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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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전공이 환경공학이 나는 환경부문의 여러 분야 중에서 수질 및 폐기물 쪽으로 공부했다. 그래서 자격증 역시 수질과 폐기물 관련 기사 자격증이 있다. 환경을 공부하면 솔직히 말하자면 거의 모든 것을 접하게 된다. 인간이 먹고 살아가는 것은 곧 환경에 대한 파괴이고, 그 환경에서 다시 새로운 자원을 얻기 위해 환경을 복원해야 하는 이중적인 행위를 맺게 된다. 인간이 처음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식량을 찾는 것이었다. 대부분 수렵과 사냥으로 살아가는 인간에게 채집은 식물의 생존전략을 이어주는 방편이었다. 분변에 씨앗이 그대로 지면에 닿으면서 거기서 새로운 생명이 유지된다.

 

하지만 동물은 다르다. 동물은 잡히는 순간 도살당하여 뼈와 살이 분리되어 생명을 잃게 된다. 지나친 사냥은 숲을 황폐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사냥대상이 육식동물일 경우 작은 초식동물의 천적이 사라짐으로써, 초식동물이 모든 나무와 풀을 먹어버리는 상황에 이른다. 동물을 먹는다는 게 그래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 것은 생태환경시스템은 어느 균형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인간의 역사에서 생태환경의 파괴는 결국 인간의 목숨을 좌우하는 아이러니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인간들이 역사와 문화를 이어오면서 동물을 사냥하는 게 아니라 우리 속에 가두어 키우게 되었다.

 

최근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통 한국사회에서 주요 안주나 간식거리 중에서 치킨이 주요 음식이 되었다. 내가 어릴 적에 옛날통닭 즉 시장에서 파는 통닭을 사면 양이 엄청 많았으나, 지금은 그렇게 크지 않다. 몇 조각 안 되는 닭고기는 현재 45일 정도 된 어린 닭인 것이다. 과거 시장에서 파는 시골촌닭은 조금 다르다. 닭장 우리 속에 있는 닭은 옛날에 내가 먹어본 닭이 아니다. 그저 자동화된 공장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인스턴트식품이 되었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읽기 전에 이미 나는 <가축이 행복해야 인간이 행복하다>라는 책을 읽었다.

 

그래서 새삼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책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고, 생각보다 이전에 읽은 책보다 새로운 느낌은 없었다. 단지 전에 읽은 책은 가축인 소와 돼지 중심이라면 이번에 읽은 서적은 해양생물이 나온 게 마음에 들었다. 가축사육과 관련하여 최근 환경부 관할법령으로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개정 반포되었다. 가축 중에 당연히 대표되는 동물은 한우, 젖소, 돼지, 닭, 오리, 사슴 등 다양한 가축이 있다. 가축이 내뿜는 분뇨의 양은 인간에 비해 많고, 대규모 사육은 밀집된 공간에 점오염원을 발생시킨다. 한국에서 주요 광역도시와 경기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가축이 사육된다.

 

가축사육은 주로 농촌의 농가에서 이루어지고, 농가 주변부에 하천이나 저수지 같은 수원지가 분포하는 경우가 많다. 비오는 날 강우유출수에 의해 지표면에 부착된 오염물질이 그대로 빗물에 휘말려 하천으로 유입된다. 가축분뇨의 어려움은 대부분 축사 영세한 농가인 점이다. 그러나 가축을 잡는 도살장은 다르다. 옛날에 시골 축제에서 돼지 1마리를 그대로 잡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은 지정된 도살장에서 가축들을 잡는다. 가축도살 과정을 들어보면 우선 소 같은 경우 전기 총으로 충격을 주어 기절시키거나, 그것이 되지 않으면 머리에 총을 사격하여 뇌를 관통시키는 경우가 있다.

 

실제 도살된 소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전기충격으로 인해 두 눈에 붉은 실핏줄이 보이고, 입은 크게 벌려져 있으며, 눈알은 조금 돌출되었다. 그 다음에 소의 목을 베었으니 그 모습이 참으로 엽기적이었다. 겉으로 본다면 징그럽고 무섭지만, 우리는 그런 과정을 거친 고기를 식당에서 매우 맛있게 먹는다. 그 절차가 잔인하고 끔찍하다 말하면서 식당에서 맛있게 입맛을 다지는 모습에서 상황적 간격이 있다. 문제는 바로 그 고기에 대해서다. 최근 시골에 있는 작은아버지 댁에 가면 소 사육시설이 있다. 수많은 소들이 볏짚과 영양 사료를 먹고 성장하고, 작은아버지는 그것을 판매하여 생계를 꾸려간다.

 

그러나 내가 아주 어릴 때 적어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2분이 계실 적에 소는 우사에 1마리가 있었다. 그런데 소가 따로 외양간 건물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조부모님이 살던 집 지붕과 이어진 우사에 있었다. 작은할아버지 댁에 가도 그렇다. 작은방에 작은 문을 열면 우사에 소가 있었다.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우리집안은 농사일을 약 200년 전부터 시작한 것 같다. 증조부께서는 급사로 돌아가시기 그 전날까지 소에 쟁기를 끌고 다니면 논일을 했다. 소가 예전에는 한국농촌의 거대한 뿌리였지만, 이제는 소로 농사를 하지 않는다. 들판에 나가 여물을 먹거나 여기저기 움직이지 않는다.

 

돼지도 인간이 주는 잡식이 아니라 사료만 먹는다. 닭도 마당에 풀어 키우는 게 아니라 닭장 아래 갇혀 있다. 인간도 어디 나가지 않고 좁은 독방에 갇혀 사육되면 아마 몸이 먼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정신이 붕괴되어 자살할 것이다. 동물은 시간적 감각이 인간보다 덜하다. 인간은 시간을 관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단지 몇 시인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뿐이다. 전등기 빛으로 낮과 밤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닭에서 알을 계속 뽑아내고, 돼지에게 수없이 사료만 준 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다.

 

그나마 위생적인 축사는 괜찮다. 축사 내 분뇨가 가득하여 냄새가 진동하고, 병이 나도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 가축도 있다. 이런 가축의 육질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게다가 몸에 질병을 앓고 있어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병균이 이미 심어져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미국보다는 아니다. 적어도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은 미국 내 대형 공장식 가축사육시설을 두고 저술한 책이니 말이다. 하지만 국내도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 그런 과정은 금융시장만이 아니라 공장도 마찬가지다. 사육시설은 공장처럼 기계화 되어 있다.

