인 시대 상황, 표현, 언어 등등... 이런 진입장벽을 모두 극복하고 완독에 성공한 사람들은 인내심이 많은 극소수의 사람들뿐이다. 너무나도 현학적이고 전문적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책, 가치 투자를 상징하는 워런 버핏의 글을 읽은 투자자가 많을까? 안 읽은 투자자들이 많을까? 안 읽은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그러나 피터 린치의 글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임에도 불구하고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그래서 많은 투자자들이 그의 책을 '읽히는 고전'으로 손꼽는다. 이렇다 보니 판매량도 그레이엄과 버핏의 책보다 훨씬 압도적이다. 완독에 성공한 분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주식투자에는 여러 가지 기법이 있다. 초단타 매매인 스캘핑, 하루 거래로 승부를 보는 데이 트레이딩, 최대 한 주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스윙, 그리고 좋은 기업에 꾸준하게 투자하는 가치 투자... 이 중 가장 안전한 투자법은 아무래도 가치 투자다. 초보자 입장에서는 원금을 까먹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수익률은 적지만 안정성이 뛰어난 점에서 가치 투자를 따라올 기법은 없다. 지수형 ETF에 투자하는 것도 개별 종목을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피터 린치의 이기는 투자》에서는 가치 투자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펀드를 어떻게 선별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래서 개별 종목을 가치 투자하는 데에도, 좋은 ETF를 선정하는 것에도 직간접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

 

 린치는 주식의 저점과 고점의 사이클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정하여 꾸준한 투자를 적극 권유한다. 그의 가치 투자는 버핏의 가치 투자와 결이 다르다. 버핏이 자신이 잘 아는 섹터의 독과점 우량주를 매수하여 장기로 투자한다면, 린치는 우량주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내실 있는 중소기업 업체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우량주는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이 높지 않은 반면 탄탄한 중소기업 업체들은 성장성과 변동성이 무척 크므로 수익을 낼 때 폭발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개미들이 코스닥을 선호하는 이유는 코스피보다 훨씬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다. 돈을 잃을 가능성도 높지만 수익률이 극대화될 가능성도 높다.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주식시장과 린치가 활약했던 시대와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린치가 투자하던 시대는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성장하던 시대였다. 불황과 호황의 사이클이 빈번하게 출렁였고 이런 변동성은 투자에 있어서 커다란 위기이자 기회로 다가왔다. 지금은 어떠한가? 예전에 비해 기업의 성장률은 둔화됐고 사회의 번화는 더욱 가속화됐다. 이렇다 보니 기업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더욱 빠른 속도로 혁신을 거듭해야 한다. 옛날의 방식을 고수하는 기업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여 상장폐지되는 기업들도 많을 것이며 우량주라 하더라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그럼 가치 투자는 오늘날 상황과 비교해 볼 때 뒤떨어진 투자법인가? 그렇진 않다. 스캘핑이나 단타로 어느 정도 충분하게 돈을 번 단기 투자자들도 모은 자산을 지키기 위해 보수적인 투자법으로 선회하는 경우가 많다. 단타 위주의 투자자라 하더라도 가치 투자와 장기투자를 모른다면 힘들게 모은 자산을 쉽게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진정한 투자자라면, 장타와 단타를 편식하지 않고 고루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여전히 린치의 글은 유효하다. 그의 글은 가치 투자의 핵심을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학을 공부하는 과학
최준호 지음 / 머스트리드북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송합니다.' (문과생이라 죄송합니다.)

