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러닝, 세계 0.1%가 지식을 얻는 비밀 - 짧은 시간에 가장 완벽한 지식을 얻는 9단계 초학습법
스콧 영 지음, 이한이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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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울트라러닝(세계 0.1%가 지식을 얻는 비밀)


지은이: 스콧 영 / 옮김이: 이한이


제목: 자기 계발, 결국 독해야 성공하는 것인가? 


 
 
 


스승없이,홀로 깨칠수 있는가?

독각(獨覺)이 존재하긴 한다 해도, 깨침은 혼자만의 경험의 영역이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전 까지는 이끌어 줄 스승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 독학(獨學)은 어떠 한가?

 


 
<울트라러닝>은 독학에 관한 단연 손꼽히는 안내서라고 들었다.

이 책 <울트라러닝>에 대해서는 이미 유튜브에서 호평이 자자했다.

지금도 찾아보면 기적의 학습법, 초학습법, 상위 0.1% 학습법 등의 썸네일을 내세우고 있다.

나 역시도 유튜브에서 박문호 박사의 추천을 본 후 이 책을 주문하여 읽게 되었다.

 


 
'울트라러닝' 은 저자 '스콧 영' 이 MIT 대학을 다니지 않고 4년 짜리 전공 수업을 1년만에 독학으로 이수했던 방식을 구체적으로 체계화 시킨것 이다.

저자는 대학 수업뿐만 아니라 4개 국어를 1년만에 마스터 하기, 다빈치급 그림 그리기 같은 프로젝트를 실제 자신의 배움에 적용함으로써 울트라 러닝 학습법을 완성 시켰다.

이외에도 책에는 성공 시킨 프로젝트들의 경탄할 만큼 성과들이 많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니 '이 책은 나에게 맞나?' 하고 다시 되 물어 보면 이 책을 소개한 많은 유튜버들 처럼 자신있게 최고의 학습법이란 소리는 못할 것 같다.

솔직히 이 책을 톺아 가며 읽어 봤지만 내가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점이 든다.

저자의 자신감과 성공에 대한 확신이 나에게 까지 전파가 되진 않을것 같다.

 
 


우선 저자의 학습에 대한 노하우는 생각보다 대단히 특별한 노하우는 없었다. 

저자가 소개한 9가지 법칙 (메타 학습, 집중하기, 직접하기, 특화 학습, 인출, 피드백, 유지, 직관, 실험) 으로 이어지는 각 단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개념들은 없어 보인다.

굳이 '법칙' 이라고 이름을 붙힌것도 일반 자기계발서에 매번 등장하는 용어라 저자 또는 출판사 편집자가 의도적으로 뭔가 좀 있어 보이게 만든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첫번째 법칙, '메타 학습법' 하면 뭔가 그럴듯해 보인다.

메타는 '그 너머' 라는 그리스어에서 따온것 이라는데 어떤 프로젝트를 이루고자 할 때 '초월해서 행하는 학습법' 이라고 소개를 한다.

이걸 '메타 지도 그리기' 라 이름을 지었는데 이건 사실은 '계획 세우기' 를 뜻한다.

책에서는 학습을 위한 학습이라는 점에서 '사전 계획을 세울때 좀더 심사숙고 하라'는 의미로 쓰였다.

'메타' 란 말이 들어가니 순간에 계획 세우기가  '평범' 에서 '비법' 으로 바뀌어 버린다.

 
 


더구나 책 제목 자체도 '울트라 (ULTRA)' 가 들어가니 전체적으로 거창해 보인다.

이게 요즘 책 제목에 '초(超)' 자를 많이 붙이는 것 처럼, 일반 평범한 것으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추세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 책에서 언급된 법칙들은 사실은 다른 자기 계발서에도 다 나오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박문호 박사가 유튜브에서 소개한 '인출' 개념은 눈여겨 볼 만하다. 

책에는 반복해서 학습하는 실험군과 백지에다 자신이 학습한것을 기억으로 인출, 즉 끄집어 내는 실험군의 학습 결과를 비교한 실험에 대해 설명한다.

 


결과적으로 학습 효과는 인출하는 실험군이 훨씬 좋다는 근거를 대고 있다.


인출은 학습한 기억을 의식적으로 끄집어 내는 과정을 중요시 한다.

뭔가 억지로 하는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안되는걸 되게 하려면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그게 육체적인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래서 유튜브 채널에서 박문호 박사가 기억은 감정과 연결 된다고 한 부분이 이해가 된다.

 
 


어쨓든 이 책에 나오는 법칙이란 이름으로 규정한 9가지 단계들은 어떻게 다시 재배치하고 조합 하느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즉 평범해 보이는 법칙들을 이용하여 새롭게 조합, 편집해서 나에게 맞출것 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결국 나에게 맞게 재구성하는것이 평범을 비법으로 만드는 비결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 하고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독학을 하려면 독(毒)해야 한다' 고 생각이 든다.

 
 


사실 시간적으로 4년 짜리 대학 교육을 1년만에 이수할 정도라면 얼마나 독하게 해야 하겠는가? 

단기간에 성공 시키려면 집중력이 받쳐 주지 않으면 할 수 없는거다.

저자는 시간 단축을 위해 효율을 강조했고 이 부분이 모든 학습법에서 가장 핵심일 것이다.

