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한 스푼,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스텔라)의 드레스덴 편을 읽는다. 

교회 사진 1965 Von Deutsche Fotothek‎, CC BY-SA 3.0 de, 위키미디어커먼즈


유시민 작가의 '유럽도시기행2'에 드레스덴이 있다.





기념물이 된 구 교회 건물의 자취 Von Mabit1 - Eigenes Werk, CC BY-SA 4.0, 위키미디어커먼즈


교회 사진 1945 Von Deutsche Fotothek‎, CC BY-SA 3.0 de, 위키미디어커먼즈


[네이버 지식백과] 프라우엔 교회 [Frauenkirche] (독일 드레스덴 여행, 이지 유럽)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117554&cid=67006&categoryId=67492 원래 가톨릭 성당이었다가 종교개혁 후 루터교 교회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의 작가 커트 보니것이 드레스덴 폭격 생존자이다. 

드레스덴 성모 교회는 거대한 석조 돔이 트레이드마크다. 건물 외벽의 높이와 그 위에 얹어진 돔 높이의 비율이 1:1에 가까울 만큼 커다랗고 둥근 돔이 건물의 전체적인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온화한 얼굴로 모든 것을 품어줄 것만 같은 성모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의 성모 교회는 사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완전히 소실되어 파편만 남아있던 것을 2005년에 재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그 증거로 당시의 건물 파편 중 하나를 교회 앞에 전시해두었다. 커다란 돌덩이가 넓은 거리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서,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드레스덴에는 사실 이런 곳이 정말 많다. 1945년 2월, 연합군의 드레스덴 공습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도시 내 여러 문화유산도 불타버렸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관광 명소들 중에서도 현대에 들어와 재건 혹은 보수된 곳이 많고, 아직까지 복구되지 못한 유산들도 있다고 한다. 공습 희생자를 기리는 공동묘지 비석에는 이 당시의 상황을 ‘인간이 만든 불지옥’이라 칭하고 있다.

새삼 뉘른베르크가 떠오른다. 앞서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뉘른베르크는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주요 선전 무대 중 하나였다. 나치 전당대회가 매년 개최된 곳이자, 인종차별법이 통과된 곳이며, 패전 후에는 전범 재판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뉘른베르크는 가해자의 모습을, 드레스덴은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연말의 축제 분위기를 즐기러 간 여행이기 때문에 전쟁과 관련한 역사적 장소들은 일정에 포함하지 않았지만, 도시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도 가려지지 않은 채 이곳저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DAY 2. 12월 22일 엘베강의 피렌체, 아름다운 드레스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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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에세이 '크리스마스트리'를 읽는다.

Christmas tree bargain, 1918 - Boris Kustodiev - WikiArt.org


크리스마스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2k0537a 다음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첫 크리스마스 캐롤의 출처가 누가복음이라고 한다. 


Christmas Tree, 1956 - Gene Davis - WikiArt.org

언제나 이맘때면 군밤 냄새처럼 마음에 위안을 주는 좋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건 지금 우리가 크리스마스 난로 주위에 둘러앉아 겨울 이야기―유령 이야기 또는 좀 더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난로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자리를 옮길 때 말고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의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밝은 빛을 내뿜고, 대부분 꽃을 피우고, 큰 가지에는 잘 익은 과일들도 달렸다.

지금 크리스마스트리는 화려한 즐거움, 노래, 춤, 유쾌함으로 장식되어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는다. 천진난만함과 환대는 크리스마스트리 가지 아래 아직도 매달려 있고, 이제 우울한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트리가 땅속으로 가라앉음에 따라 잎사귀들 사이를 지나는 속삭임을 듣는다. "이제 사랑과 친절, 자비와 연민의 법칙을 기념하라. 이제 나를 기념하라!"* *누가복음 22장 19절.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한 말. - 크리스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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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겨울밤의 시작이다. 아래 글은 절기를 담은 동시집 '쌤통이다, 달님'(윤미경)의 동지 편으로부터 가져왔다. 그리고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이야기.


[도서관에서 듣는 겨울이야기] 팥죽할머니와 호랑이 2020. 12. 14. (출처: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네이버 지식백과] 팥죽할멈과 호랑이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편))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120386&cid=50223&categoryId=51051


올해는 음력 상 '애동지'라서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먹는다는 설명이 이 기사에 있다. [작은 설 ‘동지’, 올해는 팥시루떡 먹는 ‘애동지’래요] https://www.kidshankook.kr/news/articleView.html?idxno=9022