 

가축사육시설은 언제나 악취와 비위생적인 공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운 좋은 기회가 있어서 여러 가축사육시설을 본 기회가 있었다. 물론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만큼 비참한 상태는 아니나, 영세한 축사 중에는 매우 심각한 상태도 있었다. 우리가 먹어야 하는 식량이 바로 이렇게 관리되는 셈이다. 이 글을 적는 와중에 내가 왜 닭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가? 예전에 우리가 이렇게 닭을 많이 소비하지 않았다. 닭고기 소비량이 최근에 들어 부쩍 상승했고, 일반 주택지역과 아파트 대단지 인근을 보면 치킨집이 즐비하다.

 

이 많은 가게들이 수많은 가정집에 닭고기를 요리해준다. 심지어 시내 술집과 식당을 가더라도 닭고기는 메인 메뉴다. 그러나 그 많고 많은 닭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45일 아니라면 최장 60일까지 성장한다면 닭은 대량생산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닭의 부리가 잘려나가고, 발톱도 잘려나가며, 수평아리는 그대로 처분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런 가축들의 희생 아래 그 위에서 서고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보인 작가의 관점을 좋게 보지 않는다. 동물의 죽음에서 분명 잔혹한 것은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알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물가의 차이다. 자동차의 가격이 예전에 비해 수 천 %가 올랐지만, 그 기간에 고기의 가격은 몇 백%만 상승한 점이다.

 

왜 자동차와 식량인가?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것을 몰라도 쌀 가격은 올리지 않는다. 물론 고기가격은 많이 오른 편이라도 해도 식량에 대한 가격은 올리지 않는다. 작가인 조너선 샤프란 포어는 자본주의에서 일어나는 가축도살 현실에 대해 잘 지적한다. 그 기업이 펼치는 로비나 혹은 미디어의 작용도 거론한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기를 먹지 않아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니라면 고전의 경영방식을 답습하여 운영하는 농장주를 계속 키우는 것일까?

 

식물을 위주로 하면 식당의 판매가격이 낮아지는 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시장에 공급하는 대규모 경영업체가 보여주는 행동이다. 권력기관과 언론기관을 동시에 협력하여 눈속임하는 것, 그리고 공장 내 노동자의 인권문제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 시점에서 단지 고발만 하는 식은 좋지 못하다. 과정의 관계에서 대안의 설정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다. 모든 음식이 그렇게 전달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시장구조는 제대로 맥을 잡아내지 못했다.

 

수 억명에 이르는 인구가 살고 있는 나라에 식량을 저렴하게 공급하려면 그 만큼의 자본집중이 필요하다. 그러나 소규모농장이 용인되지 않은 경제적 상황, 영세농가의 현실, 자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대안성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어마한 것이고, 그 빈부격차에서 빈곤계층이 주어지는 식량은 고칼로리의 햄버그와 콜라다. 그들에게 신선한 건강식이란 벽에 걸린 그림이고, 더러운 공장에서 도축과정에서 잔인하게 죽는 동물의 피 때문에 살아간다.

 

작가는 미국 유명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몇 년 동안 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미국 중산층에 있는 사람이고, 상당한 엘리트다. 엘리트이기에 그런 책을 서술할 수 있지만, 엘리트의 한계성이 드러나는 책이다. 그런 음식을 먹고 싶고 말고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으나, 선택권이 없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있다. 미국 도심지 내 텃밭을 가꾸어 채소를 가꾸기란 무리고, 농촌에 자기의 텃밭을 꾸며서 자신의 생계를 꾸릴 수도 없다. 문제의 현실을 잘 지적해도 그런다고 대안성은 없다.

 

세계의 절반은 왜 굶는가? 미국 내 식량은 빈민을 모두 살릴 수 있지만, 모두 가축사료로 사용된다. 남는 것이 있어도 그렇게 하는 것은 절망적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하나의 숫자로 보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비참함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선택지가 파괴된 인간에게 이 책의 논리는 그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공장식 사육시설 비위생적이고 비인도적인 도축시설이 사라져간다고 작가는 말하나, 그의 말은 너무 오점이 많다. 물론 가능하다. 지금 살아있는 빈곤계층이 사회적으로 재생산을 할 수 없으면 말이다.

 

경제적 능력이 따르지 못해 2세를 낳지 못하거나, 또는 출산율이 저하되어 부부 당 출산인원이 2.0 이상이 아니라 1.0에 머물면 인구는 확연하게 감소된다. 우리나라가 지금 그런 경제적 상황에 머물려 있다. 게다가 식량의 문제, 생계에서 주거비용과 의복도 중요하나 식단의 구성에서 작은 임금으로 식사를 해결하려면 저렴한 식품공급이 필요하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상당히 낭만적인 발상만 넘치는 것 같다. 좋은 내용을 보여줘도 좋은 대안은 없다. 동물이 불쌍하게 죽어 우리의 입으로 오는 것은 안다.

 

특히나 대기업들은 자신들이 만든 환경오염문제를 자신들의 비용이 아닌 공공성의 영역을 침해한다. 이래저래 막지도 못하고, 현실을 비판하면서 뭔가 다른 길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란 얼마나 답답한가? 문제의 근원은 어디부터 있지만, 그것을 건들기도 하지만, 그 자체를 공격하지 않는다. 옛날에 가난의 상징은 영양실조이나, 지금은 비만의 상징은 과도한 비만이다. 경제적 빈부격차는 음식에서 바로 차이난다. 영양제와 항생제가 듬뿍 들어간 고기를 먹는 게 나쁜 것은 잘 알아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은 훨씬 나쁘다. “내가 이래 잘 알고 있는데, 너는 왜 그것을 몰라? 아니면 모르지만, 이것을 알면 정말 놀라울 거야.” 라는 식은 결국 자기 만족의식이 가득한 것으로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입장에 대한 배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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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6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7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6-06-07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시간이 날 때 페이퍼를 쓰려 하는 주제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육식은 반-생태순환적이지만, 인류 역사 초기의 반-생태순환은 농업이었고, 친-생태순환은 사냥에 의한 육식이었죠. 사냥감이 줄어들면 인간은 굶어 죽음으로써 균형을 이루었는데, 인간이 굶어 (또는 이에 의해 2차적으로 다른 이유로) 죽는다는 것을 막은 것과 생태 순환과 어느 것이 더 도덕적인지 고민 중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6-07 16:06   좋아요 0 | URL
저도 진보성향이나, 가끔 진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가장 짜증나는 요소는
바로 대안이 없다는 점입니다. 현실에 대해 까기만 바쁘고, 근본원인과 대안책도 없고,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면 계속 뱅뱅이니...참 고민입니다.
이번 고기도 마찬가지죠. 자신들조차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모순과 혜택을 누리면서
거기에 대한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 참..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역비한국학연구총서 14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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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을 중심으로 보는 조선이란 왜란과 호란에 따른 전쟁의 역사다. 조선 군주 중에서 전쟁의 핵심 가운데 있었던 자로써 광해군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에 읽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에서 다소 여러 가지 생각이 변화되기도 했다. 우선 선조가 참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군주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인 외교 전략이 있었다는 점이다. 광해군이 가진 독특한 외교능력은 선조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고 광해군은 그것을 조금 더 발전시켜 상당히 교묘한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이란 서적을 보았다. 그가 폭군인지 혹은 명군인지 명확하게 답을 내리기는 그러하나, 적어도 그를 한 가지로 본다는 것은 엄청난 무리수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이번에 한명기 교수는 나름 광해군을 평가했다. 외치적인 부분에서 완벽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전략은 현실적 상황을 제대로 간파한 점이고, 내치적으로 명에 대한 군사원조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원인이 조선의 궁핍한 사정이라 한다. 그렇다면 굳이 왜란으로 소실된 궁을 복원해야할 이유는 없고, 궁궐 내 수많은 은을 몰래 매장할 필요도 없다.