결국 효율이라는것은 선택과 집중을 잘 해야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독해야  무엇이든 성공할 수 있다. 至毒:지독(독함에 이르다)


저자의 성공은 법칙을 잘 지켜서 이루어진게 아니라 지독해져서 된 것이 아닐까?

 


물론 저자 또한 계획 했던 모든 프로젝트를 전부 다 성공한것은 아니라고 한다. 

4개 국어(스페인어, 브라질어, 중국어, 한국어) 마스터 하기에서 앞에 두 언어는 어느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어 는 그저 그런대로, 한국어는 참 어려웠다고 실토를 한다.

3개월만에 한 가지 언어를 마스터 할 수 있다는 발상은 대견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한 것은 불가능 한것이다.

설마 이 책을 읽었다고 단번에 뭔가를 이루어 낸다는걸 순진하게 믿는건 아니겠지?

 
 


우리는 남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받는다.

그래서 그들이 제시 하는 소위 법칙이나 비법 같은 방법에 매료 되기도 한다.

그런데 반면에 의심과 부정의 감정도 함께 존재한다.

 


누군가는 내게 '시중에 나오는 모든 자기 계발서는 작가가 지 잘났다는 얘기가 처음부터 끝 까지야. 그래서 안 읽어 ' 라고 했던 적이 있다. 

맞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계발서는 작가 자신의 미화된 자랑으로 밖에 안보인다.

그러니 어쩌면 이런류의 책에서 나오는 성공담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책을 읽고 생각하고 자기자신을 계발 하는 일에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더 늦기 전에 무언가 원하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분명 마음을 설레게 하는 일이다.

결국 마음먹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는것. 그게 가장 중요한것 아닐까?

타인의 지시나 권유, 억지로 하는게 아닌 내 스스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배움이라면 해볼만 하지 않을까?

 
 


결국 울트라 러닝에 나오는 9단계 중 한단계 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는게 아닌가 싶다.

 
 


나는 9단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첫단계 '메타 지도그리기' 라도 제대로 그려봐야 겠다.

그래서 난 이걸 '배드민턴 승급하기'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구력 5년차 배드민턴 경력이지만 아직도 실력이 정말로 늘질 않는다.

수많은 좌절과 실망을 안겨준 운동지만 그래도 포기할 순 없다.

 


 
그래, 포기 하지 않는것도 독한 마음의 일종이다.

그러니 갈때 까지 가보자. 울트라 러닝이다.

LEARING 이
RUNNING 이 되고 다시 또
JUMPING 으로 될 때 까지.

 





 
 
 



울트라러너들은 극단적이고 자발적인 학습 프로젝트를 추구했다는 공통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 P51

울트라러닝에 틀이나 규범이 있다면 아마도 강도가 높고 구조화된 형태의 교육이라는 점일 것이다. - P85

자신감과 능력이 울트라러닝의 궁극적인 목표다. - P112

직접하기를 가장 쉽게 하는 방법은 그저 잘하고 싶은 그 일을 행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 P141

사물을 분명히 설명하고 바보 같은 질문들을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속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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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럴 링크 - 21세기를 이끄는 거대한 연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임창환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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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뉴럴 링크

지은이: 임창환 지음

제목:  일론 머스크의 두마리 토끼 잡기에 대해서

 

 

내가 초딩때 접한 영화 <터미네이터> 는 상당한 충격을 남겼다.

영화는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에서 온 기계 인간 터미네이터가 영화속 주인공들을 암살하기 위해 과거로 간다는 설정을 가졌었다.

특히 터미네이터가 주인공들의 저항에 몸이 박살이 났어도 기계의 골격을 이루는 해골 같은 몸체로 기어 가면서 까지 주인공을 쫓는 장면은 당시 어렸던 나에게는 충격적 이었다.

이때 부터 인공 지능 이란 이미지는 내게는 막연한 두려운 인상을 남긴것 같다.

그런데 미래의 인공 지능에 대한 이런 두려움은 나만 느낀게 아닌것 같다.

 

 

 

일본 SF만화에 나오는 미래 세계는 인간과 기계의 대립 또는 융합의 소재를 가지고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그려내는게 많다.

특히 인간의 뇌에 기계를 연결 시키는 소재는 많은 작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탄생 되었다.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살아 왔는데 알고 보니 자신은 인간의 복제품이라던가 혹은 기계 인간, 로봇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소재는 계속 변주 되어 졌다.

특히 <공각 기공대> 같은 유형의 작품은 기계가 인간의 영혼을 가질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그보다 훨씬 전에 나온 데스카 오사무의 <아톰> 에서는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사회를 그려 냈지만 항상 인간은 로봇을 지배하려 했고 그를 거부하는 로봇과의 갈등이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인공 지능은 대체 왜 그렇게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일까?

인공 지능이 곧 인간을 대체 하거나 인간을 지배하리라는 무의식이 깔리게 된 배경에는 알수  없는 것에 대해서 불안시 하는 인간 본능의 감정이 있을 수도 있겠다.

 

이 책의 제목인 <뉴럴 링크(NEURAL LINK )>는 일론 머스크가 만든 스타트업 회사라고 한다.

일론 머스크가 지금 우리 인류의 지능을 넘어서는 단계까지 온 인공지능과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라고 한다.

뉴럴 링크의 주요 연구는 인간의 뇌에 마이크로 칩을 이식하는 것이다.

