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마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6
조지 엘리엇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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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 마치』​​

조지 엘리엇 (지음) | 이미애 (옮김) | 민음사 (펴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버지니아 울프가 이 소설을 그렇게 칭찬했는지, 왜 성인을 위해 쓰인 극히 드문 영국 소설 중의 하나라고 했는지 말이다. 읽어보니 그리고 맥락을 보니 왜 그런 칭송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기존의 여타의 다른 소설과는 접근하는 문법이 다르다. 빅토리아 시대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 시절 여성들의 삶이란 어떠한가? 막 피어나려는 데 짓 밝혀야 하는 아마도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머리로는 기존의 관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아직 사회는 그들을 사회 구성원을 받아들이려는 준비가 덜 되어있었다. 여성의 참정권이 막 논의되고 여성운동의 시발이 꽃 피는 즈음 정말 현대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당대의 여성 지식인들의 삶은 아마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작은 응접실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왜 그렇게 썼는지는 자명하다. 벨이 울려 사람들이 들어오는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얼른 작은 수첩을 닫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작은 책상에서 그런 대작이 탄생했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조지 엘리엇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은 어쩌면 그녀의 자전적인 글쓰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의 평소 생각들이 글 속 곳곳에 녹아있는 듯하다. 그리고 결혼에 대한 고민과 배우자에 대한 생각, 진정 여성이 나아가야 할 길 등등이 책 속 맥락 구석구석 녹아있다.

극 중 도러시아라는 인물은 몹시도 흥미롭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꿈보다는 남편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 자신은 사회적 제약 때문에 포기한 지적 열망을 그녀는 남편의 대상이 되는 목사 캐소본에게 투영한다. 흡사 자신의 못 이룬 꿈을 대신 이뤄주기를 바라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모의 바람을 그녀는 자식에게 투영하는 대신 남편에게 투영한다. 과연 남편인 캐소본은 그녀가 바라던 그런 남편감이었을까? 그녀는 캐소본이 현대의 밀턴이 되길 바랐다. 그는 학자로서도 무능했을뿐더러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심지어는 도러시아에 대한 애정도 없었다. 그가 도러시아와 결혼한 배경에는 그녀에게 그다지 결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 유일했다. 기대가 없으니 애정도 없는 것이다. 도러시아의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아마도 그녀는 캐소본이 학문에의 열정이 없고 그다지 기대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에 실망이 컸을 것이나 애정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스스로 힘들었을 것이다.

도러시아와 부부와 다른 인물 프레드 빈시와 메리 가스의 삶을 통해 조지 엘리엇은 또 다른 관계의 설정을 독자에게 말해준다. 과연 성인은 결혼을 통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결혼 후의 독자적인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이상적인 부부관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조지 엘리엇은 세 쌍의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할 거리를 준다. 그리고 독자는 조지 엘리엇이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대신 그 시대로의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몹시도 사실적이며 진지하다. 그리고 그 여행은 곧 미들 마치 두 번째 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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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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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전편 <천사들의 제국 1>이 순한 맛이라면 왠지 이번 <천사들의 제국 2>는 약간의 마라맛이 가미되었나고나할까? 미카엘 팽송만의 더 고뇌에 걸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그가 관리하는 세 명의 인간들, 프랑스인 자크와 미국인 비너스, 그리고 러시아인 이고르까지... 왜 그들은 팽송과 어긋나 있을까... 흡사 그들과 팽송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날때는 정성껏 돌봐야한다. 왜냐면 아직 어린 자식들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줄을 모르기때문이다. 그 자식이 성장한 후에는 어떠할까? 부모의 눈에는 아직도 아이이다. 그들의 모든 것은 어설퍼보일뿐이다. 그들이 아무리 스스로 독립적이다고 외쳐도 이미 그들의 처음을 보아버린 부모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어리석어 보일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한다. 부모의 존재란 아이를 독립시켜 사회로 내보는 것, 거기까지 할 일을 해야한다. 그들의 인생에 잠입하여 아무리 인생의 조언을 쏟아내줘봤자 그들은 이미 성인이며 받아들이는 것 역시 그들의 마음이다.