 

결국 그는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를 세우기 위해 혹은 자신의 왕권을 위해 매우 논리정연하고 날카로운 임금이 되었다. 그런다고 하여 광해군만 욕만 할 수 없다. 광해군의 의외의 모습은 그가 대북의 권력자들을 손을 잡고 있었지만, 대북의 영수 이이첨과 마지막에 갈등이 있었던 점, 남인과 서인 등 다른 파벌과 같이 정국을 운영하려 했던 점이다. 조선시대 남인과 서인의 갈등은 역시 정여립 옥사부터 시작된다. 정여립 옥사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때 남인의 영수로 있었던 이발은 정여립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이발의 80세 노모와 10세의 어린 아이까지 모진 고문으로 옥사했다(그래서 아버지가 왜 송강 정철을 나쁘다고 말하는지 이해간다).

 

권력에 대한 욕망에서 선조는 정철을 속아 넘어가주었는지 아니면 선조가 그런 찬스를 노린 것인지를 생각하면, 기축옥사는 매우 무서운 일이다. 선조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당파전쟁의 피 냄새가 진동했고, 조광조를 비롯한 선비를 죽임과 낙향을 만든 기묘사화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런 부분은 임진왜란을 시작하여 정묘호란의 열쇠로 이어진다. 역사란 항상 한 가지로 볼 수 없고, 다변적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적인 연구도서를 보면 이른바 변증법적인 관계성이 보인다. 어느 누군가 반응을 보이면 다른 누군가의 반응에 이르고, 그것이 하나의 갈등으로 누적되면, 피할 수 없는 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학봉 김성일이 남인으로 일본에 갈 때, 그와 같이 간 인물 간의 갈등이 조정의 보고에서 희비가 엇갈리며, 율곡 이이의 있지도 않은 10만 양병설이 김장생에 의해 만들어진다. 서애 유성룡은 양명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막상 임진왜란 시 명나라 장군이 와서 양명학을 조정에 이야기하자 선조는 주자 성리학에만 치우쳐 이야기한다. 갈등과 아이러니는 결국 또 다른 갈등과 폭발로 이어지고, 결국에 참극을 일으키는 열쇠가 된다. 이런 내정의 문제는 외교적인 문제로 확장되고, 전쟁 중에는 서로 손발이 맞지 않을 수가 있다. 동인(남인과 북인)과 서인 계열 장수가 서로 갈리고, 동인(남인) 계열의 지지를 받던 이순신은 서인의 지지를 받던 원균에 비해 혹독한 대우를 받는다.

 

사실 임진왜란 의병장 중에 곽재우 같은 경우 북인 계열이고, 충무공 이순신은 남인이었으나 사실 공훈과 비교하여 높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유성룡이 조정에서 내려올 때 이순신의 서거라는 점에서 임진왜란은 왜국과의 전쟁이기도 하나, 사실 내부적으로 정치권력의 다툼도 보였다. 그것의 시발점이 기축옥사이고, 광해군 시대에도 은근 잠재하였으며, 효종의 죽음에 이르러 크게 폭발한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적 관계, 특히 중국과의 관계성은 매우 재미있다. 이미 한명기 교수의 책에서 명나라가 원군을 보낼 때 우리나라의 실정에 무척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눈에 확 온다.

 

한국은 당시 베나 포 같은 옷을 만드는 원자재로 화폐가치를 했다면, 중국은 은을 이용하여 무역을 하였다. 은은 중국만 아니라 일본, 포르투갈, 세계 다른 국가하고 무역하기가 편했으며, 은 자체가 녹이 슬지 않는 특성에서 은화로 결재하기가 편했다. 중국의 병사월급은 은으로 주고, 군량의 구매와 죽은 병사의 장례조차 은으로 처리한다. 자본주의시대 이전이긴 해도 자본주의 경제구조 이전의 중상주의적 가치는 이미 실현된 셈이다. 은의 이용은 조선에서 용이하지 않고, 은을 받기를 원하는 중국사신에게는 조선은 어떻게든 흔들어야 했던 존재다. 선조가 급사하고 광해군을 왕위를 올리는데, 많은 은을 뇌물로 받쳐야 했고, 인조반정 후에도 인조의 책봉을 위해 또 다시 은을 바쳐야 했다.

 

은을 두고 뇌물로 활용하는 점에서 지나친 은의 징발은 국가의 존속을 어렵게 했고, 명나라 사신은 은을 찾기 위해 민가를 약탈까지 했다. 일본군이 지나면 큰 빗이 지나가도, 명군이 지나가면 참빗이 지나간다는 말처럼 은의 약탈은 조선으로 하여금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만들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관계성에서 조선에 놓인 상황은 참으로 기묘했다. 물론 광해군은 양쪽으로 외교를 보내는 것으로 유혈사태를 막으려 했지만, 막상 그것이 불만인 세력이 광해군을 뒤집자 자신들조차 그것에 얽매이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명이 임진왜란을 구해준 재조지은, 8년의 전쟁을 8년 후부터 명나라가 망하는 그날까지 도리를 조선에게 말했다. 모문룡이 와서 행패부리고, 하다못해 명나라에서 도망친 유민까지 설쳐대며, 심지어 그들의 위세를 믿고 약탈을 일삼은 조선인들이 있다고 하니 정말 한숨만이 나온다. 역사의 기로에서 400년이 지난 일들이 현실에 무슨 일이라고 하나, 모문룡의 행동과 거기에 대한 모택동의 발언이 의구심이 든다. 모택동이 모(毛)를 가진 이유로 한국전쟁 시 중공군을 내보낸 이유가 임진왜란까지 이어지니 말이다.