이식된 칩은 인간의 뇌의 기능을 증강 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란다.

인지 능력 기능이 비약적으로 높아져 컴퓨터에서 업로드를 하는 것 처럼 한순간에 정보나 기술을 업로딩 저장하고 바로 적용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 에서 그런 장면들이 나온다.

키아누 리브스가 맡은 네오는 컴퓨터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배우지도 않았던 무술이나 헬기 조정 같은것은 쉽게 해낸다.

이건 영화속의 한 장면 이었지만 상상속에 존재하는 기술이 이제 곧 현실화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을 우리 세대는 목격하고 있다.

2016,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 

그 당시 이세돌이라는 천재 기사가 한낱 기계에 불과한 알파고에게 지게 될 줄은 대부분의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1 4패라는 처참한 기록을 갖게 되는 일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내가 볼 때 그 시기 이후부터 우리가 본격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된게 아닌가 싶다.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 인공 지능과 인간 사이의 전쟁이 어쩌면 현실화가 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인간이 참 아이러니 한게 두려우면 안하면 되는데 그렇질 못하는데 있다.

공포 영화를 보면 꼭 하지 말라고 하면 안하면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 피해자들은 꼭 보면 말을 안듣다가 킬을 당하고야 만다.

 

공포 영화라서 그런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심리가 그런것 같다.

하지 말라고 하면 또 하고 싶은 그런 심리 말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뛰어 넘게 되는게 두렵다면 개발하지 않으면 되는데 말이다.

 

 

 

일론머스크는 미래를 생각해서 인류가 인공지능과 대항하기 위한 준비로 뉴럴 링크를 설립했다는데 또 한편으로는 인공지능 연구소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2023년 발표한 챗GPT.

이때 생성형 AI 라고 불리는 챗 GPT는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기계가 아닌 인간과 같은 사고 방식으로 대답을 하는 놀라운 성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충격을 안겨주었다.

GPT는 일론 머스크와 마이크로 소프트가 투자한 인공지능 연구소 <오픈AI>  가 만든 대화형 인공 지능이다.

일론 머스크는 각기 다르게 뛰는 두마리 토끼를 쫓는 셈이다.

모순되어 보이는 두려움과 설레임이라는 감정을 공존 시키고 있는것 인가?

 

 

 

책의 저자 임창환님은 한양대학교 뇌공학 교수이다.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뇌공학 부분에서 전문가라 칭 할수 있는분 같다.

책은 전반적으로 인공지능의 개략적 시대별 연구와 현재 진행중인 연구에 대한 소개가 주를 이루고 있다.

비전문가라도 충분히 일독을 할 만한 내용들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몇가지 상념들이 떠오른다.

첫번째는 지금 이 시대에 미래를 예측 하려는 전문가는 수없이 많다.

그런데 전문가가 예측을 잘 맞추는지의 적중성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이 책을 쓴 저자 조차 2015년 경에 향후 15년간의 뇌 컴퓨터 인터페이스 미래에 대한 발전 여부를 묻는 질문에 '0' 퍼세트 라고 답한적이 있다고 밝힌다.

불과 10년전 이고 또한 자신이 그 분야 전문가 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차도 자신의 전문 분야가 어떻게 될 지 전혀 알 수 없었다는 뜻 이다.

 

 

누군가 그랬었다.

우리 주위에 소위 전문가라는 집단이 많다고 해도 그들 대부분의 예측 능력은 비 전문가인 우리 보통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하기야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시험을 쳐도 침팬치가 그냥 찍은 시험 성적보다 더 낮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적이 있다.

그러니 전문가의 말 이라고 무조건 다 신뢰하지 말라고 한다.

 

 

저자는 인공 지능의 발전에 따라 4가지 시나리오가 예상 된다고 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 이 책을 읽는다고 해도 인공 지능에 대한 미래 예측에 대한 도움은 될 수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두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뇌 라는 기관이 정말로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단순히 보면 1.4킬로 그램의 회백색 단백질 덩어리인 뇌.

뇌는 인간의 몸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인간의 뼈중 가장 단단한 두개골안에 쌓여 있다.

뇌는 머리에 붙어 있어 가장 중요해 보이긴 하다.

 

 

현대에 와서 뇌의 많은 부위는 서로 다른 영역에 따라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고 많은 과학자들이 하나하나 임상 실험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 가진 뇌의 신비를 점점 밝혀내고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부분의 영역인것은 확실 하다.

 

 

그런데, 우리가 동양의학이라고 일컫는 한의학에서는 왜 뇌를 연구하지 않았었을까?

한의학에서는 오장육부를 중요시 한다.

오장육부(,심장,비장,, 신장인 오장, 대장, 소장,쓸개, , 삼초, 방광 등 육부)가 경락과 경혈로 연결 되어 있다는게 핵심이다.

그런데 여기엔 뇌는 없다.

2천년 전통이 넘는 동양의학에선 뇌를 중요시 여기지 않았을까?

뇌는 왜 현대 서양 의학에서만 그토록 중시 하는 기관이 된 것일까?

과연 중요한 기관이 맞는 것일까?

 

 

 

셋째는 우리 인간의 마음은 인공 지능이 발전한다 해도 대체 할 수 있는 영역일까?

단순히 뇌와 컴퓨터의 인터페이스에만 촛점을 맞추었지만 물질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역인 마음은 이들 관계속에서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 것일까?