<천사들의 제국 2>편에서 미카엘 팽송은 자신이 관리하는 인간들에게 예전만큼 더 이상 적극적이지는 않는 듯하다. 자신보다 먼저 천사가 된 라울, 그리고 프레디를 만나면서 미카엘의 천사로의 삶도 한층 더 풍요로워진 듯하다. 더 이상 인간에게 온 마음을 쏟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새로운 탐험에서 또 다른 은하들을 만나면서 거기서도 지구과 같은 시스템을 발견하는 미카엘 팽송... 아...과연 은하의 끝은 어디일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관의 확장은 진실로 놀랍다. 책 중간 중간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면서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도 등장하고 어찌보면 베르나르의 소설들은 모두 개별적이지 않고 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 아마 그것의 절대적인 물음 하나가 있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천사들의 제국2 >말미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책을 쓰면서 벌어진 일들이 적혀있다. 뜻하지 않게 벌어진 일들이 이 책을 쓸때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아소르스에서 야생 돌고래들과 스쿠버 다이빙을 한 일...아마 이 일을 계기로 돌고래족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영화감독이 되어 영화 <나전 여왕>을 촬영한 것, 또한 프로방스 지방의 메르베유 골짜기 탐험이라던지 니스 천문대에서의 일식 관찰... 이 모든 일들이 이 책 속에 녹아있다. 자세히 천천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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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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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천사들의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예전에는 막연하게 천사란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속에서 나오는 천사의 삶은 왠지 인간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은 것같다. 사람들을 관리하는 것... 그것은 여타의 관리자의 일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환생 역시 그러하다. 인간이 환생하는 것... 전에는 환생을 대단한 거라 생각했다. 본래의 생을 잘 살아야 나중에 환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다르다. 죄가 많으면 환생한다. 다시 또 굴곡 진 인생을 살아내야하는 것이다. 여기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생이 목적이 아니라 환생을 지양하며 오직 성불을 목표로, 즉 깨달은 자를 목표로 이 생의 삶을 수양이라고 여기면서 사는 것... 과연 환생일까? 성불일까?

갑작스런 죽음, 비행기 사고... 맞다. 비행기 사고처럼 갑작스런 것도 없는 것이다. 느닷없이 하늘에서 뚝..하고 떨어져 죽다니... 그 후에 이어진 심판들... 왠지 심판은 공정하지 못한 느낌이다. 하물며 영화 [신과 함께]를 보아도 재판은 여러번을 걸쳐서 여러 신을 만나 이루어지는데, 왜인지 소설 속 심판은 심심하기 짝이 없다. 결국 대천사들의 심판에서 미카엘은 환생과 천사로의 생 중 후자를 선택하게 되어 환생은 면?하게 된다. 과연 그것이 더 나은 것일까?

미카엘 팽송은 이제 수호천사가 된다. 수호천사의 자격을 얻은 미카엘 팽송은 세 인간의 삶과 함께한다. 그들을 변호하고 지켜야되는 임무가 그의 새로운 역할이다. 또한 팽송이 관리하는 인간이 나중에 죽어서 영계로 왔을때 그들을 최대한 변호해서 환생의 벌을 막아야하는 것이 그의 임무이다. 미카엘의 수호천사가 그를 변호한 것처럼 말이다.

미카엘은 세 명의 영혼을 태어날때부터 관리한다. 흡사 수호천사란 대모,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육체의 어머니는 따로 있지만 정신, 즉 영혼의 어머니는 수호천사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에 나오는 전생의 세계관은 몹시도 흥미롭다. 인간이 처음부터 인간이 아니라 광물이거나 다른 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설정 역시도 말이다.

아.. 마카엘은 과연 인간의 선택에 얼마나 관여할 수 있을 것인가? 미카엘이 관리하는 인간은 과연 그의 말대로 잘 따라올 것인가? 선택이란 자유의지란 무엇인가? 천사들의 제국2에서 더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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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5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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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민음사 (펴냄)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다. 전혀 다른 결말이었다. 나는 그냥 프랑수아즈가 영원히 그자비에르를 떠날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프랑수아즈가 그자비에르에게 보인 집착 혹은 성정은 강렬했다. 오히려 둘은 서로가 원래가 하나인 양 생각이 된다. 최초에 하나인 자가 둘로 갈라져서 둘 중 하나를 없애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도 싶다.

