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 -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조지 오웰 자전소설
조지 오웰 지음, 자운영 옮김 / 세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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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 가지는 힘

조지 오웰 저, ‘파리와 런던 거리의 성자들’을 읽고

‘동물농장’, ‘1984’로 유명한 작가 조지 오웰의 자전소설이자 첫 장편소설인 이 작품은 제목에서 묘사하듯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의 빈민가, 그리고 그 안에서 전전긍긍하며 무의미한 하루를 겨우 연명하듯 살아가는 부랑자들의 실상을 낱낱이 보고한다. 르포르타주는 아니지만 이 책에 보고된 정보들은 모두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지극히 사실적이다. 실제로 조지 오웰이 파리와 런던의 빈민가를 체험하고 그 체험담을 소설로 풀어쓴 글이기 때문이다. 300 페이지 남짓 되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가난과 궁핍, 그 가운데서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담고 있다. 

세상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과 경험해도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극빈층의 일상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작가의 상상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방관자나 연구자의 눈으로 실행한 취재 혹은 보도자료로도 써낼 수 없는 이 작품은 함부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담고 있다. 비록 작가가 직접 경험했지만 다 알 수도 없고 또 다 설명할 수도 없는 현장이 가지는 힘이리라.

공교롭게도 조지 오웰의 작품은 여태껏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동물농장이나 1984도 모두 앞부분을 조금 읽다가 만 기억이 있다. 작가의 문체랄까 글이 담고 있는 뉘앙스랄까 하는 것들이 그 당시의 내 정서와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의 자전소설을 읽고 조지 오웰이라는 사람을 조금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세시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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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 - 읽고 쓰기에 대한 다정한 귓속말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티라미수 더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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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과 같은 첫 문장: 소설가는 따라갈 뿐


오가와 요코 저, ‘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을 읽고

소설에서 첫 문장은 사람의 첫인상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첫인상이 좋아도 지나고 봐야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 수 있듯, 첫 문장이 아무리 좋아도 그다음 문장들이 형편없으면 그 소설은 요란한 빈 깡통, 혹은 서두에만 잔뜩 힘이 들어간, 허세에 부푼 초보 작가의 어설프고 허술한 글이 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일리가 있다. 사실 둘은 상반되지도 않는다. 첫인상만 좋고 본모습은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그런 유형을 경계하라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강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은 결코 첫인상만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며, 첫인상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결코 첫인상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둘은 똑같은 말을 다른 각도에서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요컨대 어쨌거나 첫인상은 중요하다는 것. 그래서 첫 문장 역시 중요하다는 것. 그러나 그것만이 사람이나 글의 모든 가치를 대변하진 않는다는 것. 

쌀로 밥 하는 말일지도 모르나 첫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책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장은 첫 문장에 이어서 나오게 된다. 특히, 여러 소설가의 고백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소설가는 저 앞에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모든 걸 미리 계획하고 설계하면서 이끌어나가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특정한 시공간과 그 시공간에 내던져진 등장인물을 따라가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십, 수백 혹은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글 한 편의 포문을 여는 첫 문장은 빛이 있으라 하는 신의 명령에 빛이 생겨나듯 작가에 의해 새겨진 백지 위의 첫 검은 활자로써 뒤이은 모든 이야기를 꿰는 첫 단추일지도 모른다. 이는 작가도 자신이 쓴 첫 문장에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며, 그 문장으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문장들을 놓치지 않고 주워 담은 결과가 하나의 완성된 소설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또한 여기서 우린 한 걸음 더 나아간 독법을 다음과 같이 구사할 수도 있다. 첫 문장은 소설의 주제문이라든지 상황이나 등장인물을 압축해서 표현한, 가장 나중에 쓰이는 문장이 아니라, 그야말로 처음 쓰인 문장으로써 그 문장 때문에 소설의 주제도 생성되고 상황이나 등장인물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즉, 소설의 전개와 결말까지 첫 문장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것. 이야기를 지어내는 게 아니라 따라가며 포착한다는 소설가에게 첫 문장은 바로 그들이 따르는 이야기의 선두에 위치하는 그 무엇인 것이라고.