 

이과를 나오지 않은 문과 출신을 두고 일컫는 웃픈 문장이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성적은 언어가 가장 잘 나왔지만 재미있고 좋아하던 과목은 수학이었다. 수학을 좋아하기에 어릴 때부터 나는 당연하게 이과를 가야겠다고 결심했고 그 믿음은 깨지지 않았다. 적어도 중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과의 꿈을 접게 된 것은 순전히 과학 때문이었다. 수학은 좋았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지만 도무지 과학이라는 녀석과는 친해질 수가 없었다. 물리는 따분했고 화학은 복잡하게 느껴졌으며 생물은 외울게 많았다. 그나마 지구과학이 나았는데 그마저도 다른 과학 과목들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다. 결국 나는 문송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괴롭히던 과학은 스무 살 이후 내 인생에서 작별을 고했다. 이공계와는 담을 쌓았으므로, 스스로 찾지 않는다면 과학과 대면할 일은 없었다. 간혹 신문이나 뉴스에서 새로운 기술과 발전을 접할 때에 놀라긴 했었지만 삶에 크게 와닿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엄밀하게 따져보자면, 폴더폰이 스마트폰으로 교체되기 시작했을 때, 문자를 쓰다가 카톡이라는 메신저를 사용했을 때, 스마트폰을 통하여 인터넷을 전국 어디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을 때, 그 순간만큼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대단하다는 것을 분명 느꼈다. 그러나 그 외의 발전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이런 내가 과학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투자를 시작하면서였다. 주식을 하면서 그날의 테마주를 복기해 볼 때 생명과학과 바이오주가 급부상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뿐일까 수소와 전기차 등의 친환경 사업, 우주와 관련된 산업 군들 등등... 이런 테마주들은 과학을 알지 않고서는 투자로 이어질 순 없었다. 과학과 관련된 기업의 기본적 분석(재무제표를 기반으로 한 기업 분석)을 하더라도 무슨 사업을 하는지,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관심을 받고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결국 과학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을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주식에 필요한 기법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주식이라는 것은 기업을 공부하는 것이며, 기업을 공부하다 보면 결국 대한민국의 거시 경제와도 연결된다. 그렇기에 테마주로 빈번히 등장하는 과학 관련 기업들을 알기 위해서는 현재 과학 기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은 알고 있어야 한다. 뭘 하는지 알아야 투자를 할 수 있고, 미래 전망을 예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과학을 공부한답시고 중고등학교처럼 복잡한 수식이나 주기율표, 신체의 기관들을 지루하게 암기할 수는 없다. 일반인에게 필요한 과학 지식은 시험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최근의 동향과 흐름, 그리고 다가올 실생활에서 구현될 수 있는 미래의 전망 정도니까. 너무 깊게 들어가서도 안되고 인터넷에서 성의 없이 작성된 얕은 기사와 같은 글도 곤란하다.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시사성이 있는 지식이 필요한 법인데, 그렇기에 과거의 이론이나 기술들을 다룬 책들은 우선순위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다. 정리해 보자면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의 시각이 필수적이며 최신의 동향을 담고 있으면서 일반인이 읽기에 적당한 난이도를 가져야 한다. 시중에 많은 과학 교양서가 있지만 이런 조건을 두루 만족하는 책은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다.

 