 

모름지기 실리적인 이익도 중요하나, 실리에 대한 명분은 훨씬 중요하다. 실리만 추구할 경우 국가가 망하는 경우도 많고, 명분만 추구하도 망하는 경우도 많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정말 그렇다.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천민을 양인으로 만들고, 우수한 무예가를 장수로 기용하는데, 많은 세력들이 반대했다. 중국은 재상만 가정을 거느리는데, 왜 조선은 너나 나나 모두 종을 부리는 것에 비판했다. 하인으로 메여 있으면 군적에 올릴 수 없고, 필요한 군사력을 보충이 불가능하다. 사대부들은 무관에 응해도 병역군무를 기피했다. 오늘날 고위 관료들이 하는 행동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반정 이전과 반정이후에 대한 모습을 보면 그 구조가 특이하게 변화하지 않는다. 조광조의 죽음이 중종반정 공신들(진짜가 아닌 자까지)의 비리와 부패를 지적한 점, 서애 유성룡 역시 양반의 특권을 축소하려 했던 점도 눈에 보인다. 연산군 시절 폭군 옆에서 권력을 누리는 자는 없어져도, 그가 누린 권력을 고스란히 타인에게 이양되었다. 중종반정 이후 백성의 삶이 나아진 것도 아니고, 광해군이 물러나도 나아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못할 경우도 있었다. 외교적 관계성에서 전쟁으로 인한 여파와 그에 대한 대책과 정책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건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기득권을 지닌 자와 거기에 동조하는 자들의 문제다. 겉으로 명에 대한 재조지은 말하던 이들이 막상 인조정권에선 아무 말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명나라 멸망 후 청나라가 들어서자 겉으로 청나라를 몰아내자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이들이 많았다. 오히려 그런 분노의 감정을 이용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적개심을 심어두어 자신들의 이권에 방해되지 않으려 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바보 같은 한 사람의 말만 듣는다는 비판은 아마 이런 기류이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성리학의 주자가 내세운 말 한 자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대응하는 시기를 계속 놓치게 만든 셈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그에 대한 책임을 전가할 필요가 있고, 거기에 강홍립 도원수가 있었다. 강홍립의 항복은 대부분 광해군의 밀약에 의한 것이라 해도, 막상 그가 출천 당시 만 명이 넘은 병사 중에 9천 명이 사망한 점에서 그게 과연 약속된 항복이란 점은 잘못되었다는 점을 이 책에서 잘 집어주었다. 자기 혼자 살고자 해서 수하를 몰살시키는 것은 몰상식하고, 그런 몰상식한 자가 책임감을 느꼈다면 계속 광해군에게 서신을 보낼 이유도 없다. 강홍립 장군 진영에 양반 출신 무관들은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같은 양반으로서 자신의 수하무관을 죽는 것을 원하는 것도 사리에 맞지 못한다.

 

역사의 기록은 언제나 누군가에 의해 전해온다. 이기지 못한 자들이 기록을 남길 수 없거나 혹은 이길 수 없었기에 변방에서 원한에 사무친 기록을 남긴다. 그래서 후대의 역사에서 다시 재조명되어 그 당시의 사료와 주변 국가의 사료까지 찾아 다시 재조립한다. 임진왜란이 대부분 많은 한국인들은 이순신의 활약만 있다고 보겠지만, 그 뒤로는 중국과의 외교문제가 엄청나게 많이 작용한 것을 잘 몰랐을 것이다. 중국이 임진왜란 때 도와준 것은 맞으나, 실제 그것이 제대로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면 조금 어렵다.

 

선조는 의병장의 활약과 이순신의 승전을 좋은 표정을 받아들이면서 악의적인 감정을 품었다. 주상은 도망쳤으나 남은 재야신료와 자신에 의해 반죽음에 놓인 명장의 위세에 많은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명군에 의지하던 선조는 결국 재조지은을 강조함으로써 변방에서 목숨을 버린 의사자를 버린 채 자신의 안위를 챙기고, 위엄을 보이려 한 셈이다. 임진왜란 공신에서 사실 그보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초개처럼 잃었다. 그들의 죽음이 인정되지 못하고, 단지 정치적 이익에서 중국의 명군에 의지하려던 그의 모습에서 오늘날 우리 현실은 무엇인가? 광해군은 자신의 궁궐을 짓는데 예산이 부족한 것을 걱정했으나, 그가 명분으로 내세운 전쟁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전쟁이 나면 많은 인명이 손상당하고, 거기에 부족한 인원을 보충해야 하는데, 전쟁 후로 부족한 인구를 어떻게 메울지, 그리고 사람들의 식량을 어떻게 정리할지를 생각하면 골치 아프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한국에서도 군사 병력의 부족사태로 방위산업체 요원이나 혹은 해외 이중국적을 가진 남성을 현역으로 복무하고자 한다. 그런데 계속 인구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국민들은 공익을 고려하여 삶을 살아야 하나 오히려 개인의 이기심을 추구하며, 정치인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운다.

 