뇌와 마음은 같은 것인가? 마음과 육체는 분리 할 수 있는 것인가?

인공지능은 마음을 대체 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상념이 계속해서 머리속에서 떠 다닌다.

 

 

 

뇌 과학과 공학의 발전, 그리고 둘의 융합과 대립, 인공 지능과의 관계는 과학적 흥미를 떠나 여러가지 분야에서 흥미로운 주제 임에는 틀림없다.

거기다가 미래 예측까지 하게 되면 근사한 소설이나 영화 작품을 얼마든지 재 생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공 지능이 재앙이 될 지 미래 생활의 동력이 될 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어릴때 은하철도 999란 만화가 티비에 방영된 적이 있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면~ 으로 시작 되는 주제가 )

 

 

은하 철도를 타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주인공 철이와 메텔이 우주의 행성을 돌며 겪는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이란 다름아닌 인간의 육체를 기계화 하는 것이었다.

이 만화에서도 인공 지능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었고 부자인 인간들만 신체를 기계로 바꿔 기계 인간화가 되어 오래 도록 살도록 되어 있었다.

결국 철이는 마지막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시점에서 자신은 기계화가 되길 거부해 버린다.

 

 

 

나는 철이 처럼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인공 지능이 아무리 발전을 한다 해도 인간의 마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그 스스로 체험을 통해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탄생과 죽음의 경험은 살아있는 생명체만 할 수 있는 것이니...

만일 인간 스스로가 멸망을 초래하게 되어 인간이 다시 석기 시대로 회귀 한다고 해도 그래서 다시 또 문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해도 인간은 스스로가 깨닫기 위해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뇌와 컴퓨터 그리고 인터페이스. 그것만이 인간이 진정 미래의 인공 지능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인가?

일론 머스크가 전체 인류를 대표하는 것은 아닐진데 우리는 그의 생각과 행동에 너무 휘달리는 것은 아닐까?

 

 

2500년전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했다던 기우(杞憂) 이길 바랄 뿐이어야만 할 까? 

 

 

 

그의 두마리 토끼 잡기를 통해 나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 까?

 

초지능 기술의 구현을 통해 개인의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고 고령자의 은퇴 시기가 늦추어지면 산업 전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 P257

정신적으로 강화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시민들 사이에서 능력의 격차가 발생 할 수밖에 없다.<중략>

뇌공학 기술과 가상 현실 기술이 접목되어 현실감을 극대화한 ‘완전 몰입형 가상현실 서비스‘가 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 P258

인간의 능력이 타고난 지적 능력이나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뇌에 삽입한 전자 두뇌의 성공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다. -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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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 고익진 교수님이 들려주는
고익진 지음 / 광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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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고익진 교수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

지은이: 고익진/ 광륵사

제목:  대장경의 미로속에서 만난 안내서

 

 

앞으로 누군가에게 불교에 관한 쉬운 책을 추천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책 <고익진 교수님이 들려주는 불교 이야기>을 꼽게 될 것 같다.

지금 까지 읽었던 불교 서적중 불교 기본 법문에 대해서 가장 쉽게 정리가 된 책이다.

 

 

우선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점 2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병고(丙古) 고익진 교수님에 대해서 알게 된 것과, 두번째는 <아함경(阿含經)>에 대해서도 알게 된 점이다.

고익진 교수님은70~80년대에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를 가르치신 교수님이시다.

원래 그는 불교 전공자가 아니였고 의학을 공부하다가 이유를 알수 없는 병을 얻게 되어 병원에 5년간 누워 있게 되었다.

어느날 갑자기 병에 걸려 죽을수도 있는 운명 앞에 그는 자연스레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뒤 우연히 접하게 된 반야심경 의<是故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 味觸法 (시고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구절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되는데...

 

 

 

 

 

우리는 분명히 몸을 가지고 살고 있고 또 몸안에는 눈,,, 입이 다 있지 않는가?

어찌하여 반야심경은 '무안이비설신의'  즉 눈,,,, ,뜻이 다 없다고 하는지?

당시에 그는 '무안(無眼): 눈이 없다' 는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고 한다.

그것이 화두가 되어 3년을 참구하다가 결국 불교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때가 31, 동국대학 불교학과로 다시 입학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고교수님이 불광사에서 하신 아함경에 관한 강연을 책으로 편찬한것이다.

대학에서 불교를 전공하는 학생이 아닌 일반 불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이니 만큼 비교적 쉽게 설명이 되어 있다.

 

불교의 경전은 팔만사천법문이라고 전해지는 만큼 무수히 많은 법문이 존재한다.

일생에 걸쳐 다 볼수도 없고 배울수도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 에서도 핵심은 존재한다. 

이 강의에서는 불교의 가장 핵심되는 6가지 법문에 대한 소개를 눈여겨 볼만하다.

'십업설 법문, 육육법설 법문, 오온 사제설 법문, 십이연기설 법문, 반야바라밀다설 법문, 일불승설 법문' 까지 6개 법문 이다.

그중 앞의 4가지 법문은 이 책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아함경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뒤의 '반야바라밀다설 법문'은 반야경에, '일불승설 법문' 은 법화경에  속한다.

 

 

 

책에서는 아함경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소개가 나온다.

솔직히 우리나라 조계종 불교 신자들에게 아함경은 비교적 생소하다.

