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로 장식한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이  추락사했다.
아무도 그녀가 누군지 무엇때문에 죽었는지 몰랐다. 경찰은 불상으로 처리했고 그녀는 무연고 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그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름없는 존재였던 것은 아니었다. 나름 잘 사는 집에서 자랐고, 남편과는 유학시절 만나 연애결혼을 했었으니까.
무연고자로서의 자격요건을 처음부터 갖고 있지는 않았던 셈이다.
단지 문제가 있었다면 남편이 직업을 가지려 하지 않았던 것이랄까.
아이엠에프 시절의 아버지 세대가 실직할 위기속에 전전긍긍했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었다.
아무리 집이 잘 살아도 그건 돈을 버는 세대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느 누구 하나라도 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 집은 단번에 추락해버린다.
그런데도 그녀의 남편은 유학파라는 딱지를 단채로 취업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확실히 노는 것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의 무의욕에 대해서 논할라치면 단번에 취업하기에는 자신의 양심이 있어서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취업하지 않는 편이 있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말이 나오는 족족 그렇게 대답하니 다들 유학파이니 알아서 하겠거니...라고 넘어가버렸다.
더더군다나 양쪽 집안 모두 독립성을 중요시하는 집들이라서 한번 두번 도와주고는 끝이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유학파 딱지를 단채로 계속 노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 그녀의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녀 또한 유학파.
하지만 남편과는 다르게 그녀는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단지 그녀가 공들이고 잘 하는게 있다면 몸단장 정도?
그리고 성격이 꼼꼼하고 애살발라서 적어도 아르바이트 자리에 앉혀놓으면 돈을 제대로 번다는 것 정도였다. 중소기업에도 몇번 취업해서 실적을 거둔 그녀는 거기에서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라는 것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생겼다가 사라지고 하는 것이라서 얼마 안가 그녀의 자신감도 사그라들고 말았다.


어느날인가는 남편이 잘 입지도 않았던 양복을 꺼내서 정성껏 다림질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어디 가?"

매일 의욕을 상실한채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던 남편이 움직이는 게 의외였던 그녀였다.
그녀에게 남편이 대꾸했다.

"당신도 옷 갈아입어. 부부동반 모임있어."

"......"

무의욕이건 어쨌건 유학시절에 연애했던 기분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었기에 그녀는 순순히 그와 부부동반을 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현실감이 있었더라면 결혼 초기에 이미 이혼을 해도 몇번이라도 했을 터였는데도 말이다.


그 모임은 유학파들 모임이 아니라 남편 고등학교때 모임이었다.
고등학교라도 명문으로 소문난 곳이어서 그런가 남편 동창들 중에는 변호사도 있고, 행정사무관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백수가  끼일만한 곳이 못되었던 것이다. 
보통 그런 곳에 끼이면 기가 죽거나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본래 그런데는 무심한 사람이라서 무난하게 넘어갔다. 다들 남편의 성격은 잘 아는지 특별히 모독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만 그랬을 뿐, 아예 남편은 열외였던 것이었다.
자기들끼리는 직함을 두고 낄낄거리거나 놀리거나 하곤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그날 남편에게 말못할 비밀이 생겼다.


그녀는 돌아와서 줄곧 생각했다.
어째서 남편은 직장을 가지지 않는 것일까.
직장을 가지지 않는 것은 좋다. 요즘같은 세상에는 여자만 놀고 먹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일하고 있다면 적어도 남편은 가사일이라도 해야 되지 않는가? 왜 일을 하면서 가사일까지 도맡아해야 하는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화려한 진영을 보니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때 건네받은 명함에 조금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여성은 남성의 권력과 힘에 매혹된다고.
그녀는 자신에게 명함을 건넨 모 기업의 사장에게 마음이 조금씩 끌리는 것을 느꼈다.

"요즘 형편이 많이 어렵다면서요. 제수씨. 필요할 때 연락주십시오. 그리고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제수씨 정말 미인이십니다."

그 말에 넘어가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달콤한 꿈을 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녀는 그에게 연락해서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소규모 사무소에 간단한 일자리를 얻었다.