부조리에 대한 정리에서 분명 모순을 들추어 내고, 거기에 대한 대책을 내세우나, 현실에서 반응을 엄청난 반발이 쏟아진다. 루소가 말한 일반의지, 하지만 일반의지를 대신한 사사로운 이기심은 하나의 공공성을 이루어 전체의지로 대변된다. 역사의 교훈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한다. 주변에 강대국과 38선을 경계로 군사가 대적하고 있는 상황에 외교 전략은 한국의 연속적 유지를 위한 방편이다. 극단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 되나, 한편으로 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그것은 한명기 교수의 서적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21세기가 도래하여 우리는 과연 선진국인가? 경제적 규모로 그 거품의 화려함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거품이 터지면 병속에 음료수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혹은 상해서 버려야 하는지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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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기획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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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2권을 읽으면서 전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에 대한 이야기만 등장한다. 영웅의 존재란 바로 전쟁터에서 무수한 적을 맞이하여 무찌르는 자가 바로 그런 것인가? 전에 영웅이란 무엇인가 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낼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자들, 만약 신이 그렇게 과업을 완수했다면 그것은 신이(神異)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의 육체로 태어난 이들에게 영웅(英雄)이란 말이 칭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 아니기에 신과 같은 활약을 원하는 게 인간의 심리다. 영웅이란 바로 많은 대중들이 뭔가를 원하고 있을 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전쟁에서 크고 작은 전투로 많은 인간이 죽고, 다친다. 전쟁의 승패는 남자들에겐 죽음을 여자와 아이들에게 평생의 노예가 기다리고 있다. 전쟁에서 피할 수 없는 승부를 펼치는 것은 곧 죽음이란 세계에 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노예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노예의 말로는 조금 비참하다. 노예는 인간이란 생물학적 존재로 살아갈망정,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한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노예는 재산으로 분류된다. 만약 노예가 주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면 매질을 당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주인에 의해 처형을 당한다. 그리스시대 즉 할로스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오로지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었다. 죽음과 노예, 삶과 번영, 이들에게 남겨진 것은 이 급박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영웅은 비로소 그 시대에 부응하여 나타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부와 명예인지 아니면 그들의 도시국가의 공익인지는 각자의 가치관마다 다르나, 그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한 차례의 통과의식을 거쳐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인물은 2가지로 대립된다. 하나는 원래부터 영웅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있는 인물과 그렇지 못한 인물로 말이다. 플루타르코스는 영웅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업적은 제각각이라도 그들이 어떤 신분에 있든지 충분히 영웅의 길을 선택했다는 점과 그들의 업적은 영원히 칭송받을 점을 나열한다. 단지 모든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에 그런 한계성으로 때로는 영웅들에게 허점이 보이기도 한다. 완벽한 존재는 오로지 신이나 혹은 성인의 반열에 오른 자만이 가능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이나, 그의 인간됨됨이는 남을 시기하는 이유로 로마시민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추후에 추방당했다. 자신이 그렇게 바다 속에 수장시킨 페르시아에 가서 오히려 페르시아왕의 친구가 된다. 그는 단지 남보다 위로 가기를 바란 인물이지 그런다고 목숨 그 자체를 우위에 두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마지막에 할라스의 영웅이면서 자신의 라이벌이던 아리스테이데스와 결전을 벌일 때 그는 자살을 하여 마지막을 승화한다. 권력을 가진 자는 마지막 최후의 순간은 언제나 비참할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은 모든 이들의 영웅도 마찬가지다.

 

영웅은 모두에게 칭송받는 존재이기도 하나, 모두에게 경계와 시기를 받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 희비가 갈리는 존재이므로 영웅의 마지막은 모두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게다가 영웅들은 대부분 전장을 누빈다. 전투가 잦은 사회에서는 정치와 군대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정치지도자가 전장을 누비는 경우가 많다. 전쟁의 영웅은 곧 정치적인 입지를 갖추게 되어 평화가 오는 시기에 정치력이 높은 인물은 합당한 찬사를 받으나, 그렇지 못하거나 정치에 관심 없는 자는 타인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질투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일까? 역사의 기록에서 영웅을 통해 보는 활약보단 주변 정치적 상황이 참으로 급박하다. 2권에서 인상 남은 인물은 다 그러하나 카토가 조금 인상이 깊게 베인다. 그는 부지런하여 노예와 같이 같은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게다가 일도 같이 한다. 겉으로 보자면 그는 부지런하고 삶의 열정이 가득하다. 하지만 더 이상 노동력이 없는 노예는 자신의 옆에 두지 않고 팔아버린다. 플루타르코스는 이것을 보고 인간은 이성적 논리도 중요하나,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중시했다.

 

인간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주변의 조건과 상황에 의해 운이 결정되고, 승부가 갈리기도 한다. 하다못해 말 못하는 동물조차 인간의 사랑을 받으면 그 은혜를 알고 충성을 다한다. 전장을 향하여 떠나는 주인을 그리워하는 어느 개가 주인의 배를 따라 가다 결국 지쳐 어느 섬에 도달하여 탈진하여 죽는 모습이란 참으로 슬프다. 필요 없다고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은 결국 그 자신도 필요의 조건이 사라지면 고장이 난 TV처럼 버리게 된다.

 

다른 기억나는 장면은 아마 카밀루스일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전쟁은 횟수가 줄었다. 고대의 전쟁은 군인에 의한 전쟁이다. 하지만 민간인이나 여성들은 포로로 되고 노예의 길을 걷게 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력을 채울 수 있는 건장한 남자다. 남자아이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결혼의 제도로 통해 아이를 가지고 육성시킨다. 그러나 전쟁이 나면 대부분 남자들은 무기를 들고 나가며, 때에 따라서 부상입거나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고대 할라스 시대에 인구가 지금보다 많을 리가 없겠지만, 전쟁에 나가면 기본적으로 몇 만 명이나 출전한다. 운이 좋으면 모르나 아수라장 같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남자가 죽으면 집에 있는 아내는 과부가 된다. 과부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 같다. 물론 홀아비도 마찬가지나, 전쟁은 자연의 섭리보단 문화적 과정에 의해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 인구증가, 식량부족, 주거환경 등과 같은 물질적 조건, 오로지 전쟁에서 명예를 얻으려는 상급자들의 목적, 이 모든 것이 혼합되면 전쟁으로 이어진다. 전쟁에서 죽은 자보다 더 비참한 자들은 전쟁에서 생환을 기다리는 죽은 자의 가족이다. 전장에 젊은 남자들이 출전하니 그의 반려자들은 젊은 여자이고, 이들은 꽃다운 나이에 가족을 잃은 슬픔과 사랑을 찾을 수 없는 상실이다.

 

그런데 아마 아리스테이데스가 나이가 많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처음에 설득으로 뒤로 가서 벌금으로 압박하여 과부와 결혼을 해주는 것은 참으로 바른 일이다. 누군가의 영광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고, 그 영광의 크기는 병사들의 장례식 횟수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사가 없거나, 병사를 제대로 통솔할 장군이 없으면 적은 항상 넘어와서 약탈과 살인을 저지른다. 영웅의 기지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게다가 진정한 영웅은 모든 실리와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는 게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한 전사와 신의 축복으로 바친다. 언제나 신전에 가서 신에게 제물을 바쳐 경건한 마음으로 전투에 임한다. 물론 신의 제물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 만족스러운 식사가 된다. 영웅들은 은퇴하거나 전장에 물러나면 이미 자신이 그 도시국가의 공인이란 사실을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모두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쉴 곳을 마련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 영웅으로 칭송받는 것은 무기를 든 적이 있을 때가 아니라, 배고픔과 가난을 들고 있는 적에게도 대항한다.