조계종에서 일반적으로 예불시(禮佛) 에는 반야심경, 천수경을 외운다.

신자들이 사경(寫經) 을 한다고 하면 금강경을, 참선을 공부한다고 하면 육조단경이나 선어록을 보게된다.

그외에도 그 유명한 유마경, 화엄경, 법화경 등을 따로 공부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이 경전들은 전부 대승불교 경전들이다.

즉 우리나라 불교는 대승불교, 북방불교 라고 학창시절에서 부터 배워 왔다.

그러나 아함경은 초기 불교, 즉 부처님 당시에 전해진 설법을 중심으로 만든 경으로 초기 경전으로 분류를 한다.

 

이러한 정리를 책에서는 각 법문의 핵심 내용을 군더더기 없이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책이 대장경의 미로속에서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얼마전에 유튜브 통해 봤던 숏츠의 한장면이 있다.

D.J가 된 스님 한분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고 소리를 치며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 를 외친다.)

스님의 법명은 뉴진스님. (순간 뉴진스라는 아이돌 그룹이 떠올랐다.)

뭔가 이상하다. 다시 알아보니 어느 한 개그맨이 스님으로 분장한것 이었다.

그러나 법명은 조계종에서 정식으로 받았다고 한다.

(NEW) ( 나아갈 진) , '새롭게 나아간다' 는 뜻이 담겨 있다.

불교의 '정진' '수행' 을 뜻한다.

앞으로 불교의 미래는 이러한 시도가 많이 늘어 갈 것 같다.

단순히 개그의 소재를 넘어선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시기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진짜로 스님의 법명처럼 새롭게 나아가는 정진이 불교의 미래가 되지 않을까?

 

 

 

진리는 불변하는 것이지만 진리를 전하는 형식은 고정되지 않았다.

마치 물의 고유한 성질은 변하지 않지만 담는 그릇이 바뀜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듯이 진리를 전하는 방식도 그런게 아닐까 싶다.

 

 

 

 

부처님께서 전한 8 4천 법문 그 모두가 한가지 사실을 중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한 방편이라고 했다.

그 한가지 사실은 우리 모두가 깨달아 부처가 될 수 있다는것.

 

우리집에서 키우는 앵무새, 길 가의 고양이, 옆 집의 멍멍이, 가축장의 소나 돼지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들 까지.

착하고 순진한 사람만 부처가 되는게 아니라 이기적인 나쁜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사회에 해가 되는 범죄자  같은 사람과 심지어 사이코패스 살인자 까지. 부처를 이룰수 있다고 하셨다.

 

부처님 당시 '앙굴리마라'100명의 목숨을 해친 무법 살인자로 부처님까지 살해하고자 했으나 후에 부처님에게 교화 되어 승려가 되었다.

또한 부처님에게 반역을 하고 암살까지 감행한 '데바닷다' 까지도 법화경에서는 내세에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까지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처럼 불교는 바다와 같은 포용력을 지녔다.

세상의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산골짜기 계곡의 물도, 시냇물도, 강물도 결국엔 바다에 이르듯이

우리가 부처가 되는것은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르겠다.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중에 진리를 깨닫기가 세수할 때 만지는 코만큼 쉽다고 하셨다.

그처럼 쉽다고 하셨는데 난 어째서 코를 만지질 못하고 있는가?

나는 세수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을 닦고 있는게 아닐까?

 

 

 

 

 

 

 

 

봄은 왔다.

누구는 심춘(尋春)이라 봄을 찾는다고 했는데

 

 

나는 심안(尋眼). 부터 찾아야 겠다.

 

 

가만, 무안(無眼) 이라 했는  없는데 눈을 어떻게 찾노?

 

 

 

 

 

 

 

만일 모든 것이 절대적 존재에 의해서 창조되고 지배되다고 하면 두 가지 현상이 설명되지 않는다.<중략>
‘인간의 죄악의 책임 문제‘ 와 ‘자율적인 노력의 문제‘ 이 두 가지가 마땅한 도리로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삼종외도 비판 중에서> - P38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궁극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 P43

아함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리를 제시하기 전에 우리 인간의 현실 세계를 먼저 보자는 것입니다. - P44

결국 세계라는 것은 ‘여섯 가지 감관 기관(육근)‘과 ‘여섯 가지 인식 대상(육경)‘으로 이루어진 ‘일체 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유명한 12처설 입니다. - P50

우리는 나 아닌 것을 나라고 집착하고 있고, 나의 것이 아닌 것을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정반대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 P67

변화하려고 하는 작용과 변화를 허용할 수 없는 아집이 서로 팽팽히 맞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괴로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략>
그래서 ‘모든 것은 덧없고, 덧없는 것은 괴로움이요, 괴로운 것은 나라고 할 수 없다‘ 라고 불교에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 P71

커다란 태양이건, 바다건, 모든 중생들이 업력을 일으켜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생들의 업력에 의해서 우주가 성주괴공하게 되는 것입니다.업력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큰 힘을 작용합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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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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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체호프 단편선

지은이: 안톤 체호프/ 박현섭 옮김

 

 

러시아 대문호(大文豪)하면 항상 언급되는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푸시킨 같은 작가들의 명성은 이름부터 듣는 사람 기를 죽인다.

<전쟁과 평화>, <죄와 벌>,<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처럼 제목은 알지만 막상 책을 대하면 바로 읽어보길 포기하는 고전 문학 작품들.

