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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딩의 여덟째 날
리루이 지음, 배도임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장마딩의 여덟째 날'을 상당히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건 나에게 있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인데, 나는 종교적인 색채가 들어갔다는 점에 대해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평을 먼저 내려두는 일이 더 잦기 때문이다. 모든 이를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종교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의 이해와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 너무나 예민해질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에, 그런 요소로 인해 작품 외적인 부분으로 주의가 옮아가는 일이 생길까봐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특정 종교에 대한 언급이 있으면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가, 비종교인의 이해가 어려운 면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꺼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얼마간은 실망스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했으나, 이 소설이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더 크고 넓은 곳에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중국발 소설들을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조금 접했는데, 한권 한권 새로 읽게 될수록 괜찮은 느낌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작년 초에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이란 책을 읽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분량이 상당했는데, 한 마을 안에서 대를 이어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놓은 책이라 재미는 있었지만 읽으며 지쳤던 것 같다. 그러다 최근에 실연 33일을 읽고 장마딩의 여덟째 날까지 연이어 읽게 됐는데, 독서 목록이 매우 빈약하지만 갈수록 좋은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의 흐름을 따른 시대의 변화가 개인의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체감되는지 인간의 맨얼굴을 드러내듯이 나타내었다. 새로운 문화와 기존 문화가 충돌하며 생기는 첨예한 갈등의 날섬, 서로 다른 종교에서 같은 근원을 찾아내는 통찰, 엄혹한 생의 고통에서 비롯된 치열하고 잔혹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 특히 사람의 삶을 좀 더 본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날것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조롱박이와 롄얼의 이야기가 순수한 아름다움을 처연히 남기고 끝난 것처럼, 남편의 아이를 갖기 위해 칼을 찬 남편의 곁으로 찾아든 장왕씨가 결국은 눈앞에서 붉은 피를 보게 된 것처럼, 진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오로진 진실 하나만을 품은 채 죽어야 했던 장마딩처럼.

 

각자 자신이 가진 베이스에서 이 소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여지를, 궁금함으로 남겨두는 책을 또 만나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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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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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is is not a lovesong, 이건 사랑 노래가 아니야...

  이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가, 추악한 외모를 가진 불우한 사나이 - '오페라의 유령' , 팬텀과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의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두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감정에서 사랑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남녀 간의 사랑으로 온전한 형태를 띈다기 보다 더 짙은 혹은 복잡한 여러 감정의 고리가 얽혀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고로, 이것은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사랑이야기가 아니게 되지요. 팬텀과 크리스틴, 오페라와 영화, 책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빛깔을 띄고 있을까요?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와, 복잡한 마음의 흐름을 음울하면서 섬뜩한 비밀을 지닌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펼쳐놓았습니다. 오페라 하우스를 둘러싼 괴소문의 진실에 대해 기꺼이 안내자가 되어준 이 책을 통해 그 안으로 한걸음 들어섰습니다.

 

#2. It must have been love, 그건 분명 사랑이었어...

  '오페라의 유령', 팬텀.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일까요? 크리스틴의 '음악의 천사'이자 오페라 하우스를 뒤흔드는 무서운 소문의 주인공인 그는 에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입니다. 팬텀을 떠올리면 사회가 만들어낸 희생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는 추한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여, 일찍이 집을 떠나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신을 먼저 경험하게 되고, 타인과 마음을 나누어보지 못한 채 유령처럼 생활하게 됩니다. 크리스틴과 음악적 교류를 통한 깊은 교감을 나누며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친 행동을 저지르거나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미숙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가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 얼마나 서투른지 와 닿는데요, 교류를 통해 성숙해지는 감정조절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주변인들로부터 배척당한 어린 시절 이후로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다재다능한 재능을 지닌 남성이라도 추한 외모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그로인해 제대로 된 사랑이나 마음씀씀이 한번 받아본 적 없는 사막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 사랑을 하는 법을 몰랐던 불우한 사람이었습니다. 크리스틴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광기어린 맹목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로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도 생겨났지요. 그가 보이는 격정적이고 강렬한 소유욕이 그의 감정을 사랑보다 혼탁한 빛깔의 것으로 집착의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크리스틴을 향한 마음은 집착과 욕망, 고통이 뒤섞인. 하지만 분명한 사랑이라는 감정이었습니다.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갈 길을 잃어버린 외사랑 이었습니다.