밤이 길면/할머니 옛날 옛적 이야기도 길지/호랑이 꼬리도 길지

밤이 길면/휘영청 달무리도 길지/떨어지는 별똥별 꼬리도 길지

동짓날 긴긴밤/소복소복 눈 내리는 밤/호호 불며 까먹는/군고구마 입김도 길지/내 하품 소리도 길지

*동지(12월 21일 또는 22일): 겨울이 가장 깊어졌다는 의미의 절기. 밤이 가장 긴 시기이다. 붉은 팥을 삶아 거른 팥물에 쌀을 넣고 동지팥죽을 끓여 먹는다. 새알심이라는 찹쌀 경단을 함께 넣어 끓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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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에 대한 발췌글의 출처는 '당신에게 이 꽃을 드립니다'(김지현). 라파엘로가 그린 아래 그림에 대한 해석을 이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84037

The Aldobrandini Madonna or The Garvagh Madonna, c.1509 - 1510 - Raphael - WikiArt.org

The Madonna of the Carnation, 1516 - Albrecht Durer - WikiArt.org


전설에 따르면 카네이션은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보고 슬픔의 눈물을 흘렸을 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성모 마리아의 눈물은 땅에 떨어져 아름다운 카네이션으로 피어났고 이는 성모 마리아의 영원한 사랑과 헌신을 상징합니다.

그리스에서 카네이션은 제우스 신과 관련이 있으며 사랑과 애정의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신을 기리기 위해 화환과 화환에 카네이션을 사용했으며 치유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카네이션이 사랑과 헌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으며, 기사와 숙녀들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충성심의 표시로 자주 착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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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with the Yarnwinder, c.1510 - Leonardo da Vinci - WikiArt.org


Study for Madonna with the Yarnwinder, c.1501 - Leonardo da Vinci - WikiArt.org 


'레오나르도 다빈치'(월터 아이작슨 지음, 신봉아 옮김) 중 '20. 다시 피렌체로'가 출처이다. 아래 발췌글에 나오는 다빈치가 그린 '베누아의 성모'는 여기를 참고하라. https://en.wikipedia.org/wiki/Benois_Madonna

Madonna of the Carnation, c.1515 - Bernardino Luini - WikiArt.org


[네이버 지식백과] 베르나르디노 루이니 [Bernardino Luini]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88983&cid=40942&categoryId=34395

The Virgin and Child with Saint John, c.1510 - Bernardino Luini - WikiArt.org


The Madonna of the Pinks (c. 1506 – 1507, Italian: La Madonna dei garofani) By Raphael - Public Domain, 위키미디어 커먼즈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556453&cid=46720&categoryId=46800 일명 '패랭이꽃의 성모' 또는 '카네이션의 성모' (라파엘로)


레오나르도가 1500년 3월 말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 그 도시는 르네상스 문화의 선봉에 서 있던 피렌체의 역할을 위협한 반동적인 발작에서 막 풀려난 상태였다.

쉰 살이 가까워질 무렵, 레오나르도는 다시 한 번 피렌체에 살게 되었다.

1500년 피렌체로 돌아온 후 레오나르도는 협업 기반의 작업실을 열었고, 특히 작은 종교화 같은 일부 그림들은 베로키오의 작업실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팀원들이 함께 그려나갔다.

「성모와 실패」에 담긴 감정적인 힘은 생각에 잠겨 십자가 모양의 실패를 응시하며 잡으려 하는 아기 예수의 복잡하고 강력한 심리에서 비롯된다.

예수의 촉촉한 눈동자는 작은 흰 점이 찍힌 채 반짝이고 그 안에도 내러티브가 담겨 있다. 이 아기는 이제 사물을 분간하고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시각과 촉각을 총동원해 온 힘을 다해 그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가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면서 자신의 운명을 예감함을 느낀다. 천진난만해 보이고 언뜻 장난기 넘치는 듯하지만, 그의 입술과 눈을 보면 체념하고 편안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우리의 시선이 반시계 방향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성모의 움직임과 감정을 통해 내러티브가 이어진다. 그녀의 얼굴과 손에는 불안감과 개입하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지만, 동시에 운명에 대한 이해와 수용도 담겨 있다.

프랑스 궁정으로 전달되어 수많은 복제화를 낳은 덕분에 「성모와 실패」는 레오나르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베르나르디노 루이니Bernardino Luini와 라파엘로Raphael 같은 레오나르도의 추종자들과 유럽 전역의 화가들은 성 모자를 주제로 한 고루한 종교화 장르를 한바탕 뒤집고 감정적 드라마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일례로, 라파엘로의 1507년 작 「패랭이꽃을 든 성모Madonna of the Pinks」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베누아의 성모’를 모방했으며 두 작품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우리는 레오나르도가 「성모와 실패」에서 보여준 감정적 움직임까지도 라파엘로가 자신의 작품에 담아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루이니의 「카네이션을 든 성모Madonna of the Carnation」와 「성 모자와 어린 성 요한Madonna with Child and Young Saint John」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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