오가와 요코의 대표작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쓰이게 된 사전 배경을 설명하는 방식을 따르며 그녀가 세 차례 강연한 내용을 담은 이 책에서 그녀가 하는 말도 내가 아는 소설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가는 따라간다는 것. 주제를 먼저 설정하고 소설을 쓰긴 어렵다는 것. 작가는 스토리를 짓지 않고 포착할 뿐이라는 것. 작가는 그저 누군가가 떨어뜨린 기억의 조각을 주워 모아 그 사람이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어쩌다 가지게 된 언어라는 수단으로 소설로 쓸 뿐이라는 것. 그러나 한 가지 내게 묵직하게 와닿은 문장 하나도 남긴다. 소설은 언어로 쓰는데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 여기서 나는 모순을 느끼면서도 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숙명이랄까 치명적인 매력이랄까 하는 것이 담겨 있다고 믿게 된다.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에 묘한 위안을 얻게 된다. 소설이야말로 철학, 신학, 인문학 할 것 없이, 그리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포착하여 담아내는 그릇이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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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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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인생을 훑다

신형철 저, ‘인생의 역사’를 읽고

평론이라고 하면 나는 왠지 경직되는 기분을 느낀다. 논문이라는 단어가 과학계에서 가지는 위상과 평론이 문학계에서 가지는 위상이 내겐 엇비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평론은 어렵게만 느껴지고, 고난도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시는 어떤가. 소설이 시보다 좀 더 대중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시는 이해하기 위해라기보다는 느끼기 위해 읽는다는 말까지 감안한다면, 나에겐 시 역시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저 너머의 무엇인 것만 같다. 그런데 지금 내 손에 든 책은 무려 시에 대한 평론집이다. 시와 평론의 이중창이라… 이 둘의 무게만 생각하면 나는 압사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으니 그 이유는 바로 이 책 저자의 이름이다. 신형철. 믿고 읽어도 되는 그 이름. 여전히 나는 시와 평론은 버겁다고 느낀다. 하지만 신형철의 이름 석 자를 신뢰하기에 나는 그의 신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구매하고 말았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행과 연으로 이루어지는 시를 신형철은 인생에 빗댄다. 인생도 걸어감과 이어짐으로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별하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그래서 불쌍하기도 하지만, 또 그래서 고귀하기도 한 우리네 인생을 다룬 작품들을 읽으며 인생을 공부해왔던 신형철은 2016년 한겨레에서 ‘신형철의 격주시화’로 연재했던 스물네 편의 글에 새로 쓰고 또 고쳐 쓴 글 몇 편을 더하여 이 책을 완성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후 4년 만의 신작이다. 인생의 육성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곧 시라고 믿는 그는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에 담긴 서른 편이 넘는 시들에 인생 그 자체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말한다. 덕분에 독자인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며 그가 해석한 인생의 역사를 훑어볼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시를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기회라니. 어떤가.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사실 나는 이 책을 펼치고 며칠을 뜸 들인 뒤에야 아끼던 선물 포장지를 뜯는 심정으로 프롤로그를 읽었다. 그 순간 신형철이 쓴 활자는 정확한 펀치가 되어 나를 정통으로 가격했고, 신형철 특유의 힘에 기분 좋게 압도당한 나는 전율했다. 


내가 뜸을 들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내 기대가 과장된 나머지 혹시라도 실망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전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내게 직간접적으로 끼친 영향력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싶다. 그의 글쓰기는 내게 인문학의 포문을 열어주었고, 산문의 매력에 눈 뜨게 해 주었으며, 문학의 깊고 풍성한 맛을 볼 수 있게 해 준 시작점이 되었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마치 그를 잘 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나는 신형철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 글은 딱 세 꼭지에 대해 짧은 감상평을 남기면서 전개해볼까 한다. 서른 편이 넘는, 인생을 담은 시가 소개되어 있지만,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혹은 내 인생과 강렬한 교감을 이루었던 세 편의 시라 해도 무방하다.


날 멈추게 하고 숨을 멎게 만든 프롤로그 제목은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이다. 무슨 말인가 갸우뚱하며 마지막 여덟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나며 인식의 전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 새를 손으로 쥐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는 일이면서, 내 손으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내 삶을 지켜야 하고 나로부터도 내 삶을 지켜야 한다. | (26페이지에서 발췌)


이 문장을 읽자마자 내 생각은 아들과 단 둘이 살아냈던 지난 5년으로 돌아갔다. 나는 과연 아들을 혼자 키우면서 아들을 잘 보호했던가, 하는 생각으로 한동안 책을 놓고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손으로 아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나는 과연 나로부터 아들을 보호했었는지, 너무 늦어버린 질문이지만, 묻게 된다. 보호자를 자처하고 감당했던 유일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어버릴 수 있는 이유를 나는 오늘 신형철의 통찰로부터 뒤늦게 알아채버린 탓이다.