그래, 책 제목만 봐도 머리가 아파지는 고전을 읽지 않아도 인생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지.

나는 그렇게 소위 러시아 대문호 작품은 제목만 아는 수준으로 거의 반평생을 보냈다.

 

 

 

그러다 나이를 먹고 독서를 하다보니 여기 저기 접하는 책속에서 러시아 작가나 작품들의 내용이 인용되거나 언급이 되어진다.

몰라도 되지만 막상 알면 더 좋을것 같은 생각들.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들의 작품이 왜 위대한 고전 인지를 이해 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 일까?

 

 

 

그렇게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러시아 작품을 제대로 만나게 되었다.

(비록 단편 소설이지만....)

곧바로 러시아 대문호 작품은 부담이 되고 비교적 쉬워 보이는 단편소설 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선택한 체호프 단편선. 작가는 안톤 체호프.  

안톤 체호프의 명성은 앞서 언급된 대문호 만큼은 아니지만 단편소설계에서는 세계 3대 단편소설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사실 안톤 체호프(1860~1904) 에 대해서는 이번에 읽은 단편소설 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아니다.

4년전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위즈덤 하우스> 이란 책에서 언급된 안톤 체호프에 대한 내용을 먼저 접했었다.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 <권력의 법칙>, <유혹의 기술>같은 책과 함께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대판 마키아벨리라는 칭호로 소개되기도 한다.

로버트 그린의 책들에는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만의 스토리 텔링으로 역사속의 주인공과 사건들을 통해 자신이 의도하는 주제의식과 그 의미를 해석하는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것 같다.

<인간 본성의 법칙>에 등장하는 '안톤 체호프' 에 관한 챕터를 보면 안톤 체호프의 작품을 보다 깊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860(쇼펜하우어가 사망한 해), 러시아 남부,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위치한 항구도시 '타간로그' 태생인 체홉은 집안 대대로 농노 신분이 였다고 한다.

체홉은 위로 형이 2, 아래로 남동생 2, 여동생 2명중 세째로 자랐다.

농노라는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 할아버지때 부터 조금씩 돈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때에는 잡화점을 운영하다 빚만 잔뜩 졌버렸다.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언제나 체홉을 비롯한 형과 동생들에게 체벌을 가했다. 심지어는 아이들 엄마까지 학대를 했다.

그러다 체홉의 위에 형 2명 모두가 모스크바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된다.

반면에 아버지는 빚에 더욱더 쪼들리게 되자 모스크바로 혼자 도망을 쳐버린다.

체홉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 어머니와 동생들은 타간로그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이 살던 집은 남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어머니와 동생들은 체홉만 남겨둔체 형들과 아버지가 있는 모스크바로 떠나버린다.

체홉은 당시 16살로 가족 모두 떠난 타간로그에 홀로 남아 자신의 학업과 생계를 위해 고학을 하게 되었다.

 

 

 

타간로그에 홀로 남은 체홉의 이시기는 체홉의 인생에서 마주한 시련의 시기였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신의 미래를 바꾸는 토대가 되는 시기가 되었다.

이 시기 체홉은 철저한 고독의 시간속에서 삶에 대한 각성을 이룬것 같다.

홀로 남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떠나버린 가족들, 그 가운데서 이 모든 상황을 객관화 시켜 다시 내면의 눈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것만 같았던 아버지를 마음으로 용서했고 또한 자신에 주어줬던 운명의 굴레를 체홉은 스스로 벗어 던져버렸다.

 

이시기 체홉은 타간로그에서 홀로 서기를 통해 운명을 바꿔 버렸다.

체홉은 그 이후 모스크바 의과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면서 가족과 다시 상봉을 했다.

 

 

 

하지만 체홉의 가족은 모스크바의 빈민촌에서 오히려 타간로그 시기 보다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대학을 다녔던 형들은 노름빚과 술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고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찌들어 있었다.

여전히 폭력에 시달리는 어린 동생들과 어머니에게는 하루 하루가 희망없는 삶이였다.

 

 

 

체홉은 이런 비참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가 가장의 역할을 떠맡았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학업과 더불어 자신이 할 수 있는일을 찾기 시작했다.

특히 단편소설과 희곡을 쓰는 작업은 본격적으로 이 시기 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적은 원고료를 받으며 여러 잡지사에 열성적으로 글들을 투고 하게 된다.

이 글들이 오늘날 남아 있게된 체홉 초기의 작품들이 되었다고 한다.

 

 

 

체홉은 빈민촌에 살며 절망과 우울에 빠져 있는 집안 분위기를 점차 바꾸기 시작했고, 마침내 체홉 가족 모두를 물질과 정신적인 면에서 '구원(救援)' 하게 된다.

체홉 자신은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졌지만 작가로서 명성이 더 높아지자 의사 보다는 작가라는 직업에 더 매진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 속에 나오는 의사는 체홉의 또 다른 분신 일 정도로 생생한 묘사를 살렸다.)

 

 

 

체홉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향한 '구원' 이지 않았을까?

체홉의 작품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간 군상들, 특히 사회적 신분이 낮은 서민 계층이나 빈민층의 생활을 체홉은 누구보다 여실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본인은 그들이 우울한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을 누구 보다도 더 잘 알고 있지 않았을까?