소설 [초대받은 여자]를 쓸 때 보부아르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능력 혹은 성정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주인공인 프랑수아즈는 해냈고, 해낼 것이니까 말이다. 그것도 그 자신의 능력과 선택으로 말이다. 보부아르는 유독 글을 쓸 때 그것을 강조하는 듯하다. 자신의 선택, 자기 선택의 능력을 말이다. 아마 철학적 생각을 어릴 때부터 즐겨 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추구해온 성향상 그녀는 무언가 한 가지를 할 때도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왜 이러지? 이건 뭐지? 왜 안돼? 뭔가 잘못된 거지?... 아... 한마디로 생각이 너무 많다. 그 생각 많음은 자기 자신으로 오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에서 오는 것일까? 보부아르는 끊임없이 그런 유들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관찰하는 여성이었다. 절대 한순간도 허투루 살기 싫어하는 사람이랄까? 그러기에 이런 소설도 쓸 수 있었을 것이리라.

프랑수아즈는 그자비에르에게 무언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스스로 그녀를 선택했고 그녀를 망가뜨렸다고 느낀 것이다. 그러기에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 자신의 못 본 척할 수 없는 말썽꾸러기 자식이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그녀 스스로 낳았으니 그녀가 해결해야 된다. 그것만이 프랑수아즈 자신과 그자비에르를 원래대로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깨달은 점이 인간이란 존재가 과연 그렇게 위대한가이다. 보부아르가 실험했던 그 어떤 제약도 없는 삼각연애란 그녀 스스로에게는 치명적인 고통이었다. 과연 이런 실험이 맞는가?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아니었나? 아니면 실험을 기꺼이 제안하고 응한 그녀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만심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 관계는 이기적이다. 둘의 관계는 오직 둘만이 알 수 있다. 최근 획기적인 가족 실험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다섯 명의 여성과 사는 한 명의 남성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평온하게 말이다. 생각할수록 참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 속을 더 들여다보고 싶기도. 보부아르라면 과연 어떤 말을 해줬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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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4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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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받은 여자 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강초롱 (옮김) | 민음사 (펴냄)

소설은 꽤 흥미이었다. 유독 시몬 드 보부아르의 자전적인 이야기와도 같은 내용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으며 그녀가 생각했던 사랑과 존중의 의미 등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소설 속에 나오는 세 인물 프랑수아즈, 피에르, 그자비에르는 현실 속 인물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어가고 있는 사랑과 연애를 둘러싼 모든 모순적인 이야기들의 삼각관계들을 불러일으키게도 한다. 프랑수아즈는 보부아르를 연상시키고 피에르는 샤르트르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이 보부아르의 첫 장편소설임을 짐작하게 할 때 역시 아 그렇구나 하는 수긍도 가는 것이다. 샤르트르와 제자 올가 코사키에비치는 흡사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를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그 삼각관계의 현실적인 삶 속에서 나 홀로 분투하는 자는 프랑수아즈, 즉 보부아르 자신이다. 흡사 자신이 벌어놓은 관계의 판에서 자신 존재의 심판자가 된다고나 할까... 열다섯 살에 철학으로 마음을 굳히고 인간의 내면을 파고든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여기서 떠올려진다. 그리고 난 왜인지 이 판에서 주인공은 프랑수아즈이고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의 실험대 상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을 통해서 자신의 의미를 사랑과 존중과 더 나아가 인간의 모든 긍정이든 부정이든 감정에 대한 모든 것을 실험하려고 애쓰는 철학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시절 사랑의 이해라고나 할까...

초대받은 여자로 일컬어지는 그자비에르는 프랑수아즈 본인이 데려온 여자이다. 유독 마음을 써가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녀의 저돌적인 성질에 끌렸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불도저 같은 매력에 오히려 피에르보다도 먼저 빠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결국 피에르와 그자비에르의 관계를 방관하는 처지를 초래한 것일 수도...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과연 프랑수아즈가 결국 깨달았던 사랑의 이해는 무엇이었을까이다. 프랑수아즈가 피에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왜 그녀는 인간의 감정이 변덕스럽고 이기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그로 인해 그녀 자신이 고통스러울 거라는 것도... 어쩌면 그녀는 그 고통 역시 고통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이해해 보려 했을 듯하다.

아... 피에르와 그자비에르는 사랑이란 것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축복을 프랑수아즈에게 강요한다. 결국 프랑수아즈에게 남은 것은 선택뿐이다. 그리고 그녀 자신 스스로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 그녀의 마음을 말이다. 어쩌면 그녀 마음의 거울은 피에르와 그자비에르가 이미 비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2편으로 넘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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