교보에서 책을 살펴보는 도중, 눈길이 가는 제목을 발견했다. 《과학을 공부하는 과학》. 머리말을 읽어보니 저자는 나와 같은 문송 출신의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해서 신뢰할 만한 경력을 많이 쌓였다. 목차를 보니 더욱 명료했다. 책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뉘는데, 우주와 천체, 인간 DNA와 인공지능, 지구 환경에 대한 내용이다. 세 파트 모두 주식에서 테마주로 나올 공산이 큰 분야다. 분량도 적당하며 문송 출신이 쓴 책이라 그런지 일반인의 입장을 최대한 고려한 흔적이 글에서 뚝뚝 묻어난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파트는 지구 환경에 대한 파트였다. 우리는 흔히 단순한 일반화로 과학 기술이 우리 지구를 황폐화하고 무너트렸다고만 생각한다. 그렇기에 종국에는 인간의 탐욕과 과학 기술의 결합이 우리 스스로를 망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떠올린다. 그러나 책을 읽어본 바, 과학의 발전이 오히려 지구 환경 파괴를 막고 환경 보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도 가지게 됐다. 책을 읽으면서 투자에 관한 관점으로만 과학을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어떤 기업이 돈이 될까.', '앞으로 어느 기술이 전망이 높겠다. 그럼 어느 기업이 가치가 높을까?' 등등... 그러나 책을 덮으면서 투자를 떠나 내가 살아가는 세계의 변화를 알아야겠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생겼다. 세계의 변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과학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과학이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줄 수도 있고,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는데 앞장설 수도 있다. 이를 명확하게 인지하기 위해서는 모른 채로 무턱대고 부정하기보다, 변화의 속도를 인지하면서 과학의 방향을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과학에 대한 관심과 배움은 충분히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자 잡편 동양고전 슬기바다 17
장자 지음, 오현중 옮김 / 홍익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 《장자》 리뷰는 잡편으로 전에 작성한 내편과 외편 리뷰와 내용상으로 긴밀하게 이어진다. 잡편은 이름에서 풍기듯 잡다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장자》는 내편이 핵심이고 외편과 잡편은 중요도나 주제의식으로부터 떨어진다고 했는데 잡편을 읽으면서 그런 주장들이 나온 근거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외편과 잡편은 구분이 가능할까? 현행본 《장자》의 편저자인 곽상(A.D 252 ~ 312)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외편과 잡편을 나눠 정리한 것 같은데 읽어본 바로는 외편이나 잡편이나 내용상으로 크게 차이점을 찾을 순 없었다. 책의 해제에서 역자도 외편과 잡편을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모르겠다고 하는데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몇몇 사람들은 《장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편이고, 저자인 장주가 직접 저술한 부분도 내편이기에 외편과 잡편보단 내편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에는 나도 이런 주장에 귀가 솔깃했다. 잡편과 외편은 내용이나 주제의식도 광범위하고 집약적이지 않으며, 일관성도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게다가 원저자인 장주가 쓰지 않은 흔적들이 많이 보였기에 원전에 덧붙여진 부록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자백가의 저술들 중 과연 원저자가 쓴 내용을 확실하게 가릴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제자백가서는 원저자로 알려진 철학자가 손수 저술한 것이 아닌 그 철학자를 계승한 제자들이 정리한 문헌이다. 유가의 《논어》, 《맹자》, 《순자》도 그 사상을 따르는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며, 《묵자》, 《노자》, 《손자》, 《귀곡자》 등등의 제자백가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나는 종국에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사람이고 책은 책이다. 이 둘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장자》 역시 마찬가지다. 장주라는 인물의 사상과 목소리가 《장자》에 주축을 이루는 것은 맞지만, 장주와 《장자》는 철저하게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 장주는 위대한 사상가이지만 그가 쓰지 않았다는 외편과 잡편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만약 외편과 잡편이 가치가 없었다면 현행본 《장자》에서 진즉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장주의 목소리는 담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편과 함께 20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전해지는 것에는 분명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기에 파트별로 중요도를 따지지 말고 《장자》라는 문헌의 큰 틀에서 동등한 시각과 가치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장자 잡편》의 다양한 우화를 읽으면서 두 가지 측면을 생각했다. 하나는 전국시대 말기에 유행하던 황로학으로 이는 제자백가의 다양한 철학들의 장점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였는데 여기서 중심 사상이 된 것이 도가였다. 그래서 황로학을 두고 후대의 학자들은 '잡가'라고 표현했는데 다양한 사상들의 정수를 짬뽕시켰다는 의미다. 제자백가 사상을 하나로 통섭하려는 시도는 전국시대 말기에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데 중원의 열국들이 하나의 제국으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사상 역시 하나로 일원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제자백가를 하나로 획일화하는 과정은 여러 학파에서 진행되었는데 그중 대표되는 사상가는 순자와 한비자, 여불위다. 순자는 맹자의 배타적 관념을 거부하고 병가와 법가, 종횡가 등의 현실주의 사상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유가를 중심으로 제자백가를 통합하려고 한 철학자다. 순자의 제자 한비자는 스승보다 한 발 더 나아가 도가를 사상적 토대로 삼아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는데, 그가 정비한 법가사상은 유가에 베타적이지만, 도가와 병가, 종횡가 등등의 이론을 법가의 시각으로 정리, 흡수한 철학이었다.