감동은 1부 1장으로 연장되었고, 강력한 연타를 맞은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된 시인 ‘공무도하가’에 대한 신형철의 해석이다. 먼저 이 짧고 강렬한 시는 다음과 같다.


|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죽었으니,
장차 임을 어찌할꼬. | (32페이지에서 발췌)

신형철은 이 시에서 운명 혹은 숙명을 읽어낸다. 이 두 단어는 인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되는 단어이지 않을까. 그는 다음과 같이 쓴다.


| 인생에는 막으려는 힘과 일어나려는 힘이 있다는 것. 아무리 막아도, 일어날 어떤 일은 일어난다는 것. | (34-35페이지에서 발췌)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 꼭지를 마무리한다.

| 상고시가로 함께 묶이는 ‘구지가’나 ‘황조가’와는 달리 ‘공무도하가’만이 언제나 나를 사무치게 한다. ‘나는 내 뜻대로 안 된다. 너도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우리 뜻대로 안 된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나는 수천 년 전의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아서 들어본 적 없는 그 먼 노래가 환청처럼 들린다. 나는 백수광부다. 나는 그의 아내다. 나는 곽리자고다. 나는 여옥이다. 나는 인생이다. | (36페이지에서 발췌)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언제나 하려는 일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고야 만다는 것. 이는 신형철이 공무도하가에서 읽어낸 것과 다르지 않다. 시공간을 차치하고도 인생이란 그 누구에게도 비슷한 의미로 다가가는 그 무엇인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그 무엇. 마치 모든 게 정해져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보이지 않는 묵직한 실체. 나 역시 문학이라는 숲에서 거하길 즐기고 그 안에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열매 따먹기 좋아하는 이유도 어찌 보면 인생의 맛을, 그 깊고도 오묘한 맛을 더 알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내게 꽂힌 문장이 담긴 글은 ‘사람을 죽이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의 꼭지다. 신형철은 ‘인생의 역사’ 131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내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 나로 살 수 있게 해 주는 당신을 나는 사랑한다.’ |

이 글을 읽고 잠시 멈칫했던 이유는 누군가를 증오할 때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 누군가를 증오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를 증오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탄생하는 나의 분인을 증오한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을 때의 나를 가장 증오한다. 그런 나로 살게 만든 당신을 나는 증오한다.’ |


사랑 대신 증오를 대입하고 나니 나는 글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 마음속에 사랑보다 증오가 더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를 사랑하든 증오하든 결국 나는 나 자신을 함께 사랑하고 증오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은 멈추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인간의 본성이랄지 운명이랄지에 대해서. 결국 인간은 전적으로 타자를 사랑하거나 증오할 수 없다는 말인가, 나르시시즘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굴레일 수밖에 없는가, 싶어서 말이다. 


이렇게 세 꼭지에 대한 간단한 감상평을 남기고 나니 결국 나도 인생을, 그 역사를 잠시라도 훑은 기분이다. 착잡해지기도 하고 고요해지기도 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젠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이다.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자 내일의 어제이므로. 시간이 흐르는지 안 흐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내가 살아내야 할 순간은 오늘, 바로 지금만이 존재하므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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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전율을 느끼다

신형철의 신작, ‘인생의 역사’를 펼치고 며칠을 뜸 들인 뒤 나는 오늘 밤이 되어서야 아끼던 선물 포장지를 뜯는 심정으로 프롤로그를 읽어버리고 말았다. 신형철이 쓴 활자는 정확한 펀치가 되어 나를 정통으로 가격했고, 신형철 특유의 힘에 기분 좋게 압도 당한 나는 전율했다.

내가 뜸을 들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내 기대가 과장된 나머지 혹시라도 실망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전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내게 직간접적으로 끼친 영향력을 떠올리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싶다. 그의 글쓰기는 내게 인문학의 포문을 열어주었으며, 문학의 깊고 풍성한 맛을 볼 수 있게 해 준 시작점이 되었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마치 그를 잘 안다는 착각을 할 정도로 나는 신형철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날 멈추게 하고 숨을 멎게 만든 프롤로그 제목은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이다. 무슨 말인가 갸우뚱하며 마지막 여덟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나며 인식의 전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새를 손으로 쥐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는 일이면서, 내 손으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내 삶을 지켜야 하고 나로부터도 내 삶을 지켜야 한다.” (26페이지에서 발췌)

이 문장을 읽자마자 내 생각은 아들과 단 둘이 살아냈던 지난 5년으로 돌아갔다. 나는 과연 아들을 혼자 키우면서 아들을 잘 보호했던가, 하는 생각으로 한동안 책을 놓고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손으로 아들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나는 과연 나로부터 아들을 보호했었는지, 너무 늦어버린 질문이지만, 묻게 된다. 보호자를 자처하고 감당했던 유일한 사람이 가해자가 되어버릴 수 있는 이유를 나는 오늘 신형철의 통찰로부터 뒤늦게 알아채버린 탓이다.