 

아마 여기서 카토의 마지막 삶에서 지혜가 부족한 이유가 밑에 사람에게 인식했던 점이고, 아내가 죽어 재혼을 하더라도 아들보다 어린 여자를 들인 이유다. 그가 비록 할라스에 건강한 남자아이를 하나라도 더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것도 좋으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자는 소녀가 아니라도 충분히 가능하니 말이다. 권력자가 되기까지 여정은 위대해도 되고 나서부터는 교만해지기 쉬운 게 인간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선 그런 영웅들의 차이점이 너무 잘 드러난다. 물론 말년의 판단착오가 그 업적을 지우는 것은 아니나, 사람들의 인상에 깊은 기억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인이 가져야할 의무와 도덕은 죽기 전까지 계속 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공인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계속 실망을 주는 기사를 보고 있다. 그들에게 역사의 교훈이란 없는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영웅을 시기하고 시민을 우습게보고, 권력과 이권만 챙기려하다 마지막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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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다희 옮김, 이윤기 감수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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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남지하철역 살인사건으로 남녀 간의 갈등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과연 여성은 약한 존재인가? 아닌가?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인간의 성적인 요소보단 사회적인 요소에서 찾으려 한다. 물론 사람마다 각각 다른 사고방식이 있고, 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자신만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또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결국 개인의 판단은 그(여)가 태어나고 자라며 살아온 과정이 축척된 것과 같을 것이다. 군대생활을 나 같은 경우 일반 병사가 아닌 하사로 있었다. 나하고 같이 훈련받은 동기는 290명 가까이 된다.

 

그 중에 여군도 있었다. 군번도 나보다 빠르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내가 있던 훈련소대의 조교 중에 여군하사도 있었다. 육체적으로 여성이 약할 수 있겠지만, 여성 그 자체가 약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완전군장을 한 채 언덕 위에 있는 전투훈련장을 같이 구보로 뛰었던 동기들이 있었다. 키나 몸무게가 남자 동기보단 불리했으나, 그들은 모든 것을 해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고 했던 사람이 많지 않았을 뿐이지, 충분히 보통 남자보다 더 강한 신체능력을 가지지 못한 법은 없다.

 

이런 사례는 실제 역사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상가는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 근대민주주의를 만든 장 자크 루소다. 루소의 철학과 사상을 알아 가면서 그는 언제나 로마의 시대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았고, 또한 고대 스파르타 왕국의 강인함을 빼놓지 않았다. 프랑스대혁명의 절대적인 도서라면 <사회계약론>과 더불어 <인간불평등기원론>이다.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을 읽어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스파르타 여인들은 남자를 지배하는 유일한 여성들이다.”

 

루소의 정치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스파르타의 전설적 입법정치가 ‘뤼쿠르고스’이다. 그는 스파르타가 아주 위대하고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도록 초석을 만든 인물이다. 뤼쿠르코스의 정치적 체계를 본다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다소 거칠어 보인 점도 있지만, 스파르타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다시피 매우 강력한 군대가 있고, 그 나라의 남자들은 매우 용감한 전사다. 그런 전사들은 그 누구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며 전장을 누빈다. 그런데 오로지 스파르타의 용감한 전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자는 그의 아내만이 가능했다.

 

스파르타 어느 여성은 자신들의 국가의 여인에 대해 이렇게 논한다. “그럼요, 남자를 출산하는 것은 우리밖에 없으니까요.” 루소의 철학에서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이야기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지금의 그리스와 이탈리아 같이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독재정치를 하거나 또는 국민의식 수준이 저열하지 않았다. 로마의 세계는 양심인과 지성인으로 넘쳤으며, 그들의 관심사는 공명정대한 인물로 통해 공화주의 가치관을 확립하려던 것이다.

 

다소 플라톤적인 가치관이 많이 반영되겠지만, 국가의 지도자는 모든 것을 포용하고, 진정한 명예를 아는 자라면 스스로의 위치를 알고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전쟁으로 과시하기보단 평화로써 번영을 누리고자 한다. 지금의 정치체계에서 외교적인 부분은 군사적인 무력충돌로 이어지고, 경제정책은 그 나라 생활의 질과 인구수를 움직인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이미 그 당시에도 충분한 답을 내놓는다. 스파르타의 화폐를 금과 은이 아니라 무거운 무쇠로 하는 이유는 빈곤한 자가 나오지 않으려면 사치가 없어야 한다는 점, 밭이 어느 정도 개개인에게 돌아가야 생계에 걱정이 없다는 점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1권에서 등장하는 영웅들은 거의 없어지는 과거의 국가를 뒤로 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거나, 혹은 기존의 국가의 정치적 체계를 발전시킨 자들이다. 각자 영웅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업적을 보고 있으면, 딱히 뭐라 쓸 수 있는 글이 없다. 각자만의 스타일과 추구하는 방향성은 다르나, 그들이 다른 사람과 차이 날 정도로 비범한 인물이란 점, 그들의 이야기는 플루타르코스가 태어나기 몇 백 년 전에 등장하여 플루타르코스가 죽은 지 2,000여 년이 지나도 계속 전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미술작품에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등장하는 장면이 많다.

 

푸생의 그림 중에 <사비나 족 여인들의 겁탈>이라던가 루벤스와 구에르치노 같은 유명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도 많다. 역사를 기록한 서적이 문학적 가치도 가지고, 또한 미술적 상상력까지 이어준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등장하는 그림들은 16세기 르네상스를 거쳐 17세기 때 활동하던 화가들의 명화를 소개한다. 어디서 얼핏 본 것 같은 그림이 등장하면서 르네상스라는 인문정신이 바로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책을 보고 있으면 영웅의 각 면모는 개성이 넘치는 당시 살아간 인간들은 우리하고 별반 차이 없는 모습을 잘 발견한다. 단지 영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나, 그 영웅으로 통해 보는 당시 세상을 안다는 것은 인류가 이때까지 살아온 흔적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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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5-2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만화애니비평 님.

언젠가 읽어야 할 책으로 항상 염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책에는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 비교가 빠진 책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 책은 원전의 구성에 맞춰진 책 같습니다. 이 책 번역은 어떠한가요? (요즘 분량 있는 책을 집어들 때 떠오르는 생각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5-25 10:53   좋아요 0 | URL
제가 번역이 잘 되고 못 되고를 말하기가 어렵지만,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내용이 상당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중간마다 삽화나 동상, 그림 등이 들어가서 아주 이해하기 좋게 만들어진 겁니다.

