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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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대학 때는 가능하던 그런 관계가 서른이 가까워지면서는 쉽지 않았다. 패턴이라는 것은 관계의 피로를 만들어냈고 여기다 일종의 '사는 문제'가 겹치면서 셋은 전처럼 섞여 들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 만나면 즐거운 식사를 했고 마음을 터놓고 대화했지만 문득문득 서로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29) "

 

 김금희의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를 읽기로 한 건, 인터넷에서 몇번이고 마주쳤던 '희소한 영자매'에 대한 영업글 때문이었다. 제목이 '규까스를 먹을래'라는 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지만, 읽는 동안 역시나 달콤쌉싸름했다.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친구와는 여행가면 안된다는 것이 불문율처럼 도시괴담처럼 퍼져나갔다. 십여년 전만해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 아무런 수식어도 없었는데, 최근들어 인간관계 파탄나는데는 친구와의 여행 특히 해외여행만한 것이 없다는 말들이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규까스를 먹을래'에 나오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켜켜이 쌓여간 오래된 친구관계가 시간이 흐르면서 왜 더 단단해지기는 커녕 위태로워지는 일이 생기는지 곱씹어보았다. 조건이나 현실같은 것을 모르고 만나 놀 수 있던 어린시절이면 몰라도, 서로 사이에 다른 부분이 나도 모르게 눈에 띄고야마는 어른이 되고나니 나도 모르게 상처주고 상처받는 일들이 불가피하게 생기는걸까. 격없이 친해졌지만 친밀함을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격을 맞춰 서로를 대하는 것이 더 요령있는 연령이 된 것 같아, 남에게 잘해야지 상처주지 말아야지 자꾸만 생각한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것이 '규까스를 먹을래' 였지만 다른 단편들도 꽤 괜찮았다. 아주 일상적이고 그래서 소설처럼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어제와 오늘의 풍경들이 잠깐 종이 위에 올려간 듯한 느낌을 준다. " 나 누군지 알지? (54)" 같은 말을 하는 기업 간부급 인물이나 이른 새벽의 노점상들, 회사사람들을 피하고 싶은 점심시간, 출근전에 짬을 내서 어학원을 다니는 직장인들의 일상은 나에게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언젠가 봤었던 듯한 풍경들을 찬찬히 읽어내면서 나도 스쳐지나보냈던 그것들에 대해 잠깐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나와보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장면들이 곳곳에 심어져있었다. 술자리에 붙은 뒷말과 시비나 집안일을 직접하게 되면서 그릇을 따로 잘 쓰지 않게 되는 습관, 대학에서 만나게 되는 알 수 없는 인연들. 얼마 전에 위내시경을 했던 탓인지 '온난한 하루'도 묘한 느낌으로 읽었다. '미국식 홈비디오'는 인기있었던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를 글로 옮겨놓은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단편을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을지 궁금해졌다. 자기 안에 쌓인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른 부분들에 눈길이 머물겠지.

 

 영업을 통해 굳이 읽어보게 된 책인데, 짧은 시간을 소소히 보내기에 좋은 책이었다. 언제든 부담없이 단편 하나쯤 읽을 시간을 들일 수 있을만한 분량이라 좋았다. 누구든 아무렇지 않지만 어쩐지 오랫동안 생각하게 되는 이상한 날이, 도드라진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묘한 느낌을 잘 담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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