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같이 읽자는 고백 - 십만 권의 책과 한 통의 마음
김소영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평점 :

하루 종일 보기 싫은 사람들을 보고 듣기 싫은 말들을 억지로 듣다가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누워 책을 펼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책 속에는 나에게 기쁨과 즐거움, 지혜와 감동을 주는 세계가 분명히 있으니까. 나를 괴롭히고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들은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과 이 책을 쓴 사람들의 이름은 오랫동안 살아 남을 테니까. 그런 나에게 책은 사탕보다 달콤하고 탄산수보다 청량한, 몸과 마음을 살리는 약이자 복(福). 자신이 먼저 읽고 좋았던 책을 '같이 읽자'고 말해주는 사람은 귀인이고 천사다.
MBC 아나운서를 거쳐 현재는 큐레이션 서점 책발전소를 운영 중인 김소영이 엮은 책 <같이 읽자는 고백>은 그래서 더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 그는 2020년 종이책 구독 서비스 '책발전소북클럽'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매달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한 권 고르고, 책과 함께 그 책을 고른 이유를 적은 편지를 함께 담아 보냈다. 그러다 좀 더 다양한 취향과 선호를 반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회 각계각층의 명사들에게 책을 추천 받는 '이달의 큐레이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책은 그동안 이달의 큐레이터로 참여한 37명의 명사들이 직접 쓴 책 편지를 엮은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의 37인 필진 인세 전액은 문화나눔의 통로 재단법인 진선재단을 통해 가출 청소년 쉼터와 보육원, 병원에 청소년을 위한 도서를 기부하는 데 쓰인다.)
그동안 책발전소 북클럽을 꾸준히 구독하며 명사들의 추천 도서를 따라 읽었다면 내 삶이 더욱 풍성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명사들의 면면과 추천한 책들의 목록이 알차고 화려하다. 소설가 김연수, 문학평론가 신형철, 편집자 박혜진, 시인 박참새 등 문학계 인사들뿐 아니라 음악인 이석원, 영화감독 윤가은, 기업가 한명수,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마케터 이승희 등 책을 사랑하는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추천한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소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나 음악인 장기하가 추천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처럼, 이미 읽었지만 명사의 책 편지를 읽고 다시 읽고 싶어진 책도 여럿이다. 김혼비, 이다혜, 김신지, 황선우, 강윤정, 김하나 등 평소에 내가 책을 고를 때 적극적으로 참고하는 분들의 글도 실려 있어 반가웠다.
추천하는 책의 내용뿐 아니라 명사 자신에게 책이라는 존재와 독서라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한 대목들도 인상적이었다. 소설가 최은영은 하재영 작가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소개하며 이런 문장을 썼다. "인간은 애초에 이기적인 존재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타자와 자신을 구별 짓고 분리시켜 자신을 보존하는 것은 본능에 속한다고요. 그런 인간이 누군가의 괴로움에 마음이 아프고 타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때, 인간은 '자기'의 범위를 그만큼 넓힌 것이라고 합니다. (중략) 강아지들의 고통을 두 눈 뜨고는 바라볼 수 없는 사람들은 자아에 중독된 세태에서 벗어난 '넓은 자기'의 개념으로 사랑하는 존재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저의 좁디좁은 마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205쪽) 좁은 자기에서 벗어나 넓은 자기로 확장하는 행위가 바로 독서 아닐까.
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이연실은 이런 문장을 썼다. "수많은 훌륭하고 아름다운 책들이 수없이 나와서, 계속 당신에게 다가가려 노력하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아주 가끔 몇 권의 책들만이 당신에게 가닿는 데 성공합니다. 책 읽는 독자에게 제가 꿈꾸는 책을 직접 골라 당신의 서재에 직통으로 보낼 수 있는 이 꿈같은 기회 앞에서 저는 행복했습니다."(296쪽)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 단 한 권을 만나는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만, 편집자 강윤정이 쓴 문장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행위만으로 이렇듯 공통의 기억이 생긴다는" 것 역시 경탄할 일이다. 그런 놀라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책발전소북클럽의 궤적이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