남편은 그녀가 자신의 친구직장에 입사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텔레비젼 리모콘이나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유학시절에는 날씬했던 그의 몸매가 점점 두리뭉실해지고 있는 것도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남녀모두에게 똑같은데 그녀에게만 짐을 지우는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이번에는  중학교 동반 모임이 또 있었고, 그 다음에는 유학파들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다.
대부분 사정은 비슷했고, 그녀는 저번과 엇비슷하게 명함 몇개를 남편 모르게 받았다.


어느날인가, 그녀가 근무하는 곳의 사장-그러니까 남편의 친구-가 그녀를 불렀다. 해외에서 바이어가 부부동반으로 왔는데 자신도 사적으로 만나야 할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엄연히 부인이 따로 있는 그가 말이다.

"우리 부인은 너무 뚱뚱해서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도 않아요. 더더군다나 너무 촌스러워서..."

"하지만..."

"제 얼굴 좀 세워주세요."

그는 사람을 통해서 새옷도 그녀에게 몰래 보냈다.
이쯤 되면 통보나 다를 바 없었다. 그의 비위에 거슬리면 이번 직장에서도 해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알겠다고 하고 하루, 그의 부인으로 행세했다.
점점 더 그런 일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명함을 준 사람들은 그녀에게 소소한 부탁을 하기 시작했고, 그 부탁의 댓가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편 더 많은 것을 챙겼다.
점점 더 뚱뚱해진 남편은 그녀에게 새옷이 얼마나 늘었는지, 밤 늦게 나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 무관심했다. 아니 오히려 그 무관심으로 더 부추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그녀는 이혼을 결심했다.


"이혼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긴 하니?"

여자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 말을 털어놓았을 때 나온 말들이었다. 부모님에게도 알렸지만 부모님은 그저 참고 살아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단지 어머니는 사위가 밉기는 미웠는지 정 힘들면 3년정도 버텨보고 이혼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사장이 그녀를 따로 불러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나눌때도 살짝 그 이야기를 언급하자 사장은 반색을 했다.

"아니, 그 놈이 그 정도 밖에 안되는 놈이었어요? 학창시절 공부도 잘 하고 해서 다르게 봤는데...제수씨가 고생하시네요. 그렇게 힘들면 하셔야죠...힘들면 저한테 꼭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면서 사실 자신도 부인때문에 고생이 심하다고 했다. 부인은 눈치도 없고 의부증이 있는지 질투심도 심한데다가 못 생기기까지 했다고 했다.

"언제 한번 우리 힘든사람끼리 툭 털어놓고 대화합시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마무리한 사장은 유쾌하게 웃었다.

"시간 비워둘테니 연락받아둬."

마지막은 편하게 반말이었다. 조금 기분은 이상했지만 나이로만 따지면 사장이 몇살 많았으므로 이해했다.

 
이혼하자는 말에 남편의 반응은 뚱했다.
그녀가 뭘하건 무관심했던 것만큼이나 이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혼하자. 우리. 미적지근하게 대꾸하지 말고 확실하게 대답해줘."

그녀의 말에 남편이 역시나 뚱하게 대꾸했다.
내용만으로만 따지면야 열렬한 반대말이었지만.

"너, 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니?"

"당신은 수입도 없잖아. 있건 없건 상관없어."

무자르듯이 냉정하게 대꾸하는 그녀였다.

"너, 내 친구랑 뭐하고 다니는지 내가 모르는 줄 알아?"

표정 변화없이 그런 말을 구사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오싹함을 느꼈다.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럼 어디서 없던 옷이 새로 생기고, 밤늦게 돌아다니냐. 그리고 휴대폰 문자는 어떻고..."

"당신이 오해하는 거야."

그녀의 대꾸에 남편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지금까지의 미적지근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입다물고 밥이나 먹으니까 바보같냐. 그래, 남편친구들에게 뒷공작해서 어설픈 일거리나 얻어걸리고. 남의 부인 행세나 해주고, 밤에까지 같이 놀았는지 안 놀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러면서 남편은 그녀 핸드백에서 꺼냈다면서 도청기를 꺼내들었다.