이다희 번역자는 그리스로마 신화로 유명한 이윤기 선생님의 따님입니다. 그분의 영향을 받았으니 내용을 받아들이는 독자에게 잘 포커스가 맞추어진 것 같습니다.
동서출판사 본은 살짝 보니 보는 사람에게 조금 불편하게 편집되었더군요.
2권짜리가 3권짜리 되면서 목차설정이 조금 그렇다고 하더군요.

마립간 2016-05-25 11:33   좋아요 0 | URL
답변 감사합니다. 참고가 되었습니다.

루쉰P 2016-07-1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거 볼라구요 ㅋ

만화애니비평 2016-07-17 19:37   좋아요 0 | URL
오~
 
광해군 - 역사인물 다시 읽기
한명기 지음 / 역사비평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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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관련 학자 중에서 개인적으로 한명기 교수의 글이 참 와 닿는다. 전에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에 대한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자료와 고찰을 담은 글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사회에서 독서를 한다면 대부분 서양철학사와 서양사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는 마련이다. 물론 서구화라는 거대한 조류에 의해 우리가 서양에 대해 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숙명적인 상황이다. 그런다고 우리의 과거를 내놓는다면 우리는 나중에 큰 문제를 발견할 것이다. 과연 나는 누구란 말인가!

 

예전에 영화 <광해>를 통해 한국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 정치적 지도자가 가져야할 위품에 대해 큰 호응이 있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그 열기를 살려 대국민적으로 고찰하고 그 의미를 찾아가는 반성적 자세보단 그저 감정소모라는 엔터테인먼트에 치중해버렸다.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는 이른바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소비하는 시대가 왔다. 감정을 소비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감명을 받으면 여기서 새롭게 자신을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을 그 감정에 충실하게 반영하여 마치 자신이 나름 좋은 인간이란 것은 집단주의적인 승인만 하고 끝이 난다.

 

안 좋게 말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하루 종일 바쁜 일과 중에 뭔가 매달려 여유가 없으면 모르나, 문화콘텐츠란 것은 여가를 이용하여 즐기는 것이다. 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봐야 할 것들이 있다. 문화라는 것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축척물이다. 문화는 역사적 토대 위에 새겨진 하나의 세계이다. 그리고 그 문화 자체가 역사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과정이다. 역사와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재생산하는 매체인 것이다.

 

그 매체를 이어주는 것은 누군가? 바로 인간이고, 한국의 문화는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물론 외국과의 교역과 교류 역시 문화적 요소로 발전한다. 그 문화적 요소가 반영되면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다. 영화 <광해>를 보면서 군주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한편으로 광해군이란 인물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것이다. 한명기 교수의 서적을 보면서 광해군은 당시에도 혹은 지금에도 크게 이상하게 변질된 인물이다. 물론 그가 우유부단한 요소와 후에 궁궐 재축조로 많은 혈세를 낭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다르게 조선의 한의학을 발달시키고, 역사와 학문을 세웠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약을 타가는 사람들은 모두 허균의 <동의보감>에서 덕을 본 것이다. 허균은 광해군이 없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었고, 불사의 기록인 <동의보감> 역시 탄생하지 못했다. 한국의 의학에서도 광해군이 이룩한 400여 년 전 성과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은가? 이런 광해군을 영화 <광해>에서 다루기 전에 한명기 교수가 <광해군>이란 서적을 21세기 초에 내놓았다. 책을 읽어봤지만, 서인에 의한 인조반정 이후 광해에 대한 기록은 상당히 사라지고, 조작되었을 알 수 있다.

 

선조실록, 광해일기, 인조실록에서 광해군에 대한 부분이 여러모로 변경된 점이다. 선조실록은 북인이 작성하고, 광해와 인조는 서인이 주도했다. 물론 실록은 서인이 노론이 되어 또 시도했다고 한다. 광해군과 인조반정은 여러 가지 문제가 숨어 있다. 우선 연산군에 대한 반정 이후로 조선은 신권이 강한 권력을 잡게 되었고, 중종은 신권에 의해 노심초사하여 결국 신규 사림세력을 숙청한 기묘사화를 일으킨다. 중종과 명종, 그리고 선조로 넘어오면서 사림이 대거 진출하고, 선조는 아주 이기적인 군주로서 신하들을 실험한다. 정여립 모반사건이나 혹은 다른 붕당정쟁에서 교묘히 이용하여 신권 세력을 내려찍는 행위를 한다.

 

제일 말도 안 되는 행위가 의병활동을 남인과 북인이 주도했지만, 의병장에 대한 공신품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오히려 의병에 대한 백성들의 신망에 질투하던 인물이다. 그런 질투 대상은 자신의 아들 광해군 역시 그렇다. 조정은 한 나라에 하나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권한을 아들 광해군에게 넘겨주어 자신은 전쟁터로부터 도망치고, 백성의 원망과 반기를 잠재우기 위해 광해군에게 모든 사무를 처리토록 한다. 광해군은 세자로 임명받아 전쟁 중에 전쟁터를 누비며 전투지원과 사무지원, 그리고 의병장을 소집하였고, 왕세자가 직접 교지를 내려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조선에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까지 전쟁의 피를 알고, 나머지는 전쟁의 피를 몰랐다. 세조가 반정해도 그는 자신의 궁궐에서 피를 보았지 전쟁의 피를 본 것은 아니다. 조선에서 태종 이후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한 왕은 광해다. 전쟁을 안다는 것은 구중궁궐에서 편히 있는 게 아니라 직접 백성들과 마주하며, 수시로 오는 전시판단을 내려야 한다. 명과 외교관계, 신하와의 사무조정, 무장과 작전회의, 백성에 대한 구휼정책에서 광해군이 가진 지도자적인 정치력은 탁월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쟁 중에 도망치기 바쁘다, 후에 전쟁 후 조정이 안정되자 몰려온 사대부들, 서애 유성룡이 전쟁 중의 폐단은 군사력의 약함도 있지만, 장병이 되어야 하는 백성들이 너무 가난하고 약하다는 점이다. 대동법을 실시하려도 많은 양반들이 반대를 했고, 이것은 당연히 임진왜란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 시켰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보아도 실리 없는 명분, 명분이란 허울이 우습게 보인다. 유학에서 사대부란 무릇 백성을 보살피고 그들의 억울함 없이 삶의 업무에 종사토록 하는 게 책무다. 그런데 오히려 사대부란 소리치는 이들은 백성의 억울함을 방관했다.