 

 여불위는 새로운 제국 진나라의 철학을 정립하고자 학파를 가리지 않고 식객들을 모아 《여씨춘추》를 편집하였는데, 이를 '황로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외편과 잡편도 황로학적인 요소들이 다분한데, 어쩌면 《여씨춘추》의 성립에 있어서 《장자》의 외편과 잡편이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두 책 모두 제자백가의 다양한 요소들을 도가의 입장으로 흡수하여 해석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여씨춘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장자》의 외편과 잡편의 사상들이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 정리해 보자면 《장자》의 외편과 잡편은 도가를 중심으로 제자백가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의 시초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현행본 《장자》가 편집된 시대는 《여씨춘추》가 만들어진 전국시대 말기로부터 약 400년이나 지난 서진 시대이기에 역으로 《여씨춘추》의 황로학 사상이 현행본 《장자》의 편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곽상이 정리한 《장자》 이전에도 《장자》라는 책은 여러 판본으로 전해졌으며, 이 책들은 《여씨춘추》보다 훨씬 이전에 만들어져 통용되었다. 그렇기에 어느 책이 먼저인지는 명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두 책 모두 전국시대 이후 도가 사상이 황로학이라는 정치사상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불교와의 접점이다. 외편도 그랬지만 잡편을 읽으면서 《장자》는 불교의 사상과 무척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중세 이후 중국의 사상계는 3가지로 정리되는데 각각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다. 유교와 도교는 중국의 전통 제자백가 사상인데 반해 불교는 외국의 사상이다. 유교는 세속적이며 입신양명을 지향한다. 반면 불교는 세속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격리시키며 내면적인 자유와 해탈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유교와 불교는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기에 대립의 각이 클 수밖에 없었다. 도가 철학으로부터 태어난 도교는 어떨까? 도가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노자》는 겉으로는 탈속을 강조하지만 진정한 목적은 세속의 정치를 향하고 있다. 반면 《장자》는 어떨까? 《장자》 역시 정치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노자》와는 다르게 개인의 탈속과 세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교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노자》가 정치적이고 세속을 추구한다면, 《장자》는 정치를 추구하면서도 개인의 자율과 해탈 역시 강조하고 있다. 이는 외편 리뷰에서도 밝혔듯 통행본 《장자》가 형성된 위진남북조 시대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흔적으로 보인다. 세속으로부터의 격리, 그리고 개인의 해탈과 자유를 추구하는 점은 불교 철학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정리해 보자면 유교가 철저하게 현실을 추구한다면 도교는 현실과 세속을 넘나들며 융통적인 여지를 남기고 있다. 불교는 철저하게 세속의 가치를 부정한다. 즉 도교는 이질적인 유교와 불교의 접점을 이루고 있는데, 외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불교를 중국인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이는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전에도 《장자》를 읽었지만, 이번에 홍익에서 번역된 《장자》 시리즈를 읽으면서 새삼 세월의 흐름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독성이 좋은 고전 번역, 생동감 있는 고전 번역서가 나오는 것 같아 매우 고무적이다. 널리 알려진 고전이더라도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우리는 익숙한 고전들을 원전의 범위를 해치지 않는 점에서 더욱 친숙하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롭게 번역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친절하고 생기 있는 번역 덕분에 《장자》라는 열매를 좀 더 풍성하고 넉넉하게 누릴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자 - 제자백가사상의 집대성
순자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가철학을 다른 말로 '공맹'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서 공은 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를 뜻하고, 맹은 전국시대에 활약한 맹자를 뜻한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활약한 철학자고 맹자는 전국시대에 활약한 철학자다. 즉 맹자는 공자의 유학을 계승했다는 평을 받았는데 이렇게 형성된 학문적 도통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해졌다. 우리가 흔히 유학이라는 철학을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고루하고 따분하며 지나치게 예의 예법을 강조하는 이미지가 연상된다. 실제로 유가는 온고지신, 즉 옛것을 바탕으로 신분에 맞게 학문과 예의를 강조하고 있으며, 도교와 불교와는 다르게 현실지향적, 참여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정리해 보자면 유학은 과거의 올바른 제도를 바탕으로 정치와 사회를 도덕적으로 교화하며 현실의 부패한 모순점을 개선하는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옛것을 본받는다는 점에서는 보수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개혁하겠다는 점에서는 진보와 맥을 같이한다.