프롤로그만 읽었을 뿐인데 큰일 났다. 앞으로 서른 편의 시를 더 다루며 신형철은 매번 정확한 공격을 해 올 게 뻔한데,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다. 아, 마치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랄까. 그러나 이조차도 나는 황송한 마음이다. 오랜만에 문자의 폭격 다운 폭격을 받을 시간표가 왔고, 이는 (문학과 글쓰기 영역에서) 번데기로부터 성충으로의 변태 과정을 조금이나마 진척시킬 거라고 나는 강하게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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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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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내린 단비처럼 내게 다가온 글쓰기 선생님

안정효 저,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를 읽고

모든 글에는 글쓴이가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글의 뉘앙스가 달라진다. 글쓴이가 전면에 등장하여 자화자찬이나 연대기 형식의 지루한 자서전을 읊어댄다면 어떤 독자라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글쓴이가 거의 드러나지 않은 채 정보만 건조하게 전달하는 글 역시 좋은 글이라 할 수 없다. 에세이의 경우엔 특히 더 그렇다. 글쓴이는 가능한 자신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수위를 지혜롭게 조절해야 한다. 자신만으로 도배해서도, 자신을 죽여서도 안 된다. 한 편의 짧은 글이 아닌 두꺼운 분량의 책이라면 이러한 수위 조절은 더욱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지금까지 내 돈 주고 사서 밑줄 그으며 읽거나 서점에 들러 주의 깊게 훑어본 글쓰기 관련 책은 스무 권도 넘는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은 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왜일까. 나는 그 이유를 앞서 언급한 글쓴이가 드러난 정도에서 찾는다. 어떤 책 (소수에 해당)은 저자의 유명도가 거의 전부인 경우였고, 또 어떤 책 (대다수에 해당)은 마치 ‘ctrl c & ctrl v’를 한 듯 저마다 비슷한 내용을 정리해놓은 경우였기 때문이다. 전자는 글쓴이가 과도하게 부각된 경우에, 후자는 글쓴이가 사라진 경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독자로서 전자를 읽은 후엔 ‘저자가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라는 인상만이 남았고, 후자를 읽고 나서는 저자가 누구였는지조차 잊을 만큼 동일한 내용의 반복에 진저리를 치며 정독하지 못한 채 대충 훑어보다가 끝내 구입하지 않기로 결정하곤 했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선생이 가르치냐에 따라 학생의 반응과 흡수력이 달라지는 법이다. 이 논리는 앞서 말한 글쓴이가 드러난 정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유명한 선생의 가르침이 그저 그 선생의 영웅담 정도로 요약되는 경우, 그리고 어떤 선생이 가르쳤는지 모를 정도로, 나아가 강의를 듣는 것이 교재만 쳐다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르치는 주체가 증발된 경우가 각각 이에 해당된다. 요컨대 가르치는 선생과 학생 간의 거리, 그리고 저자와 독자 간의 거리는 가르침 혹은 책이 써진 목적 달성과 내용 전달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강의가 아닌 에세이 형식의 글쓰기 책인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는 이러한 거리가 절묘하게 맞춰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모든 글쓰기 책에서 동일하게 언급하는 항목들, 이를테면 ‘접속사 사용을 줄여라’, ‘~것 사용하지 마라’ 등의 식상하지만 동시에 기본적인 가르침도 내겐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나의 글들을 꺼내어 찬찬히 읽어보며 점검할 수 있었고, 매일 하는 글쓰기에도 적용하려고 실제로 노력하게 되었다. 나는 마치 글쓰기 책을 처음 읽는 아이가 된 듯한 기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론을 현장에 적용하고 실천하기까지 나에겐 이렇게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게다. 

이 책은 단순한 글쓰기 책이 아니다. 한 단계 더 세부적인 목적을 가진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글쓰기 기초에서부터 소설 한 편을 쓰기까지의 여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소설 한 편 쓰기를 평생 소원으로 여기고 있는 나에겐 이 책은 그야말로 ‘때마침 내린 단비’와도 같은 선물이었다. 

저자 안정효는 번역가이자 소설가이다. 평생을 읽고 번역하고 쓴 작가다. 1941년생이라 책에서 든 예문의 출처가 오래된 작품 위주이고, 그래서 1977년생인 내가 모든 글을 쉽게 공감하며 읽어내기엔 약간의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사소한 단점만 제외한다면 나에게 이 책은 최고의 글쓰기 선생 노릇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덧붙여 나는 글쓰기 기술만 배운 게 아니라 이 책 덕분에 안정효라는 작가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되었고,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동안 미적대던 나의 습작 소설도 덕분에 조금이나마 진도를 더 내는 계기가 되었다. 약 한 달 가량의 정독 기간이 전혀 아까지 않은 책. 글쓰기를 시작하고 살짝 슬럼프에 빠진 동료들에게 조용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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