 

길거리에 배고픔 사람들이 넘쳐 죽고, 심지어 시체를 뜯어먹으며, 다른 사람을 살해하여 배를 채우는 아귀들의 싸움에서 조선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이다. 이런 상황에서 타개할 것은 무엇인가? 전쟁 중에도 혹은 전쟁이 끝나도 가장 어려운 문턱은 국경 밖의 외국군이 아니라 궁궐 아래 말을 내놓는 권력가들이다. 광해의 실각은 이런 문제점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명분에만 빠져 현실을 보지 못하는 똑똑한 바보들의 활약도 마찬가지다.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을 주장하다 어느 순간 인조가 청나라에 머리를 숙여 치욕을 벌일 때, 그들은 자신의 목숨과 재산만 지키기 급했으며, 후에 명나라 대신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을 때 명국에게 한 것처럼 하였다.

 

광해군이 전쟁을 최대한 말린 이유는 전쟁을 하려면 많은 병사가 필요하나, 조선에는 임진왜란 중에 많은 사람이 죽은 점, 전쟁에 참전하면 많은 군량과 재원이 필요하나 굶어죽는 백성이 넘친다는 점이다. 명과 청의 군사 분쟁에서 명나라에 군사지원을 적극적으로 보내자는 것은 조선을 아예 멸망하자고 하는 것과 같다. 대신들은 그런 광해군을 비판했고, 반정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제 자신들이 그 운명의 바람에 서 있을 때 그들은 광해군이 했던 조치를 따라했지만, 광해군만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서인(노론)에 의해 평생 죽을 때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비난당해야 했던 강홍립은 사실 조선의 운명을 걱정하여 광해군의 뜻을 따랐다. 정묘호란 때 강홍립은 청나라 군대의 장수로 출전했고, 조정대신의 부탁으로 청군이 철수할 때 민가에 대한 노략을 최대한 방지해달라고 했다. 강홍립을 그 약속을 지켰다. 오히려 그는 과거에 청군에게 이길 수 없는 것을 알기에 항복하여 조선병사의 희생을 막았으며, 청국에서 광해군에게 서신을 보내 정보를 계속 제공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강원도까지 올라가면서 명국의 사신과 장수로부터 청국의 민족인 여진족의 용맹을 익히 들었다.

 

21세기 한국도 국방군사 전략에서 정보전은 필수다. 우수한 보안설비와 첩보 활동은 외국의 움직임을 읽고, 내부의 정보를 최대한 절제하여 위기를 막아야 한다. 최근에 보이는 것은 단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감시에만 치중한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은 17세기 인조 시기도 마찬가지이었다. 인조와 반정공정 대신은 자신의 당파가 아닌 자들을 시시각각 감시하고,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귀양을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 꼴이 인조가 청나라 장수 앞에서 땅에 머리를 박고 치욕을 겪은 일이다. 외교적 전략은 자신을 위한 것도 되지만, 그 자신을 위한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백성을 지키는 것으로 가능했다.

 

광해군이 얼마나 백성을 아꼈는지 모르지만, 일반 조정대신보다 훨씬 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비참한 조선을 보았다. 그의 마지막은 비참하고 외롭게 마무리했다. 그가 세상을 하직할 때 정식으로 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귀양지의 천민에 의해 염을 마무리했다. 찾아오는 이들은 모두 잡혀가고, 아들내외 모두 죽었다. 심지어 자신이 왕족이고도 불구하고, 종이나 천민들의 조롱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된 점, 그런 물거품으로 일어날 대참사가 어떻게 될 것이란 점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광해군은 대북에 의해 집권했지만, 정권 초반에는 이원익이나 이항복, 이덕형 같은 서인과 남인 계열 대신을 정승으로 올린 이유는 정치적 당파의 원군도 중요하나, 실무에 대한 원활한 처리능력을 가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여립모반 사건 이후 어느 한 정당이 조정에서 퇴각하게 되는 상황에서 탕평책을 가장 먼저 실현하려 했던 왕이 광해군인 셈이다. 물론 이항복과 이덕형은 천수를 다해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그래도 광해군은 최대한 인재를 불려 사용하려 했다. 이런 점은 최명길 같은 인조반정 공신을 불러오는 화가 되었지만, 정말 그를 내려 보는 것은 부당하다.

 

광해군은 개혁을 주도했던 임금이고,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군주다. 21세기 군사작전은 무기의 첨단능력과 장병들의 자질이다. 무기와 군수물자 납품비리에 로비를 주도하는 군인들이 넘치는 일들을 보면 참으로 나라가 걱정된다. 인조 때 호란의 패배원인으로 군사훈련이 부족하고, 무기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한 정권이니 다시 쿠데타에 의한 전복이 두려웠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은 조총을 들고 와서 장거리 사격을 하는데, 명중도와 타격도가 낮은 활로만 응전하려 하니 상대가 되겠는가? 무기비리와 군수물품으로 장난치는 상관이 있으면 부하들이 제대로 말을 듣겠는가?

 

지도자의 자질이 바로 여기서부터 잘 드러난다. 광해군이 가진 문제는 있지만, 현장중심의 실무와 이권에 연연한 권력층의 압박에 굴하지 않은 점이다. 원칙을 고수하되 유연한 대응은 임진왜란 이후 전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계책이었다. 청국과 명국의 불온한 상황에 일본과의 수교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말로만 이러쿵저러쿵해도 막상 일 터지면 나 몰라라 도망치는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한국의 근현대사 역시 이런 모습이 낯설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최근 친구와 통화하면서 다음 대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친구가 지지하던 후보에 대해 듣자 조금 나는 한숨을 쉬었다. 새로운 사람이 해야 하지 않은가 라고 했으나, 사람이 바뀌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현대까지 이어온 것을 얼마나 다시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의 반정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겉으로 반정과 반정공신의 문제를 보면 겉으로 명분만 내세우나 그 이면의 문제점은 항상 같다. 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기득권과의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반정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반정공신은 과거의 낡은 유물철폐라고 하나, 그들이 몰아내고 싶은 자들이 해놓은 일들이 다시 원위치 되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역사를 왜 배우는 것인가? 다시 고생하지 않기 위해서다. 바꾸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 놓은 틀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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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5-1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시대의 최고의 입담이라 회자되는 한명기 교수~^^ 책도 물론 좋지만, 강의가 끝내주게 좋더이다~ 한 때 한국사학과 학생들이 개부럽게 느겼졌던 때가 있었지요..ㅎ

만화애니비평 2016-05-19 08:16   좋아요 0 | URL
직접 들어보셨나요~~
아유 부러워라..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