 

 하나의 사상이 싹트고 발전할 때, 전대보다는 후대의 사상이 훨씬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전대에 비해 후대의 사상은 새로운 이론과 합쳐지며 발전하는데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는가 하면 내용이 변질되는 경우도 있다. 원시유가라고 할 수 있는 공자의 유학과 이를 계승한 맹자의 유가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이질적인 부분도 무척 많다. 공자의 시대인 춘추시대보다,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의 시대상이 훨씬 각박하고 잔혹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맹자는 공자의 철학을 자신이 처한 각박한 현실에 대입하여, 자기만의 시각으로 유학을 해석했다. 약육강식의 각박한 현실 속에서 유학를 부르짖었으니, 맹자는 명분에 지나치게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공자가 인과 예를 강조할 때 맹자는 그보다 훨씬 강도가 강한 의를 내세웠다. 또한 공자보다 언어적 수사학도 훨씬 현란했으며 유학의 이념을 바탕으로 인간의 마음을 사단(인-측은지심,의-수오지심, 예-사양지심, 지-시비지심)으로 정의하고 성선설을 적극 주장했다.

 

 여기서 잠깐,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짧게나마 배웠던 한 토막 지식을 떠올려보자. '맹자의 성선설 VS 순자의 성악설'. 철학에 문외한인 사람이더라도 맹자는 익숙한 반면 순자는 무척 생소하다. 맹자는 인싸 느낌이 가득하고 순자는 비주류 아싸같다. 그래서일까 윤리를 배운 사람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혹은 수능 때문에 순자의 성악설을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스쳐 지나가는데, 유학의 발전사, 혹은 중국의 철학사에 있어서 순자는 맹자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아니 그 이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에 활약했던 유학자로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보다 훨씬 후대의 인물이다. 대부분의 제자백가 서적들이 그렇듯 순자의 저술이라고 전해지는 《순자》는 그의 사상을 제자들이 집대성하고 정리한 것이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든다. 《맹자》와 《순자》의 차이점은 단순히 인간의 본성을 성선과 선악으로 바라보는 시각차만 존재하는 것일까? 왜 후대의 사람들은 순자가 아닌 맹자를 공자의 적통으로 인정한 것일까?

 

 두 책을 면밀하게 읽어보니 의문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먼저 《맹자》와 《순자》의 공통점은 공자의 유학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순자 역시 맹자와 마찬가지로 유학자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당대에 학자로 널리 명성을 쌓고 있었으며 한비와 이사 같은 거물급 인사들의 스승이었다. 우리에게는 와닿지 않지만 순자는 전국시대 말기, 당대를 대표하는 유학자였다. 같은 철학을 계승했지만 두 사람의 방향은 무척 상이했다. 맹자는 정치적으로 왕도를 고집했고 집착했다. 당대 전국시대에는 약육강식의 패도가 성행하였는데, 맹자는 이런 금수만도 못한 상황을 무척 비판했다. 그래서 왕도 외에 다른 정치제도는 인정하지 않고 타협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맹자》의 어조는 좋게 표현하면 주관이 뚜렷하고 나쁘게 표현하면 '답정너'라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하다.