[언제 편한 시간 비워둬.]

그녀는 옴쭉달싹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기묘한 상황은 반복되었다. 남편은 취업할 의지도 가지지 않고 여전히 리모콘을 돌려댔고, 그녀는 편한 시간대에 남편의 친구들과 만났다.
남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알고 있는 이상 간통죄로 이미 걸리려고 하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터놓고 상담받으려 한 것이었다.


[이혼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여럿의 의견이 같았다.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가 근무하는 곳의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남자들이란 그런 것들이라는 인식없이 순진하게 만나고 다닌 것이었을까. 그녀는 후회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진짜도 있었다.

[이혼하고 저랑 결혼합시다.]

때늦은 미혼남의 구애에 그녀는 설레기 시작했다.
잘 생겼고, 잘 나가는 회계사였다. 그녀는 도청기가 설치되었거나 말거나 이내 그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이렇게 따뜻한 연애는 처음인듯 했다.
남편과도 물론 연애로 시작해 결혼하기까지 했지만 그때는 뭔가 빠진 듯한 연애였다면.
지금은 조건이나 마음으로나 확실히 달랐다.
문제는...


남편이 아니라 회사 사장에게 있었다. 그는 그녀가 연애를 시작한다는 걸 알자마자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네깟 년이 뭔데 멀쩡한 남편 이혼하고 말고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낚아?"

사람들 없는데 불러다놓고 욕설은 기본이고 얼핏얼핏 성추행을 일삼기도 했다.
처음의 따뜻한 응대와는 눈에 띄게 다른 태도였다.

"네 남편한테 다 일러줘서 간통죄로 넣어버릴까? 그 놈도 같이 넣으면 좋아하겠지? 회계사가 다 뭐야? 콩밥 먹으면 끝이지."

남편도 그녀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혼하면 그대로 그녀의 부정을 폭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도저도 못한채 사장과 남편이 시키는대로 사장을 만나기 시작했다.
회계사는 그런 점을 알지도 못하고 그녀에게 왜 이혼이 늦어지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서류 준비 중이라는 말로 둘러댔다.
이쯤 되면 이혼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애인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이혼은 귀책사유 있는자가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장과 남편은 그걸 알고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그녀는 계속 그 두 사람에게 끌려다녔다.
악질적인 것은 그렇게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회계사와 헤어지게 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그녀가 양심에 찔려 회계사와 헤어지려고만 하면 헤어지면 모두에게 사실을 알리겠다면서 협박을 일삼았다. 
사무실에서는 그녀의 그런 행태를 알고 그녀를 왕따시켰다. 사장은 그리고 그걸 빌미삼아 그녀를 해고했다.

한때마나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은 충분히 갖고 있던 그녀가 추락하기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믿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 유린하자 그녀는 빌딩에서 떨어져내렸다. 하지만 경찰과도 결탁하고 있던 남편의 친구들 중 하나가 그녀의 신분증과 유서를 빼돌려 그녀는 불상자로 기록되어 있다가 얼마 되지 않아 무연고 묘지로 가게 되었다.
 
회계사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사라지자 잠시 슬퍼했지만, 이내 새로운 사람을 사귀었고 사귄지 3개월만에 결혼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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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2-04-09 0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자에서 모티브를 좀 따왔습니다,
 



원점(1)

금발에게 다가가지 마세요.
그녀는 멍청하고 골이 비었거든요.
결혼하려면 갈색머리와 하세요.
그리고 빨강머리를 언제나 그리워하세요.

그런 노래가 흘렀던 것 같다. 대학시절 처음 사귄 남자친구와 들렀던 매장에서. 영어를 잘 못하는 남자친구는 못 알아들었지만 난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자를 대상화 삼는다고 항의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하필이면 왜 그 때 내 머리가 노란색이었을까...하고 생각하면서.

"다 끝났다. 어때 이 신발 괜찮지?"