 

 

 

체홉이 세상을 떠나기 몇해전, 작가적 명성과 더불어 문학계에서는 체홉에 대한 시기와 질투를 일쌈았다.

이때 환멸을 느낀 체홉은 당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사할린을 여행하기로 결정한다.

그 이전 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던 체홉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지인들의 충고를 무시하고 결국  당시에 지옥이라 불리던 사할린으로 떠나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사할린은 극동에 속하며 중간에 혹독한 시베리아 벌판을 거쳐야만 한다.)

 

 

체홉은 사할린에서 교도소 죄인들, 특히 살인으로 수감중은 범죄자들과 그의 가족들을 인터뷰하고 또 사할린 섬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한다.

그의 이런 현장 체험은 훗날 <사할린 섬>이란 책으로 나오게 된다.

체홉의 <사할린 섬> 책은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이후 사할린 섬의 여건이 상당부분 개선 되었다고 한다.

(안톤 체호프 책<사할린 섬>은 우리나라에도 출판 된적이 있지만 , 현재는 아쉽게도 절판된 상태이다. 중고거래 가격이 엄청나다.)

 

그 이후 체홉의 폐결핵은 더욱 심해졌다.

1904년 겨울, 시골에서 썰매가 타고 싶었던 체홉은 자신의 의지대로 썰매를 타고나서 결국 46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안톤에게 글쓰기는 곧 '구원(救援)' 과 같은 의미로 생각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글쓰기의 원동력은 밑 바닥 계층의 암담한 현실에서 시작 되었다.

불교에서 '연꽃은 진흙속에서 핀다' 고 전한다.

안톤에게 진흙은 우울하고 비참한 현실, 즉 다양한 중생들이 사는 현실이 아니였을까?

 

 

 

농노라는 신분이지만 나름의 음악적 재능을 가졌던 아버지, 하지만 농노라는 신분을 결국 극복하지 못한 체념속에서 아버지가 할 수 있는것은 술 먹고 화내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아버지를 안톤이 어린 나이에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벗어나지 못했던 이런 업의 굴레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안톤에게는 용서하지 못할 아버지나 바꿀수 없는 환경이 문제가 되질 않았다.

소설속에 나오는 수많은 캐릭터 처럼 아버지와 가족을 비롯한 모든 인간 군상들의 운명은 고정 되지 않다는것을 이미 꿰뚫어 보았던 것은 아니였을까?

그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한 연민은 그의 글에서는 위트와 유모로 승화 되었다.

 

 

 

이처럼 안톤의 글을 통한 구원은 그 자신과 가족, 세상을 향한것이었다.

이것이 안톤의 단편 소설과 희극속 작품에 깔려있는 안톤만의 구원의 방식이 아니였을까 싶다.

안톤식의 구원, 그의 작품속에 그만의 '구원의 힘' 이 담겨 있다.

이제는 안톤 체호프가 남긴 작품들을 시간이 되고 기회가 된다면 틈틈히 읽어볼 예정이다.

나 또한 안톤이 그랬던 처럼, 책을 통해, 글을 통해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求原)하는 힘이 생기길 바란다.

 

<救援이 求原이 되길 바라며>

 

 

" 이 젊은이가 자기안의 노예근성을 한 방울 한 방울 모두 짜내서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깨어 더이상 자신의 혈관을 흐르는 피가 노예의 피가 아닌 진짜 인간의 피라는 것을 발견하는 이야기를 글로 쓰려고"

(안톤 체호프가 친구에게 전하는 편지 글에서)<인간 본성의 법칙 P.336>

나는 그대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경멸을 표현하기 위해,내가 한때 천국을 꿈꾸듯 갈망했으나 이제는 하찮게 보이는 200만 루블을 거부하겠다.
<내기 중에서> - P147

이 무시무시한 뜻밖의 소식은 클리모프의 의식 속으로 온전하게 전달되었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섭고 강력한 것일지라도 회복기의 중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동물적인 기쁨을 이기지는 못했다.
<티푸스 중에서> - P160

"제가 침을 튀겼습니다. 각하..... 용서하십시오. 전 그저...... 다만......."
<관리의 죽음 중에서>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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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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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스토리텔링 애니(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지은이: 조너선 갓셜/ 노승영 옮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 1>.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모든 불교 경전의 첫구절>

 

 

 

우리 인간의 말하는 능력과 듣는 능력의  결합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어떤 종류의 생물체 보다 우수해진것은 틀림없는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유발 하라리는 200만년전 영장류중에 가장 힘이 없던 종에 불과 했던 호모사피엔스가 오늘날 지구에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인지혁명(認知革命) 을 꼽았다.

우리 인류는 이야기로 소통을 하고 믿음을 공유하며 개인과 부족간의 유대를 하며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야기의 활용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장 별볼일 없는 종에서 가장 뛰어난 사회적 동물로 발전한 셈이다.

 

 

이제 인류에게 이야기는 떠날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인류가 만들어 놓은 문학, 영화, 게임, 오락, 음악, 무용, 철학, 정치, 과학 등등  모든 문명의 바탕에는 스토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게 다 태초의 말씀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야기가 곧 신이 되는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조너선 갓셜의 책<스토리텔링 애니멀>은 일독 할 만하다.

이 책을 보기전 나는 작년에 같은 작가의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를 먼저 읽었었다.