 

 반면 순자는 어떨까? 순자 역시 왕도를 최선의 방책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왕도만이 답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패도를 용인할 수 있다는 일말의 여지를 열어놨다. 순자가 활동하던 전국시대 말기는 중원의 기운이 하나로 통일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원을 통일하려는 진(秦)나라와 나머지 나라들의 합종연횡이 지속됐는데, 종횡가와 병가를 배운 인재들이 주군을 위해 모략과 군략을 짜던 시대였다. 맹자는 눈앞에 드러난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굽히지 않았다 이를 좋게 표현하면 '소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고 나쁘게 표현하자면 '나를 세상으로부터 왕따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순자는 유학을 고집했지만, 맹자처럼 막히지 않았다. 돌아가는 사회의 흐름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현실과 유학의 타협점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철학자였다.

 

 《맹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가득하다면, 《순자》는 여러 학파들의 장점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훗날 유자들은 《순자》를 두고 '잡스럽다. 이단이다.'라고 공격했다. 정리해 보자면 맹자는 왕도를 지향하며 형이상학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리고 명분과 대의를 극도로 강조한다. 반면 순자는 왕도를 지향하되 패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둔다. 최선이 되면 좋겠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차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맹자와 비교해 볼 때 형이하학적인 성격을 가지며, 명분과 대의도 좋지만 그 이상으로 현실의 가치를 쫓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순자의 현실주의 사상은 제자인 한비와 이사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는데, 한비는 순자의 사상을 참고하여 《한비자》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겨서 법가의 사상을 집대성했고, 이사는 진시황에게 등용되어 진나라를 통일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운다. (이후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흔히 유가와 법가는 가장 상반된 철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순자》는 기본적으로 유가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법가가 가진 현실적인 시각과 견해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듯 순자의 노선이 모호하기 때문에 명분론에 입각하여 유학을 집대성하여 성리학을 정립한 송나라의 주희는 순자보단 맹자를 공자의 적통으로 선택하였다. 주희로 인해 《맹자》는 유학의 교과서인 사서에 편입되었고 공자의 《논어》와 더불어 서책 가운데에 가장 권위가 높은 경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유학자들이 《순자》를 등외시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다. 고려와 조선에서 유행했던 성리학의 영향 덕분에, 조선에서는 현실주의 철학이 꽃 피지 못했는데, 《순자》를 비롯하여 《관자》, 《한비자》, 《상군서》 등등의 양서들이 이단으로 치부되었다. 《맹자》가 아닌 《순자》가 널리 보급되었다면, 동아시아의 여러 왕조들의 운명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 앞에서도 《맹자》의 깐깐함보단 《순자》의 융통성이 훨씬 필요하지 않을까. 명분을 지나치게 내세운 성리학의 기준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기준으로 맹자와 순자를 바라봐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인싸가 되진 못하더라도 아싸의 모습은 탈출한 《순자》의 모습을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 - 돈과 타협으로 국방력을 대신했던 나라의 최후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
강정만 지음 / 주류성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 전문서적을 주력으로 발간하는 주류성 출판사에서 중국 왕조 역대 황제 평전 시리즈를 기획하였는데, 이번에는 《송나라 역대 황제 평전》이 신간으로 발간됐다. 전작인 명나라와 청나라, 당나라도 무척 재미있었는데 이번 작도 무척 기대가 됐다. 송나라는 중국 문화에 있어서 무척이나 의미 있는 왕조이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역사에서 송나라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점이 특별한 것일까. 책의 서두에서 언급하듯 송나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왕조였으며 국가를 다스리는 방향도 문치를 지향했으므로 신민들의 인권도 나름 보장됐다. 송태조 조광윤은 오대십국의 혼란기를 최대한 평화로운 방책으로 해결하였으며 통일된 중원을 무력이 아닌 문치로 다스리고자 노력하였다. 이후 계승한 송나라 군주들은 조광윤이 설정한 문치주의의 기조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그랬기에 송나라는 뛰어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다.

