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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츠먼의 변호인 ㅣ 묘보설림 17
탕푸루이 지음, 강초아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6월
평점 :

외국의 역사를 배우다 보면 이주민이 원주민(선주민)을 차별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본다.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이 그렇고, 중국 대륙에서 한족이 넘어와 인구의 다수를 점유하고 있는 대만(타이완)에서도 그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탕푸루이의 소설 <바츠먼의 변호인>은 대만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알려져 있는 원주민 차별 문제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퉁바오쥐는 대만의 원주민 중에서도 가장 인구가 많은(20만 명) 아미족 출신이다. 퉁바오쥐의 아버지를 비롯해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인 '바츠먼' 출신 사람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면서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산다. 살인미수를 저질러 감옥 신세를 지게 된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가엾게 여긴 퉁바오쥐는 열심히 공부해서 바츠먼 출신으로는 드물게 명문대에 진학하고 국선변호인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다. 그렇게 보낸 세월이 어느덧 20년. 퉁바오쥐는 비록 한족 출신 판검사나 변호사들만큼 성공한 건 아니지만, 고향에서 어부로 일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자신은 잘 살아 왔다고 자부한다.
그런 퉁바오쥐에게 어느 날 사건 하나가 배정된다. 인도네시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압둘아들이 대만인 선장 일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다. 변호인 측은 범행 당시 압둘아들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사 측이 이를 감안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1심의 판사는 압둘아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비협조적인 태도로 수사에 응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구형했다. 퉁바오쥐는 대체복무요원으로 국선변호실에 와 있는 예비판사 롄진핑을 파트너로 삼고 인도네시아 출신 간병인 리나를 통역사로 고용해 사건 해결에 임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인공 퉁바오쥐의 캐릭터이다. 퉁바오쥐는 흔히 법정 소설의 주인공 하면 떠올리는 정의롭고 성실한 법조인 캐릭터와 거리가 멀다. 일보다는 놀기를 좋아하고, 돈 욕심도 많고,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음담패설도 많이 한다.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 아버지를 원수 보듯 하고, 가난하고 학력이 낮은 고향 사람들 무시도 숱하게 한다. 이는 퉁바오쥐가 살아온 이력과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세계와 관련이 깊다.
퉁바오쥐는 아버지처럼 힘든 노동을 하다가 살인미수로 감옥에 가는 신세를 면하려면 어떻게든 바츠먼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 명문대에 진학했고 국선변호인이라는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운이나 원주민 가산점 제도 같은 특혜가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동네 친구들 중에 자신처럼 성공한 사람은 없다는 이유를 들며 반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고 대만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선박 회사로부터 어떤 가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게 되면서, 퉁바오쥐는 자신의 아버지도 과거에 비슷한 환경에서 일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고, 만약 아버지가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품고 그것이 비록 사회가 범죄로 규정하는 일일지라도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저항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퉁바오쥐 자신이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들어 공부에 매진하는 일도 없어서 현재와 같은 삶을 살지는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퉁바오쥐가 국선변호인이라는 사회적 위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불성실하고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언행이나 행동을 하는 것은 그가 속한 법조계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롄진핑의 아버지 롄정이다. 현직 판사인 롄정이는 사회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이지만, 그가 외아들 롄진핑을 출세시키기 위해 저지르는 짓들을 보면 이기적인 속물 그 자체다. 자신의 권력 또는 영향력을 이용해 아들의 보직이나 혼사를 좌지우지하는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전개였는데, 기독교 신자 모임이라는 명목으로 법조인들끼리 서로 뒤를 봐주는 이너 서클을 만들어 운영한다든지,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조항을 법관들끼리 이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낸다든지 하는 디테일한 묘사가 놀라웠다.
결말도 좋았다. 사실 이런 법정 소설은 주인공이 원하던 목표를 이루는 것으로 끝이 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주인공 퉁바오쥐가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인물이라서 그런지 그가 원하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에서의 퉁바오쥐의 모습을 보고 그가 불행해졌다고,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실패한 건 퉁바오쥐 같은 인재를 주류로부터 놓친, 원주민, 이민자 같은 소수자, 약자를 통합하지 못한 대만 사회가 아닌가. 이는 비단 대만의 문제만은 아니고 한국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도 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