나이키 운동화를 사면서 해맑게 웃던 그 남자친구와는 얼마 안되어서 헤어졌다.
꼭 그 노래때문은 아니었고, 쇼핑 다닐때마다 따라다녀주는 남자친구가 흔한 것도 아니었다.
좀 아깝긴 했지만 어쨌건 안 맞는 사람과는 계속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그리고 그 앨  처음 만났다. 정말 금발이 잘 어울릴법한 여자아이.
그때엔 내 머리가 이미 노란머리가 아니라 갈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다.

"어떻게 나랑 헤어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

실연당하는 장소에서 펑펑 우는 여자아이가 그렇게 흔하건만. 왜 나는 분홍색 옷을 입고 우는 그 아이에게 금발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얼마 뒤에 그 아이하고 친해졌고, 쇼핑 다닐때 어느 순간 그 애 손에다가 금발 염색약을 쥐어주었다. 그렇다고 그 매장에서 들은 노래처럼 비하할 의도는 없었다. 그냥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랬을 뿐이었다.

"잘 어울려?"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온 그 아이의 말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어울렸다.
전체적으로 흰 얼굴에 노란머리가 아주 잘 어울렸다. 흡사 마릴린 먼로를 보는 것 같달까.

얼마뒤부턴가 그 애 주위에는 다시 남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금발 때문인건지 아니면 그 맹한 성격때문인지. 하긴 여자아이들도 주변에 많이 있긴 했다. 워낙 패셔너블하게 해가지고 다니니까. 금발은 거기에 화룡정점이었고.

그래서 어느날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내가 그렇게 놀란 것이었을까.
마릴린은 여러번 결혼하고 이혼했다. 그 전철을 이 아이도 밟을까봐 걱정된 탓이었다.
걱정은 무슨.
금발은 내가 그냥 손에 쥐어준 염색약때문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앤 결혼을 아주 무난하게 잘 하고 있었다. 그 남편이란 사람이 실직을 밥먹듯이 해서 문제지.
그것만 빼면 그 앤 두 아들을 슬하에 둔 채 아직도 잘 살고 있었다.

그 노래의 최면효과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 앨 보면 가슴이 덜컹거린다. 이제는 더 이상 금발도 아니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 아줌마인데.
하지만 난 아직도 갈색머리이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 결혼에 목매고 싶진 않지만 부러운 건 사실이다.

 원점(2)

빨강머리 앤은 왜 그 매력적인 머리카락을 포기하려고 했을까. 난 항상 그게 의문이었다. 타는듯한 붉은머리 멋지지 않은가?
나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빨갛게 염색을 했다. 대학시절이 좋은 건 단 한가지 때문이다. 자유. 고등학교 시절에는 누릴 수 없는 바로 그것.

"빨갛게 염색했네. 안 어울린다."

내  친구들 중에는 여러명의 종류의 인간들이 있다. 염색약을 선물하면서 너랑 잘 어울릴거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고, 기껏 염색하고 나타나면 안 어울린다고 말하는 갈색머리도 있고...

"내 맘이거든요, 참견하지 마시죠."

그래도 친하니 용서한다. 하긴 뭐 별 문제도 아니니까.
속으로는 약간 고소해하기도 하면서. 그 갈색머리는 사실 염색으로 만든 가짜니까. 
실제로는 붉은 기가 강하게 도는 갈색이다. 워낙 붉은 기가 진해서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혼도 많이난 모양이었다. 그래서 갈색으로 물들이다가 얼마 전에는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다녔다.
물론 원래 머리카락 색이 붉으니 염색도 잘 먹지 않아서 색깔이 영 희한하게 나왔지만.
얼마동안 원래 머리카락으로 돌아가나 했지만 얼마 뒤에는 갈색으로 염색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왜 그 예쁜 빨강머리를 포기했는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고등학교때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 그거 엄청난 트라우마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훨씬 뒤의 일이다. 붉은색 머리카락은 날라리로 보인다고. 그렇게 노는 여자처럼 보이기 싫다고 언젠가 다른 친구에게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한번 그 문제로 실연당한 일이 있는가보다...
라고 생각할 따름이다.