 

 중원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문치를 지향한 송나라는 정치와 인권의 발전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과 도시문화, 상공업 발전 등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송나라의 군주들도 기본적으로 유학적인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노력하였으며 신하들을 강압적으로 누르지 않고 최대한 예우하며 함께 국정을 이끌어가려고 하였다. 유교에서 이상적으로 여기는 '군신공치'의 이념이 실제로 구현된 것이다. 특별함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중원에 들어선 여러 제국들 중 한족이 중심이 되어서 건국한 통일왕조는 한나라, 송나라, 명나라가 대표적이다. 이렇다 보니 중국인들에게 송나라는 핏줄로도 가까운 나라로 인식됐다.

 

 한나라가 중국인의 아이덴티티와 지향하여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면, 당나라는 제국의 확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송나라는 중원의 주류 사상인 유가 사상에 입각한 문치주의를 가장 잘 구현했으며 이를 통한 정치적, 문화적, 정신적 문명의 높은 발전을 보여줬다. 불행하게도 송나라 이후 들어서는 원나라와 명나라는 무력과 전제정치에 입각하여 중원을 다스렸으니 오늘날 민주적인 정치제도로 판단해 보자면 발전이 아닌 퇴보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뛰어난 문명국인 송나라는 과연 문제가 없었을까?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문치주의를 극도로 숭상한 점에 있다. 전근대 왕정국가의 통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文)과 무(武)의 조화다. 중원이 무척 혼란한 난세의 시대에는 사실 문(文)보다 무(武)의 중요성이 커진다. 송나라는 중원을 통일했다고 하지만 중원의 북쪽에는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 등이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해 송나라 시대는 남북국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치주의를 숭상한 송나라와 다르게, 요나라와 금나라는 무척 호전적인 국가였다. 송나라는 이들과 싸움을 회피하려고 노력했는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무척 많은 돈을 소모하였다. 실력이 아닌 돈과 타협으로 평화를 유지한 것이다.

 

 군주들은 현실에 직시한 위험을 외면했고 예술과 문화에 심취했다. 문신들 역시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관념적인 탁상공론을 일삼으며 붕당을 지어 황제의 권력을 압박하고 정치적 이해가 다른 당파를 공격했다. 송나라는 뛰어난 문화를 이룩했지만 이를 스스로 지킬 능력과 의지가 없었다. 과학기술도 발전하여 당시 기준으로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여 싸움을 회피했다. 그 결과 북송의 마지막 황제라고 할 수 있는 휘종과 흠종은 금나라에 끌려가서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객사했다. (정강의 변)

 

 이 책은 정치사를 다루고 있기에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송나라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성리학'이 이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중국뿐만 아니라 동양사 전체를 놓고 봐도 성리학은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의 여말선초 시대, 조선을 개국한 주도적인 세력들이 바로 신진사대부인데 이들의 사상적 바탕도 성리학이다. 고려를 대신한 조선도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는데, 이런 성리학은 조선이 멸망하기 전까지 약 500여 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한 사상이었다. 이렇듯 성리학은 우리나라와도 때려야 땔 수 없는 사상이었던 것이다.

 

 성리학을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송나라의 장단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성리학이 태어난 배경에는 극도로 지향한 문치주의가 주요한 원인인데 현실에서 이민족에게 짓밟히는 암담함을 곱씹으며 정신승리하며 만든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실적이기 보다 관념적인 성격, 군주의 권한을 전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닌 신권과의 조화를 강조한 부분, 학문적 체계와 도통을 세운 부분 등... 여러모로 송나라의 성격을 그대로 이어받은 철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성리학을 절대화하여 국가의 주류 사상으로 받아들인 조선은 어떠했는가? 송나라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극단적인 문치를 숭상하다 임진전쟁을 불러일으켰고, 망할 때까지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 탁상공론을 일삼으며 성리학적 틀을 더욱 견고히 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뛰어난 사상과 관념이 있더라도 지킬 수 없는 힘이 없다면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사라진 송나라와 조선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