  그런 에릭의 모습을 보면, 두 가지 사회 현상이 떠오릅니다. 외모의 좋고 나쁨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외모지상주의와 어린 시절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감정적인 학대를 받아온 아이가 어떻게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립시켜 나가는가에 대한 문제이지요.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이야기에서 바로 지금 이 시점까지도 점점 더 부피를 키워온 고질적인 문제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또한 흥미롭습니다. 물론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들지요. 바로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크리스틴으로 하여금 그를 동정하도록 만든 요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독자들 역시 우리의 가련한 주인공의 심정에 공감하고, 그의 이야기를 이토록 많이 오래도록 사랑하게 되었겠지요.

 

#3. too good to be true, 당신은 믿어지지 않은 정도로 좋은 사람...

  크리스틴은 팬텀을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보내준 '음악의 천사'로 여깁니다. 모두가 그녀의 이야기를 허무맹랑한 것으로 여긴다 할지라도 그녀는 그에 대한 믿음이 강했습니다. 무대의 중심에 서지 못한 무명의 프리마돈나인 그녀를 빛나는 조명 아래로 이끈 사람, 그녀에게 가슴으로 전달되는 음악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전달해주기 위해 그 어떤 행동도 서슴지 않는 조력자. 모두에게 냉혹하고 잔인한 사람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그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준다면, 흔들리지 않은 여자의 마음이 있을까요? 팬텀이 그녀에게만은 좋은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하지요. 하지만 팬텀은 그녀에게 좋은 사람, 그 이상의 존재는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는 엇갈리고 실패된 사랑을 따라 절정으로 치닫게 됩니다.

  가면에 가려진 팬텀의 추한 외모를 보고 놀란 크리스틴은 그를 두려워하는 한편으로 동정하기에 이릅니다. 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랑을 갈구하며 언젠가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 믿는 순수함을 보게 되지요. 그리고 그 순수함 안에 숨겨진 잔혹함까지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팬텀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사랑 역시 팬텀 자신의 사랑에 방해가 된다면 제거해야 할 대상 위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녀에게 라울의 목숨을 담보로 사랑을 갈구하는 팬텀, 결국 크리스틴은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팬텀의 요구대로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기에 이릅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그녀의 결정에 팬텀은 감동과 절망을 느끼며 라울을 풀어주고 그들 앞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녀 앞에서, 사랑 앞에서 그는 좋은 사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비탄 속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순수한 사랑의 그림자를, 사랑을 모르는 채 살았던 팬텀에게서 느끼게 되는 대목이자, 가장 처연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희극보다 비극이 더 강렬한 빛을 남기며 우리의 가슴에 그 존재를 각인하고야 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 삶에 있어 고통은 그 발자취를 너무도 진하게 남기기 때문에 누군가 그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자욱의 발견이 소중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time to say goodbye, 막이 내리고...

  모두의 영혼을 사로잡을 정도로 강렬했던 오페라는 끝이 나고 무대의 막이 내려갑니다. 우리는 책의 마지막 장에 다다랐습니다. 책을 다 읽기 전 마치 커튼콜을 하듯 읽는 동안 책장 안에서 열심히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준 인물들을 되새깁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난 기분이 듭니다. 책을 통한 환상적이면서 고풍스러웠던 파리 오페라 하우스로의 여행, 멋진 일이지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음미하듯 한 글자 한 글자 다시 새겨 읽게 되어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밤, 깊은 어둠 아래 이제는 쓸쓸한 흔적이 되어버린 이야기의 불을 밝혀보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을 인도해줄 음악의 천사가 당도했습니다. 그를 따라 이야기의 지하 세계로 떠나는 것도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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