원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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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시절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과 수필들을 좋아하곤 했습니다. 그 중 안자이 미즈마루 화백의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 두부에 대한 수필을 썼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군요. 그 부분을 다룬 수필집 원서가 집에 굴러다니기도 하는 걸 보니 꽤 기억에 강렬했던 모양입니다. 원서는 결국 안 읽고 구석에 처박혀있지만요.

그런 저였지만 마라톤이라던가 재즈에 심취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비범위밖이더군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제외하고 야금야금 읽어나가곤 했는데 요즘은 재즈라는게 뭘까?하고 호기심이 생겨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와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하여간 재즈를 다룬 소개문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 스탠 게츠를 다룬 부분이 인상이 깊어서 재즈는 어른들의 음악이야. 심야의 껌껌한 방안에서 답답하게 창문도 안 여는 어른들이 라디오를 틀어놓고 듣는 음악이지(이것도 중학교때 생긴 편견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묘하네요.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 앱플레이어에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스탠 게츠가 나란히 들어있죠.

특히 제 연작 중편 제목인 안녕 안녕 검은새야. 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곡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입니다.(딱히 아직까지는 큰 감동을 받지는 않았군요. 두 사람에게. 제 귀가 아직은 막귀인가봅니다. 그래도 스탠 게츠까지는 이해가 가려고 해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감동을 받았는지 쪼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묘하게 사람 마음을 간질이는 부분이 있더군요.)

마일스 데이비스의 안녕 안녕 검은새야는 아무래도 스기이 히카루의 안녕 피아노 소나타에 나오는 장면이 인상깊어서 그런가 봅니다.

스기이 히카루의 안녕 피아노 소나타도 꽤 감동적인 작품이어서...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를 읽고 나서 후기를 읽으니 더욱 머리가 아파집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과 소설을 그렇게 많이 섭렵했었다는데 저는 음악의 음자도 잘 모르고,

소설은 고등학생때까지 읽다가 대학시절부터는 거의 안 읽어서 문맹이나 다를 바 없거든요.

그런 인간이 소설가를 하겠다고 소설을 두드리고 있으니...지금부터라도 많이 봐야할 것 같습니다.

천하의 하루키도 그렇게 많이 읽고도 안 쓰다가 야쿠르트의 3루 안타에 쓰기로 했다니 말이죠. 사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후기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내용은 뭐, 재즈에 점점 더 익숙해지면 더 좋아할 수 있겠죠.

 

ps. 제 좁은 소견상 재즈를 좋아하는 동세대는 유난히 노숙한 분이 많더군요. 외모가 아니라 생각하는 것하고 행동하는 게...

클래식 좋아하는 분은 어떤 분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재즈보다는 아직까지는 가요하고 클래식이 더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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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녕안녕 검은새야로 세번째 인사를 드리는 태인입니다.
안녕 안녕 검은새야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배경으로 하는 여동창들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2000년도에 20대를 보낸 분들과 공감대를 가질 수 있을런진 모르겠지만 제게는 2000년도부터 2012년도까지가 각별하게 느껴지는 시기라서요.
굳이 따지자면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아라포(올라온드 포티)와 유사한 형태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서른살 여자의 감정이라는 게 좀 미묘하죠. 
연애소설이라고 시작은 하는데, 과연 연애소설로써 제대로 기능을 할 것인가가 문제겠군요.(웃음)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던 가곡의 성이 미묘하게 조절에 실패한 걸 생각하면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잘 해야 할텐데하고 고민합니다.
연작 중편이고 총 7편입니다. 1개월에 1편 정도 올라올 예정이지만 변경될지도 모릅니다.
많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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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기만 하고 읽지를 않아서 방안이 온통 책으로 깔려있습니다.

막상 정리해보면 몇권 되지 않을텐데 말이죠.

그런데 잊어버리고 또 사고 또 사고 해서 읽을 책이 한가득이네요.

앞으로는 서재정리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앞으로 읽을 책이 더 늘어나지 않게 해야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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