그때 당시 책을 읽는 내내 놀라웠던 작가의 통찰은 이야기라는 것이 살아있는 유기체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인류가 멸망치 않고 존속하는 한 이야기 또한 같이 살아 나간다것 이다.

 

책에서 작가는 이야기의 효용에 대하여 모든 이야기의 목적은 '상대를 구슬린다는데 있다' 는 관점으로 해석했다.

즉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꼬신다' 는 것이다.

상대를 나의 의도에 맞게 구슬리려면 짜임새 있게 서사를 넣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위가 결국은 '구슬림' 이란 것이다.

상대를 구슬림으로 이야기에 공감하게 하고 화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효용 반면에 작가는 '이야기 꾼을 믿지 말라' 고 했다.

<플라톤의 국가>를 언급하며 플라톤의 위대한 스승이 당시의 시인들(이야기 꾼) 에 의한 선동으로 인해 대중은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즉 이야기는 상대에 대한 분열 , 불신, 증오를 조장을 할수도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 탈진실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은 범람하는 정보 미디어 홍수들, 가짜 뉴스, 보이스 피싱, 매일 실시간으로 업로드하는 유투버들의 선정성 콘텐츠들. 정치가들과 선동자들의 분열적인 구호들과 음모론 속에서 헤매고 있다.

더구나 인공지능의 발달로 우리는 심지어 챗GPT가 진실을 말하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 진다.)

 

 

 

이시대의 이야기 꾼은 다양하게 진화를 했고 또 현재도 진행중이다.

 

 

 

모든게 진짜 같아 보인다.

진짜 처럼 보이는것은 진짜가 아니다.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고 들리는 말들을 다 믿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야기 꾼을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혼란을 조장하는 시대의 이야기가 바로 2500년전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았던 그리스 시대와 다르지 않다고 본 작가의 통찰과 시공간을 연결하는 작가의 독창적인 해석력에 감탄했었다.

 

그때 받은 감동으로 작가의 전작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이번에 읽게 되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 출판> 2014년 에 출판이 되었고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위즈덤 하우스 출판>  2023년에 나왔다.)

 

두 책의 작가(조너선 갓셜)은 영문학 교수이자 과학적 인문학의 선두주자를 자처한다.

작가는 스토리와 인간의 상관관계를 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며 시종 유쾌한 어투로 이야기속의 세상 즉 네버랜드에 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두 책 모두 인류를 '호모 픽투스(Homo fictus:이야기 하는 인간)'라는 관점 에서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만 아쉽다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통찰은 훌륭하지만 워낙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정신없이 풀어 놓아서 읽고난 후 정리가 잘 안되고 있다.

(독후감을 쓰면서 뭘 쓰고 있는건지 나도 헤매고 있다가 다 지워버렸다.

결국 당연히 나의 문해력의 문제라고 봐야지. )

 

 

그렇지만 작가의 두 책을 비교한다면 나에게는 작년에 읽었던 후속작<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 위즈덤 하우스 출판>이 더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소장가치를 따진다면 전작<스토리텔링 애니멀:민음사 출판>은 서가에 두고두고 읽어볼 책이 될것 같다.

 

 

 

앞의 태초의 말씀과 여시아문을 다시 살펴본다면,

기독교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불교는 듣는것에서 시작한다.

말하는것과 듣는것 중 어느것이 먼저 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대부분의 청각장애인은 말을 못한다.

그렇게 보면 듣는게 좀 더 중요 하지 않을까?

 

 

 

나의 어린시절, 초딩 3학년때 였다.

그 당시 우리반에서 장기자랑 시간을 가졌던 적이 있다.

다른 애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고 나는 '옛날 이야기' 를 말했다.

어른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에 우리가 표현했던 춤이나 노래, 옛날 이야기 하기 같은 장기자랑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넓게 본다면 우리가 하는 모든 존재의 행위가 나를 표현하는 것이고 이는 곧  말하는 것이 되며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즉 나의 이야기속에서 나는 주연이 되는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세상에서는 내 뜻대로 만들수 있지않을까?

 

태초의 말씀은 곧 내가 되는 것이다.

 

단어를 늘어놓는 것은 작가이지만 단어 자체는 생명이 없어 생기를 불어넣을 촉매가 필요하다. 그 촉매는 독자의 상상력이다. - P26

우리 몸은 ‘지금 여기‘라는 구체적 시공간에 늘 갇혀있지만 상상력은 우리를 해방해 시간과 공간을 마음껏 넘나들게 해준다. - P32

...뽕 가기 위해서... 이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요점이다. 픽션은 코카인과 같은 마약이다. - P51

모든 사람의 뇌에는 작은 셜록 홈스가 들어있다...이야기하는 마음은 의미 중독자이다. - P133

이야기는 공동체의 가치를 강화하고...사회를 결속하는...
이야기는 젊은이를 문화에 적응시킨다.
이야기는 집단을 정의한다.
이야기는 무엇이 고귀한 행동인지, 무엇이 비난받을 행동인지 알려 준다.
이야기는 사회의 윤활유이자 접착제이다.
이야기는 우리를 균질화한다. 즉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 - P170

우리중 90퍼센트는 자신의 운전이 평균 이상이라 생각하며 대학교수 중 94퍼센트는 자신의 업무 능력이 평균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위비곤 호수 효과:라디오 방송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로, 이곳에 사는 여자들은 모두 힘세고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고 아이들은 모두 평균이상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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